本名;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
또는 '중인도나란타대도량경(中印度那蘭陁大道場經)' 당나라의 반자밀제(般刺密帝) 번역,
송나라 급남(及南) 편찬(編纂), 송나라 계환(戒環) 해석. 개운조사 능엄경 참조
수능엄경(首楞嚴經) 3권 9
“阿難!如汝所言,四大和合,發明世閒種種變化。阿難!若彼大性體非和合,則不能與諸大雜和,猶如虛空不和諸色;若和合者,同於變化,始終相成生滅相續,生死死生生生死死,如旋火輪未有休息。
“아난아, 네가 말한 바와 같이 4대(四大, 요소要素)의 화합으로 세간의 가지가지 변화를 일으킨다면,
아난아, 만약 저 요소(大, 원소)의 성품 자체가 화합된 것이 아니라면, 칠대(七大) 등의 모든 원소(大)와 섞일 수 없는 것이 마치 허공의 모든 색(色)이 화합할 수 없는 것과 같을 것이며,
만약 화합된 것이라면, 변화하는 처음과 끝이 서로 이루어지면서 생멸(生滅)이 서로 상속하여서, 났다가는 죽고, 죽었다가 다시 나며, 나고 나며, 죽고 죽기를 마치 불덩어리의 화륜(火輪)이 쉴 새 없이 돌아가 듯 반복하여 그치지 않을 것이니라.
ㅡ권교(權敎)에서 화합이라고 말했으나 전혀 실제의 의미가 전혀 없는 것이다. 대개 그 원소(大)의 성질(性)이 화합하지 않은 것이라면, 이는 마치 허공에서는 모든 색(色)이 화홥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옳지 않으며
만약 정말 화합한 것이라면, 이 모든 변화와 같아서 서로 이루어지고 서로 계속하여 갈 수록 허망하게 될 것이니, 이 역시 옳지 않은 것이다.
화륜이 돈다'는 것은 실체가 없는 것이니, 허망함이 서로 이루고 서로 계속되는 상(相)을 비유한 것이다.
阿難!如水成冰 冰還成水。
아난아, 또 마치 물이 얼음이 되었다가 얼음이 다시 물이 되듯 반복하느니라.
▷지대(地大)
汝觀地性,麤爲大地細爲微塵,至鄰虛塵析彼極微,色邊際相七分所成,更析鄰虛 豈實空性。
너는 땅(地)의 성질을 관찰해 보아라. 큰 것은 대지(大地)가 되고, 작은 것은 미진(微塵)이 되었다가, 인허진(鄰虛塵; 허공에 가까운 티끌)에 이르러서는 아주 극미(極微)한 색변제상(色邊際相, 분자)을 일곱 등분으로 쪼개어서 이루어진 것이니,
다시 인허진(鄰虛塵)을 쪼갠다고 한들 어찌 진정한 공성(空性)이 되겠는가!
ㅡ이것은 색(色)은 쪼갤 수가 있으나, 허공은 합할 수 없음을 밝혀서 땅의 성질인 지성(地性)이 화합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티끌이 작은 것을 미(微)라 하고, 이보다 더 작은 것을 극미(極微)라 하며, 극미보다 더 작은 것을 인허(鄰虛)라 한다
극미한 티끌도 작은 색상(色相)이 있으므로 색변제상(色邊際相, 분자)이라 한 것이며, 극미한 것을 쪼개어 일곱 등분하면 그 극미한 색상도 거의 공허해지므로 인허(鄰虛)라 한 것으로, 이는 역으로 나타낸 것이다.
阿難!若此鄰虛析成虛空,當知虛空出生色相。
아난아, 만약 이 인허진(鄰虛塵)를 쪼개어 허공이 된다면, 마땅히 허공도 색상(色相)을 생겨나게 한다는 것이라고 알아야 하리라.
ㅡ먼저 이론을 설정해 놓고 그 다음에 분별하여 밝히시는 것이다.
인허진(鄰虛塵)를 쪼개어 허공을 이루며, 허공이 색상을 생겨나게 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것으로, 이것은 순(順)으로 나타낸 것이다.
汝今問言:‘由和合故,出生世閒諸變化相。’汝且觀此一鄰虛塵,用幾虛空和合而有?
不應鄰虛合成鄰虛。又鄰虛塵析入空者,用幾色相合成虛空?
