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聞藏

     (1) 知一切法(문지일체법). 체일 법을 들어서 안다.

佛子야 何等이 爲菩薩摩訶薩의 聞藏고 此菩薩이 知是事가 有故로 是事가 有하고

是事가 無故로 是事가 無하며 是事가 起故로 是事가 起하고 是事가 滅故로 是事가 滅하며 是世間法이요

是出世間法이며 是有爲法이요 是無爲法이며 是有記法이요 是無記法이니라

 

佛子야 何等이 爲菩薩摩訶薩의 불자여, 무엇이 보살마하살의 聞藏(문장)문장이겠는가? 

此菩薩이 이 보살은 是事(지시사) 이 일이 有故(유고) 是事가 有하고, 있기 때문에 이 일이 있고 

是事가 無故(무고) 是事가 無하며, 이 일이 없기 때문에 이 일이 없으며,

是事가 起故(기고) 是事가 ()하고, 이 일이 일어나는 까닭에 이 일이 일어나고 

是事가 滅故(멸고) 是事가 滅하며,이 일이 멸하는 까닭에 이 일이 멸하며,

是世間法(시세간법)이요 이것은 세간법이요, 是出世間法(시출세간법)이며, 이것은 출세간법이며, 

是有爲法(시유위법)이요 이것은 유위법이요, 是無爲法(시무위법)이며, 이것은 무위법이며, 

是有記法(시유기법)이요 이것은 유기법이요, 

是無記法(시무기법)이니라. 이것은 무기법임을 知= 알며

[이것은 사실 초기불교의 이론으로, 연기의 이치를 그대로 보여주는 논리입니다. 此有故로 彼有(차유고피유)하고, 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있고, 이것과 저것을 부처님은 가리키면서 설명했는데, 기록은 그 가리키는 것을 빼버리고 공식만 외워서 하는 법문이 아주 부족합니다.]

[[연기(緣起)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하여 생기는 상관관계의 원리이다. 연기란 인연의 이치를 말하며 이를 차연성(此緣性:이것에 연유하는 , 相依性)이라고 하는데, 현상의 상호 의존관계를 가리킨다. 현상은 무상하며 언제나 생멸(生滅), 변화하는 것이지만, 변화는 무궤도적(無軌道的) 것이 아니라 일정한 조건하에서는 일정한 움직임을 가지는 것이며, 움직임의 법칙을 연기라 한다.

법칙은 부처님의 출현과는 관계없이 ()으로 결정되어 있는 차연성의 것이다. 연기설의 가장 기본적인 것은이것이 있으면 그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기 때문에 그것이 생긴다. 이것이 없으면 그것이 없고, 이것이 멸하기 때문에 그것이 멸한다.”라는 불설(佛說) 근거를 두고 있다. 말의 뜻은 조건에 의하여 생기는 현상의 법은 조건을 없앰으로써 모두 멸할 있는 것이라는 이다.

연기와 법은 불교의 근본적인 특징으로서의 법인설(法印說)로부터 연기설이 생긴 것이므로, 연기설은 불교의 근본설이며, 연기를 자체라고도 한다. 원시 경전 속에서연기를 보는 자는 법을 본다. 법을 보는 자는 연기를 본다.”라든가연기를 보는 자는 법을 본다. 법을 보는 자는 () 본다.”라고 되어 있는 것이 그것이다. 

원시불교에서 대승불교에 이르기까지, 인도·우리 나라·일본 등의 모든 불교국가에서는 연기설을 중심사상으로 삼고 있다. 그러므로 연기설이 충분히 이해되면 불교 자체가 이해되는 것이다. 연기설이야말로 불교의 중심사상인 동시에 불교가 다른 종교와 철학과는 상위(相違)되는 불교특유의 특징이다.

