成唯識論 卷第一
護法等菩薩造 호법(護法) 등 지음
三藏法師 玄奘 奉 詔譯 현장(玄奘) 한역
성유식론(成唯識論) 제 7권 9
若唯有識,都無外緣,由何而生種種分別?頌曰:
▷묻겠습니다; 만약 오직 식(識)뿐이고 외부대상인 외연(外緣)이 전혀 없다고 말한다면,
무엇에 의거해서 갖가지 분별을 일으키는 것입니까?
▷답한다; '삼십송' 제18의 게송에서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으니,
→이하는 식이 전변된 식소변(識所變)에 의거해서 가아가법(假我假法)을 건립하는 두 가지의 대단(大段) 중에서 두 번째이다. 여러 외인들의 비판을 해석하여서, '삼십송' 제1게송의 “자아와 법을 가설함으로 인하여 (자아ㆍ법의) 갖가지 모습들이 생겨난다”는 문구를 자세하게 해설하는 것으로, 먼저 심법(心法)이 일어나는 연유를 밝힌다.
由一切種識 如是如是變, 以展轉力故 彼彼分別生。
일체종자식이 이렇게 저렇게 전변함에 의거해서 전전하는 세력 때문에
이러저러한 (8식의 심왕과 그것에 상응하는 심소의) 분별(허망분별로써 자성을 삼는 유루법)이 생겨난다네.
→심법(心法)이 생기하는 연유를 밝힌 것이다.
심왕ㆍ심소는 반드시 그 소연(所緣)에 의탁해서 생기하는 것인데 과연 내심(內心)만 있고 외경(外境)이 없다면 심왕ㆍ심소는 무엇을 말미암아서 생기할 수 있는가라는 힐난(詰難)에 대해서 심법이 생기하는 연유를 설명한 것이다.
허망분별의 생기(生起)에는 내심의 종자ㆍ현행을 인(因)으로 삼고 연(緣)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에, 심외(心外)에 실경(實境)이 없을지라도 그 생기(生起)에는 지장이 없는 것이다.
論曰:一切種識謂本識中能生自果功能差別,此生等流、異熟、士用、增上果,故名一切種。除離繫者,非種生故,彼雖可證,而非種果,要現起道斷結得故,有展轉義非此所說,此說能生分別種故。
▷논하여 말한다; ‘일체종자식’이란 근본식 중에서 능히 스스로의 결과를 일으키는 특수한 정신적인 힘인 공능차별(功能差別)을 말하는 것이며,
이것이 등류과(等流果)ㆍ이숙과(異熟果)ㆍ사용과(士用果)ㆍ증상과(增上果)를 일으키기 때문에 일체종자라고 이름하며,
계박을 떠난 증과인 이계과(離繼果)를 제외하는 것은 종자로부터 생겨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니,
그것을 증득할 수는 있지만 종자의 결과는 아니며, 반드시 무루의 뛰어난 도인 무루승도(無漏勝道)로써 결(結, 번뇌)를 단멸하여 증득하기 때문이다.
전전하는 뜻이 있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것이 아닌 것이니, 여기에서는 능히 분별을 일으키는 종자를 말하기 때문이다.
→종자로부터 지혜가 생겨나게 하고, 지혜가 미혹을 끊어 열반의 이계과(離繼果)를 증득한다.
이와 같이 종자로부터 직접 열반을 얻는 것이 아니라, 중간에 지혜를 격(隔)하여 전전하여 생겨나게 하는 것이므로 게송에서의 일체종자식에 의거한다는 말과는 상관이 없음을 밝힌 것이다.
5과(五果)는 이숙과(異熟果) · 등류과(等流果) · 이계과(離繫果) · 사용과(士用果) · 증상과(增上果)이며,
①등류과(等流果)는 첫째 종자생종자(種子生種子), 즉 종자가 전후 찰나에 자류상생(自類相生)하는 것이다.
둘째 종자생현행(種子生現行)으로 그 현행은 종자의 동류(同類)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종자가 동류인(同類因)이 되어 종자와 현행의 등류과(等流果)를 일으킨다.
