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 釋十無品 第二十五 卷五十二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송성수 번역/김형준 개역

25. 십무품(十無品) 풀이함 4

 

舍利弗!內空但有名字,乃至無法有法空但有名字,名字中無內空,內空中無名字。何以故?名字、內空俱不可得。乃至無法有法空亦如是。以是因緣故,舍利弗!菩薩但有假名。

사리불이여, 내공(內空)은 단지 이름만 있을 뿐이며, 나아가 무법유법공까지도 단지 이름만 있을 뿐이니, 이름 가운데에는 내공이 없고, 내공 가운데에도 이름이 없나니, 왜냐하면 이름과 내공은  같이 얻을  없는 불가득이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무법유법공까지도 또한 그와 같으며, 이러한 인연 때문에 사리불이여, 보살은 단지 임시의 가명(假名)만이 있을 뿐입니다.


舍利弗!四念處但有名字,乃至十八不共法但有名字;一切三昧門、一切陁羅尼門,乃至一切種智亦如是。以是因緣故,舍利弗!我說菩薩但有假名。”

사리불이여, 사념처는 단지 이름만 있을 뿐이며, 18불공법까지도 단지 이름만 있을 뿐이니, 일체의 삼매문과 일체의 다라니문과 일체종지까지도 또한 그와 같으며, 이러한 인연 때문에 사리불이여, 제가 보살은 단지 임시의 가명(假名)만이 있을 뿐이다.” 말하였 것입니다.


“如舍利弗言:‘何因緣故,說我名字畢竟不生。’舍利弗!我畢竟不可得,云何當有生,乃至知者、見者畢竟不可得,云何當有生。

마치 사리불께서 말씀하신 바 대로 무슨 인연으로 '나(我)'라는 이름은 필경에 나지 않는 불생(不生)인가 하면, 사리불이여, '나(我)' 필경에 얻  없는 불가득이거늘 어떻게 나는 생(生) 있다 하겠으며, 또한 아는 지자(知者)ㆍ보는 견자(見者) 필경에는  얻을  없는 불가득이거늘 어떻게 나는 생(生) 있다 할 수 겠습니까?


舍利弗!色畢竟不可得,云何當有生。受、想、行、識畢竟不可得,云何當有生。眼畢竟不可得,乃至意觸因緣生受畢竟不可得,云何當有生。

사리불이여, 물질(色)은 필경에 얻을  없는 불가득(不可得)이거늘 어떻게 나는 생(生) 있다 하겠으며, 수상행식(受想行識) 필경에 얻을 수 없는 불가득(不可得)이거늘 어떻게 나는 생(生) 있다 하겠습니까!

눈(眼)은 필경에 얻을 수 없는 불가득이고, 또한 뜻의 접촉의 인연인 의촉인연(意觸因緣)으로 생긴 느낌(受)도 필경에 얻을 수 없는 불가득이거늘 어떻게 나는 생(生) 있다 하겠습니다!


檀波羅蜜畢竟不可得,乃至般若波羅蜜畢竟不可得,云何當有生。內空畢竟不可得,乃至無法有法空畢竟不可得,云何當有生。四念處畢竟不可得,乃至十八不共法畢竟不可得,云何當有生。諸三昧門、諸陁羅尼門畢竟不可得,云何當有生。聲聞乃至佛畢竟不可得,云何當有生。

단(보시)바라밀은 필경에 얻을 수 없는 불가득이고, 나아가 반야바라밀까지도 필경에 얻을 수 없는 불가득이거늘 어떻게 나는 생(生) 있다 할 수 있겠습니까!

내공은 필경에 얻을 수 없는 불가득이고, 나아가 무법유법공까지도 필경에 얻을 수 없는 불가득이거늘 어떻게 나는 생(生) 있다 할 수 있겠습니까!

념처는 필경에 얻을 수 없는 불가득이고, 나아가 18불공법까지도 필경에 얻을 수 없는 불가득이거늘 어떻게 나는 생(生) 있다 할 수 있겠습니까!

모든 삼매의 문과 모든 다라니의 문은 필경에 얻을 수 없는 불가득이거늘 어떻게 나는 생(生)것이 있다 할 수 있으며, 

성문에서 부처님까지도 필경에 얻을 수 없는 불가득이거늘 어떻게 나는 생(生) 있다 할 수 있겠습니까!


以是因緣故,舍利弗!我說:‘如我名字,我亦畢竟不生。’”

이러한 인연 때문에 사리불이여, 말하기를 마치 '나(我)'라는 이름과 같아서  또한 필경에는 나지 않는 불생(不生)이.” 하였 것입니다.


▶論. 問曰:心、心數法無形、不可見故可無邊;色是有形、可見,云何無邊?

논. 묻나니, 마음과 마음에 속한 심수법(心數法)의 형상이 없는 무형(無形)이라서   없기 때문에 무변(無邊)이라   있겠지만, 물질(色), 이것은 형상이 있는 유형(有形)이고  수도 있거늘 어떻게 무변이라 하는 것입니까?

