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상조사법성게(義湘祖師法性偈)

 

법성원융무이상  제법부동본래적  무명무상절일체 法性圓融無二相  諸法不動本來寂  無名無相絶一切

 

법의성품 원융하여 두모습이 아니로다 모든법은 변함없어 본래가  고요하고 이름없고 모양없어 일체가~ 다없는데

 

증지소지비여경  진성심심극미묘  불수자성수연성 證智所知非餘境  眞性甚深極微妙  不守自性隨緣成

 

지혜자는 깨닫지만 범부들은 알수없네 미묘하고 깊고깊은 참다운~ 법성이여 자기성품 못지키고 인연따라 일어나나

 

일중일체다중일  일즉일체다즉일  일미진중함시방 一中一切多中一  一卽一切多卽一  一微塵中含十方

 

하나속에 모두있고 모두중에 하나있어 하나가 모두이고 모두가 하나이니 한 티끌 작은속에 시방세계 담겨있고

 

일체진중역여시  무량원겁즉일념  일념즉시무량겁 一切塵中亦如是  無量遠怯卽一念  一念卽是無量劫

 

낱낱이 티끌마다 온세계가 들어있네 끝이없는 오랜세월 한순간의 생각이고 한생각의 순간속에 무량세월 머금으니

 

구세십세호상즉  잉불잡란격별성  초발심시변정각 九世十世互相卽  仍不雜亂隔別星  初發心時便定覺

 

삼세속에 또삼세가 엉킨듯한 모양이나 섞여있지 아니하고 따로따로 이뤄졌네 처음으로 발심한때 부처자리 다름없고

 

생사열반상공화  이사명연무분별  십불보현대인경 生死涅槃相共和  理思冥然無分別  十佛普賢大人境

 

생과사와 열반경계 구분없는 한몸이니 진리이치 자연현상 분별됨이 없음이니 열부처님 보현보살 대인들의 경지일세

 

능인해인삼매중  번출여의부사의  우보익생만허공 能人海印三昧中  繁出如意不思議  雨寶益生滿虛空

 

석가모니 부처님의 해인삼매 나툼이여 자라나는 여의진리 부사의한 법이로다 중생위한 보배비는 허공중에 가득한데

 

중생수기득이익  시고행자환본제  파식망상필부득 衆生隨器得利益  是故行者還本際  叵息妄想必不得

 

중생들은 근기따라 이익들이 얻어지네 수행자여 이도리를 깨닫기를 원한다면 육식망상 깨뜨리고 얻으려를 하지마라

 

무연선교착여의  귀가수분득자량  이다라니무진보 無緣善巧捉如意  歸家隨分得資量  以陀羅尼無盡寶

 

망연끊고 선한방편 여래의지 정진하여 자신들의 근기따라 본래마음 찾아가세 그러므로 이다라니 한량없는 보배이니

 

장엄법계실보전  궁좌실제중도상  구래부동명위불 莊嚴法界實寶殿  窮坐實際中道床  舊來不動名爲佛

 

온법계를 장엄하여 보배로운 궁전짓고 중도의도 깨달음을 해탈하여 앉게되면 옛날부터 변함없이 그이름이 부처로다

法性偈 禪解 -  

1. 華嚴經-

화엄경은 본래의 이름이 大方廣佛華嚴經입니다. 크고 바르고 넓은 이치를 깨달은 부처님이 이타적인 보살행으로 세상을 곱고 향기로운 꽃과 같이 살기 좋은 곳으로 평화롭고 아름답게 장엄하는 가르침이라는 뜻입니다.

화엄경의 大旨=正覺=바른 깨달음의 눈에 비친 세상과 인생을 밝히고, 보살행으로 모든 중생을 제도하고 교화하자는 내용 先明始成正覺하고 後顯菩薩行願

 

1. 華嚴經 -

부처님이나 보살들이 깨달음의 안목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세상은 본래그대로 원만하고 원융무애하며 완전무결하여 아무런 장애와 거리낄 것이 없는 곳으로,  마디로 事事無礙의 세상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화엄경은 어떤 법을 설하든지 시간도 공간도 사물도 보살수행도 중생제도 모두가 걸림이 없고, 장애가 없이 원융무애하게 펼쳐 보이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내용을 필자는 간략히 정리하여, “아름다워라 세상이여, 환희로워라 인생이여 , 이대로가 화장장엄세계요, 이대로가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인 것을. 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무상심심한 깨달음의 뜻은 그와 같이 주문처럼 짧게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아쉬워서 처음에는 10 9 5 48, 長廣舌로 설하였으나 후인이 간략히 생략하여 소위 略本 화엄경인 39품의 81권으로 요약하였습니다.

