⑦ 山林

59若見衆會인댄 當願衆生이 說甚深法하야 一切和合하며

60若見大柱인댄 當願衆生이 離我諍心하야 無有忿恨하며

61若見叢林인댄 當願衆生이 諸天及人의    所應敬禮하며

62若見高山인댄 當願衆生이 善根超出하야 無能至頂하며

63見棘刺樹에 當願衆生이 疾得翦除 三毒之刺하며

64見樹葉茂에 當願衆生이 以定解脫로 而爲蔭暎하며

65若見華開인댄 當願衆生이 神通等法이 如華開敷하며

66若見樹華인댄 當願衆生이 衆相如華하야 具三十二하며

67若見果實인댄 當願衆生이 獲最勝法하야 證菩提道하며

68若見大河인댄 當願衆生이 得預法流하야 入佛智海하며

69若見陂澤인댄 當願衆生이 疾悟諸佛의 一味之法하며

70若見池沼인댄 當願衆生이 語業滿足하야 巧能演說하며

71若見汲井인댄 當願衆生이 具足辯才하야 演一切法하며

72若見湧泉인댄 當願衆生이 方便增長하야 善根無盡하며

73若見橋道인댄 當願衆生이 廣度一切를 猶如橋梁하며

74若見流水인댄 當願衆生이 得善意欲하야 洗除惑垢하며

75見修園圃에 當願衆生이 五欲圃中에 耘除愛草하며

76見無憂林에 當願衆生이 永離貪愛하야 不生憂怖하며

77若見園苑인댄 當願衆生이 勤修諸行하야 趣佛菩提니라

 

59. 若見衆會(약견중회)인댄, 대중모임을 보면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說甚深法(설심심법)하야, 심오한 법을 설하여 一切和合(일체화합)하며, 모두가 화합하기를 발원하며,

 

60. 若見大柱(약견대준)댄, 큰 기둥을 보면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離我諍心(이아쟁심)하야, 아쟁심에서 벗어나 無有忿恨(무유분한)하며, 분노와 한이 없기를 발원하며,

 

61. 若見叢林(약견총림)인댄, 우거진 叢林= 숲을 보면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諸天及人(제천급인)의, 모든 천인들의 所應敬禮(소응경례)하며, 공경과 예배를 받기 발원하며,

 

62. 若見高山(약견고산)인댄, 높은 산을 보면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善根이 超出(선근초출)하야, 선근이 아주 뛰어나서

無能至頂(무능지정)하며, 누구도 그 꼭대기에 이를 수 없기를 발원하며,

 

63. 見棘刺樹(견극자수)에, 棘刺樹= 가시나무를 볼 때에는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疾得棘刺樹三毒之刺(질득전제삼독지자)하며, 삼독의 가시를 빨리 刺樹=잘라 버리기를 발원하며,

 

64. 見樹葉茂(견수엽무)에, 잎이 무성한 나무를 볼 때는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以定解脫(이정해탈)로, 선정 해탈로써 而爲蔭暎(이위음영)하며, 그늘 삼기를 발원하며,

 

65. 若見華開(약견화갠)댄, 꽃이 핀 것을 보면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神通等法(신통등법)이, 신통과 같은 법을 如華開敷(여화개부)하며, 꽃처럼 활짝 피우기를 발원하며,

 

66. 若見樹華(약견수환)댄, 나무와 꽃을 보면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의 

衆相如華(중상여화)하야, 여러 상호가 꽃처럼 具三十二(구삼십이)하며, 32 상을 구족하기 발원하며,

 

67. 若見果實(약견과실)인댄, 과일을 보면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獲最勝法(획최승법)하야, 최승법=가장 수승한 법을 얻어 證菩提道(증보리도)하며, 보리도를 증득하기 발원하며,

[果實은 한 나무에 최종 결과이고열매이고,보리도도 수행의결과이고열매입니다.] 

 

68. 若見大河(약견대한)댄, 큰 강을 보면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得預法流(득예법류)하야, 법의 물줄기를 따라, 法流= 법의 흐름에 참예해서

入佛智海(입불지해)하며,  부처님 지혜의 바다에 들어가기 발원하며,

 

69. 若見陂澤(약견피택)인댄, 陂澤= 작은 못, 늪을 보면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疾悟諸佛의 一味之法(질오제불일미지법)하며, 부처님들의 한결같은 법을 빨리 깨우치기를 발원하며,

 

70. 若見池沼(약견지손)댄, 연못을 보면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語業滿足(어업만족)하야, 구업[語業]이 만족하여 巧能演說(교능연설)하며, 능숙히 연설할 수 있기를 발원하며,

[[陂澤피택=작은못, 池沼지소= 조금  못]]

71. 若見汲井(약견급정)인댄, 물 긷는 汲井= 우물을 보면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具足辯才(구족변재)하야, 변재를 구족하여 演一切法(연일체법)하며, 일체법을 연설하기 발원하며,

[물 한 방울이 부처님의 법의 물 한 방울로 인해서 우리의 정신영혼의 생명을 살리는 것으로 많이 표현이 되기 때문에, 물은 부처님의 가르침부처님의 법으로 상징됩니다.]