네가 지금 ‘화합으로 말미암아 세간의 모든 변화상(變化相)이 출생하는가’를 물었으니,
너는 우선 이 하나의 인허진을 보아라. 얼마만큼의 허공이 합해져서 이루어진 것이겠는가?
당연히 인허가 화합하여 인허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한 인허진을 쪼개어 허공이 된다면, 얼마만큼의 색상을 가져야 화합해서 허공을 이루겠는가?
ㅡ모든 변화상(變化相)이 화합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 아님을 밝힌 것으로,
색(色)이 화합해서 허공이 되고 허공이 화합해서 색상이 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다.
若色合時,合色非空;若空合時,合空非色。色猶可析,空云何合?
만약 색(色)이 합해졌을 경우에는 색이 합해진 것이지 허공이 아닐 것이며,
만약 허공(空)이 합해졌을 경우에는 허공이 합해진 것으로 색(色)이 아닐 것이니,
색(色)은 오히려 쪼갤 수가 있지만, 허공(空)과 어떻게 합할 수가 있겠는가?
ㅡ색상(色)이 화합했으면 허공(空)이라 할 수 없고, 허공이 화합했으면 색상(色)이라 할 수 없으니,
허공(空)이 화합한 것이 아니면, 색상(色)도 화합한 것이 아닌 것이다.
색(色)과 공(空)은 모두 인연으로 드러난 것이며, 본래 여래장 중의 진공묘유(眞空妙有)이다.
소승은 색(色)을 쪼개어 허공을 만든다고 알고 있으니, 색성 자체가 본래 공(空)이라는 것을 모르는 까닭이며,
또 공을 합하여 색을 이룬다고 알고 있으나, 공의 자성은 본래 색임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중생심에는 염정(染淨)이 있고, 양(量)에는 대소(大小)가 있으며, 업에는 선악(善惡)이 있으므로 각자가 그 마음에 따르고, 그 심량에 감응하고, 그 업에 순응하여서 현행(現行)을 일으킴으로 인하여 여래장(如來藏)이 식장(識藏)으로,
법성신(法性身)이 근신(根身)으로, 법성토(法性土)가 기세계(器世界)로 전위된다.
청정한 본연(本然)이 법계에 두루 임함을 모르고 인연이라 하고, 마음을 따르고 심량을 따라 업에 순응하여 발현(發現)하는 이치를 모르고 자연이라 집착한다.
모두가 수연불변(隨緣不變) 불변수연(不變隨緣)의 진리를 몰라서 식심을 분별하여 일으킨 전도착란(顚倒錯亂)한 것이다.
汝元不知如來藏中,性色眞空性空眞色,淸淨本然周遍法界;隨衆生心應所知量,循業發現。世閒無知,惑爲因緣及自然性,皆是識心分別計度,但有言說,都無實義。
너는 본래 알지를 못하는구나! 여래장(如來藏) 가운데 성품이 물질(色)인 성색진공(性色眞空)과
성품이 공인 성공진색(性空眞色)이 본래 청정하고 본래 자연 그대로인 본인(本然)이라서 법계에 퍼져 있으면서 중생들의 마음을 따라 각자의 아는 바의 소지량(所知量)에 맞추어 업(業)을 따라 나타나는 것이거늘,
세간 사람들은 무지하여 인연 또는 자연의 성품이라고 의혹하고 있으니,
이는 모두 이 인식하는 마음의 식심(識心)이 분별하고 헤아리는 것이므로
다만 언설(言說)만 있을 뿐, 전혀 진실하지 않느니라.
ㅡ여래장(如來藏)의 성품은 만법이 한결같고 여여(如如)하지만 업보를 따라 나타남이 비슷하면서도 달라서 결국에는 칠대(七大)의 이름이 생긴 것으로, 다만 체(體)와 용(用)을 다르게 일컬은 것이다.
진공(眞空)이란 간결같고 여여한 일여(一如)의 체이므로 칠대에서 진색(眞色)이라 하고,
칠대는 곧 업인(業因)을 따르는 작용(用)이므로 성품이 공(空)이며, 둘이 아닌 까닭에 서로 의지하여 상대적으로 거론한 것이며, 묘성(妙性)을 여의지 않으므로 각각 성품이라 하였다.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은 것을 청정(淸淨)이라 하고,
화합한 것도 아니고 화합하지 않은 것도 아님을 본연(本然)이라 하며,
있지 않은 곳이 없는 것을 두루한 주변(周邊)이라 한다.