그런데 81권의 화엄경도 너무 많다고 여겨져서 신라의 의상스님은 210자로 간추리고, 다시 그림을 더하여 華嚴符籍인 法界圖로써 방대한 화엄경을 대신하게 것입니다.

 

1. 華嚴經 -

청량스님이 화엄경을 간략하게 소개한 글; “화엄경의 설법은 깊고 멀고 아득하며, 너무나 미세해서 숨어버린 듯이 작은 것들까지도 나누고 쪼개어 분석하였고, 마음의 문제와 외의 다른 경계들을 남김없이 환하게 밝혔으며, 일체 존재의 모든 이치를 끝까지 궁구하고, 본성을 철저히 밝혔으며, 모든 일의 원인과 결과까지를 속속들이 드러냈으며, 태평양 바닷물이 하늘가득 넘실대듯이 하여, 넓고 크게 모든 것을 갖춘 가르침은 오직 대방광불화엄경이로다.        

剖裂玄微하고 昭廓心境하며 窮理盡性하고 徹果該因하며

汪洋沖融하고 廣大悉備者는 其唯大方廣佛華嚴經焉인저

[裂 찢을 렬 /廓 둘레 곽 / 該 그 해, 그 개, 갖출 해, 마땅 해 /沖 빌 충, 화할 충, 찌를 충 / 焉 어찌 언, 어조사 이 / 汪 넓을 왕, 고을 이름 왕]

 

2. 法界圖 -

華嚴一乘法界圖 신라의 의상스님이 화엄경을 깊이 공부하고 나서 210개의 글자와 여러 개의 네모가 그림을 그려서 화엄경에서 밝힌 法界緣起 사상을 서술한 圖詩= 그림 시를 말합니다.

法性圓融無二相에서 시작하여 舊來不動名爲佛 끝나는 7 30 偈頌으로 법계연기사상의 요체 서술하였는데, 중앙에서부터 시작하여 54번을 굴절시킨 다시 중앙에서 끝나는, 치밀하게 의도된 非對稱의 도형 되도록 하였습니다.

법계도의 형태는 원래 흰색바탕에 검은색의 글씨 게송을 적고, 붉은색의 선이 게송의 진행방향을 나타내는 것이었는데요. 흰색은 물질세계인 器世間, 검은색은 수행의 주체인 衆生世間, 붉은색은 깨달음의 세계인 智正覺世間 상징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깨달음의 경지에 나타난 우주 전체를 드러냈다는 점에서 법계도는 바다에 삼라만상이 도장을 찍은 듯이 나타난다는 海印圖”라고도 합니다.

 

2. 法界圖 -

계도의 형태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모습을 취한 것은 석가모니부처님의 가르침이 하나의 진리인 것을 상징한 것이고, 많은 굴곡을 것은 중생들의 근기에 따라 가르침의 방편이 달라지는 나타낸 것입니다.

글자인 法과 글자인 佛의 글자는 각기 수행방편의 원인과 결과를 나타낸 것으로서 글자를 중앙에 것은 인과의 본성이 중도임을 보인 것입니다.  

법계도의 게송은 진리의 실재를 서술한 自利行 진리의 공덕을 서술한 利他行 그리고 진리를 증득하는 과정을 서술한 수행의 부분으로 구성.

자리행에서는 공간적으로 하나의 티끌과 우주가 相卽相入= 一微塵中含十方, 시간적으로 一念卽是無量劫= 순간이 영원과 상통한다는 화엄경의 사상을 함축적으로 드러내었습니다.

이타행에서는 진리를 깨달은 부처님의 공덕이 중생들에게 커다란 이익을 가져온다는 뜻을 노래하였습니다.= 雨寶益生滿虛空.

수행에서는 수행자가 망상이 본래 없음을 알고, 진리를 깨닫는 순간 중생은 본래부터 부처님인 것을 알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舊來不動名爲佛

의상스님은 이러한 사상이 “방편의 가르침인 3승과 구별되는 화엄 1승의 절대적 가르침”이라고 하였습니다.

