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初品中 住王舍城釋論 第八 卷第四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김성구
 번역/김형준 개역 경량 엮음 참조

大智度 初品中 菩薩釋論 第八 卷第四

8. 초품 중 보살(菩薩)을 풀이함-1

 

▶經. 復有菩薩摩訶薩(부유보살마하살)
▷經. 또한
 보살마하살들이 있으니

菩薩摩訶薩(부유보살마하살. bodhisattva-mahāsattva)= ‘깨달음을 추구하는 위대한 유정’ 혹은 ‘깨달음의 소질을 지닌 위대한 유정’ 이라는 뜻. 소승의 수행자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스스로 불도를 추구하면서 타인을 구제하고 깨달음으로 이끄는 대승의 수행자.

▶論. 問曰(문왈) 若從上數(약종상수) 應先菩薩(응선보살) 次第比丘 比丘尼(차제비구 비구니)

優婆塞 優婆夷(우바새 우바이) 菩薩次佛故(부살차불고)

▷論. 묻나니, 위에서 부터 헤아리면 먼저 보살을 들고 차례로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의 순이 되어야 하니, 보살은 부처님의 다음이기 때문이라.

 

若從下數(약종하수) 應先優婆夷(응선우바이) 次第優婆塞(차제우바새)

比丘尼 比丘 菩薩(비구니 비구 보살) 今何以先說比丘(금하이선설비구)

次三衆 後說菩薩(차삼중 후설보살)?
만약 아래에서 부터 헤아린다면 마땅히 우바이를 먼저 들고 우바새ㆍ비구니ㆍ비구ㆍ보살의 순서가 되어야 하거늘, 어찌하여 먼저 비구를 말하고 다음에 세 대중을 든 뒤에 마지막에 이르러서 보살을 말하는 것입니까? 


答曰(답왈) 菩薩雖應次佛(보살수응차불) 以諸煩惱未盡故(이제번뇌미진고)

先說阿羅漢(선설아라한)

답하나니, 보살은 비록 부처님의 다음이지만, 번뇌가 다하지 못했으므로 먼저 아라한을 말한 것으로,

 

諸阿羅漢(제아라한) 智慧雖少而已成熟(지혜수소이이성숙 )諸菩薩 智慧雖多(제보살 지혜수다) 

而煩惱未盡(이번뇌미진) 是故先說阿羅漢(시고선설아라한)

아라한들은 비록 지혜가 적으나 이미 성숙하였고, 보살들은 비록 지혜는 많으나 번뇌가 다하지 못했으므로 아라한을 먼저 말한 것이다.

 

佛法有二種(불법유이종) 一 秘密(일 비밀) 二 現示(이 현시)
佛法=부처님의 참된 가르침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비밀스런 것=秘密(abhisaṃdhidharma)이요, 또 하나는 드러내 보이는 것=現示(prakāśita-dharma)이니,


現示中(현시중) 佛 辟支佛 阿羅漢(불 벽지불 아라한) 皆是福田(개시복전)

以其煩惱盡無餘故(이기번뇌진무여고)

現示=드러내 보이는 것 가운데 부처님과 벽지불과 아라한 모두가 복전이 되나니, 그들은 번뇌가 다하여 남음이 없기 때문이며,

 

秘密中(비밀중) 說諸菩薩得無生法忍(설제보살득무생법인) 煩惱已斷(번뇌이단)

具六神通(구육신통) 利益衆生(이익중생)

秘密=비밀스런 것 가운데 설하는 보살은 무생법인을 얻고 번뇌를 이미 단절하였으며, 6신통을 모두 갖추어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을 말한다. 

 

무생법인(無生法忍. anutpattika dharma-kṣānti)= 일체법의 생함이 없는 이치를 인정하고 안주함. 곧 일체법이 불생불멸임을 확신하는 것.

신통(神通)=불교의 신통에 대한 분류로는 삼명(三明) · 삼달(三達) · 삼종시도(三種示導) · 삼통력(三通力) · 오종통(五種通) · 육신통(六神通)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널리 채택되고 있는 것은 삼명과 육신통이다. 삼명은 숙명명(宿命明) · 천안명(天眼明) · 누진명(漏盡明)이며, 이것은 곧 육신통의 여섯 가지 중의 세 가지이기도 하다.

 6신통(神通)= 신족통(神足通), 천안통(天眼通), 천이통(天耳通), 타심통(他心通), 숙명통(宿命通), 누진통(漏盡通)

 

以現示法故(이현시법고) 前說阿羅漢(전설아라한) 後說菩薩(후설보살)

부처님의 참된 가르침=을 통해 現示=드러내 보이는 까닭에 먼져 아라한을 말하고 나중에 보살을 말하는 것이며,


復次(부차) 菩薩以方便力(보살이방편력) 現入五道(현입오도) 受五欲 引導衆生(수오욕 인도중생)

또한 보살은 방편(upāya-kauśalya)의 힘으로써 현전에서 5도에 들어가 5욕(안이비설신)을 감수하며 중생을 인도함에, 

(또한보살은 방편의 힘으로 오도(五道)에 대해 마음이 반야바라밀과 어우러져서 훤히 꿰뚫어볼 수 있게 되어 중생을 무여열반의 나루터로 인도하여도 오욕(五欲)을 누리고 있거늘만약 아라한보다 위에 자리하게 되면 모든 하늘과 세간의 사람이 의심하여 괴이쩍게 생각하게 되는 이러한 까닭으로 나중에 말하였던 것입니다.)

