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 釋四念處品 第十九 卷四十八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송성수 번역/김형준 개역
19. 사념처품(四念處品)을 풀이함 6
復次,須菩提!菩薩摩訶薩摩訶衍,所謂八聖道分。何等八?
正見 正思惟 正語 正業 正命 正精進 正念 正定 是名菩薩摩訶薩摩訶衍,以不可得故。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란 이른바 8성도분(八聖道分)이니, 무엇이 8성도분인가?
정견(正見)과 정사유(正思惟)와 정어(正語)와 정업(正業)과 정명(正命)과 정정진(正精進)과 정념(正念)과 정정(正定)이니,
이를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 하나니, 그것은 얻을 수 없는 불가득(不可得)이기 때문이니라.
復次,須菩提!菩薩摩訶薩摩訶衍,所謂三三昧。何等三?空、無相、無作三昧。
‘空三昧’名諸法自相空,是爲空解脫門。‘無相’名壞諸法相,不憶不念,是爲無相解脫門。
‘無作’名諸法中不作願,是爲無作解脫門。是名菩薩摩訶薩摩訶衍,以不可得故。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란 이른바 3삼매(三昧)이니, 무엇이 3삼매인가?
공(空)ㆍ무상(無相)ㆍ무작(無作)의 삼매이니라.
공삼매(空三昧)는 각각의 제법 스스로의 자상(自相)이 공하다는 것이니, 바로 공해탈문(空解脫門)이며,
무상삼매(無相三昧)는 제법의 상(相)을 파괴하여 기억하지도 않고 생각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니, 바로 무상해탈문(無相解脫門)이며,
무작삼매(無作三昧)는 제법 가운데에서 원(願)을 짓지 않는다는 것이니, 바로 무작해탈문(無作解脫門)이니,
이를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 하나니, 그것은 얻을 수 없는 불가득(不可得)이기 때문이니라.
復次,須菩提!菩薩摩訶薩摩訶衍,所謂苦智、集智、滅智、道智、盡智、無生智、
法智、比智、世智、他心智、如實智。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란 이른바 고지(苦智)와 집지(集智)와 멸지(滅智)와 도지(道智)와 진지(盡智)와 무생지(無生智)와 법지(法智)와 비지(比智)와 세지(世智)와 타심지(他心智)와 여실지(如實智)이니라.
云何名苦智?知苦不生 是名苦智。云何名集智?知集應斷 是名集智。
云何名滅智?知苦滅 是名滅智。
무엇을 고지(苦智)라 하는가? 괴로움이 생기지 않는 이치를 아는 것을 고지라 하며,
무엇을 집지(集智)라 하는가? 쌓임의 집(集)을 마땅히 끊어야 함을 아는 것을 집지라 하며,
무엇을 멸지(滅智)라 하는가? 괴로움이 사라진 이치를 아는 것을 멸지라 하며,
무엇을 도지(道智)라 하는가? 8성도분(聖道分)의 이치를 아는 것을 도지라 하며,
무엇을 진지(盡智)라 하는가? 모든 음(婬, 음욕)ㆍ노(怒, 성냄)ㆍ치(癡, 어리석음)이 다한 이치를 아는 것을 진지라 하느니라.
云何名無生智?知諸有中無生,是名無生智。云何名法智?知五衆本事分別知無,是名法智。
云何名比智?知眼無常乃至意觸因緣生受無常,是名比智。
무엇을 무생지(無生智)라 하는가? 모든 존재의 유(有) 가운데에서 생김이 없다는 무생(無生)의 이치를 아는 것을 무생지라 하며,
무엇을 법지(法智)라 하는가? 5중(五衆)의 근본 되는 본사(本事)를 분별하여 아는 것을 법지라 하며,
무엇을 비지(比智)라 하는가? 안(眼, 눈, 안촉수眼觸受)은 무상하며 나아가 이촉수(耳觸受), 비촉수(鼻觸受), 설촉수(舌觸受), 신촉수(身觸受), 의촉수(意觸受)의 인연에 이르기까지 생기는 느낌의 인연수생(因緣生受)까도 무상하다는 이치를 아는 것을 비지라 하느니라.
