大智度論 釋佛母品 第四十八之餘 卷七十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 三藏法師 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삼잡법사 구마라집 소역.
48. 불모품(佛母品)을 풀이함② 3
佛知五衆空、無相、無作、無戲論,但知五衆如,不如凡夫虛誑顚倒見。如五衆如,一切法如亦如是。何以故?二法攝一切法,所謂有爲、無爲。五衆是有爲法,五衆如卽是無爲法。觀察、籌量、思惟五衆能行六波羅蜜,是故說:“五衆如卽是一切法如。一切法如卽是六波羅蜜如。”
부처님께서는 오중(오온)이 공(空) 무상(無相) 무작(無作)이며, 쓸모없는 희론이 없는 무희론(無戲論)이라는 것을 아시며, 다만 오중의 한결같은 여(如)만을 아시나니, 거짓되고 전도(顚倒)되게 보는 범부의 견해와는 같지 않으며,
오중여(五衆如)와 같이 일체법여(一切法如) 또한 그와 같으니, 왜냐하면 두 가지의 이법(二法)이 일체법을 포섭하는 것으로, 이른바 유위법(有爲法)과 무위법(無爲法)이다.
오중은 유위법이요, 오중여(五衆如)는 곧 무위법이며,
오중을 관찰하고 헤아리고 생각하면서 능히 육바라밀을 행하기 때문에 오중여(五衆如)가 곧 일체법여(一切法如)라고 설명하였으니, 일체법여가 곧 육바라밀여(六波羅蜜如)인 것이다.
行六波羅蜜菩薩求實道,觀五衆無常、空,生三十七品、八背捨、九次第等,是聲聞道;知已直過,行十八空、十力等諸佛法 皆正觀五衆. 五衆如,無分別故,皆是一切諸法如。是故說:“善法如卽是不善法如,不善法如卽是善法如。”
육바라밀을 행하는 보살은 진실한 실도(實道)를 구하면서, 오중이 무상하고 공하다고 관하며, 37 조도품과 팔배사와 구차제정 등을 내나니, 이것이 성문도(聲聞道)라는 것을 안 뒤에는 곧장 뛰어 넘어서 18공과 십력 등의 모든 부처님의 불법을 행하면서, 오중 모두를 바르게 관찰하며,
오중여(五衆如)는 분별이 없기 때문에 이 모두는 제법여(諸法如)이기 때문에 착한 선법의 여(如)는 곧 착하지 않은 불선법의 여(如)이며, 착하지 않은 불선법의 여(如), 그것이 곧 착한 선법의 여(如)라고 설하는 것이다.
世閒、出世閒法亦如是。是以行者不得著善法,乃至阿耨多羅三藐三菩提,佛如相亦如是,皆是一如相,不二不別。所以者何?求諸法實,到畢竟空,無復異。
세간과 출세간의 법 또한 그와 같나니, 그러므로 수행하는 행자는 착한 선법 내지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까지도 집착해서는 안되는 것이며, 부처님의 여여한 여상(如相) 또한 그러한 것이니, 모두 일여상(一如相)이라서 둘이 아닌 불이(不二)이고 다르지 않은 불별(不別)이니, 왜냐하면 제법의 진실을 구하여 필경공(畢竟空)에 이르게 되면 다시 다른 것이 없기 때문이다.
如是等諸法如,佛因般若波羅蜜得,是故言:“般若波羅蜜能生諸佛、能示世閒相。”須菩提歎未曾有,白佛言:世尊!一切諸法如甚深,隨順不相違。三世十方諸佛如,卽是諸法如;解是諸法如故,爲衆生種種說法。是甚深如,難解難信;阿鞞跋致菩薩入法位受記者能信,“具足正見人”者三道人,漏盡阿羅漢不受一切法故能信。其有信者,近阿鞞跋致故,皆攝在阿鞞跋致中,故不別說。
이와 같은 등으로 부처님께서는 제법의 여(如)를 반야바라밀로 인하여 얻으시는 것이니, 이 때문에 “반야바라밀은 모든 부처님을 내며(生) 능히 세간상을 보이는 시세간상(示世閒相)이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수보리 존자는 희유한 일이라고 찬탄하면서 부처님께 말씀드리기를,
“세존이시여, 일체 제법의 여(如)는 심히 깊습니다. 삼세와 시방(四方)의 모든 부처님의 여(如)를 따라서 어기지 않나니, 곧 그것이 제법의 여(如)인 것입니다”고 하였으며,
이 제법의 여(如)를 이해한 때문에 중생을 위하여 갖가지로 법을 설하나니, 이 심심(甚深)히 깊은 여(如)는 알기도 어렵고 믿기도 어려운 난해난신(難解難信)한 것이니, 아비발치(불퇴전)의 보살로서 법위(法位)에 들어 수기(授記)를 받은 이라야 믿을 수 있는 것이다.
