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 釋無生品 第二十六 卷五十三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송성수 번역/김형준 개역

26. 무생품(無生品) 풀이함 2

 

▶經. 舍利弗問須菩提:“何因緣故,色不生是非色?受、想、行,識不生是非識,乃至一切種智不生,是非一切種智?”

▷경. 사리불 존자가 수보리 존자에게 묻기를, 

“무슨 인연으로 물질(色)은 나지 않는 불생(不生)이어서  물질이 아닌 비색(非色)이고 느낌(受)ㆍ생각(想)ㆍ 지어감(行)ㆍ분별(識)도 불생(不生)이라, 즉 느낌(受)ㆍ생각(想)ㆍ 지어감(行)ㆍ분별(識) 아니며, 나아가 일체종지도 불생(不生)이어서  일체종지가 아닌것인지요?”


須菩提言:“色,色相空,色空中無色、無生,以是因緣故,色不生是非色;受、想、行,識、識相空,識空中無識、無生,以是因緣故,受、想、行、識不生是非受、想、行、識。

수보리 존자가 답하여, 

“물질(色)은 물질(色)로서의 상이 공한 색상공(色相空)이며, 물질이 공한 색공(色空) 가운데에는 물질도 없는 무색(無色)이고, 남도 없는 무생(無生)이나니, 이러한 인연 때문에 물질(色)은 나지 않는 불생(不生)이어서  물질이 아닌 비색(非色)인 것이며, 

수상행식(受想行識)도 수상행식(受想行識)으로서의 공한 상공(相空)이며, 나아가 분별(識) 공함인 식공(識空) 가운데에는 분별(識) 없는 무식(無識)이고 남도 없는 무생(無生)이나니, 

이러한 인연 때문에 수상행식(受想行識) 남이 아닌 불생(不生)이라  수상행식(受想行識) 아닌 것입니다.

 

舍利弗!檀波羅蜜、檀波羅蜜相空,檀波羅蜜空中無檀波羅蜜,無生;尸羅波羅蜜、羼提波羅蜜、毘梨耶波羅蜜、禪波羅蜜;般若波羅蜜、般若波羅蜜相空,般若波羅蜜空中無般若波羅蜜、無生,以是因緣故,舍利弗!般若波羅蜜不生,是非般若波羅蜜。

사리불이여, 단바라밀은 단바라밀로서의 상이 공한 상공(相空)이며, 단바라밀의 공함 가운데에는 단바라밀도 없고 남도 없는 무생(無生)이며,

시라바라밀ㆍ찬제바라밀ㆍ비리야바라밀ㆍ선바라밀ㆍ반야바라밀은 반야바라밀로서의 상이 공한 상공(相空)이며, 반야바라밀의 상이 공한 상공(相空)이니, 반야바라밀 가운데에는 반야바라밀도 없으며 무생(無生)이나니,  

이러한 인연 때문에 사리불이여, 반야바라밀은 남이 아닌 불생(不生)이라서  반야바라밀이 아닌 것입니다.


內空乃至無法有法空、四念處乃至十八不共法、一切種智亦如是,以是因緣故,內空不生是非內空,乃至一切種智不生是非一切種智。”

내공에서 무법유법공까지와념처에서 18불공법ㆍ일체종지까지도 또한 그와 같나니, 

이러한 인연 때문에 내공은 나지 않는 불생(不生)이라서  내공이 아니며, 

나아가 일체종지까지도 나지 않는 불생(不生)이라  일체종지가 아닌 것입니다.”

 

舍利弗問須菩提:“汝何因緣故言‘色不二是非色,受、想、行,識不二是非識,乃至一切種智不二是非一切種智’?”

사리불 존자가 수보리 존자에게 묻기를, 

“당신은 무슨 인연으로 ‘물질(色)은 둘이 아닌 불이(不二)라서  물질이 아닌 비색(非色)이고 느낌(受)ㆍ생각(想)ㆍ 지어감(行)ㆍ분별(識)도 둘이 아닌 불이(不二)라  느낌(受)ㆍ생각(想)ㆍ 지어감(行)ㆍ분별(識) 아니며, 

나아가 일체종지까지도 둘이 아닌 불이(不二)라서  일체종지가 아니다.’고 하시는지요?”

