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 釋十無品 第二十五 卷五十二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송성수 번역/김형준 개역
25. 십무품(十無品)을 풀이함 7
復次,“一切法無常亦不失”,無常破“常倒”,不失破“斷滅倒”;是無常不失法,卽是入實相門,是故須菩提語舍利弗:“無常卽是動相、卽是空相。”一切法亦如是。
또한 일체법은 무상(無常)한 것이나, 또한 잃어버리지 않나니, 무상함으로 항상 있다는 뒤바뀜인 상전도(常顚倒)을 깨뜨리는 반면, 아주 없다는 뒤바뀜인 단멸전도(斷滅顚倒)를 상실하지 않으니, 이 무상함은 상실하지 않는 부실법(不失法)으로 곧 실상문(實相門)에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수보리 존자는 사리불 존자에게 말하기를 “무상함이 곧 움직이는 동상(動相)이며, 또한 공한 공상(空相)이며, 일체법 또한 그와 같다.”고 한 것다.
復次,“一切法非常非失”者,如十八空後義說。“色畢竟不生”者,五衆作者、生者、起者不可得故。
또한 “일체법은 항상한 것도 아닌 비상(非常)이고 잃어버리지도 않는 비실(非失)이다.”고 함이란, 마치 18공(十八空) 뒤의 뜻에서 설명한 것과 같으며,
“물질(色)은 필경불생(畢竟不生)"이라 함은, 5중(五衆)에 짓는 작자(作者)와 나는 생자(生者)와 일으키는 기자(起者)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復次,生相不可得者,如先破生中說。一切法亦如是。“何以故說若色不生爲非色,非受、想、行、識”者,此中須菩提自說:“色從因緣生,無有自性,常空相。若法常空相,是法無生相、無滅相、無住異相。受、想、行、識亦如是。”故不生相法卽是無爲,非有爲相。餘法亦如是。
또한 “나는 생상(生相)을 얻을 수 없다.”고 함은, 먼저 나는 생(生)을 깨뜨리는 가운데에서 설명한 것과 같으며, 일체법 또한 그와 같으니, 왜냐하면 “만약 물질(色)이 나지 않는 불생(不生)이라면 물질이 아닌 비색(非色)이다.”고 말하였기 때문이며,
“느낌이 아닌 비수(非受)ㆍ비상(非想)ㆍ 비행(非行)ㆍ분별이 아닌 비식(非識)이다.”고 함이란, 이 가운데에서 수보리 존자가 스스로 말하기를 “물질(色)은 인연으로부터 생기는 까닭에 자기 성품이 없는 무유자성(無有自性)이고 항상 공한 상공상(常空相)이니, 만약 법이 항상 공한 상공상(常空相)이라면, 이 법은 나는 생상(生相)도 없고, 없어지는 적멸(寂滅)도 없으며, 머무르는 주상(住相), 달라지는 이상(異相)도 없으며, 느낌(受)ㆍ생각(想)ㆍ 지어감(行)ㆍ분별(識) 또한 그와 같다.”고 한 것이다.
이 때문에 나지 않는 불생상(不生相)의 법은 곧 무위(無爲)요 유위상(有爲相)이 아니니, 그 밖의 법 또한 그와 같은 것이다.
“畢竟不生,當敎誰般若”者,畢竟不生卽是諸法實相,諸法實相卽是般若波羅蜜,云何以般若波羅蜜敎般若波羅蜜?若離是畢竟不生有菩薩者,應當敎般若波羅蜜;是菩薩、般若波羅蜜、畢竟不生,無二無別,云何當敎離畢竟不生行道者?上說中已合解。
“필경불생(畢竟不生)이라면 누구에게 반야를 가르쳐야 하는가?”고 함이란, 필경에 불생인 것이 곧 제법의 실상(實相)이요, 제법의 실상이 곧 반야바라밀인 것이거늘, 어떻게 반야바라밀로써 반야바라밀을 가르치겠는가!
만약 이 필경에 불생이라는 것을 여의고도 보살이 있다면 당연히 반야바라밀을 가르쳐야 하는 것이지만, 이 보살과 반야바라밀과 필경불생은 둘이 아닌 무이(無二)이고 구별도 없는 무별(無別)이거늘 어떻게 가르치겠는가.
“필경에 나지 않는 것을 여의고서 도를 행한다.”고 함이란, 위의 설명 가운데에서 이미 모아서 설명한 것이다.