‘바른 정견(正見)을 두루 갖춘 사람’이란 수행의 세 가지 단계인, 견도(見道) · 수도(修道) · 무학도(無學道)의 삼도(三道)를 얻은 사람이며, 번뇌가 다한 아라한은 일체법을 받지 않기 때문에 믿을 수 있으며, 믿음이 있는 이라면 아비발치(불퇴전)에 가까웠으므로 모두가 아비발치 가운데에 포함될 수 있기 때문에 따로 설명하지 않는다.
佛語須菩提:“一切法無盡故,是如無盡。”如無盡故,得聖道者能信。無爲法中差別故有須陁洹諸道,聞自所得法故能信;凡夫人著虛誑顚倒法故不能信。
부처님께서는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시기를, “일체법은 다함이 없는 무진(無盡)이기 때문에 이 여(如)도 무진(無盡)이다”고 하셨으니, 여(如)는 다함이 없는 무진이기 때문에 성인의 도를 얻은 이는 믿을 수 있는 것이며,
무위법 가운데에서는 차별이 있기 때문에 수다원의 모든 도(道)가 있는 것이며, 스스로 얻을 소득법(所得法)을 들었기 때문에 믿을 수 있지만, 범부는 거짓되고 뒤바뀐 법에 집착하기 때문에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佛告須菩提:“諸佛得是諸法如故,名爲如來,名爲一切智人,能教衆生令至涅槃。”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시기를, “모든 부처님께서는 이 제법의 여(如)를 얻으셨기 때문에 여래(如來)라 하고, 일체지(一切智)를 얻은 사람이라 하나니, 능히 중생을 교화하여 열반에 이르게 하신다”고 하셨다.
大智度論 釋問相品 第四十九 卷七十
49. 문상품(問相品)을 풀이함 1
▶經. 爾時,三千大千世界中所有欲界天子、色界天子遙散華香,來至佛所,頂禮佛足,一面住,白佛言:“世尊!所說般若波羅蜜甚深,何等是深般若波羅蜜相?”
▷經. 그때 삼천대천세계 안에 있는 모든 욕계(欲界)의 천자(天子)와 색계(色界)의 천자들이 멀리서부터 꽃과 향을 흩뿌리면서 부처님 계신 곳으로 와서 머리 조아려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한 쪽에 서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말씀하신 반야바라밀은 매우 깊은 것입니다. 어떠한 것이 깊은 심(深)반야바라밀의 상(相)인지요?”
佛告欲界、色界諸天子:“諸天子!空相是深般若波羅蜜相,無相、無作、無起、無生無滅、無垢無淨,無所有法,無相、無依止,虛空相是深般若波羅蜜相。
부처님께서 욕계와 색계의 모든 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여러 천자들아, 공한 공상(空相)이 깊은 심(深)반야바라밀의 상(相)이며, 모양이 없는 무상(無相)이고, 지음이 없는 무작(無作)이고, 불기(不起)이고, 불생(不生)이고, 불멸(不滅)이고, 더러움이 없는 불구(不垢)이고, 깨끗함도 없는 부정(不淨)이고, 존재하는 법이 없는 무소유법(無所有法)이며, 무상(無相)이고, 의지함이 없는 무의지(無依止)의 허공상(虛空相)이 바로 깊은 심(深)반야바라밀의 상(相)이니라.
諸天子!如是等相是深般若波羅蜜相。佛爲衆生用世閒法故說,非第一義。諸天子!是諸相,一切世閒天、人、阿修羅不能破壞。何以故?是一切世閒天、人、阿修羅亦是相故。諸天子!相不能破相,相不能知相,相不能知無相,無相不能知相。是相、是無相、相無相皆無所知,謂知者、知法皆不可得故。
여러 천자들아, 이와 같은 등의 상(相)이 바로 깊은 심(深)반야바라밀의 상(相)이니, 부처님께서는 중생을 위하는 까닭에 세간의 법으로써 설하는 것이지 제일의(第一義)로써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여러 천자들아, 이 제상(諸相)은 일체의 세간의 하늘이나, 사람이나, 아수라로서는 파괴할 수 없나니, 왜냐하면 이 일체 세간의 하늘과 사람과 아수라들 역시 이 상(相)이기 때문이니라.
