成唯識論 卷第一 

護法等菩薩造 호법(護法 지음

三藏法師 玄奘  詔譯 현장(玄奘한역

성유식론(成唯識論 7 1

 

已說二十隨煩惱相。不定有四,其相云何?頌曰:

이상과 같이 20 가지 수번뇌(隨煩惱) 심소의 상(相)을 말하였고,

부정심소(不定心所)에 4 가지가 있으니, 그 상은 어떠한 것인가?

'삼십송'의 제14에서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말하였으니;

 

不定謂悔眠 尋伺二各二

부정의 심소는 회(悔)ㆍ면(眠)ㆍ심(尋)ㆍ사(伺)이니, 이 둘에 각각 둘이 있네.


論曰:悔、眠、尋、伺於善染等,皆不定故,非如觸等定遍心故,非如欲等定遍地故,立不定名。

▷논하여 말한다; 회(悔)ㆍ면(眠)ㆍ심(尋)ㆍ사(伺) 심소는 선(善)과 잡염 등에 대해서 모두 일정하지 않기 때문이고,

촉(觸)심소 등과 같이 반드시 심왕에 두루하지 않기 때문이며,

욕(欲)심소 등과 같이 반드시 모든 지위(地)에 두루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부정(不定)이라는 명칭을 건립한 것이다.

부정심소(不定心所)라는 명칭을 건립한 이유를 설명하는 것으로, 이 해당되는 심소들은 3(性:선ㆍ악ㆍ무기) 중에서  성품이 일정하지 않고, 3() 중에서 일어나는 것이 일정하지 않으며, 모든 식과 상응하는 것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부정심소(不定心所)라고 이름한 것이다.


悔謂惡作。惡所作業追悔爲性,障止爲業。此卽於果假立因名。先惡所作業後方追悔故。悔先不作亦惡作攝。如追悔言,我先不作如是事業是我惡作。

회(悔)심소’는 오작(惡作)을 지은 것을 말하며, 소작(所作)의 업(業) 미워하고 후회함을 체성(體)로 하고, 사마타(止)를애하는 것을 업(業)으로 한다. 

곧 이것은 결과에 대해서 원인의 명칭을 가립한 것으로, 먼저 지은 업인 소작업(所作業)을 미워하고, 나중에 비로소 후회하기 때문이다. 

이전에 하지 않은 것을 뉘우치는 것도 역시 오작(惡作)에 포함되며, 후회하면서 내가 이전에 이러한 일을 하지 않은 것은 나의 오작(惡作)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悔, kauktya)심소는 뉘우침’, 후회’, 이전에 지은 업을 후회하고 싫어하는 심리작용으로, 오작(惡作)이라고도 한다. 뉘우쳐서 행동을 ()의 수행으로 가게도 하지만, 어떤 경우는 선행(善行) 했던 것을 후회하면서 자신을 더욱 괴롭히기도 한다.

 

별도로 부정심소의 자체(體)를 설명한다.

眠謂睡眠。令身不自在昧略爲性,障觀爲業。謂睡眠位身不自在心極闇劣,一門轉故。昧簡在定,略別寤時,令顯睡眠非無體用。有無心位假立此名。如餘蓋纏心相應故。

면(眠)심소’는 수면(睡眠)을 말하는 것으로, 자재하지 못하고, 어둡고 빼앗기게 함을 체성(體)으로 하고, 위빠사나(觀)를 장애함을 업(業)으로 하며,

수면 상태에서는 몸으로 하여금 자재하지 못하게 하고, 마음으로 하여금 매우 어둡고 용렬하게 하며, 오직 하나의 의식(意識)에만 상응해서 일문(一門)에서만 전전하기 때문이다. 

매(昧, 어두움)하다는 것은 선정에 들어 있는 것과 구분하며, 빼앗는다는 것은 깨어 있을 때와 구별하며,

영(令, 하게 함)은 면(眠)심소가 자체와 작용의 체용(體用)이 없는 것이 아님을 나타내는 것으로, 무심의 지위에 있어도  명칭을 가립하기도 하나니, 다른 것과 같이 개(蓋, 덮어서 가리움), 전(纏, 얽힘)으로써 심왕과 상응하기 때문이다.