근대의 우리 나라와 중국 또는 일본의 불교에서는 불교사상이 연기론과 실상론(實相論) 가지 계통으로 이루어진다고 보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연기론이 현상의 시간적 관계를 설하고 실상론이 현상의 공간적인 관계를 설하는 것으로 구별하고 있으나, 실제의 연기설은 현상의 시간과 공간에 걸친 일체의 관계를 설하고, 현상의 시간과 공간에 의한 사실관계뿐아니라 현상들 사이의 이론적인 논리관계까지도 설하는 것이다. 

이런 뜻에서 일체의 불교학설은 연기설에 포함된다고 있다. 예로부터 연기론으로 되어 있는 것은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 등의 업감연기론(業感緣起論), 유식법상종(唯識法相宗) 아뢰야식연기론(阿賴耶識緣起論), 법성종(法性宗) 여래장연기론(如來藏緣起論) 또는 진여연기론(眞如緣起論), 화엄종(華嚴宗) 법계연기론(法界緣起論, 無盡緣起論), 진언종(眞言宗) 육대연기론(六大緣起論) 등이다. 

실상론으로는 천태종(天台宗) 삼론종(三論宗) 제법실상론(諸法實相論) 있다. 선종(禪宗) 염불종(念佛宗) 등도 계통에 속하는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이들 연기론과 실상론을 모두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연기론이라 불리고 있지만 화엄종의 무진연기와 진언종의 육대연기에서 있듯이, 제법(諸法) 시간적인 관계뿐만 아니라 제법실상으로서의 십여시(十如是)에는 (((() 등의 시간관계도 포함되어 있다.

점으로 보아 인연론과 실상론으로 엄격히 구별하는 것은 불합리하며, 모두가 연기설에 속한다고 보아야 한다. 연기설은 우주와 인생의 움직임을 시간적·공간적·논리적 관계로서 바르게 고찰하는 것이지만, 불교는 철학이나 과학이 아니라 인생문제를 구체적으로 해결하려는 종교이기 때문에, 우주와 인생의 단순한 객관적인 움직임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고뇌를 해결해 가기 위하여 필요한 사회와 인생의 움직임을 연기로써 고찰하는 것이다.

이러한 뜻에서 연기에는 일반적 연기(外緣起) 가치적 연기(內緣起) 가지가 있다. 불교에서 필요한 것은 가치적 연기이지만, 기초로서 또는 그것을 비유적으로 설명하는 것으로서 일반적 연기가 설해진다. 연기설에 근거하면 현재의 존재는 과거 없이 존재할 없으며, 우리의 주위환경 전체의 과거 역사 없이는 존재할 없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순간은 우리들 자신과 주위의 모든 과거가 포함되고 있고, 현재의 존재는 우리들 자신의 미래를 규정하는 요인인 동시에 우리들 주위에 대하여, 그리고 역사 형성에 대하여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불교에서 일즉일체(一卽一切일체즉일(一切卽一)이라고 하는 것은 연기의 원리를 가르친 이다.

개인은 그대로 일체세계에 통하고 일체세계는 또한 개인과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다. , 우주와 인생의 모든 현상은 종적·횡적으로, 적극적·소극적으로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이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것이 연기설이다. [다움 백과]

 

대표적인 연기의 예로는 12연기(十二緣起) 있다. (1) 무명(無明). () 근본인 무지(無知). (2) (). 무지로부터 다음의 의식 작용을 일으키는 동작. (3) (). 의식 작용. (4) 명색(名色). 이름만 있고 형상이 없는 마음과 형체가 있는 물질. (5) 육처(六處). ()ㆍ이()ㆍ비()ㆍ설()ㆍ신() 5() 의근(意根). (6) (). 사물에 접촉함. (7) (). 외계(外界)로부터 받아들이는 ()ㆍ낙() 감각. (8) (). 고통을 피하고, 즐거움을 구함. (9) (). 자기가 욕구 하는 물건을 취함. (10) (). () 다른 이름. 다음 세상의 결과를 불러올 . (11) (). 몸을 받아 . (12) 노사(老死). 늙어서 죽음.- 다움백과]]

 

    (2) 緣生之法(연생지법) 인연으로 생기는 법.

