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通達知法의因由 통달해서 법을 아는 까닭
此菩薩이 隨衆生心樂하야 令歡喜故로 知俗諦하며 通達一實相故로 知第一義諦하며
覺法自相共相故로 知相諦하며 了諸法分位差別故로 知差別諦하며
善分別蘊界處故로 知成立諦하며 覺身心苦惱故로 知事諦하며 覺諸趣生相續故로 知生諦하며
一切熱惱가 畢竟滅故로 知盡無生智諦하며 出生無二故로 知入道智諦하며
正覺一切行相故로 善知一切菩薩地次第相續成就와 乃至如來智成就諦니
以信解智力으로 知언정 非以究竟智力으로 知니라
通達통달, 俗諦속제, 蘊界處온계처, 覺각, 相續상속, 熱惱열뇌, 畢竟필경=끝장에 이르러
此菩薩이, 이 보살이 隨衆生心樂하야, 중생들 마음이 즐가는 바를 따라
令歡喜故로 기쁘게 하려고 知 俗諦하며, 세속의 진리=俗諦를 알고,
通達 一實相故로, 하나의 실상에 통달하고자 知第一義諦하며, 제일의제를 알며,
[제일의제(第一義諦)’란 무엇인가?
대지도론, 광홍명집, 대반열반경 등, 많은 경문에서는 부처님의 법을 크게 ①세제(世諦)와 ②제일의제(第一義諦) 둘로 나누어 설명하는데 세제는 속제(俗諦), 세속제(世俗諦)라고도 하고, 제일의제는 보살이 수행하는 열 가지 도리(세제(世諦)ㆍ제일의제(第一義諦)ㆍ상제(相諦)ㆍ차별제(差別諦)ㆍ관제(觀諦)ㆍ사제(事諦)ㆍ생제(生諦)ㆍ진무생지제(盡無生智諦)ㆍ인도지제(人道智諦)ㆍ집여래지제(集如來智諦) 등) 가운데 하나로서 진제(眞諦), 제일의공(第一義空), 승의제(勝義諦), 최승의제(最勝義諦) 등으로도 불린다(광홍명집, 대반열반경, 대비로자나성불신변가지경, 해심밀경 등).
경문에서는 부처님 말씀을 속제와 제일의제로 나누는 분기점을 직접 설명하지는 않으나 일반적으로 세제는 세간적인 진리 곧 세속의 이치를 말하고, 진제는 세속을 초탈한 진리를 말한다고 한다(대비로자나성불신변가지경, 대지도론)고 한다.쉽게 예를 들자면, 여래(如來), 법신(法身), 공(空) 등이 제일의제라면, 중생의 생로병사 과정에서 생기는 번뇌로부터 해탈시키기 위한 가르침 일체가 다 세제이다. 그러니까, 4념처 ․ 4정근 ․ 4여의족 ․ 5근 ․ 5력 ․ 7각지 ․ 8성도 등을 포함한 계율이 다 세제라는 뜻이다. 경문마다 경쟁적으로 제일의제를 설명하고 있긴 하지만 집필자의 수준에 따라서 그 내용이 다르게 나타나 있다. 그래서 더 어렵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대반열반경」에서는, “온갖 법이 모두 헛된 가짜이거든, 그것이 없어진 데를 참이라 하나니 이것을 실상(實相)이라 하고, 법계(法界)라 하고, 필경지(畢竟智)라 하고, 제일의제(第一義諦)라 하고, 제일의공(第一義空)이라 이름하느니라.” 했고, 「마하반야바라밀경」에서는 “제일의제의 모습이란 지음이 없고, 함이 없고, 생함이 없고, 모습이 없고, 설함이 없는 것이니, 이것을 제일의제라고 이름하고 또한 성품이 공(空)하다고 이름하고 모든 부처님의 도[佛道]라고도 부르느니라.”라고 했다. 그런가 하면, 「청정비니방광경(淸淨毘尼方廣經)」에서는 더 구체적으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생(生)에 머무는 것도 아니요, 멸(滅)에 머무는 것도 아니며, 옳다는 상(處相)이 있는 것도 아니요, 옳다는 상이 없는 것도 아니며, 상(相)이 있는 것도 아니요 상이 없는 것도 아니며, 상도 아니요 허공도 아니며, 색상(色相)을 상(相)이라고 할 수도 없고, 상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으며, 다 하여서 가히 다함도 아니요 다 하여서 능히 다함이 없는 것도 아니니, 이와 같은 것을 제일의제라고 한다. 의(義)라는 것은 마음이 아니요 마음의 상속(相續)이 아니며, 말이나 글귀가 아니며 이(此)것도 없고 저(彼)것도 없고 또한 중간도 없나니, 이와 같은 것을 제일의제라고 한다. 의라는 것은 가히 얻을 수 없고, 문자(文字)의 행(行)이 없나니 이를 제일의제라고 한다.
