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經卷第十三 菩薩問明品第十   

唐于闐國(당나라 우전국三藏沙門(삼장사문實叉難陀 (실차난타 

10. 보살문명품(菩薩問明品) 1

 

ㅡ10 가지 신근(信根)을 성취하고, 10 가지 신력(信力)을 기르면서 문수사리와 각수 등의 보살이 서로 주(主)와 반(伴)이 되어서 10 가지 법을 물어서, 저마다의 보살 명칭으로 10신의 행할 행(行)을 나타내어 밝히는,

즉 문수는 이름 아래의 글자 행으로써 서로 자문하고,

10보살 등은 각각 자행(自行)의 법으로 게송에 답함으로써 신심이 있는 자로 하여금 본받아서 배우게 함을 밝힌 것이며,

또한 10신의 마음이 있는 자의 바르게 수행하는 행과 의심의 단절을 밝히고 있기 있기 때문에 문명품(問明品)인 것이다.

10(十)이라는 것은 갖추고 있는 덕이 다함이 없어서 무진(無盡)하다는 뜻이니,

10(十)이란 완전한 원수(圓數)이기 때문이다.

 

ㅡ각수 보살의 명칭을 해석하면, 흐름에 따라 생사업(生死業)의 체(體)의 본성이 항상하게 유전(流轉)하는 것이 아니며, 눈·귀·코·혀·몸·뜻의 육근도 법을 알아서 생사에 유전하는 성품이 아니기 때문에, 허망함도 없고 진실됨도 없는 것이며, 다만 탐진치(탐욕 · 성냄 · 어리석음)의 애착이 없는 참다운 지혜가 되기 때문에 진(眞)이라 칭한다.

이와 같은 법을 설해서 중생을 이롭게 하기 때문에 그 명칭이 스스로 깨닫고 남을 깨닫게 하는 대도심(大道心)의 중생(衆生)임을 밝히어서 그 당체(當體)가 무명인 모든 업의 인과위(因果位)에서 스스로가 깨닫고 또 남을 깨닫게 하는 것으로, 법계 자성의 참다운 이(理)를 알게 함으로써 진(眞)과 망(妄)이 없는 것을 각수(覺首)라 칭하고, 이 법을 믿는 시초를 수(首)라 칭하는 것이니,

이는 10신의 초심(初心)에서 자신의 눈·귀·코·혀·몸·뜻과 일체 중생 전체가 진(眞)과 망(妄)이 모두 없으며, 오직 부처님 지혜의 바다뿐이라는 것을 온전히 믿는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이러한 까닭에 부동지불 등 10지(十智) 여래로서 10신위(信位) 속의 자기 과(果)를 삼은 것이며,

금색세계와 묘색세계와 연화색계 등의 10색 세계는 10신 속에서 믿는 이(理)이며,

문수사리와 각수와 재수 등의 10보살 대중은 10신의 행이니, 행으로 명칭을 세운 까닭에, 그 명칭을 얻으면 행을 안다는 것이다. 각각의 보살이 행과 이해로서 명칭을 세운 것이니, 이하의 보살들 마찬가지이다.

세계의 명칭이 묘색인 것은 바로 각수보살이 깨달아야 할 이(理)이며, 무애지불(無碍智佛)은 바로 각수의 해당 지위에서 닦아야 할 불과이니, 신심으로써 모든 업의 인과가 진(眞)과 망(妄) 모두가 없는 것이 바로 지혜 작용의 무애(無碍)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

 

문수보살이 각수보살에게 질문하다.

爾時(이시) 文殊師利菩薩(문수사리보살) 問覺首菩薩言(문각수보살언)  

佛子(불자) 心性是一(심성시일) 云何見有種種差別(운하견유종종차별) 所謂往善趣惡趣(소위왕선취악취) 

諸根滿缺(제근만결) 受生同異(수생동이) 端正醜陋(단정추루) 苦樂不同(고락부동) 

그때, 문수사리보살이 각수(覺首)보살에게 물어 말하기를, 
“불자여, 마음의 성품인 심성(心性)은 하나(一)인데 어찌하여 갖가지로 차별한 것을 보는 것입니까?

(우리의 심성과 부처님의 심성이 하나인데, 왜 각각으로 차별한 것입니까?)

말하자면, 선취(善趣, 선한 갈래, 천국)에도 가고 악취(惡趣, 나쁜 갈래, 지옥)으로 가며,

제근(諸根, 육근)이 원만(滿)하기도 하고 결함이 있어서 모자라기도(缺)하며, 

생을 받아 태어나는 것이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며,

(같은 곳에 태어난 동업(同業)이면서도 각각이 다른 별업(別業)인 것이며?)

단정하기도 하고 누추하기도 하며, 고통을 받고 낙을 받는 고락(苦樂) 같지 않은 것입니까?

