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釋 大智度論釋 三假品 第七 卷第四十一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송성수 번역/김형준 개역
8. 권학품(勸學品)을 풀이함 4
問曰:“菩提心”、“無等等心”、“大心”,有何差別?
묻나니, 보리의 마음인 보리심(菩提心)과 무등등심(無等等心)과 큰 마음의 대심(大心)에는 어떠한 차이가 있는 것입니까?
答曰:菩薩初發心,緣無上道,我當作佛,是名“菩提心”。
답하나니, 보살이 처음 발심하여 위없는 무상도(無上道)를 반연하면서 “나는 부처를 이루리라.”고 하나니, 이를 보리심(菩提心)이라 하며,
“無等”名爲佛,所以者何?一切衆生,一切法,無與等者;是菩提心與佛相似,所以者何?因似果故,是名“無等等心”。是心無事不行,不求恩惠,深固決定。
무등(無等)이란 부처님을 말하는 것이니, 왜냐하면 일체 중생이나 일체법으로써 같을 이가 없기 때문이다.
이 보리심(菩提心)과 부처님은 서로가 비슷하나니, 왜냐하면 원인은 결과를 닮기 때문이니, 이를 무등등심(無等等心)이라 하며, 이 무등등심(無等等心)은 일마다 행하여지지 않음이 없고, 은혜를 구하지도 않으며, 깊고 견고하여 결정적인 것이다.
復次,檀、尸波羅蜜,是名“菩提心”。所以者何?檀波羅蜜因緣故,得大富無所乏少;尸波羅蜜因緣故,出三惡道人天中尊貴;住二波羅蜜果報力故,安立能成大事,是名”菩提心”。
또한 단(檀, 보시)바라밀을 바로 보리심(菩提心)이라 하나니, 왜냐하면 단(보시)바라밀의 인연 때문에 큰 부를 얻어서 모자람이 없게 되며,
시라(尸羅, 지계)바라밀의 인연 때문에 삼악도(三惡道)에서 벗어나 인간과 천상 안에서 존귀하게 머물게 되기 때문이니,
곧 단(檀, 보시) 시라(尸羅, 지계)의 두 바라밀의 과보의 힘 때문에 편히 존립하면서 큰일을 이룩하나니, 이를 보리심(菩提心)이라 하며,
羼提、毘梨耶波羅蜜相,於衆生中現奇特事,所謂人來割肉出髓,如截樹木,而慈念怨家,血化爲乳;是心似如佛心,於十方六道中,一一衆生,皆以深心濟度。
찬제(羼提, 인욕)ㆍ비리야(毘梨耶, 정진)바라밀의 상(相)은 중생들 가운데에서 기특한 일을 나타내는 것이니,
이른바 다른 이가 와서 살을 베고 골수(骨髓)를 내어 주는 것이 마치 나무를 베는 것과 같으며, 원수에게 인자한 마음을 지니므로 피가 변하여 젖이 되나니,
이러한 마음이야말로 흡사 부처님의 마음과 같은 것으로, 시방의 육도(六道) 안에 있는 낱낱의 중생 모두를 깊은 마음으로써 제도하는 것이다.
又知諸法畢竟空,而以大悲能行諸行,是爲奇特!譬如人欲空中種樹,是爲希有。如是等精進波羅蜜力勢,與無等相似,是名“無等等”。
또한 제법이 필경공(畢竟空)임을 알면서도 대비(大悲)로써 능히 모든 행을 행하나니, 이를 기특하다고 하나니, 마치 사람이 공중에 나무를 심으려 하는 것이 희유한 것과 같으니,
이와 같은 등의 정진바라밀의 힘은 견줄 데 없는 무등(無等)과 서로 닮았기에 이를 무등등(無等等)이라 하며,
入禪定,行四無量心,遍滿十方,與大悲、方便合故,拔一切衆生苦;又諸法實相,滅一切觀,諸語言斷,而不墮斷滅中,是名“大心”。
선정에 들어가서 사무량심(四無量心)을 행하여 시방에 두루 차게 하면서, 대비의 방편과 합하기 때문에 일체 중생들의 고통을 구제해 주며,
또한 제법의 실상(實相)으로 일체의 관(觀)이 소멸되고 모든 언어가 끊어졌지만, 단멸(斷滅, 단멸견) 가운데에 떨어지지 않나니, 이을 대심(大心)이라 하는 것이다.
復次,初發心名“菩提心”;行六波羅蜜名“無等等心”;入方便心中是名“大心”。如是等各有差別。
또한 처음 마음을 일으킨 초발심(初發心)을 보리심(菩提心)이라 하고, 육바라밀을 행하는 마음을 무등등심(無等等心)이라 하며, 방편의 마음으로 들어가는 것을 대심(大心)이라 하나니, 이와 같이 각각의 차별이 있는 것이다.