 

須菩提答言:“所有色,所有不二;所有受、想、行、識,所有不二。是一切法皆不合、不散,無色、無形、無對,一相,所謂無相。眼乃至一切種智亦如是。以是因緣故,舍利弗!色不二是非色,受、想、行,識不二是非識,乃至一切種智不二是非一切種智。”

수보리 존자가 답하여, 

“존재하는 물질인 소유색(所有色)은  존재하는 소유(所有)하는 것이 둘이 아닌 불이(不二) 

일체의 수상행식(受想行識)도 모두가 둘이 아닌 불이(不二)이니,

일체법은 모두가 합하지도 않는 불합(不合)이고 흩어지지도 않는 불산(不散)이며, 무색(無色)이고, 무형(無形)이며, 대할 수도 없는 무대(無對)이며, 일상(一相)이니, 이른바 모양이 없는 무상(無相)이라,

눈(眼)에서 일체종지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그와 같은 것이니, 

이러한 인연 때문에 사리불이여, 물질(色)은 둘이 아닌 불이(不二)이므로  물질이 아닌 비색(非色)이고 느낌(受)ㆍ생각(想)ㆍ 지어감(行)ㆍ분별(識)도 둘이 아닌 불이(不二)이며, 나아가 일체종지까지도 불이(不二)이므로  일체종지가 아닌 것입니다.”

 

舍利弗問須菩提:“何因緣故言‘是色入無二法數,受、想、行、識入無二法數,乃至一切種智入無二法數’?”

사리불 존자가 묻기를, 

“무슨 인연으로 ‘이 물질(色)은 둘이 없는 법의 범주인 무이법수(無二法數)에 드는 것이며,

수상행식(受想行識)도 둘이 없는 법의 범주인 무이법수(無二法數)에 들며, 

나아가 일체종지까지도 무이법수(無二法數)어간다.’고 하는지요?”


須菩提答言:“色不異無生,無生不異色,色卽是無生,無生卽是色;受、想、行;識不異無生,無生不異識,識卽是無生,無生卽是識。以是因緣故,舍利弗!色入無二法數,受、想、行、識入無二法數,乃至一切種智亦如是。”

수보리 존자가 답하였으니, 

“물질(色)은 남이 없는 무생(無生)과 다르지 않고, 무생(無生)은 물질(色)과 다르지 않나니, 

물질(色)이  무생(無生)이요, 무생(無生)이  물질(色)입니다.

수상행식(受想行識)도 무생(無生) 다르지 않고, 무생(無生) 수상행식(受想行識) 다르지 않으니, 

분별(識)이  무생(無生)이요, 무생(無生)  분별(識)입니다.

사리불이여, 이러한 인연으로 물질(色)은 둘이 없는 법의 범주인 무이법수(無二法數)에 들고 

수상행식(受想行識)도 둘이 없는 법의 범주의 무이법수(無二法數)에 들며, 

나아가 일체종지까지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論. 問曰:上品竟,便應問“不生”,何以此中方問?

▷논. 묻나니, 앞의 상품(上品)이 끝날 때에 나지 않는 불생(不生)을 물어야 되거늘, 무엇 때문에 여기에서 묻고 있는 것입니까?


答曰:三種大法易解,利益多衆生故先問。“何因緣故,色不生爲非色,乃至一切種智不生爲非一切種智?

須菩提答:“色是空,色中無色相。”

답하나니, 공(空) 불이(不二) 무생(無生)이라는 세 가지  법인 삼종대법(三種大法)은 이해하기 쉽지만, 많은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한 까닭에 먼저 묻기를 “무슨 인연으로 물질(色)은 나지 않는 불생(不生)이므로 물질(色)이 아니라 하고, 나아가 일체종지까지도 불생(不生)이므로 일체종지가 아니라 하는가?”라고 하자, 

수보리 존자가 대답하기를 “물질(色)은  공한 색시공(色是空)이니,  물질(色) 가운데에는 물질(色)의 색상이 없는 무색상(無色相)이다.”고 하였다.

 

行者以是無生智慧令色無生;若能得是無生,心作是念“今卽得色實相”,是故言:“色無生爲非色。”

수행하는 이는  남이 없는 무생(無生)의 지혜로써 물질(色)이 나지 않는 무생(無生)이라는 것을 알게며, 

만약 무생(無生)을 알 되면 생각하기를 “이제야  물질(色)의 실상(實相)을 얻었다.”고 하나니, 

 때문에 “물질(色)은 남이 없는 무생(無生)이며 물질(色)이 아닌 비색(非色)이다.”고 한 것이다.


色性常自無生,非今智慧力故使無生。如有人破色令空,猶存本色想;譬如除廁作舍,今雖無廁,猶有不淨想。

물질(色)의 성품은 항상 그 자체가 남이 없는 상자무생(常自無生)이라, 지금의 지혜의  때문에 무생(無生)이 되는 것이 아니니, 마치 어떤 사람이 물질(色)을 깨뜨려서 공(空)하게 하여고 하여 오히려  본래의 물질(色)에 대한 생각은 있는 것과 같으니,

비유하자면, 뒷간을 제외하고 집을 지어서, 비록 뒷간이 없을지라도 여전히 부정(不淨)한 데가 있으리라는 생각이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若能知廁本無,幻化所作,則無廁想;行者如是,若能知色從本已來初自無生者,則不復存色想。是故言:“色無生爲非色。”乃至一切種智亦如是。

만약 뒷간이란 본래 없는 여화(幻化, 허깨비)로 지어진 것이라고 알게 되면 뒷간이라는 생각이 없을 것이니, 

수행하는 이도 그와 같아서 만약 물질(色)은 본래 처음부터 스스로 남이 없는 자무생(自無生)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다시는 물질(色)이라는 생각이 있지 않게 되기 때문에 “물질(色)은 남이 없는 무생(無生)이라 물질(色)이 아닌 비색(非色)이며, 나아가 일체종지까지도 또한 그와 같다.”고 말한 것이다.