세간과 성스러운 가르침에서 무심위(無心位) 수면(睡眠)으로 이름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은 가립(假立)으로, 실제의 수면은 별도로 존재한다. 이것은 심왕을 덮고 얽어매기는 개전(蓋纏)하기 때문이다. 덮고 얽어매는, 개전(蓋纏)이란 것은 반드시 심소법으로서 자체(體) 없는 법이 아니다.

 

면(眠, middha, nidra)심소는 ‘수면(睡眠)’, 즉 숙면의 상태로 유도하는 심소이다. 일단 숙면 상태가 되면 면(眠)심소는 더 이상 상응하지 않으며, 수면은 신체를 자유롭지 못하게 하고 마음을 암매(闇昧)하게 만들어서 위빠사나를 수행하는 데 장애가 된다. 적당한 수면은 체력을 충전하여 활달하게 하지만, 지나친 잠은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이다.

 

有義此二唯癡爲體。說隨煩惱及癡分故。有義不然。亦通善故。應說此二染癡爲體,淨卽無癡。

제1사(第一師)의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으니, 회(悔)심소와 면(眼)심소, 두 가지는 오직 치심소를 자체(體)로 하는 것으로, 수번뇌와 치심소의 일부분이라고 '유가사지론' 제55권에서 말하기 때문이라고 하였으며,

제2사(第二師)의 견해로는, 그렇지 않다! 역시 선품(善品)에도 통하기 때문이니, 마땅히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하는 것으로, 회(悔)심소와 면(眼)심소, 두 가지는 잡염법이라면 치심소를 자체(體)로 하여야 하고, 청정법이라면 곧 무치(無癡)라고 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論依染分說隨煩惱及癡分攝。有義此說亦不應理。無記非癡無癡性故。應說惡作思、慧爲體。明了思擇所作業故。睡眠合用思、想爲體。思想種種夢境相故。

논서에서는 잡염분에 의지해서 수번뇌(隨煩惱)와 치(癡)심소의 일부분에 포함된다고 말하였으니,

다음과 같은 견해는, 역시 이치에 맞지 않는 것으로, 무기(無記)는 치(癡)ㆍ무치(無癡)의 성질이 아니기 때문이니, 마땅히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하는 것으로, 

'오작(惡作)은 사(思)ㆍ혜(慧) 심소를 자체(體)로 하나니, 지은 업을 명료하게 생각해서 간택하기 때문이고,

면(眠)심소는 합하여 사(思)ㆍ상(想) 심소를 사용해서 자체(體)로 삼나니, 갖가지 꿈의 경계에서의 상(相)들을 유지하고 표상하기 때문이다.'


論俱說爲世俗有故。彼染污者是癡等流。如不信等說爲癡分。有義彼說理亦不然。非思、慧、想、纏彼性故。應說此二各別有體。與餘心所行相別故,隨癡相說名世俗有。

제3사(第三師)의 견해로는, 논서, '유가사지론' 제55권에서 둘 다 세속유라고 말하기 때문이니, 그것의 염오인 치(癡)심소의 등류이며, 불신(不信) 등과 같이 치(癡)심소의 일부분이라고 하였으며,

호법(護法)의 정의(正義)로써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으니, 호법의 견해 역시도 이치에 맞지 않은 것으로,

사(思)ㆍ혜(慧)ㆍ상(想) 심소는 얽어매는 전(纏)의 속성으로, 회심소와 면심소의 성질이 아니기 때문이니, 마땅히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하는 것이니, '회심소와 면심소는 각각 별도로 자체가 있으며, 나머지 심소와 행상(行相)이 다르기 때문에 어리석음의 양상에 따라서 세속유라고 이름한다'는 것이다

 

 문단에서 다음과 같이 삼지작법(三支作法) 인명논리를 세울  있다.

