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法界圖의 서문 - ⑮
所謂瞎狗소위할구가 吠蘆叢폐로총에 盲人맹인이 唱賊虎창적호하니라
이른바 눈먼 개가 갈대숲에 대고 짖으니 맹인은 호랑이나 도적이라고 소리치도다.
[瞎 애꾸눈 할, 狗 개 구, 吠 짖을 폐, 蘆 갈대 로, 절굿대뿌리 려, 叢 모일 총, 떨기 총, 唱 부를 창, 賊 도둑 적, 虎 범 호]
눈이 어두운 개나 눈이 먼 사람은 무엇을 뜻하는가요?
사람ㆍ사람이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완전무결한 진여불성의 참나를 망각하고 5온과 6근을 자기 자신의 전부라고 여기고 살아가는 어리석은 몽매한 중생들입니다.
화엄경 여래출현품에서는 이와 같이 설하였습니다.
“그때에 여래께서 장애가 없는 청정한 지혜의 눈으로 법계에 있는 일체중생들을 두루 살펴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신기하고 신기하여라. 이 모든 중생들이 여래의 지혜를 갖추고 있으면서 어리석고 미혹하여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구나. 내가 마땅히 성스러운 길로써 가르쳐서 그들로 하여금 망상과 집착을 영원히 떠나고 스스로 자신의 몸 안에서 여래의 광대한 지혜가 부처님과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보게 하리라.’”
爾時如來가 以無障礙淸淨智眼으로 普觀法界一切衆生하고 而作是言하사대
奇哉奇哉라 此諸衆生이 云何具有如來智慧언마는 愚癡迷惑하야 不知不見고 我當敎以聖道하야
令其永離妄想執着하고 自於身中에 得見如來廣大智慧가 與佛無異케호리라하사
卽敎彼衆生하야 修習聖道하야 令離妄想하고 離妄想已에 證得如來無量智慧하야 利益安樂一切衆生이니라.
1. 法界圖의 서문 - ⑯
此大雄차대웅은 不得已而說불득이이설하고 賢哲현철은 不得已而判불득이이판하야
而大部三十九品이대부삼십구품과 小圖三十句소도삼십구가 所以出也소이출야니라
이것이 大雄世尊은 마지못해 설하고 현철은 마지못해 구별하여 大部인 39품과 작은 그림과 30句가 나오게 된 까닭이다.
[雄 수컷 웅, 哲 밝을 철, 判 뻐갤 판, 판단할 판]
진여불성의 참나를 망각하고, 5온과 6근을 자신의 전부라고 살아가는 어리석은 사람들을 깨우치기 위해서, 세존께서는 설하지 않아도 될 일이나 부득이 그 자리를 드러내려고 39품이라는 큰 화엄경을 설하시고, 다시 의상조사는 작은 그림과 30구절의 게송을 지어서 華嚴一乘法界圖라 하여 세상에 내어놓게 되었습니다.
1. 法界圖의 서문 - ⑰
화엄경39품의 이름은 다음과 같습니다.
39품의 이름만이라도 거듭거듭 읽어서 익숙하게 하기 위해서 소개하고자 합니다.
제1회 법 보리도량에서의 여섯 품은, 6
1 세주묘엄품. 2 여래현상품. 3 보현삼매품. 4 세계성취품. 5 화장세계품. 6 비로자나품.
제2회 보광명전에서의 여섯 품은, 6
7 여래명호품. 8 사성제품. 9 광명각품. 10 보살문명품. 11 정행품. 12 현수품.
제3회 도리천궁에서의 여섯 품은,6
13 승수미산정품. 14 수미정상게찬품. 15 십주품. 16 범행품. 17 초발심공덕품. 18 명법품.
제4회 야마천궁에서의 네 품은, 4
19 승야마천궁품. 20 야마천궁게찬품. 21 십행품. 22 십무진장품
제5회 도솔천궁에서의 세 품은, 3
23 승도솔천궁품. 24 도솔궁중게찬품. 25 십회향품
제6회 타화자재천궁에서의 한 품은, 1
26 십지품
제7회 보광명전에서의 열한 품은, 11
27 십정품. 28 십통품. 29 십인품. 30 아승지품. 31 여래수량품. 32 보살주처품. 33 불부사의법품.
34 여래십신상해품. 35 여래수호광명공덕품. 36 보현행품. 37 여래출현품.
제8회 보광명전에서의 한 품은, 1 38 이세간품.
제9회 급고독원에서의 한 품은, 1 39 입법계품
1. 法界圖의 서문 - ⑱
然연이나 言者언자는 心之發也심지발야요 心者심자는 言之宗也언지종야니
譬如太和之氣비여태화지기가 本無形聲본무형성이나 假形器가형기하야 而激發이격발인댄 則爲律呂즉위율려하야
圓融之法원융지법도 本無名相본무명상이나 假言句가언구하야 而演說이연설하면 則爲經論즉위경론이라
그러나 말이란 마음의 드러남이요, 마음이란 말의 근원이니, 비유하자면 태화의 기운이 본래 형상과 소리가 없으니 형기를 빌려서 격발시키면 율려가 됨과 같이 원융한 법도 본래 형상이 없으나 말과 글을 빌려서 연설하면 경론이 되는 것이다.
