本名;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
또는 '중인도나란타대도량경(中印度那蘭陁大道場經)'당나라의 반자밀제(般刺密帝) 번역,
송나라 급남(及南) 편찬(編纂), 송나라 계환(戒環) 해석. 개운조사 능엄경 참조
수능엄경(首楞嚴經) 3권 10
▷수대(水大)
阿難!水性不定,流息無恒。如室羅城迦毘羅仙、毘迦羅仙及鉢頭摩訶薩多等諸大幻師,求太陰精用和幻藥,是諸師等,於白月晝手執方諸承月中水。此水爲復從珠中出?空中自有?爲從月來?
아난아, 물의 성질은 일정하지 않아서 흐르고 그침이 한결같지 않느니라.
저 실라벌성(室羅筏城)에 가비라(迦毘羅) 선인(仙人)과 비가라(毘迦羅) 신선과 발두마(鉢頭摩)와 하살다(訶薩多)와 같은 여러 뛰어난 대환사(大幻師)들이 달의 정기인 태음정(太陰精)을 받아서 환약(幻藥)을 섞을 때, 그 환사들이 백월(白月)의 한밤중에 손에 방저(方諸)를 들고 달 속의 물을 받는데, 그 물은 구슬 소반에서 나온 것인가?
허공 가운데에세 저절로 생긴 것인가? 달에서 나온 것인가?
ㅡ*가비라(迦毘羅), 가비라는 황적색이라는 뜻으로 환술하는 외도의 이름이다.
*비가라(毘迦羅), 비가라는 수레바퀴라는 뜻이며, 화술 외도이다.
*발두마(鉢頭摩), 붉은 연꽃이라는 뜻으로 연못이며, 이 환술사가 이 못 가에 살았다
*하살다(訶薩多), 바닷물이라는 뜻으로, 이 환술사가 해변에 살았다.
*매월의 15일 이전은 백월(白月)이라 하고, 15일 이후는 흑월(黑月)이라 하고,
보름달은 낮과 같이 밝아 백월(白月晝), 보름 하루 전을 백(白)이라하고, 한밤중을 주(晝)라 한다.
*방저(方諸), 옥으로 만든 술잔 모양의 도구로써 닦아서 뜨겁게 하여 달을 향하면 진액이 생겨 물이 흐른다고 한다.
阿難!若從月來,尚能遠方令珠出水,所經林木皆應吐流。流,則何待方珠所出;不流,明水非從月降。
만일 달에서 나온 것이라면, 오히려 먼 곳임에도 구슬로 하여금 능히 물이 생기게 할 수 있게 있었으니,
그 경과하여 오는 곳의 숲과 나무에 다 물이 흘러야 할 것이니,
물이 흐른다면 어찌하여 방저(方諸)에서만 생기기를 기다릴 것이며,
흐르지 않는 불유(不流)라면 물이 달에서 오지 않는 것이 분명할 것이다.
ㅡ불유(不流) 등의 말은 곧 물이 달에서 오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若從珠出,則此珠中常應流水,何待中宵承白月晝。若從空生,空性無邊水當無際,從人洎天皆同陷溺,云何復有水陸空行?
만약 구슬에서 나오는 주출(珠出)이라면, 그 구슬 속에서는 항상 물이 흘러야 할 것인데, 무엇 때문에 한밤중의 백월(白月)을 기다려 물을 받을 필요가 있겠는가?
만약 허공에서 생기는 공생(空生)이라면, 허공의 성품은 끝이 없으니, 물도 마땅히 끝없이 흘러서 인간으로부터 하늘에 이르기까지 모두 함께 물 속에 잠겨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찌 물과 육지와 허공의 구별이 있을 수 있겠는가?
ㅡ이는 곧 본래 자연 그대로이며 두루 있는 것으로, 화합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汝更諦觀,月從天陟,珠因手持,承珠水盤本人敷設,水從何方流注於此?月珠相遠非和非合,不應水精無從自有。
너는 자세히 살펴보아라. 달은 하늘에서 떠있고, 구슬 소반은 손에 들려 있으며, 구슬의 물을 받는 소반(盤)은 본래 그 사람이 펴놓은 것인데, 물이 어디를 좇아서 여기에 흐르는 것인가?
