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釋初品中 八念義第三十六之 餘卷二十二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36. 초품 중 팔념의 뜻을 풀이함② 11
如說; 或有胎中死 或有生時死 或年壯時死 或老至時死。亦如果熟時 種種因緣墮。
마치 이러한 게송과 같으니,
혹은 태(胎) 안에서 죽기도 하고, 혹은 태어날 때에 죽기도 하며
혹은 한창 나이에 죽기도 하고, 혹은 다 늙어서 죽기도 하는 것이
마치 과일이 익어갈 때에, 갖가지의 인연으로 떨어지는 것과 같네.
當求免離此 死怨之惡賊。是賊難可信 時捨則安隱。
假使大智人 威德力無上, 無前亦無後 於今無脫者。
마땅히 이 죽음이란 나쁜 도적을 면하고 여의기를 구해야 하나
이 도적은 신용하기 어려우며, 버릴 때에 곧 안온하여지네.
가령 큰 지혜 있는 사람으로서, 위덕과 힘이 무상(無上)하다 하여도
앞에도 없었고 뒤에 또한 없을 것이며, 지금까지 벗어날 수 있는 이가 없으리.
亦無巧辭謝 無請求得脫 亦無捍挌處 可以得免者 亦非持淨戒 精進可以脫。捍 막을 한, 挌 칠 격,
교묘하게 사죄함을 말하여 청하고 구하여도 벗어날 수 없으며
또한 막고 겨루어서 벗어나고자 하여도, 가이 면할 수 있는 이는 없으며,
또한 청정한 계율을 지니면서 정진한다 하여도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네.
死賊無憐愍 來時無避處。是故行者 不應於無常危脆命中 而信望活。
죽음의 도적은 인정 사정이 없어서, 올 때에는 그를 피할 곳이 없으니,
그러므로 수행하는 이는 무상하고 위태롭고 연약한 목숨을 믿고, 살기를 바라지 말아야 하리.
如佛爲比丘說死相義。有一比丘偏袒白佛, “我能修是死相!”
佛言, “汝云何修?”
比丘言, “我不望過七歲活!”
佛言, “汝爲放逸修死相!”
마치 부처님께서 비구들을 위하여 죽음의 모습인 사상(死相, Maraṇasmṛtisūtra)을 말씀하신 것과 같으니,
한 비구가 가사를 한쪽 어깨에 걷어 올리고는 부처님께 말씀드리기를, “저는 능히 이러한 사상(死相)을 닦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대는 어떻게 닦고 있느냐?”
그 비구가 대답하여, “저는 7년을 더 살게 될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너는 방일하게 사상(死相)을 닦고 있었구나.”
有比丘言, “我不望過七月活" 有比丘言, “七日"
有言, “六、五、四、三、二、一日活"
또 어떤 비구가 말하기를, “저는 7개월을 더 살게 될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고 하였으며,
또 어떤 비구는 “7일”이라 말하였고, 또 어떤 비구들은 “6일, 5일, 4일, 3일, 2일 1일을 더 살게 될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하였다.
佛言, “汝等皆是放逸修死相" 有言, “從旦至食時" 有言, “一食頃"
食頃식경= 한끼 음식을 먹을 만한 정도의 동안
이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너희들 모두가 방일하게 사상(死相)을 닦고 있다”고 하셨으니,
또 어떤 비구는 “아침부터 밥 때까지”라고 말하였으며,
또 어떤 비구는 “한 식경(食頃)까지”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佛言, “汝等亦是放逸修死相!”
一比丘偏袒白佛, “我於出氣不望入 於入氣不望出"
부처님께서는 “너희들도 역시 방일하게 죽음의 형상을 닦고 있다”고 하셨다.
어느 한 비구가 가사를 한 어깨에 메고 부처님께 아뢰기를 “저는 숨을 내쉴 때에 도로 들이 쉬게 될 것을 바라지 않고, 숨을 들이 쉴 때에 도로 내쉬게 될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라고 하였다.