ㅡ10 상위(相違)= 선취(善趣)와 악취(惡趣), 만(滿)과 결(缺), 동(同)과 이(異), 단정(端正)과 누추(醜陋), 고(苦)와 낙(樂)

 

ㅡ십불지(十不知)의 질문

業不知心(업불지심)  업을 마음이 지었으나, 그 업은 마음을 알지 못하고,

心不知業(심불지업) 마음은 그 업을 알지 못하며 

受不知報(수불지보) 수(受)는 과보(報)를 알지 못하고

報不知受(보불지수) 과보(報)는 수(受)를 알지 못하며,  

心不知受(심불지수) 마음은 수(受)를 알지 못하고 

受不知心(수불지심) 수(受)는 마음을 알지 못하며

因不知緣(인불지연) 인(因)은 연(緣)을 알지 못하고  

緣不知因(연불지인) 연(緣)은 인(因)을 알지 못하며  

智不知境(지불지경) 지혜(智, 터득한 지혜)는 경계(境, 경계, 대상)를 알지 못하고  

境不知智(경불지지) 경계(境, 경계, 대상)는 지혜(智, 터득한 지혜)를 알지 못합니다.  

 

ㅡ각수(覺首) 보살의 게송답(偈頌答)

時(시) 覺首菩薩(각수보살) 以頌答曰(이송답왈) 그 때에 각수보살이 게송으로 답하였으니, 

ㅡ문수보살이 20 가지로 선악의 인과를 일으킨 질문에 각수보살이 11행의 게송으로 답하는 것으로,

처음 1행의 게송은 능히 묻는 사람을 찬탄하고 아울러 듣기를 권유하는 것이며,

나중 10행의 게송은 질문한 바의 법을 답한 것으로, 문수가 세간 선악의 인과에 대해 서로 알지 못하는 불상지(不相知)라는 것과 업이 능히 선악의 인과를 성취함을 묻자,

각수보살은 문득 법의 불상지(不相知)와 참다운 이(理)로써 답한 것이니, 말하자면 단지 진(眞)을 미혹하기 때문에 스스로 업을 짓는 것이지, 진(眞)을 아는 자는 전체의 업이 진(眞)이라고 한 것이다.

마지막 게송 1행은 진(眞)과 망(妄) 모두를 벗게 됨을 밝힌 것으로써 비유와 법을 들어 설하고 있다.

 

1.仁今問是義(인금문시의) 爲曉悟群蒙(위효오군몽) 我如其性答(아여기성답) 惟仁應諦聽(유인응체청) 

지금 인자(仁者)께서 그러한 뜻을 물으신 것은 군몽(群蒙, 어리석고 몽매한 중생들)들을

깨우치시고자(曉) 하심이로다.
제가 그 성품(취지)에 맞게 대답하리니, 인자는 자세히 들으소서.

 

2.諸法無作用(제법무작용) 亦無有體性(역무유체성) 是故彼一切(시고피일체) 各各不相知(각각불상지)

제법(諸法, 모든 법)은 작용이 없는 무작용(無作用)이며,

또한 그 체성(體性, 자체의 성품) 역시도 없으니, 
그러므로 저 모든 온갖 것들은 각각 서로를 알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ㅡ각수보살은 법의 불상지(不相知)와 참다운 이(理)로써 답한 것이니, 말하자면 단지 진(眞)을 미혹한 까닭에 스스로 업을 짓는 것이지, 진(眞)을 아는 자는 전체의 업이 진(眞)인 것이다.

 

3.譬如河中水(비여하중수) 湍流競奔逝(단류경분서) 各各不相知(각각불상지) 諸法亦如是(제법역여시)

이를테면 마치 흐르는 물이 다투어 분주히 흘러 가지만, 각각 서로를 알지 못하는 것과 같이

(흘러 가는 강의 앞 물이 뒷물을 모르고, 뒷물이 앞의 물을 알지 못하고, 그냥 흘러 갈 뿐인 것과 같이) 

제각각 서로서로를 알지 못하는 것과 같이 제법(諸法) 역시도 그러하며, 

 

4.亦如大火聚(역여대화취) 猛焰同時發(맹염동시발) 各各不相知(각각불상지) 諸法亦如是(제법역여시)

또한 대화취(大火聚, 큰 불덩이)가 동시에 맹렬한 불길들을 일으키지만,

불(火)은 서로 각각을 알지 못하는 것과 같이, 제법(諸法) 역시도 그러하며, 

 

5.又如長風起(우여장풍기) 遇物咸鼓扇(우물함고선) 各各不相知(각각불상지) 諸法亦如是(제법역여시) 扇 부채 선

다시 또 말한다면, 큰 바람이 고선(鼓扇, 바람이 휘감아 일어나면서 내는 소리)하면서 물건들에 부딪치고 흔들지만, 
바람이 서로 각각을 알지 못하는 것과 같이, 제법(諸法) 역시도 그러하며,  

 

6. 又如衆地界(우여중지계) 展轉因依住(전전인의주) 各各不相知(각각불상지) 諸法亦如是(제법역여시)  

또한 마치 중지계(衆地界, 여러 땅의 경계)들이 서로 연계하여 펼쳐져 머물고 있지만,

(땅이 서로를 인하여 펼쳐져 있지만) 
서로 각각을 알지 못하는 것과 같이, 제법(諸法) 역시도 그러한 것입니다.   

