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 釋散華品 第二十九 卷五十五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송성수 번역/김형준 개역

29. 산화품(散華品) 풀이함 5

 

般若波羅蜜非色如、亦非離色如,非受想行識如、亦非離受想行識如。

반야바라밀은여(色如)가 아니요, 또한 색여(色如) 여(如)를 여읜 것도 아니며,

수여(受如)ㆍ상여(想如)ㆍ 행여(行如)ㆍ식여(識如) 아니요, 또한 수여(受如)ㆍ상여(想如)ㆍ 행여(行如)ㆍ식여(識如) 여읜 것도 아닌 비리(非離)입니다.


般若波羅蜜非色法、亦非離色法,非受想行識法、亦非離受想行識法。乃至非一切種智如、亦非離一切種智如。

반야바라밀은법(色法)이 아니요, 또한 색법(色法) 여읜 것도 아니며, 

수법(受法)ㆍ상법(想法)ㆍ 행법(行法)ㆍ식법(識法)도 아니요, 또한 수법(受法)ㆍ상법(想法)ㆍ 행법(行法)ㆍ식법(識法)을 여읜 것도 아니며, 나아가 일체종지의 여(如)가 아니요 또한 일체종지의 여(如)를 여읜 것도 아닙니다.


般若波羅蜜非一切種智法、亦非離一切種智法。何以故?憍尸迦!是一切法皆無所有 不可得。

반야바라밀은 일체종지의 법이 아니요, 또한 일체종지의 법을 여읜 것도 아니니, 왜냐하면 교시가여,  일체 모두는 있는 바가 없는 무소유(無所有)이고 얻을  없는 불가득이기 때문입니다.

 

以無所有、不可得故,般若波羅蜜非色、亦非離色,非色如、亦非離色如,非色法、亦非離色法;乃至非一切種智、亦非離一切種智,非一切種智如、亦非離一切種智如,非一切種智法、亦非離一切種智法。”

있는 바가 없는 무소유(無所有)이고, 얻을  없는 불가득이기 때문에 

반야바라밀은 색(色) 아니요, 또한 색(色) 여읜 것도 아니며,

색여(色如)가 아니요, 또한 색여(色如) 여읜 것도 아니며,

색법(色法) 아니요 또한 색법(色法) 여읜 것도 아니며,

나아가 일체종지가 아니요 또한 일체종지를 여읜 것도 아니며, 

일체종지의 여(如)가 아니요, 또한 일체종지의 여(如)를 여읜 것도 아니며, 

일체종지의 법이 아니요 또한 일체종지의 법을 여읜 것도 아닙니다.”

 

▶論. 問曰:佛、舍利弗、須菩提從上來種種因緣明般若波羅蜜相,今釋提桓因何以故問“當何處求般若波羅蜜”?

▷논. 묻나니, 부처님과 사리불 존자와 수보리 존자는에서부터 갖가지의 인연으로 반야바라밀의 상(相) 밝히셨거늘, 지금 석제환인이 무엇 때문에 “어디에서 반야바라밀을 구해야 하는가”라고 묻는 것입니까?


荅曰:此不問般若體,但問般若言說名字可讀誦事,是故舍利弗言:“當於須菩提所說品中求。”須菩提樂說空,常善修習空故;舍利弗雖智慧第一,以無吾我嫉妒心,又斷法愛故,而言“當於須菩提所說品中求”。

답하나니, 이것은 반야의 체(體)를 물은 것이 아니고, 단지 반야에 대한 언설(설言說)과 명자(名字)로써 독송할  있는 것을 물었을 뿐이니,  때문에 사리불 존자가 말하기를 “수보리 존자께서 말씀하신 품(品) 가운데에서 구해야 한다.”고 한 것이니, 수보리 존자는 공을 해설하기 좋아하고, 언제나 공을  닦아 익혔기 때문이며, 

사리불 존자가 비록 지혜제일이라 할지라 ‘나(我)’라거나 질투하는 마음이 없고, 또한 법애(法愛)를 끊었기 때문에 “수보리 존자께서 말씀하신  가운데에서 구해야 한다.”고 한 것이다.