「심밀해탈경」에서는 제일의제의 모습[相]으로 일곱 가지가 있다고 하면서 부처님이 문수사리에게 직접 설명한 내용이다. 곧, ①비롯함이 없는 행상(行相)인 제일의제[행상의 제일의제] ②모습의 제일의제이니, 이른바 아공(我空)과 법공(法空)[모습의 제일의제] ③유식(唯識)의 제일의제이니 함이 있는 행상은 오직 식뿐임을 아는 것[유식의 제일의제] ④집착의 제일의제이니 이른바 내(부처님)가 말한 괴로운 진리[집착의 제일의제] ⑤삿된 행의 제일의제이니 이른바 내가 말한 모이는 진리[삿된 행의 제일의제] ⑥청정의 제일의제이니 이른바 내가 말한 멸하는 진리[청정의 제일의제] ⑦바르게 수행하는 제일의제이니 이른바 내가 말한 도의 진리[바른 수행의 제일의제] 등이라며, 이 일곱 가지 제일의제 상은 차별 없이 평등하다는 것이다. 경문들이 이러할진대 논(論)은 더욱 난해하기 짝이 없기에 아예 소개하지 않겠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하게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면, 제일의제(第一義諦)란 글자 그대로 가장 깊은 뜻의 진리로, 우주 만물을 존재하게 하는 근원이자 바탕으로서 부처님이 인식한 공(空)이며, 그 공과 동일시한 여래의 법신(法身), 곧 부처님의 모든 말씀이 나오는 근본으로서 바탕이라는 점이다.
그런가 하면, 「입능가경」에서는 ‘무(無)’가 제일의제이고, 정지(正智)·진여(眞如)가 제일의제의 모양이며, 한마디로 말해, 부처님의 여래장(如來藏)이며 그것은 불생(不生)·불멸(不滅)한다고 한다. 「불설부증불감경」에서는 “제일의제란 이는 곧 중생계(衆生界)이다. 중생계란 이는 곧 여래장(如來藏)이다. 여래장이란 이는 곧 법신(法身)이다. ”라고 했으며, “법신의 뜻이란 떠나지 않고 벗어나지 않고 끊이지 않고 다르지 않음이 항하(恒河)의 모래 수에 지나는 불가사의한 불법이며 여래의 공덕과 지혜인 것이다.”라고 했다. 작성자 들우물]
覺 法自相 共相故로, 법 스스로의 상과 공통의 상을 깨닫고자 知 相諦하며, 상제=형상의 이치를 알며,
了 諸法分位 差別故로, 모든 법의 부분적 차별을 요지하고자 知 差別諦하며, 차별제를 알며,
善分別 蘊 界 處 故로, 5 온, 18 계, 12 처를 잘 분별하고자 知 成立諦하며, 그것이 성립하는 이치를 알며,
覺 身心苦惱故로, 몸과 마음의 고뇌를 깨닫기 위해 知 事諦하며, 사제= 사물의 이치를 알며,
覺 諸趣生의 相續故로, 모든 갈래에 태어남이 지속되는 일을 깨닫기 위해 知生諦하며, 생제=생기는 이치를 알며,
[동물은 동물대로 계속 상속하고, 식물은 식물대로 상속하고, 또 사람은 사람대로 상속하는 것이 바뀌기 어렵습니다.