여러 천자들아, 상(相)은 상(相)을 파괴할 수 없고, 상(相)은 상(相)을 알지 못하며, 상(相)은 무상(無相)을 알지 못하며, 무상(無相)은 상(相)을 알 지 못하느니라.
이 상(相)이 곧 무상(無相)이나, 상(相)과 무상(無相) 모두를 알지 못하나니, 이른바 아는 지자(知者)와 아는 지법(知法) 모두가 얻을 수 없는 불가득이기 때문이니라.
何以故?諸天子!是諸相非色作,非受、想、行、識作;非檀波羅蜜作,非尸羅波羅蜜、羼提波羅蜜、毘梨耶波羅蜜、禪波羅蜜、般若波羅蜜作;非內空作,非外空作,非內外空作,非無法空作,非有法空作,非無法有法空作;非四念處作,乃至非一切種智作。諸天子!是諸相,非人所有,非非人所有;非世閒,非出世閒;非有漏,非無漏;非有爲,非無爲。”
왜냐하면 여러 천자들아 이 모든 제상(諸相)은 물질(色)이 만든 것이 아니고 느낌(受)ㆍ생각(想)ㆍ 지어감(行)ㆍ분별(識)이 만든 것이 아니며, 단바라밀(檀波羅蜜, 보시)이 만든 것이 아니고, 시라바라밀(尸羅波羅蜜, 지계)과 찬제바라밀(羼提波羅蜜, 인욕)과 비리야바라밀(毘梨耶波羅蜜, 정진)과 선바라밀(禪波羅蜜)과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이 만든 것이 아니며,
내공(內空)이 만든 것이 아니고 외공(外空)이 만든 것이 아니고 내외공(內外空)이 만든 것이 아니고 무법공(無法空)이 만든 것이 아니고 유법공(有法空)이 만든 것이 아니고 무법유법공(無法有法空)이 만든 것이 아니며,
사념처가 만든 것이 아니고 나아가 일체종지가 만든 것도 아니기 때문이니라.
여러 천자들아, 이 모든 제상(諸相)은 사람이 가질 것이 아닌 비인소유(非人所有)이고, 사람이 아닌 것이 가질 것도 아닌 비비인소유(非非人所有)이며, 세간도 아니고 출세간도 아니며, 유루(有漏)도 아니고 무루(無漏)도 아니며, 유위도 아니고 무위도 아니기 때문이니라.”
佛復告諸天子:“譬如有人問:‘何等是虛空相?’此人爲正問不?”
부처님께서 다시 여서 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자면, 마치 어떤 사람이 ‘어떠한 것이 허공상(虛空相)인가’라고 묻는 것과 같으니,
이 사람의 질문을 바른 질문이라 할 수 있겠는가?”
諸天子言:“世尊!此不正問。何以故?世尊!是虛空無相可說,虛空無爲無起故。”
여러 천자들이 말씀드리기를,
“세존이시여, 그것은 올바른 질문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이 허공상(虛空相)으로 설명할 만한 것이 없으니, 허공은 작위가 없는 무위(無爲)이고 일으킴이 없는 무기(無起)이기 때문입니다.”
佛告欲界、色界諸天子:“有佛無佛,相性常住。佛得如實相性故,名爲如來。”
부처님께서 욕계와 색계의 여러 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부처님이 계시거나 부처님이 계시지 않거나 간에 상(相)과 성(性, 성품)은 항상 머무르기 때문이니,
부처님께서는 상(相)과 성(性, 성품)을 여실(如實)히 얻었기 때문에 여래(如來)라 하느니라.”
諸天子白佛言:“世尊!世尊所得諸相性甚深,得是相故,得無㝵智;住是相中,以般若波羅蜜集諸法自相。”
여러 천자들이 부처님께 말씀드리기를,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얻으신 모든 상(相)과 성(性, 성품)은 매우 깊은 것입니다. 이 상(相)을 얻으셨기 때문에 무애지(無礙智)를 얻으셨으며, 이 상(相)에 머물러 반야바라밀로써 제법의 자상(自相)을 모으신 것입니다.”
