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佛身難思(불신난사)
如以我難思를 心業莫能取인달하야 佛難思亦爾하야 非心業所現이로다
如刹不可思나 而見淨莊嚴인달하야 佛難思亦爾하야 妙相無不現이로다
譬如一切法이 衆緣故生起인달하야 見佛亦復然하야 必假衆善業이로다
譬如隨意珠가 能滿衆生心인달하야 諸佛法如是하야 悉滿一切願이로다
無量國土中에 導師興於世하시니 隨其願力故로 普應於十方이로다
如以我難思(여이아난사)를, 마치 '나'라는 난사의= 생각하기 어려움을
心業莫能取(심업막능취)인달하야, 마음의 업으로 취할 수 없듯이
[내가 이해하기 어렵고 생각하기 어려운 것을 내 마음의 업이 또한 능히 취할 수 없는 것과 같이]
佛難思亦爾(불난사역이)하야, 부처님이란 난사의함도 그러하여
非心業所現(비심업소현)이로다. 마음의 업으로 표현할 바가 아니네.
如刹不可思(여찰불가사)나, 세계가 불가사의하여 생각할 수 없으나
而見淨莊嚴(이견정장엄)인달하야, 청정한 장엄을 보이듯이
佛難思亦爾(불난사역이)하야, 부처님의 난사의함도 그러하여
妙相無不現(묘상무불현)이로다. 미묘한 상을 보이지 못함이 없네.
[미묘한 현상ㆍ미묘한 모습이 나타나지 아니함이 없더라.]
譬如一切法(비여일체법)이 비유컨데 마치 일체의 법= 현상이
衆緣故生起(중연고생기)인달하야, 온갖 인연을 따라 생겨나듯이
[부처님의 가르침 중에서 제일 많이 거론되고, 불법의 위대함을 설득하기 제일 좋고, 내 자신이 왜 이렇게 살고 또 옆 사람은 어째서 그렇게 사는가 등 일체 존재의 모든 현상들을 설명하기 좋은 방법은 연기법입니다.
그러나 차별 없는 경계, 참사람의 경계, 한마음의 경계는 연기가 아닙니다. 현상만 연기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여기에 모든 법이라고 하는 것은 현상입니다. 모든 현상들은 온갖 인연으로 生起했다.]
見佛亦復然(견불역부연)하야, 부처님 뵙는 일도 그러하여
必假衆善業(필가중선업)이로다. 반드시 많은 선업이 있어야 하리로다.
[선업은 도덕적으로 선함을 가르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이치를 제대로 공부하는 것이 여기서의 善業입니다.]
譬如隨意珠(비여수의주)가, 비유컨데 마치 여의주가 [여의주= 隨意珠(수의주)]
能滿衆生心(능만중생심)인달하야, 중생의 마음을 만족시키듯이
諸佛法如是(제불법여시)하야, 부처님 법도 이와 같아서
悉滿一切願(실만일체원)이로다 모든 소원을 다 만족시키네.
[실로 부처님의 법은 참다운 이치, 眞ㆍ理입니다. 그 참다운 이치만 제대로 꿰뚫어 알고 있으면 채우지 못하고 만족하지 못할 원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욕심만 자꾸 부리는 것이지요.]
無量國土中(무량국토중)에 한량없는 국토 안에서
導師興於世(도사흥어세)하시니, 도사께서 세간에 오시니
隨其願力故(수기원력고)로, 그들의 원력을 따르시고자
普應於十方(보응어시방)이로다. 널리 시방에 응하심이네.
8. 西北方(서북방)의 離垢幢菩薩(이구당보살)
(1) 世間(세간)을 淸淨(청정)하게 하는 德(덕)
爾時에 離垢幢菩薩이 承佛神力하사 普觀十方하고 而說頌言하사대
如來大智光이 普淨諸世間하나니 世間旣淨已에 開示諸佛法이로다
設有人欲見 衆生數等佛이라도 靡不應其心하사대 而實無來處로다
以佛爲境界하야 專念而不息하면 此人得見佛호대 其數與心等이로다
成就白淨法하야 具足諸功德하면 彼於一切智에 專念心不捨로다
導師爲衆生하사 如應演說法하사대 隨於可化處하야 普現最勝身이로다
佛身及世間이 一切皆無我니 悟此成正覺하고 復爲衆生說이로다
[離垢幢보살= 제8 원바라밀, 스스로 생사가 없으면서도 지혜로써 願을 따라 중생을 이롭게 하기 때문에 항상 더러움이 없는 것이다]
爾時에, 離垢幢菩薩이 承佛神力하사 普觀十方하고 而說頌言하사대
그때에 이구당보살이 부처님의 신력을 받들어 널리 시방을 관찰하고 게송으로 말했다.