칠대와 만법을 능히 두루 이룰 수 있는 것은 다만 마음이 호응하는 정도에 따라 업(業)대로 나타날 뿐이다.
제일의제(第一義諦)는 마음에 비교하면 어긋나고, 생각을 움직여도 어긋나는 것이니, 오직 망령된 생각을 일으키지 않으며, 식심(識心)을 써서 분별하거나 생각하지 않아야만 서로 호응할 것이다.
성색진공(性色眞空)은 지대(地大)의 성은 진공적멸(眞空寂滅)하여서 얻을 수 없음이고
성공진색(性空眞色)은 진공적멸한 성질은 바로 지대의 성질이라는 뜻이며,
청정본연(淸淨本然)이란 지대(地大)의 성(性)은 본래 스스로 청정하여서 범부와 2승의 무명혹업(無明惑業)을 멀리 여의었다는 말이다.
즉, 지대(地大)는 본래 있지 않는데 중생의 망심(妄心)을 따라 나타나며, 중생심은 아는 만큼 따르고, 또한 그 업력에 의지하여 나타나는 것이므로, 크기도 하고 작기도 하며, 깨끗하기도 하고 더럽기도 하다.
그러므로 지대(地大)는 본래 있지 않는데 중생의 망심(妄心)을 따라 나타나는 것이다.
중생심은 아는 만큼 따르고, 또한 그 업력에 의지하여 나타나므로, 크기도 하고 작기도 하며, 깨끗하기도 하고 더럽기도 하다.
▷화대(火大)
阿難!火性無我,寄於諸緣。汝觀城中未食之家欲炊爨時,手執陽燧日前求火。
아난아, 불의 성질은 본래 실체가 없는 성무아(性無我)라서 여러 인연에 의지해야만 하는 것이니라.
너는 성(城) 안에서 아직 식전(食前)인 집들을 살펴 보아라. 밥을 지으려고 불을 지필 때, 손에 불 거울인 양수(陽燧, 화경火鏡)를 들고 햇빛에서 쪼여서 불을 피우느니라.
ㅡ불(火) 그 자체는 실체가 없고 물질에 붙어서 형상을 이루는 것이므로 '실체가 없다'고 한 것이다.
양수(陽燧, 화경火鏡), 구리로 만든, 거울과 같은 것으로 가운데가 오목하게 생겼다.
阿難!名和合者,如我與汝一千二百五十比丘今爲一衆,衆雖爲一,詰其根本各各有身,皆有所生氏族名字,如舍利弗婆羅門種、優盧頻螺迦葉波種,乃至阿難瞿曇種姓。
아난아, 화합이라고 이름한다면, 이는 마치 내가 너희 1,250비구들과 더불어 지금 화합하여 한 대중이 된 것과 마찬가지이니, 대중으로는 비록 하나이지만 그 근본을 따져보면, 각자의 몸이 다르며, 다들 태어난 씨족과 그 이름이 따로 있으니, 사리불(舍利弗)은 바라문(婆羅門)의 종족이고, 우루빈라(優樓頻羅)는 가섭파(迦葉波)의 종족이며, 그리고 아난은 구담(瞿曇, 지최승地最勝)의 종성인 이다.
ㅡ*바라문(婆羅門), 브라만(브라흐민) 또는 한문으로 바라문(婆羅門)이란 인도의 신분제인 카스트 제도의 계급 가운데 최상위로 현자와 성직자에 해당되는 계급이다.
*우루빈라(優樓頻羅), ‘우루벨라(Uruvela)’는 고대 인도 마가다국의 서울 왕사성(王舍城) 부근에 있는 마을의 이름으로, 오비구(五比丘)에게 초전법륜(初傳法輪)을 굴리신 사슴동산(녹야원)에서 우루벨라까지는 약 2백㎞가 되나, 부처님께서 홀로 이 길을 걸어 가시다가 30여 명의 젊은이들을 교화하시고, 마가다국(摩竭陀國)의 우루벨라촌으로 가서 당시 왕사성에서 가장 이름 있는 불(火)을 섬기던 배화교도였던 가섭(Kassapa) 삼형제(10대 제자 중 한 사람인 마하가섭은 아니다)를 교화해 제자로 삼아서, 새로이 부처님 제자가 된 가섭 삼형제를 우루벨라 가섭(Uruvelā-kassapa)이라 한다.