오도(五道)= 천상계(天上界)를 제외한 인간·아수라·축생·아귀·지옥계

 

若在阿羅漢上諸天(약재아라한상제천) 世人當生疑怪(세인당생의괴) 是故後說(시고후설)
만일 그가 아라한의 위에 있다면 모든 하늘들이나 세상 사람들이 마땅히 의괴심을 내게 되리라. 그러므로 뒤에 말하는 것이다. 

問曰(문왈) 在阿羅漢後可爾(재아라한후가이) 何以乃在優婆塞 優婆夷後(하이내재우바새 우바이후)?
묻나니, 아라한의 뒤에 있는 것은 그렇다 하겠으나, 어찌하여 우바새와 우바이의 뒤에 있는 것입니까? 

 

答曰(답왈) 四衆雖漏未盡(사중수루미진) 盡在不久故(진재불구고) 通名聲聞衆(통명성문중)

若於四衆中閒說(약어사중중간설) 菩薩者 卽不便((보살자 즉불편)

답하나니, 네 무리(사부대중)는 번뇌=漏(유루)가 다하지는 못하였으나 머지않아 다하게 될 것이므로 통틀어서 성문의 무리=聲門衆(śrāvakasaṃgha)라 하며, 만일 네 무리(사부대중)의 중간에서 보살을 말하면 곧 불편해지는 것이며, 

 

如比丘尼(여비구니) 得無量律儀故(득무량율의고) 應次比丘後(응차비구후)

在沙彌前(재사미전) 佛以儀法不便故(불이의법불편고) 在沙彌後(재사미후)

비구니의 경우, 무량한 율의을 받아 지니기에 비구의 뒤에 두고 사미의 앞에 놓으니, 부처님께서는 의식의 법=儀法이 불편하게 됨으로 사미 뒤에 비구니를 있게 하신 것이다. 

 

此諸菩薩亦如是(차제보살역여시) 雖應在學人三衆上(수응재학인삼중상)

以不便故 在後說(이불편고 재후설)

이 보살들 역시 마찬가지로 마땅히 학인은 세 무리 위에 있어야 하지만, 불편하기 때문에 뒤에 있다고 말한 것이다.

(이처럼 모든 보살도 이와 같아서 제법(諸法)이 “공(空)”하여서 삼세에 걸쳐 치우치지 않는 것임을 배우는 사람이 세 무리의 대중들보다 위일지라도 불편한 까닭에 맨 나중에 말하는 것입니다.)

 

復次 有人言(부차 유인설) 菩薩功德(보살공덕) 智慧超殊(지혜초수)

阿羅漢 辟支佛 是故別說(아라한 벽지불 시고별설)

또한 어떤 이는 말하기를 '보살의 공덕과 지혜는 아라한이나 벽지불을 초월한다. 이러한 이유로 따로 말한다'고 하엿다.

 

問曰(문왈) 聲聞經中 但說四衆(성문경중 단설사중) 此中何以別說菩薩衆(차중하이별설보살중)?

묻나니, 성문의 경전=聲門經에서는 네 가지 대중(사부대중)만을 말하고 있으나 여기에서는 어찌해서 달리 보살 대중을 말하는 것입니까?


答曰(답왈) 有二種道(유이종도) 一 聲聞道(일 성문도) 二 菩提薩埵道(이 보리살타도)

답하나니, 두 가지 도가 있으니, 하나는 성문의 도요, 둘은 보리살타(菩提薩埵bodhisattva)의 도이니, 

 

比丘(비구) 比丘尼(비구니) 優婆塞(우바새) 優婆夷(우바이) 四衆是聲聞道(사중시성문도)

菩薩摩訶薩是菩提薩埵道(보살마하살시보리살타도)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청신사)ㆍ우바이(청신녀)의 네 가지 대중(사부대중)은 성문의 도(성문의 도를 구하는 무리)요, 보살마하살은 보리살타의 도(불도를 구하는 무리)이다. 

 

以是故聲聞法中(이시고성문법중) 經初無(경초무) '佛在某處某處住(불재모처모처주)

爾所菩薩俱(이소보살구)' 但言(단설) '佛某處某處住(불모처모처주) 與爾所比丘俱(여이소비구구)'

이러한 이유로 성문의 법을 설한 경의 초두에는 부처님이 어느 곳, 어느 장소에 계시면서 보살과 함께하셨다는 경우는 없고, 다만 부처님이 어느 곳, 어느 장소에 머무시면서 비구와 함께하셨다고만 말하고 있느니라.


