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善巧方便 선교방편
*十種 善巧方便 10종의 선교한 방편
佛子야 諸佛世尊이 有十種善巧方便하시니 何等이 爲十고
불자 제불세존 유십종선교방편 하등 위십
一切諸佛이 了知諸法이 皆離戲論하사대 而能開示諸佛善根이 是爲第一善巧方便이요
일체제불 요지제법 개리희론 이능개시 제불선근 시위제일선교방편
一切諸佛이 知一切法이 悉無所見하야 各不相知하야 無縛無解하며 無受無集하며
일체제불 지일체법 실무소견 각불상지 무박무해 무수무집
無成就自在하야 究竟到於彼岸이나 然於諸法에 眞實而知하사 不異不別하야 而得自在하며
무성취자재 구경도어피안 연어제법 진실이지 불이불별 이득자재
無我無受하야 不壞實際하며 已得至於大自在地하야 常能觀察一切法界가 是爲第二善巧方便이요
무아무수 불괴실제 이득지어 대자재지 상능관찰 일체법계 시위제이선교방편
一切諸佛이 永離諸相하사 心無所住하사대 而能悉知하야 不亂不錯하며 雖知一切相이 皆無自性이나
일체제불 영리제상 심무소주 이능실지 불란불착 수지일체상 개무자성
而如其體性하야 悉能善入하며 而亦示現無量色身과 及以一切淸淨佛土의 種種莊嚴無盡之相하사
이여기체성 실능선입 이역시현무량색신 급이일체 청정불토 종종장엄 무진지상
集智慧燈하야 滅衆生惑이 是爲第三善巧方便이요
집지혜등 멸중생혹 시위제삼선교방편
一切諸佛이 住於法界하사 不住過去未來現在하시니 如如性中에 無去來今三世相故로대
일체제불 주어법계 부주과거미래현재 여여성중 무거래금 삼세상고
而能演說去來今世無量諸佛이 出現世間하사 令其聞者로 普見一切諸佛境界가 是爲第四善巧方便이요
이능연설거래금세 무량제불 출현세간 영기문자 보견일체 제불경계 시위제사선교방편
一切諸佛이 身語意業이 無所造作하사 無來無去하며 亦無有住하야 離諸數法하야 到於一切諸法彼岸이나
일체제불 신어의업 무소조작 무래무거 역무유주 이제수법 도어일체제법피안
而爲衆法藏하야 具無量智하며 了達種種世出世法하야 智慧無礙하며 示現無量自在神力하야
이위중법장 구무량지 요달종종세출세법 지혜무애 시현무량자재신력
調伏一切法界衆生이 是爲第五善巧方便이요
조복일체법계중생 시위제오선교방편
一切諸佛이 知一切法不可見하야 非一非異며 非量非無量이며 非來非去라 皆無自性호대 亦不違於世間諸法하사
일체제불 지일체법불가견 비일비이 비량비무량 비래비거 개무자성 역불위어세간제법
一切智者가 無自性中에 見一切法하사 於法自在하야 廣說諸法하사대 而常安住眞如實性이 是爲第六善巧方便이요
일체지자 무자성중 견일체법 어법자재 광설제법 이상안주 진여실성 시위제육선교방편
一切諸佛이 於一時中에 知一切時하사 具淨善根하야 入於正位하사대 而無所着하사 於其日月年劫成壞如是等時에
일체제불 어일시중 지일체시 구정선근 입어정위 이무소착 어기일월년겁성괴 여시등시
不住不捨하고 而能示現若晝若夜의 初中後時와 一日七日과 半月一月과 一年百年과 一劫多劫과 不可思劫과
부주불사 이능시현 약주약야 초중후시 일일칠일 반월일월 일년백년 일겁다겁 불가사겁
不可說劫과 乃至盡於未來際劫하사 恒爲衆生하야 轉妙法輪하사대 不斷不退하야 無有休息이 是爲第七善巧方便이요
불가설겁 내지진어미래제겁 항위중생 전묘법륜 부단불퇴 무유휴식 시위제칠선교방편
一切諸佛이 恒住法界하사대 成就諸佛의 無量無畏와 及不可數辯과 不可量辯과 無盡辯과 無斷辯과 無邊辯과 不共辯과
일체제불 항주법계 성취제불 무량무외 급불가수변 불가량변 무진변 무단변 무변변 불공변
無窮辯과 眞實辯과 方便開示一切句辯과 一切法辯하사 隨其根性과 及以欲解하야 以種種法門으로
무궁변 진실변 방편개시 일체구변 일체법변 수기근성 급이욕해 이종종법문
說不可說不可說百千億那由他修多羅하사 初中後善에 皆悉究竟이 是爲第八善巧方便이요
설불가설불가설 백천억나유타 수다라 초중후선 개실구경 시위제팔선교방편
一切諸佛이 住淨法界하사 知一切法이 本無名字하야 無過去名하며 無現在名하며 無未來名하며 無衆生名하며
일체제불 주정법계 지일체법 본무명자 무과거명 무현재명 무미래명 무중생명
無非衆生名하며 無國土名하며 無非國土名하며 無法名하며 無非法名하며 無功德名하며 無非功德名하며
무비중생명 무국토명 무비국토명 무법명 무비법명 무공덕명 무비공덕명
無菩薩名하며 無佛名하며 無數名하며 無非數名하며 無生名하며 無滅名하며 無有名하며 無無名하며 無一名하며
무보살명 무불명 무수명 무비수명 무생명 무멸명 무유명 무무명 무일명
無種種名하나니 何以故오 諸法體性이 不可說故라 一切諸法이 無方無處하야 不可集說이며 不可散說이며
무종종명 하이고 제법체성 불가설고 일체제법 무방무처 불가집설 불가산설