“菩薩聞是不沒、不悔”者,菩薩於一切法中不見我、衆生乃至知者、見者,亦無說者、亦無聽者,無邪說、無正說,亦無無說者;知一切法因緣和合故生,諸緣離故滅,無有起者、無有滅者,故不畏、不怖、不沒、不悔。
“보살이 이 말을 듣고도 위축되거나 후회하지 않는다.”고 함이란, 보살이 일체법 가운데에서 나와 중생과 또한 아는 지자ㆍ보는 견자를 보지 않으며, 또한 말하는 설자(說者)도 없고, 듣는 청자(聽者)도 없으며, 삿된 설명의 사설(邪說)도 없고, 바른 설명의 정설(正說)도 없으며, 또한 설명이가 없는 것도 아니니,
일체법은 인연이 화합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고, 모든 인연이 흩어지기 때문에 없어진다는 것을 알며, 일으키는 기자(起者)도 없고, 없애는 멸자(滅者)도 없기 때문에,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않으며, 위축되거나 후회하지도 않는 것이다.
菩薩知一切法虛誑、無實無定;若死急時,若墮阿鼻泥犂,心猶不動,況聞虛聲而有恐怖!
보살은 일체법이 거짓이어서 진실하지도 않고, 정해진 것도 없다는 것을 알기에, 설령 죽음이 급박할 때이거나, 아비니리(阿鼻泥犁, Avīci-Naraka, 아비지옥)에 떨어진다 하여도 마음은 오히려 동요하지 않으니, 하물며 헛된 소리를 듣고서 두려워하겠는가!
如人夢中見怖畏事,覺已則無恐心,知夢法能誑心,無有實事;菩薩亦如是,入世閒心夢中見有恐畏,得諸法實相覺時則無所畏;知諸法但是虛誑,無有眞實。
마치 사람이 꿈속에서 두려운 일들을 보다가, 깨어난 뒤에는 두려운 마음이 없이, 꿈이라는 법은 마음을 속이고 진실함이 없음을 아는 것과 같이, 보살 또한 그와 같아서 세간의 마음으로 꿈속에 들어서 두려움이 있음을 보다가 제법의 실상을 얻고 깨달은 때에는 두려워함이 없으며, 제법은 단지 거짓이요 진실함이 없다는 것을 아는 것과 같은 것이다.
復次,譬如幻事,智者雖見,心無所惑,知是誑法;菩薩亦如是,知一切法如幻,能誑人心,是中無實,以是故不怖畏。如炎、如影、如化亦如是。
또한 비유하자면, 마치 환술(마술)을 지혜로운 이가 비록 본다 할지라도 마음이 미혹되지 않으며, 이것은 바로 거짓된 법이라고 아는 것과 같으며, 보살 또한 그와 같아서 일체법은 마치 환과 같고 사람들의 마음을 속이는 것이며, 그 가운데에는 진실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나니, 마치 아지랑이와 같고 그림자와 같고 변화한 것 같다고 함 또한 그러한 것이다.
▶經. 須菩提白佛言:“世尊!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如是觀諸法,是時菩薩摩訶薩不受色,不視色,不住色,不著色,不言是色;受、想、行、識亦不受、不視、不住、不著,亦不言是受、想、行、識。
▷경.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이와 같이 제법을 관찰하며, 이 때에 보살마하살은 물질(色)을 받아들이지 않고, 물질(色)을 보지도 않고, 물질(色)에 머무르지도 않고, 물질(色)에 집착하지도 않으면서 ‘이것이 물질(色)’이라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수상행식(受想行識) 역시도 받아들이거나, 보거나, 머무르거나, 집착하지 않으며, 또한 ‘이것이 수상행식(受想行識)이다.’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眼不受、不視、不住、不著,亦不言是眼;耳、鼻、舌、身;意亦不受、不視、不住、不著,亦不言是意。
눈(眼)을 받아들이지 않고, 보지 않고, 머물지 않고, 집착하지 않으면서 역시 ‘이것이 눈(眼)이다.’고 말하지 않으며, 이비설신의(耳鼻舌身意)도 역시 받아들이거나 보거나 머무르거나 집착하지 않으면서, 또한 ‘이것은 뜻(意)이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檀波羅蜜不受、不視、不住、不著,亦不言是檀波羅蜜;尸羅波羅蜜、羼提波羅蜜、毘梨耶波羅蜜,禪波羅蜜;般若波羅蜜不受、不示、不住、不著,亦不言是般若波羅蜜。
단(보시)바라밀도 받아들이지 않고 보지 않고 머무르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으면서 또한 ‘이것이 단바라밀이다.’고 말하지 않으며, 시라(지계)바라밀ㆍ찬제(인욕)바라밀ㆍ비리야(정진)바라밀ㆍ선바라밀ㆍ반야바라밀 역시 받아들이거나 보거나 머무르거나 집착하지 않으면서, 또한 ‘이것이 반야바라밀이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內空不受、不示、不住、不著,亦不言是內空;乃至無法有法空亦如是。
