成唯識論 卷第一 

護法等菩薩造 호법(護法 지음

三藏法師 玄奘  詔譯 현장(玄奘한역

성유식론(成唯識論 7 8

 

若唯內識似外境起,寧見世閒情非情物處、時、身用定不定轉?

▷묻습니다; 만약 오직 내부의 식인 내식(內識)만이 외부대상에 사현해서 일어나는 것이라면, 어떻게 세간의 유정과 무생물을 보는 데 장소, 시간, 유정의 몸(身), 외계대상의 작용의 일정함과 일정하지 않음으로 전전한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만약 유식무경(唯識無境)이라면 세간의 일과 어긋난다고 비판하는, 제이세가괴종난(第二世事乖宗難).

 

如夢境等應釋此疑。

▷답한다;  꿈속의 대상 등과 같다고, 마땅히 이러한 의문을 해설해야 할 것이다.

 

何緣世尊說十二處?

▷묻습니다; 무엇에 연(緣)하여 세존께서 12처로 말씀하신 것입니까?

성스러운 가르침에 위배된다고 비판적으로 질문하는, 제삼성교상위난(第三聖敎相違難)으로, 만약 마음 밖에 색경(色境) 등의 참다운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세존께서 어떻게 12() 있다고 말씀하셨는가라고 비판하여 묻는 것이다.

 

依識所變,非別實有。爲入我空說六二法,如遮斷見說續有情。爲入法空復說唯識,令知外法亦非有故。

▷답한다; 식이 전변한 것에 의거한 것으로, 별도로 참으로 존재하는 실유(實有)는 아니다.

아공(我空)의 이치에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 62법을 말씀하셨으니, 단견(斷見)을 부정하는 것으로서 상속하는 유정을 말씀하신 것과 같으며,

법공(法空)의 이치에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는 오직 식뿐인, 유식(唯識)이라고 말씀하셨으니, 외부대상 역시도 실유가 아님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공(二空);

아공(我空)은 인무아(人無我)라고도 하며, 유정의 심신(心身)에 상일주재(常一主宰)하는 인격적 실체로서의 아(我)가 존재하지 않는 이치 또는 그것을 깨쳐서 아집(我執)이 소멸된 경지.

법공(法空)은 법무아(法無我)라고도 하며, 외계의 사물은 자기의 마음을 떠나서 독립적으로 실재하지 않는 이치, 또는 그것을 깨쳐서 법집(法執)이 소멸된 경지.

 

此唯識性豈不亦空?

▷묻습니다; 이 유식성(唯識性)도 어찌 공이 아닌 것입니까?

→여기서 유식성(唯識性) 의타기법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으로, 원성실성의 진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

법집(法執) 없애서 제법무아(諸法無我) 도리에 깨달아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 유식의 가르침을 말하는 것이라면,  유식성 자체도 역시 궁극적으로 실재하지 않는 필경공무(畢竟空無)가 아니겠는가라고 비판하여 묻는, 제사유식성공난(第四唯識成空難).

 

3성(三性);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 "두루 계탁(計度)하여 집착하는 성질"이며, "fully conceptualized (완전히 개념화되다)"라고 직역되며 "imaginary nature (상상성 · 가상성)"라고 번역되며, 존재의 허망한 상태를 말한다.
의타기성(依他起性), "다른 것에 의지하여 일어나는 성질"이며, "other dependent (다른 것에 의존하는)"라고 직역되며 "dependent nature (의존성)"라고 번역되며, 연기(緣起)의 성질을 말한다.
원성실성(圓成實性), "원만히 성취한 실재하는 성질"이며, "fully accomplished (완전히 성취하다)"라고 직역되며 "absolute nature (절대성)"라고 번역되며, 존재의 진실한 상태를 말한다. 

 

不爾。

답한다; 그렇지 않다.

 

如何?非所執故,謂依識變妄執實法,理不可得,說爲法空。非無離言正智所證唯識性故,說爲法空。此識若無便無俗諦,俗諦無故眞諦亦無,眞、俗相依而建立故。撥無二諦是惡取空,諸佛說爲不可治者,應知諸法有空、不空,由此慈尊說前二頌。

▷묻습니다; 어째서 그렇지 않은 것입니까?

답한다; 집착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식의 전변에 의거해서 실법에 망령되게 집착된 것을 이치적으로 얻을 수 없는 것을 법공(法空)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언어를 떠나서 증득된 정지(正智)의 유식성이 없기 때문에 법공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식이 만약 존재하지 않는다면, 문득 세속제가 없게 될 것이며, 세속제가 없게 되면 진제도 역시 없어야 할 것이니, 진제와 속제는 서로 의지해서 건립되기 때문이다.

