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三種譬喩
㉯ 佛子야 譬如凡夫가 各別生心호대 已生現生과 及以當生에 無有邊際하며 無斷無盡하야
其心流轉하야 相續不絶이 不可思議ㄴ달하야
菩薩摩訶薩도 亦復如是하야 入此普幻門三昧에 無有邊際하야 不可測量이니 何以故오
了達普賢菩薩의 普幻門無量法故니라
佛子야 불자여, 譬如凡夫가, 비유하자면마치 범부가 各別生心호대, 저마다 다른 마음을 내되,
已生 이미 내었고 現生과 지금 내고 及以當生에, 그리고 장차 내기를
無有 邊際하며, 끝도 없고 無斷 끊기거나 無盡하야 다하는 일이 無有= 없으며,
其心 流轉하야, 相續不絶이 그 마음이 끊임없이 계속 유전하는 일이
不可思議ㄴ달하야 불가사의하듯이 菩薩摩訶薩도 보살마하살도 亦復如是하야 그와 같아서
入 此普幻門三昧에, 이 넓은 환문= 普幻門 삼매에 들어감에 無有邊際하야, 끝이 없어서
不可測量이니, 헤아릴 수 없는데, 測量측량= 생각하여 헤아림 何以故오? 왜냐하면,
了達普賢菩薩의 普幻門無量法故니라. 보현보살 보환문의 한량없는 법에 요달했기 때문입니다.
(23). 三種譬喩
㉰ 佛子야 譬如難陀跋難陀摩那斯龍王과 及餘大龍이 降雨之時에 滴如車軸하야 無有邊際라
雖如是雨나 雨終不盡이니 此是諸龍의 無作境界ㄴ달하야 菩薩摩訶薩도 亦復如是하야
住此三昧에 入普賢菩薩諸三昧門과 智門과 法門과 見諸佛門과 往諸方門과 心自在門과
加持門과 神變門과 神通門과 幻化門과 諸法如幻門과 不可說不可說諸菩薩充滿門하며
親近不可說不可說佛刹微塵數如來正覺門하며 入不可說不可說廣大幻網門하며
知不可說不可說差別廣大佛刹門하며 知不可說不可說有體性無體性世界門하며
知不可說不可說衆生想門하며 知不可說不可說時劫差別門하며
知不可說不可說世界成壞門하며 知不可說不可說覆住仰住諸佛刹門하야
於一念中에 皆如實知하나니 如是入時에 無有邊際하며 無有窮盡하며 不疲不厭하며
不斷不息하며 無退無失하며 於諸法中에 不住非處하며 恒正思惟하야 不沈不擧하며
求一切智하야 常無退捨하며 爲一切佛刹의 照世明燈하야 轉不可說不可說法輪하며
以妙辯才로 諮問如來호대 無窮盡時하며 示成佛道호대 無有邊際하며
調伏衆生호대 恒無廢捨하며 常勤修習普賢行願하야 未曾休息하며
示現無量不可說不可說色相身하야 無有斷絶이니라
何以故오 譬如燃火에 隨所有緣하야 於爾所時에 火起不息인달하야
菩薩摩訶薩도 亦復如是하야 觀察衆生界法界世界가 猶如虛空하야 無有邊際하며
乃至能於一念之頃에 往不可說不可說佛刹微塵數佛所하야 一一佛所에
入不可說不可說一切智種種差別法하야 令不可說不可說衆生界로 出家爲道하야
勤修善根하야 究竟淸淨하며 令不可說不可說菩薩이 於普賢行願에 未決定者로 而得決定하야
安住普賢智慧之門하야 以無量方便으로 入不可說不可說三世成住壞廣大差別劫하야
於不可說不可說成住壞世間差別境界에 起於爾所大悲大願하야 調伏無量一切衆生하야
悉使無餘하나니 何以故오 此菩薩摩訶薩이 爲欲度脫一切衆生하야
修普賢行하며 生普賢智하며 滿足普賢의 所有行願이니라
佛子야 불자여
譬如 難陀 跋難陀 摩那斯龍王과, 마치 난타용왕, 발난타용왕, 마나사용왕과
及餘大龍이, 그리고 다른 용왕들이 降雨之時에, 비를 내릴 때 降雨강우
滴如車軸하야, 수레바퀴 축이 돌아가듯 滴 물방울 적, 車軸거축= 바퀴 회전의 중심축이 되는 쇠막대기
無有邊際라. 끝없이 적시지만
雖如是雨나, 비록 그렇게 비를 내려도 雨終不盡이니, 비는 결코 다하지 않는데
此是諸龍의, 이것이 바로 모든 용왕의 無作境界ㄴ달하야, 지음이 없는=無作 경계이듯이
[비는 용왕의 지음이 없는 경계와 같아서,]
[난타용왕(難陀/Nanda/Ananda) = 용왕들의 우두머리. 난타를 歡喜라 번역하고, 발난타를 善歡喜라 번역. 항상 마갈타국을 지키며 적당한 시기에 비를 내려 백성을 기쁘게 하고 또 사람으로 변신하여 부처님 설법을 들음.
