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釋初品中 三十七品義 第三十一卷第十九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31. 초품 중 삼십칠품(三十七品)의 뜻을 풀이함 7
緣念處中 一念處是色 三念處非色。
三不可見 一當分別身念處, 有可見 有不可見.
可見者 一入. 不可見者 九入及一入少分。
三無對 一當分別 身念處 有對 十入. 無對 一入少分。
연념처(緣念處) 가운데에서, 일념처(一念處)는 색(色)을,
세가지 염처= 三念處(삼념처)는 색(色)이 아닌 것이며,
수(受) 심(心) 법(法)의 세 가지는 볼 수 없는 것이며 일단 분별하자면,
신념처(身念處)에는 볼 수 있는 것이 있고 볼 수 없는 것이 있으니,
볼 수 있는 것이란 1입(一入, 색)이요, 볼 수 없는 것이란 9입(九入) 및 나머지 1입의 일부분= 少分(소분)이라.
세 가지 대할 수 없는 것이 있으니, 일단 분별하자면, 신념처에서 대할 수 있는 것은 10입(十入, 십색입十色入)이며,
대할 수 없는 나머지 1입(一入)이란 의입(意入)이라는 부분이다.
(신념처로는 볼 수 있는 것이 있고 보지 못하는 것이 있어서 12입(入)의 의처(意處)와 법처(法處)를 제외하고 5근(五根)과 5경(五境)을 포함한 10색입(十色入) 또는 10색처(十色處)가운데 하나의 입(入)인 색온(色蘊)은 볼 수 있으나, 보지 못하는 것이란 9입(入)과 하나의 입(入)인 색온(色蘊)의 미세한 부분인 미진(微塵)과 청정(淸淨)입니다.-마하반야바라밀다경)
身念處, 有漏 十入及一入少分. 無漏 一入少分。
신념처에서 유루의 5근(五根)과 5경(五境)의 10입(十入)과 1입(색온色蘊)의 미세한 일부분이요,
무루(無漏)의 의입(意入)의 일부분이며,
受念處, 有漏意相應 是有漏. 無漏意相應 是無漏。心念處亦如是。
수념처에서 유루의 의근(意根, 뜻)과 상응하는 것은 유루요,
무루의 의근(意根, 뜻)과 상응하는 것은 무루이며, 심념처의 경우도 그와 같으며,
法念處 有漏想衆 行衆 是有漏, 無漏想衆 行衆及無爲法 是無漏。
법념처에서 상중(想衆, 상온想蘊)과 행중(行衆, 행온行蘊)은 유루요,
무루의 상중(想衆, 상온想蘊)과 행중(行衆행온行蘊) 및 무위법은 무루이며,
三是有爲 一當分別 法念處 想衆 行衆 是有爲, 三無爲法 是無爲。
생주멸(生住滅)의 세가지 유위(有爲)로 한 가지를 분명하게 분별할 수 있나니,
법념처(法念處)의 상온(想蘊)과 행온(行蘊)이 서로 어우러져서 이렇게 유위(有爲)가 되며,
법념처(法念處)의 공 무상 무작의 삼무위(三無爲)가 서로 어우러져서게 이렇게 무위(無爲) 되는 것이며,
不善身念處 及善有漏身念處 是有報, 無記身念處 及無漏 是無報。
受念處 心念處 法念處 亦如是。
불선업(不善業)에 의한 신념처(身念處)와 더불어 유루(有漏)의 신념처는 이렇게 과보가 있으며,
무기의 신념처와 무루는 과보가 없으니, 수념처ㆍ심념처ㆍ법념처 역시 이와 같으며,
三從因緣生 一當分別 法念處有爲 從因緣生, 無爲不從因緣生。
수(受) 심(心) 법(法)의 셋은 인연에서 생겨나니, 이를 분별하자면,
법념처에서 유위(有爲)는 인연 따라 생겨나고, 무위(無爲)는 인연 따라 생겨나는 것이 아니며,