진제와 속제의 두 진리를 부정하는 것은 악취공(惡取空)이며, 모든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치료할 수 없는 자라고 하셨으니, 마땅히 다음과 같이 알아야 하나니, 일체법은 공(空)ㆍ불공(不空)이 있으며, 이에 의거해서 미륵보살께서 앞의 두 게송을 말씀하신 것이다.


若諸色處亦識爲體,何緣乃似色相顯現,一類堅住,相續而轉?

▷묻습니다; 만약 모든 색처(色處, 물질계)가 역시 식으로써 자체(體)로 삼는다고 말한다면, 무엇에 반연하여 색상(色相, 물질의 모습)으로 사현하고, 한 종류로 견고하게 상속해서 유전하는 것입니까?

 외부대상인 색경(色境)의 상(相) 마음이 아니지 않겠는가하고 비판하여 묻는, 제오색상비심난(第五 色相非心難).

 

名言熏習勢力起故,與染、淨法爲依處故。謂此若無,應無顚倒,便無雜染,亦無淨法,是故諸識亦似色現。如有頌言:

▷답한다; 명언훈습의 세력에 의해 일어나기 때문이며,

아득한 옛적부터 허망분별의 훈습력에 의해서, 상주하고 항상하며 변하지 않는 색경(色境) 상(相)이라고 집착한 것으로, 이러한 훈습에 의해서  종류의 견고한 색경의 모습으로 사현하는 것일 뿐, 마음 밖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재의 대상인 실경(實境) 아니다.

 

잡염과 청정법의 의지처가 되기 때문이니, 만약 이러한 색경(色境) 등의 외부대상이 없다면 마땅히 전도됨이 없어야 할 것이고, 그러하다면 문득 잡염도 없고 역시 청정법도 없게 될 것이니, 

따라서 모든 식이 역시 색법으로 사현하는 것으로, '대승장엄경론(大乘莊嚴經論)' 제 4권의 게송에서 설한 것과 같다.

색경(色境) 등으로부터 잡염ㆍ청정법의 의지처가 되는 것이니, 왜냐하면 욕계와 색계의 유정이 아득한 무시로부터 색경 등에 미혹되게 집착함으로써 전도(顚倒) 망심(妄心) 일으키고, 그것에 의해 번뇌ㆍ업ㆍ생() 잡염을 일으켜서 생사에서 윤회하는 것이니, 만약 색경 등이 없다면, 전도된 망심도 일어나지 않아야 할 것이고, 잡염이 없으면 청정법도 있지 않아야 할 것이.


亂相及亂體 應許爲色識, 及與非色識 若無餘亦無。

잡란(亂)의 형상인 난상(亂相)  잡란의 자체인 난체(難體)를

잡란(亂) 심왕 등을 말하는 것으로, 허망하게 전도됨의 망도(妄倒)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다.

잡란의 형상인 난상(亂相)이란 색식(色識),  상분(相分)을 말한다.

→잡란의 자체인 난체(難體) 비색식(非色識),  모든 식의 견분(見分)을 말한다.

 

색식(色識, 상분)  색식이 아닌 비색식(非色識, 견분 등)으로 인정해야 하고, 

만약 난상(亂相) 없다면 나머지 다른 것(견분) 역시도 없어야 하리라.

→나머지 다른 것이란 잡란의 자체인 난체(難體),  견분을 가리킨다.

 

色等外境分明現證,現量所得寧撥爲無?

▷묻습니다; 색경(色境) 등의 외경(外境, 외부대상)을 현재에서 분명히 깨닫고 현량으로 인식하거늘, 어째서 부정하여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까?

외부대상을 현량(現量)으로 인식하는데 어째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가 비판하여 묻는, 제육현량위종난(第六 現量爲宗難).

 색경(色境)  다섯 가지 외부대상은 5식의 현량으로써 분명히 깨달아 알고, 현량으로 인식하는 것은 확실한 것으로서 조금도 오류가 없거늘, 만약 외부대상이 실유(實有) 아니라면, 현량으로써 반연하여 색경 등이라는 인식을 일으킬  없지 않는가라고 묻는 것이다.

 

現量證時不執爲外,後意分別妄生外想。故現量境是自相分識所變,故亦說爲有。意識所執外實色等妄計有故,說彼爲無。又色等境非色似色、非外似外。如夢所緣,不可執爲是實、外色。

▷답한다; 현량으로 깨달을 때에는 집착해서 외부대상으로 삼지 않으나, 이후의 의식(意識)이 분별하여 망령되게 외부대상이라는 생각을 일으키는 것이니, 따라서 현량의 대상은 자신의 상분이고, 식이 전변된 것이기 때문에 실재(有)라고 말하는 것이다.