②이숙과(異熟果), 선ㆍ악의 업종자가 무기(無記)의 현행의 과보를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③사용과(士用果), 작의(作意) 종자가 이른바 종자경각(種子警覺)으로서 현행법을 일으키는 경우 사용과(士用果)를 얻는다. 사부(士夫)의 작용이라는 뜻으로서, 사람의 노력에 의해 어떤 사업을 성공하는 것과 같이 상응인(相應因)ㆍ구유인(俱有因)의 작용에 의해 얻은 결과를 사용과라고 한다.
④증상과(增上果), 어떤 유위법이 생겨날 때, 자기 이외의 법이 직접적으로 힘을 주거나 또는 방해하지 않음으로써 도와주는 관계로 생겨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곧 다른 것이 능작인(能作因)이 되어 그 증상력(增上力)에 의해 생긴 결과이다. 예를 들면 제7식의 종자를 구유의(俱有依)로 하여 제8식의 현행을 생겨나게 할 때 곧 증상과를 얻는 것이다.
⑤계박을 떠난 증과인 이계과(離繼果)는 무루성도(無漏聖道)의 지혜의 힘으로써 번뇌의 계박을 떠나고 끊음으로써 나타나는 열반의 진리를 가리켜서 말하기 때문에 종자생(種子生)이 아니므로 제외한다.
此識爲體故立識名,種離本識無別性故。種、識二言簡非種識,有識非種,種非識故。又種識言顯識中種,非持種識,後當說故。
이 종자는 식으로써 자체로 삼기 때문에 식(識)이라는 명칭을 건립하는 것이니, 종자는 근본식을 떠나서 별도의 체성이 없기 때문이다.
종자와 식의 두 단어로 된 종식(種識)이라는 용어는 종자식이 아닌 것을 가려내는 것으로, 식으로서 종자가 아닌, 현행식(現行識, 이것은 내부의 종자가 아니기 때문)과 종자로서 식이 아닌, 외부의 식인 외종(外種, 이것은 식의 자체분이 아니기 때문) 등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종자식이라는 말은 근본식 중의 종자를 나타내는 것으로, 종자를 지니는 제8식이 아니니, 마땅히 나중에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此識中種餘緣助故,卽便如是如是轉變,謂從生位轉至熟時。顯變種多重言如是,謂一切種攝三熏習、共、不共等識種盡故。
이 식 중의 종자가 4연(四緣) 중에서 인연(因緣)을 제외한 등무간연(等無間緣) · 소연연(所緣緣) · 증상연(增上緣)의 도움받기 때문에 문득 “이렇게 저렇게 전변한다.”고 하는 것이며,
→심법을 일으키는 것은 등무간연(等無間緣) · 소연연(所緣緣) · 증상연(增上緣)의 세 가지 연이고, 색법을 생겨나게 하는 것은 오직 증상연(增上緣)뿐이다.
생겨나는 지위로부터 전전하여 성숙한 때에 이르기까지, 즉 미숙(未熟)의 견인인(牽引因)의 지위로부터 이숙(已熟)의 생기인(生起因)의 지위에 이르기까지 전변하는 종자가 많음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거듭해서 ‘이러한 여시(如是)’라고 말하는 것이며,
일체 종자에 세 가지의 삼훈습(三熏習), 공상과 불공상(不共相) 등의 식의 종자를 모두 포함하기 때문이다.
삼훈습(三熏習);
①명언훈습(名言熏習)은 언어를 사용한 개념적인 사고(思考)에 의해 이식되는 것이고,
②아집훈습(我執熏習)은 자아가 실재한다고 생각하는 견해의 아견(我見)에 의해 훈습되는 것이며,
③유지훈습(有支熏習)은 3유(有, 삼계三界)에서 생사윤회하게 만드는 훈습을 말한다.