이들 삼형제는 나이가 많은 순서로 우루빈라가섭(優樓頻羅迦葉), 나제가섭(那提迦葉), 가야가섭(伽耶迦葉)이라 하며, 그들을 따르던 천여 명도 역시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
阿難!若此火性因和合有,彼手執鏡於日求火,此火爲從鏡中而出?爲從艾出?爲於日來?阿難!若日來者,自能燒汝手中之艾,來處林木皆應受焚。若鏡中出,自能於鏡出然于艾,鏡何不鎔。紆汝手執尚無熱相,云何融泮。
若生於艾,何藉日鏡、光明相接,然後火生。
아난아, 만약 이 불의 성질인 화성(火性)이 화합으로 인하여 있는 것이라면, 저 사람이 손에 거울을 잡고서 해에서 불을 구할 때, 그 불은 거울 속에서 나오는 것인가? 쑥에서 나오는 것인가? 해에서 나오는 것인가?
아난아 만약 해에서 나왔다면, 자연히 네 손에 있는 쑥을 태울 때에 거쳐 온 곳의 숲과 나무가 다 탔어야 할 것이며,
만약 거울에서 나온 것이라면, 거울에서 나와 쑥을 태울 수 있는 것인데 거울은 어찌하여 녹지 않으며,
거울을 잡은 네 손도 오히려 뜨거운 기운이 없거늘, 어떻게 거울이 녹겠는가?
만약 쑥에서 나온 것이라면, 어찌하여 해와 거울의 빛이 서로 닿은 이후에야 불이 생기는 것인가?
汝又諦觀鏡因手執、日從天來、艾本地生,火從何方遊歷於此?日鏡相遠非和非合,不應火光無從自有。
너는 또 자세히 살펴보아라! 거울은 손에 들려 있고, 햇빛은 하늘에서 오며,
쑥은 본래 땅에서 난 것이나, 불은 어디로 부터 여기에 온 것인가!
해와 거울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라서 어울리지도 않고 합해지는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불꽃이 나는 데도 없이 저절로 생긴 것도 아니니라.
ㅡ해, 거울 쑥의 세 가지가 서로 멀리 떨어진 것이며, 불이 생기는 장소가 없으니, 무릇 추측하여 헤아리는 것이 다 망령된 것이다.
汝猶不知如來藏中,性火眞空性空眞火,淸淨本然周遍法界;隨衆生心應所知量。
너는 그래도 알지 못하는구나! 여래장(如來藏) 가운데 성품(性)이 불(火)인 진공(眞空)과 성품이 공인 진실한 불의 진화(眞火)가 본래 그대로 청정하여 법계에 두루 원만한 가운데, 중생들의 마음을 따라, 각자의 아는 바의 정도에 맞추어 호응하는 것이니라.
ㅡ중생심의 아는 만큼 따르고, 그 업력에 의해 화대(火大)가 나타나서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며, 따뜻하기도 하고 맹렬하기도 한 것이다.
阿難當知!世人一處執鏡一處火生,遍法界執滿世閒起,起遍世閒寧有方所,循業發現。世閒無知,惑爲因緣及自然性,皆是識心分別計度,但有言說,都無實義。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세상 사람들이 한 곳에서 거울을 들고 불을 피운다면, 한 곳에 불이 생기고, 법계에서 두루 거울을 들고 불을 피우면 온 세상 가득 불이 일어나서 세상을 가득 채울 것이거늘, 어찌 따로 장소가 있겠는가?
업(業)을 따라 나타나는 것이거늘, 세상 사람들은 무지(無知)하여 인연과 또는 자연의 본질(성품)이라고 의혹하고 있으니, 이것은 다 인식하는 마음의 식심(識心)으로 분별하고 헤아리는 것이므로, 다만 언설만 있을 뿐, 전혀 진실한 뜻이 없느니라.
'수능엄경(首楞嚴經)'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능엄경(首楞嚴經) 3권 11 (0) | 2025.05.05 |
---|---|
수능엄경(首楞嚴經) 3권 10 (0) | 2025.05.04 |
수능엄경(首楞嚴經) 3권 8 (0) | 2025.05.02 |
수능엄경(首楞嚴經) 3권 7 (0) | 2025.05.01 |
수능엄경(首楞嚴經) 3권 6 (0) | 2025.04.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