[判판단할 판, 激부딪쳐흐를 격, 격할 격, 律법 률,呂법칙 려]
모든 말은 마음의 표현입니다. 실로 어떤 말, 어떤 행위든 다 같이 마음의 표현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은 말과 행위의 근본 뿌리입니다. 마음이라는 뿌리에서 돋은 싹과 열매가 사람의 말과 행위이므로 그 싹과 열매를 보고 그 뿌리를 압니다.
1. 法界圖의 서문 - ⑲
譬如太和之氣, 태화의 기운이란 주역의 大和라는 말과 같이, 음양조화의 기운이며 우주생성의 힘입니다.
예컨대 처음 우주에는 아득한 먼지만 가득하여 어떤 형상도 존재하지 않았으나 그 먼지들이 하나씩 만나면서 중력이라는 기운이 형성되어 다시 또 먼지를 끌어들이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六律 六呂인 소리가 있게 되었으니, 즉 눈의 대상과 귀의 대상이 있게 된 까닭입니다. 그리고 그 먼지는 차츰차츰 커지면서 태양이 되고, 지구가 되고, 화성과 금성과 토성 등등 온갖 별들이 형성되게 된 근본 사연입니다. 지구가 처음에는 불덩어리였으나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오늘날과 같은 모습으로 緣起하면서 진화해 왔습니다.
불법이란 세상의 온갖 존재원리를 밝히는 가르침입니다. 세상의 온갖 존재원리는 본래 원융하고 무애하여 시비와 선악이 없었는데, 사람들의 이해득실과 분별망상으로 말미암아 성인들의 할 일이 생기어 오늘날과 같은 상황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원융한 법도 본래 형상이 없으나 말과 글을 빌려서 연설하면 경론이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1. 法界圖의 서문 - ⑳
非律呂비율려면 無以像太和무이상태화하고 非經論비경론이면 無以闡圓融무이천원융하니
則經論者즉경론자는 亦是圓融法性風規역시원융법성풍규며
而三世諸佛之大意也이삼세제불지대의야어니와 奈何正法已遠내하정법이원에 佛敎澆漓불교요리오
율려가 아니면 태화를 모양 지을 수 없고, 경론이 아니면 원융을 나타내지 못하는 것이니, 경론이란 것도 또한 원융한 風規= 법성을 풍자한 법규며, 3세 모든 부처님의 대의이다. 그러나 어찌하랴. 정법이 이미 멀어졌음에 부처님의 교법이 澆漓= 희미하게 되었음을...
[闡 열 천, 밝힐 천, 融 화할 융, 녹을 융, 規 법 규, 奈何어쩌면, 奈 어찌 내, 何 어찌 하, 澆 물댈 요, 漓 스며들 리]
六律과 六呂인 소리가 아니면 음양조화의 기운이며 우주생성의 힘인 太和를 설명할 수가 없고, 경전과 논설이 아니면 원융한 본래 이치를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경전과 논설들은 모두가 원융한 법성을 풍자한 법규가 되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부처님이 출현하여 중생들을 깨우치고자 하신 큰 뜻이 됩니다.
그러나 성인이 가신 때가 멀어짐에 정법의 시대도 지나가고, 사사로운 견해들이 홍수를 이루어 어느 것이 정법이며, 어느 것이 사법인지 그 분별이 흐리멍덩하게 되어 애석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1. 法界圖의 서문 - ㉑
參佛乘者참불승자가 指敎網지교망하야 爲葛藤위갈등하고 討佛語者토불어자가 斥單傳척단전하야 爲壁觀위벽관하며
불승을 참구하는 사람은 교망을 가리켜 갈등이라 하고, 佛語를 찾는 사람은 단전을 배척하여 벽관이라고 한다.
[參 참여할 참, 석 삼, 葛 칡 갈, 藤 등나무 등, 討 칠 토, 斥 물리칠척, 壁 벽 벽]
부처님이나 보살들이 가르치신 전통적인 교학의 입장에서 보면 불교의 경전은 중생들의 수준과 근기를 따라 설하다 보니 참으로 다종다양합니다. 간단하게 두 가지로만 분류한다면 하나는 최상승의 가르침으로서 사람이 본래로 부처님이라는 교설을 佛乘이라 하였습니다.
그 외에 수행을 하더라도 모두 부처님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하고 아라한의 경지에만 이른다고 가르치거나, 아니면 오랜 세월을 수행하여 점차적으로 단계를 밟아 올라가서 부처님의 경지에 이른다고 하는 다양한 교설을 전계하는 가르침의 敎網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본래로 부처라고 공부하는 사람들은 다양한 교설을 칡과 등나무가 서로 얽히는 것과 같이 복잡하고 어렵기만 한 내용이라고 지적합니다.
1. 法界圖의 서문 - ㉒
한편 달마대사가 중국으로 건너와서 불교를 가르치면서 기존의 불교와는 전혀 다른 선불교를 전하였는데,
한 사람이 한 사람에게 전한다 하여 單傳 불교,벽을 바라보고 명상에 잠긴 불교라 하여 壁觀불교라 하였습니다.