展轉力者,謂八現識及彼相應相、見分等,彼皆互有相助力故。卽現。識等摠名分別,虛妄分別爲自性故,分別類多,故言彼彼。
‘전전하는 세력의 전전력(展轉力)’이란 여덟 가지 현행식인 팔현식(八現識)과 그것의 상응법(심소) 및 상분과 견분 등을 말하는 것으로, 그것이 모두 서로 돕는 힘이 있기 때문이며,
현행식 등을 총체적으로 ‘분별’이라고 이름하나니, 허망분별로써 자성으로 삼기 때문이며,
자체분ㆍ견분ㆍ상분 등으로 분별의 종류가 많기 때문에 ‘이러저러한, 피피(彼彼)’라고 하는 것이다.
현행식(現行識, pravṛtti-vijñāna)은 현재 시점에서 나타나 활동하고 있는 마음, 즉 식(識)을 말한다. 현행(現行)이란 아뢰야식에 함장된 법의 종자가 인연이 갖추어짐에 따라 현재의 법으로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심법(心法: 마음, 식, 특히 7식)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인연화합에 의해 아뢰야식이 전변하여 현재 시점의 7식(말나식과 6식)으로 나타난다고 보았고 이렇게 나타난 7식을 현행식이라고 하였다.
즉, 시각 · 청각기관 · 후각기관 · 미각기관 · 촉각기관 · 사고력을 매개로 하는 6가지 인식기능인 6식(六識)과 이들 6식에 수반되는 자아의식인 말나식(末那識)은 잠재의식인 아뢰야식(阿賴耶識)에 대하여 '현재화된 식, 현행하는 식 또는 현세적인 식'이라는 의미에서 현행식이라 불린다. 또한 이들 7식(말나식과 6식)은 '아뢰야식이 전변하여 현재 나타나 있는 식'이라는 의미에서 전식(轉識)이라고도 불린다.-위키
此頌意說雖無外緣,由本識中有一切種轉變差別,及以現行八種識等展轉力故,彼彼分別而亦得生,何假外緣方起分別?諸淨法起應知亦然,淨種現行爲緣生故。
(게송의 총체적인 결론으로), 이 게송의 뜻은 다음과 같으니,
외부대상인 외연(外緣)은 실재하지 않지만, 근본식 중의 모든 일체 종자가 전변하는 차별에 의거하는 것이며,
여덟 가지 현행식인 팔현식(八現識) 등이 전전하는 세력으로써 그 분별이 역시 생겨날 수 있는 것이니, 어째서 외부대상인 외연(外緣)을 의지해서 비로소 분별을 일으킨다고 말하는 것인가?
모든 청정법이 일어나는 것도 역시 그러하다고 알아야 하나니, 청정한 종자와 현행을 연(緣)으로 하여 일어나기 때문이다.
→예(例)를 들어서 청정법을 일으키는 것을 밝혔다.
所說種、現緣生分別,云何應知此緣生相?
▷묻습니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종자와 현행을 연(緣)으로 하여 분별을 일으킨다면,
이것의 연(緣)과 생겨나는 생상(生相)을 어떻게 알아야 합니까?
→이하 게송의 뜻을 자세하게 해설하는 것으로, 먼저 사연(四緣)을 설명한, 사연의(四緣義)이다.
緣且有四:一因緣。謂有爲法親辦自果。此體有二:一種子,二現行。種子者,謂本識中善、染、無記諸界、地等功能差別,能引次後自類功能,及起同時自類現果,此唯望彼是因緣性。現行者,謂七轉識及彼相應所變相、見、性、界、地等,除佛果善、極劣無記,餘熏本識,生自類種,此唯望彼是因緣性。
▷답한다; 연(緣)에 다시 4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인연(因緣)으로, 유위법이 직접 스스로의 결과를 판별하는 것을 말하며,
이것의 체(體)에 두 가지가 있어서, 하나는 종자이고 다른 하나는 현행이다.
종자는 근본식 중의 선ㆍ잡염ㆍ무기(無記) 및 여러 계(界)와 지(地, 지위) 등의 특수한 정신적인 세력인 공능차별(功能差別)을 말하는 것으로, 능히 다음의 자기 부류의 세력을 이끌며, 동시에 자기 부류의 현행과를 일으키며,
→종자생종자의 이시인과(異時因果)와 종자생현행(種子生現行)의 동시인과(同時因果)의 두 가지가 있다.
