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 釋四念處品 第十九 卷四十八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송성수 번역/김형준 개역

19. 사념처품(四念處品) 풀이함 5

 

問曰:若爾者,何以不說智處而說念處

묻나니, 만약 그러하다면 무엇 때문에 지처(智處)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염처(念處)라고 말씀하신 것입니까?

 

答曰:初習行時,未及有智;念爲初門,常念其事,是智慧隨念故,以爲名。

四念處實體是智慧。所以者何?觀內外身 卽是智慧;念持智慧在緣中 不令散亂 故名念處

답하나니, 처음 행을 익힐 때의 초습행시(初習行時)에는 아직 지혜에 미치지 못하였으므로 ()  문으로 삼아서 항상 그것 염하나니 지혜는  염(念)함을 따르기 때문에 염(念)으로써 이름을 삼은 것이다.

념처의 실체(實體) 바로 지혜이니, 왜냐하면 내외신(內外身) 관하는 것이  지혜이기 때문이며,

지혜를 염하고 지니어 반연 가운데 있으면서 산란하지  때문에 염처(念處)라 하는 것이.

 

與九十六種邪行求道相違 故名正勤。諸外道等捨五欲自苦身 不能捨惡不善 不能集諸善法。

99종의 삿된 사행(邪行)으로써 도를 구하는 것과는 서로 다르기 때문에 정근(正勤)이라 하나니,

모든 외도 등은 5(五) 버리고는 스스로 몸을 괴롭히고 () 불선(不善) 버리지도 못하며, 모든 선법(善法) 모으지도 못하나, 

 

佛有兩種斷惡不善法:已來者除卻,未來者防使不生;善法亦有二種:

未生善法令生,已生善法令增長,是名正勤

부처님에게는 유(有, 존재) 끊는  가지가 있으니이미 악하고법(不善法)이 오면 물리쳐 없애고

아직 오지 않은 것은 막아서 생기지 않게 하는 것이며,

선법(善法)에도  가지가 있으니아직 생기지 않은법은 생기게 하고, 이미 생긴법은 더욱 더 자라게 하나니

이를 정근(正勤)이라 하는 것이.

 

智慧火得正勤風,無所不燒。正勤若過 心則散亂,智火微弱;如火得風 過者或滅 或微 不能燒照。

是故須定以制過精進風,則可得定。

지혜의 불이 정근(正勤)의 바람을 만나면 타지 않음 없지만

만약 정근이 지나치면 마음이  산란해져서 지혜의 불이 미약하게 되나니,

마치 불이 바람을 지나치게 받으면  꺼지기도 하고,  미약해져서 타지 못하기도 하고, 비추지 못하는 것과 같기 때문에 모름지기 ()으로써 지나친 정진의 바람을 제어하여 선정을 얻을  있어야 하며, 

 

定有四種:欲定、精進定、心定、思惟定。制四念處中過智慧 是時定慧道得精進故 所欲如意;

後得如意事辦故名如意足。足者,名如意因緣,亦名分。

선정(禪定)에도  가지가 있으니욕정(欲定) 정진정(精進定) 심정(心定) 사유정(思惟定)이다.

념처 허물을 제어하는 것이 지혜이니이 때에 선정과 지혜의 () 정진하 때문에 바라는 바가 뜻대로 되며,에도 뜻대로 일을 이룰  있기 때문에 여의족(如意足)이라 하나니,

()이라 함이란 뜻대로 되는 인연을 말하는 것이며 또한 ()이라 하기도 한다.

 

是十二法,鈍根人中名爲,如樹有根未有力;若利根人中名爲,是事了了,能疾有所辦,

如利刀截物故名有力。事未辦故名爲;事辦,思惟修行故名爲。三十七品論議,如先說。

 열두 가지의 십이법(十二法) 근기가 둔한 사람들에서는 ()이라 하나니

마치 나무에 뿌리() 있으나 아직 힘이 없는 것과 같으며,

만약 근기가 영리한 사람이라면, ()이라 하나니일을 분명하게 알고 신속히 이룩하는 것이 마치 날카로운 칼로 물건을 베는 것과 같기 때문에 힘이 있는 유력(有力)이라 하는 것이며, 

일을 아직 마치지 못했기 때문에 () 하며, 일을 마치고서 생각하고 수행하기 때문에 ()이라 하나니,

37() 대한 논의는 앞에서의 설명과 같다.

 

問曰:若菩薩修此三十七品,云何不取涅槃?

묻나니, 만약 보살이 이 37조도품을 닦는다면 어떻게 열반을 취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까?

 

答曰:本願牢故,大悲心深入故,了了知諸法實相故,十方諸佛護念故。

如經說:“菩薩到七住地,外觀諸法空,內觀無我;如人夢中縛栰渡河,中流而覺

作是念:‘我空自疲苦,無河無栰,我何所渡?’”