問曰:佛處處說般若波羅蜜,欲比須菩提所說,百千萬倍不可筭數譬喩爲比,何以不言“於佛所說品中求”?

묻나니, 부처님께서는 곳곳에서 반야바라밀을 말씀하셨으므로, 수보리 존자가 비교하려면 백천만 배나 되어서 산수(算數)와 비유(譬喩)로도 비교될  없거늘, 어째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품(品)에서 구하라.”고 말하지 않은 것입니까?

 

答曰:釋提桓因意:“除佛一人,誰能善說者?”是以推須菩提。

답하나니, 석제환인의 뜻한 바는, 부처님 만을 제외하고,  밖의 누가  말할 수 있는 것인가라고 물은 것이기 때문에 수보리 존자를 추천한 것이며,


復次,佛常一日一夜六時以佛眼觀衆生,無令不聞法故墮落,是故隨衆生所應解、所應得、所應習行等說。

또한 부처님께서는 항상 하루 낮, 하룻밤의 여섯  동안에 불안(佛眼)으로써 중생들을 자세히 살피시면서 법을 듣지 못하여 타락하는 일이 없게 하시니,  때문에 중생이 따르면서 알아야  바와 얻어야  바와 익히고 행해야  바를 말씀하여 주시는 것이다.


或說般若波羅蜜無常、苦、空、無我,如病、如癰等,名爲“般若波羅蜜”;或分別諸法摠相、別相,或說諸法因緣和合生,無有作者、受者,無知者、見者,名爲“般若波羅蜜”;或時說法空、或說畢竟空,名爲“般若波羅蜜”。以是故,不言“佛所說品中求”。

혹은 반야바라밀은 무상(無常)하고 공(空)하고 괴로운 고(苦)이고 , 무아(無我)이라서 마치 질병과 같고 마치 종기와 같다는 등을 말씀하시므로 반야바라밀이라 하기도 하며,

혹은법의 총상(總相)과 별상(別相)을 분별하기도 하고, 혹은법은 인연이 화합하여 생기는 것이어서 짓는 작자(作者)와 받는 수자(受者)도 없고, 아는 지자(知者)와 견자見者)도 없다고 말씀하시므로, 반야바라밀이라 하기도 하며,

때로는 법공(法空)이라 설하기도 하시고, 필경공(畢竟空)이라 설하기도 하시면서 반야바라밀이라고 이름하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품에서 구하라.”고는 말하지 않은 것이며, 


又釋提桓因心念:‘不知何者定是般若定相?’是以舍利弗言:“須菩提常深入空,所說皆趣空,所說空亦空;是故言‘當於須菩提所說品中求’。”

또한 석제환인의 생각에는 어느 것이 정작 반야의 일정한 정상(定相)인가를 모르기 때문에

사리불 존자가 말씀하시기를 “수보리 존자는 항상 깊이 공(空)에 들며, 말하시는 바 모두가 공으로 나아가며, 말씀하시는 바의  또한 공이다.”고 하나니, 

 때문에 “수보리 존자께서 말씀하신  가운데에서 구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釋提桓因歡喜,讚須菩提言:“大德神力甚大!”須菩提謙言:“非是我力,是佛所受神力。”

석제환인이 기뻐하면서 수보리 존자를 찬탄하며 말하기를 “대덕의 신력은 심히 크다.”고 하자

수보리 존자가 겸손히 말하기를 “이것은 나의 힘이 아닙니다. 바로 부처님에게서 받게  신력입니다.”고 한 것이다.


釋提桓因言:“若一切法皆無所受,云何言是佛所受神力?若離無受相,如來不可得;離如中,如來不可得。”

석제환인이 말하기를 “만약 일체법이 모두 받는 수(受)라면, 어떻게 ‘이것은 부처님에게서 받게  신력이다.’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만약 받는 것이 없는 무수상(無受相)을 여의면 여래는 얻을  없는 불가득이고, 여(如)를 여읜 가운데에서도 여래는 얻을  없는 불가득이다.”고 하는 것이며,


釋提桓因作是念言:“一切法無受相,一切法空,無依止處,云何當言定有如來?若無如來,云何有所受神力?又復離無受相,如來亦不可得;今離是如,如來不可得。”

석제환인이 이러한 생각을 하면서 말하기를 “일체법에 받는 수상(受相) 없다면, 일체법은 공하여 의지하는 곳도 없거늘, 어떻게 ‘반드시 여래가 계신다.’고 말할  있겠는가!