諸天子言:“希有!世尊!是深般若波羅蜜是諸佛常所行處,行是道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已,通達一切法相,若色相,若受、想、行、識相,乃至一切種智相。”
이어 천자들이 말씀드리기를,
“희유한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이 깊은 심(深)반야바라밀은 모든 부처님께서 항상 행하신 소행처(所行處)이며, 이 도(道)를 행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시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신 뒤에는 일체법의 법상(法相)인 물질(色)의 상(相)과 느낌(受)ㆍ생각(想)ㆍ 지어감(行)ㆍ분별(識)의 상(相) 내지는 일체종지의 상(相)을 통달하신 것입니다.”
佛言:“如是!如是!諸天子!惱壞相是色相,佛得是無相;覺者受相,取者想相,起作者行相,了別者識相, 佛得是無相。能捨者檀波羅蜜相,無熱惱者尸羅波羅蜜相,不變異者羼提波羅蜜相,不可伏者毘梨耶波羅蜜相,攝心者禪波羅蜜相,捨離者般若波羅蜜相 佛得是無相。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참으로 그러하고 그러하느니라. 천자들아, 무너짐을 괴로워하는 뇌고상(惱壞相)이 바로 물질(色)의 상(相)이니,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무상(無相)을 얻었느니라.
깨닫는 각(覺)은 느낌의 수상(受相)이요, 취(取)하는 것은 생각의 상상(想相)모양이며, 일으켜 짓는 기작(起作)은 지어감의 행상(行相)이요, 요별(了別)하는 것은 분별의 식상(識相)이니,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상이 없는 무상(無相)을 얻었느니라.
능히 버리는 능사(能捨)하는 것은 단(보시)바라밀의 상(相)이요,
뜨거운 번뇌가 없는 무열뇌(無熱惱)는 시라(지계)바라밀의 상(相)이며,
변하여 달라지지 않는 불변이(不變異)는 찬제(인욕)바라밀의 상(相)이요,
조복할 수 없는 불가복(不可伏)은 비리야(정진)바라밀의 상(相)이며,
마음을 가다듬어 섭심(攝心)하는 것은 선바라밀의 상(相)이요,
버리고 여의는 사리(捨離)는 것은 반야바라밀의 상(相)이니,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무상(無相)을 얻었느니라.
心無所嬈惱者,是四禪、四無量心、四無色定相佛 得是無相。出世閒者,三十七品相 佛得是無相。苦者,無作脫門相;離者,空脫門相;寂滅者,無相脫門相 佛得是無相。勝者,十力相;不恐怖者,無所畏相;遍知者,四無㝵智相;餘人無得者,十八不共法相 佛得是無相。愍念衆生者,大慈大悲相;實者,無謬錯相;無所取者,常捨相;現了知者,一切種智相佛得是無相。如是,諸天子!佛得一切諸法無相,以是因緣故,佛名無㝵智。”
마음에 번거로운 번뇌가 없는 무소요뇌(無所嬈惱)는 바로 사선(四禪)과 사무량심과 사무색정의 상(相)이니,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무상(無相)을 얻었느니라.
세간을 벗어나는 출세간(出世間)은 37 조도품의 상(相)이니,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무상(無相)을 얻었느니라.
괴로운 고(苦)라는 것은 무작(無作) 해탈문의 상(相)이요, 여의는 이(離)는 것은 공해탈문의 상(相)이며,
고요히 사라지는 적멸(寂滅)은 무상(無相) 해탈문의 상(相)이니,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무상(無相)을 얻었느니라.
수승함의 승(勝)은 십력의 상(相)이요, 두려워하지 않는 불공포(不恐怖)는 무소외(無所畏)의 상(相)이며,
두루 아는 편지(遍知)는 사무애지의 상(相)이요,
다른 사람으로서 얻지 못하는 여인무득(餘人無得)은 18불공법의 상(相)이니,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무상(無相)을 얻었느니라.
중생을 가엾이 여기는 것은 대자대비(大慈大悲)의 상(相)이요,
진실한 실(實)은 착오가 없는 무류착(無謬錯)의 상(相)이며,
취할 것이 없는 무소취(無所取)는 항상 버리는 상사(常捨)의 상(相)이요,
현재에 환히 아는 것은 일체종지의 상(相)이니,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무상(無相)을 얻었느니라.
이와 같이 여러 천자들아, 부처님께서는 일체 제법의 무상(無相)을 얻었나니, 이러한 인연으로 부처님을 무애지(無礙智)를 지닌 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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