 

72. 若見湧泉(약견용천)인댄, 湧泉= 솟구치는 샘을 보면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方便이 增長(방편증장)하야, 방편을 증장시켜 善根無盡(선근무진)하며, 선근이 다함 없기를 발원하며,

 

73. 若見橋道(약견교돈)댄, 다리 놓인 길을 보면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廣度一切(광도일체)를, 널리 일체를 제도함이 猶如橋梁(유여교량)하며, 오직 교량 같기를 발원하며,

[일체 중생이 언덕에서 저 언덕으로 건너가게하는, 널리 제도하는 다리가 되기를 원하라.]

 

74. 若見流水(약견류순)댄, 흐르는 물을 보면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得善意欲(득선의욕)하야, 선한 의욕을 얻어 洗除惑垢(세제혹구)하며, 惑垢= 의혹의 때를 씻어 없애기 발원하며,

[물이 힘차게흘러가듯이 善意欲=좋은 일자기 발전을 위하고다른 사람에게 보탬이 되고,뭔가 남에게 도움이 되고,필요한 사람으로서 열심히 살고자하는의욕이 넘쳐 흐르게 하라]

 

75. 見修園圃(견수원포)에, 과수원, 채소밭을 修= 가꾸는 것을 보면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五欲圃中(오욕포중)에, 오욕의 밭에서 耘除愛草(운제애초)하며, 애욕, 애착의 풀을 耘除= 갈아 없애기 발원하며,

[ = 다듬는다ㆍ손질한다. 園圃=동산 圃포 =동산. 耘除운제. 김을 매서 제거하는 것] 

76. 見無憂林(견무우림)에, 無憂林= 근심없는 숲을 보면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永離貪愛(영리탐애)하야, 탐애를 길이 떠나 不生憂怖(불생우포)하며, 憂怖= 근심과 공포가 생기지 않기 발원하며,

[憂怖= 두려워함]

77. 若見園苑(약견원원)인댄, 과수원이나 정원을 보면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勤修諸行(근수제행)하야, 제행을 힘써 닦아

趣佛菩提(취불보리)니라. 불보리에 향하기를 발원하며, =부처님의 깨달음의 길에 나아가기를 원하라

 

⑧ 對人

78見嚴飾人에 當願衆生이 三十二相으로 以爲嚴好하며

79見無嚴飾에 當願衆生이 捨諸飾好하고 具頭陀行하며

80見樂着人에 當願衆生이 以法自娛하야 歡愛不捨하며

81見無樂着에 當願衆生이 有爲事中에 心無所樂하며

82見歡樂人에 當願衆生이 常得安樂하야 樂供養佛하며

83見苦惱人에 當願衆生이 獲根本智하야 滅除衆苦하며

84見無病人에 當願衆生이 入眞實慧하야 永無病惱하며

85見疾病人에 當願衆生이 知身空寂하야 離乖諍法하며

86見端正人에 當願衆生이 於佛菩薩에 常生淨信하며

87見醜陋人에 當願衆生이 於不善事에 不生樂着하며

88見報恩人에 當願衆生이 於佛菩薩에 能知恩德하며

89見背恩人에 當願衆生이 於有惡人에 不加其報하며

90若見沙門인댄 當願衆生이 調柔寂靜하야 畢竟第一하며

91見婆羅門에 當願衆生이 永持梵行하야 離一切惡하며

92見苦行人에 當願衆生이 依於苦行하야 至究竟處하며

93見操行人에 當願衆生이 堅持志行하야 不捨佛道하며

94見着甲冑에 當願衆生이 常服善鎧하고 趣無師法하며

95見無鎧仗에 當願衆生이 永離一切  不善之業하며

96見論議人에 當願衆生이 於諸議論에 悉能摧伏하며

97見正命人에 當願衆生이 得淸淨命하야 不矯威儀하며

98若見於王인댄 當願衆生이 得爲法王하야 恒轉正法하며

99若見王子인댄 當願衆生이 從法化生하야 而爲佛子하며

100若見長者인댄 當願衆生이 善能明斷하야 不行惡法하며

101若見大臣인댄 當願衆生이 恒守正念하야 習行衆善이니라

 

78. 見嚴飾人(견엄식인)에, 엄정히 꾸민 사람을 봄에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三十二相(삼십이상)으로, 32 상으로 훌륭히 以爲嚴好(이위엄호)하며, 장엄되기를 발원하며,

 

79. 見無嚴飾(견무엄식)에, 잘 꾸미지 못한 사람을 보면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捨諸飾好(사제식호)하고, 잘 꾸미기를 버리고 具頭陀行(구두타행)하며, 頭陀行= 두수 갖추기를 발원하며,

[頭陀行= 두수, 전부 떨어버리는 것. 가섭존자가 두타제일”입니다.] 

 

80. 見樂着人(견락착인)에, 즐거움에 집착하는 이를 보면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以法自娛(이법자오)하야, 법으로 즐기며 기쁘게 사랑함을 歡愛不捨(환애불사)하며, 버리지 않기 발원하며,

[돈, 명예 등 세속적인 것에 집착해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을 보면,  ‘모든 중생들이 법으로써 스스로 즐겨서, 법에 집착해서 환희하고 애착해서 버리지 않기를 원하라.] 