復次,菩薩得如是大智,心亦不高,心相常淸淨故。如虛空相常淸淨,煙雲塵霧假來故覆蔽不淨;心亦如是,常自淸淨,無明等諸煩惱客來覆蔽故以爲不淨;除去煩惱,如本淸淨。
또한 보살은 이와 같은 큰 지혜의 대지(大智)를 얻었으나, 역시 마음이 교만하지 않으니, 그것은 심상(心相)이 항상 청정하기 때문이라. 마치 허공의 모양은 항상 청정하나 연기와 구름과 티끌과 안개가 잠깐씩 덮기 때문에 맑지 못한 것과 같이,
마음 역시도 그와 같아서 항상 스스로 청정한 상자청정(常自淸淨)이거늘, 무명 등의 모든 우연히 얻게 된 객진번뇌(客塵煩惱) 등이 덮기 때문에 청정하지 않게 되나니, 번뇌가 제거되면 본래와 같이 맑아지는 것이다.
行者功夫微薄,此淸淨非汝所作,不應自高、不應念。何以故?畢竟空故。
수행하는 이의 공부(功夫)란 무릇 미미하고 천박하여, 이 청정함은 그대가 짓는 바가 아니므로 스스로 교만하지도 않아야 하고 생각하지도 않아야 하나니, 모든 것이 공한 필경공(畢竟空)이기 때문이다.
問曰:舍利弗知心相常淨,何以故問?
묻나니, 사리불 존자는 마음의 심상(心相)이 항상 청정한 것을 알고 계시거늘 무엇 때문에 물은 것입니까?
答曰:以菩薩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深入深著故,雖聞心畢竟空、常淸淨,猶憶想分別,取是無心相,以是故問:“是無心相心,爲有、爲無?若有,云何言無心相?若無,何以讚歎是無等等心當成佛道?”
답하나니, 보살이 아뇩다라샴먁삼보리의 마음을 일으켜, 깊이 들어가고 깊이 집착하는 까닭에 비록 마음이 필경공이요 상청정(常淸淨)하다 함을 들어도 오히려 생각하고 분별하면서 이 무심상(無心相)을 취하기 때문에 묻기를
“이 무심상(無心相)에는 마음이 있는가, 혹은 없는가?
만약 있다면 어떻게 무심상(無心相)이라 할 수 있으며, 만약 없다면 무엇 때문에 ‘이 무등등심(無等等心)으로 장차 불도를 이루게 된다.’고 찬탄하는 것입니까”라고 한 것이다.
須菩提答曰:“是無心相中畢竟淸淨,有、無不可得,不應難!”舍利弗復問:“何等是無心相?”須菩提答曰:“畢竟空,一切諸法無分別,是名無心相。”
수보리존자가 대답하기를 “이 무심상(無心相)은 필경에 청정하여 있다 없다 할 수 없는 것이니, 힐난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자,
사리불존자가 다시 묻기를 “무엇이 무심상(無心相)인가”라고 하였다.
수보리존자가 대답하기를 “필경공(畢竟空)이어서 일체의 법을 분별하지 않으므로 이를 무심(無心)이라 한다.”고 하였다.
舍利弗復問:”但心相不壞不分別,餘法亦如是?”須菩提荅言:“諸法亦如是。”若爾者,阿耨多羅三藐三菩提亦如虛空,無壞無分別。
사리불존자가 다시 묻기를 “단지 마음의 심상(心相)만을 무너뜨리지 않고 분별하지 않는 것인가? 그 밖의 다른 법 또한 그러한 것인가?”라고 하자,
수보리존자가 대답하기를 “제법 또한 그와 같은 것이다.”고 하자,
“만약 그러하다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또한 허공과 같아서 무너뜨리는 일도 없고 분별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고 한 것이다.
諸菩薩深著阿耨多羅三藐三菩提故,作是念:“諸凡夫法可言虛誑,以不眞實故;菩薩漏未盡故,亦可言不淸淨;云何阿耨多羅三藐三菩提亦復虛誑?”是時心驚不悅!
모든 보살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깊이 집착하기 때문에 생각하기를 “모든 범부의 법은 거짓이라고 말할 수 있으니, 진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보살은 번뇌를 아직 다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역시 청정하지 않다고 말해야 하거늘 어떻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또한 거짓이라고 하겠는가”라고 하면서, 이 때에는 마음으로 놀라고 기뻐하지 않게 되었으니,
須菩提知其心已,思惟籌量:‘我今應爲說實相法不?’思惟已,自念:‘今在佛前,當以實相答;若我有失,佛自當說'
수보리존자가 그러한 마음들을 알고 나서 생각하고 헤아리면서 “나는 이제 그들을 위하여 실상의 법을 말해야겠다.”고 하고,
다시 생각하기를 “지금 부처님께서 앞에 계시니, 실상으로써 대답해야겠다. 만약 나에게 잘못이 있다면 부처님께서 말씀해 주시리라.”고 한 것이다.
重思惟竟,以是故說:“阿耨多羅三藐三菩提雖是第一,亦從虛誑法邊生,故亦是空,不壞不分別相。”以是故,行者當隨阿耨多羅三藐三菩提相行,不應取相自高。
이렇게 거듭 생각하고 나서 말하기를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비록 이것이 으뜸가는 제일(第一)이라 하여도 역시 거짓된 허광법(虛誑法)에서 생기기 때문에 또한 공(空)이요. 무너지지도 않는 불괴상(不壞相)이고 분별되지 않는 불분별상(不分別相)이라.
