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一切毛孔

如一毛孔所放光이 無量無數如恒沙어든 一切毛孔悉亦然하니 此是大仙三昧力이니라

 

如一毛孔所放光(여일모공소방광)이, 한 모공에서 놓은 광명이 

無量無數如恒沙(무량무수여항사)어든, 항하 모래와 같이 무량 무수하고 

一切毛孔이 悉亦然(일체모공실역연)하니, 모든 모공에서도 다 그러하니

此是大仙三昧力(차시대선삼매력)이니라. 이것이 大仙=부처님의 삼매력이리이다. 

 

㉺ 光明의 因緣

如其本行所得光이 隨彼宿緣同行者하야 今放光明故如是하니 此是大仙智自在니라

往昔同修於福業하며 及有愛樂能隨喜하며 見其所作亦復然일새 彼於此光咸得見이니라

若有自修衆福業하며 供養諸佛無央數하며 於佛功德常願求하면 是此光明所開覺이니라

譬如生盲不見日이나 非爲無日出世間이니 諸有目者悉明見하야 各隨所務修其業이니라

大士光明亦如是하야 有智慧者皆悉見이요 凡夫邪信劣解人은 於此光明莫能覩니라

摩尼宮殿及輦乘을 妙寶靈香以塗瑩이라 有福德者自然備요 非無德者所能處니라

大士光明亦如是하야 有深智者咸照觸이어니와 邪信劣解凡愚人은 無有能見此光明이니라

 

如其本行所得光(여기본행소득광), 그 본래 행하신 대로 얻어진 광명이 

隨彼宿緣同行者(수피숙연동행자)하야, 그 숙세의 인연으로 함께 행한 이들을 따라  

今放光明故如是(금방광명고여시)하니, 지금 광명을 놓은 연고가 이와 같으니  

此是大仙智自在(차시대선지자재)니라. 이것이 大仙=부처님 지혜의 자재함이리이다.  

 

往昔同修於福業(왕석동수어복업)하며, 지난 옛적부터 복업을 同修= 똑 같이 닦고 

及有愛樂能隨喜(급유애락능수희)하며, 사랑과 즐거움이 있어서 따라 기뻐할 수 있으며  

見其所作亦復然(견기소작역부연)일새. 보건대 그 지은 바도 다시 그러하다면 

彼於此光咸得見(피어차광함득견)이니라. 저가 이 광명들을 다 얻어 볼 것입니다. 

 

若有自修衆福業(약유자수중복업)하며, 어떤 이가 스스로 온갖 복업을 닦고 

供養諸佛無央數(공양제불무앙수)하며끝없이 많은 부처님을 공양하며

於佛功德常願求(어불공덕상원구)하면, 부처님 공덕을 늘 원하고 구한다면 

是此光明所開覺(시차광명소개각)이니라. 그것은 이 광명이 깨우친 것이리이다.  [開覺= 열어서 깨닫게 하는 바다.]

 

譬如生盲不見日(비여생맹불견일)이나, 비유컨대 맹인이 해를 보지 못함이 

非爲無日出世間(비위무일출세간)이니, 세상에 해가 뜨지 않은 것이 아니라  

諸有目者悉明見(제유목자실명견)하야, 모든 눈 있는 이들이 다 밝게 보니     

各隨所務修其業(각수소무수기업)이니라. 각자 업무 대로 업을 닦는 것이듯이

[각각 자기의 맡은 바를 따라서 그 업을 닦는다.  하는 일을 다 하는, 논 갈고 밭 갈고 나무하고 길을 가는 등 일체 일을 다 하는 것과 같다.] 

[어떤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맹인인데, 해가 도대체 어떻게 생겼느냐고 어떤 사람한테 물으니까 그 사람이 큰 세숫대야같이 생겼다.” 그래서 또 세숫대야는 어떻게 생겼느냐 물으니까 “징과 같이 생겼다.” 또 딴 사람에게 징이 또 어떻게 생겼느냐 하니까  ‘징이 어떻게 생겼느냐고 물으니까 그 사람이 징을 들고 와서 소리를  “땅” 치면서  “이것이 징이다.” 했어요. 그래서 어떤 사람이 시장에 가서 징을 사서 마을 앞을 지나가면서 징을 

 “뚱~~” 치니까  “야~ 저기 해가 간다.ㆍ해가 간다.”  그랬다는 겁니다.