 

81. 見無樂着(견무락착)에, 즐거움에 집착없는 이를 보면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有爲事中(유위사중)에, 하는 일 속에서 = 유위의 일 가운데에서

心無所樂(심무소락)하며, 마음에 즐기는 바가 없기를 발원하며,

 

82. 見歡樂人(견환락인)에, 기쁘고 즐거운 이, 환락을 좋아하는 이를 보면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常得安樂(상득안락)하야, 항상 안락하여 樂供養佛(낙공양불)하며, 즐거히 부처님께 공양하기를 발원하며,

 

83. 見苦惱人(견고뇌인)에, 고뇌하는 이를 보면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獲根本智(획근본지)하야, 근본지= 본래 갖춘 지혜를 얻어 滅除衆苦(멸제중고)하며, 온갖 고통을 없애버리기 발원하며,

 

84. 見無病人(견무병인)에, 병들지 않은 이를 보면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入眞實慧(입진실혜)하야, 진실된 지혜에 들어가 永無病惱(영무병뇌)하며, 영원히 병의 고뇌가 없기를 발원하며,

 

85. 見疾病人(견질병인)에, 병든 이를 보면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知身空寂(지신공적)하야, 몸의 공적함을 알아  離乖諍法(이괴쟁법)하며, 괴리와 다툼있는 법에서 벗어나기 발원하며,

[乖諍= 내 마음을 어기는, 내 몸의 순리를 어기 것으로, 거기는 갈등이 있게 되어있습니다. 편안하기를 원하는데 몸은 괴롭운 그것이 다투는乖諍입니다. 혼자서 그렇게 병고 또는 번뇌로 갈등하는 것.] 

 

86. 見端正人(견단정인)에, 단정한 이를 보면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於佛菩薩(어불보살)에, 부처님과 보살께 常生淨信(상생정신)하며, 항상 깨끗한 믿음 내기를 발원하며,

 

87. 見醜陋人(견추루인)에, 누추한 이를 보면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於不善事(어불선사)에, 선하지 못한 일에 

不生樂着(불생낙착)하며, 즐거이 집착하지 않기를 발원하며,[좋지 않은 일에는 樂着하지 말라] 

 

88. 見報恩人(견보은인)에, 은혜에 보답하는 이를 보면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於佛菩薩(어불보살)에, 불보살의 은덕을 能知恩德(능지은덕)하며, 능히 알 수 있기를 발원하며,

 

89. 見背恩人(견배은인)에, 背恩人= 은혜를 저버리는 이를 보면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於有惡人(어유악인)에, 악인에게 不加其報(불가기보)하며, 그에 대한 보복을 하지 말기를 발원하며,

 

90. 若見沙門(약견사문)인댄, 사문을 보면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調柔寂靜(조유적정)하야, 적정을 유연히 조화하여 畢竟第一(필경제일)하며 필경에는 제일가기를 발원하며,

[사문= 수행하는 사람. 바라문교, 힌두교, 불교에도 사문이 있는데, 인도 고대 수행자를 모두 일컬어서 사문이라 표현함.] 

91. 見婆羅門(견바라문)에, 바라문을 보면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永持梵行(영지범행)하야, 범행을 길이 지니고 離一切惡(이일체악)하며, 일체의 악을 여의기를 발원하며,

 

92. 見苦行人(견고행인)에, 고행하는 이를 보면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依於苦行(의어고행)하야, 고행에서 의지하여  至究竟處(지구경처)하며, 구경처=최고의 깨달음에 이르기를 발원하며,

 

93. 見操行人(견조행인)에, 법 집행하는 이를 보면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堅持志行(견지지행)하야, 의지의 행= 뜻과 행을 굳게 지켜서 不捨佛道(불사불도)하며, 불도를 떠나지 않기 발원하며,

[ 잡을 , 절개 . 操行人 절개가 있는 사람]

94. 見着甲冑(견착갑주)에, 갑옷에 투구 쓴 이를 보면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常服善鎧(상복선개)하고, 항상 훌륭한 善의 투구ㆍ善의 갑옷을 입고 

趣無師法(취무사법)하며, 무사법에 나아가기를 벌원하며,[無師法=우리 사람사람이 본래로 갖추고 있는 한 마음의 위대성이 無師法이며 그로 깨달은 것을 無師智(무사지)= 스승 없이 터득한 지혜로 표합니다.] 

 

95. 見無鎧仗(견무개장)에, 갑옷과 무기가 없는 이를 보면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永離一切 不善之業(영리일체불선지업)하며, 영원히 모든 선하지 못한 업을 여의기를 발원하며,

 

96. 見論議人(견론의인)에, 의논하는 이를 보면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於諸議論(어제의론)에, 모든 이론 悉能摧伏(실능최복)하며, 다 꺾어 굴복시킬 수 있기를 발원하며,

[論議人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

97. 見正命人(견정명인)에, 바르게 사는 이를 보면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得淸淨한 命(득청정명)하야, 청정한 삶으로 不矯威儀(불교위의)하며, 위의를 거스르지 않기를 발원하며,

矯= “교정한다.”  때로는 바르다는 뜻, 또는 반대로 거짓이라는 의미도 있으며, 여기는 威儀가 거짓되지 않기를 원하라는 뜻

[[무진의 보살경 제 6권; 또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여덟 가지 성인의 도[八聖:八正道] 또한 다함이 없으니, 어떤 것을 여덟 가지라고 하는가 하면, 바른 견해[正見]와 바른 생각[正思惟]과 바른 언어[正語]와 바른 행위[正業]과 바른 생활[正命]과 바른 정진[正精進]과 바른 의식[正念]과 바른 선정[正定]이 그것입니다.

