⑧ 作用의 動靜 여래 정각 작용의 동과 정
如來가 成正覺時에 以一相方便으로 入善覺智三昧하고 入已에 於一成正覺廣大身에 現一切衆生數等身하사
여래 성정각시 이일상방편 입선각지삼매 입이 어일성정각 광대신 현일체중생수등신
住於身中하나니 如一成正覺廣大身하야 一切成正覺廣大身도 悉亦如是하니라 佛子야 如來가
주어신중 여일성정각광대신 일체성정 각광대신 실역여시 불자 여래
有如是等無量成正覺門일새 是故로 應知如來所現身이 無有量이니 以無量故로 說如來身이 爲無量界하야 等衆生界니라
유여시등 무량성정각문 시고 응지여래 소현신 무유량 이무량고 설여래신 위무량계 등중생계
如來가 成正覺時에 여래가 정각을 이루실 때에
以一相方便으로 入善覺智三昧하고 한 모양의 방편으로 선각지삼매에 드시고,
入已에 於一成正覺廣大身에 (삼매에) 들어가셔서는 성정각의 한 광대한 몸에서
現一切衆生數等身하사 住於身中하나니 일체중생 수와 같은 몸을 나타내시어 그 몸 가운데에 머무시며,
如一成正覺 廣大身하야 성정각의 한 광대한 몸에서와 같이
一切成正覺 廣大身도 悉亦如是하니라 모든 성정각의 광대한 몸에서도 모두 그렇게 하시느니라.
여래가 바른 깨달음을 이룰 때의 한 모양 방편=一相方便이란 모양이 없음이다. 바른 깨달음에 무슨 모양이 있겠는가. 그와 같은 방편으로 잘 깨닫는 지혜의 삼매에 든다. 삼매에 들고는 바른 깨달음을 이룬 한 광대한 몸에서 일체 중생의 수와 같은 몸을 나타낸다. 한 몸에서와 같이 일체의 몸에서도 다 또한 이와 같다.
佛子야 如來가 有如是等 無量成正覺 門일새 불자여, 여래는 이렇듯 한량없는 성정각의 문이 있으시기에
是故로 應知 如來所現身이 無有量이니 그러므로 여래가 나투시는 몸이 한량없는 것이며,
以無量故로 說如來身이 爲無量界하야 한량이 없는 까닭에 여래의 몸이 한량없는 경계요
等衆生界니라 중생계와 같다고 말하는 것이니라.
⑨ 周徧法界 여래 정각은 법계에 두루하다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應知如來身一毛孔中에 有一切衆生數等諸佛身이니 何以故오 如來成正覺身이 究竟無生滅故라
불자 보살마하살 응지여래신 일모공중 유일체중생 수등제불신 하이고 여래성정각신 구경무생멸고
如一毛孔이 徧法界하야 一切毛孔도 悉亦如是하니 當知無有少許處空도 無佛身이니 何以故오 如來가 成正覺에
여일모공 변법계 일체모공 실역여시 당지무유 소허처공 무불신 하이고 여래 성정각
無處不至故로 隨其所能하며 隨其勢力하야 於道場菩提樹下師子座上에 以種種身으로 成等正覺이니라
무처부지고 수기소능 수기세력 어도량보리수하 사자좌상 이종종신 성등정각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應知 如來身 一毛孔中에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여래 몸의 한 모공 속에
有 一切衆生數等 諸佛身이니 일체중생의 수와 같은 부처님 몸이 있는 줄을 알아야 하나니,
여래의 몸은 불가사의하게도 한 모공 속에 일체중생의 수효와 같은 모든 부처님의 몸이 있다. 그와 같이 한 사람의 몸속에도 1백조의 세포중생이 있다. 여래의 모공도 일체중생들의 몸도 참으로 모두가 불가사의하다. 그래서 법성게에 “한 먼지 속에 시방세계가 있고 일체 모든 먼지마다 다 그렇다.”라고 한 것이다. 여래 정각은 법계에 두루하기 때문에 이와 같이 설한다.
何以故오 如來成正覺 身이 究竟 無生滅故라 왜냐하면 여래의 정각이루신 몸은 구경에 생멸이 없기 때문이니라.
