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釋初品中 大慈大悲義 第四十二 卷二十七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42. 초품 중 대자대비(大慈大悲)의 뜻을 풀이함 1
▶ 經. “大慈大悲 當習行 般若波羅密"
▷ 經. 대자(大慈) 대비(大悲)로써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익히고 행하다.
자비慈悲= 크게 사랑하고 가엾게 여기는 마음
대비(大悲)= 중생의 고통을 가엾게 여겨 구제하려는 마음
▶ 論. 大慈大悲者 四無量心中 已分別 今當更略說。
▷ 論. 대자대비(大慈大悲)라 함은 4무량심(無量心) 가운데서 이미 분별하였지만, 지금 다시 간략히 설명하는 것이다.
大慈與一切衆生樂 大悲拔一切衆生苦, 大慈以喜樂因緣與衆生 大悲以離苦因緣與衆生。
대자(大慈)는 온갖 중생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고
대비(大悲)는 온갖 중생의 괴로움을 없애 주는 것이다.
대자(大慈)는 기쁘고 즐거운 인연을 중생에게 주는 것이고
대비(大悲)는 괴로움을 여의는 인연을 중생에게 주는 것이다.
譬如有人 諸子繫在牢獄 當受大罪, 其父慈惻 以若干方便 令得免苦 是大悲, 得離苦已 以五所欲給與諸子 是大慈。如是等種種差別。
비유하자면, 마치 어떤 사람의 여러 아들이 감옥에 갇혀서 장차 큰 죄를 받게 될 때에, 그의 아버지는 사랑과 측은한 생각으로 약간의 방편을 써서 괴로움을 면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대비(大悲)이며,
이 괴로움을 여의게 하고 나서 다섯 가지 바라는 바의 오욕(五欲)을 아들들에게 주는 것이 바로 대자(大慈)이다.
이와 같은 등의 여러 차별이 있는 것이다.
問曰; 大慈大悲如是, 何等是小慈小悲 因此小而名爲大?
묻나니, 대자(大慈)와 대비(大悲)가 그러하다면, 어떠한 것이 소자(小慈) 소비(小悲)가 되는 것입니까?
이 소(小)로 인하여 대(大)라고 이름하였을 것입니다.
答曰; 四無量心中慈 悲名爲小 此中十八不共法 次第說大慈悲名爲大。
復次 諸佛心中 慈悲名爲大 餘人心中名爲小。
답하나니, 사무량심(四無量心) 안에서의 자(慈)와 비(悲)를 소(小)라 하며,
그에 대하여 십팔불공법(十八不共法)에서 차례로 설명하는 대자비(大慈悲)를 일컬어 대(大)라 하며,
또한 모든 부처님의 마음속의 자비(慈悲)를 대(大)라 하고,
그 밖의 사람들의 마음속의 자비(慈悲)는 소(小)라 하는 것이다.
問曰; 若爾者 何以言, “菩薩行大慈大悲”?
묻나니, 만약 그러하다면 무엇 때문에 보살이 대자대비(大慈大悲)를 행한다고 하는 것입니까?
答曰; 菩薩大慈者 於佛爲小 於二乘爲大 此是假名爲大, 佛大慈 大悲眞實最大。
답하나니, 보살의 대자(大慈)라 함은 부처님보다는 작지만 이승(二乘)보다는 큰 것이므로, 이를 임시로 붙인 가명(假名)으로써 대(大)라 하는 것이니, 부처님의 대자대비(大慈大悲)가 진실로 가장 큰 것이다.
復次 小慈 但心念與衆生樂 實無樂事,
小悲 名觀衆生種種身苦心苦 憐愍而已 不能令脫。
大慈者 念令衆生得樂 亦與樂事, 大悲 憐愍衆生苦 亦能令脫苦。
또한 소자(小慈)는 다만 마음으로만 중생에게 즐거움을 줄 것을 생각할 뿐 실제로는 즐거운 일이 없으며,
소비(小悲)는 중생에게 있는 갖가지 몸의 괴로움인 신고(身苦)와 마음의 괴로움인 심고(心苦)를 관찰하여 가엾게 여길 따름이요 거기에서 벗어나게 하여 주지는 못하는 것을 일컫는 것이다.
대자(大慈)는 중생이 즐거움을 얻게 되기를 생각할 뿐만 아니라, 역시 즐거워 할 수 있는 일을 주는 것이며,
대비(大悲)는 중생의 괴로움을 가엾이 여길 뿐만 아니라, 또한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하여 주는 것이다.
