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 釋無生品 第二十六 卷五十三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송성수 번역/김형준 개역

26. 무생품(無生品) 풀이함 5

 

舍利弗語須菩提:“生生?不生生?”

須菩提言:“非生生,亦非不生生。何以故?舍利弗?生、不生,是二法不合、不散,無色、無形、無對,一相,所謂無相。舍利弗!以是因緣故,非生生,亦非不生生”

사리불 존자가 수보리 존자에게 묻기를, 

“나는 생에서 나는 생생(生生)인지요? 아니면, 나지 않는 불생(不生)에서 나는 불생생(不生生)인지요?”

수보리 존자가 답하여, 

“난 것에서 나는 것도 아닌 비생생(非生生)이요, 또한 나지 않는 것에서 나는 것도 아닌 비불생생(非不生生)입니다. 

왜냐하면 사리불이여, 나고 나지 않는 생불생(生不生)의  가지 법은 합하지 않는 불합(不合)이고, 흩어지지도 않는 불산(不散)이며,  무색(無色)이고, 무형(無形)이며, 대할 수도 없는 무대(無對)이며, 일상(一相)이니, 이른바 무상(無相)이기 때문입니다. 

사리불이여, 이러한 인연으로 난 것에서 나는 것도 아닌 비생생(非生生)이요, 또한 나지 않는 것에서 나는 것도 아닌 비불생생(非不生生)인 것입니다.”


爾時,舍利弗語須菩提:“須菩提樂說無生法及無生相?”

須菩提語舍利弗:“我樂說無生法,亦樂說無生相。何以故?諸無生法及無生相樂說及語言,是一切法皆不合、不散,無色,無形、無對,一相,所謂無相。”

그 때에 사리불 존자가 수보리 존자에게 말하여, 

“수보리께서는 남이 없는 무생법(無生法)을 즐겨 말씀하시고, 남이 없는 무생상(無生相)을 즐겨 말씀하시는군요.”

수보리 존자가 사리불 존자에게 답하여,

“저는 남이 없는 무생법(無生法) 즐겨 설명하고, 또한 무생상(無生相) 즐겨 설명합니다. 

왜냐하면 일체의 무생법(無生法) 무생상(無生相)을 즐겨 설하는 요설(樂說)과  언어(言語)의 일체법 모두는 합하지 않는 불합(不合)이고, 흩어지지도 않는 불산(不散)이며,  무색(無色)이고, 무형(無形)이며, 대할 수도 없는 무대(無對)이며, 일상(一相)이니, 이른바 무상(無相)이기 때문입니다. 

 

舍利弗語須菩提:“汝樂說不生法,亦樂說不生相;是樂說、語言亦不生?”

사리불 존자가 수보리 존자에게 말하여, 

“당신께서 즐겨 요설(樂說)하는 불생법(不生法)과 또한 즐겨 요설(樂說)하는 불생상(不生相)의 요설(樂說)과 언어(言語) 또한 나지 않는 불생(不生)입니다.”


須菩提言:“如是!如是!舍利弗!何以故?舍利弗!色不生,受、想、行、識不生;眼不生乃至意不生;地種不生,乃至識種不生;身行不生,口行不生,意行不生;檀波羅蜜不生,乃至一切種智不生。以是因緣故,舍利弗!我樂說不生法,亦樂說不生相,是樂說、語言亦不生。”

수보리 존자가 답하여, “참으로 그러하고 그러합니다, 사리불이여!

왜냐하면 사리불이여, 물질(色)은 불생(不生)이고, 수상행식(受想行識) 불생(不生)이며, 

눈(眼)도 불생이고 귀(耳)ㆍ코(鼻)ㆍ혀(舌)ㆍ몸(身) 뜻(意)도 불생이며, 

땅의 요소인 지종(地種)도 불생(不生)이 나아가 의식까지의 요소인 식종(識種)까지도 불생이며, 

몸의행(身行)도 불생이고, 입의행(口行)도 불생이고, 뜻의행(意行)도 불생이며, 

단(檀, 보시)바라밀도 불생이 나아가 일체종지(一切種智)까지도 불생이 때문입니다.