의식이 집착한 외부의 실재(有)의 색경 등을 망령되게 실재라고 계탁한 것이므로 그것을 비실재(無)라고 말하며,

또한 색경 등의 대상은 색경이 아니면서 색경으로 사현한 것이고, 외부대상이 아니면서 외부대상으로 사현한 것으로, 꿈속의 소연(所緣, 인식대상)과 같이 집착해서 이것은 실재(有)이고 외부의 색경인 외색(外色)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若覺時色皆如夢境不離識者,如從夢覺知彼唯心,何故覺時於自色境不知唯識?

▷묻습니다; 만약 깨어 있을 때의 색경 모두가 꿈속의 대상과 같이 식을 떠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꿈에서 깨어나서 그것은 오직 마음뿐인 유심(唯心)이라고 아는 것과 같아야 할 것이거늘, 어째서 깨어 있을 때에 자신의 색경에 대해서 오직 식뿐이라고 알지 못하는 것입니까

꿈과 깨어 있을 때의 차이점을 들어 비판하여 묻는, 제칠몸각상위난(第七夢覺相違難).

 

如夢未覺不能自知,要至覺時方能追覺,覺時境色應知亦爾,未眞覺位不能自知,至眞覺時亦能追覺。未得眞覺恒處夢中,故佛說爲生死長夜,由斯未了色境唯識。

▷답한다; 꿈에서 깨지 않았을 때에는 스스로가   없는 것으로, 반드시 깨어났을  비로소 능히 깨닫는 것과 같이, 깨어 있을 때의 대상인 경색(境色)도 역시 그러하다고 마땅히 알아야 하는 것이다. 

아직 무루의 참다운 지혜인 진각(眞覺)이 아닌 지위에서는 스스로   없으니, 참다운 깨달음의 진각(眞覺)에 이르렀을 때에 역시 능히 따라서  깨닫게 되나니, 참다운 깨달음을 얻지 않았을 때에는 항상 꿈속에 머물러 있는 것과 같으므로, 부처님께서 생사의  밤중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러함으로 색경(色境)은 오직 식뿐인 유심(唯心)이라고 아직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外色實無可非內識境,他心實有,寧非自所緣?

▷묻습니다; 외부의 색경인 외색(外色)은 참으로 존재하지 않으므로 내부의 식의 대상인 내식경(內識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마음은 참으로 존재하는 것이거늘, 어째서 자신의 인식대상인 자소연(自所緣)이 아닌 것입니까?

마음 밖의 실재 대상인 타인의 마음을 인식하는 경우를 들어 비판한, 제팔외취타심난(第八外取他心難)으로,

 외계의 색경(色境) 등은 실체가 없고 내부의 식이 전변된 것이지만, 타인의 심식은 자기 마음을 떠나서 외부에  자체가 있는 것이다. 

만약 마음 밖의 실재의 대상을 반연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면, 타인의 마음은 자신의 인식대상이 아니라고 말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 그러나 타심지(他心智) 같은 것은 타인의 마음을 반연해야 하는 것이니, 그렇다면 이것은 마음 밖의 실재의 대상을 반연하는 것으로서, 유식(唯識) 뜻이 성립되지 않아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비판하여 묻는 것이다.

 

誰說他心非自識境?但不說彼是親所緣。謂識生時 無實作用,非如手等親執外物,日等舒光親照外境。

▷답한다; 누가 타심(他心)은 자기 식의 대상이 아니라고 말하였는가?

그것은 다만 친소연(親所緣)이라고 말하지 않을 뿐이니, 식이 일어날 때에는 참된 실작용(實作用)이 없어서 손 등이 직접 외부 물건을 집거나,

정량부(正量部) 논파한 것으로, 그들은 상분(相分) 건립하지 않기 때문에 심왕과 심소법이 직접 대상을 취하는 것이 마치 손(手) 등으로 외부 사물을 잡는 것과 같다고 말하는 것을 논파한 것이다.

 

태양 등이 빛을 펼쳐서 직접 외부대상을 비추는 것과 같지는 않다. 

승론(勝論) 학파를 논파한 것으로, 그들은 안식이 일어날  빛을 펴서 직접 눈앞의 대상을 비추는 것이, 마치 해와  등이 빛을 펴서 직접 외부대상을 비추는 것과 같다고 주장하는 것을 논파한 것다.

 

但如鏡等似外境現名了他心,非親能了,親所了者謂自所變,

다만 거울 등과 같이 외부대상에 사현하는 것을 타심(他心)을 요별한다고 이름하나, 직접 요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직접 요별되는 것은 자신이 전변된 것이다.

