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成就以後의饒益衆生 여래출현의 제 10相의 비유
復次佛子야 譬如三千大千世界가 旣成就已에 饒益無量種種衆生하나니 所謂水族衆生은 得水饒益하고
부차불자 비여삼천 대천세계 기성취이 요익무종종중생 소위수족중생 득수요익
陸地衆生은 得地饒益하고 宮殿衆生은 得宮殿饒益하고 虛空衆生은 得虛空饒益인달하야 如來出現도 亦復如是하야
육지중생 득지요익 궁전중생 득궁전요익 허공중생 득허공요익 여래출현 역부여시
種種饒益無量衆生하나니 所謂見佛生歡喜者는 得歡喜益하고 住淨戒者는 得淨戒益하고 住諸禪定及無量者는
종종요익 무량중생 소위견불 생환희자 득환희익 주정계자 득정계익 주제선정 급무량자
得聖出世大神通益하고 住法門光明者는 得因果不壞益하고 住無所有光明者는 得一切法不壞益이라 是故로
득성출세대신통익 주법문광명자 득인과불괴익 주무소유 광명자 득일체법불괴익 시고
說言如來出現에 饒益一切無量衆生이니라 佛子야 是爲如來應正等覺 出現第十相이니 菩薩摩訶薩이 應如是知니라
설언여래출현 요익일체 무량중생 불자 시위여래 응정등각 출현제십상 보살마하살 응여시지
復次佛子야 譬如三千大千世界가 旣成就已에 또 불자여, 마치 삼천대천세계가 이미 이루어지고는
饒益無量 種種衆生하나니 한량없은 온갖 중생을 이익케 하나니,
所謂 水族衆生은 得水饒益하고 소위 물에 사는 중생은 물의 이익을 얻고
陸地衆生은 得地饒益하고 육지의 중생은 땅의 이익을 얻고
宮殿衆生은 得宮殿饒益하고 궁전 중생은 궁전의 이익을 얻고
虛空衆生은 得虛空饒益인달하야 허공 중생은 허공의 이익을 얻듯이
우리가 사는 이 지구가 만들어진 뒤에 지구에 의지해서 살아가면서 이익을 보는 중생들이 얼마나 많은가. 예컨대 물에 사는 중생들은 물로 인해서 이익을 보고, 육지에 사는 중생들은 육지로 인해서 이익을 본다. 지구의 75%가 물이기 때문에 물에 사는 중생들이 육지에 사는 중생들보다 훨씬 많으므로 물의 중생들을 먼저 들은 것이다.
如來出現도 亦復如是하야 여래의 출현도 그와 같아서
種種饒益 無量衆生하나니 갖가지로 한량없는 중생을 이익케 하나니,
所謂 見佛 生歡喜者는 得歡喜益하고 소위 부처를 보고 기뻐하는 이는 기쁨의 이익을 얻고,
住淨戒者는 得淨戒益하고 청정한 계행에 머무는 이는 청정한 계율의 이익을 얻고,
住諸禪定과 及無量者는 모든 선정과 한량없는 데 머무는 이는
得聖出世 大神通益하고 성인이 출세하는 큰 신통의 이익을 얻고,
住 法門光明者는 得因果 不壞益하고 법문의 광명에 머무는 이는 인과가 무너지지 않는 이익을 얻고,
住無所有 光明者는 得一切法 不壞益이라 무소유의 광명에 머무는 이는 일체법이 무너지지 않는 이익을 얻음이니,
是故로 說言 如來出現에 그러므로 말하기를 여래의 출현은
饒益 一切無量衆生이니라 한량없는 일체중생을 이익케 한다 하느니라.
무엇보다 법문의 진리광명으로 인과의 이치를 알게 되고 믿게 되고 깨닫게 되어 인생을 보다 더 순리대로 가치 있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나아가서 무소유나 무소득의 진리광명에 머무는 이들은 그 이익이 불가사의하리라. 이처럼 여래가 세상에 출현한 이익을 어찌 필설로 다 표현하겠는가.
佛子야 是爲如來應正等覺의 出現第十相이니 불자여, 이것이 여래 응공 정등각이 출현하시는 제 10의 모양이니
菩薩摩訶薩이 應如是知니라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하느니라.