何等이 爲是事有故로 是事有오 謂無明이 有故로 行有니라

何等이 爲是事無故로 是事無오 謂識無故로 名色이 無니라

何等이 爲是事起故로 是事起오 謂愛起故로 苦起니라

何等이 爲是事滅故로 是事滅고 謂有滅故로 生滅이니라

   

何等(하등)어떤 것이 爲是事有故(위시사유고)이 일이 있기 때문에 是事有(시사유)? 이 일이 있는 것인가?

謂無明(위무명)말하자면 무명有故유고로 있기 때문에 行有(행유)니라. 이 있는 것이요  

何等(하등) 어떤 것이 爲是事無故(위시사무고)이 일이 없기 때문에 是事가 無오? 이 일이 없는 것인가?

謂識無故(위식무고) 이 없기 때문에 名色(명색) 無니라. 명색이 없는 것이며,

何等이 爲是事가 起故(위시사기고) 是事가 起오? 어떤 것이 이 일이 일어나는 까닭에 이 일이 일어나는 것인가?

謂愛起故(위애기고) 苦起(고기)니라. 가 일어나는 까닭에 가 일어나는 것이며, 

何等이 爲是事滅故(위시사멸고) 是事滅고? 어떤 것이 이 일이 멸하는 까닭에 이 일이 멸하는 것인가?

謂有滅故(위유멸고) 生滅(생멸)이니라. 가 멸하는 까닭에 이 멸하는 것이며,

[연기는 모든 존재에 다 포함되는 원리이지만,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은 사람인 까닭에, 사람을 중심으로 일차 설명한 겁니다. 無明(무명)ㆍ行(행)ㆍ識(식)ㆍ名色(명색)ㆍ六入(6입)ㆍ觸(촉)ㆍ受(수)ㆍ愛(애)ㆍ取(취)ㆍ有(유)ㆍ生(생)ㆍ老死(노사) 12연기의 중요한 부분들만 예를 들었습니다.] 

 

[[12緣의 무명이 있기 때문에 행이 있고, 識이 없기 때문에 名色이 없고, 愛가 일어나기 때문에 苦가 일어나고, 有가 멸하기 때문에 生이 멸한다고 설했는데, 앞에서의  가지 事에서 識과 愛는  무명의 망녕된 계교[]로부터 온갖 有가 생기기 때문에, 有가 본래 없는  요달하면  12연이 소멸하는 것이다. 12  소멸하면 지혜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지혜가 멸하는 것도 아니라서, 다만  병을 없애기만 하면  지혜가 의지함도 없고 형상도 없고 하염이 없으면서도  비어 萬有를 통하고 있으며,  결과 생각 없이 나타나고 작위 없이 성취하는 것이므로 배우는 자가 止와 觀의  문으로 功이 종결되어야 비로소 회통하는 것이다. 이렇게 한번 따져보면 나중의 10법도 모두 종결되는 것이니, 성인의 가르침이 識의 相을 늘어 놓아서 다른 견해를 대치하는 것이다.]]

 

    (3) 世間法

何等이 爲世間法고 所謂色受想行識이니라

   

何等(하등)이 爲世間法(위세간법)고? 어떤 것이 세간법인가?

所謂色受想行識(소위색수상행식)이니라. , 수, 상, 행, 식말하는 것이요

[색ㆍ수ㆍ상ㆍ행ㆍ식이 세간법이다. 우리가 아는 五蘊(오온)을 나라고 알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불교를 공부한 사람들은 그것을 확연히 깨닫지는 못하더라도, ‘五蘊 저 밑에 참나, 참사람이 있다.’ 五蘊은 전부 차별하지만 그 밑에 있는 참사람은, 차별 없는 참사람= 無位眞人(무위진인)인겁니다.

