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初品中 住王舍城釋論 第八 卷第四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김성구
 번역/김형준 개역 경량 엮음 참조

大智度 初品中 菩薩釋論 第八 卷第四

8. 초품 보살(菩薩) 풀이함-2

 

佛答曰(불답왈) 이에 대해 부처님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셨다.

滅者卽是不可量(멸자즉시불가량) 破壞因緣及名相(파괴인연급명상)

번뇌의 불길이 꺼진=滅(적멸)이란 헤아릴 수 없는 것으로, 인연과 이름과 모습을 파괴하나니


一切言語道已過(일체언어도이과) 一時都盡如火滅(일시도진여화멸)
온갖 언어의 길을 이미 초월하여, 일시에 다함이 마치 불이 꺼짐과 같네. 

如阿羅漢(여아라한) 一切名字尚斷(일제명자상단) 何況菩薩能破(하황보살능파)

一切諸法(일체법고) 知實相 得法身(지실상 득법신) 而不斷耶(이부단야)!

아라한 조차도 온갖 이름을 다 끊었으니, 하물며 보살은 온갖 법을 끊고 실상을 알고 법신(dharmakāya)을 얻었거늘 어찌 이름을 끊지 못하랴.

 

以是故(이시고) 摩訶衍四衆中(마하연사중중) 別說菩薩(별설보살)
이러한 까닭으로 마하연의 네 가지 대중(사부대중) 가운데서 보살을 따로 말하는 것이니라. 

問曰(문왈) 何以故(하이고) 大乘經初 菩薩衆(대승초경 보살중) 聲聞衆兩說(성문중양설)

聲聞經初(성문경초) 獨說比丘衆(독설비구중) 不說菩薩衆(불설보살중)?
묻나니, 무슨 까닭으로 대승경전의 첫머리에서는 보살 대중과 성문 대중을 다 말하는데, 성문경전의 첫머리에서는 비구 대중만을 말하고 보살 대중은 말하지 않는 것입니까?


答曰(답왈) 欲辯二乘義故(욕변이승의고)

답하나니, 이승에 대한 정의(이치)를 변별하기 위해서이니, 

 

佛乘及聲聞乘(불승급성문성) 聲聞乘陜小(성문성협소) 佛乘廣大(불승광대)

聲聞乘自利自爲(성문승자리자위) 佛乘益一切(불승잉일체)
불승(buddhayāna)과 성문승(śrāvakayāna) 가운데 성문승은 협소하고 불승은 광대하며, 성문승은 스스로를 이롭게 하고 스스로를 위하고, 불승은 일체를 이익되게 하나니,

(성문승(聲聞僧)은 수행하는 이들의 안목과 도량이 좁고 불승(佛乘)은 안목과 도량이 넓고 크며성문승은 스스로의 똑똑함으로 오직 스스로를 위할 뿐이고 불승은 일체중생에게 이로움을 더해주는 것입니다.)

불승(佛乘)= 승(乘)은 실어 옮긴다는 뜻으로 중생들을 싣고 불과(佛果)에 이르게 하는 교(敎). 즉 부처님이 설(說)하신 교법을 가리키는 말이다.
대승(大乘)은 모든 수레 중에 가장 위대하며, 그것은 보살들이 타고 가는 수레이다. 그들은 아무 것도 사용함 없이 모든 것을 사용한다. 그리고 그들은 여행함이 없이 하루 종일 여행한다. 그러한 것이 바로 부처들의 수레이다. 경에 이르기를 "수레 없음(無乘)이 바로 부처의 수레(佛乘)이다"라고 했다.
일승(一乘, Ekayāna)의 교의에서는 불교의 진실한 가르침은 오직 한 가지이며, 그 가르침에 의해서 어떤 사람도 성불(成佛)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삼승(성문ㆍ연각ㆍ보살) 위에 일승(一乘)이 있다. 이 일승을 불승(대승)이라 한다.
'법화경' 등에 의해서, 성문ㆍ연각의 2승도 역시 최종적으로는 부처가 돼야 할 것이며, 삼승의 길을 구별하는 것은 사람의 자질이나 능력에 따라 가르치는 방편설(方便說)에 불과하며 진실로는 오직 하나의 불승(佛乘) 즉 하나의 깨달음의 길만이 있을 수 있다는 견해가 강조됐다.-아미산

復次(부차) 聲聞乘 多說衆生空(성문승 다설중생공) 佛乘說 衆生空 法空(불승설 중생공 법공)

또한 성문승은 대개 중생이 공함을 설하고, 불승은 중생의 공함과 법(일체법)의 공함을 겸하여 말씀하니니,

 

如是等種種分別(여시등종종분멸) 說是二道故(설시이도고)

摩訶衍經聲聞衆(마하연경 성문중) 菩薩衆兩說(보살중양설)

이와 같이 갖가지로 분별해서 두 가지의 길을 설명하려는 까닭에 마하연(대승)의 경전에서는 성문의 대중과 보살의 대중을 겸하여 말한다.

(이와 같이 여러 가지로 분별하여 삼승(三乘)이라 하거니와이렇게 두 가지 길()로 인하여 분별이 있게 된 까닭에 대승(大乘)의 경()에서는 성문의 무리와 보살의 무리라고 둘로 나누어 말하는 것입니다.)

 

如讚摩訶衍偈中說(여찬마하여게중설)
마치 마하연(대승)을 찬탄한 게송의 말씀과 같으니,

得此大乘人(득차대승인) 能與一切樂(능여일체락)

이 대승을 얻은 사람은 능히 모두에게 즐거움과
利益以實法(이익이실법) 令得無上道(영득무상도)
이로움과 진실한 법으로써 위없는 도법을 얻게 하도다. 