不可一說이며 不可多說이라 音聲莫逮하야 言語悉斷이니 雖隨世俗하야 種種言說이나 無所攀緣하며
불가일설 불가다설 음성막체 언어실단 수수세속 종종언설 무소반연
無所造作하야 遠離一切虛妄想着이니 如是究竟하야 到於彼岸이 是爲第九善巧方便이요
무소조작 원리일체 허망상착 여시구경 도어피안 시위제구선교방편
一切諸佛이 知一切法이 本性寂靜하야 無生故로 非色이며 無戲論故로 非受며 無名數故로 非想이며
일체제불 지일체법 본성적정 무생고 비색 무희론고 비수 무명수고 비상
無造作故로 非行이며 無執取故로 非識이며 無入處故로 非處며 無所得故로 非界나 然亦不壞一切諸法하나니
무조작고 비행 무집취고 비식 무입처고 비처 무소득고 비계 연역불괴 일체제법
本性無起하야 如虛空故라 一切諸法이 皆悉空寂하야 無業果하며 無修習하며 無成就하며 無出生하며 非數非不數며
본성무기 여허공고 일체제법 개실공적 무업과 무수습 무성취 무출생 비수비불수
非有非無며 非生非滅이며 非垢非淨이며 非入非出이며 非住非不住며 非調伏非不調伏이며 非衆生非無衆生이며
비유비무 비생비멸 비구비정 비입비출 비주비부주 비조복비부조복 비중생비무중생
非壽命非無壽命이며 非因緣非無因緣이로대 而能了知正定邪定과 及不定聚一切衆生하사 爲說妙法하야 令到彼岸하사
비수명비무수명 비인연비무인연 이능요지 정정사정 급부정취 일체중생 위설묘법 영도피안
成就十力四無所畏하야 能師子吼하며 具一切智하야 住佛境界가 是爲第十善巧方便이니
성취십력 사무소외 능사자후 구일체지 주불경계 시위제십선교방편
佛子야 是爲諸佛의 成就十種善巧方便이니라
불자 시위제불 성취십종 선교방편
佛子야 諸佛世尊이 有十種善巧方便하시니 불자여, 부처님 세존께는 열 가지 선교한 방편이 있으신데
何等이 爲十고 무엇이 그 열 가지인가 하면,
一切諸佛이 了知諸法이 皆離戲論하사대 일체제불은 모든 법이 희론을 떠난 줄을 아시어
而能開示 諸佛善根이 부처님의 선근을 열어 보이시니,
是爲 第一 善巧方便이요 이것이 첫번째 선교한 방편이요,
[모든 법이 희론(戱論)을 떠났다는 희론이란 희롱으로 하는 담론(談論)이다. 부질없이 희롱하는 아무 뜻도 이익도 없는 말이다. 여기에는 사물에 집착하는 미혹한 마음으로 하는 여러 가지 옳지 못한 언론인 애론(愛論)과 여러 가지 치우친 소견으로 하는 의론인 견론(見論)의 2종이 있다. 둔근인(鈍根人)은 애론, 이근인(利根人)은 견론, 재가인(在家人)은 애론, 출가인(出家人)은 견론, 천마(天魔)는 애론, 외도(外道)는 견론, 범부(凡夫)는 애론, 2승(乘)은 견론을 고집한다.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법에는 일체법이 이와 같은 희론을 떠나서 어떤 법도 설할 것이 없는 줄을 알면서 모든 부처님의 착한 뿌리를 설하여 능히 열어 보인다. 부처님의 선근을 열어 보인다는 것은 곧 희론이다. 이와 같이 희론을 떠난 데서 다시 착한 뿌리(선근)를 설하는 것, 이것이 부처님의 훌륭한 방편이다.
그래서 청량스님은 소에서, “진실은 말을 떠나고 동요하는 희론을 끊은 줄 알지만 방편을 일으켜서 선근을 열어 보인다. 그러므로 자재함이 된다.”라고 하였다.]
一切諸佛이 知 一切法이 悉無所見하야 일체제불은 일체법이 보이는 것도 없고
各不相知하야 각자 서로를 알지도 못하며, 無縛無解하며 얽힘도 풀림도 없고,
無受無集하며 받는 일도 모으는 일도 없으며, 無成就 自在하야 자재함을 성취함도 없고
究竟到於彼岸이나 구경에 피안에 이를 것도 無=없는 줄 知= 아시지만
然於諸法에 眞實而知하사 그러나 모든 법이 진실하여
不異不別하야 다르지도 나뉘지도 않음을 知= 아시어 而得自在하며 자재함을 얻으시고
無我無受하야 나라는 것도 없고 받을 것도 없기에 不壞實際하며 실제를 무너뜨리지 않고
已得至 於大自在 地하야 크게 자재한 지위에 이르시어 常能觀察 一切法界가 항상 일체의 법계를 관찰하시니,
是爲第二 善巧方便이요 이것이 두번째 선교한 방편이며,
[청량스님은 소에서, “진실을 증득하여 보는 바가 없어 법에 걸리지 아니하고 진실을 밝게 알아 속박도 없고 풀어짐도 없어서 큰 자재에 이른다.”라고 하였다.]
一切諸佛이 永離諸相하사 일체제불은 모든 모양을 길이 여의사
[상(相)= 표·특징·특성·또는 상태·樣相(양상)·形相(형상)등의 뜻이며 지속·반복·순간·기동·완료·결과 등이 있다. 때로는 體(本體)·用(작용)의 對語로 쓰이며, 볼 수 있고 알 수 있는 것의 모습을 의미한다. 그것 자체만이 가지고 있는 相을 自相, 다른 것에도 공통하는 相을 共相이라고 한다.(自相은 또 自性 곧 體와 같은 뜻으로도 쓰인다).]