​​바른 견해[正見] 만약 세간을 벗어남을 보고도 ‘나’라는 소견과 중생∙수명∙양육∙장부라는 소견과 단견(斷見)∙상견(常見)과 있다는 소견[有見]과 없다는 소견[無見]을 일으키지 않고, 또 착하거나 착하지 않은 소견과 착하지도 않고 착하지 않음도 아닌 소견을 일으키지 않으며, 나아가 생사와 열반의 두 가지 모양의 소견을 일으키지 않는것을 바른 견해라 합니다.

바른 생각[正思惟] 생각함에 있어서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과 모든 번뇌 따위를 일으킨다면 이것을 바르지 못하다고 하니, 바른 생각은 이와 같은 등의 일을 생각하지도 않고 일으키지도 않으며, 오직 계율과 선정과 지혜와 해탈과 해탈지견만을 생각하는 것이며, 이 바른 생각은 능히 이러한 것들을 생각하여 계율 등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바른 언어[正語] 무릇 연설함에 있어서 그 몸으로 하여금 초조하거나 괴롭게 하지 않고 또 다른 사람을 손상하지 않고서 이와 같이 착하고 미묘하고 좋은 말을 성취하여 바른 도(道)에 나아가니, 이것을 바른 언어라고 합니다.

바른 행위[正業] 행위가 더러우면 더러운 과보가 있으며, 행위가 깨끗하면 깨끗한 과보가 있고, 행위가 더럽기도 하고 깨끗하기도 하면 더럽기도 하고 깨끗하기도 한 과보가 있으므로 끝내 이러한 행위는 하지 않아야 하며, 행위가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으면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은 과보가 있고, 행위로서 능히 행위를 다할 수 있다면 이러한 행위는 반드시 하여야 하니, 이것은 보살이 의지할 행위로서 이러한 바른 행위를 부지런히 닦는것을 바른 행위라고 합니다.

바른 생활[正命] 성인의 종자와 두타(頭陀)와 위의를 버리지 않고 움직이거나 흔들리지 않아서 모든 간사함이나 아첨 등이 없으며, 세간의 이양(利養)에 끌리지 않으며, 쉽게 길러지고 쉽게 만족하더라도 항상 위의와 예절을 굳게 가지고, 다른 사람의 이익 얻음을 보고서 마음에 불타는 번뇌를 내지 않으며, 자기의 이양에 대해 항상 그치고 만족할 줄을 안다면 이러한 올바른 행은 성인이 칭찬하는 것이므로 바른 생활이라고 합니다.

바른 정진[正精進] 만약 삿됨을 향하여 나아간다면 성인이 찬탄하는 바가 아니며, 이른바 탐욕과 음행과 성냄과 어리석음과 번뇌는 바르지 못한 정진이므로 끝내 하지 않고, 능히 바른 진리와 성인의 도와 적멸과 열반으로 반연하는 바른 길에 들어가는 이것이 바른 정진이므로 부지런히 닦고 행하는 것을 바른 정진이라고 합니다.

바른 생각[正念] 생각을 법에서 놓치지도 않고 움직이지도 않으며, 바르고 곧아서 굽지 않고, 생사의 허물을 보고는 열반에 나아가고, 전일한 마음으로 바른 도를 잊거나 잃어버리지 않는 것을 바른 생각이라고 합니다.

바른 선정[正定] 보살이 산란하지 않고 안정된 모든 법에 머물 때 바른 결정을 이루므로 이것을 바른 선정이라고 합니다. 보살이 이 삼매에 머물러 모든 중생을 위해 해탈을 얻기 때문에 바른 결정을 이루므로 이것을 바른 선정이라고 합니다.

이 여덟 가지 성인의 도는 모두 과거∙미래∙현재의 모든 부처님들의 도이니, 보살이 이것을 깨닫고는 연설하여 널리 보이고 분별하여 나타내서 부처님 도를 성취합니다.]]

 

98. 若見於王(약견어왕)인댄, 왕을 보면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得爲法王(득위법왕)하야, 법왕이 되어 恒轉正法(항전정법)하며, 항상 정법을 굴리기를 발원하며,

 

99. 若見王子(약견왕잔)댄, 왕자를 보면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從法化生(종법화생)하야, 법을 좇아 화생하여  而爲佛子(이위불자)하며, 불자가 되기를 발원하며,

[금강경의 依法出生(의법출생) 법에 의해서 다시 출생했다. 법화경의 法化生= 법의 교화를 받아서 다시 태어났다.]

[불자가 되면 세속적인 차원에서 다른 차원으로 진입한 것이고, 출가 승려가 되면  말할 나위 없이 법으로부터 화생한 것으로 삶이 전혀 달라졌습니다] 

100. 若見長者(약견장잔)댄, 장자를 보면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善能明斷(선능명단)하야, 능히 선을 밝게 판단하여  不行惡法(불행악법)하며, 악법을 행하지 않기를 발원하며,

[明斷 = 아주 분명하게 판단하고ㆍ분명하게 끊을 것은 끊는 것] 

 

101. 若見大臣(약견대신)인댄, 만약 대신을 보면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恒守正念(항수정념)하야, 항상 바른 생각으로 習行衆善(습행중선)이니라. 衆善= 많은 선을 익히고 행하기를 발원하며, 

[보살들이 생각할 수 있는 최상의 인격이 되는 길을 물었고, 그 되고자 하는 목적은 自利利他(자리이타). 내 자신도 이롭고, 또 다른 사람도 이롭게 하는, 上求菩提(상구보리)하고 下化衆生(하화중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뜻에서, 그 방법으로서 141 대원을 이렇게 소개를 하고 있는데요. 願의 숫자는 많지만 열쇠는 딱 하나!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이 아니고, 중생 생각. 중생의 님은 부처님이고, 부처님의 님은 중생입니다.]