() 잡염의 ()ㆍ면() 심소는 ()ㆍ혜()ㆍ상() 아니어야 한다.

() 이것은 얽어매는 전(纏) 속성이기 때문이다.

() 무참(無慚)심 등과 같은 것이다.

() 청정의 회ㆍ면 심소도 역시 ()ㆍ혜()ㆍ상() 아니어야 한다.

() 이것은 회ㆍ면 심소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 잡염의 회ㆍ면 심소와 같은 것이다.


尋謂尋求。令心悤遽於意言境麤轉爲性。伺謂伺察。令心悤遽於意言境細轉爲性。此二俱以安、不安住身心分位所依爲業。竝用思、慧一分爲體。於意言境不深推度,及深推度義類別故。若離思、慧尋、伺二種體類差別不可得故。

‘심(尋)심소’는 찾아 구하는 심구(尋求)하는 것을 말하며, 심왕(心)을 바쁘고 급하게 의언(意言, 의식)의 대상에 대하여 두드러지게 전전하게 함을 체성(體)으로 하며,

사(伺)심소’는 보면서 살피는 사찰(伺察)하는 것을 말하며, 심왕(心)을 바쁘고 급하게 의언(意言, 의식)의 대상에 대해 미세하게 전전하게 함을 체성(體)으로 한다.

심(尋)심소와 사(伺)심소, 모두는 평안과 불안에 머무는 몸과 마음의 분위(分位)의 의지처가 되는 것을 업(業)으로 하여서, 몸과 마음이 평안할 때에는 천천히 느린 것을 업으로 하고, 불안할 때에는 바쁘고 급한 것을 업으로 하며,

심(尋)심소와 사(伺)심소, 둘 다 사(思)ㆍ혜(慧) 심소의 일부분을 사용해서 자체(體)로 삼으며,

심(尋)심소는 의식의 대상인 의언경(意言境)에 대해서 깊이 헤아리지 않으니, 사(伺)심소와 같이 깊이 헤아리는 뜻의 종류가 다르기 때문이며, 

사(思)ㆍ혜(慧)심소를 떠나서는 심(尋)ㆍ사(伺) 심소의 두 가지가 체(體)와 종류에 차이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심(尋, vitarka)심소는 ‘심구(尋求)’, 즉 대상에 대하여 그 뜻과 이치를 대강 심구하는 심리작용이다.

의언(意言, manojalpa)은 의지(意地)의 심사(尋思) 또는 제6의식을 의미한다. 의언(意言)의 대상인 의언경(意言境)은 제6의식의 인식대상인 소연경(所緣境)으로서의 일체법을 가리킨다.

사(伺, vicāra)심소는 ‘사찰(伺察)’, 즉 대상의 뜻과 이치를 세밀하게 분별하여 사찰함으로써 몸과 마음의 평안 또는 불안이 있게 되는 것이다.


二各二者,有義尋、伺各有染、淨二類差別。有義此釋不應正理。悔、眠亦有染、淨二故。應說如前諸染心所,有是煩惱隨煩惱性。此二各有不善無記,或復各有纏及隨眠。

'삼십송'의 제14게송에서, “둘에 각각 둘이네”라는 것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으니,

제1사(第一師)의 견해로는, 심(尋)ㆍ사(伺) 심소에 각각 잡염과 청정의 두 종류의 차이가 있음을 말한 것이라 하였고,

제2사(第二師)의 견해로는 이 해석은 바른 논리가 아닌 것으로, 회(悔)ㆍ면(眼) 심소에도 역시 잡염과 청정의 두 가지가 있기 때문이니, 마땅히 앞에서와 같이 모든 잡염의 심소에 번뇌ㆍ수번뇌심소의 속성이 있으며, 뇌와 수번뇌심소의 두 가지에각각 불선과 무기가 있으며,  혹은 다시 각각에 얽어맴의 전(纏)과 수면이 있다고 말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有義彼釋亦不應理。不定四後有此言故。應言二者顯二種二。一謂悔、眠,二謂尋、伺。此二二種種類各別故,一二言顯二二種。