그래서 단전 불교의 전통을 세우면서 석가모니부처님의 정법을 계승한 제자는 제1조가 가섭이며, 제2조가 아난이며, 제3조 상나화수 등으로 이어져서 달마는 제28조에 이르고,
달마가 중국에서는 初祖가 되므로 그의 제자 慧可를 제2조, 僧璨(승찬)을 제3조 등으로 계산하여 惠能대사를 제6조로하여 육조대사라고도 부르는, 이 분들이 선불교 전통의 법맥입니다.
그런데 부처님이나 보살들이 가르치신 전통적인 불교의 가르침을 의지하여 수행하는 사람들은 수많은 중생들을 교화하려는 대승적 보살행이 없는 單傳의 불교를 벽만 바라보고 명상에만 잠겨 있다고 하여 그들을 벽만 바라보는 壁觀外道라고 비판하였습니다.
1. 法界圖의 서문 - ㉓
有道理而礙於事者유도리이애어사자와 有達事而昧於理者유달사이매어리자가
遂使圓融無二之法축사원융이지법으로 變爲固滯守一之物변위고체수일지물하니라
이치에 통하나 事=현상에 막힌 사람과 현상=事에 밝되 이치에 어두운 사람이 있어서, 드디어 원융하여 둘이 없는 법으로 하여금 변하여 꽉 막혀 하나만 지키는 중생이 되었다.
[礙=碍 거리낄 애, 遂 드디어 수, 따를 수, 滯 막힐 체]
위대한 불법을 치우치지 않고 원만하게 잘 알아서, 세상에 크게 펼쳐 무수한 중생들을 교화하려면 일불승의 이치도 수용하고, 三乘十二分敎의 복잡다단한 가르침도 수용하고, 석가모니부처님이나 보살들의 가르침도 수용하고, 선불교도 수용하여야합니다. 그래서 차별한 일체법과 일체법의 근본인 진여자성이 원융하여 둘이 없는 이치를 자유자재하게 활용하게 됩니다. 만약 하나인 진여의 이치만 알고, 천차만별의 事象을 모른다면 꽉 막혀 집착만 일삼는 사람을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1. 法界圖의 서문 - ㉔
迺至乾竺내지건축=인도에 分河분하하고 震旦진단=중국에 異宗이종하야는
則平等之慈즉평등지자가 自相矛盾자상모순하니 良可悲夫양가비부인저
이에 乾竺= 인도에서는 流派가 나뉘고, 震旦= 중국에서는 宗派를 달리함에 이르러서는 평등한 자비가 서로서로 창과 방패가 되었으니 참으로 슬퍼할 만하도다.
[迺 이에 내, 至 이를 지, 乾 마를 건, 竺 대나무 축, 矛 창 모, 盾 방패 순, 震 벼락 진, 旦 아침 단 ]
석가모니부처님이 열반에 드시자마자 기존의 가르침에서 다른 견해를 주장하는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상수제자인 가섭존자를 필두로 하여 500명의 제자들이 七葉窟칠엽굴에 모여 부처님의 가르침에 다른 견해를 주장하지 못하도록 그 동안의 말씀들을 誦出용출하여 제1차 결집을 하여 법을 세우고 기준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다시 100년ㆍ200년ㆍ30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수많은 새로운 견해와 주장들이 등장하여 상좌부와 대중부를 중심으로 20여개의 유파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 후 불멸 500년경부터는 수많은 보살들이 출현하면서 부처님의 근본정신을 보완하려는 대승불교운동이 전개되어 대승과 소승의 격렬한 다툼이 일어났습니다.이것이 인도에서 流派유파가 나눠진 대강의 내용입니다.
다시 불교가 중국으로 넘어오면서 또다시 수많은 주의주장에 따라 다양한 종파불교가 등장하여 각각 다른 견해를 세우면서 부처님의 근본정신인 지혜와 자비를 망각하고 서로서로 비판과 공격을 일삼는 슬픈 일이 일부 있게 되었습니다.
1. 法界圖의 서문 - ㉕
羅代라대에 義相法師의상법사가 制作此圖제작차도하니 其來기래가 尙矣상의라
全家宿德전가숙덕이 各以敎網명이교망으로 臆解억해하대 支離蔓莚지리만연하야 遂成卷袠수성권질하니
신라시대에 의상법사가 이 그림을 만듦에 그 유래가 오래인지라 全家의 宿德들이 각자의 敎網으로 억측으로 이해하되 卷을 만들고 袠을 이루었더라.
[尙 오히려 상, 矣 어조사 의, 臆 가슴 억, 蔓 덩굴 만, 莚 뻗을 연, 遂 드디어 수, 따를 수, 袠 책갑 질]
의상스님은 서기 625년에서 702까지 계셨던 스님입니다. 그리고 설잠스님은 서기 1435년에서 1493까지 사셨으니 법계도가 세상에 출현하고 800여년이나 되는 긴 세월동안 수많은 선지식과 공부인들이 그 나름대로 해석하고 주석한 것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리고 설잠스님으로부터 다시 또 500여 년이 지났으니 그 사이에 이 법계도를 풀이하고 설명한 글이 또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실로 스님의 말씀대로 “각자의 교망으로 억측으로 이해하되 권을 만들고 질을 이루었더라.”라고 하셨으니 지금까지의 그 해석이 수100 종류는 족히 되리라 여겨집니다.