답하나니, 본래의 서원이 공고하기 때문이요, 대비(大悲)의 마음에 깊이 들었기 때문이며, 제법의 실상(實相)을 분명하게 알기 때문이요,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보호하고 염려하시기 때문이다.

마치 경에서 “보살의 7주(住)의 지위에 이르게 되면 밖으로는 제법이 공함을 관하고 안으로는 무아임을 관하나니, 마치 사람이 꿈 속에 뗏목을 타고 강물을 건너다가 중간쯤에서 깨어나서 생각하기를 ‘내가 공연한 수고를 했구나. 강물도 없고 뗏목도 없는데, 내가 어디를 건너는 것인가!’라고 한다고 말씀하신 것과 같다.

 

菩薩爾時亦如是,心則悔厭:‘我何所度?何所滅?’且欲自滅倒心。是時 十方佛伸手摩頭:

보살은 그 때에도 역시 그와 같이 마음으로 뉘우치고 싫증을 내면서 “내가 건너야 할 곳이 어디이며, 무엇이 사라지는 멸(滅)인가?” 하면서 우선 스스로의 뒤 바뀐 마음을 없애려고 한다면, 이 때에 시방의 부처님들께서 손을 펴서 그의 머리를 어루만지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나니, 

 

“善哉!佛子!莫生悔心!念汝本願!汝雖知此 衆生未悟 汝當以此空法敎化衆生。

“훌륭하구나, 불자(佛子)야. 그대는 뉘우치는 마음을 내지 말고 본래의 서원을 생각하거라!

그대는 비록 이 중생들이 아직 깨치지 못하였음을 안다고 하여도 이 공법(空法)으로써 중생들을 교화해야 하느니라!

 

汝所得者,始是一門;諸佛無量身、無量音聲、無量法門、一切智慧等,汝皆未得。

汝觀諸法空故,著是涅槃;諸法空中無有滅處,無有著處;若實有滅,汝先來已滅。

汝未具足六波羅蜜乃至十八不共法;汝當具足此法,坐於道場,如諸佛法。’”

그대가 얻은 바는 시초의 시일문(始一門)이니, 모든 부처님의 무량신(無量身)과 무량음성(無量音聲)과 무량법문(無量法門)과 일체지혜(一切智慧) 등의 모두를 그대는 아직 얻지 못하였느니라.

그대는 제법의 법공(法空)을 관하는 까닭에 이 열반에 집착하고 있지만, 제법이 공한 가운데에서는 사라지는 곳도 없고, 집착하는 곳도 없나니, 만약 실로 사라짐이 있다면 그대는 이미 사라졌을 것이니라.

그대는 아직 육바라밀 내지 18불공법(不共法)을 구족하지 못했나니, 그대가 이 법을 두루 갖추고서 도량(道場)에 가서 앉아 모든 부처님의 불법과 같이 해야만 하느니라.”

 

復次,三三昧、十一智、三無漏根、覺觀三昧、十念、四禪、四無量心、四無色定、

八背捨、九次第定,如先說。

또한 삼매(三昧)와 11지(十一智)와 3무루근(三無漏根)과 각관삼매(覺觀三昧)와 10념(十念)과 4선(四禪)과 4무량심(四無量心)과 4무색정(四無色定)과 8배사(八背捨)와 9차제정(九次第定) 등은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으며, 

 

復次,佛十力、四無所畏、四無碍智、十八不共法,如初品中說。是諸法後皆用無所得故。

以般若波羅蜜畢竟空和合故名“除世閒貪憂,以不可得故。”。

또한 부처님의 10력(十力)과 4무소외(四無所畏)와 4무애지(四無礙智)와 18불공법(不共法)은 초품(初品) 가운데에서 설명한 것과 같으니, 

이 제법의 뒤에는 모두 “얻을 바가 없음을 쓰는 용무소득(用無所得)이기 때문에, 또한 반야바라밀(般若波羅密)과 필경공(畢竟空)이 화합한 때문에 세간의 탐욕과 근심을 제거한다.”고 하나니, 얻을 수 없는 불가득(不可得)이기 때문이다.

 

▶經. “復次,須菩提!菩薩摩訶薩見是棄死人骨在地 歲久 其色如鴿 腐朽爛壞 與土共合,

自念:‘我身如是法、如是相,未脫此法。’

如是,須菩提!菩薩摩訶薩內身中循身觀,勤精進一心,除世閒貪憂,以不可得故。

▷경.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이 버려진 죽은 사람의 뼈가 오랜 세월 동안 땅에 딩굴면서 그 빛깔이 마치 비둘기와 같고 썩어 문드러져서 흙과 함께 합쳐져 있는 것을 보고 생각하기를 “나의 몸도 이러한 법이 있고 이렇게 될 터인데 아직 이러한 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구나.”라고 하느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내신(內身) 가운데에서 몸을 차례로 자세히 관하는 순신관(循身觀)을 하면서 부지런히 정진하며 일심(一心)이 되어 세간의 탐욕과 근심을 없애나니, 그것은 얻을 수 없는 불가득(不可得)이기 때문이니라.

