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重頌

    (1) 入地十種觀察

爾時에 金剛藏菩薩이 欲重宣其義하사 而說頌曰 

菩薩圓滿五地已에 觀法無相亦無性하며  無生無滅本淸淨하며 無有戲論無取捨하며

體相寂滅如幻等하며 有無不二離分別하고  隨順法性如是觀하야 此智得成入六地로다

 

爾時에 이때 金剛藏菩薩이 금강장보살이 欲重宣其義하사 그 뜻을 거듭 밝히고자 而說頌曰 게송으로 말했다.

 

菩薩 圓滿五地 已에, 보살은 제 5지를 원만히 하고서

觀法 無相 亦無性하며, 법의 무상과 또한 무성과, [법은 형상도 없고 불변하는 성질도 없으며,]

無生 無滅 本淸淨하며, 생겨남도 이룸도 없어 본래 청정= 텅 비었으며

無有戲論 無取捨하며, 희론도 취사도 없음을 觀= 관찰하며

 

體相寂滅 如幻等하며, 체상이 적멸하여 허깨비 등과 같고

體본체 체. 相형상 상. 體相=본질에 의하여 밖으로 나타나는 모양 

有無 不二離分別하고, 유와 무가 둘이 아닌 분별을 떠난 것이며

隨順法性 如是觀하야, 법의 성품에 수순해 이렇게 관찰하고

此智 得成入六地로다. 이 지혜로 제 6지에 들어감을 이루도다.

 

   (2) 十二有支의 十種觀察

明利順忍智具足하야 觀察世間生滅相하니  以癡闇力世間生이라 若滅癡闇世無有로다

觀諸因緣實義空이나 不壞假名和合用하며  無作無受無思念이나 諸行如雲遍興起로다

不知眞諦名無明이요 所作思業愚癡果요  識起共生是名色이니 如是乃至衆苦聚로다

了達三界依心有하며 十二因緣亦復然이라  生死皆由心所作이니 心若滅者生死盡이로다

無明所作有二種하니 緣中不了爲行因이라  如是乃至老終歿하야 從此苦生無有盡이로다

無明爲緣不可斷이어니와 彼緣若盡悉皆滅이라  愚癡愛取煩惱支요 行有是業餘皆苦로다

癡至六處是行苦요 觸受增長是苦苦요  所餘有支是壞苦니 若見無我三苦滅이로다

無明與行爲過去요 識至於受現在轉이요  愛取有生未來苦니 觀待若斷邊際盡이로다

無明爲緣是生縛이라 於緣得離縛乃盡이며  從因生果離則斷이니 觀察於此知性空이로다

隨順無明起諸有요 若不隨順諸有斷이며  此有彼有無亦然이라

 

明利順忍智 具足하야, 밝고 날카로운 순인인 지혜를 구족하고

觀察 世間生滅相하니, 세간의 생멸상을 관찰하여

以癡闇力으로 世間生이라. 치암=어리석고 캄캄한 힘으로써 세간이 출생하니 

若滅癡闇이면 世無有로다. 치암을 멸하면 세간도 없으리로다.

[만약 어리석음의 어둠을 소멸해 버린다면 세속이 없다출세간이 된다.]

 

觀諸因緣이면 實義空이나, 모든 인연의 실다운 이치가 공함을 관찰하여

不壞 假名和合用하며, 거짓 이름의 화합작용을 깨뜨리지 않은 채[가명을 무너뜨리지 아니함에 화합하여 작용하며,]

無作 無受 無思念이나, 지음도 받아들임도 사념도 없이 [지음도 없고 받아들임도 없고 생각함도 없으나,]

諸行 如雲 遍興起로다. 제행을 구름처럼 두루 일으키네.[모든 행이 구름처럼 일어나서 두루두루 흥기하는 도다.]