1. 法界圖의 서문 - ㉖
余여가 一覽일람에 執卷집권하고 歎曰탄왈 淸淨法界청정법계에 豈有如此其多言乎기유여차기다언호리오
若固如是약고여시인댄 湘師상사가 豈向微塵偈品中기향미진게품중에
撮其樞要촬기추요하고 簡出二百一十字간출이백일십자하야 莊嚴一乘法界圖乎장엄일승법계도호리오
내가 한번 살펴보고 나서 책을 쥔 채 탄식하기를 “청정한 법계에 어찌 이와 같이 많은 말이 있으리오. 만약 진실로 이와 같은 것일진댄 의상법사가 어찌 미진수의 偈品= 게송과 품류 가운데서 그 근본이 되는 요점만을 모아서 210글자를 간추려 내어 일승법계도를 장엄하였겠는가”라고 하였다.
[余나 여, 남을여, 覽볼 람, 豈어찌 기, 즐길 개, 撮취할 촬, 樞지도리 추, 簡 대쪽 간, 간략할 간, 乎 온 호, 어조사 호]
설잠스님은 “청정법계”라고 하였고, 화엄경은 “미진수 같은 게송과 품으로 나타냈으며, 의상법사는 그것을 다시 210글자로 압축하여 표현하였습니다.
혹자는 “마음”이라는 말로 나타내고, 혹자는 “한 물건”이라 하였고, 혹자는 “할”을 하였고, 또 혹자는 둥근 원을 그려보였고, 또 어떤 이는 주먹으로, 또는 손가락으로, 침묵으로, 주장자 등으로 표현하였습니다. 굳이 어떤 형식을 빌려 표현하지 않아도 모든 사람들은 어디서나 한순간도 그것을 떠나서 존재한 적이 없습니다. 늘 그것으로 존재합니다. 만약 한순간이라도 그것을 떠나있다면 그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1. 法界圖의 서문 - ㉗
然연이나 以湘師이상사의 一圈일권으로 觀之견지한대 向二百一十字향이백일십자하야
究其宗旨구기종지하면 則不過法性而已즉불과법성이이오
究其法性구기법성하면 則不過隨緣而已즉불과수연이이니 忽有明眼衲僧홀유명안납승이어든 出來道출래도하라
그러나 의상법사의 一圈= 한 우리로써 관찰하건대 210자를 향하여 그 종지를 궁구하면 곧 법성에 지나지 않을 따름이요. 법성을 궁구하면 곧 수연에 지나지 않을 따름이니, 혹 눈이 밝은 납승이 있거든 나와서 일러보라.
[隨 따를 수, 게으를 타, 忽 문득 홀, 갑자기 홀, 衲 기울 납]
법계도를 살펴보면 마치 양떼를 모아 놓은 우리와 같습니다. 하나의 우리 안에 210글자가 놓여 있는데요. 가장 중앙의 법성으로부터 시작하여 佛에 이르기까지 질서정연하게 펼쳐지면서 10조 9만 5천 48자가 설하고 있는 심심미묘한 우주법계와 화장장엄의 이치를 다 설파하고 있습니다.
210글자를 다시 그 중요한 취지만을 간추리면 法性과 隨緣에 지나지 않습니다.
法이란 일체차별 현상이고, 性이란 그 일체차별 현상의 통일된 하나의 본질 입니다.
그것이 隨緣= 인연을 따라 천변만화하면서 지금 우리들의 눈앞에 이와 같이 펼쳐지게 된 것입니다.
설잠, “나는 이와 같이 설하였다마는 만약 또 어떤 눈 밝은 납자가 있어서 이와 다른 설명을 하고 싶다면 어디 한번 말해보라.”라고 하였습니다.
자기의 입을 가지고 멋대로 말하는데 누가 말리겠습니까? 조선 500년 중에 제일가는 천재의 기개가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1. 法界圖의 서문 - ㉘
說玄說妙설현설묘하며 設心說性설심설성은 敎有明文교유명문이어니와 如何是湘法師여하시상법사가
未吐一字前消息미토일자전소식고 余여가 自代云자대운하대
成化丙申臈성화병신랍에 說于錄苔軒南窓下설우록태헌남창하라하노라
玄을 설하고 妙를 설하며, 心을 설하고 性을 설함은 經敎에 名文이 있거니와 어떤 것이 바로 의상법사가 한 글자도 내뱉기 이전의 소식인가? 내가 스스로 대신하여 이르기를 “成化 丙申년 臈=12월 녹태헌의 남창 아래서 설하였다.”고 하리라.
[玄 검을 현, 吐 토할 토 臈 제사 이름 랍, 납향 랍, 于 어조사 우, 탄식할 우, 錄 기록할 록, 苔 이끼 태, 軒 처마 헌]
설잠스님의 일승법계도주의 글이 거의 모두가 禪師가 선의 이치를 논하는 형식을 띠고 있지만, 특히 이 단락의 글 형식은 전형적인 선법문입니다.
