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釋初品中 十八空義 第四十八 卷三十一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48. 초품 중 십팔공(十八空)의 뜻을 풀이함 7
問曰:前五空皆別說,今有爲、無爲空,何以合說?
묻나니, 앞의 다섯 가지의 공에 대하여서는 따로 설명하였으나, 어찌하여 지금의 유위공과 무위공은 합쳐서 함께 설명하시는 것입니까?
答曰:有爲、無爲法相待而有,若除有爲則無無爲,若除無爲則無有爲。是二法攝一切法。行者觀有爲法無常、苦、空等過,知無爲法所益處廣,是故二事合說。
답하나니, 유위법과 무위법은 서로 상대하면서 존재하는 것이니, 만약 유위를 제거하게 되면 무위 또한 없게 되고,
만약 무위를 제거하게 되면 유위 또한 없어지게 되는 것이며,
이 두 가지의 법은 일체법을 포섭하는 것이다.
수행하는 이는 유위법이 무상하고 괴롭고 공한 것이라는 등의 허물을 관찰하게 되면, 무위법의 이익됨이 광대하다는 것을 알게 되나니, 이 때문에 두 가지를 합쳐서 설명하는 것이다.
問曰:有爲法因緣和合生,無自性故空,此則可爾;無爲法非因緣生法,無破無壞,常若虛空,云何空?
묻나니, 유위법은 인연이 화합하여 생기는 것이며 자성(自性)이 없기 때문에 공(空)하다는 것이라 할 수 있지만,
무위법은 인연으로 생기는 법이 아니며, 파괴할 수도 없고 무너지는 것도 아닌, 항상 허공과 같은 것인데 어떻게 공(空)하다 할 수 있습니까?
答曰:如先說,若除有爲則無無爲,有爲實相卽是無爲。如有爲空,無爲亦空,以二事不異故。
답하나니,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으니, 만약 유위를 제거하게 되면 무위 또한 없는 것이며, 유위의 실상이 바로 무위인 것이이다.
유위가 공한 것이라 하게 되면 무위 역시 공한 것이 되나니, 이 두 가지는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復次,有人聞有爲法過罪,而著無爲法;以著故,生諸結使。如阿毘曇中說:“八十九有爲法緣,六無爲法緣,三當分別:
또한 어떤 사람은 유위법의 허물을 듣고서 무위법에 집착하기도 하나니, 집착하기 때문에 모든 번뇌의 결사(結使)가 생기는 것이니, 마치 아비담(阿毘曇, 논장)에서의 설명과 같은 것이다.
89개의 유위법(89종의 번뇌)에서의 연(緣)은 여섯 가지이고
무위법에서의 연(緣)은 세 가지이니, 마땅히 분별해야 하는 것이다.
欲界繫,盡諦所斷無明使,或有爲緣,或無爲緣。何者有爲緣?盡諦所斷有爲法緣使相應無明使。何者無爲緣?盡諦所斷有爲法緣使不相應無明使。
욕계의 속박에서는 진제(盡諦)에서 끊어야 할 무명에 부림을 당하는 무명사(無明使)는 혹은 유위의 연(緣)이기도 하고 혹은 무위의 연(緣)이기도 하니,
어느 것이 유위의 연(緣)인가! 진제(盡諦)에서 끊을 바 유위법이 연(緣)하는 결사와 상응하는 무명사요,
어느 것이 무위의 연(緣)인가! 진제(盡諦)에서 끊을 바 유위법이 연(緣)하는 결사와 상응하지 않는 무명사이다.
色、無色界無明亦如是。”以此結使故,能起不善業,不善業故墮三惡道,是故言“無爲法空”。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의 무명도 역시 그와 같나니, 이 번뇌의 결사(結使) 때문에 착하지 않은 불선업(不善業)을 일으키고, 불선업(不善業) 때문에 삼악도(三惡道)에 떨어게 되는 것이라.
이 때문에 무위법은 공(空)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無爲法緣使:疑、邪見、無明。疑者,於涅槃法中,有耶?無耶?邪見者,若生心言:“定無涅槃" 是邪疑相應無明及獨無明合爲無明使。
무위법이 반연하는 번뇌의 결사(結使)는 의(疑, 의심)과 삿된 소견의 사견(邪見)과 무명(無明)으로,
의(疑, 의심)란 열반의 법 가운데에서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고 의심하는 것이요
사견(邪見)이란 혹 마음으로 “결단코 열반은 없다”고 말하는 것이며,
이러한 사견(邪見)이 의(疑, 의심)과 상응한 무명이거나 혹은 무명 단독이거나 또는 합하여져서 무명사(無明使)가 되는 것이다.
問曰:若云無爲法空,與邪見何異?