이 사람은 징 소리를 해로 오해를 하게 된 것이지요. 우리가 불법을 안다고 하는 것도 어쩌면 그렇게 오해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大士光明亦如是(대사광명역여시)하야, 大士= 부살의 광명도 이와 같아서 

有智慧者皆悉見(유지혜자개실견)이요. 지혜가 있는 자는 모두 다 보지만  

凡夫邪信劣解人(범부사신열해인)범부나 외도와 이해 못하는 이들은  

[邪信= 삿된 믿음을 가진 사람이나 劣解= 용열한 이해를 가진 사람, 이해가 아주 얕은 사람= 世衆입니다]

[世衆= 凡夫ㆍ邪信ㆍ劣解人]

於此 光明莫能覩(어차광명막능도)니라. 이 광명에서 볼 수 없으리이다.

[징 소리가 나니까 “해가 간다.”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摩尼宮殿及輦乘(마니궁전급연승), 마니궁전과 가마[輦乘]에  [輦 손수레 련, 가마 련] 

妙寶靈香으로 以塗瑩(묘보영향이도형)이라. 미묘한 보배와 신령한 향기로 밝게 칠함은

有福德者自然備(유복덕자자연비). 복덕이 있는 이에게 자연히 갖춰지는 것이요 

非無德者 所能處(비무덕자소능처)니라. 복덕 없는 이는 능히 처할 곳이 아니듯이 

 

大士光明 亦如是하야대사=보살의 광명도 이와 같아서 

有深智者咸照觸(유심지자함조촉)이어니와, 깊은 지혜 있는 이에게는 닿아 비추지만 

邪信劣解凡愚人(사신열해범우인), 외도나 이해 못하는 범부나 어리석은 이라면 

無有能見此光明(무유능견차광명)이니라. 이 광명을 볼 수 있는 이가 없습니다.    

 

㉻ 光明의 利益

若有聞此光差別하고 能生淸淨深信解하면 永斷一切諸疑網하야 速成無上功德幢이니라

 

若有聞此光差別(약유문차광차별)하고, 만약 어떤 이가 이 광명의 차별함을 듣고서 

能生淸淨深信解(능생청정심신해)하면, 청정= 훌륭하고 깊은 信解= 믿음과 이해를 낼 수 있다면 

 [淸淨深信解= 이치에 맞다.ㆍ도리에 맞다.ㆍ정말 아주 수긍이 가서 믿음과 이해가 깊어지는] 

永斷一切諸疑網(영단일체제의망)하야, 일체의 모든 疑網= 의심의 그물을 영원히 끊고서

速成無上功德幢(속성무상공덕당)이니라. 속히 위없는 공덕의 기치를 세울 것입니다. 

 

⑨主伴이 莊嚴한 三昧

㉮ 三昧의 意味

有勝三昧能出現하니 眷屬莊嚴皆自在라 一切十方諸國土에 佛子衆會無倫匹이니라

 

[主 伴=주와 객.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면 내가 , 그외 나머지는 전부 입니다.

서로가 원융하고 호용하게, 가 됐다가 이 됐다가... 내가 도반한테 가면 그 사람이 가 되고, 내가 이 되고,

그 도반이 나에게 오면 내가 가 되고 그 사람이 이 됩니다. 

