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 釋無生品 第二十六 卷五十三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송성수 번역/김형준 개역

26. 무생품(無生品) 풀이함 4

 

問曰:聲聞道廣說斷結義,何以不說辟支佛行、菩薩有種種行?

묻나니, 성문도(聲聞道)에서는 번뇌를 끊는 이치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하면서, 

무엇 때문에 벽지불의 행(行)과 보살에게 있는 갖가지의 행은 설명하지 않는 것입니까?

 

答曰:辟支佛於聲聞無復異道,但福德、利根、小深入諸法實相爲異。

답하나니, 벽지불이라고 해서 성문과 다른 도(道)가 있는 것이 아닌 것으로, 단지 복덕과 근기가 영리하여법의 실상에 조금 더 깊이 들어간 것이 다를 뿐이다.

 

菩薩道雖有種種衆行,但難行、苦行爲希有事,衆生見已,歡喜言:“菩薩爲我等作此行!”餘行雖深妙,人所不知,不能感物,故不說。

보살도에는 비록 갖가지의 여러 행(行)들이 있다 하여도 단지 하기 어려운행(難行)과 고행(苦行)을 하는 것이 희유할 뿐이니, 중생들이  뒤에는 기뻐하면서 말하기를 ‘보살은 우리들을 위하여 저러한 행을 하고 계시는구나.’라 하며, 그 밖의 행은 비록 깊고 묘하다 하여도 사람들로서는 모르는 바이요, 만물을 감동하게 하지 못하므로 설명하지 않은 것이다.


復次,如舍利弗難意:若諸法都是無生空寂者,一切衆生皆著樂,菩薩何以故獨受苦行?

또한 사리불 존자가 힐난의  뜻으로 말한 것 같이, 만약 제법이 전혀 남이 없는 무생(無生)이고, 공적(空寂)한 것이라면, 일체 중생들 모두는 쾌락에 집착할 것이니, 보살만이 무엇 때문에 고행을 받겠는가!


復次,諸佛常樂遠離寂滅,斷法愛,決定知諸法不轉不還,何以故與衆生轉法輪?

또한 모든 부처님께서는 항상 멀리 여읨의 원리(遠離)와 고요한 적멸(寂滅)을 좋아하시고, 법애(法愛)를 끊었으며, 결정코법은 굴러가지도 않는 불전(不轉)이고, 돌아오지 않는 불환(不還)이라는 것을 알고 계시거늘, 무엇 때문에 중생들을 위하여 법륜을 굴리겠는가!

 

須菩提於佛前說無生法,佛不呵折,得快心樂說無難力故,答舍利弗:我亦都不欲令無生法中有六種聖人 除菩薩故言“六”及六道別異。何以故?以得無生法證故。謂爲聖法、聖人有差別,於無生法中都無所有。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에서 무생법(無生法)을 말하여도 부처님께서 꾸짖거나 꺾지도 않으셔서, 유쾌한 마음으로 원하는 대로 자유자재로 말하는 것은 어려움이 없는 무난(無難)의 힘 때문이며 

사리불 존자에게 대답하기를, “저 또한 무생법(無生法) 가운데에서 여섯 종류의 육종성인(六種聖人)이 있게 되기를 바라지도 않는다.”고 하셨으니, 보살은 제외되기 때문에 여섯이며, 6도(六道)와는 다른 것이니,

왜냐하면 무생법(無生法) 증득하기 때문에 성인의법(聖法)이라 하는 것이며, 

성인에도 차별이 있으나, 무생법(無生法)에서는 아무 차별이 없기 때문이다.


復次,於無生法中有二種失:“麤失”者,殺盜等罪故,有三惡道;“細失”者,用著心布施、持戒等福故,有三善道。

또한 무생법(無生法)에는  가지 실(失, 허물)이 있으니, 거친 허물의 추실(麤失)에는 살생(殺生)ㆍ투도(偸盜) 등의  때문에 3악도(三惡道)가 있는 것이고, 

미세한 허물의 세실(細失)에는 마음으로 보시(布施)와 지계(持戒) 등의 복(福)에 집착하기 때문에 하늘ㆍ인간ㆍ아수라의 삼선도(三善道)가 있는 것이다.

