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 釋散華品 第二十九 卷五十五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송성수 번역/김형준 개역

29. 산화품(散華品) 풀이함 3

 

爾時,釋提桓因語須菩提言:“菩薩摩訶薩何因緣故不見色乃至不見一切種智?”

그 때에 석제환인이 수보리 존자에게 묻기를, 

“보살마하살은 무슨 인연으로 물질(色)을 보지 못하고 나아가 일체종지까지도 보지 못하는지요?”

 

須菩提言:“色,色空;乃至一切種智,一切種智空。

憍尸迦!色空不學色空,乃至一切種智空不學一切種智空。

수보리 존자가 답하여, 

“물질(色)은 공한 색공(色空)이고 나아가 일체종지도 일체종지가 공(空)한 것입니다. 

교시가여,공(色空)은 색공(色空) 배우지 않는 불학(不學)이고, 

나아가 일체종지의 공은 일체종지의 공을 배우지 않는 불학(不學)입니다.


憍尸迦!若如是不學空,是名學空,以不二故。是菩薩摩訶薩學色空,以不二故;

乃至學一切種智空,以不二故。

교시가여, 만약 이와 같이 공을 배우지 않는 불학공(不學空)이라면, 이를 바로 공을 배우는 학공(學空)이라 하나니, 둘이 아닌 불이(不二)인 까닭이며,

 보살마하살이 색공(色空) 배우면 둘이 아닌 불이(不二)인 까닭이요, 나아가 일체종지의 공을 배우면 둘이 아닌 불이(不二)인 까닭입니다.


若學色空不二故,乃至學一切種智空不二故,是菩薩摩訶薩能學檀波羅蜜不二故,乃至能學般若波羅蜜不二故;能學四念處不二故,乃至能學十八不共法不二故;能學須陁洹果不二故,乃至能學一切種智不二故。

만약 색공(色空) 둘이 아닌 불이(不二)인 까닭을 배우고, 나아가 일체종지의 공이 둘이 아닌 불이(不二)인 까닭을 배우면,  보살마하살은 단바라밀이 둘이 아닌 불이(不二)인 까닭을 배울  있고, 나아가 반야바라밀도 둘이 아닌 불이(不二)인 까닭을 배울  있으며,

사념처가 둘이 아닌 불이(不二)인 까닭을 배울  있고 나아가 18불공법도 둘이 아닌 불이(不二)인 까닭을 배울  있으며, 수다원과가 둘이 아닌 불이(不二)인 까닭을 배울  있고, 나아가 일체종지도 둘이 아닌 불이(不二)인 까닭을 배울  있습니다.


是菩薩能學無量無邊阿僧祇佛法。若能學無量無邊阿僧祇佛法,是菩薩不爲色增學,不爲色減學,乃至不爲一切種智增學,不爲一切種智減學。

 보살은 무량하고 무변한 아승기의 부처님의 불법을 배울  있나니, 

만약 무량하고 무변한 아승기의법을 배울  있다면,  보살은 물질을 더하는 색증(色增)을 위하여 배우지 않고, 물질을 감하는 색감(色減)을 위하여 배우지 않으며, 

나아가 일체종지를 더하는 일체종지증(一切種智增)을 위하여 배우지 않고, 일체종지를하는 일체종지감(一切種智減)을 위하여 배우지 않습니다.


若不爲色增減學,乃至不爲一切種智增減學,是菩薩不爲色受學,不爲色滅學;亦不爲受、想、行、識受學,亦不爲滅學。乃至一切種智亦不爲受學,亦不爲滅學”

만약 더하고 덜하는 색증감(色增減)을 위하여 배우지 않고, 나아가 일체종지를 더하고 덜하는 일체종지증감(一切種智增減)을 위하여 배우지 않으면,

 보살은 물질을 받아들이는 색수(色受)하기 위하여 배우지 않고, 색을 멸하는 색멸(色滅)하기 위하여 배우지 않으며, 또한 수상행식(受想行識) 받아들이기 위하여 배우지 않고, 멸하 위하여 배우지도 않으며, 

일체종지까지도 또한 받아들이기 위하여 배우지 않고 멸하 위하여 배우지도 않습니다.”


舍利弗語須菩提:“菩薩摩訶薩如是學,不爲受色學,不爲滅色學,乃至一切種智亦不爲受學,亦不爲滅學?”須菩提言:“菩薩摩訶薩若如是學,不爲受色學,不爲滅色學,乃至一切種智亦不爲受學,亦不爲滅學。”

사리불 존자가 수보리 존자에게 묻기를, 

“보살마하살이 그와 같이 배우면 받아들이는 색수(色受)하기 위하여 배우지 않고, 멸하는 색멸(色滅)하기 위하여 배우지도 않으며, 나아가 일체종지도 또한 받아들이기 위하여 배우지 않고 멸하 위하여 배우지도 않는 것인지요?”