如一毛孔이 徧法界하야 한 모공이 법계에 두루 하듯이 一切毛孔도 悉亦如是하니 일체의 모공도 다 그와 같아서
當知 無有少許 處空도 無佛身이니 어떠한 작은 허공에도 부처님 몸 없는 데가 없는 줄을 알아야 하나니,
여래의 바른 깨달음을 이룬 몸은 끝까지 생멸이 없으며, 또 한 모공이 법계에 두루 하듯이 일체 모공도 다 또한 그러하다. 또 어떤 공간도 부처님의 몸이 없는 데가 없다. 이것이 여래의 바른 깨달음의 몸이다.
何以故오 如來가 成正覺에 無處不至故로 그것은 여래의 정각을 이루심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에
隨其所能하며 隨其勢力하야 그 가능함에 따라, 그 세력에 따라
於道場菩提樹下 師子座上에 도량의 보리수 아래 사자좌 위에서
以種種身으로 成等正覺이니라 갖가지 몸으로 등정각을 이루시느니라.
여래가 바른 깨달음을 이루는 것은 이르지 않는 데가 없기 때문이며, 또한 그 능함을 따르고 그 세력을 따라서 도량의 보리수 아래 사자좌 위에서 갖가지의 몸으로 바른 깨달음을 이루기 때문이다.
⑩ 周徧一切心 정각은 모든 마음에 널리 두루하다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應知自心에 念念常有佛成正覺이니 何以故오 諸佛如來가 不離此心하고 成正覺故라
불자 보살마하살 응지자심 념념상유 불성정각 하이고 제불여래 불리차심 성정각고
如自心하야 一切衆生心도 亦復如是하야 悉有如來가 成等正覺이니 廣大周徧하야 無處不有하며 不離不斷하야
여자심 일체중생심 역부여시 실유여래 성등정각 광대주변 무처불유 불리부단
無有休息하야 入不思議方便法門이니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應如是知如來成正覺이니라
무유휴식 입부사의 방편법문 불자 보살마하살 응여시지 여래성정각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應知自心에 念念常有 佛成正覺이니 자기 마음에 있는 부처가 순간순간마다 항상 정각을 이룬다는 것을 알아야 하나니,
모든 보살은 자기의 마음의 생각 생각마다 항상 부처님이 바른 깨달음을 이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체중생의 마음에서도 항상 부처님이 바른 깨달음을 이루고 있으며, 천지만물 삼라만상에서도 역시 부처님은 바른 깨달음을 이루고 있다. 이것이 여래의 바른 깨달음을 이루고 있는 경계이다.
何以故오 諸佛如來가 不離此心하고 왜냐하면 제불여래가 이 마음을 떠나지 않고
成正覺故라 정각을 이루셨기 때문이며,
如自心하야 一切衆生心도 亦復如是하야 자기의 마음과 같이 일체중생의 마음도 그와 같이
悉有如來가 成等正覺이니 다 여래가 있어 정각을 이루는 것이라
모든 부처님이 이 마음을 떠나지 않고 바른 깨달음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며, 부처님의 마음과 같이 일체 중생의 마음도 또한 그와 같아서 마음속에 다 여래가 있어 바른 깨달음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廣大周徧하야 無處不有하며 광대하고 두루하여 있지 않은 곳이 없으며,
不離 不斷하야 無有休息하야 여의지 않고 끊이지 않고 쉬는 일도 없이
入 不思議 方便法門이니 부사의한 방편법문에 들어가니,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應如是知如來成正覺이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이와 같이 여래의 성정각을 알아야 하느니라.
성정각은 모든 마음에 널리 두루하여 있지 않은 곳이 없으며, 여의지 않고 끊어지지 않으며, 휴식함도 없고 헤아릴 수도 없다.