안혜(安慧)의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으니,  해석도 역시 바른 논리가 아닌 것으로, 부정의  가지 심소의 뒷부분에 이러한 말이 있기 때문에, ‘둘(二)이라는 것은  가지의  종류를 나타내는 것으로, 하나는 회(悔)ㆍ면(眼) 심소이고, 다른 하나는 심(尋)ㆍ사(伺) 심소이다

  가지의 종류는 각각 다르기 때문에 하나의 둘이라는 말은 둘의  종류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마땅히 말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것으로써 정의(正義) 삼는다.

 

'성유식론술기(成唯識論述記)' 제7권 본에 의하면, 이 두 가지의 두 종류에 대해서 열 가지 의미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열거한다. 

①회(悔)ㆍ면(眠)은 오직 욕계뿐이고, 심(尋)ㆍ사(伺) 심소는 초선(初禪)에도 통한다. 

②회ㆍ면 심소는 자체가 별도로 있고, 심ㆍ사 심소는 사(思)ㆍ혜(慧) 심소에 의지한다. 

③회ㆍ면 심소는 실유(實有)이고, 심ㆍ사 심소는 가유(假有)이다. 

④심ㆍ사 심소는 색계의 제4선정을 증득하여 단멸하고, 회심소는 분리단(分離斷)이며, 면심소는 아라한에서 영원히 단멸한다. 

⑤제2선정을 얻으면 하지(下地)의 심ㆍ사 심소를 일으키고, 상지(上地)는 반드시 욕계의 회ㆍ면 심소를 일으키지 않는다. 

⑥심ㆍ사 심소는 선지(禪支)이고, 회ㆍ면 심소는 그렇지 않다. 

⑦회ㆍ면 심소는 덮고 얽어매는 개전(蓋纏)이며, 심ㆍ사 심소는 그렇지 않다. 

⑧심ㆍ사 심소는 언어의 작용이고, 회ㆍ면은 그렇지 않다. 

⑨심ㆍ사 심소는 선정과 산란의 지위에 모두 있고, 회ㆍ면은 오직 산란의 지위에만 있다. 

⑩심ㆍ사 심소는 유루와 무루에 통하고, 회ㆍ면은 오직 유루이다.


此各有二,謂染、不染。非如善、染各唯一故。或唯簡染故說此言。有亦說爲隨煩惱故。爲顯不定義,說二各二言。故置此言深爲有用。

여기에 각각  가지가 있으니, 염(染, 잡염)과 불염(不染, 잡염되지 않음)으로, 선과 잡염(染)이 각각 오직 하나인 것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혹은 오직 잡염(染) 가려내기 위해서 이렇게 말하였으니, '유가사지론' 제55권에서는 역시 수번뇌라고 말하였기 때문이다

부정(不定) 의미를 나타내기 위해서 '유식삼십송'의 제14게송에서 ‘둘에 각각 이라고 말한 것으로,

따라서  말을 시설한 것에는 깊은 의미가 있는 것이.

 

'유식삼십송'의 제14게송에서 “둘에 각각 둘이 있네, 이각이(二各二)”라는 설명을 시설한 이유를 밝힌 것으로,

그것에 세 가지 이유가 있어서,

첫째, 회(悔)ㆍ면(眼) 심소와 심(尋)ㆍ사(伺) 심소, 두 가지의 두 종류에는 잡염ㆍ잡염되지 않음의 양쪽에 통한다. 이것은 선심소는 오직 선(善)이고, 번뇌ㆍ수번뇌심소는 오직 잡염뿐으로서, 잡염과 선(善)에 통하지 않는 것과 다른 것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둘째, 분(忿) 등 오직 잡염의 심소를 가려내기 위한 것으로, '유가사지론' 제55권에서 부정심소의 네 가지를 말하고 수번뇌심소라고 한 때문에, 수번뇌심소와 같이 이것에는 오직 잡염뿐일 것으로 생각할까 염려되어 이 말을 시설한 것이다. 