내공(內空)을 받아들이지 않고 보지 않고 머무르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으면서 또한 ‘이것이 내공이다.’고 말하지 않으며, 나아가 무법유법공(無法有法空)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復次,世尊!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時,四念處不受、不示、不住、不著,亦不言是四念處;乃至十八不共法不受、不示、不住、不著,亦不言是十八不共法。
세존이시여, 또한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사념처를 받아들이지 않고 보지 않고 머무르지 않고 집착하지도 않으면서 또한 ‘이것이 4념처이다.’고 말하지 않으며,
나아가 18불공법을 받아들이지 않고 보지 않고 머무르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으며, 또한 ‘이것이 18불공법이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一切三昧門、一切陁羅尼門;乃至一切種智,不受、不示、不住、不著,亦不言是一切種智。
일체의 삼매문과 일체의 다라니문에서 일체종지에 이르기까지도 받아들이지 않고 보지 않고 머무르지 않고 집착하지도 않으며, 또한 ‘이것이 일체종지이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復次,世尊!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時,不見色乃至不見一切種智。何以故?色不生,是非色;受、想、行;識不生,是非識。眼不生,是非眼;耳、鼻、舌、身:意不生,是非意。檀波羅蜜不生,是非檀波羅蜜;乃至般若波羅蜜不生,是非般若波羅蜜。
세존이시여, 또한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물질(色)을 보지 않으며, 나아가 일체종지를 보지 않으니,
왜냐하면 물질(色)은 나지 않는 불생(不生)이어서 그것은 물질(色)이 아니요, 수상행식(受想行識)도 나지 않는 불생이어서 그것은 수상행식(受想行識)이 아니며,
눈(眼)은 불생이어서 그것은 눈(眼)이 아니요, 이비설신의(耳鼻舌身意)도 불생이어서 그것은 이비설신의(耳鼻舌身意)가 아니며,
단바라밀도 불생이어서 그것은 단바라밀이 아니며, 또한 반야바라밀도 불생이어니, 그것은 반야바라밀이 아닌 것입니다.
何以故?色、不生,不二不別;乃至般若波羅蜜、不生,不二不別。
왜냐하면 물질(色)과 불생(不生)은 둘이 아니고 다르지도 않기 때문이며, 나아가 반야바라밀과 불생(不生)은 둘이 아니고 다르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內空不生,是非內空;乃至無法有法空不生,是非無法有法空,何以故?內空乃至無法有法空、不生,不二不別。
내공은 불생(不生)이니, 그것은 내공이 아니며, 나아가 무법유법공까지도 불생(不生)이어서 그것은 무법유법공이 아니니, 왜냐하면 내공에서 무법유법공까지는 불생(不生)인 것으로 둘이 아니고 다르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世尊!四念處不生,非四念處,何以故?四念處、不生,不二不別。何以故?世尊!是不生法非一、非二、非三、非異。以是故,四念處、不生,不二不別。
세존이시여, 사념처는 불생(不生)이어서 그것은 사념처가 아니니, 왜냐하면 사념처와 불생(不生)은 둘이 아니고 다르지도 않기 때문이니,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이 나지 않는 불생법(不生法)은 하나도 아니요 둘도 아니며, 셋도 아니요 다른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념처와 불생(不生)은 둘이 아니고 다르지도 않은 것입니다.
乃至十八不共法不生,非十八不共法。何以故?十八不共法、不生,不二不別。何以故?世尊!是不生法非一、非二、非三、非異。以是故,十八不共法不生,非十八不共法。
또한 18불공법 또한 불생(不生)이니, 그것은 18불공법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18불공법과 불생(不生)은 둘이 아니고 다르지도 않기 때문이니,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이 불생법(不生法)은 하나도 아니요 둘도 아니며, 셋도 아니요 다른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18불공법은 불생(不生)이며 그것은 18불공법이 아닌 것입니다.
世尊!如不生,是非如;乃至不可思議性不生,是非不可思議性。
세존이시여, 여(如)는 불생(不生)이어서 그것은 여(如)가 아니며,
또한 불가사의성(不可思議性)은 불생(不生)이어서 그것은 불가사의성이 아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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