타인의 마음은 능히 자기 식인 자식(自識) 인식대상이 되므로, 타인의 마음을 아는 지혜인 타심지(他心智) 있어야 한다. 그런데 타인의 마음으로써 친소연연(親所緣緣, 상분)으로 삼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오직 소소연연(疎所緣緣, 본질)으로 하며, 자기 마음 위에  영상인 상분을 현현하여서 그것으로써 친소연연으로 반연할 뿐이므로 유식(唯識) 뜻이 성립된다고 논증한 것이다.

 

故契經言無有少法能取餘法,但識生時似彼相現名取彼物。如緣他心,色等亦爾。

따라서 경전에서 말씀하기를 “작은 법이라도 능히 나머지 다른 법, 즉 마음 밖에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심외법(心外法)을 취하는 것은 없는 것으로, 다만 식이 일어날 때에 그것과 비슷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을 이름하며 그 사물을 취한다고 하는 것이다”라고 '해심밀경' 제3권에서 말하였다.

타인의 마음을 반연한다고 '유식이십론' 에서 말하는 것과 같이 색경 등도 역시 그러한 것이다.

 

旣有異境,何名唯識?

▷묻습니다; 이미 다른 대상이 있거늘, 어째서 유식(唯識)이라고 이름하는 것입니까?

→타인의 마음 등 다른 대상이 있으므로 유식(唯識)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비판한, 제구 이경비유난(第九異境非唯難)으로,  즉 친소연연(親所緣緣, 상분)은 아니지만 자기 마음 밖의 타인의 마음이라는 다른 대상인 이경(異境)이 있다고 한다면, 이것은 유식이 아닌 것이지 않겠는가하고 묻는 것이다.

 

奇哉!固執!觸處生疑,豈唯識教但說一識?

▷답한다; 기이하도다. 굳게 집착해서 닿는 곳마다 의심을 내는구나!

어째서 유식(唯識)의 가르침이 다만 나 한 사람의 식인 일식(一識)만을 말하는 것이라고 하는가?

 

不爾如何?汝應諦聽,若唯一識,寧有十方凡聖尊卑因果等別?誰爲誰說?何法何求?故唯識言有深意趣。識言摠顯一切有情各有八識,六位心所,所變相、見分位差別,及彼空理所顯眞如,識自相故,識相應故,二所變故,三分位故,四實性故,如是諸法皆不離識,摠立識名。

▷묻습니다; 어째서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까?

▷답한다; 그대는 마땅히 진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리라.

만약 오직 한 사람의 식인 일식(一識)뿐이라면 어찌하여 시방에 범부와 성인, 존귀함과 비천함, 원인과 결과 등의 차이가 있겠는가?

누가 누구를 위해서 법을 설하며, 어떠한 법을 어떻게 구하는 것인가?

따라서 유식(唯識)이라는 말에는 심오한 의미의 의취(意趣)가 있으니,

식(識)이라는 말은 전체적으로 모든 유정에 각각 8식, 6위의 심소, 전변된 상분ㆍ견분 분위의 차별 및 그것의 공한 이치인 공리(空理)에서 드러나는 진여가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니,

식(識)의 자상(自相)이기 때문이고, 식과 상응하기 때문이며,

심와과 심소의 두 가지가 전변된 것이기 때문이고,

심왕과 심소 및 색법의 세 가지의 삼분위(三分位)이기 때문이며,

심왕ㆍ심소ㆍ색법ㆍ불상응행법의 4가지의 참다운 성품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일체법은 모두 식(識)에서 떠나지 않으니, 총체적으로 식(識)이라는 명칭을 건립하는 것이다.

 

唯言但遮愚夫所執定離諸識實有色等。若如是知唯識教意,便能無倒,善備資糧速入法空,證無上覺,救拔含識生死輪迴,非全撥無惡取空者,違背教理,能成是事,故定應信一切唯識。

‘유(唯, 오로지)’라는 말은, 다만 어리석은 범부가 집착하듯이 반드시 모든 식을 떠나서 참으로 색법 등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을 부정하는 것으로,

만약 이와 같이 유식의 가르침의 취지를 아는 사람은, 곧 능히 전도됨이 없이 복덕과 지혜의 자량(資糧)을 잘 비축하여 속히 법공의 이치에 들어가서 최상의 깨달음을 증득하고, 유정이 생사에 윤회하는 것을 구하는 것이다.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고 부정하는 악취공자는 성스러운 가르침과 바른 논리에 위배되므로 능히 이러한 일을 할 수 없는 것이니, 따라서 반드시 일체가 오직 식뿐이라는 유식(唯識)이라고 믿어야 하는 것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