佛言, “是眞修死相 爲不放逸. 比丘, 一切有爲法 念念生滅 住時甚少, 其猶如幻 欺誑無智"
行者如是等 種種因緣念死相。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참으로 이야말로 사상(死相)을 닦는 것이요 방일하지 않는 것이니라.
비구여, 일체의 유위법(有爲法)은 생각생각을 따라 일어나고 없어지는 생멸(生滅)을 거듭하며, 머무름이 심히 적나니, 그것은 마치 허깨비와 같아서 지혜 없이 수행하는 이를 속이느니라”고 하셨다.
이와 같은 갖가지 인연으로 사상(死想)을 염하는 것이다.
問曰; 法是三世諸佛師 何以故念佛在前?是八念云何有次第?
묻나니, 법(가르침)은 바로 삼세의 모든 부처님의 스승이거늘 무엇 때문에 염불(念佛)이 앞에 있으며,
염불(念佛) 염법(念法) 염승(念僧) 염계(念戒) 염사(念捨) 염천(念天) 염출입식(念出入息) 염사(念死)의 팔념(八念)은 그 다음 차례로 되어 있는 것입니까?
答曰; 是法雖是十方三世諸佛師 佛能演出是法 其功大故。譬如雪山中有寶山 寶山頂有如意寶珠 種種寶物多。有人欲上 或有半道還者 有近而還者。有一大德國王 憐愍衆生 爲作大梯, 人民大小 乃至七歲小兒 皆得上山 隨意取如意珠等種種寶物。
답하나니, 이 법(가르침)이 비록 시방 삼세 모든 부처님의 스승이라 할지라도 부처님께서는 능히 이러한 참된 법(가르침)을 들어내어 연설(演說)하시는 그 공덕이 크기 때문이라.
비유하자면 마치 설산(雪山) 중에는 보배산이 있고 이 보배산 꼭대기에는 여의보주(如意寶珠, cintāmaṇiratna)와 갖가지의 보물이 많이 있기에, 어떤 사람은 올라가다가 혹 그 중도에서 돌아오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그 가까이까지 갔다가 돌아오기도 하였으니, 그래서 어느 한 대덕(大德)의 국왕이 중생들을 가엾이 여기어 그들을 위하여 큰 사다리를 만들어 주었다. 국민들은 크건 작건 심지어 일곱 살 먹은 어린아이까지도 모두 산을 올라갈 수 있었으므로 마음대로 여의주 등의 갖가지 보물을 가지고 올 수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佛亦如是 世閒諸法實相寶山 九十六種異道皆不能得 乃至梵天王求諸法實相亦不能得 何況餘人!佛以大慈悲憐愍衆生故 具足六波羅蜜 得一切智慧方便 說十二部經 八萬四千法聚梯, 阿若憍陳如 舍利弗 目揵連 摩訶迦葉 乃至七歲沙彌蘇摩等 皆得諸無漏法, 根力覺道 實相。
부처님도 역시 그와 같으시니, 세간의 모든 법의 실상(實相)의 보배산은 96종의 이도(異道)로서는 모두 얻지 못하는 것이며, 나아가 범천왕(梵天王)에 이르기까지 제법의 실상을 구한다 하여도 역시 구할 수 없는 것이라. 하물며 그 밖의 사람들이겠는가!
부처님은 큰 자비로써 중생을 가엾이 여기시는 까닭에 육바라밀(六波羅密)을 구족하시고 온갖 지혜방편을 얻어 12부경(部經)ㆍ8만 4천의 법 무더기인 법취(法聚)의 사다리를 말씀하셨으니,
아야교진여(阿若憍陣如)와 사리불(舍利佛)과 목건련(目揵連)과 마하가섭(摩訶迦葉)과 일곱 살 사미인 소마(蘇摩, Sumana) 등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무루의 법인 근(根, 사선근四善根)ㆍ역(力, 오력五力)ㆍ각(覺, 칠각분七覺分)ㆍ도(道, 팔정도八正道)의 실상을 얻게 된 것이다.