⑪ 如來正覺의 重頌 게송으로 그 뜻을 거듭 밝히다
爾時에 普賢菩薩摩訶薩이 欲重明此義하사 而說頌言하사대
이시 보현보살마하살 욕중명차의 이설송언
正覺了知一切法이 無二離二悉平等하며 自性淸淨如虛空하사 我與非我不分別이로다
정각료지일체법 무이리이실평등 자성청정여허공 아여비아불분별
如海印現衆生身일새 以此說其爲大海인달하야 菩提普印諸心行일새 是故說名爲正覺이로다
여해인현중생신 이차설기위대해 보리보인제심행 시고설명위정각
譬如世界有成敗나 而於虛空不增減인달하야 一切諸佛出世間이나 菩提一相恒無相이로다
비여세계유성패 이어허공부증감 일체제불출세간 보리일상항무상
如人化心化作佛에 化與不化性無異인달하야 一切衆生成菩提에 成與不成無增減이로다
여인화심화작불 화여불화성무이 일체중생성보리 성여불성무증감
佛有三昧名善覺이라 菩提樹下入此定하사 放衆生等無量光하사 開悟群品如蓮敷로다
불유삼매명선각 보리수하입차정 방중생등무량광 개오군품여련부
如三世劫刹衆生의 所有心念及根欲하야 如是數等身皆現일새 是故正覺名無量이로다
여삼세겁찰중생 소유심념급근욕 여시수등신개현 시고정각명무량
爾時에 普賢菩薩摩訶薩이 欲重明此義하사 而說頌言하사대
이때 보현보살마하살이 이러한 뜻을 거듭 밝히고자 게송으로 말했다.
正覺了知 一切法이 無二離二悉平等하며 정각께서는 일체법을 요지하시어, 둘이 없고 둘을 여의시어 평등하시며
自性淸淨如虛空하사 我與非我不分別이로다 자성 청정하기 허공과 같으사, 나와 나 아님을 분별치 않으시네
여래의 모든 것 중에 바른 깨달음의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 그 바른 깨달음 때문에 여래의 출생도 신구의 삼업도 법륜을 굴림도 열반이 듦도 모두 빛을 발하게 된 것이다. 일체 법을 바르게 깨닫고 보니 눈에 보이는 온갖 차별이 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둘을 떠난 것도 없어서 모두가 평등하다. 일체 존재의 자성은 텅 비어 청정하기가 마치 허공과 같다. 세상은 온통 나와 나 아닌 것으로 보고 시시비비하는데 일체 존재의 실상을 깨닫고 보면 본래로 텅 빈 것을 그렇게 분별하고 차별할 것이 아니다.
如海印現衆生身일새 以此說其爲大海인달하야 바다가 일체중생의 몸을 나타내 보이니, 그로써 큰 바다라 말하듯이
菩提普印諸心行일새 是故說名爲正覺이로다 보리는 모든 심행을 두루 드러내니, 그러므로 이름하여 정각이라 하네
正覺(정각)=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다. 부처님이 부처님일 수 있는 것은 위없는 깨달음을 성취했기 때문이다. 이 깨달음은 부처님과 같은 특정한 사람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다 이룰 수 있다고 부처님은 가르쳤다. 그러면 부처님이 깨달았다고 하는 정각(正覺)의 내용은 무엇인가. 과연 부처님은 무엇을 깨달았기에 부처님이 되었는가. 이 문제에 대해 선언적(宣言的)으로 무엇이라고 밝혀 놓은 경전(經典)은 없다. 그러나 여러 가지 경전의 가르침을 종합하면 부처님이 깨달았다는 진리의 내용은 연기(緣起)의 법리(法理)로 요약할 수 있다. 연기란 모든 존재는 고정 불변하는 독립적 존재가 아니며 상자상의(相資相依)의 관계임을 밝힌 법리다. 연기의 법리가 고정 불변하는 독립적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인간과 세계를 사회적이며 역사적인 관계 위에서 파악해야 함을 뜻한다. 일체의 존재는 사회와 역사의 규정을 받으며 다시 사회와의 역사를 규정해 가는 관계 속에서 살고 있다. 인간이 역사적이며 사회적인 존재라는 것을 깨달은 부처님은 미망(迷妄)중생의 가치관인 아집과 탐욕을 부정했다. 협조와 조화만이 인간이 영원히 행복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부처님은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부처님은 그 깨달음이 진리라는 것을 실천을 통해 실증해 보인 것이다.
譬如世界有成敗나 而於虛空 不增減인달하야 세계가 이루어지고 무너지되, 허공은 늘거나 줄지 않듯이
一切諸佛出世間이나 菩提一相 恒無相이로다 일체제불이 세간에 출현하시되, 보리는 늘 한 모습으로 모양이 없네
모든 생명들은 생로병사하고, 계절은 춘하추동하고, 일체 사물, 지구와 모든 별들은 생주이멸과 성주괴공을 한다. 그러나 허공은 부증불감이다. 그와 같이 일체 모든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하시어 바른 깨달음을 이루었으나 그 깨달음은 상이 없는 한 모양이다.
