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 釋無生品 第二十六 卷五十三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송성수 번역/김형준 개역
26. 무생품(無生品)을 풀이함 3
▶經. 爾時,須菩提白佛言:“世尊!若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如是觀諸法,是時見色無生,畢竟淨故;見 受、想、行、識無生,畢竟淨故。見我無生,乃至知者、見者無生,畢竟淨故。
▷경. 그때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말씀드렸으니,
“세존이시여, 만약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한다면, 제법을 관찰할 때에, ‘물질(色)은 남이 없는 무생(無生)이며, 필경에 청정하기 때문이라고 보며, 느낌(受)ㆍ생각(想)ㆍ 지어감(行)ㆍ분별(識)도 무생이니, 필경에는 청정하기 때문이라고 보며, ‘나(我)는 무생이고, 나아가 지자(知者)ㆍ견자(見者)도 무생이니, 필경에 청정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見檀波羅蜜無生乃至般若波羅蜜,無生,畢竟淨故。見內空無生乃至無法有法空無生,畢竟淨故。見四念處無生乃至十八不共法無生,畢竟淨故。見一切三昧、一切陁羅尼無生,畢竟淨故;乃至見一切種智無生,畢竟淨故。
단바라밀은 무생(無生)이며, 나아가 반야바라밀까지도 무생(無生)이며, 필경청정이기 때문이라고 보며,
내공은 무생(無生)이며, 나아가 무법유법공까지도 무생(無生)이니, 필경청정이기 때문이라고 보며,
사념처는 무생(無生)이며, 나아가 18불공법까지도 무생(無生)이니, 필경청정이기 때문이라고 보며,
일체 삼매와 일체 다라니도 무생(無生)이니, 필경청정이기 때문이라고 보며,
일체 삼매와 일체 다라니도 무생(無生)이니, 필경청정이기 때문이라고 보며,
나아가 일체종지까지도 무생(無生)이니, 필경청정이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見凡夫、凡夫法無生,畢竟淨故。見須陁洹、須陁洹法,斯陁含、斯陁含法,阿那含、阿那含法,阿羅漢、阿羅漢法,辟支佛、辟支佛法,菩薩、菩薩法,佛、佛法無生,畢竟淨故。”
범부와 범부의 법은 무생(無生)이니, 필경청정이기 때문이라고 보며,
수다원과 수다원의 법ㆍ사다함과 사다함의 법ㆍ아나함과 아나함의 법ㆍ아라한과 아라한의 법ㆍ벽지불과 벽지불의 법ㆍ보살과 보살의 법ㆍ부처님과 부처님의 법도 무생(無生)이니, 필경청정이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舍利弗語須菩提:“如我聞須菩提所說義,色是不生,受、想、行、識是不生,乃至佛、佛法是不生。
사리불 존자가 수보리 존자에게 말하였으니,
“내가 수보리께서 하신 말씀의 이치를 들어보건대, ‘물질(色), 이것은 나지 않는 불생(不生)이고 수상행식(受想行識)도 나지 않는 불생(不生)이며, 나아가 부처님과 부처님의 불법도 불생(不生)이라는 말씀이시군요.
若爾者,不應得須陁洹、須陁洹果、斯陁含、斯陁含果、阿那含、阿那含果、阿羅漢、阿羅漢果、辟支佛、辟支佛道;不應得菩薩摩訶薩、一切種智;亦無六道別異;亦不得菩薩摩訶薩五種菩提。
만약 그러하다면, 수다원과 수다원의 과위(果位)ㆍ사다함과 사다함의 과위(果位)ㆍ아나함과 아나함의 과위(果位)ㆍ아라한과 아라한의 과위(果位)ㆍ벽지불과 벽지불의 도(道)는 얻지 못해야 하는 것이고,
보살마하살도 일체종지(一切種智)를 얻지 못해야 하며, 6도(六道)가 서로 다른 것도 없어야 하고, 역시 보살마하살의 다섯 가지의 오종보리(五種菩提)도 얻지 못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종보리(五種菩提)= 보살 修道를 다섯 종류의 階位(계위)로 나눈 것.
(1) 발심보리(發心菩提), 10信位(신위)의 보살이 한 없는 生死(생사) 중에서 無上菩提(무상보리)를 위하여 큰 마음을 발하는 것.