이러한 인연 때문에 사리불이여, 제가 좋아하면서 요설(樂說)하는 불생법(不生法)과 또한 즐겨 요설(樂說)하는 불생상(不生相)의 요설(樂說)과 언어(言語) 또한 나지 않는 불생인 것입니다. 


▶論. 者言:爾時,舍利弗知須菩提樂說無難而問言:“若一切法無生相,此無生相云何證?用是生法得證?爲用不生法得證?若用生法得證,生法虛誑,汝已種種因緣破;又不可以生法得脫生法。
若以無生法得證,無生未有法相,不可以證,云何得證?”

須菩提二法皆不受,俱有過故,如先說。

▷논. 해석하나니, 그때 사리불 존자는 수보리 존자의 요설(樂說)에  힐난할 것이 없음을 알고는 다음과 같이 물은 것이니, “만약 일체법이 남이 없는 무생상(無生相)이라면, 이 무생상(無生相) 어떻게 증명하겠는지요? 

이것을 남의 생법(生法)으로써 증명할  있는지요? 

혹은 나지 않는 불생법(不生法)으로서 증명할  있는지요? 

만약 생법(生法)으로써 증명하게 된다면 생법(生法) 거짓이요, 당신도 이미 갖가지 인연으로 깨뜨힌 것이며,

또한 생법(生法)으로써는 생법(生法)에서 벗어남을 얻을 수  없습니다. 

만약 남이 없는 무생법(無生法)으로써 증명하게 된다면, 무생법(無生法)은 아직 법상(法相)이 있기도 전이니, 증명할 수조차 없거늘 어떻게 증명할  있는지요?”

그러자 수보리 존자는  가지 이법(二法)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으니, 그 둘에  같이 허물이 있었기 때문이며, 이는 마치 앞에서의 설명과 같은 것이다.


舍利弗作是念:‘佛經說二法攝一切法:若有爲、若無爲。生者有爲,無生者無爲。今須菩提離此二法,云何當說得道事?’作是念已,問須菩提:“無有得道事耶?”

사리불 존자가 생각하기를 ‘부처님의경에는법(二法)이 유위(有爲)와 무위(無爲)의 일체법을  포섭하며,

생자(生者)는 유위요, 남이 없는 무생자(無生者)는 무위라고 설하나, 지금 수보리는  이법(二法)  떠났거늘, 어떻게 도를 얻는 것을 설하는 것인가?’ 라고 생각  뒤에 수보리 존자에게 묻기를 “도를 얻는 일이 없겠습니까?”라고 한 것이다.


須菩提是大阿羅漢,行無諍三昧第一,但爲菩薩故說是無生,“汝云何當作邪見,說無得道者?”是故言“有知有得”。“知”、“得”者卽是得道果之別名。

수보리 존자는 바로  아라한이요, 무쟁삼매(無諍三昧)를 행하는  가운데에서 첫째가나니, 단지 보살들을 위하여  남이 없는 무생(無生)을 말하고 있을 뿐이므로 “당신은 어떻게 삿된 견해를 지으면서 도를 얻는 득도자(得道者)가 없다고 말씀하십니까”라고 하였고,  때문에 “아는 지(知)도 있고 얻는 득(得)도 있다.”고 말한 것이니,  

아는 지(知)도 있고 얻는 득(得)이라 함이란, 도를 얻은 과위(果位)의 별명(別名)인 것이다.


須菩提恐違前語,故言:不以二法故。但爲世俗故說有須陁洹乃至佛。

何以故?一切諸法實無我相,今用我分別須陁洹乃至佛,是世俗法。

수보리 존자는 앞에서 말한 바를 어길까 두려웠기 때문에 “이법(二法)으로써 하지 않는다.”고 말하였고,

 때문에 단지 세속(世俗)만을 위하여 “수다원에서 부처님까지도 있다.”고 말한 것이니,

왜냐하면 일체법들은 진실로 나라는 아상(我相)이 없으나, 지금 나(我)로써 수다원에서 부처님까지를 분별한 것은 바로 세속법이기 때문이다.