如人化心化作佛에 사람의 변화하는 마음이 부처를 화작하지만
化與不化性無異인달하야 화하고 화하지 않은 성품이 다름 없듯이
一切衆生成菩提에 成與不成無增減이로다 일체중생이 보리를 이루지만, 이룸과 이루지 못함에 증감이 없네
부처님이란 사람이 마음을 변화하여 만든 것이다. 그런데 변화하고 변화하지 않은 마음이나 부처님은 그 본 성품이 다르지 않다. 일체 중생들이 깨달음을 이룸도 이루거나 이루지 않거나, 아무런 증감이 없다. 석가세존으로부터 모든 깨달음을 이루었다는 분들에 이르기까지 그 마음 그 모습에 아무런 더하거나 덜함이 없다.
佛有三昧名善覺이라 菩提樹下入此定하사 부처님께는 선각이라는 삼매가 있으시어, 보리수 아래서 이 선정에 드시고
放衆生等無量光하사 중생 수와 같은 한량없는 광명을 놓으사,
開悟群品如蓮敷로다 온갖 중생 깨우치시기를 연꽃이 피듯이 하시네
부처님에게는 참으로 훌륭한 삼매가 있다. 그것은 이름이 ‘잘 깨달았다.’라는 선각=善覺이다. 그 훌륭한 깨달음으로 깨달음의 나무 밑에서 선정에 들어 한량없는 지혜의 가르침이라는 광명을 놓으신다. 그 가르침으로 마치 연꽃을 피우듯이 일체 중생들을 깨닫게 하신다. 그 지혜의 가르침이라는 광명은 구체적으로 말하면 곧 우리가 읽고 있는 화엄경이다.
如三世劫刹衆生의 所有心念及根欲하야 삼세의 겁 동안 세계의 중생들이 지닌 마음과 근성과 욕락
如是數等身皆現일새 是故正覺名無量이로다 이와 같은 수의 몸을 다 나투시기에, 그러므로 정각을 무량이라 하네
여래는 바른 깨달음을 인하여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겁 동안의 모든 중생들 마음속에 지니고 있는 근성과 욕망과 그것에 적합한 무수한 몸을 다 나타내어 그들을 낱낱이 다 깨우친다. 그래서 여래의 바른 깨달음을 달리 ‘한량없음’이라 부른다.
(8) 如來出現의 轉法輪 여래의 법륜 굴림을 답하다
① 法輪의 體性 법륜의 체성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應云何知如來應正等覺의 轉法輪고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應如是知 如來가 以心自在力으로
불자 보살마하살 응운하지 여래응정등각 전법륜 불자 보살마하살 응여시지 여래 이심자재력
無起無轉하야 而轉法輪이니 知一切法의 恒無起故며 以三種轉으로 斷所應斷하야 而轉法輪이니
무기무전 이전법륜 지일체법 항무기고 이삼종전 단소응단 이전법륜
知一切法의 離邊見故며 離欲際非際하야 而轉法輪이니 入一切法의 虛空際故며 無有言說하야 而轉法輪이니
지일체법 이변견고 이욕제비제 이전법륜 입일체법 허공제고 무유언설 이전법륜
知一切法의 不可說故며 究竟寂滅하야 而轉法輪이니 知一切法의 涅槃性故니라
지일체법 불가설고 구경적멸 이전법륜 지일체법 열반성고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應云何知 如來應正等覺의 轉法輪고 어떻게 여래 응공 정등각이 법륜 굴리심을 알아야 하는가?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應如是知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하나니
如來가 以心自在力으로 無起無轉하야 여래는 마음의 자유자재한 힘으로써 일어남도 없고 굴림도 없이
而轉法輪이니 법륜을 굴리나니, 知一切法의 恒無起故며 일체 법이 항상 일어남이 없음을 아시기 때문이요,
여래의 법륜(法輪) 굴림을 답하는 내용이다. 먼저 법륜의 체성을 밝혔다. 여래는 마음의 자유자재한 힘으로써 일어남도 없고 굴림도 없이 법륜을 굴린다. 왜냐하면 본래로 일체 법은 항상 일어남이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以三種轉으로 斷所應斷하야 而轉法輪이니 세 가지 굴림으로써 끊을 것을 응당 끊고서 법륜을 굴리나니,
知一切法의 離邊見故며 일체 법이 치우친 소견=邊見을 떠났음을 아는 연고이니라
세 가지 굴림[三種轉]= 삼전법륜(三轉法輪)으로 시전(示轉)ㆍ권전(勸轉)ㆍ증전(證轉)이다. 세존이 세 번 4제(諦)의 교(敎)를 말씀한 것에서 출발한 내용이다. ① 시전= 이것은 고(苦), 이것은 집(集), 이것은 멸(滅), 이것은 도(道)라고 그 모양을 보인 것이다. ② 권전= 고(苦)를 알라, 집(集)을 끊으라, 멸(滅)을 증득하라, 도(道)를 닦으라고 권한 것이다. ③ 증전= 세존이 스스로 고를 알아 집을 끊고, 멸을 증득하려고, 도를 닦은 것을 보여 다른 이들로 하여금 증득케 하는 것이다.