여기의 三昧가 갑에서 삼매에 들어서 을에서 삼매에서 나오고, 을에서 삼매에 들어서 병에서 삼매에 나오는 설명이 뜻하는 바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의 실상이 사실은 그렇게 형성 되어있다. 그 어느 것 하나도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작용하는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有勝三昧能出現(유승삼매능출현)하니, 수승한 삼매가 있어 능출현인데 

[能出現= 능히 출현한다= 드러낸다= 환히 나타난다 → 우리 모두에게 있고ㆍ보살에게 있고ㆍ 부처님에게 있고 또 어떻게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법계 현상 그대로가 能出現의 삼매이다 왜냐? 다 드러나 있잖아요. 우리는 우리대로 , 화엄경은 화엄경대로, 천지만물은, 또 산천초목 모두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能出現입니다= 제자리에서 자기 역할을 다하는 입니다 땅 속에 묻혀 있는 돌은 돌대로 흙은 흙대로 묻혀 있으면 묻혀 있는 그대로 그 자리에 자기자리를 견지하고, 자기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겁니다. 표면상 우리 눈에 보이고 안 보이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단순하게 자기중심으로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眷屬莊嚴皆自在(권속장엄개자재). 권속과 장엄이 모두 자재하여 

[眷屬莊嚴皆自在 현재 있는 상태로 자유자재하다는 입니다. 그래 우리가 살면서 그 동안 자기 살아온 지식과 경험과 자기의 그 알량한 습관들을 기준으로 삼아서 다른 사람이 그 기준에 안 맞으면 틀렸느니 잘못됐느니 하면서 사는 그것이 큰 오산입니다. 그냥 있는 대로 그대로 정말 훌륭한 莊嚴이고, 훌륭한 자유자재의 모습입니다.]

一切十方諸國土(일체시방제국토), 일체의 시방 모든 국토의  

佛子衆會 無倫匹(불자중회무윤필)이니라. 불자들 대중모임에 견줄 이가 없으리이다. 

[우리불자가 이렇게 모여 있으니 참으로 짝할 이 없다. 이것이 能出現이라는 삼매인데, 이것은 지금 이루어 지고 있는 법회 그대로가 삼매라는 것입니다. 또 법회가 아니더라도, 법당에서 염불을 하든지 예불을 하든지 그 모습 그대로삼매라는 것입니다.

이 화엄경은 이런 입장으로 가만히 살펴보면요? 우리의 삶의 격을 한껏 높이는 그런 가르침이에요. 우리의 삶의 격을 한껏 높이는 가르침입니다.

人佛思想(인불사상)= 사람이 부처라고 하는 사상을 넘어서 萬有皆佛思想(만유개불사상)이라고 하는 이러한 사상이 화엄경이다. 그처럼 모두 부처의 격으로 상승시키는 가르침이 바로 화엄경입니다. 화엄경이야말로 진짜 우주만유의 존재 원리에 딱 맞는 가르침이라는 것을 느낄 수가 있지요.]

 

㉯ 一處作用

1有妙蓮華光莊嚴호대 量等三千大千界어든 其身端坐悉充滿하니 是此三昧神通力이니라

2復有十刹微塵數인 妙好蓮華所圍遶어든 諸佛子衆於中坐하니 住此三昧威神力이니라

3宿世成就善因緣하고 具足修行佛功德한 此等衆生遶菩薩하야 悉共合掌觀無厭이니라

4譬如明月在星中하야 菩薩處衆亦復然이라 大士所行法如是하니 入此三昧威神力이니라

 

有妙蓮華光莊嚴(유묘연화광장엄)호대, 아름다운 연꽃광명으로 장엄하고 

量等三千大千界(양등삼천대천계)어든, 양을 삼천대천세계와 같게 하여

[아름다운 연꽃 한 송이가 있어,  연꽃의 빛으로 장엄함의 크기가 삼천대천세계와 같다] 

其身端坐悉充滿(기신단좌실충만)하니, 그 몸이 단정히 앉은 채 두루 충만하다면 

[“世界一花(세계일화)” 삼천대천세계 그대로 꽃이고 내가 거기에 端坐하고 있고, 내가 여기에 이렇게 있으니 그대로 삼천대천세계에 充滿한겁니다.

오직 내 의식. 내가 사고하고, 내가 생활하고, 내가 보고 듣고 하는 것이 이 세상에 가득하며, 오직 내가 삼천대천세계에 充滿하고 있을 뿐입니다.]

是此三昧神通力(시차삼매신통력)이니라. 그것은 이 능출현 삼매의 신통력일 것이며, 

[마술 부리듯이 術(술)을 부려서 그런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 현재 있는 모습을 그대가 三昧 神通力입니다.] 