달과 구슬은 서로 멀리 떨어져서 있어서 합하지도 못할 것이며, 그렇다고 해서 물의 정기가 온 곳 없이 저절로 생긴 것도 아닐 것이다.
汝尚不知如來藏中,性水眞空性空眞水,淸淨本然周遍法界;隨衆生心應所知量,一處執珠一處水出,遍法界執滿法界生,生滿世閒寧有方所,循業發現。世閒無知,惑爲因緣及自然性,皆是識心分別計度,但有言說,都無實義。
너는 아직도 알지 못하는구나! 여래장(如來藏) 가운데의 성품이 물인 진공(眞空)과 성품이 공인 진수(眞水)가 청정하고 본래 자연 그대로의 본연(本然)이라서 법계에 두루 원만한 가운데, 중생의 마음을 따라, 각자의 아는 바의 정도인 소지량(所知量)에 맞추어 호응하는 것이니,
한 곳에서 구슬을 잡고 있으면 한 곳에서 물이 나오고, 법계에서 두루 잡고 있으면 법계에 가득 물이 생길 것이다.
온 세간에 가득하게 생길 것이거늘, 어찌 따로 장소가 있겠는가!
업(業)을 따라 나타나는 것이거늘, 세간 사람들은 무지하여 인연 또는 자연의 성품이라고 의혹하고 있으며,
이러한 것은 다 이 인식하는 식심(識心)이 분별하고 헤아리는 것이므로,
다만 언설만 있을 뿐, 실의(實義)는 전혀 없느니라.
▷풍대(風大)
阿難!風性無體,動靜不常。汝常整衣入於大衆,僧伽梨角動及傍人,則有微風拂彼人面。
此風爲從袈裟而出? 發於虛空生?彼人面?
아난아, 바람의 성질은 실체가 없어서, 움직이고 고요함이 일정하지 않으니,
네가 항상 법의를 바로 입고 대중의 모임에 들어갈 때, 승가리(僧伽梨)의 자락이 펄럭여서 곁에 있던 사람에게 그 흔들림이 미치면, 곧 가벼운 바람이 그 사람의 얼굴에 스칠 것이니, 그 바람은 가사자락에서 나온 것인가?
허공에서 생긴 것인가? 그 사람의 얼굴에서 생긴 것인가?
阿難!此風若出於袈裟角,汝乃披風,其衣飛搖動應離汝體;我今說法,會中垂衣,汝看我衣風何所在?不應衣中有藏風地。
아난아! 그 바람이 만약 가사자락에서 생긴 것이라면, 네가 그 바람으로 인하여 그 옷이 펄럭이고 날리어서 너의 몸에서 벗겨져 나가야 할 것이다.
내가 지금 설법할 때, 이 모임에서 법의를 드리웠으니, 너는 나의 가사를 보아라. 바람이 어디에 있는가!
당연히 내 옷 속에 바람을 감추어 둔 곳이 있지 않느니라.
若生虛空,汝衣不動,何因無拂?空性常住,風應常生;若無風時,虛空當滅。滅風可見,滅空何狀?若有生滅,不名虛空;名爲虛空,云何風出?
만약 허공에서 생긴다면, 네 가사가 펄럭이지 않을 때에는 무슨 까닭으로 바람이 스치지 않는 것인가!
허공의 성품은 항상 머물러 있는 것이므로 바람도 당연히 항상 있어야 할 것이며,
만약 바람이 없을 때에는 허공도 마땅히 없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바람이 없는 것을 알 수가 있지만 허공이 없어지는 것을 어떠한 상태이겠는가?
만약 허공이 생기거나 없어짐이 있다면, 허공이라 이름하지 못할 것이고, 허공이라고 이름한다면 어떻게 바람이 나오겠는가?