일체 법은 본래로 어느 쪽이든 치우치지 않고 중도(中道)의 이치로 존재한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법륜을 굴림도 언제나 치우친 소견=邊見을 떠나서 법을 설한다.
離欲際非際하야 而轉法輪이니 욕심의 경계나 경계 아닌 것을 떠나, 법륜을 굴리시나니
入一切法의 虛空際故며 일체법의 공한 경계에 들어간 연고니라
여래의 법륜을 굴리는 데는 일체 법이 허공과 같이 텅 비었음을 알고 법륜을 굴린다. 법이 어떤 형태로 존재한다고 생각하여 굴린다면 그것은 여래의 진실한 법을 굴리는 일이 아니다.
無有言說하야 而轉法輪이니 말이 없이 법륜을 굴리나니,
知一切法의 不可說故며 일체 법이 말할 수 없음을 아는 연고이니라.
말이 없이 법륜을 굴리는 것은 일체 법은 본래로 말을 떠났고. 말을 떠났으므로 말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究竟寂滅하야 而轉法輪이니 끝까지 적멸하게 법륜을 굴리나니,
知一切法의 涅槃性故니라 일체 법이 열반의 성품임을 아는 연고이니라
아무리 법륜을 굴려도 끝까지 적멸하다. 왜냐하면 일체 법이 적멸한 열반의 성품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법은 본래부터 항상 스스로 적멸한 모습이다.”라고 하였다.
② 法輪의 相用 법륜의 상과 작용
以一切文字와 一切言語로 而轉法輪이니 如來音聲이 無處不至故며 知聲如響하야 而轉法輪이니 了於諸法眞實性故며
이일체문자 일체언어 이전법륜 여래음성 무처부지고 지성여향 이전법륜 요어제법 진실성고
於一音中에 出一切音하야 而轉法輪이니 畢竟無主故며 無遺無盡하야 而轉法輪이니 內外無着故니라
어일음중 출일체음 이전법륜 필경무주고 무유무진 이전법륜 내외무착고
以一切文字와 一切言語로 而轉法輪이니 온갖 글과 온갖 말로써 법륜을 굴리나니,
如來音聲이 無處不至故며 여래의 음성은 이르지 않는 곳이 없는 연고이며
법륜을 굴리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다. 묵묵히 있음으로써 굴리기도 하고, 꽃을 들어 굴리기도 하고, 손가락을 세워 굴리기도 하고, 고함을 쳐서 굴리기도 하고, 주장자를 내리쳐서 굴리기도 하고, 몽둥이로 사람을 때려서 굴리기도 하고, 문자와 언어로 굴리기도 한다. 그 모든 방법에서 여래의 음성은 이르지 않는 데가 없다.
知聲如響하야 而轉法輪이니 소리가 메아리와 같음을 알고 법륜을 굴리나니,
了於諸法 眞實性故며 모든 법의 진실한 성품을 깨달아 아는 연고이며
모든 법의 진실한 성품은 텅 비었음을 알기 때문에 법륜을 굴리는 온갖 방법이 모두 메아리와 같은 줄을 알고 법을 굴린다.
於一音中에 出一切音하야 而轉法輪이니 하나의 음성 가운데 일체의 음성을 내어서 법륜을 굴리나니,
畢竟無主故며 필경에 주재가 없는 연고이며
묵묵히 있는 가운데 온갖 법이 다 있으며, 꽃을 뜬 가운데 또한 일체 법이 다 있으며, 손가락을 세운 곳에 역시 온갖 법이 다 포함되어 있다. 고정된 주제가 없기 때문이다.