實相雖微妙 一切衆生皆蒙佛恩故得。以是故 念佛在前 次第念法 次第念僧。僧隨佛語 能解法故第三, 餘人不能解 僧能得解 以是故稱爲寶。人中寶者是佛 九十六種道法中寶者是佛法 一切衆中寶者是僧。
실상(實相)이 비록 미묘하다 하여도 일체중생은 모두가 부처님의 은혜를 입은 덕분에 얻게 되나니, 이러함 때문에 염불이 앞에 있고 그 다음에 차례로 법을 염하는 염법(念法)이고, 그 다음에 승가를 염하는 염승(念僧)이 되는 것이다.
승가는 부처님의 말씀을 따라 법(가르침)을 능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세 번째이며
그 밖의 사람은 이해할 수 없으나, 승가는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일컬어 승보(僧寶)라 하며,
인간 중에서의 보배는 바로 부처님이시요, 96종의 도법(道法) 중에서의 보배란 바로 부처님의 법(가르침)이요, 일체의 무리 중에서의 보배는 바로 승가(僧伽)이라.
復次 以佛因緣故法出世閒 以法因緣故有僧。
行者念, “我云何當得法寶,得在僧數中?當除卻一切麤細身 口惡業" 是故次第說持戒。
또한 부처님의 인연으로 인하여 법이 세간에 출현하였고, 법의 인연으로 승가가 있는 것이라.
수행하는 이는 생각하기를 “나는 어떻게 하여야 법보(法寶)를 얻을 수 있으며, 승가의 무리인 승수(僧數)가 될 수 있는가? 마땅히 일체의 거칠고 세밀한 몸과 입의 나쁜 업= 신구악업(身口惡業)을 제거해야 되리라" 하나니,
그러므로 그 다음으로 지계(持戒)를 말씀하신 것이다.
復次 云何分別有七衆?以有戒故。
欲除心惡 破慳貪故念捨 欲令受者得樂故破瞋恚 信福得果報故破邪見。
또한 어떻게 분별하여 비구 비구니 사미 사미니 식차마나 우바새 우바이의 칠중(七衆)이 있는 것인가? 계율이 있기 때문이다.
마음 속의 악(惡)을 제거하려 하고, 간탐을 무너뜨리려는 까닭에 버림을 염하는 염사(念捨)를 하는 것이며,
받는 이로 하여금 즐거움을 얻게 하려는 까닭에 성냄의 진에(瞋恚)를 깨뜨리고,
믿음의 과보로 복을 얻게 되는 까닭에 사견(邪見)을 깨뜨릴 수 있는 것이다.
住持戒布施法中 則爲住十善道中 離十不善道。十善道有二種果, 若上行者得淨天中生 中行得生天。以是故 戒施次第念天。
지계와 보시의 법 안에 머무르면 곧 십선도(十善道)에 머물게 되는 것이니,
이러함으로 십불선도(十佛善道)를 여의게 되며,
열 가지 착한 길의 십선도(十善道)에는 두 가지의 과보가 있나니, 만약 으뜸으로 수행한 이면 정천(淨天)에 태어나게 되고, 중간 정도 수행한 이면 하늘(천상)에 태어나게 되나니, 이러함 때문에 계율과 보시 다음에 하늘을 염하는 염천(念天)이 되는 것이다.
行禪定故 得二種天。滅諸惡覺 但集善法 攝心一處, 是故 念天次第念安那般那。
선정(禪定)을 수행하는 까닭에 두 가지의 하늘에 태어나게 되어 모든 삿된 생각=각(覺)을 없애고, 다만 착한 법만을 쌓아 마음을 한 곳에 감싸들이어 거두나니, 이러한 때문에 염천(念天)을 하고,
그 다음의 순서로 안나반나(安那般那, ānāpānasmṛti, 염출입식念出入息)를 염하는 것이다.