三三世攝 一當分別 法念處, 有爲是三世攝, 無爲非三世攝。
수(受) 심(心) 법(法)의 셋은 미래 현재 과거의 삼세(三世)에 포섭되나니, 이를 분별한다면,
법념처에서 유위(有爲)는 이렇게 삼세(三世)에 속하며,
무위(無爲)는 삼세(三世)에 속하지 않으며,
一念處攝色 三攝名。
하나의 염처(念處)인 신념처(身念處)는 색(色, 색온色蘊)에 포섭되고
수념처 심념처 법념처의 셋은 가명으로 이름하는 명(名)에 포섭되며,
一念處 內入攝, 受念處 法念處 外入攝, 一當分別 身念處,
或內入攝 或外入攝, 五內入是內入攝, 五外入及 一入少分是外入攝。
하나의 신념처(身念處)는 내입(內入, 12입)에 포섭되고 수념처와 법념처는 외입(外入, 육경)에 포섭되나,
분별하자면, 신념처(身念處)는 혹은 내입(內入, 12입)에 포섭되기도 하고 혹은 외입(外入, 육경)에 포섭되기도 하나니,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의 다섯 가지 내입= 五內入(오내입)은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의 내입(內入)을 포섭하며,
색성향미촉(色聲香味觸)의 다섯 가지 외입(外入) 및 나머지 일입(一入)의 일부분은 외입에 포섭되며,
以慧知。有漏者是斷見 無漏者非斷見。有漏者可斷 無漏者非可斷。
지혜로써 아나니, 유루(有漏, 유위)는 단견(斷見)이고 무루는 단견이 아니며,
유루는 끊을 수 있는 것이나, 무루는 끊을 수 없는 것이라.
修當分別 身念處 善應修, 不善及無記 不應修。受 心念處亦如是。
닦는 법= 修(수)를 분별하자면, 신념처에서는 선(善, 선업)을 마땅히 닦아야 하고, 불선(不善)과 무기(無記)는 닦지 말아야 하나니, 수념처와 심념처도 역시 그와 같으니라.
法念處 有爲善法 應修, 不善 及無記 及數緣盡 不應修。
법념처에서 유위의 선법(善法)은 닦아야 하는 것이나,
불선(不善)과 무기(無記)와 수연진(數緣盡, pratisaṁkhyā-nirodha. 택멸擇滅)은 닦지 말아야 하며,
垢當分別 身念處, 隱沒 是垢, 不隱沒 非垢。受 心 法念處 亦如是。
허물= 垢(구)를 분별하자면, 신념처에 숨어 있는=隱沒(은몰)되어 있는 것이 허물이요,
隱沒(은몰)되어 있지 않은 것은 허물이 아니니, 수념처와 심념처 법념처도 이와 같으며,
三念處是果亦有果, 一當分別 法念處, 或果非有果 或果亦有果 或非果非有果。
數緣盡 是果非有果, 有爲法念處 是果亦有果, 虛空 非數緣盡 是非果非有果。
수념처(受念處) 심념처(心念處) 법념처(法念處)의 3념처는 혹은 결과=果(과)이나 과보를 지니는 有果(유과)이니 분별하자면,
법념처는 혹은 결과이면서 결과가 아니기도 한 果非有果(과비유과)이고,
혹은 결과이면서 또한 과보가 있는 果亦有果(과역유과)이고,
혹은 결과가 아니기도 하고 과보를 가지지 않은 非果非有果(비과비유과)이며,
수연진(數緣盡, 택멸擇滅)은 결과이면서 결과를 가지지 않은 果非有果(과비유과)요,
유위(有爲)의 법념처는 결과이면서 또한 결과를 가진 果亦有果(과역유과)요,
허공(虛空)과 비수연진(非數緣盡, apratisaṁkhyā-nirodha. 비택멸非擇滅)은 결과도 아니며 결과를 가지지도 않은 非果非有果(비과비유과)이다.