 

不知眞諦 名無明이요, 참된 이치 모르면 무명이라 하고  愚癡果우치과

所作思業이 愚癡果. 생각으로 지은 업은 어리석음의 과보이며[어리석은 결과가 행이다. 無明→ 行]

識起 共生是名色이니, 이 일어나 함께 생긴 것이 명색이라[식이 일어남에 같이 일어남이 명과 색이다. 識→ 名色]

如是 乃至 衆苦聚로다이러한 것이 온갖 고통 덩어리가 되네.

 

了達 三界依心 有하며, 삼계가 마음에 의지해 있고

[三界唯心, 萬法唯識, 우리 心識작용 때문에 모든 것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十二因緣 亦復然이라. 열두 가지 인연도 그러하며

生死皆由 心所作이니, 생사도 다 마음으로 인해 지어지니

心若滅者 生死盡이로다. 마음이 멸하면 생사도 다하는 줄 아네.

 

無明所作에 有二種하니, 무명의 짓는 업에 두 가지가 있으니

緣中不了 爲行因이라을 알지 못함이 행의 인이 되며

[인연가운데 不了=깨닫지 못한 미혹이 行因= 행의 원인이 된다.]

如是乃至老와 終歿하야이와 같이 결국 노사에 이르니 終歿종몰 

從此苦 生無有盡이로다. 이로부터 고가 생겨 다함이 없네. [계속 돌고 도는 것이다]

 

無明이 爲緣하야 不可斷이어니와, 무명이 연이 되어 가히 끊을 수 없으나

彼緣이 若盡하면 悉皆滅이니라. 그 연이 다하면 모두 소멸하며 

愚癡 愛 取 煩惱支요. 무명과 , 는 번뇌의 가지요  煩惱 

行有是業 餘皆苦로다. 행과 유는 업이며, 다른 것은 고통이네業ㆍ苦. 

 

癡至六處 是行苦요, 무명에서 6처까지는 행고觸受增長 是苦苦요, 과 수가 자라면 고고이며

所餘有支 是壞苦니, 다른 유지는 괴고이거니와 若見無我 三苦滅이로다. 무아를 보면 삼고가 멸하리라.

[三苦 ①고고(苦苦), 생노병사(生老病死) = 육체적인 것, 즉 苦受에 의해 심신이 괴로움을 받는 것 

②괴고(壞苦), 인과의 법칙과 모든 존재가 고정됨이 없이 항상 변화 하는것 즉 樂受에 의해 즐거우나 그 법이 사라질 때 받게 되는 괴로움을 말한다 

③ 행고(行苦),  인간의 육신은 색 수 상 행 식의 오온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나”라고 하는 실체가 없음에도 자신에 대하여 “나”라는 집착으로 생기는 고통, 즉 오온성고나 오취온고와 같습니다. 즉 捨受를 느끼지만, 그 법이 인연에 의해 생멸(生滅)하고 천류(遷流)하고 변괴(變壞)하는 것을 보며 바르게 느끼는 괴로움[苦]을 말한다.]

 

無明與行 爲過去요무명과 더불어 행은 과거요 識至於受 現在轉이요, 에서 수까지는 현재이며

愛 取 有 生 未來苦니, , , 생은 미래의 고통이거니와

觀待若斷하면 邊際盡이로다. 觀待= 관찰하여 상대하여 만약 끊으면 그 끝이 다하네.

邊際변제= 시간이나 공간에서, 그 이상 더 없는 한계 盡 다할 진, 진력할 진, 若 같을 약, 待 기다릴 대

 

無明爲緣 是生縛이라. 무명이 연이 되면 속박이 생기고

於緣에 得離하면 縛乃盡이며, 연에서 벗어나면 속박이 다하며

從因生果를 離則斷이니, 인에서 생긴 과를 여의는 것이 단멸이니

觀察於此하야 知性空이로다. 이것을 관찰하여 성품 공함을 아네.

 

隨順無明하야 起諸有요. 무명을 따라 제유를 일으키니  [모든 항목이 무명에서 일어난다.]