③如來出現과 無量事 여래 출현을 알면 모든 것을 안다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知如來出現하면 則知無量이니 知成就無量行故며 則知廣大니 知周徧十方故며
불자 보살마하살 지여래출현 즉지무량 지성취 무량행고 즉지광대 지주변시방고
則知無來去니 知離生住滅故며 則知無行無所行이니 知離心意識故며 則知無身이니 知如虛空故며
즉지무래거 지리생주멸고 즉지무행 무소행 지리심 의식고 즉지무신 지여허공고
則知平等이니 知一切衆生이 皆無我故며 則知無盡이니 知徧一切刹無有盡故며 則知無退니 知盡後際無斷絶故며
즉지평등 지일체중생 개무아고 즉지무진 지변일체찰 무유진고 즉지무퇴 지진후제 무단절고
則知無壞니 知如來智가 無有對故며 則知無二니 知平等觀察爲無爲故며 則知一切衆生이 皆得饒益이니
즉지무괴 지여래지 무유대고 즉지무이 지평등관찰 위무위고 즉지일체중생 개득요익
本願廻向하야 自在滿足故니라
분원회향 자재만족고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知 如來出現하면 則知無量이니 여래의 출현을 앎은 곧 한량없는 것을 아는 것이니
知 成就 無量行故며 한량없는 행을 성취함을 알기 때문이요.
여래가 출현한 사실의 일체를 앎으로 모든 것을 따라 아는 것을 낱낱이 밝혔다. 여래가 세상에 출현한 일은 그 자체가 곧 한량없는 일이다. 즉 여래의 출현을 달리 표현하면 ‘한량없음’이라고 한다.
則知廣大니 知 周徧十方故며 곧 광대한 것을 아는 것이니, 시방에 두루함을 알기 때문이며,
여래출현을 알면 곧 광대함을 알고, 그 광대함이란 시방에 두루함을 뜻한다. 여래가 세상에 출현한 일은 곧 광대함이다.
則知 無來去니 知 離生住滅故며 오고 감이 없음을 아는 것이니, 생과 머묾과 멸함을 여읜 것을 알기 때문이며,
여래출현을 알면 곧 거래가 없음을 안다. 여래가 세상에 출현한 일을 이 세상에 오신 것[來]이라고 하지만 실은 오되 온 것이 아니고 가도 또한 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래의 오고 감은 생주이명과 생로병사를 다 떠난 경지이다.
則知 無行 無所行이니 행함도 없고 행할 것도 없음을 아는 것이니
知離 心意識故며 심의식을 떠났음을 알기 때문이며,
심의식(心意識)은 심(心) · 의(意) · 식(識)의 세 낱말을 합친 복합어이다.
심(心)은 산스크리트어 citta. '신 · 구 · 의 3업(三業)을 쌓고 일으킨다'는 뜻의 집기(集起)를 뜻하고,
의(意)는 산스크리트어 manas. '과거에 쌓은 원인, 즉 업에 바탕하여 생각하고 헤아린다'는 뜻의 사량(思量)을 뜻하며,
식(識)은 산스크리트어 vijñāna. 비야남(毘若南)이라고도 하며, '대상을 안다'는 뜻의 요별(了別)을 뜻한다.
집기(集起)는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이 마음작용(심소법)을 비롯한 身 · 口 · 意 3業을 쌓고 일으키는 측면 또는 능력이 있는 것을 말한다. 사량(思量)은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이 과거, 즉 이전까지 쌓은 원인을 바탕으로 현재의 인식 대상 또는 마음작용 대상에 대해 이모저모로 생각하고 헤아리는 측면 또는 능력이 있는 것을 말한다. 了別은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이 思量을 바탕으로 현재의 인식 대상 또는 마음작용 대상에 대해 '아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파란색이 소리가 아니라 색깔인줄 알며 나아가 노란색이 아니라 파란색인줄 아는 것을 말한다.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의 심(心) · 의(意) · 식(識)의 측면 또는 능력에 대한 사상인 심의식 사상(心意識思想)에서의 견해 차이는 부파불교와 대승불교를 구별짓는 주요 사상적 측면들 중의 하나이다.