 

答曰:無處不有色,不可得籌量遠近輕重。如佛說:四大無處不有,故名爲大;不可以五情得其限,不可以斗稱量其多少輕重,是故言“色無邊”。

답하나니, 물질(色)을 갖추지 않은 곳은 없으며, 멀고 가까움과 가볍고 무거움을 헤아림을 얻을 수 없는 불가득이니,

마치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4(四) 처소마다 있지 않음이 없으므로 () 하나니, 5(五)으로써도  한계를 얻을  없고 말(斗, 됫박)로써도  많고 적음과 가볍고 무거움을 헤아릴  없다.” 하신 것과 같이, 

 때문에 물질(色)은 끝이 없는 무변(無邊)이다.” 하는 것이며, 


復次,是色過去時,初始不可得;未來時中,無有恒河沙劫數限色當有盡,是故無後邊;初邊、後邊無故,中亦無。復次,“邊”名色相;是色分別破散,邊不可得,無有本相。

또한  물질(色)은 과거에서도  시초(시작)를 얻을  없고, 미래에서도 항하 강의 모래수같이 많은 겁의 수효와 한계가 있으면서 물질(色)은 다함이 있어야 한다는 경우가 없기 때문에 맨 마지막 끝도 없으며, 처음의 끝인 초변(初邊)과 뒤의 끝인 후변(後邊)이 없기 때문에  중간도 역시 없는 것이며, 

다시 변(邊, 끝) 물질의 색상(色相)이라 하나니,  물질(色)이 분별되어서 깨뜨려지고 흩어지면  변(邊, 끝) 얻을 수가 없고 그의 본래의 본상(本相) 없는 것이.


復次,無爲法不生不滅故,無數無量無邊;以法空觀觀色皆空,與虛空及無爲同相。無量無數無邊法中,乃至微塵不可得,何況菩薩!是故說“五衆無邊,菩薩亦無邊”。如色無邊,乃至十八不共法亦如是,隨相分別如先說。是五衆無量無數無邊故,不得言色是菩薩;四衆亦如是。

또한 무위법(無爲法)생이 멸하지 않는 불멸(不滅)이 때문에 무수하고, 무량하며, 무변하나니, 법공관(法空觀)으로써 물질(色)을 관하면 모두가 공(空)하여서 허공과 무위는 동일한 동상(同相)이며, 

무량 무수하고 끝이 없는  가운데에서 아주 작은 티끌에 이르기까지도 얻을  없는 불가득이거늘 하물며 보살이겠는가!

 때문에 5(五) 무변하다 하고 보살도 또한 무변한 것이. 

마치 물질(色)이 끝이 없는 것과 같이, 18불공법까지도 또한 그와 같나니, 상(相)을 따라 분별하는 것은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으며,

중이 무량하수하며, 끝이 없는 무변하기 때문에 물질(色)이 보살이라 말하지 못하나니, 수상행식(受想行識)의 사(四) 또한 그와 같은 것이다.

 

법공관(法空觀)= 정신이나 물질의 모든 법은 인연에 의하여 일시적으로 생긴 가짜 존재로서 실체(實體)가 없고 자성이 없는 것이라고 관찰하는 관법


復次,色若離心心數法,如草木瓦石,云何名菩薩?若心心數法離色,則無依止處,亦無所能爲,云何名菩薩?

또한 물질(色)이 만약 마음과 마음에 속한 심수법을 여의면, 마치 풀과 나무와 기와와 돌과 같거늘 어떻게 보살이라 할 수 있겠는가!

만약 마음과 마음에 속한 심수법을 여의면 의지하는 처소도 없고, 할 수 있 일도 없거늘 어떻게 보살이라 할 수 있겠는가!


復次,六波羅蜜、十八空、三十七品,十力乃至十八不共法,如、法性、實際、不可思議性,三解脫門,陁羅尼門、諸三昧門,薩婆若、道智、一切種智,三乘、三乘人,是法若修、若觀,是名菩薩。是法皆以自相空故空,所謂檀波羅蜜、檀波羅蜜相空,乃至佛、佛相空。

또한바라밀과 18(십十八)37조도ㆍ십 내지 18불공법까지와 ()ㆍ법성(法性)ㆍ실제(實際)ㆍ불가사의성(不可思議性) 3해탈문(三解脫門)ㆍ다라니문ㆍ모든 삼매문ㆍ살바야ㆍ도지(道智)ㆍ일체종지와 3(三)승인 등의 이러한 법을 닦으며, 또한 ()하는 이를 바로 보살이라 하나니, 

  모두는 자상공(自相空)이기 때문에 공(空)하나니, 이른바 ()바라밀은 단바라밀의 상(相)이 공(空)하고 내지 부처님은 부처님의 상(相)이 공(空)한 것이.