如說(여설) 佛在波羅柰(불재바라내) 與五比丘俱(여오비구구)

예컨대 부처님께서 바라내(바라나시, Bārāṇasi)에서 다섯 비구와 함께하셨다고 말하는 것과 같으니, 

 

佛在伽耶國中(불재가야국중) 與千比丘俱(여천비구구)

또는 '부처님께서는 가야국(Gayā, 佛陀伽那 Buddha Gayā)에서 일천의 비구와 함께하셨다'는 것과

 

佛在舍婆提(불재사바제) 與五百比丘俱(여오백비구구)

혹은 '부처님께서는 사바제(슈라바스티, Śrāvasti)에서는 5백의 비구와 함께하셨다”고 말하는 것이라.

 

如是種種經初(여시종종경초) 不說與菩薩若干人俱(불설여보살약간인구)

이와 같이 갖가지 경의 첫머리에서 '약 천명의 보살과 함께하였다'고 말하지는 않는 것이다.


問曰(문왈) 諸菩薩二種(제보살이종) 若出家 若在家(약출가 약재가)

묻나니, 보살에는 두 종류가 있으니, 집을 떠난 이=出家자와 집에 머무는 이=在家자이며, 

(모든 보살에 2()이 있나니출가한 이와 출가하지 않은 이입니다.)

 

在家菩薩(재가보살) 摠說在優婆塞 優婆夷中(총설재우바새 우바이중)

집에 머무는 보살은 모두 우바새(청신사)ㆍ우바이(청신녀)에 속한다고 말하며, 

 

出家菩薩(출가보살) 摠在比丘 比丘尼中(총재비구 비구니중) 今何以故別說(금하이고별설)?

집을 떠난 보살은 모두 비구ㆍ비구니 가운데 속하나니, 지금은 어찌하여 따로 말하는 것입니까?


答曰(답왈) 雖摠在四衆中(수총재사중중) 應當別說(응당별설)

답하나니, 모두 네 가지 대중 가운데 있지만, 따로 말해야 된다. 

 

何以故(하이고) 是菩薩必墮四衆中(시보살필타사중중) 有四衆不墮菩薩中(유사중불타보살중)

왜냐하면, 이 보살은 반드시 네 가지 대중(사부대중)에 속하지만 네 가지 대중(사부대중)이 보살에 속하지는 않으니, 

 

何者是(하자시)? 有聲聞人(유성문인) 辟支佛人(벽지불인) 有求生天人(유구생천인)

有求樂自活人(유구락자활인) 此四種人 不墮菩薩中(차사종인 불타보살중)

어떤 사람이 이들인가? 성문의 사람ㆍ벽지불의 사람 혹은 하늘에 태어나기를 구하는 사람 혹은 스스로의 삶을 즐기고 구하는 사람의 네 부류의 사람이 있으니, 

(성문이 되고픈 사람벽지불이 되고픈 사람살길을 찾고자 하늘에 비는 사람스스로의 즐거움을 누리고자 세상에서 생활하는 사람들로 이 네 종류의 사람들은 보살에 포함되지 않는 것입니다.)

 

何以故(하이고)? 是人不發心言(시인불발심언) '我當作佛'故('아당작불'고)

이 네 종류의 사람은 보살에 속하지 않는다.


復次(부차) 菩薩得無生法忍故(보살득무생법인고) 一切名字(일체명자)

生死相斷(생사상단) 出三界 不墮衆生數中(출삼계 불타중생수중)

또한 보살은 무생법인을 얻어 온갖 이름과 생사의 모습을 모두 끊어 삼계(색계 욕계 무색계)를 벗어났기에 중생의 범주에 떨어지지 않으니, 

(또한보살이 무생법인을 터득한 까닭에일체의 생사(生死)에 대한 실상(實相)에 대한 말과 글로 된 삿된 견해를 끊어내어 삼계를 벗어나게 되어 오도(五道)를 오가는 중생에 들지 않는 것입니다.)

 

何以故(하이고) 聲聞人得阿羅漢道(성문인득아라한도) 滅度已(멸도이)

尚不墮衆生數中(상불타중생수중) 何況菩薩(하황보살)?

그것은 왜냐하면 성문의 사람 역시 아라한도를 얻고서 멸도한 뒤에는 더 이상 중생의 범주에 떨어지지 않거늘 하물며 보살이겠는가!

 

如'波羅延' '優波尸難'中偈說(여'바라연우바시난'중게설)

마치 파라연우바시난(Parāyana, 바라연경)의 우파시(UpāŚi) 비구의 게송과 같으니,

已滅無處更出不(이별무처갱출불) 若已永滅不出不(약이영멸불출불)

이미 멸도해 어느 곳에도處=자리가 없거늘 다시 나올 수 있는지,

만약 이미 영원히 멸했다면 나오지 않는지
旣入涅槃常住不(기입열반상주부) 惟願大智說其實(유원대지설기실)

이미 열반에 들었다면 영원히 머무르는지 원컨대 크신 지혜로 그 진실을 말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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