 

復次,未得法空故言“是善、是不善,是有爲、是無爲”等;

第一義中,無衆生故,無須陁洹乃至佛;法空故,無須陁洹果乃至佛道。

聖人、聖法猶尚虛誑無定實,何況凡人六道業及果報!

또한 아직 법공(法空)을 얻지 못한 까닭에 “이것은 착하다, 이것은 착하지 않다, 이것은 유위이다, 이것은 무위이다.”고 말하지만, 제일의(第一義) 가운데에서는 중생이 없는 무중생(無衆生)이기 때문에 수다원에서 부처님까지도 없는 것이고,

법공(法空)이기 때문에 수다원의 과위에서 부처님의도(佛道)까지도 없는 것이다. 

성인과 성인의 법조차도 오히려 거짓이어서 일정하게 정해진 진실이 없거늘 하물며 범인(凡人)과 6도(六道)의 업(業)과  과보이겠는가!


問曰:須菩提已種種因緣定說不生法。今舍利弗何以更問“不生法生,生法生”?

묻나니, 수보리 존자는 이미 갖가지의 인연으로 분명히 나지 않는 불생법을 설명하셨거늘, 지금 사리불 존자는 무엇 때문에 다시 “나지 않는 법에서 나는 불생법생(不生法生)이며, 혹은 나는 법에서 나는 생법생(生法生)인지요?”라고 물은 것입니까?

 

答曰:須菩提上說得道因緣故,舍利弗得須菩提意,雖說不生法破一切法,爲因緣故說,而心不著無生法,是故更問。

답하나니, 수보리 존자는 앞에서 도를 얻는 인연인 득도인연(得道因緣)을 말한 까닭에 사리불 존자가 수보리 존자가 뜻하는 바를 알았으며, 비록 불생법(不生法) 말하면서 일체법을 깨뜨린다 하더라도 인(因)과 연(緣)을 위하여 설명하면서 마음에 남이 없는 무생법(無生法)에 집착하지 않아 하기 때문에 다시 물은 것이며, 

 

又以此法甚深,欲令聽者了了得解,故更問。上問得道行法,今摠問一切法云何生。用慧眼,知一切法皆不生;今現見諸法生,是故問“云何生”。

또한  법은 심히 깊기 때문에 듣는 이로 하여금 분명하고 명백하게 이해할  있게 하고자 짐짓 다시 물은 것이다.

앞에서는 도를 얻는 수행의 법인, 득도행법(得道行法)을 물었고, 이번에는 통틀어서 “일체법은 어떻게 하여 나는 것인가?”를 물은 것으로,

혜안(慧眼)으로써는 일체 모두는 나지 않는 불생(不生)임을 알고 있지만, 지금의 현실에서 보건대법은 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하여 나는가?”라고 물은 것이다.


須菩提答:二事皆非。若“生”生,生法已生,不應更生!若“不生”生,生法未有故,不應生。若謂生時“半生半不生”,是亦不生。

수보리 존자는  가지에 대하여 “모두가 아니다.”라고 대답하였으니,

만약  생(生)에서 난(生)다면,법(生法)은 이미 난 것이므로 다시 나지 않아야 하는 것이며, 

만약 나지 않은 불생(不生)에서 난다면, 생법(生法)이 아직은 있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생(生) 아니어야 하며,

만약  때의 생시(生時)에 반은 나고 반은 나지 않는 반생반불생(半生半不生)이라면,  또한 나지 않는 불생(不生) 되는 것이다.


若生分,則已生竟;若未生分,則無生。是故須菩提不用是肉眼見,以不通達故;二法皆不受,但說:是生如幻、如夢,從虛誑法生,應離、應不取相。

만약 나는 부분의 생분(生分)이라면, 이미 난 것이고, 

만약 아직 나지 않은 부분으니 미생분(未生分)이라면 곧 남이 없는 무생(無生)이기 때문에 수보리 존자는  육안(肉眼)으로써 보지 못하고 통달하지도 못하였기에  가지 이법(二法) 모두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단지 “이 나는 생(生) 마치 환과 같고 꿈과 같아서 거짓된 법으로부터 나는 것이니, 멀리 여의어야 하고, 마땅히 상(相)을 취하지 않아야만 한다.”고 설명할 뿐인 것이다.