 

⑨ 入里入家

102若見城郭인댄 當願衆生이 得堅固身하야 心無所屈하며

103若見王都인댄 當願衆生이 功德共聚하야 心恒喜樂하며

104見處林藪인댄 當願衆生이 應爲天人 之所歎仰하며

105入里乞食에 當願衆生이 入深法界하야 心無障礙하며

106到人門戶에 當願衆生이 入於一切 佛法之門하며

107入其家已에 當願衆生이 得入佛乘하야 三世平等하며

108見不捨人에 當願衆生이 常不捨離 勝功德法하며

109見能捨人에 當願衆生이 永得捨離 三惡道苦하며

110若見空鉢인댄 當願衆生이 其心淸淨하야 空無煩惱하며

111若見滿鉢인댄 當願衆生이 具足成滿 一切善法하며

112若得恭敬인댄 當願衆生이 恭敬修行 一切佛法하며

113不得恭敬에 當願衆生이 不行一切 不善之法하며

114見慚耻人에 當願衆生이 具慚耻行하야 藏護諸根하며

115見無慚耻에 當願衆生이 捨離無慚하고 住大慈道하며

116若得美食인댄 當願衆生이 滿足其願하야 心無羨欲하며

117得不美食에 當願衆生이 莫不獲得 諸三昧味하며

118得柔軟食에 當願衆生이 大悲所熏으로 心意柔軟하며

119得麤澁食에 當願衆生이 心無染着하야 絶世貪愛하며

120若飯食時인댄 當願衆生이 禪悅爲食하야 法喜充滿하며

121若受味時인댄 當願衆生이 得佛上味하야 甘露滿足하며

122飯食已訖에 當願衆生이 所作皆辦하야 具諸佛法하며

123若說法時인댄 當願衆生이 得無盡辯하야 廣宣法要니라

 

102. 若見城郭(약견성곽)인댄, 성곽을 보면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得堅固身(득견고신)하야, 견고한 몸을 얻어서  心無所屈(심무소굴)하며, 마음에 굴하는 바가 없기를 발원하며,

[성곽은 그 안에 마을을 지키는 이니까, 견고한 몸을 얻어 마음에 굴하는 바가 없기를 원하라.]

 

103. 若見王都(약견왕돈)댄, 왕도를 보면, 왕이 있는 = 도시를 보게 되거든,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功德共聚(공덕공취)하야, 공덕을 함께 모아  心恒喜樂(심항희락)하며, 마음이 항상 희락하기를 발원하며,

 

104. 見處林藪(견처임순)댄, 林藪= 숲이 울창한 곳을 보면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應爲天人 之所歎仰(응위천인지소탄앙)하며, 응당 천인의 우러러 찬탄하는 대상이 되기를 발원하며,

 

105. 入里乞食(입리걸식)에, 마을에 들어가 걸식할 때에는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入深法界(입심법계)하야, 법계에 깊이 들어가 心無障碍(심무장애)하며, 마음에 장애가 없기를 발원하며,

 

106. 到人門戶(도인문호)에, 남의 집 문에 이르러서는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入於一切 佛法之門(입어일체불법지문)하며 모든 불법의 문에 들어가기를 발원하며,

 

107. 入其家已(입기가이)에, 그 집에 들어가서는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得入佛乘(득입불승)하야, 佛乘= 부처의 지위에 들어가 三世平等(삼세평등)하며, 삼세에 평등하기를 발원하며,

 

108. 見不捨人(견불사인)에, 버리지 못하는 이를 보면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捨= 보시]

常不捨離 勝功德法(상불사리승공덕법)하며, 항상 수승한 공덕법을 버리고 떠나지 않기 발원하며,

 

109. 見能捨人(견능사인)에, 버릴 수 있는 이를 보면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永得捨離 三惡道苦(영득사리삼악도고)하며, 영원히 삼악도의 고통을 버리고 떠나기를 발원하며,

 

110. 若見空鉢(약견공발)인댄, 빈 발우를 보면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其心淸淨(기심청정)하야, 그 마음이 청정하여  空無煩惱(공무번뇌)하며, 번뇌가 텅비어 없기를 발원하며,

[여기의 淸淨= 텅 비었다ㆍ공하다는 의미]

 

111. 若見滿鉢(약견만발)인댄, 가득 찬 발우를 보면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具足成滿 一切善法(구족성만일체선법)하며, 모든 선법을 구족하여 成滿= 가득 이루기를 발원하며,

 

112. 若得恭敬(약득공경)인댄, 공경을 받는다면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恭敬修行 一切佛法(공경수행일체불법)하며, 모든 불법을 공경하여 수행하기를 발원하며,

 

113. 不得恭敬(부득공경)에, 공경을 받지 못하면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不行一切 不善之法(불행일체불선지법)하며, 일체의 불선법을 행하지 않기 발원하며,

 

114. 見慚耻人(견참치인)에, 두려워하고 부끄러워하는 이를 보면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具慚耻行(구참치행)하야, 두려워하고 부끄러워하는 참치행을 갖추어 

藏護諸根(장호제근)하며, 육근을 잘 간직해 보호하기 발원하며,[慚 부끄러울 참, 耻 부끄러워할 치, 부끄러울 치.] 