발난타(跋難陀/Upananda)= 난타용왕의 동생. 비를 내려 흉년을 막는다.
사가라/사갈라(娑伽羅/沙竭羅/Sagara/Shakara)= 바다의 용왕으로 '해상용왕'이라 하여 다른 탱화에 단독등장하기도 한다. 딸이 8살에 성불하였다고 전한다.
화수길/바스키(和修吉/Vasuki)= 머리가 아홉 개 달렸다고 전하는 용왕. 수미산 근처를 돌며 작은 용을 잡아 먹고 산다
덕차가(德叉迦/Takshaka)= 혀가 여러 개 있고, 분노하여 사람이나 동물을 응시하면 그 생명은 죽는다.
아나바달다(阿那婆達多/Anavatapta)= 대설산(히말라야 산맥) 북쪽에 있는 거대한 못 아나와땁따(Anavatapta)에 살면서 맑은 물을 내려보내 세상을 비옥하게 하는 용왕. 아나와땁따 호수에 산다고 용왕의 이름 또한 '아나와땁따'이다. 여기서 '아나와땁따'는 '뜨거워지지 않는'이라는 뜻인데, 항상 차갑고 맑은 물이 넘실거리는 히말라야 산맥 속 대호(大湖)를 잘 표현한 명칭. 아나와땁따를 한자로 음차하여 아뇩달(阿耨達) 또는 아나바달다(阿那婆達多)라 한다. 그래서 한자로 '아나바달다 용왕'이라고도 하고 '아뇩달 용왕'이라고도 한다. 용왕이 사는 호수를 한자로는 용왕과 구분하여 못 지(池) 자를 붙여서 아뇩달지(阿耨達池)라고 부른다. 여기서 아뇩달지는 카일라스 산 남쪽에 면한 거대한 호수 마나싸로와르(Manasarovar)를 가리킨다. 뇩(耨) 자에는 '누'라는 음도 있기 때문에 '아누달 용왕', '아누달지'라고도 쓰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뇩'이라고 읽음이 맞는다. '뜨거워지지 않는다.'는 뜻인 '아나와땁따'를 '열뇌(熱惱)가 없다.'고 해석하여 아나바달다 용왕은 다른 용들이 겪는 네 가지 큰 열뇌(번뇌)가 없다고 풀이한 구절이 석보상절에 있다.
마나산/마나사(摩那散/摩那斯/Balavan/Manasvin)= 몸을 휘감아 바닷물을 막고 때 맞추어 비구름을 모아 비를 내리는 용왕.
우발라(優鉢羅/Utpala/Utpalaka)= 수련(睡蓮)이 자라는 거대한 연못에 산다는 용왕. '우발라'란 이름이 수련을 뜻한다.
[팔대용왕(八大龍王)= 불법을 수호하는 여덟 용왕. 곧 난타(難陀), 발난타(跋難陀), 시기리(娑伽羅), 화수길(和修吉), 덕차가(德叉迦), 아나발다(阿那婆達多), 마나사(摩那斯), 우발라(優鉢羅)의 8용왕]
菩薩摩訶薩도 亦復如是하야,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住此三昧에, 이 삼매에 머물러 入 普賢菩薩 諸三昧門과, 보현보살의 모든 삼매문인
智門과 法門과 지혜문과 법문, 見 諸佛門과, 부처님을 보는 문,
往 諸方門과, 모든 방면에 가는 문, 往 갈 왕, 향할 왕 心自在門과, 마음이 자재한 문,
加持門과, 가피(가지)하는 문 神變門과, 신통변화의 문, 神通의 門과 신통문,
幻化의 門과 환화의 문, 諸法 如幻門과, 모든 법이 허개비와 같은 문,
不可說不可說 諸菩薩 充滿門하며, 불가설 불가설의 보살들이 충만한 문에 入= 들어가고,
親近 不可說不可說 佛刹 微塵數 如來 *正覺門하며, 불가설 불가설 불찰미진수 여래의 바른 깨달음의 문을 가까이 하며,
入 不可說不可說 廣大 幻網門하며, 불가설 불가설의 광대한 허깨비 그물의 문에 들어가며, 幻網門환망문
知 不可說不可說 差別 廣大 佛刹門하며, 불가설 불가설의 차별하고 광대한 부처님 세계의 문을 알며,
知 不可說不可說 有體性 無體性 世界門하며, 불가설 불가설의 체성이 있거나 체성이 없는 세계의 문을 알며,
知 不可說不可說 衆生想門하며, 불가설 불가설한 중생들 생각의 문을 알며,
知 不可說不可說 時劫 差別門하며, 불가설 불가설한 때와 겁의 차별한 문을 알며,
