諸魔外道及貪著者(제마외도급탐착자) 能使怖畏(능사포외)
모든 마군과 이교도와 탐욕에 집착하는 사람들을 능히 무섭고 두려워하게 하며,
It can inspire fear in all demons, heretics, and individuals who cling to their greed;
諸佛賢聖所共稱歎(제불현성소공칭탄) 背生死苦(배생사고) 示涅槃樂(시열반락)
十方三世諸佛所說(시방삼세제불소설)
제불과 현성들이 함께 칭찬하는 바이며, 생사의 괴로움을 등지고 열반의 즐거움을 나타내 보이며,
시방의 삼세 제불이 설하신 바이니,
It has the praise and admiration together from all Buddhas, worthy ones, and sages. To carry the suffering of life and death, show the bliss of nirvana, as all the Buddhas of the ten directions and three worlds proclaimed.
[대승경전은 이러해야 된다는 조건을 이야기했다. 만약 여기에서 ‘화엄경을 하라, 법화경을 하라, 원각경을 하라’ 고 지적해 놓으면, 그것은 한정이 있는 뜻이 되니까 이러한 뜻을 가진 모든 경전은 모두 대승경전에 포함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若聞如是等經(약문여시등경) 信解受持讀誦(신해수지독송)
만약 이와 같은 경전을 듣고서, 믿고 이해하고 받아 지니고 독송하며,
If one hears such a sutra, believes, and upholds it, recites it
以方便力(이방편력) 爲諸衆生分別解說(위제중생분별해설) 顯示分明(현시분명)
守護法故(수호법고) 是名法之供飬(시병법지공양)
방편의 힘으로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 분별하여 해설하여 분명하게 밝혀 주면, 법을 지키는 것이므로 이를 이름하여 법공양이라 하는 것이니라.
and with the power of skilful means to explain and differentiate for all beings, to illustrate so thy can understand clearly, then this guarding of the Dharma is called the offering of the Dharma.
又於諸法如說修行(우어제법여설수행) 隨順十二因緣(수순십이인연)
離諸邪見(이제사견) 得無生忍(득무생인)
또한 모든 법을 설하신 대로 수행하고, 12인연에 수순해서 모든 삿된 견해를 떠나 무생법인을 얻으며,
Furthermore, if one practices the Dharmas as it states, follows the twelve causes and conditions, and is free from all evil views, on will attain patient acceptance in the truth of no rebirth.
決定無我無有衆生(결정무아무유중생) 而於因緣果報(이어인연과보)
無違無諍(무위무쟁) 離諸我所(이제아소)
결정코 무아와 무중생이라고 믿으며 (나도 없고 중생도 없다는 것을 믿으며),
인연과 과보에 거스름이나 다툼이 없으며, 모든 내 것=我所라는 생각을 떠나며
Determined that there is no self and no existence of sentient beings, without being apart from or having contention with the law of karma and depart from the conceptions of self.
[決定無我無有衆生(결정무아무유중생) 소승교리가 되지만, 이 소승도 다 포용하면서 뒤따르는 문구에서 조건을 달았다.
무아며 무 중생이면서 인연과보에 어기거나 다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은 나와 중생이라는 존재에 대한 중도적 견해를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불교적 중요한 견해가 중도정견(中道正見)이다. 나라는 것이 없으면서 인연과보의 이치를 어겨서는 아니 된다는 뜻인데, 즉 나와 중생이 텅 비어 공하면서 한편 인연과 과보를 따르게 되는 이치까지 알아야 한다. 나와 중생뿐만 아니라 모든 존재가 다 그와 같은 이치에 해당한다.]
依於義不依語(의어의부의어) 依於智不依識(의어지불의식)
(진리의) 의미(뜻)에 의지하나 말에 의지하지 않으며, 지혜를 의지하나 의식=識에 의지하지 않으며,
Rely on meaning, not on the writing; rely on wisdom, not on knowledge;
[依於義不依語(의어의부의어) 依於智不依識(의어지불의식)의 네 가지를 ‘4의(依)’라고 하며 그 반대되는 것을 ‘4불의(不依)’라고 한다. 즉 여기서 가리키고 있는 것을 순서대로 말하면, ①의의불의어(依義不依語), ②의지불의식(依智不依識), ③의요의경의불요의경(依了義經依不了義經), ④의법불의인(依法不依人)이다.]