心無所住하사대 마음이 머무는 데가 없으시지만
而能悉知하야 不亂不錯하며 능히 그 모양을 뒤섞이지 않게 착오없이 다 아시고
雖知一切相이 皆無自性이나 비록 모든 상이 자성이 없는 줄을 아시지만
而如其體性하야 悉能善入하며 그 체성에 다 잘 들어가시며,
[자성(自性)= 다른 어떤 것과도 관계하지 않는 자기만의 특성이다. 즉, 어떤 법(法)의 본질적 성질, 본성을 그 법(法)의 자성이라고 하며, 간단히 성(性)이라고도 하며 또한 다른 말로 체(體) 또는 실체(實體)라고도 하며 또한 체성(體性)이라고도 한다. 어떤 법(法)의 자성은 해당 법을 다른 법과 구별되게 하는 결정적 요소이다. 본질적 성질인 성(性)과 본질적 작용인 업(業) 또는 용(用)은 동전의 앞면 · 뒷면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본질적 성질(性)을 다른 말로는 성능(性能)이라고도 하는데, 여기서 성은 성질 즉 본질적 성질을 뜻하고 능은 기능 또는 능력 즉 본질적 기능 또는 본질적 능력을 뜻한다. 한편, 성능의 일반 사전적인 의미는 '어떤 물건이 지닌 성질과 능력 또는 기능'이다. 한편, 본질적 성질과 본질적 작용을 합하여 불교 용어로 체용(體用)이라고도 하는데, 그 의미를 확대하여, 즉 체(體)와 용(用)을 개별 법의 본질적 성질과 본질적 작용을 가리키는 뜻으로 쓰는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체(體)를 일체 만법의 본성으로, 용(用)을 본성이 일체의 만법 즉 차별적 현상을 구체화시켜 표현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체상(體相)을 이러한 뜻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즉, 체(體)를 본질로, 상(相)을 본질이 구체화된 모습 즉 차별적 현상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자성(自性) 또는 자상(自相)에 대하여, 공상(共相)은 여러 가지 법(法: 개별 존재)에서 공통으로 존재하는 특성이다. 예를 들어, 가을의 산이 빨갛고 불이 빨갛고 옷이 빨갛다고 할 때의 공통의 빨강을 가리켜 공상(共相)이라고 하고, 파랑 혹은 노랑 등과 구별되는 빨강 그 자체를 가리켜 자상(自相)이라고 한다.]
而亦示現 無量色身과 及以一切 淸淨佛土의 또한 한량없는 색신과 모든 청정한 불국토에
種種莊嚴 無盡之相하사 갖가지로 장엄한 무진한 상을 示現= 시현하시고
集 智慧燈하야 지혜의 등불을 모아서 滅 衆生惑이 중생의 의혹을 소멸케 하시니,
是爲第 三善巧方便이요 이것이 세번째 선교한 방편이며,
[부처님의 세 번째 훌륭한 방편을 청량스님은 소에서, “상이 없는데서 상을 알고 성품이 없는데서 성품에 들어가서 또한 능히 의보(依報)와 정보(正報)를 고르게 냄을 나타내 보인다.”라고 하였다. 즉 경문에서 밝힌 “한량없는 육신과 일체 청정한 국토의 갖가지로 장엄한 다함이 없는 모양을 나타내 보인다.”는 것이 곧 그것이다.]
一切諸佛이 住 於法界하사 일체제불은 법계에 머무시고
不住 過去未來現 在하시니 과거 미래 현재에 머물지 않으시는 것은
如如性中에 無去來今 三世相故로대 여여한 성품에는 과거 미래 현재의 삼세 모양이 없기 때문이건만
而能演說 去來今世 無量諸佛이 과거 미래 현재의 무량한 부처님들이 出現世間하사 세간에 출현하심을 연설하시어
令其聞者로 普見 一切諸佛 境界가 듣는 이로 하여금 일체제불의 경계를 두루 보게 하시니,
是爲第四善巧方便이요 이것이 네번째 선교한 방편이며,
[모든 부처님은 법계에 머무르면서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는 머무르지 않는다. 진여 성품에는 과거 미래 현재의 세 세상의 모양이 없기 때문이다. 진여는 모든 시간을 초월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과거 현재 미래의 한량없는 모든 부처님이 세간에 나타나시는 일을 연설한다. 없는데 치우치지도 않고 있는데 치우치지도 않기 때문이다. 또한 부처님의 훌륭한 선교방편이다.]
一切諸佛이 身語意業이 無所造作하사 일체제불은 몸과 말과 뜻으로 짓는 업이 조작함이 없으시며
無來無去하며 亦無有住하야 오고 감도 없고 머무름도 없으시며,
離諸數法하야 모든 수의 개념을 떠나서 到於一切 諸法彼岸이나 일체법의 피안에 이르셨지만
而爲衆法藏하야 具 無量智하며 온갖 법의 보고를 이루시어 한량없는 지혜를 갖추시고
了達種種 世出世法하야 갖가지 세간 출세간법에 요달하시어 智慧無礙하며 지혜가 걸림이 없으시며,
示現無量 自在神力하야 한량없이 자재한 신통력을 시현하시어
調伏 一切法界衆生이 일체법계의 중생들을 조복시키시니,
是爲第五 善巧方便이요 이것이 다섯번째 선교한 방편이며,
청량스님 소에서, “몸과 말과 뜻의 삼업이 텅 비어 맑지만[湛然] 일체 삼업의 작용을 다 포함하여 나타내 보인다.”고 하였다.