云何名道智?知八聖道分,是名道智。云何名盡智?知諸婬怒癡盡,是名盡智。
云何名世智?知因緣、名字,是名世智。云何名他心智?知他衆生心,是名他心智。
云何名如實智?知諸佛一切種智 是名如實智。須菩提!是名菩薩摩訶薩摩訶衍 以不可得故。
무엇을 세지(世智)라 하는가? 직접적인 인(因)과 간접적인 연(緣)과 명자(名字, 이름)의 이치를 아는 것을 세지라 하며,
무엇을 타심지(他心智)라 하는가? 다른 중생의 마음을 아는 것을 타심지라 하며,
무엇을 여실지(如實智)라 하는가? 모든 부처님의 일체종지(一切種智)를 아는 것을 여실지라 하느니라.
수보리야, 이를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 하나니, 그것은 얻을 수 없는 불가득(不可得)이기 때문이니라.
復次,須菩提!菩薩摩訶薩摩訶衍,所謂三根:未知欲知根、知根、知者根。
云何名未知欲知根?諸學人未得果信根、精進根、念根、定根、慧根,是名未知欲知根。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란 이른바 3근(三根)이니, 미지욕지근(未知欲知根)과 지근(知根)과 지자근(知者根)이라.
무엇을 미지욕지근이라 하는가? 모든 배울 것이 있는 학인(學人)이 아직 과보를 얻지 못한 신근(信根)ㆍ정진근(精進根)ㆍ염근(念根)ㆍ정근(定根) 및 혜근(慧根)이니, 이를 미지욕지근이라 하며,
云何名知根?諸學人得果信根乃至慧根,是名知根。
云何名知者根?諸無學人,若阿羅漢、若辟支佛、諸佛信根乃至慧根,是名知者根。
須菩提!是名菩薩摩訶薩摩訶衍,以不可得故。
무엇을 지근(知根)이라 하는가?모든 배울 것이 있는 학인(學人)이 과보를 얻은 신근(信根)에서 ㆍ정진근(精進根)ㆍ염근(念根)ㆍ정근(定根) 및 혜근(慧根)까지이니, 이를 지근이라 하며,
무엇을 지자근(知者根)이라 하는가? 배움이 끝나서 모든 배울 것 없는 무학인(無學人)인 아라한과 벽지불과 모든 부처님의 신근(信根)에서 ㆍ정진근(精進根)ㆍ염근(念根)ㆍ정근(定根) 및 혜근(慧根)까지이니, 이것을 지자근이라 하느니라.
수보리야, 이를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 하나니, 그것은 얻을 수 없는 불가득(不可得)이기 때문이니라.
復次,須菩提!菩薩摩訶薩摩訶衍,所謂三三昧。
何等三?有覺有觀三昧,無覺有觀三昧,無覺無觀三昧。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란 이른바 3삼매(三三昧)이니, 어떠한 세 가지인가?
곧 유각유관삼매(有覺有觀三昧)와 무각유관삼매(無覺有觀三昧)와 무각무관삼매(無覺無觀三昧)이니라.
云何名有覺有觀三昧?離諸欲 離惡不善法 有覺有觀 離生喜樂入初禪 是名有覺有觀三昧。
무엇을 유각유관삼매(有覺有觀三昧, 유심유사삼마지有尋有伺三摩地)라 하는가? 모든 욕망을 여의고 악(惡)과 착하지 않은 불선법을 떠나서 거친 생각의 각(覺)과 세밀한 생각의 관(觀)이 있으나, 애욕을 여읨으로부터 생하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初禪)에 들어가나니, 이를 유각유관삼매라 하며,
云何名無覺有觀三昧?初禪二禪中間,是名無覺有觀三昧。
云何名無覺無觀三昧?從二禪乃至非有想非無想定,是名無覺無觀三昧。
是名菩薩摩訶薩摩訶衍,以不可得故。
무엇을 무각유관삼매(無覺有觀三昧, 무심유사삼마지無尋唯伺三摩地))라 하는가? 초선과 2선(二禪) 중간의 선이니, 이를 무각유관삼매라 하며,
무엇을 무각무관삼매(無覺無觀三昧, 무심무사삼마지無尋無伺三摩地)라 하는가? 2선(二禪)에서 비유상비무상정(非有想非無想定)까지이니, 이를 무각무관삼매라 하느니라.