知 不可說不可說 世界 成壞門하며, 불가설 불가설한 세계의 이룩되고 무너지는 문을 알며,
知 不可說不可說 覆住仰住 諸佛刹門하야, 불가설 불가설의 거꾸로 서고 바로 선 모든 부처님 세계의 문을 알되
覆住부주 覆 뒤집힐 복, 仰住앙주 仰 우러를 앙,
於一念中에 한 순간에 皆如實知하나니, 모두를 여실히 아는데,
如是入 時에 이렇게 들어갈 때에 無有邊際하며, 끝도 없고 無有窮盡하며, 다함도 없으며, 窮盡궁진
不疲 不厭하며, 피로나 싫증도 없고 不斷 不息하며, 그만두거나 쉬는 일도 없으며,
無退 無失하며, 물러서거나 잃는 일도 없고 於諸法中에 제법 안에서
不住 非處하며, 그른 곳에 머물지도 않으며, 恒 正思惟하야, 늘 바르게 생각하여
不沈不擧하며, 혼침도 하지 않고 도거도 하지 않으며,
求 一切智하야 일체지를 구하기에 常無退捨하며, 항상 물러서거나 버리지 않으며,常無退捨상무퇴사
爲一切佛刹의 모든 부처님 세계에서 照世明燈하야, 세간을 밝히는 등불이 되어 照世明燈조세명등
轉 不可說不可說 法輪하며, 불가설 불가설의 법륜을 굴리며,
以妙辯才로 미묘한 변재로 諮問如來호대, 여래에게 여쭙기를 諮 물을 자, 問 물을 문
無窮盡時하며, 다 할 때가 없으며,
示 成佛道호대, 불도를 이루어 보이기를 無有邊際하며, 끝없이 하고
調伏衆生호대, 중생을 조복시키기를 恒無廢捨하며, 항상하여 그만두는 일이 없으며, 廢 폐할 폐, 버릴 폐, 捨 버릴 사
常勤 修習 普賢行願하야, 보현의 행원을 힘써 닦기를 未曾 休息하며, 일찍이 쉬어본 적이 없으며,
示現 無量 不可說不可說 色相身하야, 한량없는 불가설 불가설의 색신을 나타내보이기를
無有斷絶이니라. 끊임없이 하는데, 斷絶단절. 何以故오 어째서인가 하면,
譬如燃火에, 마치 타는 불이 燃 사를 연, 탈 연 隨所有緣하야, 어떤 인연에 따라
於爾所時에, 어느 때에는 火起 不息인달하야, 불이 쉬지 않고 일어나듯이
菩薩摩訶薩도 亦復如是하야,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觀察 衆生界 法界 世界가 중생계, 법계, 세계가 猶如虛空하야 마치 허공처럼
無有邊際하며, 끝이 없음을 觀察= 관찰하고
乃至 能於一念之頃에, 내지 한 순간에
往 不可說不可說 佛刹 微塵數 佛所하야,불가설 불가설한 불찰미진수의 부처님 처소에까지 나아가
一一佛所에, 낱낱의 부처님 처소마다
入 不可說不可說 一切智 種種 差別法하야, 불가설 불가설한 일체지의 갖가지로 차별한 법에 入= 들어가고
令 不可說不可說 衆生界로, 불가설 불가설의 중생들로 令=하여금
出家 爲道하야, 도를 위해 출가하고 勤修 善根하야, 선근을 힘써 닦아서
究竟에 淸淨케하며, 구경에 청정케 하며,
令 不可說不可說 菩薩이, 불가설 불가설한 보살들로 하여금 於普賢行願에, 보현의 행원에서
未決定者로, 아직 결정치 못한 이는 [보현행원에 대해서 아직도 확실하지 않은 사람으로 하여금,]
而得決定하야, 결정함을 얻게 하여
安住 普賢智慧之門하야, 보현의 지혜문에 안주하게 하며,
以無量方便으로, 한량없는 방편으로
入 不可說不可說 불가설 불가설한 三世 成 住 壞 삼세가 이루어지고 머물다 무너진
廣大差別 劫하야, 광대하고 차별한 겁에 入= 들어가고
於不可說不可說 불가설 불가설한 成 住 壞 이루고 머물다 무너진
世間差別 境界에, 세간의 차별한 경계에서
起 於爾所大悲 大願하야, 그와 같은 대비의 대원을 일으켜서
調伏無量 一切衆生하야, 한량없는 일체중생을 悉使無餘하나니, 남김없이 조복시키기 때문이니,
何以故오? 그것은 此菩薩摩訶薩이, 이 보살마하살이
爲欲 度脫一切衆生하야, 일체중생을 도탈= 해탈케하고자 해서,
修 普賢行하며 보현행을 닦고 生 普賢智하며, 보현의 지혜를 내며,
滿足普賢의 所有行願이니라. 보현의 행원을 만족히 한다는 것입니다.