예를 들어, "야! 이 OST 정말 아름다운데! 어떤 가수가 불렀을까? 음원을 어디에서 구할 수 있을까?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찾아보고 음원구입처에서 다운로드를 받아야겠다"라고 할 때, 그 OST가 아름답다고 아는 것은 요별(了別-식), 즉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의 요별작용 또는 요별능력이고, 가수가 누군지 그리고 음원을 어디서 구할 수 있을지 생각하는 것은 사량(思量-의), 즉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의 사량작용 또는 사량능력이고, 검색과 다운로드를 해야겠다고 마음먹는 것(즉, 의지를 가지는 것)과 실제로 몸과 마음을 움직여 인터넷 검색을 행하고 음원을 다운로드 받는 것은 집기(集起-식), 즉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의 집기작용 또는 집기능력이다.
크게 보면, 心意識, 즉 심(心) · 의(意) · 식(識)은 모두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과 관련된 것이므로, 心意識이라고 통칭하여 칭할 때나 心 · 意 · 識 개별로 칭할 때나 모두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세부적으로는 심(心) · 의(意) · 식(識)의 개별에 대하여 이들이 구체적으로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의 어떤 면을 가리키는가에 대해서는 부파불교와 대승불교 간에 견해 차이가 있으며, 또한 이렇게 차이가 나는 대승불교의 견해에서도 다시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心)이 집기(集起)를 뜻하고, 의(意)가 사량(思量)을 뜻하고, 식(識)이 요별(了別)을 뜻한다는 것에는 부파불교와 대승불교 모두가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에 집기, 사량, 요별의 작용 또는 측면이 갖추어져 있다는 것에는 모두가 견해를 같이 하지만,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의 어떤 작용 또는 측면을 집기라고 하고 사량이라고 하고 요별이라고 하는 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則知 無身이니 知如虛空故며 몸이 없음을 아는 것이니 허공과 같음을 알기 때문이며,
여래가 세상에 출현하였다고 해서 어떤 몸을 가지고 출현한 것이 아니다. 여래는 본래 몸이 없다. 만약 여래가 몸이 있다면 이미 법계에 충만해 있는 것[佛身充滿於法界]이어서 마치 허공과 같다. 여래의 출현으로 그와 같은 몸을 안다.
則知 平等이니 知一切衆生이 皆無我故며 평등을 아는 것이니 일체중생이 '나'가 없음을 알기 때문이며,
여래나 일체중생이나 모두 평등하게 無我라는 원칙에 있어서는 다를 바가 없다.
則知 無盡이니 知徧一切刹 無有盡故며 다함이 없음을 아는 것이니 일체세계에 두루하여 다함이 없음을 알기 때문이며,
여래는 세상에 출현하든 출현하지 아니 하든 이미 다함이 없다. 무한 과거 이전부터 무한 미래 이후까지 일체 세계와 일체 시간에 두루하여 다함이 없다.
則知無退니 知盡後際 無斷絶故며 물러섬이 없음을 아는 것이니 오는 세상이 다하도록 단절되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며,
여래는 세상에서 물러남이 없으므로 나아감도 없다. 무한한 과거에서 무한한 미래에까지 단 일분이나 일초도 끊어짐이 없다. 그러므로 여래의 실상을 역사적인 사실에서 보여준 것과 같이 알면 아니 된다. 실로 여래는 출현하였으나 출현한 바도 없고 열반하였으나 일찍이 열반한 바도 없다.
則知無壞니 知如來智가 無有對故며 무너짐이 없음을 아는 것이니 여래의 지혜는 대적할 자가 없음을 알기 때문이며,
여래의 지혜는 그 대상이 있고 없음에 관계없어서 이뤄지고 무너짐이 아예 없다.
則知無二니 知平等觀察 爲無爲故며 둘이 없음을 아는 것이니, 유위와 무위를 평등히 관찰함을 알기 때문이며,
여래의 출현으로 일체가 둘이 없는 이치= 不二를 안다. 유마경은 不二를 궁극의 경지로 삼는다. 유위와 무위뿐만 아니라 일체 현상은 모두 둘이지만 그 둘인 가운데서 둘이 없이 평등하게 관찰한다.
則知一切衆生이 皆得饒益이니 일체중생 모두가 이익을 얻게 됨을 아는 것이니
本願廻向하야 自在滿足故니라 본원으로 회향하여 자재히 만족하기 때문이니라.