그러므로 수행하는 이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상(相)을 따라 행하되 그 상(相)을 취하여서 스스로 교만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고 하였다.
爾時,舍利弗讚須菩提言:“善哉!善哉!”佛時默然,聽須菩提所荅,亦可舍利弗所歎。
그 때에 사리불존자가 “참으로 훌륭하십니다.”라며 수보리를 칭찬하자,
부처님께서는 잠자코 계시면서 수보리가 대답하는 바를 듣고 계셨으며, 또한 사리불의 찬탄도 옳다고 여기셨던 것이다.
“從佛口生”者,有人言:婆羅門從梵天王口邊生故,於四姓中第一。以是故,舍利弗讚言:“汝眞從佛口生。”所以者何?見法知法故。
부처님의 입으로부터 났다는 종불구생(從佛口生)이라 함에 대하여,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바라문은 범천왕(梵天王)의 입에서 났기 때문에 네 가지 성바지인 사성(四姓) 가운데에서 첫째이다.”고 하나니,
이 때문에 사리불 존자가 찬탄하면서 “당신은 참으로 종불구생(從佛口生)입니다.”라고 한 것이니, 왜냐하면 법을 보고 법을 아는 견법지법(見法知法)이기 때문이다.
有未得道者亦依佛故得供養,是名“取財分”;又如弊惡子不隨父敎,但取財分。
아직 도를 얻지 못한 미득도자(未得道者)라도 역시 부처님을 의존하기 때문에 공양을 얻게 되는 것을 재물의 재분(財分)을 취하는 것이라고 하나니,
마치 못되고 삿된 아들이 아버지의 가르침은 따르지 않고, 단지 재물만을 취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取法分”者,取諸禪定、根、力、覺、道種種善法,是名“取法分”。得四信故,名爲“法中自信”。
법분(法分, 법)을 취하는 것이란, 모든 선정(禪定) 오근(五根) 오력(五力) 칠각분(七覺分) 팔정도(八正道) 등의 갖가지 선법을 취하는 것을 바로 법분(法分, 법)을 취하는 것이라 하며,
네 가지 믿음인 일념신해(一念信解) 약해언취(略解言趣) 광위인설(廣為人說) 신심관성(信深觀成)의 사신(四信)을 얻기 때문에 “법 가운데에서 스스로 믿는다.”고 한 것이다.
得諸神通、滅盡定等著身中故,是名“身得證”。如舍利弗於智慧中第一,目揵連神足第一,摩訶迦葉頭陁第一,須菩提得無諍三昧中第一。
모든 신통과 멸진정(滅盡定) 등을 얻어서 몸 안에 쌓았기 때문에 “몸소 깨달음을 얻은 신득증(身得證)이다.”고 하나니,
마치 사리불존자는 지혜 가운데에서 제일인 지혜제일(智慧第一)이요, 목건련존자는 신족제일(神足第一)이며,
마하가섭존자는 두타제일(頭陀第一)이요, 수보리존자는 무쟁삼매(無諍三昧)를 얻은 가운데에서 제일인 것과 같은 것이다.
得無諍定阿羅漢者,常觀人心,不令人起諍。是三昧,根本四禪中攝,亦欲界中用。
무쟁정(無諍定)을 얻은 아라한은 항상 사람들의 마음을 자세히 살피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다툼이 일어나지 않게 하나니, 이 삼매는 사선(四禪)의 근본으로 사선에 포섭되는 것이며 또한 욕계(欲界) 안에서 이용되는 것이다.
問曰:般若波羅蜜是菩薩事,何以言“欲得三乘者,皆當習學”?
묻나니, 반야바라밀은 바로 보살의 일이거늘, 어찌하여 “삼승을 얻고자 하는 이는 모두 익히고 배워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까?
答曰:般若波羅蜜中說“諸法實相卽是無餘涅槃”,三乘人皆爲無餘涅槃故精進習行。
답하나니, 반야바라밀에서는 제법의 실상(實相)을 말하는 것이니, 곧 무여열반(無餘涅槃)이다. 삼승의 사람은 모두가 무여열반을 위하여 정진하면서 익히고 행하는 것이다.
復次,般若波羅蜜中種種因緣說空解脫門義。如經中說:“若離空解脫門,無道、無涅槃。”以是故,三乘人皆應學般若。
또한 반야바라밀에서는 갖 가지 인연으로 공해탈문(空解脫門)의 이치를 설하나니, 마치 경에서의 설명과 같으니, 만약 공해탈문을 여의게 된다면 도(道)도 없고 열반(涅槃)도 없는 것이라.
이 때문에 삼승의 사람들 모두가 반야를 배워야 하는 것이다.
復次,舍利弗自說因緣:“於般若波羅蜜中廣說三乘相,是中三乘人應學成。”
또한 사리불 존자는 스스로 인연을 말하면서 “반야바라밀에서는 삼승의 상(相)을 널리 해설하니, 이 가운데에서 삼승의 사람들은 배우고 이루어야만 한다.”고 하였다.
大智度論卷第四十一 終 대지도론 제 41 권을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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