(2) 복심보리(伏心菩提) , 10住·10行·10廻向位(회향위)의 보살이 일체의 번뇌를 항복받고, 다른 이를 이롭게 하는 敎化(교화)의 수행을 행하는 것.
(3) 출도보리(出到菩提), 명심보리(明心菩提), 初地(초지) 이상의 보살이 3世諸法(삼세제법)의 本末(본말)·總相(총상)·別相(별상) 등을 관하여 일체법의 실상을 명백히 아는 것.
(4) 제 8·9·10地의 보살이 지혜를 닦음에 일체의 수단과 방법을 강구하여 無性(무성)의 이치를 증득하고 一切智(일체지)에 이르는 것.
(5) 무상보리(無上菩提), 보살이 等覺(등각)과 妙覺(묘각)의 지위에 이르러 일체의 번뇌를 멸하고 위 없는 깨달음을 얻는 것.
須菩提!若一切法不生相,何以故須陁洹爲斷三結故修道,斯陁含爲薄婬恚癡故修道,阿那含爲斷五下分結故修道,阿羅漢爲斷五上分結故修道?辟支佛爲辟支佛法故修道?何以故菩薩摩訶薩作難行,爲衆生受種種苦?何以故佛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何以故佛轉法輪?”
수보리여, 만약 제법이 나지 않는 불생상(不生相)이라면, 무엇 때문에 수다원은 신사결(身邪結) · 계도결(戒盜結) · 의결(疑結)의 3결(三結)을 끊기 위하여 도(道)를 행하고,
사다함은 음(婬, 음욕)ㆍ에(恚, 분노)ㆍ치(癡, 어리석음)을 얇게 하기 위하여 도를 닦는지요?
무엇 때문에 아나함은 욕애(欲愛)ㆍ진에(瞋恚, 성냄)ㆍ신견(身見)ㆍ계도(戒盜)와 의(疑, 의심)의 오하분결(五下分結)을 끊기 위하여 도(道)를 닦고,
아라한은 색애(色愛)ㆍ무색애(無色愛)ㆍ도거(掉擧)ㆍ흔들림ㆍ만(慢)ㆍ무명(無明)의 오상분결(五上分結)을 끊기 위하여 도(道)를 닦으며,
벽지불은 벽지불의 법을 위하여 도(道)를 닦는지요?
무엇 때문에 보살마하살은 하기 어려운 난행(難行)을 행하면서 중생들을 위하여 갖가지의 고통을 받는지요?
무엇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시는지요?
무엇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법륜(法輪)을 굴리시는지요?”
須菩提語舍利弗:“我不欲令無生法有所得。我亦不欲令無生法中得須陁洹、須陁洹果,乃至不欲令無生法中得阿羅漢、阿羅漢果,辟支佛、辟支佛道。
수보리 존자가 사리불 존자에게 답하기를,
“저는 남이 없는 무생법(無生法)으로 하여금 얻는 바의 소득(所得)이 있게 되기를 바라지 않으며,
저는 또한 남이 없는 무생법(無生法) 가운데에서 수다원과 수다원의 과위를 얻게 되기를 바라지도 않으며,
나아가 무생법(無生法) 가운데에서 아라한과 아라한의 과위와 벽지불과 벽지불의 도를 얻게 되기를 바라지도 않습니다.
我亦不欲令無生法中菩薩作難行、爲衆生受種種苦。菩薩亦不以難行心行道。何以故?舍利弗!生難心、苦心,不能利益無量阿僧祇衆生。
저는 또한 남이 없는 무생법(無生法) 가운데에서 보살로 하여금 하기 어려운 난행(難行)을 지어서 중생을 위하여 갖가지 고통을 받게 되기를 바라지도 않으니, 보살 또한 행하기 어렵다는 마음으로 도를 행하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리불이여, 하기 어렵다는 마음과 괴롭다는 마음을 내면 무량한 아승기의 중생을 이익되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舍利弗!今菩薩憐愍衆生,於衆生如父母兄弟想、如兒子及己身想,如是能利益無量阿僧祇衆生,是用無所得故。所以者何?菩薩摩訶薩應生如是心:‘如我一切處、一切種不可得,內外法亦如是。’若生如是想,則無難心、苦心。何以故?是菩薩於一切種、一切處、一切法不受故。
사리불이여, 지금 보살은 중생을 가엾이 여기어, 중생을 마치 부모 형제와 같이 생각하고, 내 아들과 몸과 같이 생각하나니, 이와 같아야 무량한 아승기의 중생을 이익되게 할 수 있으며, 이는 얻을 바 없는 무소득(無所得)이기 때문이니,
왜냐하면 보살마하살은 ‘나를 일체처(一切處)와 일체종(一切種)에서 얻을 수 없는 것과 같이, 내외(內外)의 법도 그와 같다고 생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러한 생각을 낸다면 어렵다는 마음이나 괴롭다는 마음은 없어지게 되나니, 왜냐하면 이 보살은 일체종(一切種)과 일체처(一切處)와 일체법(一切法)을 받아들이지 않는 불수(不受)이기 때문입니다.