[藏護= 아주  갈무리하고 보호하는 것.] 

[우리가 어떤 행위를 함에, 그 행위에 오류가 있고, 부끄러운 일을 하는 것모든根= 6근을 잘 갈무리해서 보호하지 않아서 그런것이지요. 6근을 잘 갈무리해서 잘 지키면, 부끄러워할 일이 아무 것도 없지요.]

[대만 같은 경우는 신도들이 그야말로 護法善神(호법선신)ㆍ外護(외호). 본래 外護입니다.

신도들이 밖에서 승단과 불법을 보호하는 임무를 가진다는 것이 부처님 당시 때부터 정해져 있습니다. 밖에서 스님을 보호하고ㆍ부처님을 보호하고ㆍ불법을 보호하고ㆍ승단을 보호하는 소임이 신도들에게 있는, 외호대중입니다.

護= 지키고 보호하는 겁니다. 저는 대만 불교를 그냥 피상적으로 아는 정도지만, 한국스님들이 대만에 가서 한국처럼 생각하고 식당에 가면, “여기는 스님들이 오시는 식당이 아닙니다.”  “스님들이 가실 수 있는 식당이 저기 있습니다. 안내 해드리겠습니다.”  하고 안내 해준다는 겁니다. 

만약에 한국에서도 신도들이 그렇게 해주면,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스님들이 어디 어줍짢은 짓 하겠습니까? 창피해서도 안 하고 아예 딱 끊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안 갈 데를 갔다면, 종업원이 됐든지ㆍ주인이 됐든지ㆍ누가 됐든지, 아니면 지나가는 사람이라도 “아? 여기는 스님이 오는 곳이 아닙니다.”라고 해주는 것이 외호대중입니다.]

 

115. 見無慚耻(견무참치)에, 참치를 모르는 이를 보면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捨離無慚(사리무참)하고, 부끄러움 모르는 것을 버리고 住大慈道(주대자도)하며, 큰 자비의 도에 머무르기를 발원하며,

 

116. 若得美食(약득미식)인댄, 만약 좋은 음식을 얻으면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羨 부러워할 선]

滿足其願(만족기원)하야, 그 소원을 만족하여  心無羨欲(심무선욕)하며, 마음에 부러워하는 욕심이 없기를 발원하며,

 

117. 得不美食(득불미식)에, 좋은 음식을 얻지 못하면 [不美한 음식= 마음에 안 드는 음식]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莫不獲得 諸三昧味(막불획득제삼매미)하며, 모든 삼매의 맛을 얻기를 발원하며,

 

118. 得柔軟食(득유연식)에, 부드러운 음식을 얻으면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大悲所熏(대비소훈)으로, 훈훈한 대자비로 = 大悲의 훈습한 바로써 

心意柔軟(심의유연)하며, 마음과 뜻이 유연하기를 발원하며,

 

119. 得麤澁食(득추삽식)에, 추하고 거친 음식을 얻으면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麤 거칠 추. 澁 떫을 삽] 

心無染着(심무염착)하야, 마음에 염착이 없어서 絶世貪愛(절세탐애)하며, 세간의 탐애를 끊기 발원하며,

[입에 넣기도 참 거북스러운 음식을 만나면 먹고 싶은 맛이 안 나고 음식에 대한 욕심이 끊어지듯이 마음에 아무 집착과 貪愛가 싹 끊어지게 되기를 원하라.]

 

120. 若飯食時(약반사신)에, 밥을 먹을 때에는  (食:여기선 '사'라고 읽음)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禪悅爲食(선열위식)하야, 선정의 기쁨으로 밥을 삼아 法喜充滿(법희충만)하며, 법의 희열이 충만하기를 발원하며,

 

121. 若受味時(약수미시)에, 맛을 느낄 때에는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得佛上味(득불상미)하야, 부처님의 높은 맛을 느껴 甘露滿足(감로만족)하며, 감로를 만족하기 발원하며,

 

122. 飯食已訖(반사이흘)에, 밥을 먹고 나면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所作皆辨(소작개판)하야, 지은 모든 것을 판별하여 (辨: 여기선 '판'이라고 읽음) 

具諸佛法(구제불법)하며, 모든 부처님 법 갖추기를 발원하며,

 

123. 若說法時(약설법시)에는, 만약 설법할 때에는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得無盡辯(득무진변)하야, 다함 없는 변재를 얻어 廣宣法要(광선법요)니라. 法要=법의 요긴함을 널리 펴기를 발원하며, 

[법의 요긴함을 널리 펴기를 원하라. 우리 스님들은 배운 만치 전하고, 가진 만치 나누어야 됩니다. 요즘 나눔 운동을 많이 하는 풍조가 있는데, 더 활발하게 나눔 운동이 펼쳐져야 되고 아울러 불법을 열심히 펼치는 운동 필요합니다.]  