들을 때 남자로서 듣느냐? 여자로서 듣느냐? 스님으로서 듣느냐? 속인으로 듣느냐? 아무 조건이 없는 겁니다. 그런 차별한 조건 없이 듣는 그 당체가 참마음이고, 참사람, 차별 없는 참사람이거든요. 차별 없는 참사람을 알기 어려운 것이 아니지만 그것이 얼마나 熾盛(치성)이 되느냐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요. 들을 때는 환한데, 금방 까먹고 차별에 놀아나는 겁니다. 차별만 가지고 우리가 이런 저런 일을 저질러 가는 것이지요.]

 

   (4) 出世間法

何等이 爲出世間法고 所謂戒定慧解脫解脫知見이니라

   

何等(하등)이 爲出世間法(위출세간법)고? 어떤 것이 출세간법인가?

所謂戒定慧解脫解脫知見(소위계정혜해탈해탈지견)이니라. 계ㆍ정ㆍ혜ㆍ해탈ㆍ해탈지견을 말하며

[戒定慧삼학을 통해서 해탈을 성취하자는 것이고, 해탈을 성취한 해탈의 지혜는 남을 해탈시키는 것입니다. 계ㆍ정ㆍ혜로써 내가 수행을 잘해서 해탈이라고 하는 목적을 성취해서 주저앉아 있으면 소승입니다. 解脫知見, 해탈의 진정한 지혜는 남을 해탈시키는 것이 불교 전부입니다. 경ㆍ율ㆍ론 삼장의 목적이 이 안에 다 있지요. 그래서 우리가 계향ㆍ정향ㆍ혜향하고 소리 높여서 읊조리는 것입니다.]

[[해탈(解脫)[梵  mokṣa, mukti, vimukti,  英  loosing, release, deliverance, liberation, setting free ....emancipation]

인도사상의 주조류(主潮流)에는 고통으로 가득 찬 윤회(輪廻; saṃsāra)로부터 단호하게 벗어나서 두 번 다시 생존의 세계에 이르지 않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이것이 바로 해탈이다.   모든 욕망이 소멸하였다는 점에서는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난 열반(涅槃; 번뇌가 소멸됨)과 같은 의미이다.   우파니샤드철학에서는 브라흐만 그것과 합일하는 것이 해탈의 긍극적인 목표이다.   해탈에 이르는 방법은 신체.감각기관.욕망을 컨트롤하여 명상[요가]으로 심신을 통일하고, 브라흐만과 아트만에 오로지 집중하는 것이다.   고(古)우파니샤드[기원전 600년경]에서 정립된 업(業)으로부터 해탈하는 고찰방식은 이후 인도사상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마누법전』[기원전 200년경에서 기원후 200년경]이나 서사시 『마하바라타』성립 시대[4세기경]에는 이미 한 생애의 목적으로서의 세속적인 3대 가치, 다르마[法].아르따[利益].까마[愛]와 함께 출가의 최고 가치로서의 해탈이 사회적 콘센서스를 얻기에 이른다.

[자이나교의 해탈]   자이나교에서는 사람이 행위[業]를 하면, 영혼에 미세한 물질이 계속해서 부착하여 업(業)이 된다고 한다. 그러면 영혼은 자유를 속박당하고, 지옥.아귀.축생.인간.신(神)들의 상태를 계속해서 윤회(輪廻)한다. 여기서 수행자는 고행[tapas]에 의해서 이전의 업(業)의 침입을 막는다. 그렇게 하면 영혼에 부착되어 있는 미세한 물질은 영혼으로부터 떠나서 소멸하며, 영혼은 해방된 상태로 되어 해탈이 달성된다. 자이나교설(敎說)의 발전과 함께 이 소박한 해탈론은 이원론적 해탈론으로 바뀐다.   신체가 죽으면서 신체에서 이탈한 영혼은 신속하게 상승해서 세계를 떠나 비세계(非世界)에 도달하는데, 이로써 열반의 경지를 얻고서 참된 해탈을 완성한다. 그러므로 참된 해탈을 위해서 수행자는 몸을 가볍게 하는 데 전념하고, 깊은 명상과 음식을 끊고서 굶주려 죽는 것을 명예롭게 생각하는 사고방식이 발생하기에 이르렀다.