若風自生彼拂之面,從彼面生當應拂汝,自汝整衣云何倒拂?
만약 바람이 그 사람의 얼굴에서 저절로 생긴 것이라면, 그 사람의 얼굴에서 생긴 면생(面生)일 것이므로 마땅히 너에게로 불어와야 할 것인데, 네가 옷을 여밀 적에 어찌하여 바람이 거꾸로 그에게 불어간 것인가?
汝審諦觀,整衣在汝,面屬彼人,虛空寂然不參搖動,風自何方 鼓動來此?風空性隔非和非合,不應風性 無從自有。
너는 자세히 살피고 관찰해 보아라! 옷을 여미는 것은 네가 한 것이고, 얼굴은 저 사람에게 속해 있으며, 허공은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는 것이거늘, 바람이 어디에서부터 이쪽으로 불어 온 것인가?
바람과 허공은 성질이 막혀서 화합한 것이 아니니, 풍성(風性)이 좇아 나온 곳이 없이 저절로 생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ㅡ세 가지가 간여하지 않으며, 두 가지 성질이 서로 막혀서 바람이 불어온 곳을 찾을 수 없으니, 진실로 본래 자연 그대로이라서 두루 업보를 따라 나타나는 것이다.
汝完不知如來藏中,性風眞空性空眞風,淸淨本然周遍法界;隨衆生心應所知量。
阿難!如汝一人微動服衣有微風出,遍法界拂滿國土生,周遍世閒寧有方所,循業發現。世閒無知,惑爲因緣及自然性,皆是識心分別計度,但有言說,都無實義。
너는 자세히 알지 못하는구나! 여래장(如來藏) 가운데에 성품이 바람인 진공(眞空)과 성품이 공인 진풍(眞風)이 청정하고 본래 자연 그대로이라서 법계(法界)에 두루 퍼져 있으면서 중생들의 마음을 따라 아는 바의 소지량(所知量)의 정도에 맞추어 호응하는 것이니,
아난아! 만약 너 한 사람이 의복을 약간 펄러기면 미미한 바람이 나오고, 법계에 골고루 펄럭거린다면, 법계에 가득하게 생기는 것이다.
온 세간에 골고루 생기는 것이거늘, 어찌 장소가 따로 있겠으며?
업보를 따라 나타나는 것이거늘, 세간 사람들은 지혜가 없는 무지(無知)하여서 인연 또는 자연의 성품이라고 의혹하고 있으니, 이는 다 식심(識心)이 분별하고 헤아리는 것이므로, 다만 언설만 있을 뿐, 실의(實義)는 전혀 없느니라.
ㅡ법계에 두루하다고 한 것은 한 사람을 말하는 것이고, 국토는 의복을 말하는 것이다.
'성품이 공인 진풍(眞風)'은 체(體)와 용(用)을 말한 것으로, 체와 용이 둘이 아니므로 옷으로써 예를 든 것이다.
▷공대(空大)
阿難!空性無形,因色顯發。如室羅城去河遙處,諸剎利種及婆羅門、毘舍、首陁兼頗羅墮、旃陁羅等,新立安居鑿井求水,出土一尺於中則有一尺虛空,如是乃至出土一丈中閒還得一丈虛空,空虛淺深隨出多少。此空爲當因土所出?因鑿所有?無因自生?
아난아, 공의 성품은 형상이 없으므로 물체(色)으로 인하여 나타나느니라.
마치 실라벌성에서 강과 멀리 떨어진 곳에 살고 있는 찰제리(擦劑利, 왕족)와 바라문(婆羅門, 승려)과 비사(毗舍, 상인)와 수타(首陀, 농민)와 전타라(旃陀羅, 천민) 등이 살 집을 새로 짓고자 우물을 파서 물을 구할 때, 흙을 한 자(尺)쯤 파내면 그 자리에 한 자의 허공이 생기고, 이렇게 하여 나아가서, 흙을 한 길(丈)쯤 파내면 그 중간에 다시 한 길의 허공이 생길 것이니,
이렇게 허공의 얕고 깊음이 파내는 흙의 많고 적음에 따라 생길 것이니, 이 우물 안의 허공은 흙으로 인하여 생긴 것인가?