선문 古則에 관한 着語의 형식인 拈ㆍ頌ㆍ代ㆍ別ㆍ徵(염송별대징)가운데 代에 해당되는 형식을 빌려 온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스스로 대신하여 이르기를”이라고 하였습니다.
1. 法界圖의 서문 - ㉙
의상법사가 210자를 통해서 法性을 밝힌 화엄의 도리를 설함은 일체존재의 유현하고 미묘한 이치를 설한 내용들이며, 사람의 일심과 자성의 궁극적 내용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러한 설명은 의상법사가 아니라도 이미 경전이나 논문이나 어록 속에 너무도 많이 나와 있습니다. 그중에서 의상법사의 일승법계도의 글이 아무리 천하에 제일가는 명문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론이요 말입니다.
‘그와 같은 이론이나 말을 떠나서 한 글자도 내뱉기 이전의 소식을 보여 줄 수는 없는가? 의상법사의 살아있는 진면목을 드러내 보라.’ 이렇게 거량을 했으나 의상법사는 800여 년 전에 이미 가시고 없습니다. 누가 대신 거량하겠습니까? 설잠스님이 스스로 대답할 수밖에요. “이 글을 쓰고 있는 여기 이 사람일세.”
실로 순수한 선법문의 형식을 취하여 서문을 쓰고 다시 선법문의 형식을 빌려 법성게를 주해하였습니다. “成化 丙申년”은 서기 1497년입니다.
2. 대중에게 보이다 - ①
示衆云시중운하대 建法幢건법당하야 立宗旨입종지는 錦上添花금상첨화어니와
脫籠頭탈롱두하고 卸角駄어각사라사 太平時節태평시절이로다
대중들에게 보여 이르되 “법의 깃발을 세우고 宗旨를 세움은 금상첨화이거니와, 조롱을 벗어나고 짐바리를 내려놓아야 태평한 시절이로다.”
[錦비단 금, 添더할 첨, 맛 더할 첨, 籠대그릇 롱, 대이름 롱, 卸풀 사, 角뿔 각,駄짐 실을 태]
설잠스님은 서문을 써서 마치고 법성게를 설명하기 전에 문득 대중들을 향해서 법어를 한 말씀 내렸습니다.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자기 자신의 삶과도 연관이 되는 말씀이며, 또 다른 많은 세속적으로 출세한 사람들을 향해서 일갈을 던진 말씀이기도 합니다.
예컨대 세속에서 높은 관리가 되거나 출가하여 큰 절을 차지하여 대중들을 거느리고 자신의 사상을 크게 드날릴 수 있다면 세상에 떨치는 명성도 자자하고 추앙도 받고 하여 외형적으로 얼마나 근사하고 보기에도 좋겠습니까? 그야말로 출세한 사람이겠지요. 요즘도 승속을 막론하고 이와 비슷한 사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2. 대중에게 보이다 - ②
그러나 그들이 남이 보는 것과 같이 마음이 늘 편안하고 자유로울까요?
어쩌면 여기ㆍ저기 걸리고, 이일ㆍ저일, 이 사람ㆍ저 사람에 걸려서 마음은 답답하고 불안할 것입니다. 마치 주인이 모이를 줘서 먹고사는 데는 걱정이 없지만, 새가 새집 속에 갇혀있다면 그것이 무슨 좋은 일이겠습니까? 또한 소나 말이 주인이 주는 사료를 먹는 대신에 언제나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것과 같을 것 입니다.
새는 때때로 굶는 일이 있더라도 자유롭게 드넓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이 1000번ㆍ10000번 나은 일이겠지요. 소나 말도 차라리 야생이 되어 굶기도 하고 먹기도 하다가 천수를 다하는 것이 생명을 가진 존재로서 바람직한 길이겠지요.
그놈의 부귀와 공명에 올가미가 걸려서 시궁창에 빠져 허덕이겠습니까? 그것이 어찌 사람이 사는 길이겠습니까?
2. 대중에게 보이다 - ③
若論頓也약론돈야 不留朕迹불야짐적하니 天聖천성도 亦摸索不着역모색불착이요.
若論漸也약론점야ㄴ댄 返常合道반상합도니 閙市裏요시리에 七縱八橫칠종팔횡이요
만약 頓을 논할진댄 자취가 남아 있지 아니하여 1000성인이라도 더듬어 찾지 못하는 것이요, 만약 漸을 논할진댄 返常= 평상의 이치에 돌아가 合道= 세상의 도리에 합하니 시끄러운 저자 안에서 멋대로 노닐며 七縱八橫= 횡설수설할 것이니라.
[頓 조아릴 돈, 朕 나 짐, 迹 자취 적, 摸 찾을 모, 索 찾을 색, 동아줄 삭, 漸 점점 점, 閙 시끄러울 뇨, 裏 속 리, 縱 늘어질 종, 바쁜 모양 총, 세로 종, 橫 가로 횡, 방자할 횡]
불교에서는 수행을 주장 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수행에는 크게 두 가지 이론이 있습니다.