[불교의 해탈]   초기불교에서는 자이나교처럼, 윤회의 고통으로부터 자유롭게 되기 위해서 소욕지족(少欲知足)의 출가수행을 실천하였다.   윤회의 근본원인인 욕망.무지(無知)로부터 벗어난 깨달음을 각각 심해탈(心解脫)과 혜해탈(慧解脫) 등으로 구분한다.   이를 통해서 지혜와 선정을 동시에 갖춘 수행자를 지향하였다.   사실 고집멸도(苦集滅道)의 사성제(四聖諦; 四諦; 곧 네 개의 밝은 진리)는 의학(醫學)의 네 가지 패러다임, 즉 병의 증상.병의 원인.회복.치료법에서 유래한다.   세 번째의 멸제(滅諦)는 번뇌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롭게 된 깨달음의 경지이다.   이 위없는 편안한 상태가 바로 열반의 경지이다.   네 번째 도제(道諦)는 팔정도(八正道; 깨달음을 위한 8가지의 실천)에 의해서 고통으로부터 해방을 도모하는 실천이다.   번뇌도 깨달음도 '존재'로서 실체적으로 파악하려는 부파불교(部派佛敎)의 해탈 해석을 넘어서, 대승불교에서는 깨달음 그 자체를 공(空)이라고 파악한다.   즉 대승불교에서는 미혹함이나 깨달음, 윤회나 해탈도 모두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다만 인간의 고통은 아뢰야식에 의해서 이미지화된 환영(幻影)에 구속되어 있기때문에 생긴다고 한다.  그래서 명상의 실천에 의해서 깨닫고 나아가 다른 사람의 구제를 지향할 것을 주장한다.

해탈신(解脫身)[梵  vimukti-kāya, 英  The body of liberation, the body of Buddha released from kleśa]

삼불신(三佛身)의 하나.   불신(佛身)은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아서 자유자재한 몸이 되었기 때문에 해탈신(解脫身)이라 한다.   이 해탈에는 유위해탈(有爲解脫)과 무위해탈(無爲解脫)의 2종이 있다.

해탈지견(解脫知見) [梵  vimuktijñāna,  英  The knowledge and experience of nirvāṇa]

①나 자신이 해탈하였음을 확인하는 지혜.   자기 혼자서 스스로 해탈함을 확인하는 일.   해탈했다는 자각(自覺).   ②오분법신(五分法身)의 제5.   계(戒)로부터 정(定)이 생(生)하고, 정(定)에 의하여 지혜(智慧)를 얻고, 지혜로써 해탈에 도달하며, 해탈에 의하여 해탈지견(解脫知見)을 얻게 된다.   ③해탈의 지혜.   ④번뇌로부터 해방의 기쁨에 젖는 것.   해방된 마음의 평안(平安)함을 아는 일.   ⑤해탈에 있어 지(智)와 견(見)의 역할. - 승원]]

 

   (5) 有爲法

何等이 爲有爲法고 所謂欲界와 色界와 無色界와 衆生界니라

 

何等(하등)이 爲有爲法(위유위법)고? 어떤 것이 유위법인가?

所謂欲界(소위욕계) 色界(색계) 無色界와 衆生界(중생계)니라욕계, 색계, 무색계 중생계를 말하며,

 

    (6) 無爲法

何等이 爲無爲法고? 所謂虛空과 涅槃과 數緣滅과 非數緣滅과 緣起와 法性住니라

 

何等(하등)이 爲無爲法(위무위법)고? 어떤 것이 무위법인가?

所謂虛空(소위허공) 涅槃(열반)허공, 열반, 數緣滅(삭연멸) = 자주 삭을 연하여 멸하는 것, 

非數緣滅(비삭연멸) 수를 연하여 멸하지 않는 것, 緣起(연기) 法性住(법성주)니라. 연기, 법성주를 말하며,

[[불교에는 일체법(一切法) 또는 제법(諸法) 분류하는 여러 방식 중에 크게 유위법(有爲法) 무위법(無爲法) 가지로 분류하는 방식이 있다. 이는 일체법을 유루법(有漏法) 무루법(無漏法)으 분류하는 방식과 더불어 불교 전반에서 널리 사용되는 분류법이다.