 

2. 法界圖 -

법계도는 의상스님이 중국에 유학하여 중국 화엄종 2 조사인 智儼(602~668) 스님에게 수학할 때인 668년에 창작되었는데요. 화엄의 진리에 대하여 서술한 책을 불사른 , 타지 않고 남은 210개의 글자를 가지고 게송을 짓고 법계도를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게송의 많은 부분이 지엄스님의 사상에 기초하고 있지만, 중국 화엄학과 달리 수행을 중요시 하는 의상스님의 사상이 표현되고 있으며, 의상스님은 이법계도를 매우 중요시하여 제자들에게 법을 전해주는 인가의 표시로 수여하기도 하였습니다.

 

2. 法界圖 -

의상스님의 사상을 이은 신라의 화엄학은 주로 법계도에 기초하여 수행하며 법계도의 사상을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의상스님의 문도들이 법계도에 대해 연구한 내용은 華嚴一乘法界圖記叢隨錄에 수록되어 있으며,

고려 초의 均如(923~973)스님은 一乘法界圖圓通記 찬술하고,

조선 전기의 설잠스님 김시습은 華嚴一乘法界圖註 찬술하여 법계도의 사상을 설명하였습니다.

청량스님이 간단하게 설명한 법계의 뜻을 살펴보면, “가고 오는 것이 끝이 없으나 움직이고 고요함은 근원이 하나이다. 온갖 아름답고 미묘한 것을 포함하고 있으나 넉넉한 여유가 있고, 언어와 생각을 초월하여  멀리 벗어난 것은 오직 법계뿐이로다.

 

3. 義湘(625~702)스님 -

의상스님은 신라의 스님입니다. 속성은 김씨며 19세에 황복사에서 출가하였습니다. 당나라의 불교가 흥성함을 듣고 650 元曉스님과 함께 중국에 가려고 요동까지 가서, 원효스님은 무덤 사이에서 자다가 해골에 고인 물을 먹고 唯心의 도리를 깨달아 돌아오고, 의상스님은 당나라에 가서 처음 양주에 있다가 662 종남산 지장사 지엄스님에게서 賢首(643~712)스님과 함께 화엄경을 연구하였습니다.

무렵 당나라에서 신라의 사신 金欽純을 옥에 가두고 신라를 침범하려 하자 스님은 670 본국에 돌아와 사실을 보고하였습니다. 이에 문무왕이 神印宗의 明朗법사를 청하여 기원하여 무사하였다고 합니다.

 

3. 義湘(625~702)스님 -

676 태백산에 부석사를 창건하였고, 현수스님이 華嚴經探玄記를 짓고 副本을 보내면서 편지를 보낸 것이 지금까지 유전하고 있습니다. 화엄종의 10찰을 짓고 화엄경을 크게 전파하여 3국유사의 義湘傳敎條에 수록된 6 사찰은

①태백산의 浮石寺

②원주의 毘摩羅寺

③가야산의 海印寺

④비슬산의 玉泉寺

⑤금정산의 梵魚寺

⑥南岳(지리산) 華嚴寺 등입니다.    

 

3. 義湘(의상, 625~702)스님 -

崔致遠이 찬술한 法藏和尙傳에 실린 10 사찰은

①中岳公山의 美理寺

②남악 지리산의 華嚴寺

③북악 浮石寺

④康州 가야산 海印寺및 普光寺

⑤熊州 迦耶峽 普願寺

⑥계룡산 岬寺

⑦良州 금정산 梵魚寺

⑧비슬산 玉泉寺

⑨전주 母山 國神寺

⑩漢州 貧兒山 淸潭寺 등입니다.

저서로는 華嚴一乘法界圖 入法界品抄記 大華嚴十門看法觀 白花道場發願文등이 있습니다.

聖德王(?~737) 1년에 세수 78세로 입적하셨으며 해동 화엄종의 初祖 자리 매김합니다.

도제로는 悟眞스님, 智通스님, 表訓스님, 眞定스님, 眞藏스님, 道融스님, 良圓스님, 相源스님, 能仁스님, 義寂스님 등이 유명하여 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

 

4. 雪岑(설잠, 1435~1493)스님 -

본관은 강릉 金氏이며, 忠順衛를 지낸 金日省의 아들로서 字는 열경이며, 호는 梅月堂ㆍ東峰ㆍ碧山淸隱ㆍ贅世翁(). 출가 법명은 雪岑입니다.( 봉우리 )

수양대군의 端宗 대한 왕위 찬탈에 불만을 품고 은둔생활을 하다가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으며, 벼슬길에 오르지 않았습니다.  일설에는 그가 死六臣의 시신을 몰래 수습하여 경기도 노량진 사육신공원에 암장했다고 합니다.