 

若菩薩生難心、苦心,則不能度一切衆生。如世閒小事,心難以爲苦,猶尚不成,何況成佛道!

만약 보살이 어렵다는 난심(難心)과 괴롭다는 고심(苦心)을 낸다면,  일체 중생을 제도하지 못하나니, 세간의 작은 일도 마음으로 어렵게 느껴 괴롭다고 여긴다면 이루지 못하게 되거늘, 하물며 부처님의도를 이룸이겠는가!


成因緣者,所謂大慈大悲心。於衆生如父母、兒子、己身想。何以故?父母、兒子、己身,自然生愛,非推而愛也。

이루어지는인연(成因緣)은 이른바 대자대비의 마음이니, 중생에 대하여 부모ㆍ자식ㆍ내 몸과 같다고 생각하는 것이니, 왜냐하면 부모와 자식과  몸에 대해서는 저절로 사랑이 우러나오는 것으로, 억지로 사랑하게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菩薩善修大悲心故,於一切衆生乃至怨讎,同意愛念。是大悲果報利益之具,都無所惜,於內外所有,盡與衆生。

보살은 대비(大悲)의 마음을  닦기 때문에 모든 중생과 원수에 대해서도 똑같이 사랑하는 마음을 내나니,  대비의 과보로 이로운 것을 전혀 아까워하지 않고, 안팎으로 가진 모든 물건을  중생에게 베풀어 주는 것이다. 

 

此中說不惜因緣,所謂“一切處、一切種、一切法不可得故”。若行者初入佛法,用衆生空,知諸法無我;今用法空,知諸法亦空。以此大悲心及諸法空二因緣故,能不惜內外所有,利益衆生,不起難行想、苦行想,一心精進歡喜。

 가운데에서 아까워하지 않는 불석인연(不惜因緣)을 말하고 있는 것이니, 이른바 일체처(一切處)와 일체종(一切種)과 일체법(一切法) 얻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수행하는 행자(行者) 처음으로 부처님법에 들어가서 중생공(衆生空)으로써법이 무아(無我)임을 알고, 지금은 법공(法空)으로써 또한 공하다는 것을 알며, 

 대비심(大悲心)과법공(諸法空)의 두 가지 인연으로써 안팎의 모든 물건을 아까워하지 않고 중생을 이익되게 한다면, 행하기 어렵다는 생각과 고행(苦行)이라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게 되어서, 일심으로 정진하고 기뻐하게 되는 것이다.


如人爲自身及爲父母、妻子,勤身修業,不以爲苦;若爲他作,則無歡心。苦行、難行,如後品“本生因緣變化現受畜生形”中說。

마치 사람이 스스로의 몸을 위하고 부모와 처자를 위하여 부지런히 업(業)을 닦으나 괴롭다고 여기지 않는 것이, 남을 위하는 일에 대해서 기뻐하는 마음이 없는 것과 같으며,

고행과 난행은 후품(後品)의 “본생인연(本生因緣)이 변화하여 현재 축생의 몸을 받고 있다.”는 데서 설명하는 것과 같다.


一切諸法畢竟空、不可思議相故,一切法還而不轉故,不名爲轉;但爲破虛妄顚倒故,名爲“轉法輪”。

일체의법은 필경공(畢竟空)이요, 불가사의한 상(相)이기 때문이며, 일체법(一切法)은 순환하나 구르지 않는 환이불전(還而不轉)이기 때문에 구르는 것이라 하지 않으며, 단지 허망한  바뀜의 허망전도(虛妄顚倒)를 깨뜨리기 위하여 법륜을 굴리는 전법륜(轉法輪)이라 할 뿐인 것이다.

 

▶經. 舍利弗語須菩提:“今欲令以生法得道?以無生法得道?”須菩提語舍利弗:“我不欲令以生法得道”

▷경. 사리불 존자가 수보리 존자에게 묻기를, 

“지금은 나는 생법(生法)으로써 도(道)를 얻게 하시려는 것인지요? 

아니면 남이 없는 무생법(無生法)으로써 도를 얻게 하시려는 것인지요?”