셋째, 이 두 가지의 두 종류는 그 성품이 일정하지 않음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四中尋、伺定是假有。思、慧合成聖所說故。悔、眠有義亦是假有。'瑜伽'說爲世俗有故。

회(悔)ㆍ면(眼) 심소와 심(尋)ㆍ사(伺) 심소의 네 가지 중에서 

()ㆍ사(심소는 반드시 가유(假有)이고, ()ㆍ혜(심소와 합해서 이룬다는 것은 성스러운 가르침에서 말한 바이기 때문이다.

회ㆍ면 심소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으니, 이것 역시 자체가 없는 존재이니, '유가사지론' 제 55권에서 세속유라고 말한 때문이다.

 

有義此二是實物有。唯後二種說假有故。世俗有言隨他相說。非顯前二定是假有。又如內種體雖是實,而論亦說世俗有故。

호법의 정의로써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으니,  둘은 실물유(實物有)이다

오직 나중의 심(尋)ㆍ사(伺) 심소,  가지만 가유(假有)라고 말한 때문이며, 세속유라는 말은 치(癡)심소의 일부분 상을 따라서 말한 것이다.

앞의 두 가지도 반드시 가유임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니, 비유하자면 내부세계의 종자는 실유(實有)이지만, 논서, '유가사지론' 제52권에서 역시 세속유라고 말한 바와 같기 때문이다

 

부정심소들이 서로 상응하는 관계를 밝힌 유상응문(有相應門).
四中尋、伺定不相應。體類是同,麤細異故。

 가지 중에서 심(尋)ㆍ사(伺) 심소는 반드시 상응하지 않으니, 자체와 종류의 체류(體類)는 같으나, 두드러짐과 미세함의 추세(麤細)가 다르기 때문이다.

자체(體) 같다는 것은 ()ㆍ사(심소가 모두 ()ㆍ혜(심소를 자체로 삼음을 말하는 것이고,

종류(類) 같다는 것은  심소가 모두 헤아리는 추도(推度)의 작용을 함을 가리킨다.

 

依於尋伺有染離染,立三地別,

심ㆍ사 심소가 잡염(染)이 있는 것과 잡염을 떠난 것(不染)에 의해서 유정이 머무는  가지 지위 삼지(三地) 차이를 건립하며,

비록 자체(體)와 종류(類)는 같지만, 상이 두드러짐과 미세함의 추세(麤細)에 차이가 있는  법은 함께 일어날  없기 때문이다.

 

不依彼種現起有無,故無雜亂。

그것의 종자와 현행이 있고 없음에 의한 것이 아니니, 따라서 복잡하지 않다.

설일체유부가 비판하기를, 심ㆍ사 심소가 함께 일어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유심유사지(有尋有伺地)ㆍ무심유사지(無尋有伺地)ㆍ무심무사지(無尋無伺地  가지 지위의 삼지(三地) 건립할  있겠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俱與前二容互相應,前二亦有互相應義。四皆不與第七八俱。義如前說。悔、眠唯與第六識俱。非五法故。  

심(尋)ㆍ사(伺) 심소가 모두 앞의 회(悔)ㆍ면(眼) 심소 서로 상응하는 것이 인정되고,

앞의  가지도 역시 서로 상응하는 뜻이 있다고 해야 하며,

회(悔)ㆍ면(眼) 심소와 심(尋)ㆍ사(伺) 심소의 네 가지 심소가 모두 7식ㆍ제8식과는 함께하지 않으니,  뜻은 앞의 본 논서 제3권과 제4권 가운데 제8식과 제7식의 심소상응문에서 말한 것과 같으며,

회ㆍ면 심소는 5식은 그렇지 않으나, 오직 6식과 함께하는 것이.

부정의 심소와 8식과의 상응관계를 밝힌 식상응문(識相應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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