설잠스님은 조선 500년에서 제일가는 천재로 꼽힙니다. 5 이미 詩文에 뛰어나서 세종대왕의 무릎위에 앉아 귀여움을 독차지 했으며, 성장해서는 生六臣의 신분으로 출가하여 비구가 되어 孤高하게 일생을 마친, 특별한 삶을 사신 분입니다. 1493 충청도 부여 무량사에서 59세를 일기로 入寂하셨으며 무량사에는 지금도 스님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4. 雪岑(1435~1493)스님 -

설잠스님의 詩文과 파란만장한 생애에 대한 이야기는 무수히 많습니다. 특히 禪文에 능통하여 법성게를 모두 선사의 안목으로 해석한 華嚴一乘法界圖註 남겼는데, 늦게나마 이렇게 소개할 있어서 다행이라고 여깁니다.

이제 법성게주해에서 스님의 특별한 견해와 안목을 살펴보기로 하고 끝으로 스님의 수를 소개하여 그의 문학성을 느껴보기로 하겠습니다. 외에는 번거로움을 피하여 모두 생략하겠습니다.

半輪新月上林梢()     山寺昏鍾第一鼓(산사혼종제일고)

淸影漸移風露下   一庭凉氣透窓凹()

새로 돋은 반달이 나뭇가지 위에 뜨니, 산사의 저녁종이 울리기 시작하네.

달그림자 아른아른 찬이슬에 젖는데, 뜰에 서늘한 기운 창틈으로 스미네.

 

法性偈 禪解 - 법성게 선해

1. 法界圖의 서문 -

大華嚴法界圖註

淸寒比蒭 雪岑撰(청한비추 설잠찬)

의상스님이 대방광불화엄경에서 보인 法界= 법계연기의 세계 다시 게송과 그림으로 나타낸 것을 설잠스님이 주해를 내고 서문을 글입니다.

淸寒= 맑고 깨끗하여 탐욕이 없으며 가난하고 쓸쓸하다는 .

比蒭필추= 比丘를 그렇게도 씁니다.

비구란 범어에서 苾芻(필추)(픽추)ㆍ比呼라고 하는데. 乞士ㆍ鋪馬(포마)ㆍ破惡ㆍ除饉ㆍ勤事男이라 번역합니다.

남자로서 출가하여 걸식으로 생활하는 승려로 250계를 받아 지니는 것입니다.

걸사 = 비구는 항상 밥을 빌어 깨끗하게 생활하는 것이니, 위로는 법을 빌려 지혜의 목숨을 돕고, 아래로는 밥을 빌어 몸을 기른다는 뜻입니다.

破惡= 戒ㆍ定ㆍ慧 3학을 닦아서 見惑ㆍ思惑 끊는다는 .

除饉제근= 戒行이라는 좋은 福田 있어서 능히 물자를 내어 인과의 흉년을 제한다는 뜻입니다.(흉년들 근)

勤事男근사남= 계율의 행에 노력하여 부지런하다는 뜻입니다( 부지런할 근)

 

1. 法界圖의 서문 -

夫大華嚴(부대화엄)의 華藏法界者(화장법계자)는 以虛空(이허공)으로 爲體(위체)하고 以法界(이법계)로 爲用(위용)하며 

以遍一切處(이편일체처로)로 爲佛(위불)하고 以緣起法體(이연기법체)로 爲衆會(위중회)하야

說圓滿修多羅(설원만수다라)하니라

저 대화엄의 화장법계라는 것은 허공으로 본체를 삼고, 법계로 작용을 삼으며, 일체처소에 두루 함을 부처님으로 삼고, 연기법의 자체로서 대중들의 모임을 삼아서 원만한 경을 설한 것이다.

여기에서 大華嚴이란 경문이 아무리 많더라도 문자로 경전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드넓은 우주법계와 은하계와 일체삼라만상과 미세한 세포들에 이르기까지 안에 존재하는 모든 유정무정과 그것들이 펼쳐내는 온갖 작용까지를 포함하여 大華嚴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大華嚴에 화장장엄법계가 있는데, 화장장엄법계는 허공으로써 본체를 삼고 허공과 함께 펼쳐진 만유제법인 법계로써 작용을 삼습니다.