수보리 존자가 사리불 존자에게하기를, 

“저는 생법(生法)으로써 도를 얻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舍利弗言:“今須菩提欲令以無生法得道?”須菩提言:“我亦不欲令以無生法得道。”

사리불 존자가 묻기를, “지금 수보리께서는 남이 없는 무생법(無生法)으로써 도를 얻게 하시려는 것인지요?”

수보리 존자가 대답하여, “저는 무생법(無生法) 으로써도 도를 얻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舍利弗言:“如須菩提所說,無知無得。”須菩提言:“有知有得,不以二法。今以世閒名字故有知有得,世閒名字故有須陁洹乃至阿羅漢、辟支佛、諸佛;第一實義中,無知無得,無須陁洹乃至無諸佛。”

사리불 존자가 말하기를, “수보리께서 하신 말씀과 같아서는 아는 것도 없는 무지(無知)이고 얻는 것도 없는 무득(無得)입니다.”

수보리 존자가 말하여, “앎이 있고 얻음이 있는 유지유득(有知有得)   가지의법(二法)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 세간의 이름 때문에 유지유득(有知有得)인 것이며, 세간의 이름 때문에 수다원에서 아라한과 벽지불까지와 모든 부처님까지도 있는 것이며,

제일실의(第一實義) 가운데에서는 없고 얻음도 없는 무지무득(無知無得)이며, 수다원도 없고 나아가 제불까지도 없는 것입니다.”


“須菩提!若世閒名字故有知有得,六道別異亦世閒名字故有,非以第一實義耶?”

사리불 존자가 말하기를, 

“수보리여, 만약 세간의 이름 때문에 앎이 있고 얻음이 있는 유지유득(有知有得)이라면, 육도(六道)가 서로 다른  또한 세간의 이름 때문에 있을 뿐으로, 제일실의(第一實義) 때문이 아닐 것입니다.”

 

須菩提言:“如是!如是!舍利弗!如世閒名字故有知有得,六道別異亦世閒名字故有,非以第一實義。何以故?舍利弗!第一實義中無業無報、無生無滅、無淨無垢。”

수보리 존자가 답하여, “참으로 그러하고 그러한 것입니다, 사리불이여. 마치 세간의 이름 때문에 앎이 있고 얻음이 있는 유지유득(有知有得)인 것과 같이, 6도(六道)가 서로 다른  또한 세간의 이름 때문에 있는 것일 뿐으로, 제일실의(第一實義) 때문이 아닌 것이니,

왜냐하면 사리불이여, 제일실의(第一實義) 진실한 이치 가운데에는 업도 없고 과보도 없는 무업무보(無業無報)이며, 남도 없고 멸함도 없는 무생무멸(無生無滅)이며, 깨끗함도 없도 더러움도 없는 무정무구(無淨無垢)이기 때문입니다.”


舍利弗語須菩提:“不生法生?生法生?” 菩提言:“我不欲令不生法生,亦不欲令生法生”

사리불 존자가 수보리 존자에게 묻기를, 

“나지 않는 불생법(不生法)에서 나는 것인지요? 아니면, 나는 생법(生法)에서 나는지요?”

수보리 존자가 답하여, 

“저는 불생법(不生法)에서 나게 하려는 것도 아니고, 또한 법(生法)에서 나게 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舍利弗言:“何等不生法不欲令生?”

須菩提言:“色是不生法,自性空,不欲令生;受、想、行、識不生法,自性空,不欲令生;乃至阿耨多羅三藐三菩提不生法,自性空,不欲令生。”

사리불 존자가 묻기를, 

“어떠한 것이 불생법(不生法)에서 나게 하려는 것도 아닌 것인지요?”

수보리 존자가 답하여, 

“물질(色), 이것은 나지 않는 불생법(不生法)으로써 스스로의 성품이 공한 자성공(自性空)이므로 나게 하려고 하지 않으며,

수상행식(受想行識)도 나지 않는 불생법(不生法)이어서 스스로의 성품이 공한 자성공(自性空)이므로 나게 하려고 하지도 않으며,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이르기까지도 나지 않는 불생법(不生法)이어서 스스로의 성품이 공한 자성공(自性空)이므로 나게 하려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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