수보리 존자가 답하여, 

“만약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배우면, 색을 받아들이는 색수(色受)하기 위하여 배우지 않고, 색을 멸하는 색멸(色滅)하기 위하여 배우지도 않으며, 나아가 일체종지도 또한 받아들이기 위하여 배우지 않고, 멸하기 위하여 배우지도 않는 것입니다.”


“須菩提!何因緣故,菩薩摩訶薩不爲受色學,不爲滅色學,乃至一切種智亦不爲受學,亦不爲滅學?”須菩提言:“是色不可受,亦無受色者,乃至一切種智不可受,亦無受者,內外空故。如是,舍利弗!菩薩摩訶薩一切法不受故,能到一切種智。”

사리불 존자가 묻기를, “수보리여, 무슨 인연으로 보살마하살은 받아들이기 위하여 배우지 않고, 멸하 위하여 배우지도 않으며, 나아가 일체종지까지도 또한 받아들이기 위하여 배우지 않고, 멸하기 위하여 배우지 않는지요?”

수보리 존자가 답하여, 

“이 받아들일 수도 없고 또한 받아들이는 수색자(受色者)도 없으며, 나아가 일체종지는 받아들일 수도 없고 또한 받아들이는 이도 없나니, 안팎의 육내입처(六內入處)와 육외입처(六外入處)가 공한 내외공(內外空)인 까닭입니다.

이와 같아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일체법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일체종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是時,舍利弗語須菩提:“菩薩摩訶薩如是學般若波羅蜜,能到一切種智耶?”須菩提言:“菩薩摩訶薩如是學般若波羅蜜,能到一切種智,一切法不受故。”

이 때에 사리불 존자가 수보리 존자에게 묻기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배우면 일체종지에 도달하게 되는지요?”

수보리 존자가 답하여,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배우면 일체종지에 도달하게 되나니,

일체법을 받아들이지 않는 불수(不受)하기 때문입니다.”


舍利弗語須菩提:“若菩薩摩訶薩於一切法不受、不滅學者,菩薩摩訶薩云何能到一切種智?”

사리불 존자가 수보리 존자에게 묻기를, 

“만약 보살마하살이 일체법에서 받아들이지도 않는 불수(不受)이고, 멸하지도 않는 불멸(不滅)로써 배운다면, 보살마하살이 어떻게 일체종지에 도달하게 되는지요?”


須菩提言:“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不見色生、不見色滅;不見色受、不見色不受,不見色垢、不見色淨,不見色增、不見色減。何以故?舍利弗!色,色性空故。

수보리 존자가 답하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나는 색생(色生)을 보지고, 색이 없어지는 색멸(色滅)도 보지 않으며, 색을 받아들이는 색수(色受)도 보지고, 색을 받아들이지도 않는 색불수(色不受)도 보지 않으며, 더러운 색구(色垢)를 보지고,  깨끗한 색정(色淨)도 보지 않으며, 더하여지는 색증(色增)을 보지 않으며, 색이 감하여지는 색감(色減)도 보지 않나니, 왜냐하면 사리불이여, 성품이 공한 색성공(色性空)이기 때문입니다.


受、想、行。識亦不見生、亦不見滅,亦不見受、亦不見不受,亦不見垢、亦不見淨,亦不見增、亦不見減。何以故?識,識性空故。

수상행식(受想行識) 또한 나는 것을 보지는 불견생(不見生)이고, 또한 없어지는 것도 보지 않는 불견멸(不見滅)이며, 또한 받아들이는 것도 보지는 불견수(不見受)이고, 받아들이지 않는 것도 보지는 불견불수(不見不受)이며, 더러운 것도 보지는 불견구(不見垢)이고, 깨끗한 것도 보지는 불견정(不見淨)이며, 더하는 것도 보지는 불견증(不見增)이고, 감하여지는 것도 보지는 불견감(不見減)이니, 왜냐하면 수상행식(受想行識) 성품이 공한 성공(性空)인 까닭입니다.


乃至一切種智亦不見生亦不見滅,亦不見受、亦不見不受,亦不見垢、亦不見淨,亦不見增、亦不見減。何以故?一切種智,一切種智性空故。

나아가 일체종지 또한 나는 것을 보지고, 멸하 것도 보지 않으며, 더러운 것도 보지고, 깨끗한 것도 보지 않으며, 더하여 지는 것도 보지고, 감하여지는 것도 보지나니, 왜냐하면 일체종지는 일체종지의 성품이 공한 성공(性空)인 까닭입니다.