아니면 파냄으로 인하여 있는 것인가? 원인 없이 저절로 생긴 것인가?
ㅡ흙을 파내어 허공이 생기는 것이 이른바 물체(色)로 인하여 나타난다는 것이다.
阿難!若復此空無因自生,未鑿土前何不無㝵,唯見大地迥無通達?若因土出,則土出時應見空入,若土先出無空入者,云何虛空因土而出?若無出入,則應空土元無異因,無異則同,則土出時空何不出?若因鑿出,則鑿出空,應非出土?不因鑿出,鑿自出土,云何見空?
아난아, 만약 이 허공이 원인 없이 저절로 생긴 것이라면, 흙을 파기 전에는 어찌하여 막혀서 멀리까지 환하게 통하지 못한 것인가?
만약 허공이 흙으로 인하여 나온 것이라면, 곧 흙을 파낼 때에 마땅히 허공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아야 할 것이니,
만약 흙이 먼저 나오는데도 허공이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면, 어떻게 허공이 흙으로 인하여 나온 것이라고 하겠는가?
만약 흙을 파낼지라도 허공이 나오거나 들어가는 것이 없다면, 곧 마땅히 허공과 흙이 원래 다른 원인이 없는, 같은 것일 것이다.
흙과 허공이 다르지 않다면 같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흙을 파낼 때 허공은 어찌하여 나오지 않는 것인가?
만약 허공이 파냄으로 인하여 나온 것이라면, 곧 흙을 파낼 때 허공만 나와야 할 것으로, 마땅히 흙은 나오지 않아야 할 것이다.
허공이 파냄으로 인하여 나온 것이 아니라면, 파냄으로 인하여 저절로 흙만 나와야 할 것이거늘, 어찌하여 허공을 보게 되는 것인가?
ㅡ다른 원인이 없다는 것은 일체(一體)라는 뜻이며,
그 원인(因)에 나아가는 것도 옳지 않으며 원인(因)을 떠나는 것도 옳지 않은 것이다.
汝更審諦諦審諦觀,鑿從人手隨方運轉,土因地移,如是虛空因何所出?鑿空虛實不相爲用、非和非合,不應虛空無從自出。若此虛空,性圓周遍本不動搖,當知現前地水火風均名五大性眞圓融,皆如來藏本無生滅。
너는 다시 자세하게 살피고 관찰하여 보아라. 파냄은 사람의 손을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고, 흙은 땅으로 인하여 옮겨지는데, 그러면 허공은 무엇으로 인하여 나오는 것인가?
파냄과 허공은 실(實)과 허(虛)로서 서로 작용하지 못하므로 어울리지 못하고 합하지도 못하는 것이다.
또한 마땅히 허공이 오는 곳도 없이 저절로 생긴 것도 아닐 것이며,
만약 이 허공의 성품이 원만하고 두루 퍼져있어 본래 동요하지 않는 것이라면, 마땅히 앞에서 밝힌 지수화풍과 똑같이 오대(五大)라고 불러야 할 것이니, 그 성품이 참되고 원만하여서 막힘이 없으므로, 모두가 여래장으로서 본래 생멸이 없기 때문이니라.
ㅡ파냄은 실(實)이고, 허공은 허(虛)이다.
허공은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닌, 빈 공(空)이다. 본래 공(空)하여 청정(清淨)하고 본연(本然)한데, 조건을 갖추면 어디서든 허공이 나온다. 하나의 우물을 파면 우물 크기만큼의 허공이 생기는 것과 같이, 온 세상 크기의 우물을 파면 온 세상만큼의 허공이 생길 것이다.
이상의 모든 교변(巧辨)은 모두 식심(識心)의 망령된 생각을 버리고 원융하고 참된 진실체(眞實體)를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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