특히 선불교에서, 한 가지로는 한꺼번에 모든 단계를 다 성취한다는 頓法이 있고, 또 한 가지로는 점차적으로 단계를 하나하나 밟아 올라간다는 漸法이 있습니다. 돈오돈수니 돈오점수니 하는 것이 그 것입니다.
즉 頓法이란 모든 중생이 본래 깨달은 존재이며, 본래 부처님인 존재로서 점차적인 단계를 밟아 올라 갈 필요가 없다는 주장입니다.
漸法이란 모든 중생이 본래부처님이라 하더라도 진정한 부처님이 되기까지는 10신과 10주와 10행과 10회향과 10지와 등각과 묘각이라는 단계를 닦아 올라가야 된다는 주장입니다.
그래서 頓法의 입장에서는 세상의 어느 누구라도 혀를 댈 자리가 없지만, 점법의 입장에서는 시시비비의 온갖 설명이 횡설수설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2. 대중에게 보이다 - ④
若論圓也ㄴ댄 箇箇가 立在轉處하야 全機作用하대 不存執則이요
若論別也ㄴ댄 頭頭가 有殺人之劒하며 處處에 藏陷虎之機장함호지기라
만약 員을 논할진댄 개개가 轉變하는 곳에 서서 모든 機能이 작용하되 軌則(궤칙)을 두지 않는 것이요. 만약 別을 논할진댄 두두가 다 殺人의 劒을 가지며, 처처가 다 호랑이를 파묻는 기계를 감춘 것이다.
[箇 낱 개, 轉=転 구를 전, 돌릴 전, 處 머무를 처, 劒 칼 검, 陷 빠질 함, 虎 범 ]
선불교에서 돈법과 점법을 이야기하는 한편 敎家, 특히 天台四敎에서 藏敎ㆍ通敎ㆍ別敎ㆍ圓敎를 시설하여 상세한 설명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圓= 원융한 교설과 각각 別= 차별한 교설을 뜻합니다.
2. 대중에게 보이다 - ⑤
到這裏하야는 諸天이 捧花에 無路요
外道가 潛窺잠규에 無門이 終日嘿하고 而未甞嘿하고 終日說하고 而未甞說하야
毘耶城裏에 其聲如雷하고 普光殿前에 有耳如聾이어니와
여기에 이르러서는 모든 천신들이 꽃을 바칠 길이 없고 외도가 가만히 엿볼 문이 없으니, 종일 침묵하되 침묵한 적이 없고 종일 설법하되 설법한 적이 없어서, 비야리성 안에 그 소리가 우레와 같았으며 보광전 앞에 귀 있으되 귀 먹은 것 같았느니라.
[到 이를 도, 這 이 저, 맞을 언, 裏 속 리, 捧 받들 봉, 潛=濳 잠길 잠, 窺 엿볼 규, 甞 맛볼 상, 嘿 잠잠할 묵, 고요할 묵, 雷 우레 뢰, 돌 내리굴릴 뢰, 우레 뢰, 聾 귀머거리 롱, 귀먹을 롱]
수행자가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난 진정한 대자유의 경지란 어떤 것일까요? 언어의 길이 끊어지고 마음의 행할 곳이 소멸해 버린, 즉 모든 것이지만 모든 것으로 지칭할 수 없는 그 자리입니다. 그 자리에 앉은 사람에게는 온갖 천신들이 꽃을 바치고자 하나 꽃을 바칠 길이 없고, 그 자리 이외의 사람으로서는 조금도 엿볼 만한 틈이 없습니다.
그 자리에 앉은 사람은 종일토록 침묵해도 침묵한 것이 아니며, 종일토록 말을 해도 말을 한 것이 아닙니다.
예컨대 유마거사가 비야리성에서 침묵으로써 不二의 법문을 우레처럼 소리쳤으나 그 뜻을 아는 사람이 없었으며, 보광전 앞에서 대승보살들이 화엄의 도리를 천지가 진동하도록 설했으나, 성문과 연각들은 아름다운 법회가 열렸다는 소문만 들었지, 정작 법문의 내용에 대해서는 맹인과 같고 귀머거리와 같았습니다.
2. 대중에게 보이다 - ⑥
只如頓中有漸하며 漸中有頓하고 圓中有別하며 別中有圓은 圓陀陀원타타하며 阿轆轆地아녹녹지하야 大用이 現前일새
殺活이 自由하니 丈六이 莖草경초요 莖草가 丈六이라 信手拈來신수염래에 無有不是니 是什麽境界시십마경계오
看取新羅義湘和尙의 法界圖一圈하라 ○
가령 頓悟가운데 漸修가 있고, 점수가운데 돈오가 있으며, 圓融한가운데 差別이 있고, 차별한가운데 원융이 있음과 같은 경우라면, 圓陀陀= 둥글고 둥글어 阿轆轆地= 걸림 없이 굴러 가서 큰 작용이 앞에 나타나 殺=부정과 活 = 긍정이 자유 자재하니 부처님의 丈六 = 크신 몸이 작은 풀잎이요, 몸이 작은 풀잎이 부처님의 크신 몸이라. 손이 닿는 대로 집어내어도 맞지 않음이 없으니 이것이 어떤 경계인가? 신라 의상화상의 법계도 一圈= 한 우리를 잘보아라.