[ 이를 , 마칠 . 성공 한다ㆍ마친다. 所作皆辦 하는 일을 마쳐서]

 

⑩ 洗浴

124從舍出時에 當願衆生이 深入佛智하야 永出三界하며

125若入水時인댄 當願衆生이 入一切智하야 知三世等하며

126洗浴身體에 當願衆生이 身心無垢하야 內外光潔하며

127盛暑炎毒에 當願衆生이 捨離衆惱하야 一切皆盡하며

128暑退凉初에 當願衆生이 證無上法하야 究竟淸凉이니라

 

124. 從舍出時(종사출시)에, 집을 나설 때에는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深入佛智(심입불지)하야, 부처님 지혜에 깊이 들어가 永出三界(영출삼계)하며, 삼계를 길이 벗어나기 발원하며,

 

125. 若入水時(약입수시)에, 물에 들어 갈 때라면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入一切智(입일체지)하야, 일체지에 들어가서 知三世等(지삼세등)하며, 삼세가 평등함을 알기 발원하며,

 

126. 洗浴身體(세욕신체)에, 몸을 씻을 때에는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身心無垢(신심무구)하야, 몸과 마음에 때가 없어 內外光潔(내외광결)하며, 안팎이 빛나도록 깨끗하기를 발원하며,

 

127. 盛暑炎毒(성서염독)에, 한여름 무더위에는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捨離衆惱(사리중뇌)하야, 온갖 번뇌를 떠나 一切皆盡(일체개진)하며, 모두가 다 다해버리기 발원하며,

[‘이 더위 얼른 갔으면'하는 생각을 하지요. 추위가 없는 것을 보면, 더운 지방에서 만들어진 경전이 틀림없습니다.] 

 

128. 暑退凉初(서퇴량초)에, 여름이 가고 서늘해지면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證無上法(증무상법)하야, 위없는 법을 증득하여 究竟淸凉(구경청량)이니라. 구경에 청량하기를 발원하며, 

 

⑪ 看經禮佛

129諷誦經時에 當願衆生이 順佛所說하야 總持不忘하며

130若得見佛인댄 當願衆生이 得無礙眼하야 見一切佛하며

131諦觀佛時에 當願衆生이 皆如普賢의 端正嚴好하며

132見佛塔時에 當願衆生이 尊重如塔하야 受天人供하며

133敬心觀塔에 當願衆生이 諸天及人의 所共瞻仰하며

134頂禮於塔에 當願衆生이 一切天人이 無能見頂하며

135右遶於塔에 當願衆生이 所行無逆하야 成一切智하며

136遶塔三帀에 當願衆生이 勤求佛道하야 心無懈歇하며

137讚佛功德에 當願衆生이 衆德悉具하야 稱歎無盡하며

138讚佛相好에 當願衆生이 成就佛身하야 證無相法이니라

 

129. 諷誦經時(풍송경시)에, 경전을 읽고 외울 때는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順佛所說(순불소설)하야, 부처님 말씀에 순응하여 總持不忘(총지불망)하며, 총지를 지녀 잊지 않기 발원하며,

 

130. 若得見佛(약득견불)인댄, 만약 부처님을 뵈면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得無碍眼(득무애안)하야, 걸림없는 눈을 얻어  見一切佛(견일체불)하며, 모든 부처님을 보기 발원하며,

 

131. 諦觀佛時(체관불시)에,  부처님을 諦觀= 면밀히 살피고 자세히 볼 때에는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 모두가 

皆如普賢의 端正嚴好(개여보현단정엄호)하며, 보현보살 처럼 단정하고 엄호하기 발원하며, 

 

132. 見佛塔時(견불탑시)에, 불탑을 볼 때에는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尊重如塔(존중여탑)하야, 탑처럼 존중받고 受天人供(수천인공)하며, 천인의 공양 받기를 발원하며,

 

133. 敬心觀塔(경심관탑)에, 공경심으로 탑을 볼 때는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諸天及人(제천급인)의, 모든 천신과 사람들이 다같이 所共瞻仰(소공첨앙)하며, 瞻仰= 우러러 보게 되기를 발원하며,

 

134. 頂禮於塔(정례어탑)에, 탑에 정례할 때에는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一切天人(일체천인)이 無能見頂(무능견정)하며, 어떤 천인도 정수리를 볼 수 없기를 발원하며,

 [부처님 어머니가 부처님 이마를 보려고 하니까, 이마가 높이 33천까지 높아져서 못 봤다는 것이 無能見頂, 중생은 부처의 경지를 못 본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마는 사람의 제일 높은 곳이니까, 부처님의 제일 높은 경지를 아무리 佛母라 하더라도 일반 중생이 볼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탑에 정례할 때는 모든 중생이 전부 부처가 돼서 일체 天人들이 능히 그 이마를 볼 수 없게 되기를 원하라는 것입니다]

 

135. 右遶於塔(우요어탑)에, 탑을 우로 돌 때에는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所行無逆(소행무역)하야, 행에 거슬림이 없어서 成一切智(성일체지)하며, 일체지를 이루기 발원하며,

[전부 오른쪽으로 돌면, 서로 다칠 일도 없고, 마주 칠 일도 없는 그것이 所行無逆입니다.]