 

1. 法界圖의 서문 -

법계란 무엇일까요? 청량스님은 이렇게 밝혔습니다.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일이 끝이 없으나 움직이고 고요함은 근원이 하나로다.  온갖 미묘함을 함유하고 있으나 여유가 있고,  말과 생각을 초월하여 멀리 벗어난 것은 오직 法界뿐이로다.

往復이 無際나 動靜은 一源이라  含衆妙而有餘하고 超言思而迥出者는  其唯法界歟며( 어조사 , )

大華嚴에서 부처님 드넓은 우주법계와 은하계와 일체삼라만상 어디에도 두루 하지 않는 곳이 없는 법의 성품으로 부처님을 삼습니다.

물론 속에는 2600 , 인도 땅에 출현하셨던 역사적인 부처님과 법당 안에 계시는 등상불이나 사람ㆍ사람들의 가슴 안에 모시고 있는 부처님까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 法界圖의 서문 -

  화엄경을 설할 모여 많은 법회청중들은 누구ㆍ누구인가요?

또한 大華嚴 입장에서 보면 경전에서 설한 무수한 보살들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체존재의 緣起法의 자체로서 대중들의 모임을 삼습니다. 한편 경전에서 설한 무수한 보살들이 연기법의 작용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緣起法이란 우리가 사는 지구와 우주와 은하계와 일체삼라만상과 미세한 세포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같이 연관관계를 맺고, 더불어 같이한다는 존재원리입니다. 일체존재의 존재원리인 연기법이 화엄법회의 청중들입니다.

위와 같은 화장법계와 모든 곳에 두루한 부처님과 연기법으로서 법회청중을 삼아 조금도 결함이 없이 원만하고 완전무결한 경전을 설하게 것입니다. 실은 특별히 설하는 것이 있어서가 아니라, 모든 존재들의 현재 그대로인 것을 두고 깨달음의 눈으로 보아서 “원만한 경전을 설한다.”라고 것입니다

 

1. 法界圖(법계도) 서문 -

敎(교)에 所謂刹說塵說(소위찰설진설)과 三世一時設(삼세일시설)이 是也(시야)요

화엄경의敎= 가르침에서이른바“국토가설하고티끌이설하며, 부처님이설하고보살이설하며, 과거ㆍ현재ㆍ미래가일시에설한다.”라고 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화엄경에는 법을 설하는 분들로서 부처님으로부터 보살과 온갖 선지식이 등장하여 법을 설하고 있지만, 광명을 놓으면 광명이 설하기도 하고, 광명에 나타난 온갖 사물이 설하기도 하고, 나무나 새들이 설하기도 하고, 누각이 설하기도 하는 경전에 등장하는 모든 것이 설하는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문자로 경전의 내용이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우주적 대화엄’의 입장에서 보면 국토와 국토가 그대로 설법을 하고, 먼지와 먼지가 모습그대로 설법을 하고, 별들은 별들대로 설법을 하고, 청산은 청산대로 녹수는 녹수대로 이미 그대로 설법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특정한 장소에서 특정한 시간에만 설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언제 어디서나 일시에 설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화엄경의 진정한 설법은 시간적으로는 항상 설한다고 하여 常說이라 하고, 공간적으로는 어디서나 설한다고 하여 徧說이라 합니다.

 

1. 法界圖의 서문 -

法界圖者(법계도자)는 以一海印圖(이일해인도)로 圓攝無邊之敎海(원섭무변지교해)하니( 그림 도)

圖中(도중)에 所謂一中一切多中一(소위일중일체다중일)과 一卽一切多卽一(일즉일체다즉일)이 是也(시야)라

법계도라는 것은 하나의 해인도로서 무궁하고 무변한 가르침의 바다를 원만하게 포섭한 것이다. 법계도 가운데 이른바 “하나가운데 일체며 많은 가운데하나다.”라고 한 것과 “하나가 곧 일체며 많은 것이 곧 하나다.”라고 한 것이 이 것이다.