[正覺(정각)과 正行(정행)= 正:바를 정. 바르다. 정당하다, 바람직하다. 올바르다, 정직하다. 바로잡다.
覺:깨달을 각. 깨닫다. 깨우치다. 드러내다, 밝히다. 터득하다. 높고 크다. 깨달음. 선각자(先覺者).
정각은 ⑴일원상의 진리를 바르게 깨닫는 것. ⑵올바른 깨달음. 미망(迷妄)을 끊어버린 여래의 참되고 바른 지혜. ⑶삼보리(三菩提 sambodhi). ⑷등정각(等正覺)의 약칭으로 번역하여 정각이라 한다. ⑸부처의 지(智)를 이름하여 정각이라 한다. ⑹부처님은 무루정지(無漏正智)를 얻어 일체제법의 실상을 깨달았기 때문에 성불을 성정각(成正覺)이라 한다.
正行은 ⑴정의롭고 정당한 행동. 바른 깨달음에 의한 실천. ⑵극락왕생을 위하여 마음을 닦는 맑고 깨끗한 행업(行業). ⑶불교를 믿는 사람이 닦는 진정한 행업(行業). ⑷사행(邪行)에 대하여 하는 말, 혹은 잡행(雜行)에 대하여 하는 말.
무릇 정각(正覺)은 제생(濟生)이요 정행(正行)은 의세(醫世)이다. 또한 정각은 성불(成佛)이요, 정행은 제중(濟衆)이다. 또한 정각은 일원대도의 정법이요, 정행은 일원교법의 교화이다. 또한 정각은 일원의 진리를 깨닫는 것이요, 정행은 마음을 잘 쓰는 것이다. 또한 정각은 불생불멸(不生不滅)의 도를 앎이요, 정행은 인과보응(因果報應)의 이치를 실행함이다. 또한 여래의 실지(實智)를 증득함이요, 정행은 여래의 홍복(鴻福)을 베풂이다. 또한 원만구족(圓滿具足)을 이룸이요, 정행은 지공무사(至公無私)를 행함이다. 또한 정각은 우주의 조리(條理)를 깨닫는 것이요, 정행은 우주의 운행을 본받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정각정행은 이루려는 것, 곧 성취하려는 것보다는 이미 성취된 상태이므로 그대로 베풀어서 행하면 된다. 그러기 때문에 정각을 이루지 않으면 정행을 할 수가 없고, 정행을 한다면 정각을 이루지 않고는 어렵다고 보아야 한다.]
(24) 修行勸誘 수행권유
㉮是故로 諸菩薩이 應於如是種類와 如是境界와 如是威德과 如是廣大와 如是無量과
如是不思議와 如是普照明과 如是一切諸佛現前住와 如是一切如來所護念과
如是成就往昔善根과 如是其心無碍不動三昧之中에 勤加修習하야 離諸熱惱하며
無有疲厭하야 心不退轉하며 立深志樂하야 勇猛無怯하며 順三昧境界하야 入難思智地하며
不依文字하고 不着世間하며 不取諸法하고 不起分別하며 不染着世事하고 不分別境界하야
於諸法智에 但應安住하고 不應稱量이니 所謂親近一切智하야 悟解佛菩提하며
成就法光明하야 施與一切衆生善根하며 於魔界中에 拔出衆生하야 令其得入佛法境界하며
令不捨大願하고 勤觀出道하야 增廣淨境하며 成就諸度하야 於一切佛에 深生信解하며
常應觀察一切法性하야 無時暫捨하며 應知自身이 與諸法性으로 普皆平等하며
應當明解世間所作하야 示其如法智慧方便하며
是故로 그러므로 諸菩薩이 모든 보살들은 應 於如是種類와, 마땅히 이러한 종류와 應 응할 응
如是 境界와, 이러한 경계, 如是 威德과, 이러한 위덕, 如是 廣大와, 이와 같은 광대함,
如是 無量과, 이와 같은 무량함, 如是 不思議와, 이와 같은 부사의함,
如是 普照明과, 이와 같은 두루하는 비춤,
如是 一切諸佛 現前住와, 이와 같은 모든 부처님의 현전해 머무심,
如是 一切如來所 護念과, 이와 같은 모든 여래의 호념하시는 일, [호념(護念)= 항상 불·보살을 마음 속에 품고 선행을 닦으면 부처님·보살·하늘·귀신들이 여러 가지 장애로부터 중생을 보살펴 준다는 말.]