舍利弗!我亦不欲令無生法中佛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亦不欲令無生法中轉法輪,亦不欲令以無生法得道。”
사리불이여, 저는 또한 남이 없는 무생법(無生法) 가운데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되기를 바라지 않고,
또한 무생법(無生法) 가운데에서 법륜을 굴리게 되기를 바라지도 않으며,
또한 무생법(無生法)으로써 도를 얻게 되기를 바라지도 않습니다.”
▶論. 者言:無生觀有二種:一者、柔順忍觀,二者、無生忍觀。前說無生是柔順忍觀,不畢竟淨;漸習柔順觀,得無生忍,則畢竟淨。
▷논. 해석하자면; 남이 없는 무생관(無生觀)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유순인관(柔順忍觀)이요 둘째는 무생인관(無生忍觀)이라.
앞에서 말한 남이 없는 것은 바로 유순인관이라서 필경에 청정하지가 않은 것이나, 점차로 유순관을 익히다가 무생인(無生忍)을 얻게 되면 곧 필경에 청정하게 되는 것이다.
사인(四忍);
①복인(伏忍)은 비위에 거슬리는 일이 생기면 먼저 성나는 마음을 조복하여 억누르는 것이다. 그러나 역경(逆境)만 참아서는 안되며, 자기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순경(順境)도 참아야 한다. 역경을 참지 못하면 번뇌가 치밀어서 투쟁하기 쉽고, 순경을 참지 못하면 유혹에 빠져서 몸과 마음을 버리기가 쉽기 때문이다.
② 유순인(柔順忍)은 사람이 항상 참기를 많이 하면 저절로 조복되어서 역경이나 순경을 만날지라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경지.
③무생인(無生忍)은 참고 견디어 보살의 지위에 오른 사람의 인욕행으로서, 인생이 무상하며 세상이 허황함을 깨닫고 일체만법이 인연으로 흩어지는 진리를 깨닫고 보면, 별로 성낼 것도 없고 참을 것도 없다는 것이다.
④적멸인(寂滅忍)은 부처님의 지위에 있어서와 같은 인욕행으로, 생사고해에 뛰어나서 본래부터 적멸한 열반의 경지에 서 있는, 한 물건도 없는 경지를 의미한다. 이것은 인욕행을 애써 닦는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한 생각도 일으킴이 없음을 체득하여 인욕을 완성하는 것이다.- 다움
問曰:菩薩未盡結,未得佛道,智慧未淳淨,云何言“畢竟淸淨”?
묻나니, 보살은 아직 번뇌의 결(結)을 다하지 못하였고, 아직 부처님의 불도도 얻지 못했으며, 아지 지혜도 맑고 깨끗하지 못하거늘 어떻게 “필경청정(畢竟淸淨)”이라고 말하는 것입니까?
答曰:是菩薩得無生忍時,滅諸煩惱,得菩薩道,入菩薩位,雖有煩惱氣,坐道場時乃盡,無所妨故畢竟淨。
답하나니, 이 보살이 무생인을 얻을 때에는 모든 번뇌가 사라지고 보살의 도를 얻어서 보살의 지위에 들어가며, 비록 번뇌의 기운(氣)이 있을지라도 도량(道場)에 가서 앉을 때에는 다 없어지면서 방해되는 바가 없기 때문에 “필경청정(畢竟淸淨)”이라 하며,
復次,“畢竟淸淨”者,於柔順道畢竟淸淨,非爲佛道。以衆生空、法空故,從見色無生畢竟淨,乃至佛及佛法無生畢竟淸淨。須菩提種種因緣說諸法相決定無生。
또한 “필경청정(畢竟淸淨)”이라는 것은 유순도(柔順道)에서 필경에 청정하다는 것이요, 부처님의 불도를 위해서가 아니며, 중생공(衆生空)이고 법공(法空)이기 때문이다.