如來大智光(여래대지광)이, 여래는 큰 지혜 광명으로
普淨諸世間(보정제세간)하나니, 널리 온 세간을 청정히 하시고
[불교는 지헤, 즉 세상을 맑게 하는 지혜의 가르침, 참다운 이치의 가르침입니다.]
世間旣淨已(세간기정이)에, 세간이 기왕 청정해지면
開示諸佛法(개시제불법)이로다. 모든 불법을 열어 보이시네.
[“주지한테 불교 배우면 제대로 불교 못 배우고, 차[茶]장사에게 차배우면 제대로 차 못 배운다.”
차 장사는 자기가 팔 차를 중심으로 가르치고, 주지는 사찰 운영을 중심으로 불교를 가르쳐요. ㅎㅎㅎㅎ 제가
주지라 하더라도 그럴 것 같아요.]
設有人欲見(설유인욕견) 설사 어떤 이가
衆生數等佛(중생수등불)이라도,중생 수만큼 부처님을 欲見= 뵙고자 하더라도
靡不應其心(미불응기심)하사대, 그 마음에 응하지 않은 적 없으시되
而實無來處(이실무래처)로다. 실로 오신 곳이 없으시도다. [오는 곳도 없고 가는 곳도 없더라.]
以佛爲境界(이불위경계)하야, 부처님으로 경계를 삼아
專念而不息(전념이불식)하면, 쉬지 않고 전념한다면
[이것이 염불방법입니다. 타력신앙은 境界= 대상을 두고 해야 됩니다. 염불은 타력신앙입니다.
以佛爲境界= 부처로서 경계를 삼아서, 또는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석가모니, 아미타불 등을 경계 삼아서
專念而不息= 오로지 그 부처님만을 생각해서 쉬지 않으면 同化, 하나가 됩니다.
저는 그 전에 기도 시킬 때, “당신 다니는 절의 부처님을 잘 외워서 어디에서든지 그 불상이 딱 떠오르게 해놓고 염불하는 겁니다. 그것이 관상(觀想) 그렇게 떠올려야 기도가 훨씬 잘됩니다. 머리는 딴 것 떠올리면서 입만 계속 돌아가는 립싱크가 아닌, 생각을 부처님에게 고정하고 입으로도 외우며 기도를 해야 됩니다.]
此人得見佛(차인득견불)호대, 이 사람은 부처님 뵙기를
其數與心等(기수여심등)이로다. 마음 먹은 대로 하리라.
[부처님의 숫자가 마음으로 더불어 동등하다.
한 시간에 한마음이면 딱 한 부처님이고, 한 시간에 10개의 마음이면 10개의 부처가 되는 것이지요.]
成就白淨法(성취백정법)하야 희고 깨끗한 법 성취하여
[白淨法= 희고 청정한 법. 白淨識이나 유사한 뜻으로 과거 조사스님들의 成佛後에 說法度生之識(성불후설법도생지식)이라. 법을 설해서 중생을 제도하는 식의 작용이다. 그것을 제9 백정식이라 표현하고 또 그와 유사한 白淨法도 사실은 그렇게 아주 높은 차원의 차별을 떠난 경계는 아니고, 차별상에서 볼 때에 그렇다는 뜻입니다.]
具足諸功德(구족제공덕)하면, 모든 공덕이 구족하면
彼於一切智(피어일체지)에, 그는 일체지혜에
專念心不捨(전념심불사)로다. 전념하는 마음을 버리지 않으리라. [一切智를 그대로 성취한다.]
導師爲衆生(도사위중생)하사, 도사께서는 중생들을 위해
如應演說法(여응연설법)하사대, 마땅하게 법을 연설하시고자
隨於可化處(수어가화처)하야, 교화할 곳에 따라
普現最勝身(보현최승신)이로다. 가장 수승한 몸을 널리 나타내시네.