이러한 종자는 오직 자기 부류의 종자 및 자기의 현행에 배대해서만 인연(因緣)의 성품이 되며,
현행훈종자(現行熏種子)의 경우인 현행은 능훈의 현행으로써, 현행은 7전식과 그것의 상응법 및 전변된 견분과 상분, 세 가지 성품, 계(界)와 지(地, 지위) 등을 말하며,
불과(佛果)의 선(善)과 매우 미약한 무기(無記)를 제외하며, 그 나머지는 근본식에 훈습하여 자기 부류의 종자를 일으키나니, 이러한 능훈(能熏)의 현행은 오직 소훈(所熏)의 종자에 배대해서만 인연의 성품이 되는 것이다.
第八心品無所熏故,非簡所依獨能熏故,極微圓故,不熏成種。現行同類展轉相望皆非因緣,自種生故。
제8심품은 소훈처인 소훈(所熏)이 없기 때문이고, 의지처인 심왕을 가려내어 심소가 홀로 능훈(能熏)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매우 미세하고,
→인위(因位) 중의 제8식과 6식 중의 이숙의 심왕은 매우 미세하여 능훈이 아니다.
원만하기 때문에
→불과(佛果)의 제8식은 매우 원만하여 종자를 훈습하지 않는다.
종자를 훈습하지 않으며,
→만약 제8식이 스스로 소훈처(所熏處)로서, 다시 자신의 소훈처가 없으므로 능훈(能熏)이 아니라고 말한다면, 제8식과 함께하는 심소(心所)로써 능훈으로 삼아야 한다는 의심에 대한 답변이다.
현행의 같은 부류가 전전하여 서로 배대하여도 모두 인연이 아니니, 스스로의 종자로부터 생겨나기 때문이다.
→무슨 까닭으로 현행의 같은 부류가 이전 찰나의 것을 이후 찰나의 것에 배대하여 소승의 동류인(同類因)과 같이 인연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一切異類展轉相望亦非因緣,不親生故。有說異類、同類現、行展轉相望爲因緣者,應知假說或隨轉門。有唯說種是因緣性,彼依顯勝非盡理說,聖說轉識與阿賴耶展轉相望爲因緣故。
모든 다른 부류를 전전하여 서로 배대하여도 역시 인연이 아니니, 직접 생겨나지 않기 때문이다.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4권에서 말하기를 “다른 부류ㆍ같은 부류의 현행을 전전해서 서로 배대하여 인연으로 삼는다”라고 한 것은
가설이거나
→실제로는 증상연(增上緣)이다.
혹은 근거에 따른 방편문인 수전문(隨轉門)이라고 알아야 한다.
→근거에 따른 방편문인 수전이문(隨轉理門)이란, 설일체유부에서 구유인(俱有因) 등 다섯 가지 인(因)을 말하여 인연으로 삼은 것에 수순해서 말하기 때문이다.
'유가사지론' 제3권에서 오직 종자만을 인연의 성품인 인연성(因緣性)이라고 말한 것은 두드러지게 뛰어난 것을 말한 것으로, 논리적으로 말한 것이 아니며,
'유가사지론' 제51권에서 전식과 아뢰야식은 전전하여 서로 배대해서 인연이 된다고 말한 때문이다.
二等無閒緣。謂八現識及彼心所前聚於後,自類無閒,等而開導,令彼定生。
多同類種俱時轉故,如不相應非此緣攝,由斯八識非互爲緣。
둘째는 등무간연(等無間緣)이니, 여덟 가지 현행식인 팔현식(八現識)과 그것의 심소법이 이전 찰나에 멸하나, 그 후의 바로 다음 찰나에 자기 부류에 평등하게 열어 이끌어서 그것이 반드시 생겨나게 함을 말하며,
같은 부류의 많은 종자는 동시에 전전하기 때문에 불상응행법과 같은 것은 이 연(緣)에 포함되지 않으며, 그러므로 8식도 서로 연(緣)으로 삼지 않는다.