 

136. 遶塔三帀(요탑삼잡)에, 탑을 세 바퀴 돌 때는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勤求佛道(근구불도)하야, 불도를 힘써 구하여 心無懈歇(심무해헐)하며, 마음에 해태나 쉼이 없기를 발원하며,

 

137. 讚佛功德(찬불공덕)에, 부처님 공덕을 찬탄할 때는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衆德悉具(중덕실구)하야, 온갖 덕을 다 갖추어 稱歎無盡(칭탄무진)하며, 칭탄이 다하지 않기를 발원하며,

[부처님의 공덕이 저렇게 위대한 것을 우리가 찬탄한다는 것은 부처님은 우리의 모델이지 우리는 아니다. 실지로 우리는 중생이니까, 중생들이 부처님처럼 모든 덕을 다 갖춰서 끝없이ㆍ끝없이 찬탄할 수 있게 되기를 원하라.]

 

138. 讚佛相好(찬불상호)에, 부처님 상호를 찬탄함에는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成就佛身(성취불신)하야, 부처님 몸을 성취하여 證無相法(증무상법)이니라. 위없는 법 증득하기를 발원하며, 

[부처님 잘난 것은 우리의 모델일 뿐이지, 부처님 잘난 것이 우리와 상관이 있다면 부처님의 잘난 것 보고, 저렇게 잘 나기를 원하고, 저렇게 위대하기를 원하고, 저렇게 복덕과 지혜가 갖춰지기를 원하는 이것이 부처님을 친견하고, 부처님께 예배하고, 공경하는 의미 즉 모든 중생이 부처님처럼 되기를 발원하는 것이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는 의미가 됩니다]

 

⑫ 寢息

139若洗足時인댄 當願衆生이 具足神力하야 所行無礙하며

140以時寢息에 當願衆生이 身得安隱하고 心無動亂하며

141睡眠始寤에 當願衆生이 一切智覺하야 周顧十方이니라

 

139. 若洗足時(약세족시)에, 발을 씻을 때에는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具足神力(구족신력)하야, 신족력을 구족하여 所行이 無碍(소행무애)하며, 행(행하는 바)에 걸림이 없기를 발원하며,

 

140. 以時寢息(이시침식)에, 잠에 들 때에는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身得安穩(신득안온)하고, 몸에 안은함을 얻고 心無動亂(심무동란)하며, 마음에 혼란함이 없기를 발원하며,

[하루 종일 정진을 하거나ㆍ기도를 하거나ㆍ여행을 하거나ㆍ농사를 짓거나ㆍ노동일을 하거나 했을 때, 그 하루가 다 끝나고, 잠자리에 들 때 얼마나 편안합니까? 그럴 때 자기 몸 편안한 것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내가 이렇게편안하듯이  ‘모든 중생들이 편안해서 마음에 아무 동요가 없기를 원하라.] 

 

141. 睡眠始寤(수면시오)에, 잠에서 깨어날 때에는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  ,   .] 

一切智覺(일체지각)하야,  모든 지혜를 밝혀서 周顧十方(주고시방)이니라. 시방을 두루 살피기를 발원해야 합니다. 

[오로지 보살, 보현 행자는 중생을 위하고, 중생을 염려하고, 중생을 위해서 발원하는 그마음 하나 뿐이라는 것입니다.]

 

(4) 功德

佛子야 若諸菩薩이 如是用心하면 則獲一切勝妙功德하야 一切世間과 諸天魔梵과 沙門婆羅門과

乾闥婆阿修羅等과 及以一切聲聞緣覺의 所不能動이니라

 

佛子야 若諸菩薩(약제보살)이, 불자여, 만약 모든 보살들이 如是用心(여시용심)하면, 이와 같이 마음을 쓴다면,

則獲一切勝妙功德(즉획일체승묘공덕)하야 곧 일체의 수승하고 미묘한 공덕을 얻어서

[善用其心, 則獲一切勝妙功德(즉획일체승묘공덕) 마음을 잘 쓰는 데 일체 수승하고 묘한 모든 공덕이 다 딸려옵니다.]  

一切世間(일체세간)과 諸天魔梵(제천마범)과, 모든 세간과 여러 하늘, 마군, 범천과

沙門과 婆羅門(사문바라문)과 乾闥婆와 阿修羅等(건달바아수라등)과 及以一切聲聞緣覺(급이일체성문연각)의,

사문, 바라문과 건달바, 아수라 등과 일체의 성문연각들이 

所不能動(소불능동)이니라. 흔들 수 없는 대상이 될 것입니다."

[대심범부ㆍ화엄 행자. 화엄경 공부하는 사람과 성문 연각은 어깨를 나란히 할 수가 없습니다. 하물며 사문ㆍ바라문ㆍ건달바ㆍ아수라ㆍ일체 마ㆍ범 같은 이들이야 따라올 수가 없지요.]

[소승은 내가 어떤 행위를 할 때, 숨을 쉬거나 밥을 먹을 때, 그 행동만 예의주시하라고 가르치는 반면에 화엄경은 어떤 행위를 하든지  “행위 그 자체에 마음 쓰지 말고, 중생에게 연관 시켜서 생각하라.”는 것이 대승불교가 소승불교와 다른 점입니다. 이제 불교가 이렇게 나가야 됩니다.

그래서  “新 大乘佛敎(신대승불교)” 진정으로 새롭게 大乘佛敎를 바라보는, 새로운 불교의 행동지침, 앞으로 불교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이렇게 정리하고 찾아야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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