無遺無盡하야 而轉法輪이니 남김도 없고 다함도 없이 법륜을 굴리나니,
內外無着故니라 안과 밖에 집착이 없으시기 때문이니라.
법륜을 굴림에 있어서 남겨두거나 다함도 없다. 안과 밖에 집착이 없이 법륜을 굴리기 때문이다.
③ 體性과 相用의 譬喩 법륜의 체성과 상과 작용의 비유
佛子야 譬如一切文字語言이 盡未來劫토록 說不可盡인달하야 佛轉法輪도 亦復如是하야 一切文字로 安立顯示가
불자 비여일체 문자어언 진미래겁 설불가진 불전법륜 역부여시 일체문자 안립현시
無有休息하며 無有窮盡이니라 佛子야 如來法輪이 悉入一切語言文字호대 而無所住니 譬如書字가 普入一切事와
무유휴식 무유궁진 불자 여래법륜 실입일체 어언문자 이무소주 비여서자 보입일체사
一切語와 一切算數와 一切世間出世間處호대 而無所住인달하야 如來音聲도 亦復如是하야 普入一切處와 一切衆生과
일체어 일체산수 일체세간 출세간처 이무소주 여래음성 역부여시 보입일체처 일체중생
一切法과 一切業과 一切報中호대 而無所住하야 一切衆生의 種種語言이 皆悉不離如來法輪이니
일체법 일체업 일체보중 이무소주 일체중생 종종어언 개실불리 여래법륜
何以故오 言音實相이 卽法輪故니라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於如來轉法輪에 應如是知니라
하이고 언음실상 즉법륜고 불자 보살마하살 어여래전법륜 응여시지
佛子야 譬如 一切文字語言이 盡未來劫토록 불자여, 비유컨대 일체의 문자와 언어가 미래 겁이 다하도록
說不可盡인달하야 말하여도 다할 수 없듯이, 佛轉法輪도 亦復如是하야 부처님의 법륜 굴리심도 그와 같아서
一切文字로 安立顯示가 無有休息하며 無有窮盡이니라
일체의 모든 문자로 잘 정돈하여 나타내기를 쉬지 아니하여도 다할 수 없느니라
세상에는 문자도 여러 가지고 말도 여러 가지다. 문자와 말을 미래 겁이 다하도록 설해도 다할 수 없듯이 부처님의 법륜을 모든 문자로 정리하여 나타내는 일도 그 끝이 없다.
佛子야 如來法輪이 불자여, 여래의 법륜은
悉入 一切語言文字호대 而無所住니 모든 언어와 문자에 들어가되 머무는 일이 없나니,
譬如 書字가 普入 一切事와 마치 글자가 모든 일, 一切語와 一切算數와 모든 말, 모든 산수,
一切世間 出世間處호대 而無所住인달하야 일체 세간과 출세간에 두루 들어가되 머무름이 없는 것처럼
여래의 법륜이 모든 말과 문자에 다 들어갔지만, 법륜이 머무는 데는 없다. 즉 언어와 문자로 법륜을 표현한다하여도 언어와 문자에는 법륜이 없다. 비유하면 마치 글자가 모든 일과 모든 말과 모든 산수와 모든 세간과 출세간을 표현하여도 글자에는 그것이 없는, 다만 문자일 뿐이다.
如來音聲도 亦復如是하야 여래의 음성도 그와 같아서 普入 一切處와 一切衆生과 일체처, 일체중생,
一切法과 一切業과 一切報中호대 일체법, 일체의 업, 일체의 과보 안에 두루 들어가되
而無所住하야 머무는 일이 없느니라.
법을 설하는 여래의 음성도 또한 그와 같아서 모든 처소와 모든 중생과 모든 법과 모든 업과 모든 과보들을 두루 설명하지만, 여래의 음성에는 그와 같은 것이 없는 여래의 음성일 뿐이다.
一切衆生의 種種語言이 일체중생의 갖가지 언어가 皆悉不離 如來法輪이니 다 여래의 법륜을 벗어나지 않나니
何以故오 言音實相이 卽法輪故니라 왜냐하면 말소리의 실상이 곧 법륜이기 때문이니라.
일체 중생의 갖가지 말이 다 여래의 법륜을 떠나지 않고 함께 있다. 말과 음성의 실상이 곧 법륜이기 때문이다.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於如來 轉法輪에 應如是知니라 여래의 법륜 굴리시는 것을 마땅히 이와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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