유위(有爲, 산스크리트어: saṃskrta, 영어: created, formed, conditioned)에서 () 위작(爲作) · 조작(造作: 만들다) 뜻으로, 유위는 만들어진 , 조작된 , 다수의 요소가 함께 작용된 , 여러 인연이 함께 모여서 지은 , 인연으로 말미암아 조작되는 모든 현상을 가리킨다. 또는 이렇게 하여 드러난 생성과 소멸의 세계, 우리가 경험하는 현상의 세계를 뜻한다. 유위법(有爲法, 산스크리트어: sajskrta-dharma, 영어: Karmic existence, conditioned existence) 유위(有爲) 세계, , 여러 인연의 화합에 의해 만들어진 생성과 소멸의 현상세계의 모든 개별 존재(·法) 통칭한다. 또는 그러한 개별 존재(·法) 가리킨다.

 

무위(無爲, 산스크리트어: asaṃskrta, 영어: uncreated, unformed, unconditioned) 조작(造作: 만들다) 뜻이 없는 것으로 유위의 () 되며, 조작되지 않은 세계, 인연의 화합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세계, 생멸변화를 떠난 절대적이며 항상 존재하는 진리 또는 진리의 세계를 뜻한다. 무위법(無爲法, 산스크리트어: asaṃskrta-dharma, 영어: non-Karmic existence, unconditioned existence) 무위의 세계, 인연의 화합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진리의 세계의 모든 개별 존재(·法) 통칭한다. 또는 그러한 개별 존재(·法) 가리킨다. 원래 무위 혹은 무위법은 열반(涅槃) 다른 명칭이었는데, 후대 아비달마불교와 대승불교에 의해 3무위(三無爲), 6무위(六無爲), 9무위(九無爲) 등의 설이 생겼다.

유위의 다른 이름

설일체유부의 논사들인 비바사사(毘婆沙師) 전통에 따르면, 5(五蘊) · 세로(世路) · 언의(言依) · 유리(有離) · 유사(有事) 모두 유위(有爲) 다른 이름들로, 각각 유위법의 측면을 보여준다. 5(五蘊) 법의 공간적 측면 법체계, 세로(世路) 법의 시간적 측면, 언의(言依) 법의 언어적 측면 설법과 논의 가능성, 유리(有離) 법의 열반과의 관계의 측면 진리의 측면, 유사(有事) 법의 인과법칙적 현상의 측면 보여준다.

오온= 설일체유부에서는 유위법을 또한 5(五蘊, 산스크리트어: pañca-skandha)이라고도 한다. 설일체유부에 따르면, 5, (: , 물질) · (: 지각) · (: 표상) · (: 욕구, 의지) · (: 마음, 의식) 다섯 가지 [五法] 여러 인연이 모여서 만든 , 조작(造作) 것이기 때문에 이들은 모두 유위(有爲)이다. , 개인의 (색온)뿐만 아니라 마음(식온) 마음작용들(수온 · 상온 · 행온) 또한 개의 () 의해 생겨난 것은 없으며 다수의 [衆緣] 의해 조작되어 형성된 것이다.

세로·시간= 설일체유부에서는 유위법을 또한 세로(世路, 산스크리트어: adhvan)라고도 한다. 세로는 일체의 유위법이 이미 작용하였고, 지금 바로 작용하고 있으며, 응당 작용할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으로, 일체의 유위법이 찰나찰나 생멸변천하면서 과거 · 현재 · 미래의 모습을 이루어가는 과정(過程) 또는 경로(經路) 중에 있다는 것을 말한다. 