佛身及世間(불신급세간)이, 부처님 몸과 세간의 몸이
一切皆無我(일체개무아)니, 모두가 다 '내'가 없으니
[일체가 다 무아= 고정불변 하는 실체가 없다.= 천변만화한다. 참나가 있지만, 그 참 나는 고정불변 하는 我는 없고, 천변만화하는 我가 있다.]
悟此成正覺(오차성정각)하고, 여기에 깨달아 정각을 이루시고
復爲衆生說(부위중생설)이로다. 다시 중생을 위해 설함이로다.
[여기의 무아는 소승불교에서 말하는 “무아”가 아닙니다. 대승불교에서는 “眞我”, 一切唯心造의 참마음을 말흔 것으로, 고정불변 하는 나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통째로 없느냐?’ 眞空가운데 妙有입니다.
空寂한 가운데 靈知= 신령스럽게 아는 작용이 있는 것을 어떻게 부정합니까?
원효스님은 그것을 神解(신해)= 신비롭게 아는 능력이라 했습니다. 이것은 아무리 부정하려해도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스스로 잘 사유해서 마음 속에 정리되어 있어야 됩니다.
탄허스님 같은 이들, 성철스님 같은 이들은 평소에 늘 나는 불교보다 더 우수한 가르침이 만약에 있다면 당장에 나는 옷 벗고 나갈 자신이 있다. 그랬습니다. 부처님이든 조사든 무슨 상관이 있느냐? 진리가 중요하지 않느냐? 더 위대한 가르침이 있으면 당장에 옷 벗고 나가겠다. 그런 소견을 가졌으니까 그런 스님들이 되는겁니다.]
(2) 自淸淨德(자청정덕) 자신의 청정한 덕.
一切人師子가 無量自在力으로 示現念等身하시니 其身各不同이로다
世間如是身과 諸佛身亦然에 了知其自性이실새 是則說名佛이로다
如來普知見으로 明了一切法하사 佛法及菩提를 二俱不可得이로다
導師無來去며 亦復無所住라 遠離諸顚倒실새 是名等正覺이로다
一切人師子(일체인사자)가 모든 인사자들께서는
無量自在力(무량자재력)으로, 한량없는 자재력으로
示現念等身(시현념등신)하시니, 마음대로 몸을 나타내시되
其身各不同(기신각부동)이로다. 그 몸이 각각 같지 않으시도다.
[생각이 순간ㆍ순간, 찰라 滅, 찰라 生해서 늘 다른 생각이 일어납니다.]
世間如是身(세간여시신)과 세간은 이러한 몸이요
諸佛身亦然(제불신역연)에, 모든 부처님 몸도 그러하거니와
了知其自性(료지기자성)이실새. 그 자성을 요달하여 아니
是則說名佛(시즉설명불)이로다. 이를 곧 부처라 말하네.
如來普知見(여래보지견)으로, 여래는 광대한 지견으로
明了一切法(명료일체법)하사, 일체법을 밝게 깨달아서 아시나니
佛法及菩提(불법급보리)를, 불법과 보리는
二俱不可得(이구불가득)이로다. 둘 모두 가히 얻을 수 없도다.
導師無來去(도사무래거)며, 도사는 오고 감이 없고
亦復無所住(역부무소주)라. 머무는 일도 없으며
遠離諸顚倒(원리제전도)실새. 모든 전도를 멀리 여의었으니
是名等正覺(시명등정각)이로다. 이를 이름하여 등정각이라 하네.
[等正覺= 모든 사실ㆍ모든 현상ㆍ모든 사물을 실상 그대로 바르게 보는 것. 顚倒를 멀리 떠난 것, 바르게 깨달아서 모든 존재의 실상을 바르게 깨달아 아는 것입니다.]
[等正覺= 범어 Samyaksam buddha . 부처님의 십호(十號)의 하나. 삼막삼불타라 쓰기도 한다. 번역하여 정등각(正等覺) 정변각(正遍覺) 정변지(正遍智)라고도 하는데 부처님의 평등하고 바른 깨침을 말한다. 첫째, 정등각이라고도 하는데, 바른 깨달음, 즉 부처님의 경지를 말합니다. 둘째, 진리를 바르게 깨달은 사람. 평등의 이치를 깨달은 부처님입니다. 셋째, 부처님의 십호(十號)중의 하나입니다.]