重處偏墜(중처편추) 무거운 곳으로 떨어지게 되어 있으니까요.]
一切熱惱가 일체의 번뇌가 畢竟滅故로, 필경에는 멸하기 때문에
知 盡無生智諦하며, 다해 더는 생겨남이 없는 지혜의 진리를 알며,
出生 無二故로, 무이를 출생시키고자 知入道智諦하며, 도에 들어가는 지혜의 이치를 알며,
正覺 一切行相故로, 일체의 행상을 바로 깨닫고자
善知 一切菩薩地 次第 相續成就와, 일체보살 지위를 차례로 이어 성취하는 이치와
乃至 如來智 成就諦니, 여래지혜를 성취하는 이치에 이르기까지를 잘 알아내는 것이니
以信解智力으로 믿고 이해하는 지혜=信解智의 힘으로 知언정, 아는 것이요
非以究竟智力으로 知니라. 구경에 이른 지혜=究竟智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6. 利益衆生의勤方便 중생을 이익케하는 부지런한 방편
佛子야 此菩薩摩訶薩이 得如是諸諦智已에 如實知一切有爲法이 虛妄詐僞하야 誑惑愚夫하고
菩薩이 爾時에 於諸衆生에 轉增大悲하야 生大慈光明이니라
佛子야 此菩薩摩訶薩이 得如是智力에 不捨一切衆生하고 常求佛智하야
如實觀一切有爲行의 前際後際하야 知從前際無明有愛故로 生하야 生死流轉하며
於諸蘊宅에 不能動出하며 增長苦聚호미 無我無壽者하며 無養育者하며
無更數取後趣身者하야 離我我所하나니 如前際하야 後際도 亦如是하야 皆無所有라
虛妄貪着을 斷盡出離하야 若有若無를 皆如實知니라
佛子야 此菩薩摩訶薩이 復作是念호대 此諸凡夫가 愚癡無智하니 甚爲可愍이로다
有無數身하야 已滅今滅當滅이니 如是盡滅이어늘 不能於身에 而生厭想하고
轉更增長機關苦事하야 隨生死流하야 不能還返하며 於諸蘊宅에 不求出離하며 不知憂畏四大毒蛇하며
不能拔出諸慢見箭하며 不能息滅貪恚癡火하며 不能破壞無明黑闇하며 不能乾竭愛欲大海하며
不求十力大聖導師하고 入魔意稠林하야 於生死海中에 爲覺觀波濤之所漂溺이니라
佛子야 此菩薩摩訶薩이 復作是念호대 此諸衆生이 受如是苦하야 孤窮困迫하야 無救無依하며
無洲無舍하며 無導無目하며 無明覆翳하고 黑闇纏裹하니 我今爲彼一切衆生하야
修行福智助道之法하야 獨一發心하고 不求伴侶하야 以是功德으로 令諸衆生으로 畢竟淸淨하며
乃至獲得如來十力無碍智慧케호리라하나니라
勤 부지런할 근, 虛妄허망= 1. 거짓이 많아서 미덥지 않음 2. 보람이 없고 허무함
詐僞사위= 양심을 속이고 거짓을 꾸밈, 誑惑광혹= 남을 속이고 유혹하여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함
愚夫우부= 어리석은 남자 轉增大전증대, 流轉유전, 宅 집 택, 聚 모을 취, 數 자주 삭,
虛妄貪着허망탐착, 甚爲可愍심위가민, 厭 싫어할 염, 機 베틀 기, 關 빗장 관, 관계할 관, 還返환반
毒蛇독사, 慢 게으를 만, 거만할 만, 箭 화살 전, 乾 마를 건, 竭 다할 갈, 稠林조림, 波濤파도,
漂 떠돌 표, 溺 빠질 닉, 孤 외로울 고, 窮 다할 궁, 궁할 궁, 困 곤할 곤, 迫 다그칠 박, 洲 섬 주, 물가 주
覆翳복예, 覆 뒤집힐 복, 덮을 부, 다시 복, 翳 일산 예, 黑 검을 흑, 闇 닫힌 문 암, 어두운 모양 암, 纏 얽힐 전, 얽을 전
裹 쌀 과. 伴侶반려= 생각이나 행동을 함께 하는 짝이나 동무
佛子야 불자여 此菩薩摩訶薩이, 이 보살마하살은, 得如是諸諦智已에, 이러한 이치의 지혜=諦智를 얻고서
如實知 一切有爲法이, 일체의 유위법이 虛妄詐僞하야, 허망하고 거짓되어서
誑惑愚夫하고, 어리석은 자들을 미혹시키는 줄을 如實知= 여실히 알고[일체유위법은 如夢幻泡影(여몽환포영)입니다]
菩薩이 爾時에, 보살은 그 때 於諸衆生에, 중생들에게 轉增大悲하야, 더욱 대비를 늘리고
生 大慈光明이니라. 대자의 광명을 일으킵니다.