若不隨順하면 諸有斷이며, 만약 따르지 않으면 유가 끊기고 [여기의 諸有는 12 인연입니다]

此有 彼有 無亦然이라. 이 있음도 저 있음도 없음도 그러하여[연기의 '此有彼有 此無彼無'를 줄인 것입니다]

 

   (3) 總結

十種思惟心離着이니 有支相續一心攝과 自業不離及三道와 三際三苦因緣生과 繫縛起滅順無盡이로다

 

十種思惟心 離着이니, 열 가지 사유심으로 집착 여의나니,

有支相續 一心攝과, 유지의 상속, 한 마음의 섭수,

[12유지가 상속하는 것도 전부 한마음의 도리다.’, ‘한 마음에 다 귀속이 된다.’]

自業 不離 及三道와, 스스로의 업, 여의지 못함, 삼도,

[三道= 삼악도(三惡道), 삼취(三聚), 삼도에는 다음의 세 종류가 있다.
첫째, 삼악도(三惡道)의 줄임말로 지옥도·축생도·아귀도를 말한다. 중생이 윤회하는 육도(六道) 중에서 인도(人道)·아수라도(阿修羅道)·천상도(天上道)를 제외한 영역이다. 이 삼악도는 악행을 일삼은 중생이 가는 길이므로 악취(惡趣)라고 하는데, 그중에서도 지옥도가 가장 무거운 악행을 저지른 중생이 가는 곳이고, 다음으로 축생도와 아귀도가 이어진다.
둘째, 혹도(惑道)·업도(業道)·고도(苦道)의 삼도를 의미한다. 이것은 삼취(三聚)라고도 한다. 번뇌도(煩惱道)라고도 하는 혹도는 법의 이치를 알지 못하게 하는 미혹된 마음(妄心)을 가리킨다. 업도는 번뇌로 미혹된 마음에 의해 일어난 신(身)·구(口)·의(意)의 삼업이 낳은 과보를 가리킨다. 고도는 미혹된 마음과 과보로 인해 초래된 삼계(三界)의 육도를 윤회하는 고통을 가리킨다. 이 3가지 길은 어리석은 번뇌로 인해 업을 일으키고, 업으로 인해 고통이 발생하며, 고통으로 인해 다시 번뇌를 반복하는 길(道)이다. 천태지의는 『금광명경현의』에서 12연기를 삼도의 관계로 해석하였다. 12연기 중에 무명(無明)·애(愛)·취(取)는 번뇌도이고, 행(行)과 유(有)는 업도이며식(識)·명색(名色)·육입(六入)·촉(觸)· 수(受)·생(生)·노사(老死)가 고도에 해당하는 것이다.
셋째, 삼도는 성문과 보살의 길인 견도(見道)·수도(修道)·무학도(無學道)의 3가지 길이다. 견도는 견지(見地)라고도 하는데 사성제를 깨달아 견해의 미혹(見惑)을 끊은 단계이다. 수도는 수지(修地) 혹은 분별지(分別地)라고도 하며, 수행하여 수혹(修惑)을 제거한 단계이다. 마지막으로 앞의 견도와 수도가 유학도인데 반해 무학도는 무학지(無學地)라고 하며, 모든 미혹과 번뇌를 끊어 해탈에 이른 경지이다. 유식오위(唯識五位)에서는 삼도를 각각 통달위(通達位)·수습위(修習位)·구경위(究竟位)에 배대하기도 한다.]

三際 三苦 因緣生과세 세상, 세 고통, 인연의 생멸,[3계와 3고, 전부 인연으로 생멸하는 것이다.]

繫縛起滅이 順無盡이로다. 속박의 기멸, 다함이 없음이네. 繫縛계박

      

   (4) 果의 殊勝

如是普觀緣起行의 無作無受無眞實이  如幻如夢如光影하며 亦如愚夫逐陽焰이로다

如是觀察入於空하며 知緣性離得無相하며  了其虛妄無所願호대 唯除慈愍爲衆生이로다

大士修行解脫門하야 轉益大悲求佛法하며  知諸有爲和合作하야 志樂決定勤行道로다

空三昧門具百千하니 無相無願亦復然이라  般若順忍皆增上하야 解脫智慧得成滿이로다.