9. 下方(하방)의 星宿幢菩薩(성수당보살)
(1) 佛周遍德(불주변덕)
爾時에 星宿幢菩薩이 承佛神力하사 普觀十方하고 而說頌言하사대
如來無所住로대 普住一切刹하사 一切土皆往하시니 一切處咸見이로다
佛隨衆生心하사 普現一切身하사 成道轉法輪하시며 及以般涅槃이로다
諸佛不思議시니 誰能思議佛이며 誰能見正覺이며 誰能現最勝이리오
[星宿幢보살= 역바라밀의 法王位에 差別智를 이루는 것이니, 중생의 근기를 잘 아는 것이 마치 성수가 크든 작든 모두 밝음과 같음을 밝힌 것이다.] [宿= 잠잘 ‘숙’이 아닌 별 ‘수’입니다]
爾時에 星宿幢菩薩이 承佛神力하사 普觀十方하고 而說頌言하사대
그때에 성숙당보살이 부처님의 신력을 받들어 널리 시방을 관찰하고 게송으로 말했다.
如來無所住(여래무소주)로대, 여래는 머무는 바가 없으시되
普住一切刹(보주일체찰)하사, 널리 모든 세상에 머무시어
一切土皆往(일체토개왕)하시니, 모든 땅에 다 나아가시니
一切處咸見(일체처함견)이로다. 모든 곳에서 다 보도다.
[一切處咸見= 溪聲便是廣長舌(계성변시광장설)인데, 山色豈非淸淨身(산색기비청정신)가?
시냇물 소리가 그대로 여래의 광장설법인데. 산천초목인들 어찌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 아닌가?]
佛隨衆生心(불수중생심)하사, 부처님은 중생의 마음을 따라
普現一切身(보현일체신)하사, 널리 일체의 몸을 나타내시어
成道轉法輪(성도전법륜)하시며, 도를 이루시고 법륜 굴리시며
及以般涅槃(급이반열반)이로다. 열반으로 나아가시네. [열반에 듦이로다.]
諸佛不思議(제불부사의)시니 부처님은 불가사의하시거늘
誰能思議佛(수능사의불)이며, 누가 부처님을 생각으로 헤아릴 수 있고
誰能見正覺(수능견정각)이며, 누가 바른 깨달음을 볼 수 있으며
誰能現最勝(수능현최승)이리오? 뉘라서 가장 수승하다 할 수 있으리오?
[諸佛은 不思議인데, 부처님을 누가 사의하고 누가 능히 正覺을 보며, 누가 능히 最勝 부처님을 나타내리오?]
(2) 佛體自在德(불체자재덕)
一切法皆如일새 諸佛境亦然이니 乃至無一法도 如中有生滅이로다
衆生妄分別 是佛是世界어니와 了達法性者는 無佛無世界로다
如來普現前하사 令衆生信喜나 佛體不可得일새 彼亦無所見이로다
若能於世間에 遠離一切着하고 無碍心歡喜하면 於法得開悟로다
神力之所現일새 卽此說名佛이니 三世一切時에 求悉無所有로다
若能如是知 心意及諸法하면 一切悉知見하야 疾得成如來로다
一切法皆如(일체법개여)일새. 일체법이 모두 여여(如如)하고
諸佛境亦然(제불경역연)이니, 제불의 경계도 역시 그러하거니와
乃至無一法(내지무일법)도 단 하나의 법도
如中에 有生滅(여중유생멸)이로다. 그 여여한 가운데는 생멸이 있음이 없도다.
[전부가 진여이, 그야말로 不生不滅입니다. 마음도 불생불멸이고 물질도 불생불멸입니다.
형태만 바꿀 뿐이어서 나타난 모습, 현상만 약간씩 달라지는 不生不滅입니다.]
衆生妄分別(중생망분별) 중생들이 망령되이 분별하여
是佛是世界(시불시세계)어니와, '이것은 부처'다 '이것은 세계'다 하는 것이요
了達法性者(요달법성자)는, 법의 성품에 요달하게 되면
無佛無世界(무불무세계)로다. '부처'고 '세계'가 없도다. [전부가 법성= 법의 성품입니다.]
[法性圓融無二相 諸法不動本來寂 (법성원융무이상 제법불부동본래적) 했듯이
전부가 법성입니다. 법성의 도리를 제대로 알면 無佛無世界입니다. 부처와 세계가 둘이 아닙니다.]