復次 凡夫人 聲聞 辟支佛 菩薩 慈悲名爲小, 諸佛慈悲乃名爲大。
또한 범부나 성문이나 벽지불이나 보살의 자비(慈悲)를 일컬어 소(小)라 하고,
모든 부처님이 자비(慈悲)를 일컬어 비로소 대(大)라 하며,
復次 大慈 從大人心中生 十力 四無所畏 四無㝵智 十八不共法 大法中出,
能破三惡道大苦 能與三種大樂, 天樂 人樂 涅槃樂。
또 대자(大慈)는 대인(大人)의 마음속에서 생겨나는 것이니, 십력(十力)ㆍ사무소외(四無所畏)ㆍ사무애지(四無礙智)ㆍ십팔불공법(十八不共法)은 큰 가르침의 대법(大法) 가운데에서 나오는 것으로, 능히 삼악도의 큰 고통을 깨트리고, 능히 세 가지의 큰 즐거움인 천상락(天上樂)과 인락(人樂)과 열반락(涅槃樂)을 주며,
復次 是大慈遍滿十方三世衆生 乃至昆虫 慈徹骨髓 心不捨離。
若三千大千世界衆生 墮三惡道, 若人一一皆代受其苦 得脫苦已 以五所欲樂 禪定樂 世閒最上樂自恣與之 皆令滿足 比佛慈悲 千萬分中不及一分。
何以故?世閒樂欺誑不實 不離生死故。
또한 이 대자(大慈)는 시방삼세의 중생에서 곤충에 이르기까지 그 사랑이 골수에 사무치도록 두루 가득한 것이라 마음이 버리고 떠나지 않는 것이니,
가령 삼천대천세계의 중생들이 삼악도에 떨어졌을 때, 어떤 사람이 각각의 사람을 대신하여 그 고통을 받아 주어, 그들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한 뒤에, 오욕의 즐거움과 선정의 즐거움과 세간의 최상의 즐거움을 그들이 마음껏 즐길 수 있어서 모두 만족할 수 있게 한다 하여도 부처님의 자비에 비교한다면 천만 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나니, 왜냐하면 세간의 즐거움은 속임수와 같은 것이어서 진실하지도 않고 생사를 여의게 하지도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問曰; 法在佛心中 一切皆大, 何以故 但說慈悲爲大?
묻나니, 법(法)은 부처님의 마음속에 있는 것으로, 그 일체가 큰 것이거늘 무엇 때문에 다만 자비만을 대(大)라 하는 것입니까?
答曰; 佛所有功德法應皆大故。
답하나니, 부처님께서 지니신 모든 공덕과 법을 대(大)라 하는 것이다.
問曰; 若爾者 何以但說 慈悲爲大?
묻나니, 만약 그러하다면, 무엇 때문에 자비(慈悲)만을 대(大)라고 하는 것입니까?
答曰; 慈悲是佛道之根本。所以者何?菩薩見衆生老病死苦 身苦心苦 今世後世苦等 諸苦所惱, 生大慈悲 捄如是苦。
답하나니, 자비(慈悲)는 바로 부처님 도= 불도(佛道)의 근본이니, 왜냐하면, 보살은 중생이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과 몸의 고통과 마음의 고통과 이 세상이나 후세에서 받을 고통 등의, 모든 괴로움에 시달리는 것을 보면 대자비(大慈悲)의 마음을 내어서 이러한 고통에서 구제해 주기 때문이다.
然後發心 求阿耨多羅三藐三菩提。
亦以大慈悲力故 於無量阿僧祇世 生死中 心不厭沒,
以大慈悲力故 久應得涅槃 而不取證。
以是故 一切諸佛法中 慈悲爲大, 若無大慈大悲 便早入涅槃。
그러한 뒤에는 발심(發心)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무상정등각)를 구하게 하고,
또한 대자대비(大慈大悲)의 힘으로써 무량한 아승기의 세상에서 나고 죽는 동안에도 싫증내는 마음이 없으며,
대자비(大慈悲)의 힘 때문에 오래전에 마땅히 열반을 얻을 수 있었으나, 그것을 취하여 증득하지 않으니,
이러한 때문에 일체 부처님의 법 중에서 자비(慈悲)를 크다 하는 것이라.