依了義經不依不了義經(의료의경불의불료의경) 依於法不依人(의어법불의인)
요의경(대승경전)을 의지하나 요의가 아닌 경=不了義經에 의지하지 않고, 법에 의지하나 사람에 의지하지 않으며,
to rely on sutras that are definitive, and not on those texts that do not explain the meaning; relying on the Dharma, not on the person who speaks.
[법사의(法四依)는 열반경에도 있고, 유마경에도 이렇게 나와 있다.
뜻에 의지하고, 말에 의지하지 말라. 말을 따라가지 말라고 하는 그 속뜻은, 우리가 원해여래진실의(願解如來眞實意)= 원컨대 여래의 진실한 뜻이 무엇인가를 알기를 바라야 된다, 참 중요한 말이다.
여래의 진실한 뜻이 어디에 있는가, ‘낙처(落處)가 어디에 있는가’ 말을 쫓아가지 말고 말의 낙처가 어디 있는가? ‘호랑이 온다’ 라고 해서 호랑이가 꼭 와서 호랑이가 온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우는 어린아이 울음을 그치게 하는 말이다.
불경에는 그런 차원의 설법이 많으니까 말만 쫓아가면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다.
요의경에 의지하고 요의가 아닌 경에 의지하지 아니하며’ 요의경은 대승경전, 요의가 아닌 경전은 소승경전 이렇게 이야기 한다.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말라’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나나 너나 이 몸으로 세상을 살아가니까 다 한계가 있고 거기가 거기이니까 그 사람이 설하는 법을 의지하지 않고 그 사름을 의지하진 말고,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법, 그 사람이 권하는 법, 그 사람이 설하는 법은 따라서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초발심자경문' 법문을 들을 때 ‘여인(如人)이 야행(夜行)에 집거당로(執炬當路)어든’ 어떤 사람이 밤길을 가는데 횃불을 들고 가느데 보니까 ‘약이인악고(若以人惡故)로 불수광명(不受光明)이라’ 그 사람이 나쁜 놈이라고 소문난 사람이라서 그 사람이 들고 있는 횃불의 빛까지도 받지 않으면 ‘타갱락참거의(墮坑落塹去矣)라’ 구렁텅이에 떨어지고 이리 자빠지고 저리 자빠져서 상처를 입게 되고 결국은 목숨까지도 위태롭게 되는 경우가 있다고 비유를 들어서 가르쳤다.
즉 절대 사람을 보지 말고 그 사람이 설하는 법을 보라.
그저 종이와 먹으로 된 흔한 책일 뿐이지만, 그 안의 법문, 그 안의 진리의 가르침은 소중하지 않은가? 그점을 유의해야 된다는 것을 여기 유마경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고, 법공양품이 소중한 것이 그런 내용이기 때문이다.]
隨順法相(수순법상) 無所入無所歸(무소입무소귀)
법의 모양=法相(진실)에 수순하여 들어 갈 바도 없고, 돌아갈 바(대상)도 없으며,
Accord with the characteristics of the Dharma, there is nowhere to enter, and nowhere that is refuge.
無明畢竟滅故(무명필경멸고) 諸行亦畢竟滅(제행역필경멸)
무명이 끝내=畢竟에 적멸하기 때문에 제행도 필경에는 적멸하며,
Since ignorance is ultimately non-existent, and so action is also ultimately non-existent,
乃至生畢竟滅故(내지생필경멸고) 老死亦畢竟滅(노사역필경멸)
그렇듯 생이 필경에 적멸하므로, 늙고 죽음도 필경에는 적멸한 것이니라.
and hence, old age and death are also ultimately non-existent.