如來普現前(여래보현전)하사, 여래는 널리 앞에 나타나시어
令衆生信喜(영중생신희)나, 중생이 믿음의 기쁨을 내게 하시지만, 중생으로 하여금 믿게 하고 기쁘게 하나,
佛體不可得(불체불가득)일새. 부처의 體= 본체는 얻을 수 없는 것이라
彼亦無所見(피역무소견)이로다. 그들이 또한 보지 못하는 것이로다.
若能於世間(약능어세간)에, 만약 세간에서
遠離一切着(원리일체착)하고, 일체의 집착을 버리고
無碍心歡喜(무애심환희)하면, 걸림이 없어 마음이 기쁘다면, 걸림 없는 마음으로 환희할 것 같으면,
於法에 得開悟(어법득개오)로다. 법에서 깨달음을 얻은 것이로다. [반드시 깨닫게 될 것이다.]
神力之所現(신력지소현)일새. 이는 신력으로 드러나는 바라
卽此說名佛(즉차설명불)이니, 이를 곧 부처라 이르는 것이니
三世一切時(삼세일체시)에 삼세의 어느 때고
求悉無所有(구실무소유)로다. 구한다 해서 다 있는 것이 아니로다. [구해도 다 있는 바가 없더라.]
若能如是知(약능여시지) 만일 心意及諸法(심의급제법)하면, 심의(心意)와 모든 법을 如是知= 이와 같이 안다면
一切悉知見(일체실지견)하야, 일체를 다 제대로 보고 알아서
疾得成如來(질득성여래)로다. 여래를 속히 이루리라.
(3) 拂自在之迹(불자재지적)
言語中顯示 一切佛自在하시니 正覺超語言이어늘 假以語言說이로다
言語中顯示(언어중현시) 말씀 가운데
一切佛自在(일체불자재)하시니, '모든 부처님은 자재하다' 하신 것은
正覺은 超語言(정각초어언)이어늘, 정각은 언어를 초월하였으되
假以語言說(가이어언설)이로다. 언어를 빌어 말씀하신 것이로다.
10. 上方(상방)의 法幢菩薩(법당보살)
(1) 讚佛勸見(찬불권견) 부처님을 찬탄하고 보기를 권하다.
爾時에 法幢菩薩이 承佛神力하사 普觀十方하고 而說頌言하사대
寧可恒具受 一切世間苦언정 終不遠如來하야 不覩自在力이로다
若有諸衆生이 未發菩提心이라도 一得聞佛名하면 決定成菩提로다
若有智慧人이 一念發道心하면 必成無上尊이니 愼莫生疑惑이어다
如來自在力을 無量劫難遇니 若生一念信이면 速證無上道로다
[法幢보살= 智바라밀, 모든 법을 잘 안립해서 능히 깨뜨릴 자가 없는 것이 법당의 뜻이다.
이상 10 보살은 능히 행을 행하는 사람이다.]
爾時에 法幢菩薩이 承佛神力하사 普觀十方하고 而說頌言하사대
그때에 법당보살이 부처님의 신력을 받들어 널리 시방을 관찰하고 게송으로 말했다.
寧可恒具受(영가항구수), 차라리 모든 세간의 고통을
一切世間苦(일체세간고)언정, 다 갖춰 항상 받을지언정
終不遠如來(종불원여래)하야 결코 여래를 멀리하여
不覩自在力(부도자재력)이로다. 자재한 힘을 보지 못하지는 않으리라.
[차라리 세상고통을 내가 다 받을지라도, 여래의 자재한 힘을 내가 항상 보면서 살리라.
終不遠如來하야 不覩自在力이로다.여래를 멀리해서 자재한 힘을 보지 않지 않을 것이다.
부정사가 두 번이니까 전부 본다는 긍정의 뜻입니다.]
若有諸衆生(약유제중생)이 만약 어느 중생들이
未發菩提心(미발보리심)이라도, 보리심을 아직 내지 못하였더라도
一得聞佛名(일득문불명)하면, 부처님 이름 한 번만 들으면
決定成菩提(결정성보리)로다. 결정코 보리를 이룰 것이요 [결정코 성불, 깨달음 이로다.]