이를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 하나니, 그것은 얻을 수 없는 불가득(不可得)이기 때문이니라.
復次,須菩提!菩薩摩訶薩摩訶衍,所謂十念。何等十?念佛、念法、念僧、念戒、念捨、
念天、念滅、念出入息、念身、念死。須菩提!是名菩薩摩訶薩摩訶衍,以不可得故。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란 이른바 10념(十念)이니,
무엇이 10념인가? 염불(念佛)과 염법(念法)과 염승(念僧)과 염계(念戒)와 염사(念捨)와 염천(念天)과 염멸(念滅)과 염출입식(念出入息)과 염신(念身)과 염사(念死)이니,
수보리야, 이를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 하나니, 그것은 얻을 수 없는 불가득(不可得)이기 때문이니라.
復次,須菩提!菩薩摩訶薩摩訶衍,所謂四禪、四無量心、四無色定、八背捨、九次第定。
須菩提!是名菩薩摩訶薩摩訶衍,以不可得故。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란 이른바 4선(四禪)과 4무량심(四無量心)과 4무색정(四無色定)과 8배사(八背捨)와 9차제정(九次第定)이니,
수보리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 하나니, 그것은 얻을 수 없는 불가득(不可得)이기 때문이니라.
復次,須菩提!菩薩摩訶薩摩訶衍,所謂佛十力。何等十?佛如實知一切法是處不是處相 一力也。
如實知他衆生過去、未來、現在諸業諸受法,知造業處,知因緣、知報,二力也。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란 이른바 부처님의 10력(十力)이니,
무엇이 부처님의 10력인가? 부처님께서는 일체의 법이 도리에 계합하고 계합하지 않는 시처불시처(是處不是處)의 상(相)을 여실히 아시나니, 이러함이 첫 번째의 힘인 일력(一力)이며,
부처님께서는 여실히 중생의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업과 모든 받는 법을 아시고, 업을 지은 처소를 아시며, 인연을 아시고, 과보를 아시나니, 이것이 두 번째의 힘인 이력(二力)이며,
如實知諸禪、解脫、三昧、定垢淨分別相,三力也。如實知他衆生諸根上下相,四力也。
如實知他衆生種種欲解,五力也。如實知世閒種種無數性,六力也。如實知一切至處道,七力也。
부처님께서는 모든 선(禪)과 해탈(解脫)과 삼매(三昧)와 정(定)의 더럽고 깨끗함의 상(相)을 분별하여 여실히 아시나니, 이것이 세 번째의 힘인 삼력(三力)이며,
부처님께서는 중생들의 모든 근기의 상하(上下)의 상(相)을 여실히 아시나니, 이것이 네 번째의 힘인 사력(四力)이며,
부처님께서는 중생들의 갖가지 욕해(欲解)를 여실히 아시나니, 이것이 다섯 번째의 힘인 오력(五力)이며,
부처님께서는 세간의 갖가지로 수 없이 많은 성품을 여실히 아시나니, 이것이 여섯 번째의 힘인 육력(六力)이며,
부처님께서는 일체처에 이르는 지처(至處)와 도(道, 길)를 여실히 아시나니, 이것이 일곱 번째의 힘인 칠력(七力)이며,