如是 成就 往昔善根과, 이와 같은 지난 옛적에 성취한 선근과
[善根(선근)= 선한 결과[善果]를 받을 수 있는 원인. 善因善果 惡因惡果에서 선인이 곧 선근에 해당한다. ]
如是 其心 無碍不動 三昧之中에, 이와 같은 마음에 장애가 없고 흔들림 없는 삼매 가운데서 無碍不動무애부동
勤加 修習하야, 더욱 힘써 닦아 익히고 勤 부지런할 근,
離諸 熱惱하며, 모든 들끓는 번뇌를 여의는 데에 熱惱열뇌= 뜨거운 번뇌, 극심한 마음의 괴로움
無有疲厭하야, 피곤함도 싫증도 없어서 無有疲厭무유피염
心 不退轉하며, 마음이 퇴전치 않으며, 立 深志樂하야, 깊은 뜻의 즐거움을 세워서 深志樂심지락,
勇猛無怯하며, 용맹하여 겁이 없으며 勇猛無怯용맹무겁,
順 三昧境界하야, 삼매의 경계에 수순하여 入 難思智地하며, 생각하기 어려운 지혜자리에 들어가며
不依 文字하고, 문자에 의지하지 않고 依 의지할 의, 不着 世間하며, 세간에 집착하지도 않고
不取 諸法하고, 모든 법을 취하지도 않고 不起 分別하며, 분별을 일으키지도 않고
不染着 世事하고, 세상 일에 물들지도 않고 染着염착 不分別 境界하야, 경계를 분별하지도 않아서
[경계(境界)= 境. ① 感覺器官감각기관(根) 및 認識인식을 주관하는 마음(識)의 대상을 가리킨다. 예컨대 눈과 眼識안식(視覺시각)에 의해서 보게 되는 色(빛 · 모양)이 그것이니, 여기에 五境, 六境의 구별이 있다. ② 자기의 힘이 미칠 수 있는 범위, 인과응보의 이치에 따라 자기가 놓이게 되는 처지, 인식하거나 가치 판단을 주관하는 마음의 대상.]
於諸法 智에, 모든 법의 지혜에 但應 安住하고, 다만 마땅히 안주하고 但應단응
不應 稱量이니, 헤아려서는 안될 것이니 稱量칭량= 무게를 달다
所謂 親近 一切智하야, 다시 말해서 일체지를 가까이 하여
悟解 佛菩提하며, 불보리를 깨달아 알고 悟解오해= 이해되다, 해득하다, 납득되다. 悟 깨달을 오
成就 法光明하야, 법광명을 성취하여 施 與一切衆生 善根하며, 일체중생에게 선근을 베풀어 주며,
於魔界 中에, 마군의 경계에서 拔出 衆生하야, 중생들을 구출하여 拔出발출=빼내어 나오게 함
令其 得入 佛法境界하며, 그들로 하여금 불법의 경계에 들어가게 하며,
令 不捨大願하고, 대원을 버리지 않고 勤觀 出道하야, 출리의 도를 힘써 살펴서 勤觀근관,
增廣 淨境하며, 청정한 경계를 더욱 넓히게 令= 하며 增廣증광
成就 諸度하야, 모든 바라밀을 성취하여 於一切佛에, 모든 부처님께
深生 信解하며, 깊이 믿고 이헤하는 마음을 내고
常應 觀察一切法性하야, 언제나 일체법의 성품을 관찰하기를 常應觀察상응관찰,
無時 暫捨하며, 잠시도 버리는 일이 없을 것이며, 無時무시= 일정하지 않은 아무때, 暫 잠깐 잠, 捨 버릴 사
應知 自身이 與諸法性으로, 자기의 몸이 법의 성품과 普皆平等하며, 두루 평등함을 응당히 알고,
應當明解 世間所作하야, 응당히 세간이 짓는 바를 밝게 알아서
示 其如法智慧 方便하며, 그들에게 여법한 지혜의 방편을 보여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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