일체중생들이 큰 이익을 얻는 것은 여래의 본원을 회향하는 일이다. 여래가 세상에 출현한 목적을 분명하게 드러내었다.
④ 重頌 게송으로 거듭 밝히다
㉮ 甚深한 如來出現의 法 여래가 출현하는 법은 심오하여 헤아리기 어렵다
爾時에 普賢菩薩摩訶薩이 欲重明此義하사 而說頌言하사대
이시 보현보살마하살 욕중명차의 이설송언
十力大雄最無上이 譬如虛空無等等하사 境界廣大不可量이며 功德第一超世間이로다
십력대웅 최무상 비여허공 무등등 경계광대 불가량 공덕제일 초세간
十力功德無邊量하사 心意思量所不及이니 人中師子一法門을 衆生億劫莫能知로다
십력공덕 무변량 심의사량 소불급 인중사자 일법문 중생억겁 막능지
十方國土碎爲塵은 或有算計知其數어니와 如來一毛功德量은 千萬億劫無能說이로다
시방국토 쇄위진 혹유산계 지기수 여래일모 공덕량 천만억겁 무능설
如人持尺量虛空이어든 復有隨行計其數호대 虛空邊際不可得하야 如來境界亦如是로다
여인지척 량허공 부유수행 계기수 허공변제 불가득 여래경계 역여시
或有能於刹那頃에 悉知三世衆生心이어니와 設經衆生數等劫이라도 不能知佛一念性이로다
혹유능어 찰나경 실지삼세 중생심 설경중생 수등겁 불능지불 일념성
譬如法界徧一切호대 不可見取爲一切인달하야 十力境界亦復然하야 徧於一切非一切로다
비여법계 변일체 불가견 취위일체 십력경계 역부연 변어일체 비일체
眞如離妄恒寂靜하야 無生無滅普周徧하니 諸佛境界亦復然하야 體性平等不增減이로다
진여리망 항적정 무생무멸 보주변 제불경계 역부연 체성평등 부증감
譬如實際而非際라 普在三世亦非普인달하야 導師境界亦如是하야 徧於三世皆無礙로다
비여실제 이비제 보재삼세 역비보 도사경계 역여시 변어삼세 개무애
法性無作無變易이 猶如虛空本淸淨하니 諸佛性淨亦如是하야 本性非性離有無로다
법성무작 무변이 유여허공 본청정 제불성정 역여시 본성비성 이유무
法性不在於言論이라 無說離說恒寂滅하니 十力境界性亦然하야 一切文辭莫能辨이로다
법성부재 어언론 무설이설 항적멸 십력경계 성역연 일체문사 막능변
了知諸法性寂滅이 如鳥飛空無有跡호대 以本願力現色身일새 今見如來大神變이로다
요지제법 성적멸 여조비공 무유적 이본원력 현색신 영견여래 대신변
爾時에 普賢菩薩摩訶薩이 欲重明此義하사 而說頌言하사대
그때 보현보살마하살이 이러한 뜻을 거듭 밝히고자 게송으로 말했다.
十力大雄 最無上이 譬如 虛空無等等하사 십력지니신 크신 영웅 무상존의 무등함이 마치 허공과 같으시니
境界廣大 不可量이며 功德 第一超世間이로다 경계가 광대하여 헤아릴 수 없으며, 공덕이 제일이라 세간을 초월하셨네
여래의 출현은 그 법이 깊고 깊어서 헤아리기 어렵다. 먼저 여래를 표현하는 데 가장 많이 등장하는 말이 ‘십력’이다. 또 ‘큰 영웅[大雄]’ ‘가장 높음’ ‘같을 이 없으면서 같은 분[無等等]’ 등등으로 설명하지만 그 말은 실로 큰 바다의 한 방울의 물도 안 된다. 그 경계는 넓고 커서 헤아릴 수 없으며 그 공덕은 우주법계에 제일이어서 온 세간을 초월하였다.
十力功德 無邊量하사 心意思量 所不及이니 십력의 공덕은 한량이 없어, 마음으로 헤아려 미칠 없으니
人中師子 一法門을 衆生億劫 莫能知로다 인중사자의 한 법문을 중생들은 억 겁에도 알지 못하네
부처님을 동물 중에 가장 강한 사자에 비유하여 ‘人師子’라고 한다. 부처님의 한 가지 법문을 중생은 억겁동안 알려고 하여도 알지 못하는, 그와 같은 법문을 여래는 8만 4천이나 설하셨다.