만약 여래가 계시지 않는다면 어떻게 받게 되는 신력이 있다는 것이며! 

또한 받는 수상(受相) 여의면 여래 또한 얻을  없는 불가득이니, 이제  여(如)를 여의고도 여래는 얻을  없는 불가득이다.”고 하는 것이다.


問曰:無受相與如有何等異?

묻나니, 받는 것이 없는 무수상(無受相) 여(如)는 어떠한 차이가 있는 것입니까?


荅曰:諸法實相,亦名無受,亦名如。諸法中不可著,故名無受;諸戲論不能破壞,故名爲如。今如來,空中不可得,離空亦不可得。須菩提然其言:“如是!如是!”今須菩提廣說其事。

답하나니, 제법의 실상(實相)을 또한 받는 것이 없는 무수(無受)라고 하고, 또한 여(如)라고도 하나니, 제 안에서는 집착할  없기 때문에 무수(無受)이고, 모든 희론으로도 파괴할  없기 때문에 여(如)라 하는 것이며, 

“여래는 공한 가운데에서 얻을  없는 불가득이고, 공을 여의고도 또한 얻을 수 없는 것이다.”고 하자, 수보리 존자가 그의 말이 옳다고 하면서 “참으로 그러하고 그러합니다.”고 것이니, 수보리 존자가 그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하였다.


“無受相、如相中,如來不可得”者,或以佛名名爲如來,或以衆生名字名爲如來。如先世來,後世亦如是去,是亦名如來,亦名如去。如十四置難中說:“死後如去者,爲有?爲無?亦有亦無?亦非有非無?”

“받는 것이 없는 무수상(無受相) 여상(如相) 가운데에서 여래를 얻을  없다.”고 함이란, 

 부처님의 명호를 여래(如來)라 하기도 하고,  중생의 이름을 여래라 하기도 하며,

마치 세에서 오는 것과 같은, 여시래(如先世來)와 같이(如) 후세에도 또한 이와 같이 가는 후세역시거(後世亦如是去)를 또한 여래(如來)라 하기도 하고 또한 여거(如去)라 하기도 하나니,

마치 14치난(置難, 14 난문)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사후에 여거자(如去者)는 있는가 없는가? 또한 있기도 하고 또한 없기도 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가?”라고것과 같은 것이다.

 

14가지의 난문(難問)= 십사무기(十四無記)

• 세계는 상(常)인가, 무상(無常)인가, 상도 아니고 무상도 아닌가? - 3가지
• 세계는 유한(有限)인가, 무한(無限)인가, 유한도 아니고 무한도 아닌가? -3가지
• 여래(如來)는 사후(死後)에 존재하는가?
•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가?
•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면서 존재하지 않는가?
•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도 존재하지 않지도 않은가?
• 정신과 육체는 하나인가, 둘인가? - 2가지
• 목숨과 신체는 같은가? 목숨과 신체는 다른가? - 2가지 - 아미산


佛名如來者,如定光佛等行六波羅蜜,得成佛道;釋迦文佛亦如是來,故名如來。如錠光佛等智知諸法如,從如中來,故名如來;釋迦文佛亦如是來,故名如來。

부처님을 여래(如來)라 하나니, 정광불(定光佛) 부처님께서는 육바라밀을 행하여 도를 이루셨으며, 석가모니 부처님 또한 그와 같이 하시면서 오신, 여시래(如是來)하셨기 때문에 여래라 하며, 

정광불 부처님께서는 지혜로법의 여(如)를 아시고, 그 여로부터 오신 종여중래(從如中來)이셨기 때문에 여래라 하며, 석가모니 부처님 역시 그와 같이 오셨기 때문에 여래라 하나니, 

 