설일체유부의 교학에 따르면, 시간(時間, kāla) 과거 · 현재 · 미래의 삼세는 (), 객관적으로 독립된 실체가 아니며 생멸변천하는 일체의 유위법을 근거로 하여 가설(假說) 개념일 뿐이다. 시간이란 생멸변천의 과정 또는 경로를 가설적으로 지칭하는 것으로, 따라서 시간은 세로(世路) 유위(有爲) 다른 이름일 뿐이다. 

언의= 설일체유부에서는 유위법을 또한 언의(言依, 산스크리트어: kathavastu)라고도 한다. 언의(言依) [語言] 근거[所依]라는 으로, 책상 혹은 하늘과 같은 명사적 단어[, 산스크리트어: nāma, 영어: name] 의해 드러나는 의미를 말한다. 책상 혹은 하늘 등의 온갖 명사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 온갖 명사가 가리키는 존재() 말한다. 따라서 언의(言依: 말의 근거) 일체의 유위제법(有爲諸法) 모두 포섭한다. 

한편, 전통적인 용어로는, 명사 자체를 능전의 (能詮 )이라 하며, 명사가 가리키는 존재() 소전의 (所詮 )이라 한다. 능전의 (能詮 ) 수설(隨說)이라고도 하며, 수설을 번역하여 따르는 말이라고도 한다. 

해심밀경 5권에서는 관대도리(觀待道理) 정의하면서 수설(隨說) 언급하는데, ()이나 혹은 () 능히 모든 (: 유위법) 생겨나게 하며 또한 해당 (: 유위법) 따르는 [隨說] 관련된 개념도 일으키는 것을 관대도리라 정의하고 있다. 

유리= 설일체유부에서는 유위법을 또한 유리(有離, 산스크리트어: saniḥsara)라고도 한다. 문자 그대로의 뜻은 '떠남이 있다' 것이다. 비바사사의 해석에 따르면, () 일체의 유위법을 영원히 떠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것은 열반(涅槃) 말한다. 각각의 유위법에는 이와 같이 '그것으로부터 영원히 떠남[]' 의미가 들어있기[] 때문에, 일체의 유위법을 유리(有離)라고도 이름할 있다. , 유리(有離)라는 다른 이름은 모든 유위법은 반드시 그것을 떠난 (또는 택멸, 열반) 상태가 있으며, 상태를 성취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유사= 설일체유부에서는 유위법을 또한 유사(有事, 산스크리트어: savastuka)라고도 한다. 문자 그대로의 뜻은 "[] 있다" 것이다. 비바사사의 해석에 따르면, () 원인[] 의미한다. , 일체의 유위법은 인과의 법칙의 결과물, 인연 화합에 의해 만들어진 결과물이므로 유사(有事) 부르기도 한다.

*유·무위 분별

사성제 유위(有爲) 무위(無爲) 분별하면, 멸제만이 무위이며 나머지 고제 · 집제 · 도제는 모두 유위이다.

한편, 일체법을 유루(有漏) 무루(無漏) 분류하는 방식이 있는데, 이를 적용하면 고제 · 집제는 유루이고 도제 · 멸제는 무루이다. 

따라서, 고제 · 집제는 유위이고 유루이며, 멸제는 무위이고 무루이며, 도제는 유위이고 무루이다. 불교에서는, 무위이고 무루인 멸제, 열반은 유위이고 무루인 도제에 의해 생겨나는 , 인연 화합에 의해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유위이고 무루인 도제에 의해 증득(證得)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오온 · · · · 식의 5온은 모두 유위법에 속하며, 무루법과 유루법에 모두 통한다. 무위법은 5온에 속하지 않는다. 5온이 무루법에 통한 경우가 사성제 중의 도제로, 도제 팔정도(八正道) 유위이면서 무루이다. 5온이 유루법에 통한 경우 5온은 번뇌를 낳는데, 이러한 상태의 5온을 특히 5취온(五取蘊)이라 한다. 때의 () 번뇌의 다른 이름이다. 5취온은 유위이면서 유루로, 사성제의 고제와 집제에 해당한다.-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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