 

如是普觀하니 緣起行의, 이렇게 연기행을 두루 관찰하되

無作 無受 無眞實이, 지음도 받음도 없고, 진실함도 없으며,

如幻 如夢 如光影하며, 허깨비 같고, 꿈 같고, 그림자 같고,

亦如愚夫 逐陽焰이로다. 바보가 아지랑이 쫓아다님과 같다 하네.

愚夫우부= 어리석은 남자, 逐 쫓을 축, 陽 볕 양, 愚 어리석을 우, 焰 불꽃 염, 陽焰= 아지랑이

 

如是觀察 入於空하야, 이와 같이 관찰하고 공에 들어가

知緣性離하야 得無相하며연의 성품 여의고 무상을 얻어

了其虛妄 無所願호대, 그 허망함을 알아 無願= 원이 없으되

唯除慈愍으로 爲衆生이로다오직 중생을 위한 자비애민만 제외시키네.

[여기부터 대승불교의 보살이 자비롭게 여기고 불쌍히 여기는 것으로서 중생을 위함이로다.] 

 

大士 修行解脫門하야, 보살은 해탈문을 닦아 행하고

轉益大悲 求佛法하며, 대비심 더욱 늘리며 불법을 구하여

知諸有 爲和合作하야, 모든 유위가 화합작용임을 알고 

志樂이 決定하야 勤行道로다. 뜻세운 즐거움 결정히 도를 행하네

 

空三昧門이 具百千하니, 삼매문을 백천을 갖추고

無相無願도 亦復然이라. 무상과 무원문도 그러하며

般若順忍 皆增上하야, 반야순인 모두 더욱 향상되고

解脫智慧가 得成滿이로다. 해탈지혜도 원만히 이루네.

 

    (5) 功果

復以深心多供佛하고 於佛敎中修習道하야  得佛法藏增善根하니 如金瑠璃所磨瑩이로다

如月淸凉被衆物에 四風來觸無能壞ㄴ달하야  此地菩薩超魔道하야 亦息群生煩惱熱이로다

此地多作善化王하야 化導衆生除我慢하니  所作皆求一切智라 悉以超勝聲聞道로다

此地菩薩勤精進하야 獲諸三昧百千億하며  亦見若干無量佛하니 譬如盛夏空中日이로다

 

復以深心 多供佛하고, 다시 깊은 마음으로 무수히 많은 부처님 공양하고

於佛敎中 修習道하야부처님 가르침 안에서 도를 닦아 익히며

得佛法藏 增善根하니, 부처님 법장을 얻어 선근 늘리기를

如金 瑠璃所磨瑩이로다. 마치 진금을 비유리로 연마하듯이 하네. 瑩 밝을 영, 瑠璃유리 磨瑩마영

 

如月淸凉 被衆物, 밝은 달이 청량하게 만물을 비추듯  淸凉청량 

四風이 來觸無能壞ㄴ달하야, 네 풍륜이 닥쳐도 무너뜨릴 수 없나니,

[네 가지 풍륜= 住風주풍. 持風지풍. 不動風부동풍. 堅固風견고풍.]

此地菩薩이 超魔道하야, 이 지위의 보살은 마도를 초월하고

亦息 群生煩惱熱이로다. 또한 중생의 들끓는 번뇌도 멈추게 하네煩惱熱번뇌열

 

此地 多作善化王하야, 이 지위에서 대개는 선화천왕이 되어 [선화천왕= 화락천왕, 자기의 변화로 모든 즐길거리[樂具]를 지어서 스스로 오락함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선화는 남을 범하지 않는다는 의미의 선변화(善變化)]

化導衆生 除我慢하니, 중생을 교화인도하여 아만을 없애고  化導화도 除我慢제아만

所作 皆求一切智라. 짓는 바 모두가 일체지 구하는 것이어서

悉以超勝 聲聞道로다모두가 이미 성문의 길을 뛰어 넘었네.