如是,舍利弗!菩薩摩訶薩爲一切法不生不滅、不受不捨、不垢不淨、不合不散,不增不減故,學般若波羅蜜,能到一切種智,無所學、無所到故。”

이와 같이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일체법은 불생불멸(不生不滅)이며, 받아들이지도 버리지도 않는 불수불사(不受不捨)이며,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은 불구불정(不垢不淨)이며, 합하지도 흩어지지도 않는 불합불산(不合不散)이며,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는 불증불감(不增不減)인 까닭에 반야바라밀을 배워서 일체종지에 도달하게 되나니, 

배울 것도 없는 소무학(無所學)이고 도달할 없는 무소도(無所到)이기 때문입니다.”


▶論. 釋曰:釋提桓因歡喜言:“須菩提其智甚深,不壞假名而說諸法實相。”爾時,佛讚須菩提言:“如是!如是!如釋所言。”

▷논. 해석한다.; 석제환인이 기뻐하면서 말하기를 “수보리 존자의  지혜는 심히 깊어서 임시의 가명(假名)을 무너뜨리지 않으면서법의 실상을 해설하시는구나.”라고 하였고, 

그 때에 부처님께서도 수보리 존자를 찬탄하시면서 “참으로 그러하고 그러하느니라.”고 하셨으니, 마치 해석하여 말씀한 것과 같은 것이다.


問曰:佛何故讚須菩提?

묻나니, 부처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수보리 존자를 찬탄하신 것입니까?


荅曰:示師不自高,弟子承順師法故。有人師所說,弟子不受;弟子所說,師不聽。如凡夫人處衆說法時,破一切語不受。以佛無吾我心故,讚須菩提言:“如是!如是!”復次,佛以大悲心,欲令衆生信受須菩提所說故,讚言:“其智甚深。”

답하나니, 스승은 스스로 높은 체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고, 

제자는 스승의 법을 받아들이면서 따라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스승이 말하는 바를 제자가 받아들이지 않고, 제자가 말하는 바를 스승이 들어주지 않기도 하니, 마치 범부인이 대중 중에 있으면서 설법할 때에 일체의 말을 파괴하면서 받아들이지 않는 것과 같으나,

부처님께서는 ‘나’라는 마음의 오아심(吾我心) 없기 때문에 수보리 존자를 찬탄하면서 “참으로 그러하고 그러하느니라.”고 하셨으며, 

또한 부처님께서는 크게 가엾이 여기는 대비심(大悲心)으로써 중생들로 하여금 수보리 존자가 설하는 바를 믿고 받게 하시고자 짐짓 찬탄하시면서 “그의 지혜는 깊다.”고 하신 것이다.

 

菩薩知一切法假名,則應般若波羅蜜學。所以者何?一切法但有假名,皆隨順般若波羅蜜畢竟空相故,如是學。

보살은 일체법이 임시의 가명(假名)이라는 것을 안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나니,

왜냐하면, 일체법은 단지 가명(假名) 있을 뿐이기 때문이며, 모두가 반야바라밀의 필경공(畢竟空)의 상(相) 수순하기 때문에 이렇게 배우는 것이다.


“不學色”者,假名法中無有定色,若無色者,云何“學色”?何以故?菩薩以五眼求色,而不見是色若我、若無我等相;乃至一切種智亦如是。

“색을 배우지 않는, 불학색(不學色)”이란, 임시의 가명(假名)  가운데에서는 일정한 정색(定色) 없으니,

만약 색이 없는 무색(無色)이라면 어떻게 배우는 학색(學色)을 할 수 있겠는가?

왜냐하면 보살은 오안(五眼)으로써 구하여도 에는 나(我)와 무아(無我) 등의 상(相) 보지 못하기 때문이니, 나아가 일체종지 또한 그와 같은 것이다.


“何以故不見色”者,荅言:“色中色相空,不可得故不可見,卽是自相空。乃至一切種智亦如是。

“무엇 때문에 색을 보지 못하는 불견색(不見色)인가?” 이에 대하여 답하기를 “색 가운데에는 색상(色相) 공하며, 얻을  없는 불가득(不可得)이기 때문에  수 없는 불가견(不可見)이다.”고 하였나니, 

 그것은 자상공(自相空)이며, 나아가 일체종지 등도 또한 그와 같은 것이다.


復次,“不學色”者,是色空卽自不能學色空,以諸法行於他相、不行自相故;譬如人乘馬,非馬乘馬。

또한 “색을 배우지 않는 불학색(不學色)”이란, 이 색은 공한 색공(色空)이라 곧 스스로의 색공(色空)을 배울 수 없는 것이니, 제법은 다른 모양의 타상(他相)을 행하는 것이요, 제 스스로의 자상(自相)은 행하지 못하기 때문이니, 

비유하자면, 마치 사람이 말을 타는 것이지 말이 말을 타는 것이 아닌 것과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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