“○”= 一圓相을 그리다.
[頓조아릴 돈,漸점점 점, 圓둥글 원, 陀비탈질 타, 허물어질 타, 阿언덕 아,轆도르래 록, 莖줄기 경, 拈집을 념, 麽잘 마]
예컨대 씨앗 속에는 이미 싹을 틔우고 줄기를 뻗으며, 잎을 맺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일이 다 갖춰져 있습니다. 씨앗의 입장에서 보면 頓法아닌 것이 없고, 싹을 틔우고 줄기를 뻗어 잎을 맺는 입장에서 보면 漸法아닌 것이 없습니다.
원융과 차별의 이치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일체 세상이치가 이 이치와 같으며, 불법의 심오한 이치도 또한 그러합니다. 이와 같이 본다면 흘러가는 자연현상이나 사람이 살아가는 일들도 그대로 완전무결하여 더 이상 고칠 것이 없으며 손댈 것이 없습니다.
2. 대중에게 보이다 - ⑦
의상스님의 법계도와 법성게는 그와 같이 원만하고 완전무결한 일체존재의 됨됨이를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또한 설잠스님의 이 “○”= 一圓相이 그것을 말없이 나타내는 도리입니다.
역시 전형적인 선법문의 격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일원상에는 예로부터 전해져오는 글이 있어서 주해삼아 살펴봅니다.
古佛未生前 凝然一相圓 釋迦猶未會 迦葉豈能傳
옛 부처님 나기 전에 응연하게 한 모양이 둥글었네. 석가모니부처님도 알지 못하거늘 가섭이 어찌 전하리오
3. 大華嚴의 一乘法界圖
向上의 一路는 千聖도 不傳이니 旣是不傳底消息인댄 祗這法界一圖는 從河而出고
只如縱橫屈曲과 字點斑文이 是圖耶아
白紙一幅에 說玄說黃이 是圖耶아
湘法師가 擬心動念하야 垂慈利物이 是圖耶아
只如朕兆未萠과 名器未形이 早是圖耶아
良久云 領取鉤頭意하고 莫認定盤星막인정반성하라
깨달음보다 向上= 더 나아간 한 길은 1000성인도 전하지 못하는 소식이라면 이러한 법계의 한 그림은 무엇으로부터 나온 것인가?
가령 종으로 횡으로 구불구불함과 글자와 점들이 얼룩덜룩한 것이 이 그림인가?
백지 한 폭에 검은 것을 설하고 누런 것을 설한 것이 이 그림인가?
의상법사가 마음을 쓰고 생각을 움직여가며 자비심을 드리워서 중생들을 이롭게 함이 이 그림인가?
가령 조짐이 아직 싹트지 않고 그릇이 미쳐 형상을 이루지 아니하였을 적에 벌써 이 그림인가?
(잠자코 있다가) 이르되, “낚싯바늘 드리운 뜻을 알아차리고 눈금의 표식을 오인하지 말라.”
앞에서 “석가도 알지 못하거늘 가섭이 어찌 전하리오.”라고 하였습니다.
[底 밑 저, 祗 삼갈 지, 這 이 저, 맞을 언, 屈 굽을 굴, 曲 굽을 곡, 點 점 점,斑 얼룩 반, 擬 헤아릴 의, 垂 드리울 수,
慈 사랑 자, 朕 나 짐, 兆 조짐 조, 萠 싹틀 맹, 領 옷깃 령, 거느릴 령, 鉤 갈고리 구, 頭 머리 두, 莫 없을 막, 認 알 인, 盤 소반 반, 星 별 성]
“그런데 의상스님은 법계도와 법성게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인가? 그 자리 그 소식은 처음부터 1000성인들도 전하지 못하는 소식이다.” 그래서 “석가도 모르는 소식”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禪家에서는 석가는 가섭에게 전하고, 가섭은 또 아난에게 전하고하여 달마에게까지 전하여 졌으며, 다시 혜가에게 전하는 등등, 그것을 전했다는 말이 산을 이루고 바다를 이룹니다.
그것은 아마도 고기를 잡기 위해서 바늘을 드리운 소식이겠지요.
3. 大華嚴의 一乘法界圖 - 東土義湘述 - ①
世尊이 七處九會에 爲頓機人하야 說頓部가 已是錯了也어든
義湘法師가 向淸平世界에 爲什麽鑿空模影하야 不識好惡호오하고
說這般閑話오 到這裏하야는 安着一字가 肉上剜瘡이요 減着一字가 眼中着屑이니
於最淸淨法界上에 且喜沒交涉(차)이라
동토 의상의 저술. 세존께서 일곱 곳에서 아홉 차례의 법회를 열어 頓機의 사람을 위하여 頓部를 설한 것이 벌써 잘못되었거늘, 의상법사는 청정하고 평화로운 세계를 향하여 무엇 때문에 허공을 뚫고 그림자를 더듬어가며 좋고 나쁜 것도 알지 못하면서 이와 같은 부질없는 이야기를 설하는가.