 

問曰:汝先自說“無生卽是無二”,今何以更問?

묻나니, 그대가 앞에서 스스로 말씀하시기를, “무생(無生)이  둘이 없는 무이(無二)다.”라고 하였는데, 지금 무엇 때문에 다시 묻는 것입니까?

 

答曰:義雖一,所入觀門異。上言破因中先有果若無果,是生法一異等,是生若初生、若後生 破如是等生名“無生”。今破眼色、有無等諸二故,是名“不二”。

답하나니, 뜻은 비록 하나라 하여도 들어가는 관문(觀門)은 다른 것이니,

앞에서는 ‘원인 가운데에서 먼저 결과가 있거나 혹은 결과가 없다.’는 것과 ‘이 나는 생법(生法)은 하나다ㆍ다르다.’고 하는 것과 ‘이 나는 생(生)은 처음에 나거나 또는 뒤에 난다.’고 하는 것 깨뜨리는 것이며,

“이와 같은 등으로 나는 생(生) 깨뜨렸으므로 남이 없는 무생(無生)이다.”고 말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눈으로 보는 사물의 안색(眼色)이 있다ㆍ없다.’ 하는 등의  가지의 실상을 깨뜨리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둘이 아닌 불이(不二)라고 하는 것이다.

 

行者或先入無生觀門,後入不二;或先入不二,後入無生觀。義雖一,行者分別。破色二故言“不二”,破色生故言“無生”。

수행하는 이는 혹은 먼저 남이 없는 무생관문(無生觀門)에 들어가고,  뒤에 둘이 아닌 불이(不二)에 들기도 하며, 혹은 먼저 둘이 아닌 불이(不二) 들어간 뒤에 남이 없는 무생관문(無生觀門)으로 들기도 하나니,

관(觀)하는 이치는 비록 하나일지라도 수행하는 이는 분별하면서 물질(色)이 둘인 것을 깨뜨리기 때문에 “둘이 아닌 불이(不二)다.”하고, 물질(色)이 (인연 없이) 나는 생(生) 깨뜨리기 때문에 “남이 없는 무생(無生)이다.”고 한 것이다.

 

上說無生因緣,謂“自相空”;今說不二因緣,所謂“不合、不散,一相,所謂無相”等。義雖同一空,上自相空,此是散空。

앞에서는 남이 없는 무생인연(연無生因緣)을 말하면서 자상공(自相空)이라 하였고, 

여기에서는 둘이 아닌 불이인연(不二因緣)을 말하면서 이른바 합하지도 않는 불합(不合)이고, 흩어지지도 않는 불산(不散)이어서 이른바 무상(無相)이라고 하나니, 뜻은 비록 동일한 공(空)일지라도 위에서는 자상공(自相空)이요, 여기에서는 산공(散空)인 것이다.

 

“色入無二法數”者,行者觀色不生不滅相,是時分別色,今變爲無生。是故說色無生卽是不二。何以故?色破散卽是無生。

“물질(色)이 둘이 없는 법의 범주인 무이법수(無二法數)에 들어간다.”고 함이란, 

수행하는 이가 물질(色)은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 불생불멸상(不生不滅相)임을 관찰할 때에, 물질(色)을 분별하였지만, 지금은 남이 인연화합으로 변하는 것으로 무생(無生)인 까닭에 물질(色)은 무생(無生)이며 곧 둘이 아닌 불이(不二)라고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물질(色)이 깨어져 흩어지면  인연 없이는 날 수 없는 무생(無生)이 되기 때문이다.


如先分別諸法時,離色不得更有生;今色破散卽是無生,不得更有無生。以是故,色卽是入無二法數。

마치 앞에서 제법을 분별할 때에 물질(色)을 여의면 다시는 생(生)을 얻을 수 없지만,

지금 물질(色)이 깨어져 흩어지면 그것은 곧 남이 없는 무생이라, 다시는 생(生)이 있을 수 없는 것과 같으니,

이 때문에 물질(色)이 곧 둘이 아닌 법의 범주인 무이법수(無二法數)에 드는 것이다.


是二阿羅漢於佛前共論竟,須菩提白佛而更說是義,欲使佛證知故。

이 사리불 존자와 수보리 존자 두 아라한은 부처님 앞에서 함께 논의를 끝냈으면서도,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다시 이 뜻을 말씀드리는 것은 부처님으로 하여금 그것을 인증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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