등무간연(等無間緣), 심왕과 심소법이 전념(前念)에서 후념(後念)으로 전전할 때, 이전 찰나에 멸한 마음이 길을 열어 뒤에 생기는 마음을 끌어 일으키는 원인이 되는 것을 말한다. 이 때에 전념과 후념의 심왕과 심소의 수(數)는 같지 않을지라도 그 주체는 앞뒤가 평등하여 하나이므로 등(等)이라고 하고,
후념은 전념과의 사이에 설사 얼마의 시간이 경과한다 할지라도 다른 마음이 그 사이에 간격을 두지 않고 곧 생겨나므로 무간(無間)이라고 한다.
등무간연은 심왕ㆍ심소법에만 국한되고 다른 법에는 통하지 않으며, 또한 아라한이 열반에 들려는 최후심(最後心)의 심왕ㆍ심소를 제외하고는 모든 마음의 작용은 반드시 이러한 관계를 갖는다.
心所與心雖恒俱轉,而相應故,和合似一,不可施設離別殊異,故得互作等無閒緣。
入無餘心最極微劣,無開導用,又無當起等無閒法,故非此緣。
심소와 심왕은 항상 함께 전전하지만 상응하기 때문에 화합해서 하나인 것과 비슷하며, 분리해서 다른 것으로 시설할 수 없기 때문에 서로 등무간연이 될 수 있으며,
무여의열반에 들어가려는 마음은 매우 미세하고 약하므로 열고 이끄는 개도(開導)의 작용이 없으며, 또한 장차 등무간의 법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 없으므로 이 연(緣)이 아니다.
云何知然?論有誠說,若此識等無閒,彼識等決定生,卽說此是彼等無閒緣故。卽依此義應作是說,阿陁那識三界、九地皆容互作等無閒,緣下上死生相開導故,有漏無閒有無漏生,無漏定無生有漏者,鏡智起已必無斷故,善與無記相望亦然。
▷묻습니다; 어떻게 그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까?
▷답한다; '유가사지론' 제3권에 진실한 말씀이 있으니, 만약 이 식 등의 다음 찰나에 그 식 등이 결정적으로 생겨난다면, 곧 이것은 그것의 등무간연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곧 이 뜻에 의거해서 마땅히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할 것이니, 아타나식(阿陁那識, 제8식)은 3계ㆍ9지에서 모두 서로 등무간연이 되는 것으로 인전 되며, 하지(下地)와 상지(上地)에서 죽고 태어날 때에 서로 열어서 이끌기 때문이다.
제8식의 유루의 다음 찰나에 무루가 생겨나는 일은 있지만, 무루가 반드시 유루를 일으키지는 않으니, 대원경지는 일어나고 나서 반드시 단절되는 일이 없기 때문이며, 선(善)과 무기를 서로 배대하는 것 역시도 그러하다.
此何界後引生無漏?或從色界,或欲界後。謂諸異生求佛果者,定色界後引生無漏,彼必生在淨居天上大自在宮,得菩提故。二乘迴趣大菩提者,定欲界後引生無漏,迴趣留身唯欲界故,彼雖必往大自在宮方得成佛,而本願力所留生身是欲界故。
▷묻습니다; 이것은 어떤 세계 이후에 제8식의 무루를 이끌어 내는 것입니까?
→제8식에 있어서 유루(有漏)가 무루를 생겨나게 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떤 세계의 유루 이후에 무루를 생겨나게 하는 것인가라고 외인(外人)이 묻는 것이다.
▷답한다; 색계로부터이거나, 혹은 욕계 이후이다.
모든 범부로서 부처님의 증과를 구하는 자, 즉 돈오(頓悟)의 보살은 반드시 색계 이후에 무루를 이끌어 내나니, 그는 반드시 정거천(淨居天)의 대자재천궁(大自在天宮)에 태어나 살면서 보리를 증득하기 때문이다.