 

外身 內外身亦如是。受念處 心念處 法念處亦應如是廣說。須菩提!是名菩薩摩訶薩摩訶衍。

외신(外身)과 내외신(內外身) 또한 그와 같아서 수념처(受念處)와 심념처(心念處)와 법념처(法念處) 또한 이와 같이 자세히 말해야 되나니, 수보리야, 이를 보살마하살의 마하연(摩訶衍)이라 하느니라.

 

復次,須菩提!菩薩摩訶薩摩訶衍,所謂四正勤。何等四?

須菩提!菩薩摩訶薩未生諸惡不善法爲不生故,欲生勤精進攝心行道;

已生諸惡不善法爲斷故,欲生勤精進攝心行道。

또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란 이른바 4정근(四正勤)이니라. 무엇이 4정근인가?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아직 생기기 전의 모든 악인 미생제악(未生諸惡)과 불선법(不善法)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서 마음을 가다듬어 도를 행하며,

이미 생긴 모든 악의 이생제악(已生諸惡)과 불선법(不善法)을 끊기 위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서 마음을 가다듬어 도를 행하느니라.

 

未生諸善法爲生故,欲生勤精進攝心行道;已生諸善法爲住不失修滿增廣故,

欲生勤精進攝心行道;以不可得故。須菩提!是名菩薩摩訶薩摩訶衍。

아직 생기기 전의 모든 착한 선법(善法)은 생기게 하기 위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서 마음을 가다듬어 도를 행하느니라.

이미 생긴 모든 착한 선법(善法)이 머물러서 상실되지 않고, 수행이 원만하여 더욱 광대하게 하기 위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서 마음을 가다듬어 도를 행하나니, 그것은 얻을 수 없는 불가득(不可得)이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 하느니라.

 

復次,須菩提!菩薩摩訶薩摩訶衍,所謂四如意分。何等四?

欲定斷行成就修如意分,心定斷行成就修如意分,精進定斷行成就修如意分,

思惟定斷行成就修如意分。以不可得故。須菩提!是名菩薩摩訶薩摩訶衍。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란 이른바 4여의분(四如意分)이니, 무엇이 사여의분인가?

욕정단(欲情斷)을 행하면서 수행을 성취하는 여의분(如意分)과

심정단(心定斷) 행하면서 수행을 성취하는 여의분(如意分)과

정진정단(精進定斷)을 행하면서 수행을 성취하는 여의분(如意分)과

사유정단(思惟定斷)을 행하면서 수행을 성취하는 여의분(如意分)이니,

그것은 얻을 수가 없는 불가득(不可得)이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 하느니라.

 

復次,須菩提!菩薩摩訶薩摩訶衍,所謂五根。何等五?

信根、精進根、念根、定根、慧根,是名菩薩摩訶薩摩訶衍 以不可得故。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란 이른바 5근(五根)이니, 무엇이 5근인가?

신근(信根)과 정진근(精進根)과 염근(念根)과 정근(定根)과 혜근(慧根)이니라.

이를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 하나니, 그것은 얻을 수 없는 불가득(不可得)이기 때문이니라.

 

復次,須菩提!菩薩摩訶薩摩訶衍,所謂五力。何等五?信力 精進力 念力 定力 慧力,

是名菩薩摩訶薩摩訶衍,以不可得故。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란 이른바 5력(五力)이니, 무엇이 오력인가?

신력(信力)과 정진력(精進力)과 염력(念力)과 정력(定力)과 혜력(慧力)이니라.

이를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 하나니, 그것은 얻을 수 없는 불가득(不可得)이기 때문이니라.

 

復次,須菩提!菩薩摩訶薩摩訶衍,所謂七覺分。何等七?

菩薩摩訶薩修念覺分,依離、依無染、向涅槃;擇法覺分、精進覺分、喜覺分、除覺分、

定覺分、捨覺分,依離、依無染、向涅槃。以不可得故,是名菩薩摩訶薩摩訶衍。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란 이른바 7각분(七覺分)이니, 무엇이 7각분인가?

보살마하살은 염각분(念覺分)을 닦되 이(離, 여읨)에 의지하고, 물들음이 없는 무염(無染)에 의지하여 열반을 향하며,

택법각분(擇法覺分)ㆍ정진각분(精進覺分)ㆍ희각분(喜覺分)ㆍ제각분(除覺分)ㆍ정각분(定覺分) 및 사각분(捨覺分)을 닦되 이(離, 여읨)에 의지하고, 물들음이 없는 무염(無染)에 의지하여 열반을 향하나니,

얻을 수 없는 불가득(不可得)이기 때문이니라. 이를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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