此二種如來中,此閒說是佛如來。因解佛如來無所有,一切衆生、一切法皆如是亦無所有。無受及如來義,如先說。今當更略說。

이러한  가지 여래(如來) 가운데에서, 여기에서 말하는 부처님의 여래는 “부처님의 여래(如來)는 있는 바가 없는 무소유(無所有)이다.”고 이해함으로 인하여 일체 중생과 일체 또한 그와 같아서 역시 무소유(無所有)이 받는 것도 없는 무수(無受)인 것이다. 여래라는 뜻에 대해서는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으나 이제 다시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無受相、如來相皆空無所有。無受相、如相,無定性故無如來。有人言:諸法實相有二種說:一者、諸法相畢竟空,是實;二者、有人言:畢竟空可示可說故非實,如涅槃相不可示不可說,是名爲實。

받는 것이 없는 무수상(無受相) 여래상(如來相)은 모두 공하여 있는 바가 없는 무소유(無所有)이니, 곧 무수상(無受相) 여상(如相)은 정해진 성품이 없기 때문에 여래가 없는 것이니, 어떤 다음과 같이 말하였으니, 

“제법의 실상에는  가지의 설명이 있다. 

첫째, 어떤 분은 말하기를 ‘제법의 법상(法相)은 필경공(畢竟空)이니, 이것이 진실이다.’고 하였으며, 

둘째, 어떤 분은 말하기를 ‘필경공(畢竟空)은 보일 수도 있고 설명할 수도 있기 때문에 진실이 아니요, 열반상(涅槃相)은 보일 수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기 때문에 이것을 진실이라 한다.’고 하였다.”


於此二事,畢竟空中如來不可得,破畢竟空實相中如來亦不可得。畢竟空卽是無受相,破畢竟空實相卽是如。從此已下,廣說二義。

  가지에서, 필경공(畢竟空) 가운데에서는 여래를 얻을  없고,필경공(畢竟空) 깨뜨린 실상(實相) 가운데에서도 여래는 얻을  없는 불가득이나니, 필경공, 그것이 받는 것이 없는 무수상(無受相)이요, 필경공을 깨뜨린 실상이  여(如)이니, 이하에서는   가지의 이치를 자세히 설명한다.


於五衆乃至一切種智,如來不可得;如來不可得故,云何當有如來神力?如來不可得,如上說。是五衆非如來,離五衆非如來,五衆不在如來中,如來不在五衆中,如來亦不有五衆。五衆生滅無常、苦、空、無我相故,非是如來;若是如來者,如來亦應是生滅。

오중(五衆)에서 일체종지에 이르기까지 여래는 얻을  없는 불가득이며, 여래를 얻을  없거늘 어떻게 여래의 신력(神力)이 있을  있겠는가? 여래를 얻을  없다는 대해서는 위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중은 여래가 아니요, 오중을 여의고서도 여래가 아니며,

오중은 여래 가운데에 있지 않고, 여래는 가운데에 있지 않으며, 여래 또한중이 있지 않나니,

오중은 생멸상(生滅相)이고, 무상상(無常相)이고, 괴로운 고상(苦相)이고, 무아상(無我相)이기 때문에 이것은 여래가 아니니, 만약 이것이 여래라 한다면 여래 또한 당연히 생멸하여야 하는 것이다.

 

復次,五衆是五法,如來是一,云何五法作一?若五卽是一,一亦應卽是五;若爾者,世閒法、出世閒法,一切亂壞!

또한중은 다섯 가지 의 오법(五法)이요, 여래는  가지이거늘, 어떻게 다섯 가지 법이 하나가 될 수 있겠는가. 만약 다섯이  하나가 된다면, 하나 또한  다섯이 되어야 하리니, 만약 그러하다면 세간과 세간의  모두가 문란하여져서 파괴되리라.


如是種種因緣故,五衆非如來。若離五衆有如來者,如來應無見、無聞、無知、無識,亦不覺苦樂。所以者何?知覺等是五衆法故。

이와 같은 갖가지의 인연 때문에 오중은 여래가 아닌 것이니, 만약 오중을 여의고도 여래가 있다면 여래는 보는 것도 없는 무견(無見), 듣는 것도 없는 무문(無聞), 무지(無知), 식별하는 것도 없는 무식(無識)이며, 또한 괴로움과 즐거움도 깨닫지 못하리니, 왜냐하면, 알고 깨닫는 것 등이 바로 오중법(五衆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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