묻나니, 만일 무위법이 공(空)하다고 한다면 사견(邪見)과는 어떻게 다른 것입니까?
答曰:邪見人不信涅槃,然後生心言:“定無涅槃法" 無爲空者,破取涅槃相。是爲異。
답하나니, 사견(邪見)을 지닌 사람은 열반을 믿지도 않으면서 뒤에 마음을 내면서 “정해진 열반의 법이란 없는 것이다”고 하나니, 무위공(無爲空)이라 하면 열반의 상(相)을 취하는 것을 깨뜨리는 것이니, 이것이 다른 것이다.
復次,若人捨有爲、著無爲,以著故,無爲卽成有爲。以是故,雖破無爲而非邪見。是名有爲、無爲空。
또한 만약 사람이 유위를 버리고 무위에 집착한다면, 집착한 때문에 무위는 곧 유위가 되어 버리나니, 이 때문에 비록 무위를 깨뜨린다 하여도 삿된 소견이 아니니, 이것을 유위공(有爲空)과 무위공(無爲空)이라 하는 것이다.
“畢竟空”者,以有爲空、無爲空破諸法,令無有遺餘,是名畢竟空。如漏盡阿羅漢,名畢竟淸淨;阿那含乃至離無所有處欲,不名畢竟淸淨。此亦如是,內空、外空、內外空、十方空、第一義空、有爲空、無爲空,更無有餘不空法,是名畢竟空。
필경공(畢竟空, atyantaśūnyatā)이라 함이란 유위공과 무위공으로써 제법을 깨뜨려 일체의 남음이 없게 하는 것을 이름하여 필경공이라 하는 것이다.
마치 번뇌가 다한 아라한을 끝내 청정한 필경청정(畢竟淸淨)이라고 하며
아나함(阿那含)에서부터 무소유처(無所有處)까지의 욕망을 여읜 이를 필경청정(畢竟淸淨)이라고 하지 않는 것과 같이,
이것 역시 그와 같아서 내공(內空)ㆍ외공(外空)ㆍ내외공(內外空)ㆍ시방공(十方空)ㆍ제일의공(第一義空)ㆍ유위공(有爲空) 및 무위공(無爲空)으로써, 그 외에 다시 공하지 않은 불공법(不空法)이 없게 되는 것을 필경공이라 하는 것이다.
復次,若人七世、百千萬億無量世貴族是名畢竟貴,不以一世、二、三世貴族爲眞貴也。畢竟空亦如是,從本已來,無有定實不空者。
또한 만약 사람이 일곱 세상 또는 백천만억의 한량없는 세세 동안 귀족(貴族)이었다면, 이를 필경 귀족이라 하고, 한 세상이나 둘 혹은 세 세상에서만 귀족이었다면 진실한 귀족이라고 하지 않는 것과 같이
필경공(畢竟空) 역시 그와 같아서 본래부터 결정된, 진실하여 공하지 않은 것이 없는 것이다.
有人言:“今雖空,最初不空;如天造物始,及冥初、微塵" 是等皆空!何以故?果無常,因亦無常。如虛空不作果,亦不作因;天及微塵等,亦應如是。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지금은 비록 공이라 하나, 최초에는 공하지 않았나니, 마치 하늘과 물건이 창조된 그 시초와 그리고 명초(冥初)에는 미진과 같았다”고 하나니, 이러한 등도 모두가 공한 것이다.
왜냐하면 결과가 무상(無常)한 것이라면 원인 역시 무상(無常)한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허공은 결과를 짓지도 않고 또한 원인도 짓지 않는 것과 같이, 하늘과 미진 등도 역시 그와 같아야 하는 것이다.
若是常,不應生無常。若過去無定相,未來、現在世亦如是。於三世中無有一法定實不空者,是名畢竟空。
만약 이것이 항상한 것이라면 무상함을 내지 않아야 되는 것으로,
만약 과거에 일정한 모양이 없었다면 미래와 현재의 세상에서도 역시 그와 같으며
삼세(三世) 동안 어떠한 하나의 법도 일정하거나 진실하여 공하지 않는 것이 없나니, 이것을 필경공이라 하는 것이다.
問曰:若三世都空,乃至微塵及一念無所有者,則是大可畏處!諸智慧人以禪定樂故捨世閒樂,以涅槃樂故捨禪定樂;今畢竟空中乃至無有涅槃,依止何法得捨涅槃?
묻나니, 만일 삼세가 온통 공하여 미진과 한 생각까지도 있는 바가 없는 것이라면 이야말로 아주 두려운 것입니다.
모든 지혜로운 사람은 선정락(禪定樂)의 때문에 세간락(世閒樂)을 버리고, 열반락(涅槃樂) 때문에 선정락(禪定樂)을 버리나니, 이제 필경공 안에는 열반마저도 없는 것인데, 어떤 법에 의지하여 열반을 버리게 되는 것입니까?