十方國土 碎爲塵은 或有算計 知其數어니와 시방 국토 부순 티끌은, 혹 계산하여 그 수를 알 수 있으려니와
如來一毛 功德量은 千萬億劫 無能說이로다 여래의 한 털에 있는 공덕은 천만 겁동안 설하여도 다 말할 수 없네
법계의 경계가 끝이 없고, 진여자성의 경계가 끝이 없고, 법성의 경계가 끝이 없고, 깨달음의 경계가 끝이 없고, 부처님의 경계가 끝이 없고, 마음의 경계가 끝이 없고, 사람의 경계가 끝이 없다. 천만 억겁동안 말한다 한들 어찌 다 말할 수 있겠는가.
如人持尺 量虛空이어든 復有隨行 計其數호대 마치 어떤 사람이 자로 허공을 재고, 다른 이는 따라rk며 그 수를 세어도
虛空邊際 不可得하야 如來境界 亦如是로다 허공의 끝은 알 수가 없듯이 여래의 경계도 그와 같네
或有 能於刹那頃에 悉知三世 衆生心이어니와 혹 누군가 한 찰나 사이에 삼세의 중생 마음을 다 알 수 있으려니와
設經 衆生數等劫이라도 不能知 佛一念性이로다 설사 중생 수 만큼의 겁이 지나더라도, 부처님 일념의 성품 알 수가 없네
譬如 法界徧一切호대 不可見取 爲一切인달하야 마치 법계가 일체에 두루하여도, 일체라고 보거나 취할 수 없듯이
十力境界 亦復然하야 徧於一切非一切로다 십력의 경계도 그와 같이, 일체에 두루하나 일체가 아니네
법계가 일체 것에 두루하지만 법계를 일체라고는 할 수 없듯이 부처님의 경계도 일체에 두루하지만 부처님의 경계는 일체가 아니다. 또 비유하면 부모는 자식들에게 그 마음이 두루하지만 그 부모를 자식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眞如離妄 恒寂靜하야 無生無滅 普周徧하니 진여는 허망을 떠나 항상 적정하고 생멸함이 없이 두루하거니와
諸佛境界 亦復然하야 體性平等 不增減이로다 부처님의 경계도 그와 같이, 체성이 평등하여 증감함이 없네
진여는 곧 부처님이고 부처님은 곧 진여다. 그래서 진여를 알면 부처님을 아는 것이고 부처님을 안다는 것은 곧 진여를 아는 것이다. 진여와 부처님은 둘이 아니다. 진여는 모든 존재의 근본 성품이다. 또 모든 존재의 근본성품은 일체 현상으로 작용하여 나타난다. 그래서 일체 현상이 곧 진여의 나타남이다. 현상인 진여와 진여인 현상은 허망을 떠나 고요하다 하였고, 생멸이 없다 하였고, 널리 두루하다 하였고, 부증불감이라 하였다.
譬如實際 而非際라 普在三世 亦非普인달하야 마치 실제는 경계가 아니며, 삼세에 두루하되 두루한 것 아니듯이
導師境界 亦如是하야 徧於三世 皆無礙로다도사의 경계도 그와 같아, 삼세에 두루하되 걸림이 없네
실제(實際)란 진여법성(眞如法性)이다. 이는 온갖 법의 끝이 되는 곳이므로 실제라 하고, 또 진여의 진실한 이치[實理]를 증득하여 그 궁극(窮極)에 이르므로 진실의 경지[實際]라고 한다. 그래서 실제는 실제가 아니며 삼세에 두루하면서 또한 두루한 것도 아니다. 실제는 곧 여래의 경계이며 여래의 경계가 곧 실제이다.
法性無作 無變易이 猶如虛空 本淸淨하니 법의 성품은 지음도 변함도 없어, 마치 허공이 본래 청정하듯이
諸佛性淨 亦如是하야 本性非性 離有無로다 부처님 성품의 청정함도 그와 같이, 본성이 성품이 아니요 유와 무를 떠났네
법성(法性)은 곧 모든 부처님의 본성(본 성품)이며 부처님의 본성은 곧 법성이다. 법성은 지음도 없고 변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마치 허공은 텅 비어 본래 청정한 것과도 같다.