 

7. 眼(안이비설신) 心意諸情根(심의제정근) 以此常流轉(이차상류전) 而無能轉者(이무능전자)

    몸 뜻의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제정근(諸情根, 6근)들이 

항상 이러하게 유전하여 흘러가

지만, 능히 굴리는 이가 없는 무능전자(無能轉者)이라.

(눈은 눈대로ㆍ귀는 귀대로ㆍ코는 코대로ㆍ혀는 혀대로ㆍ몸은 몸대로ㆍ의식은 의식대로 각각 작용을 하고 있지만,
그렇게 작용하게 하는 주체가 없으며) 

ㅡ눈은 눈대로 보고ㆍ귀는 귀대로 듣고ㆍ손은 손대로 글씨 쓰고ㆍ발은 발대로 움직이고 6근 뿐만 아니라, 인체의 모든 작용을 무엇이 들어서 그렇게 작용하게 하는가?  이것은 선사상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깊이 연구한 사람들은 “선은 화엄경에서 나왔다.”고 말하는데, 사실 이것이 바로 선(禪)인 것입니다.

손가락이 까딱까딱 하게 하는 것이 “신경이다ㆍ마음이다.”하지만, 진짜 확연하게 한번 드러내 보면, 도대체 뭐가 들어서 이렇게 까딱까딱하게 하는 것인지? 까딱까딱하게 하는 것이 없는 무능전자(無能轉者)인 것입니다.

진여 그 자체는 가만히 있으면 모르지만, 인연을 따르는 연이 있을 때 그 진여가 어떤 빛을 발하는 것으로, 사실은 아무 것도 없는데 손가락을 까딱까딱하는 그것이 수연(隨緣)이고, 진여가 현현 하는 그것이 진여수연(眞如隨緣)인 것입니다.

진여가 없는 줄 알았는데 까딱까딱 해보니까 그것이 있어서 그렇게 작용을 하고 있지만, 정작 찾아보면 있는 것도 아니나, 그렇다고 없다고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ㅡ무비스님

 

8. 法性本無生(법성본무생) 示現而有生(시현이유생) 是中無能現(시중무능현) 亦無所現物(역무소현물)

법성(法性)은 본래 나지도 않는 본무생(本無生)이지만, 생(生)을 나타냄으로서 생(生)이 있는 것이니 

그 가운데에는 나타내 보이는 능현(能現, 주관적인 주체)도 없으며, 
역시 나타나는 소현물(所現物, 객관적인 사물)도 없는 것이며, 

(주관적인 능(能)과 객관적인 소(所), 즉 주관과 객관이 없는, 능소(能所)로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이며)

 

9.眼耳鼻舌身(안이비설신) 心意諸情根(심의제정근) 一切空無性(일체공무성) 妄心分別有(망심분별유)

눈 귀 코 혀 몸 뜻의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제정근(諸情根, 6근)들 일체가 성품이 공(空)한 무성(無性)이거늘 

망심(妄心)으로 분별함으로 인하여 있는 것이며,   

 

10.如理而觀察(여리이관찰) 一切皆無性(일체개무성) 法眼不思議(법안부사의) 此見非顚倒(차견비전도)

실제의 이치대로 여리(如理, 본래의 이치)하게 관찰하면, 일체의 모든 것이 성품이 없는 무성(無性)이라,
법안(法眼, 법의 눈)은 불사의(不思議)한 것이니, 법안으로 바르게 보아야 잘못되지 않는 것입니다.

(법안으로 안이비설신의 모든 것에 자성이 없다는 것을 보는 것이 전도(顚倒)되지 않은 바른 견해이나, 

그렇지 않은 것은 전도몽상(顚倒夢想)입니다.)

 

11. 若實若不實(약실약불실) 若妄若非妄(약망약비망) 世間出世間(세간출세간) 但有假言說(단유가언설)

拭 닦을 식, 씻을 식 拂 떨 불, 도울 필, 떨칠 불

진실이라거나 진실하지 않다거나(실다운 것과 실답지 못한 것과)

허망하다거나 허망하지 않다는 것과(거짓된 것과 거짓되지 않은 것과)  
세간이라거나 출세간이라 하는 것들 모두가 다만 거짓으로 말하는 가언설(假言說)에 불과한 것일 뿐입니다.

ㅡ진(眞)과 망(妄) 모두를 벗게 됨을 밝힌 것으로써 비유와 법을 들어 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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