答曰:有著吾我人,以一、異相分別諸法;如是之人,則以爲畏。如佛說:“凡夫人大驚怖處,所謂無我、無我所"
답하나니, 나라는 아집의 오아(吾我)에 집착하는 사람이 하나다, 다르다 상(相)으로써 제법을 분별하나니, 이와 같은 사람은 두려워 하게 되는 것이니,
부처님께서 “범부의 사람이 크게 놀라고 두려워해야 할 곳은 이른바 나가 없는 무아(無我)이고 내 것이라는 아소(我所)가 없다는 것이다”고 말씀하신 바와 같은 것이다.
復次,有爲法有三世,以有漏法故生著處;涅槃名一切愛著斷,云何於涅槃而求捨離?
또한 3세(世)가 있는 것이 유위법인, 유루(有漏)의 법이기 때문에 집착을 내는 것이나,
열반은 일체의 애착이 끊어진 곳이라 하는데 어떻게 열반에 대하여 버리거나 여의는 일을 구할 수 있겠는가!
復次,如比丘破四重禁,是名畢竟破戒,不任得道!又如作五逆罪,畢竟閉三善道!若取聲聞證者,畢竟不得作佛。畢竟空亦如是,於一切法畢竟空,無復有餘。
또한 비구가 살생 투도 사음 망언의 사중금(四重禁)을 파하는 것을 필경파계(畢竟破戒)라 하는 것과 같나니, 이는 도를 얻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마치 5역죄(逆罪)를 지으면 결국에는 천상 인간 아수라의 삼선도(三善道)를 닫아버리는 것과 같으며,
만약 성문의 깨달음인 증(證)을 취하게 되면 결국에는 부처님이 될 수가 없는 것과 같은 것으로,
필경공 역시 그와 같아서 일체법이 필경은 공(空)이요 더 이상의 남음이 없는 것이다.
問曰:一切法畢竟空,是事不然!何以故?三世十方諸法,乃至法相、法住,必應有實。以有一法實故,餘法爲虛妄;若無一法實者,亦不應有諸虛妄法是畢竟空。
묻나니, 일체법이 필경공이라는 것은 옳지 못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3세(世)와 시방의 제법은 법상(法相)과 법의 머무름인 법주(法住)에 이르기까지 반드시 진실한 것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일법(一法)이라도 진실한 법이 있기 때문에, 그 밖의 다른 법은 허망한 것이 될 수 있지만,
만약 일법(一法)도 진실한 것이 없다면, 마땅히 모든 허망한 법으로서의 필경공 또한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答曰:無有乃至一法實者。何以故?若有乃至一法實者,是法應有,若有爲、若無爲。若是有爲,有爲空中已破;若是無爲,無爲空中亦破。如是世閒、出世閒:若世閒,內空、外空、內外空、大空已破;若出世閒,第一義空已破。色法、無色法,有漏、無漏法等,亦如是。
답하나니, 어떠한 하나의 일법(一法)도 진실한 것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 하나의 법이라도 진실한 것이 있다고 한다면, 이 일법은 마땅히 유위나 무위에 있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 일법이 유위라면 유위공에서 이미 깨뜨렸으며, 만약 이것이 무위라면 무위공에서 역시 깨뜨렸으며,
이와 같이하여, 세간이나 출세간에서도, 만약 세간에 있는 것이라면 내공(內空) ‧ 외공(外空)ㆍ내외공(內外空) 및 대공(大空)에서 이미 깨뜨렸으며,
만약 출세간에서라면 제일의공(第一義空)에서 이미 깨뜨렸으며,
색법(色法)과 무색법(無色法)과 유루법(有漏法)과 무루법(無漏法) 등에서도 역시 이와 같은 것이다.
復次,一切法皆畢竟空,是畢竟空亦空;空無有法故,亦無虛實相待。
또한 일체법은 모두가 필경공(畢竟空)이라, 이 필경공 역시도 공(空)한 것이며
공(空)한 것에는 법이 없기 때문에 역시 허망한 것이라 진실로 서로 상대함이 없는 것이다.
復次,畢竟空者,破一切法令無遺餘,故名畢竟空;若小有遺餘,不名畢竟。若言相待故應有,是事不然!
또한 필경공(畢竟空)이라 함은 일체법을 깨뜨려서 남음이 없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필경공(畢竟空)이라 하는 것이니, 만약 조금이라도 남음이 있다면 필경공이라 하지 못하는 것이다.
만약 “서로가 상대하기 때문에 응당 있어야 하는 것이다”고 말한다면 이는 옳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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