一切諸佛이 知 一切法 不可見하야 일체제불은 일체법은 볼 수도 없고
非一非異며 하나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며 非量非無量이며 한량있는 것도 한량없는 것도 아니고
非來非去라 오는 것도 가는 것도 아니어서 皆 無自性호대 모두가 자성이 없지만
亦不違 於世間諸法하사 세간의 모든 법에 어기지 않음을 知= 아시고
一切智者가 모든 지혜 있는 이들은
無自性中에 자성이 없는 가운데서 見一切法하사 일체법을 보고
於法自在하야 廣說諸法하사대 법에 자재하시어 법을 폭넓게 설하시며
而常安住 眞如實性이 진여의 실다운 성품에 항상 안주하시니,
是爲第六 善巧方便이요 이것이 여섯번째 선교한 방편이며,
[불법의 핵심은 진여의 참 성품에 항상 머물면서 법에 자재하여 여러 가지 법을 널리 연설하여 일체중생을 널리 교화하고 조복하는 것이다.]
一切諸佛이 於一時中에 知一切時하사 일체제불은 어느 한 때에 모든 때를 아시고(한 시간에서 온갖 시간을 아시고)
具 淨善根하야 入 於正位하사대 청정한 선근을 갖추시어 바른 지위에 드시되 而無所着하사 집착하는 일이 없으시며
於其 日 月 年 劫成壞 如是 等時에 날과 달, 해와 겁이 이루고 무너진 등의 그러한 시간에
不住不捨하고 머무시지도 버리시지도 않으시고
而能示現 若晝 若夜의 初中後 時와 낮이나 밤의 처음, 중간, 나중의 때와
一日 七日과 하루, 이레, 半月 一月과 반 달, 한 달, 一年 百年과 일 년, 백 년,
一劫 多劫과 일 겁, 여러 겁과 不可思劫과 不可說劫과 불가사 겁과 불가설 겁에서
乃至 盡於未來際 劫하사 미래 겁이 다하기에 이르도록
恒爲衆生하야 늘 중생을 위해 轉妙法輪하사대 묘법륜을 굴리시기를
不斷不退하야 無有休息이 끊임 없고 물러섬이 없이쉬지 않고 하시니,
是爲第七 善巧方便이요이것이 일곱번째 선교한 방편이며,
[모든 부처님은 모든 시간의 길고 짧음이 서로 서로 융섭(融攝)함을 안다. 즉 일념이 곧 무량겁이고 무량겁이 곧 일념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낮과 밤과 처음과 중간과 나중과 하루와 이레와 반달과 한 달과 일 년과 백 년 등, 오는 세월이 끝날 때가지 항상 중생을 위하여 미묘한 법륜을 굴리되 끊이지도 않고 물러가지도 않아서 쉬지 아니한다. 이것이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훌륭한 선교방편이다.]
一切諸佛이 恒住 法界하사대 일체제불은 항상 법계에 계시면서
成就 諸佛의 無量無畏와 부처님들의 한량없는 무외와 及不可數 辯과 불가수의 변재,
不可量 辯과 불가량의 변재, 無盡 辯과 무진한 변재, 無斷 辯과 무단한 변재,
無邊 辯과 무변한 변재, 不共 辯과 같이 하지 않는 변재, 無窮 辯과 무궁한 변재,
眞實 辯과 진실한 변재, 方便開示 一切句辯과 모든 구절을 방편으로 열어보이는 변재,
一切法辯하사 일체법의 변재를 成就= 성취하시고
[辯才(변재)= 불법을 설하는 솜씨가 巧妙(교묘)한 것으로 단순히 辯(변)이라고도 한다. ]
隨其 根性과 及以欲解하야 그들의 근성과 의욕에 따라 以種種法門으로 갖가지 법문으로
說 不可說不可說 百千億 那由他 修多羅하사 불가설 불가설 백천억 아유타의 수다라를 설하시어
初中後善에 皆悉究竟이 처음과 중간 나중의 선에 다 구경하시니,
是爲第八 善巧方便이요 이것이 여덟번째 선교한 방편이며,
[수다라(修多羅) 범어 'sūtra', 팔리어 'sutta'. 수트라는 본래 실이나 끈을 의미하며, 선(線), 규칙, 경구(警句), 강요서, 경전 등을 뜻하나, 예로부터 인도에서는 종교와 철학 및 학문의 기본적인 내용을 간단한 문장으로 정리해 놓은 것을 수트라, 곧 경(經)이라 불렀다. 이에 따라 부처님의 가르침을 정리해 놓은 것도 경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인도에서는 그러한 경을 야자수 잎사귀 등에 적어서 실로 꿴 다음 바구리에 담아 놓았는데, 그처럼 실로 꿴 경을 한데 모아 놓았다는 뜻에서 경장(經藏)이라고 한다. 수투로(修妬路), 소다라(蘇多羅), 계경(契經), 성교(聖敎), 정경(正經), 법본(法本), 경(經). 다라(多羅). ⇒ 경장(經藏).경(經).계경(契經).직설(直說).성교(聖敎).법본(法本).선어경(善語經)이라고 한역(漢譯)한다.]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아서 끝까지 이른다. 이것이 또한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훌륭한 선교방편이다.]