念安那般那 能滅諸惡覺 如雨淹塵. 見息出入 知身危脆 由息入出 身得存立, 是故念入出息次第念死。
안나반나(염출입식)를 염하면 능히 일체의 삿된 생각=각(覺)을 없애버릴 수 있음이 마치 비가 먼지를 가라앉히는 것과 같으며,
들숨=입식(入息)과 날숨=출식(出息)을 보면서 이 몸의 위태함과 연약함을 알게 되고,
숨을 들이쉬고 내쉼으로 말미암아 이 몸이 존립하게 되는 것이라.
이 때문에 들숨ㆍ날숨을 염하는 염입출식(念入出息)을 한 그 다음에는 죽음을 염하는 염사(念死)를 하는 것이다.
復次 行者或時恃有七念 著此功德 懈怠心生 是時當念死, 死事常在前 云何當懈怠 著此法愛!
如阿那律 佛滅度時說 有爲法如雲 智者不應信 無常金剛來 破聖主山王。是名八念次第。
또한 수행하는 이는 간혹 일곱 가지을 염하는 칠염(七念, 칠각지)이 있음을 생각하고, 이 공덕에 집착하면서 게으른 마음을 내기도 하나니, 이러한 때에는 마땅히 죽음에 대하여 생각하는 염사(念死)를 해야 하나니, 죽음이 항상 앞에 있는데 어떻게 게으르게 그러한 법애(法愛)에 집착하겠는가!
마치 아나율(阿那律, Aniruddha)존자가 부처님께서 멸도(滅度)하실 때에 말한 게송과 같으니,
유위의 법은 마치 구름과 같나니, 지혜로운 이는 마땅히 믿지 말아야 하며,
무상(無常)이라는 금강(金剛)이 와서, 성주산왕(聖主山王, ārṣa. 세존)을 깨뜨리는구나.
이를 여덟 가지 염하는 팔념(八念)의 순서라고 하는 것이다.
問曰; 是說聲聞八念 菩薩八念有何差別?
묻나니, 이는 성문의 팔념(八念)을 설명한 것으로, 보살의 팔념(八念)과는 어떠한 차이가 있는 것입니까?
答曰; 聲聞爲身故 菩薩爲一切衆生故。聲聞但爲 脫老病死故 菩薩爲遍具一切智功德故 是爲差別。
답하나니, 성문은 스스로의 몸을 위하는 까닭이고 보살은 일체 중생을 위하는 까닭이며,
성문은 오직 노병사(老病死)에서 벗어나기 위한 까닭이고 보살은 일체 공덕을 구족하기 위한 까닭이니,
이러함에 차이가 있는 것이다.
復次 佛是中亦說 告舍利弗, “菩薩摩訶薩以不住法 住般若波羅蜜中 應具足檀波羅蜜 乃至應具足八念 不可得故"
初有不住 後有不可得, 以此二印 以是故異。“不住” “不可得義” 如先說 丹注云八念竟.
또한 역시 부처님께서도 이러함을 말씀하시면서 사리불에게 “보살마하살은 머무르지 않는 불주법(不住法, 머물지 않는 노력으로써)으로써 반야바라밀 가운데 머물러 단바라밀을 구족해야 하며, 나아가 팔념(八念)에 이르기까지를 구족해야 하나니, 얻을 수 없는 불가득(不可得)이기 때문이다”고 하셨다.
처음부터 일체법에 머물지 않는 불주(不住)이고, 나중에도 얻을 수 없는 불가득(不可得)이니,
이러한 두 가지의 징표가 다른 것이다.
머물지 않는 불주(不住)와 얻을 수 없는 불가득(不可得)의 뜻은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단주(丹註):8념이 끝나다.)
大智度論卷第二十二 終 대지도론 제 22 권을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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