2승(乘)으로서 대보리에 나아가는 자, 즉 점오(漸悟)의 보살은 반드시 욕계 이후에 무루를 이끌어 내나니, 대보리에 나아가서 몸을 머무는 것은 오직 욕계뿐이기 때문이니, 그는 반드시 대자재천궁에 머물면서 비로소 성불할 수 있지만, 본래의 원력에 의해 머무는 생신(生身)은 욕계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거천(淨居天), 색계 제4선천의 9천(天) 중 위의 5천, 즉 무번천(無煩天)ㆍ무열천(無熱天)ㆍ선견천(善見天)ㆍ선현천(善現天)ㆍ색구경천(色究竟天)을 말한다. 이곳은 성자가 태어나는 곳으로서 아래 4천의 외도가 태어나는 곳과는 크게 다르며, 5정거천(五淨居天)이라고도 한다.
대자재천궁(大自在天宮) 색계의 정상에 있는 궁전으로서 외도들이 제사 드리는 대자재천이 여기에 머문다. 또한 제10지 보살이 장차 성불하려고 할 때, 이곳에서 정토(淨土)를 변현하여 시방(十方)의 여러 부처님으로부터 성불의 관정(灌頂)을 받는다고 한다.
有義色界亦有聲聞迴趣大乘願留身者,旣與教理俱不相違,是故聲聞第八無漏色界心後亦得現前。然五淨居無迴趣者,經不說彼發大心故。
호법의 정의로써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으니, 색계에서도 역시 성문으로서 대승에 나아가서 본래 원력에 의해 몸을 머무는 자가 있다는 것은, 성스러운 가르침과 바른 논리에 모두 위배되지 않는 것으로, 따라서 성문의 제8의 무루식은 색계의 마음 이후에도 역시 현전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5정거천에는 대보리에 전향해서 나아가는 자가 없으니, '대반야경' 제129에서 거기에서는 대보리심을 일으킨다고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第七轉識三界、九地亦容互作等無閒緣,隨第八識生處繫故。有漏、無漏容互相生,十地位中得相引故。善與無記相望亦然,於無記中染與不染亦相開導,生空智果前後位中得相引故。此欲、色界有漏得與無漏相生,非無色界,地上菩薩不生彼故。
제7전식도 3계ㆍ9지에서 역시 서로 등무간연이 되는 것이 인정되나니, 제8식이 태어나는 곳을 따라 계박되기 때문이며,
유루ㆍ무루도 서로 생겨나게 하는 것이 인정되나니, 10지의 단계 중에서 서로 이끌 수 있기 때문이며,
선과 무기를 서로 배대하는 것 역시도 그러하며,
유부무기(有覆無記) 중에서 잡염의 아집(我執)의 제7식 또는 유부무기(有覆無記)와 잡염되지 않은 법집(法執) 또는 이숙식(異熟識)의 무부무기(無覆無記)도 역시 서로를 열고 이끄나니,
아공의 이치를 체득한 바른 지혜와 증과(果), 즉 후득지(後得智)와 그것에 이끌려진 멸진정 이전의 찰나와 이후 찰나의 지위 중에서 서로 이끌 수 있기 때문이나, 이것은 욕계와 색계의 유루만이 무루와 서로 생겨나게 할 수 있으며, 무색계는 아닌 것이니, 10지 가운데에 있는 보살은 그곳에 태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第六轉識三界、九地、有漏、無漏、善、不善等各容互作等無閒緣,潤生位等更相引故。初起無漏
唯色界後,決擇分善唯色界故。眼、耳、身識二界二地,鼻、舌兩識一界一地,自類互作等無閒緣
,善等相望應知亦爾。
제6전식은 3계ㆍ9지에서 유루ㆍ무루ㆍ선ㆍ불선 등이 각각 서로 등무간연으로 되는 것이 인정되나니, 태어남을 촉진하는 지위 등에서 다시 서로 이끌기 때문이며,
처음에 무루의 묘관찰지(妙觀察智)를 일으키는 것은 오직 색계 이후이며,
결택분의 선(善)인 세제일법(世第一法)은 오직 색계뿐이기 때문이며,
안식ㆍ이식ㆍ신식(身識)은 두 가지 세계인 이계(二界)와 욕계와 색계 초선천(初禪天)안 이지(二地)에서,
비식과 설식은 일계(一界)와 욕계의 일지(一地)에서 자기 부류가 서로 등무간연이 되는 것이니,
선(善) 등을 서로 배대하여서도 역시 그러하다고 마땅히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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