若有智慧人(약유지혜인)이 만약 어느 지혜로운 이가
一念에 發道心(일념발도심)하면, 한 순간에 도의 마음을 내면
[어떤 지혜 있는 사람이 한 순간에 道心, ‘아~ 이것이구나! 이것이 인생의 고귀한 참 가치 이구나!’ 라고 깨달으면,]
必成無上尊(필성무상존)이니, 반드시 무상존을 이루리니
愼莫生疑惑(신막생의혹)이어다. 부디 의혹을 내지 말지어다. [相의 의혹을 내지 말지어다.]
如來自在力(여래자재력)을 여래의 자재하신 힘은
無量劫難遇(무량겁난우)니, 한량없는 겁에도 만나기 어렵거니와
若生一念信(약생일념신)이면, 만약 잠깐의 믿음을 내어도, 만약 한 순간이라도 믿음을 낼 것 같으면,
速證無上道(속증무상도)로다. 위없는 도를 속히 증득하리라.
[이 발심은 아무리 경을 보고, 아무리 연구를 하고, 절에서 살고 절 밥을 먹어도 안 되는 수가 있는데,
그러나 어느 딱 한 순강, 한 구절에 걸리는 겁니다. 어느 순간 딱 한 구절에 필이 딱 꽂혀서 정말 ‘아~~ 이것
이구나!’ 그렇게 될 때가 있습니다.
육조스님은 나무 팔러 갔다가 문자도 모르는 사람이 금강경 한 구절에 깨달아서 바로 출가를 하게 되잖아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자꾸 이렇게 여러 경전을 읽고 음미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張大敎網하야 漉人天之魚(장대교망 녹인천지어)라. 범어사 보물이 원효스님이 사용하던 그 도장입니다.
張大敎網= 큰 가르침의 그물을 펼쳐서 漉人天之魚= 인천의 고기를 다 건진다.
그 도장을 검증을 해보니까 틀림없이 신라 때 돌이고, 신라 때 판전각이고, 또 화엄경의 구절이고, 또 원효암에 원효스님이 계셨기 때문에 원효스님이 사용하시던 도장으로 판명이 된 겁니다.]
(2) 讚法勸聞(찬법권문) 법을 찬탄하고 듣기를 권하다.
設於念念中에 供養無量佛이라도 未知眞實法이면 不名爲供養이로다
若聞如是法하면 諸佛從此生이니 雖經無量苦라도 不捨菩提行이로다
一聞大智慧와 諸佛所入法하면 普於法界中에 成三世導師로다
雖盡未來際토록 遍遊諸佛刹이라도 不求此妙法하면 終不成菩提로다
衆生無始來로 生死久流轉하야 不了眞實法일새 諸佛故興世로다
諸法不可壞며 亦無能壞者니 自在大光明이 普示於世間이로다
設於念念中(설어념념중)에, 설혹 매 순간순마다
供養無量佛(공양무량불)이라도, 한량없는 부처님을 공양할지라도
未知眞實法(미지진실법)이면, 진실한 법 알지 못하면
不名爲供養(불명위공양)이로다. 공양이라 할 수 없도다.
若聞如是法(약문여시법)하면, 만약 이와 같은 법을 들었거든
諸佛從此生(제불종차생)이니, 제불이 여기서 나오는 것이니, 이 도리를 알면 바로 부처가 된다는 뜻입니다.
雖經無量苦(수경무량고)라도, 비록 한량없는 고통을 겪더라도
不捨菩提行(불사보리행)이로다. 보리행을 버리지 말아야 하리라.
[금방 이렇게 결연한 의지가 저절로 순식간에 살아나는 것입니다. 본래 갖추고 있는 것이니까요. 6바라밀이든 4섭 법이든 4무량심이든 본래 우리 마음 속에 본래 갖추고 있는 그것이 어떤 상황을 만나면 살아서 움직이는 겁니다.
그와 같이 업도, 우리가 과거에 무슨 업을 지었는지 모르지만 어떤 상황을 만나면 자기도 몰랐던 업이 툭 튀어나는 것입니다. 예능이나 기타 다른 분야에도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출가한 사람이, 중 될 업이 있는 줄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동네 탁발 온 스님보고 재미있어서 졸졸졸 따라가다가, 그 길로 중 되는 겁니다. 그것이 전생의 업이 꽉 차있으면, 집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스님을 딱 보는 순간에 그 탁발하는 것이 너무 재미있어서 하루 종일 쫓아다닌 겁니다. 저는 일타스님에게 들었습니다.그 가족 40명이 다 출가했습니다.]