만약 대자대비의 마음이 없었다면 일찍이 열반에 드셨을 것이다.
復次 得佛道時 成就無量甚深 禪定解脫 諸三昧 生淸淨樂 棄捨不受,
入聚落城邑中 種種譬喩 因緣說法, 變現其身 無量音聲 將迎一切
忍諸衆生罵詈誹謗 乃至自作伎樂 皆是大慈 大悲力。
또한 부처님께서는 도를 얻으시어, 무량하고 심히 깊은 선정과 해탈과 모든 삼매를 성취하시어 청정한 즐거움이 우러나오는 것을 버리고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마을이나 성읍 등으로 유행하시면서 갖가지의 비유와 인연으로 설법하시고,
그 몸을 변화하여 무량한 음성으로 일체 중생을 맞이하시고자, 모든 중생들의 욕하고 꾸짖는 매리(罵詈)와 비난하는 비방(誹謗)을 참아내시었으며, 나아가 스스로 중생을 즐겁게 하시기도 하셨나니,
이러한 모두를 대자대비(大慈大悲)의 힘이라 하며,
復次 大慈大悲, 大名非佛所作 衆生名之, 譬如師子大力 不自言力大 皆是衆獸名之。
또한 대자대비(大慈大悲)에서 대(大)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께서 지은 것이 아니고 중생들이 이름붙인 것이다. 비유하자면, 마치 사자는 큰 힘을 지녔지만 스스로가 힘이 세다고 말하지 않으나, 다른 여러 짐승들이 이름 붙인 것과 같은 것이다.
衆生聞佛種種妙法 知佛爲祐利衆生故 於無量阿僧祇劫 難行能行, 衆生聞見是事 而名此法爲 大慈大悲。
중생들이 갖가지 부처님의 묘한 법(法, 가르침)을 듣고, 부처님께서 중생을 도와 이익되게 하기 위하여 무량한 아승기겁 동안 행하기 어려운 일을 능히 행하신 것을 알게 되었으니, 중생들은 이러한 일을 듣고 보면서 이러한 법을 대자대비(大慈大悲)라고 이름하게 된 것이다,
譬如一人 有二親友 以罪事因緣故 繫之囹圄。一人供給所須 一人代死。
衆人言, “能代死者 是爲大慈悲"
佛亦如是 世世爲一切衆生 頭目髓腦盡以布施, 衆生聞見是事 卽共名之爲大慈大悲。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에게 두사람의 친한 벗이 있었으니, 그가 죄를 지은 인연으로 감옥에 갇혀 있게 되었을 때에 한 친구는 필요한 생활용품을 공급하여 주고, 한 친구는 그를 대신하여 죽었다면, 여러 사람들이 말하기를 능히 대신 죽을 수 있는 사람이 대자비(大慈悲)를 행한 이라고 하는 것과 같이,
부처님께서도 역시 그와 같아서, 세세마다 일체 중생들을 위하여 머리와 눈과 골수며 뇌를 모두 보시하셨으니, 중생들이 이러함을 보고 듣고는 다 함께 대자대비(大慈大悲)라고 이름하게 된 것이다.
如尸毘王 爲捄鴿故 盡以身肉代之 猶不與鴿等 復以手攀稱 欲以身代之。
是時地爲六種震動 海水波蕩 諸天香華供養於王。
衆生稱言, “爲一小鳥所感乃爾 眞是大慈大悲!”
마치 시비왕(尸毘王, Śibika)과 같으니, 그는 비둘기의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스스로 몸의 살을 다 떼어주면서 그를 대신하였으나, 오히려 비둘기의 무게에 이르지 못하였으므로 손수 저울을 붙잡고 온몸으로써 그 무게에 이르고자 하시자, 그 때에 땅이 여섯 가지로 진동하였고, 바다에서는 큰 파도가 일었으며, 모든 하늘은 향과 꽃으로 왕에게 공양하였으니,
중생들은 칭송하기를, “한 마리의 작은 새를 위해서도 그렇게 감응하시니, 이는 참으로 대자대비(大慈大悲)이시다”고 한 것과 같은 것이다.
佛因衆生所名 故言大慈大悲。如是等 無量本生 是中悉應廣說。
부처님께 대하여 중생으로 인하여 “대자대비(大慈大悲)”라고 이름하게 된 것이니, 이러한 등의 무량한 일들이 본생경(本生經)에 모두 자세히 설명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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