三不受 一當分別 身念處, 墮身數是受 不墮身數非受。
수념처(受念處) 심념처(心念處) 법념처(法念處)의 세 가지 불수(不受)를 분별하자면,
신념처(身念處)에서 몸의 인연화합으로 생겨나는 견해에 떨어지게 되는 것은 수(受)이고,
몸의 인연화합으로 생겨나는 견해에 빠지지 않는 것은 불수(不受)이며,
三非四大造 一當分別 身念處 九入及二入少分 四大造, 一入少分 非四大造。
수념처(受念處) 심념처(心念處) 법념처(法念處)는 사대(四大)로 지어지지 않은 것이 있으니, 분별하자면,
신념처에서 9입(九入, 9개의 몸의 구멍)과 안식(眼識)과 신식(身識)의 2입(二入)의 일부는 사대(四大)로 이루어진 것이고,
의식(意識)인 1입(一入)의 일부는 사대(四大)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三念處有上 一當分別, 法念處 有爲及虛空 非數緣盡 是有上, 涅槃是無上。
수념처(受念處) 심념처(心念處) 법념처(法念處)에 위가 있는 것을 분별하자면,
법념처에는 유위와 허공과 비수연진(非數緣盡)이 있으니 나아가야할 위가 있는 것이며, 열반은 위가 없느니라.
四念處 若有漏 是有, 若無漏 是非有。
사념처는 만약 유루이면 유(有)이고, 무루이면 비유(非有)이라.
二念處相應因, 一念處不相應因, 一當分別。受念處 心念處 相應因,
身念處 不相應因, 法念處 想衆及相應行衆是相應因 餘殘是不相應因。
수념처(受念處)와 심념처(心念處), 2념처는 마음과 인연에 상응하는 인=相應因(상응인)이요,
신념처(身念處), 1념처는 인연과 마음에 상응하지 않는 인=不相應因(불상응인)을 분별하자면,
수념처와 심념처는 相應因(상응인)이요, 신념처는 不相應因(불상응인)이며,
법념처에서 상온(想蘊)은 행온(行蘊)과 더불어 서로 어우러지므로 상응인(相應因)이 되고 그 밖의 나머지는 不相應因(불상응인)이며,
四念處分 攝六善法 六善法 亦攝四念處分。不善分 無記分 亦如是隨種相攝。
4념처의 각 부분이 여섯 가지 선법= 六善法(육선법, 육바라밀)을 포섭하고,
六善法(육선법, 육바라밀) 또한 4념처의 각 부분을 포섭하나니,
불선분(不善分)과 무기분(無記分)도 그와 같아서 종류에 따라 서로 포섭하며,
三漏攝一念處分 一念處分 亦攝三漏。有漏 攝四念處分, 四念處分 亦攝有漏。
無漏攝四念處分, 四念處分 亦攝無漏。
욕루(慾漏) 유루(有漏) 무명루(無明漏)의 세 가지의 三漏(삼누)가 심념처(心念處), 1념처분에 포섭되고,
심념처(心念處), 1념처분이 다시 三漏(삼누)에 포섭되며,
유루(有漏)가 사념처의 각 부분에 포섭되고, 사념처의 각 부분이 다시 유루에 포섭되며,
무루(無漏)가 사념처의 각 부분에 포섭되고, 사념처의 각 부분이 다시 무루에 포섭되나니,
如是等義 '千難中' 廣說。
이와 같은 이치들을 '천난품(千難品)'에서 자세히 설명하였느니라.
사념처(四念處, catvāri smṛty-upasthānāni, 빨리어 cattāro sati-paṭṭhānā)는 사념주(四念住), 사의지(四意止), 사지념(四止念), 사념(四念), 사념수관(四念隨觀)이라고도 한다.