 

復有十刹微塵數(부유십찰미진수), 또 어떤 열 세계 미진수의 

妙好蓮華所圍遶(묘호연화소위요)어든, 아름다운 연꽃에 圍遶= 둘러싸인 채  

諸佛子衆於中坐(제불자중어중좌)하니, 모든 불자대중이 그 가운데 앉았다면  

住此三昧威神力(주차삼매위신력)이니라. 이 삼매의 위신력에 머문 것이리이다

[내가 이 세상에 이렇게 존재하는 나를 이 세상에서 콕 찝어서 빼버린다고 생각해보세요. 도대체 뭐가 존재하겠습니까? 아무 것도 존재하는 것 없습니다.

나 없이도 온 우주 가득히 많이 있는 것 같지만, 그것은 아주 으레적인 중생들의 생각입니다. 조금이라도 깨어있는 생각으로 보면, 내가 이 세상에 가득히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사실 나뿐인 것입니다. 나뿐입니다.

내가 없으면 그 무엇도 없습니다. 우리 불교인들은 이러한 이치를 많이 이야기하고, 또 경전 상에서나 어디서나 자주 들을 수 있어서 사실은 잘 이해하는 내용입니다.]

 

宿世成就善因緣(숙세성취선인연)하고, 숙세에 성취한 좋은 인연으로 

具足修行佛功德(구족수행불공덕), 부처님 공덕을 구족히 수행한다면  

此等衆生遶菩薩(차등중생요보살)하야, 그와 같이 중생들이 보살을 에워싸고

悉共合掌觀無厭(실공합장관무염)이니라. 다 함께 합장하여 우러러 보기를 좋아하리니

[觀無厭= 바라보고 있으니 싫증이 없더라.]

 

譬如明月在星中(비여명월재성중)하야, 마치 밝은 달이 별들 속에 있듯이 

菩薩處衆 亦復然(보살처중역부연)이라. 보살이 대중 속에 처함도 그러하니   

[화엄경 공부하는 우리 불자들특히 프로인 우리스님들은 이러한 모습을 가질 수 있으면 그 영향력이 아주 클 겁니다어디에 가 있든지 그야말로 많고 많은 별 들 가운데 밝은 보름달 같이, 보살이 대중가운데 처해 있는 것이 또한 그와 같다.]

大士所行法如是(대사소행법여시)하니, 대사=보살의 행하시는 법이 이와 같음은  

入此三昧威神力(입차삼매위신력)이니라. 이 삼매에 들어간 위신력이니라. 

 

㉰一切處如然  [如然=또한 같다.]

如於一方所示現에 諸佛子衆共圍遶하야 一切方中悉如如하니 住此三昧威神力이니라

 

如於一方所示現(여어일방소시현)한 방향에서 모든 불자 대중들에 

諸佛子衆共圍遶(제불자중공위요)하야, 에워싸인 것을 나타내 보이듯이  

一切方中에도 悉如是(일체방중실여시)하니, 모든 방향에서도 다 그와 같음은  

住此三昧威神力(주차삼매위신력)이니라. 이 삼매에 머무른 위신력이리이다.

[한 사람의 경우를 설명했다면, 모든 사람도 같은 경우이며, 어느 한 지역에서 그렇다면 다른 지역에도, 一切方中에서도 또한 그와 같다.]

 

⑩ 三昧의 作用無盡

㉮ 總說

有勝三昧名方網이니 菩薩住此廣開示하야 一切方中普現身호대 或現入定或從出이니라

 

有勝三昧名方網(유승삼매명방망)이니, 수승한 삼매가 있어 이름은 방망인데 

[方網 삼매= 그물 網망이고 이 은 지방 방으로 어디든지 해당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여기에 있지만, 다 자기 방위가 있습니다. 북쪽에서 남쪽을 보면 남쪽이고, 북쪽이고 서쪽이고 동쪽이고 앞이고 뒤고, 어떤 사물, 먼지만한 사물이라 하더라도 그 사물이 이 공간속 어딘가 존재하면 그 나름대로 방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와 같이 방위가 없는 데가 없는 겁니다. 그와 같이 얽히고 설켜서 꽉 차있는 것이 그물과 같은 삼매라는 뜻입니다.]