법계도를 해인도라고도 부릅니다. 법계도는 너무나 많이 알려져 있어서 사찰에서나 세속에서나 매우 쉽게 있는 그림입니다. 비록 단순한 그림 장이지만 8만대장경을 포함하고 있는 화엄경의 가르침을 다시 남김없이 나타내고 있습니다

 

1. 法界圖의 서문 -

마치 작은 먼지 하나가운데 세계와 우주법계의 모든 정보를 지니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또한 마치 요즘 컴퓨터나 스마트폰의 손톱만한 하나에 수만 권의 책과 수만 종류의 음악과 수만 편의 영화 등을 지니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또한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세포하나 속에 사람의 모든 정보를 지니고 있어서 세포 하나로 똑같이 복제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필자는 칩을 때마다 법계도를 연상하게 됩니다. 생긴 모양도 비슷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이치를 화엄경에서는 2600 전에 이미 “하나가운데 일체를 지녔으므로 일체가 하나다.”라고 하였으니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미생물들이 없는 듯이 보이지만 모든 공간에 있는 것을 오늘날 현미경으로 봅니다.

부처님은 “하나의 물방울 안에 84000 마리의 벌레가 있다= 吾觀一滴水 八萬四千蟲오관일적수 팔만사천충이라고 하였으니 또한 얼마나 밝은 깨달음의 현미경입니까?

 

1. 法界圖의 서문 -

東土동토에 義湘法師의상법사가 始製此圖시제차도는 表三世間十法界표삼세간십법계의

莊嚴無盡之義장엄무진지의하야 冥蒙이용명몽이어늘

동토의 의상법사가 처음 이 그림을 만든 것은 3세간과 10법계의 장엄하고 다함이 없는 뜻을 나타내어 蒙昧한 사람을 引導한 것이다.

[ 들창 / 어두울 / 입을 ]

신라의 의상법사가 우리가 살고 있는 국토, 器世間 일체중생들이 사는 衆生世間 모든 부처님들이 사는 智正覺世間 지옥ㆍ아귀ㆍ축생ㆍ아수라ㆍ인간ㆍ천상ㆍ성문ㆍ연각ㆍ보살ㆍ부처님까지의 10법계를 나타내어 무지몽매한 중생들을 깨우친 것은 그림보다 나은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돌아가신 사람들을 천도할 수차에 걸쳐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또한 염불로써 깨우쳐 드리고, 유족들이 亡者를 대신해서 복을 지어드리다가도 마지막 49재에 이르러 전송할 때는 반드시 法界圖를 돌며 法性偈를 독송하여 천도해 드립니다.   돌아가신 분을 천도해 드리는데 가장 단위가 높은 법을 사용한다는 뜻입니다. 이보다 높은 법은 없기 때문입니다.  

 

1. 法界圖의 서문 -

專門舊學전문구학이 重演流布중연유포하야 辨記錄鈔변기록초가

遍滿世間편세간하니 誕生王子탄생왕자나 已爲庶人矣()로다[ 분별할 변, 갖출 판,  두루 편,  어조사 의 ]

전문의 구학이 거듭 敷演하고 유포하여 辨記와 錄鈔가 세간에 두루 가득하게 되었으니, 왕자로 탄생하였으나 이미 庶人이 된 것이다.

[ , 노략질할 , ]

법계도와 법성게를 풀이하고 설명하고, 강설한 글들이 설잠스님 때까지만 해도 세상에는 가득하였다. 그리고 오늘날 한글로 풀이한 책만 하더라도 10종이 되며, 또한 불교를 언급하는 사람치고 법성게를 설명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참으로 어렵고도 귀한 것인데 아무나 그리고 아무렇게나 설명하다 보니 본래의 뜻을 흐려 놓은 것이, 예컨대 처음에는 왕자로 태어났으나 이제는 어디서나 만날 있는 서민이 되고 것과 같은 격입니다.

 

1. 法界圖의 서문 -

原夫華藏之界원부화장지계는 本無些子限量본무사자한량하고 華嚴之佛화엄지불도

亦無些子說法역무사자설법이라 但居無事田地단거무사전지하야 弄他無事活計而농타사활계이로대

대저 화장세계를 궁구해보면 본래 조그마한 한계나 한량도 없고, 화엄경의 부처님 또한 조그마한 설법도 없다. 단지 일없는 땅에 머물러 저 일없는 살림살이를 농락할 따름이다.

[ 적을 , 어조사 , 희롱할 ]

진정한 화장장엄세계란 생각마저 사라진 경지입니다. 무슨 휘황찬란한 경계가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화엄경에서 설하고 있는 많고 많은 세계들은 무엇일까요? 본래 아무런 일없는 본래의 자리에서 실없이 펼쳐 보이며, 흥겨워서 멋대로 솜씨 있게 마음대로 그려 보이는 일들일 뿐입니다.