“一切處”者,五衆、十二入、十八界,乃至一切種智。“一切種智”者,十八空、三解脫門。般若波羅蜜觀若常若無常等,入一門、二門乃至無量門等,是名一切種智。求索菩薩不可得。

“일체저(一切處) 오12(십十二)18(十八) 내지 일체종지(一切種智)이며,

“일체종(一切種)”이 십팔공과해탈문과 반야바라밀을 ‘상(常, 항상한),’ ‘무상(無常, 항상하지 않은) 등으로 관하면서 일문(一門)ㆍ이문(二門) 내지 무량한 무량문(無量門) 등으로 들어가는 것이니, 이를 일체종(一切種)이라 하며, 여기에서 보살을 구하고 찾아도 얻을  없는 불가득인 것이다.


又以自法中無自法,亦無他法。如此中說:“色,色中不可得;色,受中不可得。受,受中不可得;受,色中不可得;乃至般若波羅蜜,般若波羅蜜中不可得;乃至敎化中,敎化不可得。”

또한 자기의 자법(自法) 가운데에서는 자기의법이 없고, 또한 다른 법의 타법(他法) 없으니,  가운데에서 설명하기를 물질(色)은 물질(色) 가운데에서 얻을  없고, 물질(色)은 느낌(受) 가운데에서 얻을  없으며, 느낌(受)은 느낌(受) 가운데에서 얻을  없고, 느낌(受)은 물질(色) 가운데에서 얻을  없으며, 나아가 반야바라밀은 반야바라밀 가운데에서 얻을  없고, 또한 교화(敎化)하는 가운데에서는 교화를 얻을  없다.”  것과 같다.


“但有名字”者,是五衆破壞散滅,如虛空無異。是菩薩但有名字,如幻化人,假名字中更爲立名。

단지 명자(名字, 이름)이 있을 뿐이다.” 함이란, 중은 파괴되고 흩어져 헤어지면 마치 허공과 다름이 없나니,  보살도 명자(名字, 이름)가 있을 뿐이어서 마치 허깨비를 임시의 가명(假名) 가운데에서 다시 이름을 붙여 부르는 것과 같은 것이다.


須菩提語舍利弗:“不但菩薩假名字,五衆皆亦假名字;假名字中,假名字相不可得,皆入第一義中。若如是空者,則非菩薩。”

수보리 존자가 사리불 존자에게 말하기를 단지 보살만이 임시의 가명(假名)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임시의 가명(假名)인 것이.” 하였으니, 임시의 가명(假名) 가운데에서 임시의 가명(假名) 상(相) 얻을  없는 불가득이며, 모두가 제일의(第一義) 들어가는 것이니, 만약 이와 같이 공(空)한 것이라면  보살이 아닌 것이다.


復次,六波羅蜜乃至一切種智,行是法故,名爲菩薩;是法亦假名字,菩薩亦假名字,空無所有。是諸法等强爲作名,因緣和合故有,亦無其實。

또한바라밀에서 일체종지까지의 법을 행하기 때문에 보살이라 하며,   또한 임시의 가명(假名)이라 보살 또한 임시의 가명(假名)이므로 공(空)하여 있는 바가 없는 무소유(無所有)이며,  모든 등에는 억지로 이름을 붙인 것이요  () () 화합한 까닭에 존재하기는 하나 역시  실체는 없는 것이다.


“我名字畢竟不生”者,如此品初已說。此中須菩提亦如衆生空、法空破我,所謂:“我畢竟不可得,乃至知者、見者不可得,云何當有生?

나(我)라는 이름은 필경에 나지 않는 불생(不生)이다.” 함이란, 마치  () 처음에서 설명한 것과 같으며,  가운데에서 수보리 존자는 또한 중생공(衆生空) 법공(法空)으로써 나(我)를 깨뜨렸으니, 

이른바 “나(我) 필경에 얻을  없는 불가득이고 또한 아는 지자(知者) 보는 견자(見者) 얻을  없는 불가득이거늘 어떻게 나는 생(生) 있다.” 할 수 있겠는가!


五衆畢竟不可得,云何有五衆生?乃至意觸因緣生受畢竟不可得,云何當有生?六波羅蜜畢竟不可得,乃至諸陁羅尼門、三昧門、聲聞、辟支佛、佛畢竟不可得,云何當有生?”若法先有,然後可問生;法體先無,云何有生?

중도 필경에 얻을 없는 불가득이거늘 어떻게중이 나는 생(生) 있겠으며,

또한 뜻의 접촉의 인연인, 의촉인연(意觸因緣)으로 생긴 느김(受) 필경에 얻을 없는 불가득이거늘 어떻게 나는 생(生) 있다 할 수 있겠는가!

바라밀도 필경에 얻을 없는 불가득이고, 나아가 모든 다라니문과 삼매문과 성문이나 벽지불과 부처님까지도 필경에 얻을 없는 불가득이거늘 어떻게 나는 생(生) 있다 하겠는가!

만약 법이 먼저 있었다면,  뒤에야 나는 생(生)이 있는가라고 물어야 하겠지만, 자체가 먼저 없었거늘 어떻게 나는 생(生) 있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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