佛子야 불자여, 此菩薩摩訶薩이 이 보살마하살은 得 如是智力에, 이러한 지혜의 힘을 얻어
不捨 一切衆生하고, 일체중생을 버리지 않고 常求佛智하야, 항상 부처의 지혜를 추구하여
如實觀一切有爲行의 前際後際하야, 모든 유위행=有爲行에 대한 전후의 실제=前後際를 여실히 관찰하여
[일체 유위법의 행의 전제 후제를 여실히 관찰해서,]
知 從 前際 無明 有愛故로, 전제의 무명에 있던 애욕으로부터 生하야, 생겨나,
[從前의 무명으로부터 애착이 있다. 어리석어서 속아 애착이 생기는 겁니다. 잘못 보지 않으면 애착이 생길 까닭이 없습니다. 그 무명 때문에 애착이 생기는 겁니다.]
生死流轉하며, 생사를 흘러 돌면서 於諸蘊宅에, 오온이라는 집에서
不能動出하며, 능히 헤어나지 못하고 增長苦聚호미, 고통의 무더기가 점점 커지니,
無我 無壽者하며, '나'라 할 것도 살고 있다 할 것도 없고 [나도 없고 수명도 없으며,]
無養育者하며, 기른다 할 것도 없으며 [양육하는 자도 없으며,]
無更 數取後趣身者(무갱삭취후취신자)하야, 다음 갈래의 몸을 다시 수시로 취한다 할 것도 없어서 數 자주 삭,
[다시 後趣身= 뒤에 받을 몸을 자주자주 취하는 자가 없어서,]
離我 我所하나니, '나'와 '내것'을 여의나니, [아와 아소를 떠나나니]
如 前際 전제와 같이 後際도 亦如是하야, 후제도 역시 皆無所有라. 있는 바가 없음이라.
虛妄貪着을 허망한 탐착을 斷盡出離하야, 모두 끊고 벗어나
若有 若無를, 있거나 없거나를 皆 如實知니라. 다 여실히 압니다.
佛子야 불자여, 此菩薩摩訶薩이, 이 보살마하살은 復作是念호대, 또 이렇게 생각하기를,
此諸凡夫가, '이 모든 범부들이 愚癡無智하니, 어리석고 무지하니
甚爲可愍이로다. 몹씨 가련하구나.