知種種宿命,有相、有因緣,一世、二世乃至百千世,劫初劫盡,我在彼衆生中生:如是姓,如是名,如是飮食、苦樂、壽命長短;彼中死、是閒生,是間死、還生是閒,此閒生姓名、飮食、苦樂、壽命長短亦如是,八力也。
부처님께서는 갖가지 숙명으로 유상(有相)이고, 인연이 있는 유인연(有因緣)이어서 한 세상, 두 세상 나아가 백천의 세상과 겁(劫)의 처음에서부터 겁이 다하기까지 내가 저 중생 가운데 태어나 이러한 성(姓)과 이러한 이름과 이러한 음식을 먹었으며, 괴로움과 즐거움과 수명의 장단(長短)으로 그 안에서 죽었으며, 그 사이에 나고 죽고 또한 다시 이 세간에 나서, 이 세간의 성명(姓名)과 음식과 고락(苦樂)과 수명의 장단이 그와 같음을 보시나니, 이것이 여덟 번째의 힘인 팔력(八力)이며,
佛天眼淨,過諸天眼,見衆生死時生時、端正醜陋、若大若小、若墮惡道若墮善道;如是業因緣受報:是諸衆生惡身業成就、惡口業成就、惡意業成就、謗毀聖人,受邪見業因緣故,身壞死時入惡道,生地獄中;是諸衆生善身業成就,善口業成就,善意業成就,不謗毀聖人,受正見業因緣故,身就壞時入善道,生天上,九力也。
부처님의 천안(天眼)은 모든 하늘의 천안보다 뛰어나나니, 중생들이 죽는 사시(死時)와 태어나는 생시(生時)와 잘 생기고 못 생긴 것ㆍ크거나 작은 것ㆍ악도(惡道)에 떨어지거나 선도(善道)에 떨어지는 것과
그러한 업의 인연으로 과보를 받는 것과 이 모든 중생이 나쁜 신업(身業)을 성취하고 나쁜 구업(口業)을 성취하고 나쁜 의업(意業)을 성취하였으며, 성인을 훼방하고 삿된 견해의 업의 인연을 받았기 때문에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는 악도에 들어가서 지옥에 태어난다는 것과
이 모든 중생이 착한 신업을 성취하고 착한 의업을 성취하였으며, 성인을 훼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의 업의 인연을 받았기 때문에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는 선도에 들어가서 천상에 가 나는 것을 보시나니,
이것이 아홉 번째의 힘인 구력(九力)이며,
佛如實知諸漏盡故,無漏心解脫,無漏慧解脫;現在法中自證知入是法,所謂我生已盡,梵行已作,從今世不復見後世,十力也。須菩提!是名菩薩摩訶薩摩訶衍,以不可得故。
부처님께서는 모든 번뇌가 다한 누진(漏盡)이시기 때문에 무루심(無漏心)으로 해탈하셔서 무루혜(無漏慧) 해탈을 하셨음을 아시며, 현재의 법 가운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아시면서 이러한 법에 들어 가셔서 “나의 생(生)이 이미 다한 아생이진(我生已盡)이고 범행을 이미 지은 범행이작(梵行已作)이다.”고 하시며, 금세로부터 다시는 후세를 보시지 않으시니,
이러함이 열 번째의 힘인 십력(十力)이며, 힘이니라.
수보리야, 이를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 하나니, 그것은 얻을 수 없는 불가득(不可得)이기 때문이니라.