菩薩住此廣開示(보살주차광개시)하야, 보살은 여기에 머물러 넓게 열어 보이고  

一切方中에서 普現身(일체방중보현신)호대, 모든 방향에 널리 몸을 나타내서  

[一切方中에 널리 몸을 나타나되, 어느 한 곳에 있다고 거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이 법당에 있다고 해서 이 법당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도 내 영향력이 미치는 데까지는 모든 곳에 내가 있는 그것이 一切方中 普現身입니다.]

或現入定或從出(혹현입정혹종출)이니라. 혹은 정에 들어가고 혹은 나와 보입니다.  

[혹은 入定 = 선정에 들기도 하고, 혹은 從出선정으로부터 나오기도 하느니라.]

 

㉯ 器世間의 自在

或於東方入正定하야 而於西方從定出하고 或於西方入正定하야 而於東方從定出하며

或於餘方入正定하야 而於餘方從定出하니 如是入出徧十方이 是名菩薩三昧力이니라

 

或於東方入正定(혹어동방입정정)하야, 동쪽에서 바른 정에 들어가 

而於西方從定出(이어서방종정출)하고, 서쪽에서 정으로부터 나오기도 하고 

或於西方入正定(혹어서방입정정)하야, 혹은 서쪽에서 바른 정에 들어가 

而於東方從定出(이어동방종정출)하며, 동쪽에서 정으로부터 나오기도 하며,  

 

或於餘方入正定(혹어여방입정정)하야, 혹은 다른 방향에서 바른 정에 들어가 

[여방= 다른 나머지 방향들, 동ㆍ서ㆍ남ㆍ북ㆍ사유ㆍ상하]

而於餘方從定出(이어여방종정출)하니, 또 다른 방향에서 정으로부터 나오니

如是入出徧十方(여시입출변시방), 이렇듯 들고 남이 시방을 두루하기에 

是名菩薩三昧力(시명보살삼매력)이니라이것을 보살삼매력이라 합니다. 

[우리 삶 그대로가 삼매입니다.

운전삼매ㆍ공부삼매ㆍ식사삼매ㆍ청소삼매ㆍ독서삼매ㆍ바둑삼매ㆍ장기삼매 등 무엇에 집중하고 있을 때 삼매라고 하는 것은 일반적인 해석이지만, 여기에서 말한 三昧, 즉  화엄경에서는 우리 전체의 삶이 그대로 삼매입니다.]

 

[世間중생세간ㆍ기세간ㆍ지정각 세간. 이렇게 세 가지로 나눕니다. 중생세간 = 중생세계. 그 다음에

기세간 = 우리가 살고있는 이 지구, 생활환경. 器= 그릇. 우리가 지구라고 하는 그릇에 담겨있으니까 그 그릇을 잘 보호하고 가꿔야 되는 겁니다. 우리가 사는 환경(자연환경)이 우리가 담겨 있는 그릇입니다. 예를 들어서 환경이 다 무너지면, 그 안에 담겨 있는 우리도 역시 무너지는 겁니다. 환경이 썩으면 우리도 썩고, 환경이 불타면 우리도 다 불탑니다. 요즘 green, 녹색운동이 얼마나 세계적으로 활발합니까? 아주 필요한 겁니다. 이 기세간이라고 하는 의미 하나만 제대로 알면 그런 운동하는데 이론적인 밑받침이 아주 훌륭합니다. 

智正覺世間은 깨달음의 세계입니다. 깨달음의 세계. 지혜로 정각한 세상입니다.].

 

[[3종세간은 동일한 하나의 세계를 3가지 관점에서 바라보아  유형으로 나눈 것이다. 세간(世間)은 무위이자 무루인 출세간(出世間)에 상대되는 개념으로, 유루 · 무루의 유위의 세계를 말한다.