 

此地菩薩이 勤精進하야, 이 보살은 부지런히 정진하여 獲 諸三昧百千億하며, 백 천억의 모든 삼매를 얻고

亦見若干無量佛하니, 또 한량없는 부처님을 만나니

譬如 盛夏空中日이로다. 마치 한 여름 허공의 태양과 같네. 譬如비여 盛夏성하  

 

(6) 結說

甚深微妙難見知라 聲聞獨覺無能了니  如是菩薩第六地를 我爲佛子已宣說이로다

 

甚深微妙 難見知라. 심심미묘한 법 보고 알기 어려워

聲聞 獨覺 無能了니, 성문 독각은 알 수 없거늘

如是菩薩 第六地를, 이러한 보살의 제 6지에 대해 

我 爲佛子 已宣說이로다. 불자들을 위해 내가 선설했도다.

[이 地는 緣生을 훌륭히 요달해서 세간과 출세간의 지혜를 이루는 것이며, 7 遠行地는 방편바라밀로 세간 속에 들어가는 출세간의 智慈의 슬기를 성취하는 것이다.]

[현전지(現前地):지혜바라밀의 대략
열가지 진리의 평등성
1. 모든 것은 무상(無相)이라는 평등성,
2. 모든 것은 발생하지 않는다는 평등성,
3. 모든 것은 무성(無性)이라는 평등성,
4. 모든 것은 불생(不生)이라는 평등성,
5. 모든 것은 고요하다는 평등성,
6. 모든 것은 원래 청정하다는 평등성,
7. 모든 것에는 희론(戱論: 대상을 차별하여 거기에 이름이나 의미를 부여함)이 있을 수 없다는 평등성,
8. 모든 것에는 본래 버리고 취함이 없다는 평등성,
9. 모든 것은 환상∙꿈∙그림자와 같다는 평등성,
10. 모든 것은 존재와 비존재가 둘이 아니라는 평등성

십이연기(十二緣起):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존재방식
무명(無明)-행(行)-식(識)-명색(名色)-육입(六入)-촉(觸)-수(受)-애(愛)-취(取)-유(有)-생(生)-노사(老死)
어떤 사물에 대해 탐욕과 결부된 마음이 생겼을 때 인식작용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사물은 구성된 것이며, 구성에 관한 어리석음이 무지입니다.
무지에서 생기는 것이 개체입니다. 개체에서 증대된 것이 여섯 감각기관입니다.
이 감각기관과 결부되는 것이 접촉입니다. 접촉과 함께 생기는 것이 감수작용입니다.
감수에서 싫증을 안 느낄 때, 그것이 갈망입니다. 핍박되는 것이 취착(取着)입니다.
이런 생존의 지분이 생기는 것이 생존입니다.
생존이 발생하는 것이 생입니다. 생은 늙음을 낳습니다. 늙음의 끝에는 죽음이 있습니다.
십이연기를 관찰하면서 자아가 없고, 중생이 없고, 개체의 존재가 없으며, 원래 공이요,
지은 자와 감수하는 자를 떠난 것으로서 관찰할 때, 모든 존재는 공해서 그 본성이 없다[공무성(空無性)]라는
깨달음의 문[공해탈문(空解脫門)]이 열리게 됩니다.
이런 온갖 생존의 지분의 자성을 없애고 궁극의 깨달음에 안주할 때, 어떤 상도 생겨나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무상의 깨달음의 문[무상해탈문(無相解脫門)]을 연 자가 됩니다.
공무성과 무상의 깨달음에 들어갔을 때, 그에게는 중생에 대한 대자비 이외의 어떤 원도 생기지 않습니다.
이리하여 그는 소원 없는 깨달음의 문[무원해탈문(無願解脫門)]을 연 자가 됩니다. 작성자 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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