有 無數身(무삭신)하야, 무수한 몸이 已滅 이미 멸하고, 今滅 지금 멸하고, 當滅이니, 장차 멸하여
如是 盡滅이어늘, 그렇게 다해 없어질 터인데도
不能於身에, 몸에 대해 而生厭想하고, 싫증을 내지 않으니
轉更增長 機關苦事하야, 몸 기관의 고통만 더욱 늘어나고
[機關苦事, 로봇이나 기계같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고통을 증장시켜서, 우리의 주인공은 어디로 가버리고 시키는 대로 해서 機關苦事를 증장하는 겁니다. 그렇다고 이 몸을 버리라는 뜻이 아니라 이 몸은 허망하다는 사실을 알라는 것이지요. 알면 그렇게 고통에 허덕일 까닭이 없다는 것입니다]
隨 生死流하야, 생사의 물줄기를 따라 不能還返하며, 돌아올 줄을 모르며,
於諸蘊宅에, 오온의 굴레(집)에서 不求出離하며, 벗어나기를 구하지 않으며,
不知 憂畏 四大毒蛇 하며, 근심스럽고 무서운 사대의 독사를 알지 못하고,
不能 拔出 諸慢見箭하며, 교만한 소견의 화살을 뽑아내지 못하며,
不能 息滅 貪恚癡火하며, 貪恚癡 = 탐 진 치의 불이 꺼지지 않으며,
不能 破壞 無明 黑闇하며, 무명의 깜깜한 어둠을 깨뜨리지 못하며,
不能 乾竭 愛欲大海하며, 애욕의 바다를 말려버리지 못하며,
不求 十力 大聖導師하고, 십력을 지닌 큰 성인의 인도를 따르지 않고 [10력 대성 도사를 구하지 못하고]
入 魔意稠林하야, 마군의 뜻으로 가득찬 숲에 들어가 於生死海中에, 생사의 바다 속에서
爲覺觀 波濤之所 漂溺이니라. 覺觀=느끼고 관찰함의 파도에 휩쓸려 있구나.'
[파도처럼 우리는 경계와 현상을 따라 그저 떴다 가라앉았다 하는 것에 그렇게 흔들리고 살아가는 것이지요.]
佛子야 此菩薩摩訶薩이 불자여, 이 보살마하살은 復作是念호대, 또 이렇게 생각합니다.
此諸衆生이, '이 모든 중생이 受如是苦하야, 이러한 고통를 받아
孤窮 困迫하야, 홀로 외롭고 궁하고 곤한 핍박에 시달리지만
無救 구제해 줄 이도 無依하며, 의지할 데도 없고 無洲 쉴 땅도 없으며, 無舍하며, 쉴 집도 없으니
[自燈明法燈明! 自歸依法歸依! 自洲法洲! 세 번을 반복 하는데, 바다에 정처 없이 떠돌다가 섬을 만나, 그 섬에 내려서 편안히 안식을 취하는 洲 섬 주입니다. 그러한 쉴 곳도 없고 집도 없으며,]
無導 인도해줄 이도 없고 無目하며, 눈도 없으며
無明 覆翳하고, 무명에 덮이고 黑闇 纏裹하니 흑암에 싸여 있으니,
我今 爲彼 一切衆生하야, 내가 이제 저 모든 중생을 위해
修行福智 助道之法하야, 복덕과 지혜와 조도법(37 조도법)을 수행하기를
獨一發心하고, 홀로 크게 발심하여 不求伴侶하야, 반려자를 구하지 않은
以是功德으로, 그 공덕으로 令諸衆生으로, 모든 중생을 畢竟淸淨하며, 필경에 청정케 하고
乃至獲得 如來十力 無碍智慧케호리라하나니라. 나아가 여래의 십력과 걸림없는 지혜까지도 얻고 말리라.'
[마음이란?!! 唯識學은 萬法이 모두 마음에 있는 이치를 알리는 학문입니다.
여기서의 마음이란 우리의 작은 몸에 있는 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넓고 광대한 법계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중생들은 그러한 이치를 알지 못하고, 혹은 누군가한테 들었을지라도 心과 體가 모두 마음의 현현이란말을 이해하기 힘들기에 자신의 몸에 갖혀진 작은 小自我를 유식학에서 말하는 마음이라 재해석하여 심리학으로 모든것을 설명 하려합니다 물론 심리학으로도 유식학, 일체유심조를 설명 할수가 있으나 이는 전체를 보지 못하고 부분만을 이야기 하는것이므로 장님 코끼리 만지기 정도의 의미가 될뿐입니다.
어떤 법사님은 '일체유심조를 잘못하면 오히려 인생을 망치게 된다.'고 까지 설법하더군요. 황당하기 이를데가 없습니다. 그들의 어리석음은 참으로 안타깝지만 그러한 이들도 보살이 되는 과정에서의 하나의 관문을 거치는 중이니 그저 안타까움만 가지고 넘어가겠습니다.