교학적인 면에서 보면, 출세간은 무위의 세계를, 세간은 유위의 세계 말한다. 실천적인 면에서 보면, 출세간은 무루를, 세간은 유루 말한다. 화엄종의 3종세간에서 지정각세간 또는 지정세간은 부처들의 세계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출세간에 해당한다. 힌두철학의 수론학파의 3종세간은 동일한 하나의 세계를 중생  유정의 유형에 따라 구분한 것으로, 불교의 5취 또는 6도의 구분과 맥락을 같이 한다.

불교의 3종세간 가운데 

중생세간(衆生世間) 동일한 하나의 세계를 중생  유정이라는 관점에서 나눈 것으로5 또는 6도에 해당하고, 

기세간 또는 국토세간은 동일한 하나의 세계를 유정이 거주하는 산하대지 등의 물질적 · 자연적 시스템  물리적 우주공간이라는 관점에서 나눈 것으로3계에 해당하고, 

5온세간 또는 지정각세간(智正覺世間) 동일한 하나의 세계를 5온이 공하다는 무아의 이치를 깨닫는다는 관점  '깨달음에 들어가는[入法界]' 길[離世間]의 관점에서 나눈 것으로 4향4 · 9 · 10 · 42현성 · 52 등의 수행계위에 해당한다.]]

 

㉰,智正覺世間의 自在

盡於東方諸國土의 所有如來無數量이어든 悉現其前普親近하야 住於三昧寂不動하고

而於西方諸世界의 一切諸佛如來所에 皆現從於三昧力하야 廣修無量諸供養하며

盡於西方諸國土의 所有如來無量數이어든 悉現其前普親近하야 住於三昧寂不動하고

而於東方諸世界의 一切諸佛如來所에 皆現從於三昧起하야 廣修無量諸供養하니

如是十方諸世界에 菩薩悉入無有餘하야 或現三昧寂不動하고 或現恭敬供養佛이니라

 

盡於東方諸國土(진어동방제국토)동쪽 끝까지의 모든 국토에 

所有如來無數量(소유여래무수량)이어든, 계시는 여래가 무수한데 

[如來 無數量이다.= 산천초목이 그대로 여래이고 두두 물물이 다 여래입니다] 

悉現其前普親近(실현기전보친근)하야, 그 앞에 다 나타내서 친근하되   

住於三昧寂不動(주어삼매적부동)하고, 삼매에 머물러 고요히 부동하며,  

[삼매= 현실그대로ㆍ현상그대로가 모두 삼매라고 이해해야 된다.]

 

而於西方諸世界(이어서방제세계)서방에 있는 모든 세계의 

一切諸佛如來所(일체제불여래소)일체의 모든 부처님 여래의 처소에 

皆現從於三昧力(개현종어삼매력)하야, 삼매로부터 일어나 다 나타내서  

廣修無量諸供養(광수무량제공양)하며, 한량없는 온갖 공양을 널리 닦습니다. 

 

盡於西方諸國土(진어서방제국토) 所有如來無量數(소유여래무량수)이어든,

서쪽 끝까지의 모든 국토에 계시는 여래는 무수한데 

悉現其前普親近(실현기전보친근)하야, 그 앞에 다 나타내서 친근하지만  

住於三昧하야 寂不動하고삼매에 머물러 고요히 부동하며,  

[어디 여래 아닌 것이 없지요. 예를 들어 소동파가 山色豈非淸淨身(산색기비청정신) 표현을 했는데, 소동파가 본 산천초목만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이 아니라, 그 스님이 못 본 한국의 산천초목, 아프리카의 산천초목도, 저 북극이나ㆍ남극의 산천초목도 전부가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이다. 그러니까 悉現其前普親近입니다.]

 

而於東方諸世界 一切諸佛如來所동방에 있는 모든 세계의 일체의 모든 부처님 여래의 처소에 

皆現從於三昧起(개현종어삼매기)하야, 삼매로부터 일어나 다 나타내서  

廣修無量諸供養하니한량없는 온갖 공양을 널리 닦습니다. 

 

如是十方諸世界, 이와 같이 시방의 모든 세계에 

菩薩悉入無有餘(보살실입무유여)하야, 보살은 빠짐없이 다 들어가 

[그대로가 삼매 즉 삶이고, 삼매 즉 생활이다는 뜻입니다.]