一切諸佛이 住淨法界하사 일체제불은 청정법계에 머무시어
知 一切法이 本無名字하야 일체법이 본래 이름이 없어서 無過去名하며 과거의 이름도 없고
無現在名하며 현재의 이름도 없고 無未來名하며 미래의 이름도 없으며,
無衆生名하며 중생의 이름도 없고 無非衆生名하며 중생 아닌 이름도 없으며,
無國土名하며 국토의 이름도 없고 無非國土名하며 국토 아닌 이름도 없으며,
無法名하며 법의 이름도 없고 無非法名하며 법 아닌 이름도 없으며,
無功德名하며 공덕의 이름도 없고 無非功德名하며 공덕 아닌 이름도 없으며,
無菩薩名하며 보살의 이름도 없고 無佛名하며 부처님의 이름도 없으며,
無數名하며 수의 이름도 없고 無非數名하며 수 아닌 이름도 없으며,
無生名하며 생(남)의 이름도 없고 無滅名하며 멸(사라짐)의 이름도 없으며,
無有名하며 유(있음)의 이름도 없고 無無名하며 무의 이름도 없으며,
無一名하며 한 가지 이름도 없고 無種種名하나니 여러가지 이름도 없으니
[일체 모든 부처님이 청정한 법계에 머무신다는 청정한 법계란 텅 빈 법계며, 법계가 법계가 아닌 법계다. 그러므로 본래 이름이 없다는 사실을 안다. 본래 이름이 없으므로 과거의 이름도 없고, 현재의 이름도 없고, 미래의 이름도 없으며, 중생의 이름도 없고, 중생 아닌 이름도 없는 등 일체 이름이 없다.]
何以故오 諸法體性이 不可說故라 왜냐하면 모든 법의 체성이 이루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一切諸法이 無方無處하야 일체의 모든 법은 방향도 처소도 없고
不可集說이며 모아서 말할 수도 不可散說이며 흩어서 말할 수도 없으며,
不可一說이며 하나로 말할 수도 不可多說이라 여럿으로 말할 수도 없고,
音聲莫逮하야 음성으로 미치지 못하여 言語悉斷이니 언어의 길이 끊긴 것이라
莫 없을 막, 逮 미칠 체,
雖隨世俗하야 種種言說이나 비록 세속을 따라 여러가지로 말하더라도
無所攀緣하며 無所造作하야 반연할 것도 없고 지을 것도 없어서 攀緣반연= 객관의 사물에 의지함
遠離 一切虛妄 想着이니 일체의 허망한 생각과 집착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이니
如是究竟하야 到於彼岸이 이렇게 구경하시어 피안에 이르시니,
是爲第九 善巧方便이요 이것이 아홉번째 교묘한 방편이며,
[텅 빈 법계가 본래 이름이 없어서 일체 법이 모두 이름이 없는 까닭을 밝혔다. 모든 법의 자체 성품은 본래 말할 수 없기 때문이고, 본래 말할 수 없기 때문에 방향도, 처소도 없으며, 모아서 말할 수도, 흩어서 말할 수도 없는 등을 열거 하였다. 그러므로 일체 허망한 생각과 집착을 여의어서 구경에 저 언덕에 이른 것이 또한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훌륭한 선교방편이다.]
一切諸佛이 知 一切法이 本性寂靜하야 일체제불은일체법의 본성이 적정하여
無生故로 非色이며 생김이 없기에 색도 아니요,
[色= rupa. 물질적 존재의 총칭으로 정신적 존재의 총칭인 명(名 nāma)에 반대되는 개념이다. 어근을 분석해 보면 '파괴되는 것', '변화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형체를 지니고 생성되어 변화하는 물질현상을 가리킨다. 전통적으로는 질애(質碍)와 변괴(變壞)의 의미로 해석되어왔다. 질애란 일정한 공간을 점유하여 다른 존재와 서로 융화하지 못한다는 뜻이고, 변괴란 끊임없이 변화하여 마침내 소멸한다는 뜻이다. 현상세계 전반을 취급하는 용어로 여러 종류의 색으로 나누어 구별하고 있다. 5근(五根), 즉 5개 감각기관인 내색(內色)과 5경(五境) 즉 감각기관의 대상인 외색(外色), 미세한 색인 세색(細色), 미세한 색과 아주 상반된 거친 색인 추색(麤色), 명상의 결과로 생긴 색인 정과색(定果色)과 행위의 결과로 생긴 색인 업과색(業果色) 등이다. 색의 전체적인 용도에서 중요한 의미를 간추리면 ① 색깔, ② 색깔과 형체는 색깔과 형체를 지닌 모든 물질적 존재로 시각(視覺)의 대상이 되는 것이며, 이 경우 색깔은 현색(顯色), 형체는 형색(形色)이라고 한다. ③ 사물의 형체·모습, ④ 물질 일반은 이 세상을 구성하고 생성·변화시키는 물질적 현상으로, 이 경우 5온 중의 색온(色蘊)에 해당되며 나머지 수·상·행·식(受想行識)의 4온은 명(明)을 말한다. ⑤ 마음의 반대인 물질, ⑥ 육체, ⑦ 청정한 물질로 이루어진 세계인 색계(色界). ⑧ 집착 또는 색욕 등이다.]
無戲論故로 非受며 희론이 없으니 수도 아니며,
[수(受) 느낌 · 지각 · 정서 · 영납(領納) · 감수(感受), 산 vedanā, 팔 vedanā, 영어 feeling, sensation) 초기불교의 5온설의 2번째 요소인 수온(受蘊)은 느낌 · 지각 · 정서의 적집, 집합 또는 무더기라는 뜻으로,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의 여러 작용 중 감수작용(感受作用)과 그 세력을 뜻한다.