여기에 이르러서는 글자 한 자를 가져다 붙인다는 것이 멀쩡한 생살에 긁어서 상처를 냄이요. 한 자를 빼낸다는 것이 눈 안에 가루를 묻히는 것이니 가장 청정한 법계와는 어쨌거나 아무 관계가 없는 일이다.
[頓 조아릴 돈, 둔할 둔, 機 베틀 기, 錯 섞일 착, 鑿 뚫을 착, 쌀 쓿을 착, 模 본뜰 모, 법 모, 影 그림자 영, 惡 악할 악, 미워할 오, 閑 한가할 한, 剜 깎을 완, 瘡 부스럼 창, 減 덜 감, 屑 가루 설, 달갑게 여길 설, 且 또 차, 喜 기쁠 희, 沒 빠질 몰,交 사귈 교, 涉 건널 섭]
세존께서 6년의 고행 끝에 니련선하에서 목욕을 하고 마지막으로 보리수 아래에 앉아 7일간의 깊은 선정에 들어 온갖 마군들을 항복받고 나서 드디어 正覺을 이루시고 그 정각의 내용을 남김없이 쏟아낸 것이 화엄경입니다.
화엄경은 일곱 장소에서 아홉 번의 법회를 열면서 39품이라는 방대한 설법을 한 것입니다. 그 내용은 듣는 사람들의 근기와 수준에 맞춰가면서 알맞게 설한 것이 아니라 頓機의 사람, 즉 大心凡夫들을 위해서 최고의 경지를 설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떤 입장에서 보면 크게 틀린 일입니다. 그런데도 다시 의상법사는 청정본연하고 태평무사한 세계를 향하여 어지럽게 이야기를 늘어놓는가?
이러한 경우라면 설사 글자 하나를 놓아둔다하더라도 멀쩡한 생살을 긁어서 상처를 내는 일이고, 한 글자를 빼낸다 하는 것은 눈 안에 금가루를 뿌리는 일입니다. 금가루가 비록 귀한 것이기는 하나, 밝은 눈에 큰 병을 불러올 뿐입니다.
청정법계 위에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 왜 그런 일을 할까요? 반드시 의도하는 바가 있겠지요.
3. 大華嚴의 一乘法界圖 - 東土義湘述 - ②
雖然이나 法은 本法無法하대 無法法도 亦法이니 今付無法時에 法法이 何曾法고
그러나 비록 법은 본래 없는 법을 법 삼되, 없는 법이란 법도 또한 법이니 이제 없는 법을 부촉할 적에 이런 법과 저런 법이 언제 법인 적이 있었으랴.
[述 지을 술, 펼 술, 雖 비록 수, 然 그러할 연, 付 줄 부, 何 어찌 하, 멜 하, 꾸짖을 하, 曾 일찍 증]
이 게송은 선가에서 전하는 조당집이나 전등록에 의하면 석가모니부처님이 전하신 게송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불교에서 법이라는 말을 매우 소중하게 사용하고 있지만 고정되게 ‘이런 것이 법이다.’라고 지칭할 만한 법은 없습니다. 다만 없는 법을 법이라고 가정하여 이름 할 뿐입니다.
3. 大華嚴의 一乘法界圖 - 東土義湘述 - ③
伊麽인댄 則將山河大地와 草木叢林을 一一拈來(염)하야 作一切法도 亦得이요
將語默動靜과 縱橫妙用을 一一覷破(처)하야 作不是法도 亦得이니 奈爲如此(내)오
그렇다면 산하대지와 초목총림을 하나하나 집어내어 일체법이라고 하여도 또한 옳은 것이요,
어묵동정과 종횡묘용을 하나하나 看破하여 이것이 법이 아니라고 하여도 또한 옳은 것이니 어찌하여 이와 같은가?
[伊 저 이, 麽잘 마, 則 곧 즉, 법 칙, 將 장수 장, 장차 장, 叢 모일 총, 떨기 총, 拈 집을 념, 默 잠잠할 묵, 靜 고요할 정, 覷 엿볼 처, 破 깨뜨릴 파, 奈 어찌 내, 此 이 차]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세먼지와 작은 세포에서부터 산천초목과 산하대지와 저 드넓은 우주에 꽉 차있는 무한한 은하계의 수많은 별들에 이르기까지 모두를 법이라 해도 맞고, 또 그것들을 법이 아니라 해도 맞는 말입니다.
‘왜 그렇게 모순된 말을 하는가?’ 그 까닭은 아래에 설명하였습니다.
'법성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법성게(法性偈)와 법계도(해인도)무비스님 해설 6 (0) | 2021.04.12 |
---|---|
법성게(法性偈)와 법계도(해인도)무비스님 해설 5 (0) | 2021.04.12 |
법성게(法性偈)와 법계도(해인도)무비스님 해설 4 (0) | 2021.04.12 |
법성게(法性偈)와 법계도(해인도)무비스님 해설 3 (0) | 2021.04.12 |
법성게(法性偈)와 법계도(해인도) 무비스님 해설 1 (0) | 2021.04.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