或現三昧에서 寂不動(혹현삼매적부동)하고, 혹은 삼매의 고요하고 부동함을 나타내거나  

或現恭敬供養佛(혹현공경공양불)이니라. 혹은 부처님을 공경공양함을 나타냅니다

[혹은 부처님께 공경ㆍ공양함을 나타내느니라. 그러니까 모든 행위가 그대로 삼매입니다.

봉암사가 지금처럼 안정이 되기 이 전, 69년ㆍ70년ㆍ71년 그 무렵에 우리가 정화를 해서 봉암사에 수좌들이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어떤 스님이 대중도 아무도 없고 주지 혼자 그냥 산판을 해서 살았는데 어떤 수좌가 그 위에 암자에서 정진을 좀 하겠다고, 산이 아주 수려하고 좋으니까 옛날 九山禪門(구산선문)의 하나니까 거기서 정진을 하겠다고 양식을 좀 대달라고 그랬습니다. 그 주지가 가만히 생각하니까  ‘저 수좌에게 양식을 대주면 오래 살 것 같고, 오래 살면 내가 마음대로 산판하기가 조금 껄끄러우니까 양식을 안주면 저 수좌가 금방 떠나겠다.’고 계산을 하고 양식을 안 줬습니다.

그래서 이 수좌가 사울에 모 사찰에 가서 2만 5천원, 지금으로 치면 한 2백 5십만 원 쯤 될 그런 돈을 은사 스님한테 양식 값을 얻어가지고 오다가, 봉암사에 들어가려면 으레 점촌을 거칩니다. 점촌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서 잘 아는 도반을 거기서 만났어요. 그 때는 차 한번 타려면 주차장에서 가은까지 들어가는 차를 한 두 시간씩 세 시간씩 기다리는 것이 보통이라고요. 한 지역에 가는 것이 오전에 버스 한 대 있고, 오후에 버스 한 대 있던 그런 정도니까요.

그래가지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아, 그러지 말고 우리가 봉암사 정화를 하는 것이 어떤가?”  누가 농담 삼아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거기에 한 두 사람 모이기 시작해서 “그럼 우리가 봉암사로 들어갈 것이 아니라, 여기 베이스캠프를 김용사에다 차려야 되겠다.”해서 김용사에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큰 방을 얻어서 아는 수좌들 한 사람 두 사람 모이기 시작했어요. 저도 마침 봉암사에 들어가다가 주차장에서, 그 스님들이 장 보러 나온 날 만난겁니다.

  “어디 가느냐?”

  “봉암사에 좀 가보려고 합니다.”

  “봉암사 갈 것이 아니라 지금 문제가 생겼으니까 우리하고 같이 뭉치자.” 한 7ㆍ8명이 모여서 봉암사를 처음에 정화했습니다. 그래서 조금씩 잡히기 시작해서 봉암사 종단종립선원으로 잡히기까지의 그 과정에서 수좌들이 모여서 그야말로 자유롭게, 아주 자유분방하게 정진했지만  ‘그 모습 그대로가 삼매구나.’라고 하는 것을 이 화엄경을 보고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전부 열심히 하는 겁니다. 어떤 때는 하루 종일 밭에서 밭 매는 겁니다. 그러면서 저녁엔 모여서 정진하고요. 또 어떤 사람들은 한 번도 울력 나가지 않아요. 하루 종일 정진만 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래도 그 사람보고 미워도 아니해요. 정진할 사람은 정진하고, 밥 먹을 사람은 밥 먹고, 나무해올 사람 나무해오고, 부엌에서 밥할 사람은 밥하고, 그야말로 여기에 표현한 대로 각자의 삶에 충실한 그것이 그대로 진정한 삼매의 모습이 아닌가?

그야말로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하고 고정해서 그 외에 다른 것은 못 돌아본다고 하면, 그것은 진정한 삼매가 아니지요. 아주 現利(현리)적인, 소승적인 삼매라고 할 수가 있을 진 몰라도, 진정 화엄경 같은 이런 대승적인 삼매는 이러한 모습이다. 하는 내용으로 해석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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