一聞大智慧(일문대지혜)와, 큰 지혜와
諸佛所入法(제불소입법)하면, 부처님 들어가신 법을 한 번 들으면
普於法界中(보어법계중)에, 널리 법계 가운데서
成三世導師(성삼세도사)로다. 삼세의 도사가 될 것이며,
雖盡未來際(수진미래제)토록, 비록 미래 세상이 다하도록
遍遊諸佛刹(변유제불찰)이라도, 부처님 세계를 다 다니게 되더라도
不求此妙法(불구차묘법)하면, 이 묘법을 구하지 않는다면
終不成菩提(종불성보리)로다. 결코 보리를 이루지 못하리라.
衆生無始來(중생무시래)로, 중생들이 무시이래로
生死久流轉(생사구류전)하야, 생사에 오래 流轉= 흘러 돌며
不了眞實法(불료요진실법)일새. 진실한 법을 알지 못하기에
諸佛故興世(제불고흥세)로다. 부처님이 세간에 오신 것이로다.
[출현은 생사에 流轉하는 것입니다. 생사를 초월한다. 생사를 해탈한다. 열반에 들어간다는 것은 전부 대승불교ㆍ화엄불교에서 보면, 외도들이나 하는 짓입니다. 생사에 流轉하는 중생들을 보살이 외면해버리면, 그 중생은 누가 건집니까? 그러므로 보살은 생사에 流轉하여 열반에 들지 않는다. 열반에 들거나 생사를 떠나거나 생사를 초월하는 것은 불법을 잃어버리는 일이다. 불법을 등지는 일이다. 보살이 생사에 거듭ㆍ거듭ㆍ거듭 태어나서 중생들과 함께해야지, 중생들 외면하고 선정 삼매에 貪着(탐착)해서 푹 빠져 있는 것은 불법을 잃어버리는 일이다.
이와 같은 신념으로 우리가 귀에 새겨듣기만 해도 아주 큰 耳根功德(이근공덕)이 되는 겁니다.]
諸法不可壞(제법불가괴)며, 모든 법은 깨뜨릴 수 없고
亦無能壞者(역무능괴자)니, 또 무너뜨릴 자도 없나니
自在大光明(자재대광명)이, 자재하신 대광명께서
普示於世間(보시어세간)이로다. 널리 세간에 보이시도다.
[간략하게 無生에 열 가지가 있음을 세우겠다. ① 모든 蘊 자체가 무생이며, ② 온갖 見 자체가 무생이며, ③ 空이 무생이며, ④ 성품이 무생이며, ⑤ 時劫이 변천하지 않는 것이 무생이며, ⑥ 열반과 생사가 무생이며, ⑦ 법을 설하는 음성의 적묵(寂?)함이 무생이며, ⑧ 지혜의 분별이 무생이며, ⑨ 신통 도력의 성품이 스스로 두루함이 무생이며, ⑩ 찰나를 벗어나지 않고 삼세가 다한 옛날부터 지금까지의 겁에서 일체 중생 앞에 對現하는 몸이 무생이니, 이 열 가지 무생의 뜻이 있기 때문에 그 명칭이 '일생에 반드시 보리를 얻는다'이다.
이 경문의 뜻은 10행·10회향·10지·11지 법의 방편으로 초발심의 불과를 자량하여 전후의 情인 바라는 바를 끊는 것이니, 資糧과 佛果가 동시에 서로 체용이 되어서 서로 돕기 때문에 그 명호가 '覺'과'행'이 서로 장엄함'이 되는 것이다. 이 경문은 果로써 행을 자량하여 행에 집착이 없게 하고 ,행으로써 果를 자량하여 대용이 갖추어지게 되는 것이다. 가령 3승의 意生身 보살로서 부처님의 일체지승을 탔다고 설하지 못하는 것은 불과를 11地 이후 3祈의 겁이 종결할 때까지 미루기 때문이니, 즉 地 이전의 3賢이 자량이 되고 10지가 見道가 되고 불과는 11지 이후 3祈의 겁이 종결되는 데 있지만, 이 가르침에서는 3승의 5位行相과는 1배나 뒤바뀌어서 行相이 같지 않으니 나중에 다시 밝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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