 

舍利弗問:“何等法二俱不受?”

須菩提以世諦故說色乃至一切種智畢竟不生,自然空相,不欲令實中有生;若世諦虛誑可有生,生如幻化。

사리불 존자가 “어떠한 법의  가지를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까?”라고 묻자, 

수보리 존자가 세속의 이치인 세제(世諦) 때문이라고 하면서 “물질에서 일체종지까지는 필경에는 불생이어서 저절로 공한 자연공상(自然空相)이다.”고 말하였으며,

진실 가운데에서는 나는 생(生) 있게 되기를 바라지도 않거니와, 만약 세제(世諦)에서라면 거짓이면서 나는 생(生) 있게 되므로,  나는 생(生) 마치 환화(幻化, 허깨비)와 같다고 한 것이다.


此中說不生因緣,所謂“不合、不散”。

有人言:生與法異,謂“生是常,所可生法無常”。

是故更問。答者以生、法不異,若說生法,已說生相。生、不生,如上說。

여기에서는 나지 않는 인연의 불생인연(不生因緣)을 설명한 것이니, 이른바 '합하지도 않는 불합(不合)이고 흩어지지도 않는 불산(不散)'이라는 것이다. 

어떤 말하기를 “나는 생(生)과 법(法)은 다른 것으로, 이를테면 나는 바로 항상 있는 상(常)이요,

나야  바의법(生法)은 무상(無常)한 것이다.”고 하였다. 

 때문에 다시 묻자, 대답한 이는 “나는 생(生) 법(法)은 다르지 않다.”고 하였으니, 

만약 나는 생법(生法)을 말하면 이미  생상(生相)을 말하는 것이며, 

나고 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위에서의 설명과 같은 것이다.


舍利弗聞須菩提所說,知須菩提心愛樂無生法故,語須菩提:“汝實愛樂說無生法!”

須菩提卽受其問,心亦無愧。何以故?是論議不可破,無有過罪。

사리불 존자가 수보리 존자의 바를 듣고, 수보리 존자는 마음에 남이 없는 무생법(無生法)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수보리 존자에게 말하기를 “당신은 실로 남이 없는 무생법(無生法) 즐겨 말씀하시는군요.”라고 하였으며, 

수보리 존자는  그가 묻는 마음을 받아들였고 또한 부끄러워함도 없었으니, 왜냐하면  논의(論議)는 깨뜨릴 수도 없었고 허물도 없었기 때문이다.


何以知之?須菩提自說:“無法可合,無法可散,無色、無形、空一相,所謂無相”

空相尚不受,何況餘相?

어떻게 그러하다는 것을 알  있는 것인가? 수보리 존자가 스스로 말하기를 “법으로써 합할  있는 가합(可合) 없고, 법으로써 흩어질  있는 가산(可散) 없으며, 무색(無色)이고, 무형(無形)이며, 공(空)한 일상(一相)이므로 이른바 무상(無相)이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공한 공상(空相) 조차도 오히려 받아들이지 않거늘 하물며  밖의 상(相)들이겠는가!


舍利弗重讚:汝樂說無生法及語言皆無生,是實淸淨!

若當樂說及語言非無生,但說外物無生者,則非淸淨。

사리불 존자가 거듭 칭찬하면서 “당신께서는 남이 없는 무생법(無生法) 즐겨 설하는 것과  언어 모두가 남이 없는 무생(無生)이니, 이것은 실로 청정한 것으로, 만약 좋아하면서 설명하는 낙설(樂說)과  언어(言語)에는 없는 것이 아닌, 비무생(非無生)이나, 단지 밖의 외물(外物)만이 무생(無生)이라고 말한다면  청정한 것이 아닙니다.”고 하였다.


須菩提卽復受其讚 答舍利弗:“非但樂說、語言是無生 色乃至一切種智亦無所生”

수보리 존자가 곧 그의 칭찬을 받아들이면서 사리불 존자에게 대답하기를 “비단 그 좋아하면서 설명하는 낙설(樂說)과 그 (言語)만이 남이 없는 무생(無生)이 아니고 물질(色)에서 일체종지까지도 또한 나는 바가 없는 무생(無生)이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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