초기불교의 12연기설에 따르면, 7번째 지분인 수(受)는 6번째 지분인 촉(觸)을 바탕으로 4번째 지분인 명색(名色), 즉 정신적 · 물질적 인식대상에 대해 고(苦)와 낙(樂) 등의 느낌 · 지각 또는 정서를 느끼는 감수작용(感受作用)이다.
설일체유부와 대승불교의 유식유가행파와 법상종에 따르면, 受는 다른 마음작용인 觸이 발생할 때 촉을 바탕으로 하여 동시에, 즉 1찰나 내에 생겨나는 마음작용으로,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으로 하여금 대상에 대해 '괴롭다-苦, 즐겁다-樂,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다-不苦不樂' 또는 '나쁘다-苦, 좋다-樂, 나쁘지도 않고 좋지도 않다-不苦不樂'고 느끼게 하는 마음작용이다. 부파불교와 대승불교는 모두 수(受)의 마음작용이 5온의 수온(受蘊)에 해당한다고 한다.]
無名數故로 非想이며 이름과 수가 없으니 상도 아니요,
[상(想, 산 saṃjñā, 팔 saññā, 영어 perception, cognition, conceptualization, distinguishing)은 설일체유부의 5위 75법에서 심소법(心所法: 46가지) 중 대지법(大地法: 10가지) 가운데 하나이며, 유식유가행파와 법상종의 5위 100법에서 심소법(心所法: 51가지) 중 변행심소(遍行心所: 5가지) 가운데 하나이다.
상(想)은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으로 하여금 인식대상의 물질적 · 정신적(개념적) 차별상(差別相)을 파악하게 하는 마음작용이다. 즉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으로 하여금 표상작용[取像] 즉 개념화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마음작용이다. 간단히 상(想)은 현대적인 용어로 표상(表象, mental representation 또는 representation)을 뜻한다. 상(想)은 5온의 상온(想蘊)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청(青) · 황(黃) 등의 사물의 색깔의 차별상이나, 장(長) · 단(短) 등의 사물의 형색(형태, 모양과 크기)의 차별상이나, 남(男) · 여(女) 등의 생리학적 · 생물학적 측면의 차별상이나, 원(怨) · 친(親) 등의 감성적 측면의 차별상이나, 고(苦) · 락(樂) 등의 지각적 측면의 차별상 등을 파악하는 것을 말한다.
상(想)은 상(想: 취상) · 등상(等想: 평등한 취상) · 증상등상(增上等想: 뛰어난 평등한 취상) · 이상(已想: 이미 지나간 취상) · 상류(想類: 취상의 부류)를 말한다]
無造作故로 非行이며 조작이 없으니 행도 아니며,
[행(行)= 범어saṃskāra, '만드는 것'과 '이변(異變)하는 것'의 뜻이며, 12연기(十二緣起)의 제2행(行)은 전자, 즉 業의 뜻이고, 제행무상이라고 할 때에는 후자, 즉 모든 현상을 말한다. 그러나 수행(修行)이란 뜻에서의 행은 그 원어가 다르다.
행(行)은 ① 身 · 口 · 意의 조작을 말하며, 또는 內心이 外境에 가는 것이 心行과 같으며, 일체의 有爲法을 말한다. 유위법은 緣을 따라서 일어나고, 만들어진다는 뜻 또는 이것이 항상 변화하여 생멸하는 것이므로 遷流의 뜻으로 해석함.
(1) 五蘊의 하나. 行蘊의 약칭. (2) 十二因緣의 하나. 무명을 근원으로 하고, 감각 등 여러 가지를 발생하는 신 · 구 · 의 三業. (3) 諸行無常의 行은 변화하는 現象諸法.]
無執取故로 非識이며 집착하여 취함이 없으니 식도 아니고,
[識(식)=vijnana-skandha 구별하여 아는 것을 의미하며, 감관에 의지하여 대상을 인식하는 마음을 가리킨다.
인식작용. 식별작용. 작용하는 마음. 식별의 작용을 이루는 것. 인식하는 마음. 인식기능. 시(視)·청(聽)·후(嗅)·미(味)·촉각(觸覺)의 기관 및 사고력을 매개로 하는 6종의 인식기능(6식)으로,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의 6종의 인식작용이 색(色)·형(形)·성(聲)·향(香)·미(味)·촉(觸)인 것. 법(法)의 6종 대상(경계)을 인식하는 기능.
세계의 구성 요소를 5온(五蘊)으로 분석할 때는 식온(識蘊)으로서, 아비달마(阿毘達磨)에서 모든 존재를 5위(位)로 체계화한 중에 마음의 중심체인 심왕(心王)과 개개의 정신작용인 심소(心所)를 세우는 데서는 심왕에 상당한다.
부파불교의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에서는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의 각각에 대해 식을 인정하여 6식만을 식이라 하고 그 본체는 하나라 한다. 좁은 의미의 식은 이 6식을 가리킨다. 이들 중 안식부터 신식까지의 5식은 차례로 현대에서 말하는 시각·청각·후각·미각·촉각의 5감각에 상당하고, 각각 색·성·향·미·촉(色聲香味觸)의 5가지를 감각 대상으로 삼는다. 이렇게 5식이 저마다 별도의 대상을 갖는 데 대해 마지막 의식은 모든 사물=一切法을 대상으로 한다. 십이인연에서 셋째에 위치하는 식은 찰나에 소멸하면서 상속하는 우리들 자기존재의 한 요소가 식임을 의미한다. 유식파의 8식에서는 심·의·식을 구별하여 심은 아뢰야식(阿賴耶識 ālaya-vijñāna), 의는 말나식(末那識 manas), 식은 6식을 표시한다고 한다. 즉 식에는 인식하는 것과 인식되는 것이라는 2가지 계기가 내재되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전자의 입장을 무형상(無形象) 유식론, 후자의 입장을 유형상(有形象) 유식론이라 한다.]