復次,須菩提!菩薩摩訶薩摩訶衍,所謂四無所畏。何等四?佛作誠言:‘我是一切正智人。’若有沙門、婆羅門,若天、若魔、若梵、若復餘衆,如實難言:‘是法不知。’乃至不見是微畏相。以是故,我得安隱,得無所畏,安住聖主處,在大衆中師子吼,能轉梵輪;諸沙門、婆羅門,若天、若魔、若梵、若復餘衆,實不能轉,一無畏也。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란 이른바 4무소외(四無所畏)이니,
무엇이 사무소외인가?, 부처님께서 정성스런 성어(誠言)로 “나는 일체의 바른 지혜를 지닌 일체정지인(一切正智人)이다.”고 하실 때에 어떤 사문(沙門)이나 바라문(婆羅門)이나 또는 하늘ㆍ악마ㆍ범천이나 그 밖의 대중이 힐난하면서“법을 알지 못한다.”고 말하여도 조금도 두려움 없이, 성주(聖主)의 처소에 편히 머물러 대중 가운데에서 사자처럼 외치며 범륜(梵輪)을 굴리시니, 모든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또는 하늘ㆍ악마ㆍ범천이나 그 밖의 대중으로서는 실로 굴릴 수 없는 것이니라. 이것이 첫 번째의 무소외인 일무외(一無畏)이며,
佛作誠言:‘我一切漏盡。’若有沙門、婆羅門,若天、若魔、若梵、若復餘衆,如實難言:‘是漏不盡。’乃至不見是微畏相。以是故,我得安隱,得無所畏,安住聖主處,在大衆中師子吼,能轉梵輪;諸沙門、婆羅門,若天、若魔、若梵、若復餘衆,實不能轉,二無畏也。
부처님께서 진실되게 말씀하셨으니, “나는 일체 번뇌가 다한 누진(漏盡)이다.”고 하실 때에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또는 하늘ㆍ악마ㆍ범천과 그 밖의 대중이 힐난하면서 “번뇌를 다하지 못하였다.”고 말하여도 조금도 두려워하는 외상(畏相)을 나타내지 않으시고 안온하면서도 두려움 없이 성주의 처소에 편히 머물러 대중 가운데에서 사자처럼 외치며 법륜을 굴리지만 모든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또는 하늘ㆍ악마ㆍ범천이나 그 밖의 대중으로서는 실로 굴릴 수 없나니, 이러함이 두 번째의 무소외인 이무외(二無畏)이며,
佛作誠言:‘我說障法。’若有沙門、婆羅門,若天、若魔、若梵、若復餘衆,如實難言:‘受是法不障道。’乃至不見是微畏相。以是故,我得安隱,得無所畏,安住聖主處,在大衆中師子吼,能轉梵輪;諸沙門、婆羅門,若天、若魔、若梵、若復餘衆,實不能轉,三無畏也。
부처님께서 진실되게 말씀하셨으니, “나는 장애되는 장법(障法)을 말한다.”고 하셨을 때에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또는 하늘ㆍ악마ㆍ범천이며 그 밖의 대중이 힐난하면서 “이 법을 받더라도 도를 장애하지 않는다.”고 말하여도, 조금도 두려워하는 외상(畏相)을 나타내지 않으시고 안온하면서도 두려움 없이, 성주의 처소에 편안히 머물러 대중 가운데에서 사자처럼 외치며 법륜을 굴리지만, 모든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또는 하늘ㆍ악마ㆍ범천이나 그 밖의 대중은 굴릴 수 없나니, 이것이 세 번째의 무소외인 삼무외(三無畏)이니라.
佛作誠言:‘我所說聖道,能出世閒,隨是行能盡苦。’若有沙門、婆羅門,若天、若魔、若梵、若復餘衆,如實難言:‘行是道不能出世閒,不能盡苦。’乃至不見是微畏相。以是故,我得安隱,得無所畏,安住聖主處,在大衆中師子吼,能轉梵輪;諸沙門、婆羅門,若天、若魔、若梵、若復餘衆,實不能轉,四無畏也。須菩提!是名菩薩摩訶薩摩訶衍,以不可得故。
부처님께서 진실되게 말씀하셨으니, “내가 설하는 거룩한 성도(聖道)로 세간을 벗어나게 되며, 이 행을 따라 괴로움이 다하게 된다.”고 하셨을 때,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또는 하늘ㆍ악마ㆍ범천이며 그 밖의 대중이 힐난하면서 “이 도를 행하여도 세간을 벗어날 수도 없고 괴로움을 다할 수도 없다.”고 말하여도 조금도 두려워하는 외상(畏相)을 나타내지 않으시고 안온하면서도 두려움 없이 성주의 처소에 편히 머물러 대중 가운데에서 사자처럼 외치며 범륜을 굴리지만 모든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또는 하늘ㆍ악마ㆍ범천이나 그 밖의 대중으로서는 굴릴 수 없는 것이니, 이것이 네 번째의 무소외인 사무외(四無畏)이니라.
수보리야, 이을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 하나니, 그것은 얻을 수 없는 불가득(不可得)이기 때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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