作如是觀(작여시관) 十二因緣(십이인연) 無有盡相(무유진상)
不復起見(불부기견) 是名最上法之供飬(시명최상법지공양)
이와 같이 12인연을 관찰하여 다하여 없어지는 모습=盡相이 없으니, 다시 어떠한 견해도 일으키지 않게 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최상의 법공양이라 하는 것이니라.
When one contemplates in this way, the twelve causes and conditions will cease to have the mark of exhaustion, does not again arise any marks, and this is called the unsurpassed offering of the Dharma.
[법상을 수순해서 들어가는 바도 없고, 돌아가는 바도 없다. 법상은 실상, 모든 존재의 실상이다.
‘무명은 마침내 적멸하기 때문에 모든 행도 마침내 적멸하며 태어남도 마침내 적멸하기 때문에 늙고 죽음도 마침내 적멸하니라’
무안이비설신의(無眼耳鼻舌身意) 일체개공(一切皆空) 안이비설신의도 없다. 색성향미촉법(無色聲香味觸法)도 없다. 안계(眼界) 내지(乃至) 무의식계(無意識界) 무무명(無無明) 역무무명진(亦無無明盡) 내지(乃至) 무노사(無老死), 없다고 했지 않는가.
사실은 부처님도 없고 중생도 없고,깨달음도 없고, 보살도 없고,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어찌할 바가 없는 것이나, 백퍼센트 그냥 완전히 없다는 뜻으로 마음대로 짐작하면 안된다.
불가득(不可得) 가히 얻을 수 없다. 부처님을 가히 얻을 수 없고, 부처님의 깨달음을 가히 얻을 수 없고, 보살을 얻을 수 없고, 중생을 얻을 수 없고, 과거 현재 미래라고 하는 시간성도 얻을 수 없는 높은 차원이다.
잘못 오해하면 안될 이야기지만 궁극적 차원에서 보면 그렇다. 그래서 아주 적정(寂靜)하게 그 생각이 깊어지고 고요해지고 아무런 갈등이 없고, 시시비비가 다 끊어지고, 아무런 말이 다 끊어진 그런 삶을 산다 하는 것이다
그런 삶을 바탕으로 해서 다시 중생들을 위한 대자비심, 중생을 구제하겠다고 하는, 중생을 깨우쳐야 되겠다고 하는 대원력을 일으켜야한다는 정말 대단한 내용이고 이것이 법공양이다.]
[하루에 한 가지 선행을 하는 것은 최소한의 것입니다
저는 오늘날 청년들에게 부처님을 배우지 말라고 권할 때도 있습니다. 부처님을 배우면 입으로는 말할 수 있지만 보살도는 실천하지 못합니다. 게으름만 배워 아무것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담력도 작은 것을 배워 아무것도 감히 하려 하지 않습니다. 정좌하고 염불한다는 명분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또 옹졸한 것을 배우고, 남들 모두는 옳지 않으며 오직 자기만 옳습니다. 그러므로 젊은이들에게 먼저 사람됨으로부터 배우기 시작하기를 바랍니다. 부처님을 배우는 것은 세상 사람을 구제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을 구제할 때에 살인을 피할 수 없는 경우가 있는데, 당신이 감히 이 짐을 질 수 있겠습니까? 불법의 또 한 마디, ‘도살 칼을 내려놓고 그 자리에서 성불한다[放下屠刀, 立地成佛]’, 당신은 칼 한 자루도 감히 들지 못하면서 무엇을 내려놓겠다는 겁니까! 당신에게는 이러한 종자가 없습니다!
물론 젊은이들은 당연히 부처님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수행하기를 먼저 배워서 하루에 한 가지 선행을 하는 것은 최소한의 것입니다. 좋은 일을 하는 것은 때로는 남에게 욕을 먹곤 합니다. 연꽃 씨를 수렁 속에 심는 것과 같은데, 당신은 욕먹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이 마음만 물어야 합니다. 좋은 일을 하는 것도 지혜와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홍남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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