하지만 보살은 일체의 진리를 재해석 없이 있는 그대로 믿고 받아들입니다. 보살이 진리를 있는 그대로 믿고 받아 들이는 것은 보살은 맹목적인 신앙인이 도달할수 있는 경지라서가 아니고, 또한 중생보다 인식력이 부족해서가 아닌 이미 중생들의 그러한 편협한 인식은 하나의 과정으로 모두 거쳤기 때문입니다.
화엄경에서는 보살의 특징을 설명하며 '보살은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받아들입니다.' 이 문구가 자주 등장합니다.
진리는 아주 쉬우며, 누구라도 듣고 이해할수 있습니다. 진리를 어렵게 묘사하는 것은 그가 범부이기에 그런 것입니다. 우매한 범부이기에 불경의 위대한 이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나름의 재해석을 하고, 나름의 식자들의 언어(한자, 영어, 여러 현대 학문적 지식)등으로 포장하여 유식한 식자 행세를 합니다.
그들의 말을 듣는 일반 불자님들은 쉬운 이치를 복잡하게 꼬아놓은 법사의 이야기를 듣고 불법은 참으로 어렵고 현란한 학문이어서 나 같은 범부는 다가서기 힘들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經 또한 그는 세속적 진리와 불법의 진리에 다 같이 뛰어난 자가 됩니다. 그는 '모든 존재는 헛되고 허망한 것'이라고 있는 그대로 인식합니다. 그리고 그에게는 중생에 대한 위대한 연민의 정이 나타납니다. 그는 어떤 善을 행하는 때에도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행합니다. 모든 중생의 이익을 위해, 모든 중생의 안락을 위해, 모든 중생을 열반에 들게 하기 위해 선을 행합니다.
說 연민이란 참으로 중요한 덕목이며 가치입니다. 모든 불법의 깨달음은 타인(인간 만이 아닌 모든 존재)과의 공감능력에서 시작되고 그 공감 능력이야 말로 깨달음의 완성입니다. 나와 타인이 다르지 않음 곧 自他不二야 말로 깨달음의 시작이며 완성으로의 한 여정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연민이란 개념은 정말 중요한 개념이며 중생을 필경엔 깨달음의 세계로 이끌수 있는 훌륭한 마음 가짐입니다.
중생들은 一念三千과 唯識... 등등의 고차원 적인 불법의 이치를 어떠한 특별한 명상이나 고행 혹은 나름의 수행법을 통해 얻을수 있다고 흔히들 생각하고 환상을 가집니다. 하지만 부처님께서는 모든 불경에서 사성제와 팔정도, 육바라밀을 설하지 않은 불경이 거의 없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부처님이 범부 중생이 생각하듯이 자신의 깨달음을 제자들이 깨달아 스승의 역할을 할것이 두려워서 그랬다고 생가하시나요?
스승이 둘이되거나 혹은 셋, 넷...이 되어서 권력이 약해질까봐 실질적인 깨달음을 얻을수 있는 수행법은 가르치지 않고 고리타분한 착하게 사는 이치를 가르쳤을까요? 이러한 의문은 실제로 네이버에서 자주 언급이 되는 의문입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저는 그저 눈앞이 깜깜해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 중생들을 어찌 제도해야할지 막막합니다. ㅎㅎ
모든 불법의 이치는 연민과 자타불이의 마음으로 터득할수 있습니다. 호흡법을 익혀서 기를 단전에서 머리로 돌린다고해서 터득할수 있는 것이아니고, 요가명상을 익혀서 차크라를 깨운다고 터득할수 있는것도 아닙니다.
팔년을 장좌불와를 한다고 해서 깨달을수가 있는 것도 아니며, 한다리로 서서 눕지않고 80년을 버틴다고 해서 깨달을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벗님들은 부디 이러한 환상은 이제 버리셨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깨달음은 오직 자타불이의 마음으로서 얻을수 있습니다. 이러한 신체 수련은 지친 몸과 마음을 바로 잡는데 도움을 주는 수련일뿐 진실한 깨달음을 주는 수행은 절대 아닙니다. 작성자 상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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