無入處故로 非處며 들어갈 곳 없으니 처가 아니며,
[處(처)= 十二處=(āyatana)는 마음-心과 마음작용-心所가 생장(生長)되는 문(門, dvāra) 또는 '입(入)'이라고도 번역되며, 12처의 각 처(處)가 현재 생겨나 있지 않은 마음과 마음작용을 생겨나게 하고 이미 생겨나 있는 마음과 마음작용의 세력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불교의 일체법 분류체계 또는 분석방식 중 하나로, '十二入' 또는 '十二入處'라고도 하며 6가지의 감각기관인 안·이·비·설·신·의와 이들 각각의 대상인 색·성·향·미·촉·법을 말한다. 즉 존재 전체를 안처(眼處) · 이처(耳處) · 비처(鼻處) · 설처(舌處) · 신처(身處) · 의처(意處)의 6근(六根) · 6내처(六內處) 또는 6내입처(六內入處)와 색처(色處) · 성처(聲處) · 향처(香處) · 미처(味處) · 촉처(觸處) · 법처(法處)의 6경(六境) · 6외처(六外處) 또는 6외입처(六外入處)의 총 12가지 처(處)로 분류 또는 분석하는 법체계이다.
원시불교에서 12처는 세계의 모든 것인 일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설명된다. 대상세계를 인식하는 감각기관인 6근은 곧 인간이라는 존재를 가리키고, 6경은 인간을 둘러싼 자연환경을 가리킨다고 이해된다. 따라서 12처는 원시불교 이래 불교를 대표하는 존재 체계의 하나로 간주되며, 오온·12처·18계를 열거하여 '3과'라 칭한다.
6근(六根) 또는 6내처(六內處): 주관
* 안처(眼處): 시각 기관, 즉 눈 * 이처(耳處): 청각 기관, 즉 귀 * 비처(鼻處): 후각 기관, 즉 코
* 설처(舌處): 미각 기관, 즉 혀 * 신처(身處): 촉각 기관, 즉 몸 * 의처(意處): 인식과 생각의 기관, 즉 마음(의식)
6경(六境) 또는 6외처(六外處): 객관
* 색처(色處): 시각 기관의 지각 대상, 즉 색깔이나 형태(모양과 크기)를 가진 물질 일반, 즉 소리 · 냄새 · 맛 · 감촉을 제외한 모든 물질적 성질 * 성처(聲處): 청각 기관의 지각 대상, 즉 소리 * 향처(香處): 후각 기관의 지각 대상, 즉 냄새
* 미처(味處): 미각 기관의 지각 대상, 즉 맛 * 촉처(觸處): 촉각 기관의 지각 대상, 즉 감촉
* 법처(法處): 마음작용 및 마음작용의 대상= 법처(法處)의 마음작용의 대상에는 특히 무위법(열반 · 진여 · 법성 등)이 포함된다. 무위법을 제외하면 법처(法處)의 마음작용의 대상은 대체로 개념(또는 비물질적 사물)이라 할 수 있으며 법처(法處)의 마음작용으로는 탐욕 · 성냄 · 어리석음 · 탐욕 없음 · 성냄지 않음 · 지혜로움 · 인식 · 표상 · 분석 · 종합 · 판단 · 생각 · 욕구 · 의지 · 관조 · 집중 · 몰입 등이 있다.]
無所得故로 非界나 얻을 것 없으니 계(경계)도 아닌 줄 아시지만
[18계(十八界, 영어: Eighteen Dhātus)= 불교의 일체법 분류체계 또는 분석방식 중 하나로, 존재 전체를 안계(眼界) · 이계(耳界) · 비계(鼻界) · 설계(舌界) · 신계(身界) · 의계(意界)의 6근(六根) 또는 6소의(六所依)와 색계(色界) · 성계(聲界) · 향계(香界) · 미계(味界) · 촉계(觸界) · 법계(法界)의 6경(六境) 또는 6경계(六境界)와 안식계(眼識界) · 이식계(耳識界) · 비식계(鼻識界) · 설식계(舌識界) · 신식계(身識界) · 의식계(意識界)의 6식(六識) 또는 6능의(六能依)의 총 18가지 계(界)로 분류 또는 분석하는 법체계이다. 18계(十八界)에서 계(界, realm)는 법(法)의 종류(種類, 산 gotra 또는 종족(種族)이라는 뜻을 가진다. 즉, 18계는 하나의 산(山) 중에 금(金) · 은(銀) · 동(銅) · 철(鐵) 등의 다양한 광물이 있는 것처럼, 각 사람의 몸(불교 용어 所依身)에 18종의 법(法: 실체, 요소)이 갖추어져 있다는 것을 말한다. 또한, 각 사람의 인생의 흐름, 즉 5온의 상속(相續)에서도 이들 18종 法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然亦不壞 一切諸法하나니 일체의 모든 법을 파괴하지도 않으시니
本性無起하야 如虛空故라 본래의 성품이 일어남이 없어서 허공 같기 때문이며,
[모든 부처님은 일체법의 근본 성품이 고요함[寂靜]을 안다. 일체법의 근본 성품이 고요하므로 색, 수, 상, 행, 식의 오온(五蘊)이 아니다. 안, 이, 비, 설, 신, 의의 육입(六入)도 아니다. 12처(處)도 아니다. 18계(界)도 아니다. 오온과 육입으로 된 것은 소위 자아라는 거짓 아(我)다. 참 나가 아니며, 차별이 있으므로 차별 없는 참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또한 일체 법을 파괴하지도 않는다. 본래의 성품이 일어나지 아니하여 허공과 같기 때문이다.]