法性 不在於言論이라 無說離說 恒寂滅하니 법의 성품은 언론에 있지 않아, 말이 없고 말을 떠나 항상 적멸하듯이
十力境界性 亦然하야 一切文辭 莫能辨이로다 십력 경계의 성품도 그와 같아, 일체의 말과 글로 분별할 수 없네
법성은 언어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법성게에서 “법성은 원융하여 두 가지 모양이 없고 모든 법은 움직임이 없어 본래로 고요하다.”라고 하였다. 여래의 경계와 성품도 그와 같아서 일체 글이나 말로 설명할 수 없다.
了知諸法性 寂滅이 如鳥飛空無有跡호대 법의 성품 적멸함을 분명히 아심이, 허공을 날으는 새의 발자취가 없음과 같으니
以本願力 現色身일새 今見如來 大神變이로다본원의 힘으로 색신을 나투시어 여래의 크신 신통변화 보게 하시네 여래든 법성이든 그 본성은 적멸하지만 적멸한 법성 위에 본래의 원력으로 온갖 작용을 나타내 보이고 육신도 나타내어 신통변화를 보게 한다. 그래서 여래의 신통변화는 공중조적(空中鳥蹟), 마치 새가 공중을 날아가도 그 자취가 없는 것과 같다.
㉯ 許說 설할 것을 허락하다
若有欲知佛境界인댄 當淨其意如虛空이니 遠離妄想及諸取하야 令心所向皆無礙어다
약유욕지 불경계 당정기의 여허공 원리망상 급제취 영심소향 개무애
是故佛子應善聽하라 我以少譬明佛境호니 十力功德不可量이로대 爲悟衆生今略說이로다
시고불자 응선청 아이소비 명불경 십력공덕 불가량 위오중생 금략설
導師所現於身業과 語業心業諸境界와 轉妙法輪般涅槃과 一切善根我今說이로다
도사소현 어신업 어업심업 제경계 전묘법륜 반열반 일체선근 아금설
若有欲知 佛境界인댄 當淨其意如虛空이니 어떤이가 부처님 경계 알고자 한다면, 마땅히 그 뜻을 허공처럼 청정히 하여
遠離 妄想及諸取하야 令心所向皆無礙어다 망상과 모든 집착 멀리 여의어, 마음이 향함에 걸림이 없게 하라.
이 게송은 화엄경에서 손꼽는 명구이다. 만약 부처님의 경계를 알고자 한다면 그 뜻 그 마음을 청정하게 비우기를 허공과 같이 하라. 온갖 번뇌 망상과 모든 집착들을 멀리 떠나보내고 마음이 어디를 향하든 가는 곳 마다 걸림이 없게 하라. 그와 같이 된다면 그곳이 곧 여래의 경계이리라.
是故佛子 應善聽하라 그러므로 불자들아 마땅히 잘 들을지어다.
我以少譬 明佛境호니 내가 작은 비유로 부처님 경계 밝히고
十力功德 不可量이로대 爲悟衆生 今略說이로다 십력의 공덕은 측량할 수 없건만, 중생을 깨우치고자 이제 약설하리다.
導師 所現於身業과 語業心業 諸境界와 도사께서 나타내신 신업과 어업과 의업의 모든 경계와
轉妙法輪 般涅槃과 一切善根 我今說이로다 미묘한 법륜 굴리시고 열반에 드신 일체의 선근을 내가 이제 말하리다.
여래출현품은 여래 출현과 몸의 업과 말의 업과 마음의 업과 경계와 행과 성도와 법륜을 굴리는 일과 열반과 보고 듣고 친근하여 생긴 선근 등 열 가지를 설한 내용임을 다시 밝혔다.
'화엄경 원문과 해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37 여래출현품 1 (如來出現品) 8 (0) | 2022.05.11 |
---|---|
37 여래출현품 1 (如來出現品) 7 (0) | 2022.05.11 |
37 여래출현품 1 (如來出現品) 5 (0) | 2022.05.10 |
37 여래출현품 1 (如來出現品) 4 (0) | 2022.05.09 |
37 여래출현품 1 (如來出現品) 3 (0) | 2022.05.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