“물질은 남이 없는 불생(不生)이니, 필경 청정이기 때문이다.”라고 보는 데서부터 나아가 “부처님과 부처님의 불법도 불생(不生)이니, 필경 청정하기 때문이다.”라고 보는 데에 이르기까지, 수보리 존자는 갖가지의 인연으로 “제법의 법상(法相)은 결정코 무생(無生)이다.”고 말하는 것이다.
因此事,舍利弗作是難:賢聖中最小者須陁洹、須陁洹法,最大者佛、佛法。若爾者,聖人無大無小,聖法亦無優劣,亦無六道別異,此略難;後問斷三結修道者,爲廣難。
이 일로 인하여 사리불 존자가 힐난하기를 “성현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이는 바로 수다원과 수다원의 법이요, 가장 큰 이는 바로 부처님과 부처님의 불법이니, 만약 그렇다면 성인에는 큰 이도 없고 작은 이도 없으며, 성인의 법에도 또한 우열(優劣)이 없고 또한 6도(道)도 다름이 없다.”고 하였으니,
여기에서는 간략한 힐난이 되지만 뒤에서 “3결(三結)을 끊기 위하여 도를 수행하는 이” 등을 묻는 것은 자세한 힐난이 되는 것이다.
問曰:云何是五種菩提?
묻나니, 무엇이 다섯 가지의 오종보리(五種菩提)입니까?
答曰:一者、柔順忍,二者、無生忍,及三種菩提。於三菩提中,過二而住第三菩提。
답하나니, 첫째는 유순인(柔順忍)이요 둘째는 무생인(無生忍)이며, 그리고 세 가지의 삼종보리(三鐘菩提)이다. 이 세 가지의 보리 가운데에서는 두 가지를 지나서 세번 째의 보리에 머무르는 것이며,
復有五種菩提:一者、名“發心菩提”,於無量生死中發心爲阿耨多羅三藐三菩提故,名爲菩提——此因中說果。
二者、名“伏心菩提”,折諸煩惱,降伏其心,行諸波羅蜜。
다시 다섯 가지의 오종보리(五種菩提)보리가 있으니, 첫째는 발심보리(發心菩提)로, 무량하게 나고 죽는 동안에 발심하여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위하는 까닭에 보리라 하나니, 이것은 원인 가운데에서 결과를 말하는 것이며,
둘째는 복심보리(伏心菩提)는 것으로, 모든 번뇌를 꺾고 그 마음을 항복 받으면서 모든 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다.
三者、名“明菩提”,觀三世諸法本末摠相、別相,分別籌量,得諸法實相,畢竟淸淨,所謂般若
波羅蜜相。
셋째는 명심보리(明心菩提)라는 것으로, 3세의 제법의 본말(本末)과 전체의 총상(總相)과 각각의 별상(別相)을 관찰하여 분별하고 헤아리면서, 제법의 실상(實相)이요 마침내 청정한 이른바 반야바라밀의 상(相)을 얻는 것이다.
四者、名“出到菩提”,於般若波羅蜜中得方便力故,亦不著般若波羅蜜,滅一切煩惱,見一切十方諸佛,得無生法忍,出三界,到薩婆若。
넷째는 출도보리(出到菩提)이니, 반야바라밀 가운데에서 방편의 힘을 얻기 때문에 또한 반야바라밀에도 집착하지 않고, 일체 번뇌가 소멸되며 시방의 모든 부처님을 뵈옵고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으며 삼계(三界)를 벗어나면서 살바야(薩婆若)에 이르는 것이며,
五者、名“無上菩提”,坐道場,斷煩惱習,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如是等五菩提義。餘諸賢聖斷結義,如先說。
다섯째는 무상보리(無上菩提)이니, 도량(道場)에 가서 앉으며, 번뇌와 습기를 끊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다섯 가지의 오종보리(五種菩提)의 뜻과 그 밖의 모든 성현의 번뇌인 결(結)을 끊는 이치에 대해서는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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