一切諸法이 皆悉空寂하야 無業果하며 일체의 모든 법이 다 공적하여 업과도 없고
無修習하며 닦아 익힐 것도 없고 無成就하며 성취할 것도 없고 無出生하며 출생함도 없고
非數 非不數며 세는 것도 아니고 못 세는 것도 아니고(수량도 아니고 수량 아님도 아니며)
非有 非無며 非生 非滅이며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니고, 생도 아니고 멸도 아니며,
非垢 非淨이며 非入 非出이며 더러운 것도 깨끗한 것도 아니고,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나가는 것도 아니며
非住 非不住며 머무는 것도 아니고 머물지 않는 것도 아니고
非調伏 非不調伏이며 조복하는 것도 아니고 조복하지 않는 것도 아니며,
非衆生 非無衆生이며 중생이라 할 것도 아니고, 중생이 없는 것도 아니고
非壽命 非無壽命이며 수명이라 할 것도 아니고 수명이 없는 것도 아니며,
非因緣非 無因緣이로대 인연이라 할 것도 아니고 인연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而能了知 正定 邪定과 바른 정에 들거나, 그릇된 정에 들거나
及不定聚 一切衆生하사 부정취에 있는 모든 중생을 다 밝게 아시기에
[正定聚(정정취)=중생을 3종류로 분류해서 三聚(삼취) · 三定聚(삼정취), 三際(삼제)라고도 한다. 그 명칭은 正性定聚·邪性定聚·不定性聚 또는 必正聚·必邪聚·不定聚라고도, 直見際·邪見際·亦不在邪亦不在正見際라고도 하며, 약하여 正定·邪定·不定이라고도 일컫는다.
俱舍論에서는, 見道(견도) 이후의 聖者(성자)는 見惑(견혹) 등을 끊고 涅槃(正性)이 결정된 것이므로 正性定聚(정성정취), 五無間業(오무간업)을 범한 자는 반드시 지옥에 떨어질 것이 정해져 있으므로 邪性定聚(사성정취, 三惡趣삼악취를 邪性사성)라고 하며, 그 이외는 緣次第(연차제)로서 어느 것도 결정된 것이 아니므로 不定性聚(부정성취)라 한다.
삼취(三聚) : 불교에서 사람의 성질을 셋으로 나눈 것.
(1) 正定聚(정정취)= 항상 진정하여 결정코 성불할 종류.
(2) 邪定聚(사정취)= 성불할 만한 소질이 없어 더욱 타락하여 가는 종류.
(3) 不定聚(부정취)= 緣이 있으면 성불할 수 있고, 緣이 없으면 迷할 一類로서 향상과 타락에 결정이 없는 기류, 즉 向上 진보하여 理想境道에 도달할른지, 타락 퇴보하여 惡道에 떨어질른지 결정이 없는 것.
이 셋은 어느 경론에서도 인정하지만, 선천적이냐 후천적이냐, 또는 필연이냐 우연이냐에 대해서는 각기 견해가 다르다.]
爲說妙法하야 令到彼岸하사 묘법을 설하시어 피안에 이르게 하시고
成就 十力 四無所畏하야 십력과 4무소외를 성취하여 能師子吼하며 능히 사자후를 하며
具一切智하야 住佛境界가 일체지를 갖추어서 부처의 경계에 머물게 하시니
是爲第十 善巧方便이니 이것이 열번째 선교한 방편이라
佛子야 是爲諸佛의 成就十種善巧方便이니라 불자여, 이것이 제불이 성취하신 열 가지 선교한 방편입니다.
[일체 모든 법이 다 공하고 고요하여 업과 과보도 없고 닦아 익힐 것도 없으며, 성취함도 없고 내는 것도 없으며, 수량도 아니고 수량 아님 등도 아니지만 그러나 성불할 것을 바로 결정한 정정취(正定聚) 중생과 잘못 결정한 사정취(邪定聚) 중생과 결정하지 못한 일체 부정취(不定聚) 중생을 분명히 분별하여 알아서 그에 알맞은 미묘한 법을 설하여 모두 저 언덕에 이르게 한다. 저 언덕에 이르러 십력과 4무외를 성취하여 능히 사자후 하게 한다. 또 일체 지혜를 갖추어 부처님의 경계에 머물게 하는 것이 또한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훌륭한 선교방편이다.
삼정취(三定聚)의 근기를 설하였는데 사람의 성질을 셋으로 나눈 것으로,
①정정취(正定聚)는 불법에 향상하고 진전하여 결정코 성불할 종류를 말한다.
②사정취(邪定聚)는 성불할만한 소질이 없어 더욱 타락하여 가는 종류를 말한다.
③부정취(不定聚)는 연(緣)이 있으면 성불할 수 있고, 연이 없으면 미혹에 빠질 일류(一類)로서 향상과 타락에 결정이 없는 중생의 근기를 말한다. 이 셋은 어느 경론에서도 인정하지만, 선천적이냐, 후천적이냐, 또는 필연이냐, 우연이냐에 대해서는 각기 견해가 다르다.
그러나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힘은 그 모든 중생들의 상태를 분명하게 알아서 잘 분별하여 그에 알맞은 미묘한 법을 설하여 모두 저 언덕에 이르게 한다.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법으로 교화하지 못하고 제도하지 못할 중생은 있을 수 없다. 만약 부처님의 법에 제도하지 못할 중생이 있다면 불가사의한 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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