사념처는 인도의 초기불전에서 확립된 것으로서 불교명상법의 기초를 이룬다. 이에 대한 가장 방대하고도 자세한 서술은 『디가 니까야(Dīgha Nikāya)』의 『마하사띠파타나(Mahāsatipaṭṭhāna, 大念處)』경에 보인다. 초기불전 안에서도 이미 드러나고 있지만 부파불교의 수행체계에서 37보리분법(菩提分法)의 첫 번째 수행도로 등장하고 있어 사념처의 위상을 충분히 알 수 있다. 이 점은 니까야에서 팔정도의 일곱 번째인 정념(正念)을 사념처로 설명하고 있는 사유체계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동아시아 불교에서는 ‘지관(止觀)’ 또는 ‘오정심관(五停心觀)’ 등의 체계로서, 사념처관의 일부가 수용 또는 계승되고 있어서 현재 남방불교 국가에서 사념처를 매우 중요시하고 있는 모습과는 다른 전개 양상을 보인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원측의 『인왕경소(仁王經疏)』와 원효의 『금강삼매경론(金剛三昧經論)』 등에서 나타나고 있듯이 통일신라시대에 이미 사념처에 대해 주목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①신념처(身念處)=사념처의 첫 번째인 신념처란 ‘몸’에 대해 주의력을 불러 일으켜 그것을 지속시켜나감으로써 몸의 움직임을 면밀히 주시하거나, 시체 등이 썩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부정(不淨)을 연상하여 몸에 대한 애착을 제어하고 다스리는 수행을 말한다. 여기에 ‘호흡의 주시’를 비롯해서 모두 9가지 또는 14가지 종류의 관찰 대상이 제시되어 있다. 즉, ‘호흡, 신체 동작, 행동, 32가지 신체요소, 사대(四大), 시체의 부패, 시체가 썩어 없어짐, 갖가지 뼈의 모습, 흩어진 갖가지 뼈의 모습 등이다. 이들 신념처의 하나하나를 수행하는 과정에 대해 니까야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하나의 상용구로 제시하고 있다.
“이와 같이 몸에서 몸을 안으로 따라가며 관찰하여 머무르고, 몸에서 몸을 밖으로 따라가며 관찰하여 머무르며, 몸에서 몸을 안팎으로 따라가며 관찰하여 머무른다. 몸에서 발생하는 현상을 따라가며 관찰하는 자로 머물거나, 몸에서 소멸하는 현상을 따라가며 관찰하거나, 몸에서 생성 · 소멸하는 현상을 관찰하는 자로 머문다.” 이 내용은 다음의 수념처(受念處), 심념처(心念處), 법념처(法念處)의 설명에서도 동일한 서술이 나타나기 때문에, 사념처 수행의 면모를 이해하는 데 하나의 지침을 제공하고 있다.
②수념처(受念處)는 감각기관에 의해 발생하는 ‘느낌’에 대해서 주의를 기울여 그것의 정체를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인지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서도 모두 아홉 가지 종류가 제시된다. 즉,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 육체적인 즐거움, 정신적인 즐거움, 육체적인 괴로운 느낌, 정신적인 괴로운 느낌,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육체적인 느낌,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정신적인 느낌’이다. 따라서, 수념처는 마음에서 괴로움을 느끼게 되는 지점을 인지하는 연습을 통해서 괴로움의 정체를 제대로 파악하려는 목적을 지니고 있다.
③심념처(心念處)는 순간순간 마음에 생겨난 갖가지 상태를 그때그때 그대로 정확히 인지할 것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 대상은 모두 열여섯 가지에 이른다. 즉, ‘탐욕이 있는 마음, 탐욕이 없는 마음, 성냄이 있는 마음, 성냄이 없는 마음,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 어리석음이 없는 마음, 침체된 마음, 산만한 마음, 커진 마음, 커지지 않은 마음, 위가 있는 마음, 위없는 마음, 집중된 마음, 집중이 안 된 마음, 벗어난 마음, 벗어나지 못한 마음’이 이에 해당한다. 여기서는 변화무쌍하게 마음속에서 전개되는 갖가지 양상이 어떻게 발생하고 소멸하는지를 관찰함으로써 마음 상태에서 ‘늘 그러하지 않음’(無常)을 발견해내는 능력의 갖춤을 지향하는 것이다.
④법념처(法念處)의 내용으로는 다섯 가지가 제시된다. 즉, 오개(五蓋), 오온(五蘊), 육입처(六入處), 칠각지(七覺支), 사성제(四聖諦)이다. 그런데 ‘법(法, dhamma)’은 매우 다의적인 용어이지만 여기서는 주의력을 불러 일으켜서 관찰하는 대상 즉, 감관(感官) 대상으로서의 ‘현상 또는 존재’에 해당한다. 즉, 마음속에 인지되는 감관 대상이 마음에 어떠한 움직임을 낳게 되는지를 관찰하는 수행으로서의 면모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칠각지나 사성제는 그 자체가 하나의 실천수행에 해당하므로 법념처는 그 밖의 실천수행도를 종합하고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법념처는 ‘현상 또는 존재’ 속에서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자아가 없음’(無我)의 지혜를 터득하는 것이 목적이 된다.-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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