(제법(諸法)의 실상(實相)을 터득한 대승(大乘)의 사람은 능히 일체의 중생에게 즐거움을 나눠주고

제법(諸法)의 실상(實相)에 대한 참된 가르침()으로 이로움을 더해주어 무상도(無上道)를 터득하게끔 한다.)


得此大乘人(득차대승인) 慈悲一切故(자비일체고)

이 대승을 얻은 사람은 일체를 사랑하고 가여워하는 까닭에
頭目以布施(두목이보시) 捨之如草木(사지여초목)
머리나 눈까지를 보시하니 버리기를 마치 초목과 같이 하네. 

(제법(諸法)의 실상(實相)을 터득한 여기 대승(大乘)의 사람은 자비심(慈悲心)으로 일체중생을 대하는 까닭에

눈과 머리까지도 보시하거니와 몸 버리기를 마치 초목(草木)처럼 여깁니다.)


得此大乘人(득차대승인) 護持淸淨戒(호지청정계) 

이 대승을 얻은 사람은 청정한 계를 호지하기를
如犛牛愛尾(여이우애미) 不惜身壽命(불석신수명)
마치 이우(남방의 소)가 꼬리를 아끼듯 하니,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네. 

(법(諸法)의 실상(實相)을 터득한 여기 대승(大乘)의 사람은 청정(淸淨)함을 감싸고자 계()를 지니거니와

마치 설산(雪山)의 니우()가 칼 같은 꼬리를 핥아 베인 혀에서 나온 피를 사랑하여 핥다가 죽듯, 몸과 목숨 남에게 기꺼이 내주기를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이우(犛牛)= 남방에 사는 소의 일종으로 자신의 긴 꼬리를 매우 소중히 여긴다고 한다. 여기에서는 마치 이우가 꼬리를 소중히 다루듯이 계를 지킬 것을 의미한다.


得此大乘人(득차대승인) 能得無上忍(능득무상인)

이 대승을 얻은 사람은 위없는 인=無上忍(무생법인)을 얻었나니
若有割截身(약유할절신) 視之如斷草(시지여단초)截 끊을 절
몸을 찢거나 자르더라도 마치 풀을 끊는 것같이 여기네. 

(제법(諸法)의 실상(實相)을 터득한 대승(大乘)의 사람은 능히 위없는 무생법인(無生法忍)을 터득하였거니와

만약 몸의 살을 베고 뼈를 잘라낼지라도, 보기를 마치 풀 베어 내는 것처럼 여깁니다.)


得此大乘人(득차대승인) 精進無厭惓(정진무염권)

이 대승을 얻은 사람은 정진(정진바라밀)함에 싫증내거나 게으르지 않고
力行不休息(영행불휴식) 如抒大海者(여서대해자)抒 풀 서 
힘써 행하여 쉬지 않으니, 마치 대해를 헤엄쳐 건너는 이와 같네.

 

得此大乘人(득차대승인) 廣修無量定(광수무량정),

이 대승을 얻은 사람은 한량없는 선정=定을 널리 닦아서
神通聖道力(신통성도력) 淸淨得自在(청정득자재)
신통과 聖道=깨달음의 힘을 얻고 청정하여 자재함을 얻었네. 


得此大乘人(득차대승인) 分別諸法相(분별제법상)

이 대승을 얻은 사람은 모든 법의 실상을 분별하여서
無壞實智慧(무괴실지혜) 是中已具得(시중이구득)
진실한 지혜를 깨뜨리지 않나니, 이러함을 통하여 이미 (믿음과 지혜를) 갖추어 얻었네. 


不可思議智(불가사의지) 無量悲心力(무량비심력)

가히 헤아릴 수 없는 지혜와 한량없는 연민의 힘으로
不入二法中(불입이법중) 等觀一切法(등관일체법)
치우친 두 법에 들지 않고 온갖 법=一切法을 균등하게 관찰하네. 

비심(悲心)= 중생이 오도(五道)를 오가며 여러 가지 몸과 마음의 고통을 겪게 되는 것을 한없이 가엾고 안쓰럽게 생각하는 마음.


驢馬駝象乘(려마타상승) 雖同不相比(수동불상비)

驢 당나귀 려, 馬 말 마, 駝 낙타 타

나귀ㆍ낙타ㆍ말ㆍ코끼리 등의 탈 것들은 비록 같은 듯하나 비교할 수 없나니
菩薩及聲聞(보살급성문) 大小亦如是(대소역여시)
보살과 성문승도 그와 같아서 크고 작음을 비교할 수 없네. 

 

大慈悲爲軸(대자비위축) 智慧爲兩輪(지혜위양륜)

대자비로 축을 삼고, 지혜로써 두 바퀴를 삼고

精進爲駛馬(정진위타마) 戒定以爲銜(계정이위함)銜 재갈 함
정진으로 좋은 말을 삼고, 계와 정(선정)으로 재갈을 삼네.


忍辱心爲鎧(인욕심위개) 摠持爲轡勒(총지위비륵)

鎧 갑옷 개, 轡 고삐 비, 勒 굴레 륵

忍辱=참는 마음은 투구요, 총지(dhyāna)는 고삐이니
摩訶衍人乘(마하연인승) 能度於一切(능도어일체)
마하연의 사람이 타는 승(乘)은 능히 일체를 건너게 하네. 

(대승의 사람들 모두 태워서, 능히 일체중생 무여열반의 나루터 건널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총지(總持 Dhārai)= 참된 가르침(善法)을 통해 오욕(五慾)에 물들어 산란한 마음에 부림당하지 않고, 삿된 분별 일어나지 않게끔 방편의 힘으로 바른 지혜를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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