 

1. 法界圖의 서문 -

화엄경의 부처님도 본래 마디의 말도 설할 것이 없건만, 설할 것이 없는 데서 마음껏 설하여 즐거움을 주고 감동을 주어 대중들로 하여금 울고 웃게 것일 뿐입니다.

화엄경을 읽는 사람들은 모름지기 이와 같은 안목과ㆍ이와 같은 자세와ㆍ이와 같은 견해로 읽어서 어떤 화장장엄세계를 보거나, 어떤 횡설수설을 읽더라도 이끌리지 것이며, 집착하지 것이며, 미혹하지 말아야 것입니다

 

1. 法界圖의 서문 -

只緣一眞淨界지연일진정계를 俄然晦昧아연회매할새 遂有一念수유일념하야 分彼分我분피분아하니

彼我旣立피아개립에 取捨便記취사편기하고 才有取捨之心재유취사지심에 便成十法之界편성십법지계라

다만 하나인 진실한 청정법계= 一眞淨界를 문득 미혹하게 된 탓으로, 드디어 한 생각이 있게 되어 상대를 나누고 나를 나누게 되니, 상대와 내가 이미 대립함에 취하고, 버림이 바로 일어나고, 겨우 취하고 버리는 마음이 있자마자 곧바로 열 가지의 법계가 성립된 것이다.

[ 다만 , 잠시 , 아까 어둡다, 드디어 , 따를 ,便 편할 ]

망상에 사로잡힌 미혹한 중생들은 부처와 중생이 본래로 평등하게 갖춘 一眞法界를 알지 못하여 나와 너를 분별하고, 주관과 객관을 나누어서 나는 취하고 너는 버리며, 주관은 취하고 객관은 버리는 못된 습관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나아가서 너와 내가 나누어지므로 가지 성인의 경지인 부처님과 보살과 연각과 성문과, 여섯 가지 범부의 경지인 지옥과 아귀와 축생과 인간과 천신과 아수라가 생겨나서, 이리분별하고 저리취하고 버리는 일로 중생들의 살림살이를 삼게 되었습니다. 어찌하겠습니까? 이미 우리는 이와 같은 진흙탕 속에서 그것이 사람이 사는 일이라고 여기며 더욱 깊이 빠져들고 있는 것을...

 

1. 法界圖의 서문 -

於無事中어무사중에 瞥然生事별연생사하야 不動之佛부동지물이

動於無動之際동어무동지하고 圓融之法원만지법이 㭊於不二之內석어불이지내하니

일이 없는 가운데서 별안간 일을 만들어 움직이지 않는 부처가 움직임이 없는 경계에서 움직이고, 원융한 법이 둘이 아닌 가운데서 쪼개졌도다.

[ 언뜻볼 별,  가를 , 처녑 , 쪼갤 석]

모든 인생사는 본래 일이 없는데서 문득 일을 만들어 예로부터 움직이지 않고도 본래부처이건만, 움직임이 없는 경계를 움직이게 하고, 원융하여 둘이 없고 분별이 없는데서 분별을 일으켜 둘로 셋으로 넷으로 끝없이 나누어져서 이와 같은 세상이 펼쳐지게 것입니다.

 

1. 法界圖의 서문 -

則衆生之佛즉중생지불은 依業識以出世의업식이출세하고

佛之衆生불지중생은 昧惠身而取捨매혜신이취사하야 轉轉上味전전상매하야 至于今日지우금일이라

중생인 부처는 업 식에 의지하여 세상에 나오고, 부처인 중생은 몸을 망각하고 취사하여 갈수록 길을 잘못 들어 오늘에 이른 것이다.

[ 어두울 / 은혜 혜]

부처니 중생이니 하는 것은 본래 하나에서 가지 이름을 사용할 뿐입니다. 가지 이름을 사용하게 되는가요? 흔히 식으로 세상을 활보하면 그것을 중생이라 하고, 하는 일마다 지혜와 자비로 불쌍한 생명을 향한 자비 행을 하면 그것을 부처님이라 합니다.

그러나 식으로 세상을 활보하더라도 오롯이 부처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부처가 아니고서야 어찌 식을 작동할 있겠습니까? 식을 작동할 있는 그가 부처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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