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 論釋曇無竭品 第八十九 卷第一百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삼장법사 구마라집 소역
89. 담무갈품을 풀이함 ② 1
▶經. “爾時,薩陁波崙菩薩摩訶薩及長者女幷五百侍女到曇無竭菩薩摩訶薩所,散天曼陁羅華,頭面禮畢,退坐一面。
曇無竭菩薩見其坐已,告薩陁波崙菩薩言:‘善男子!諦聽!諦受!今當爲汝說般若波羅蜜相。
善男子!諸法等故,當知般若波羅蜜亦等。諸法離故,當知般若波羅蜜亦離。
諸法不動故,當知般若波羅蜜亦不動。諸法無念故,當知般若波羅蜜亦無念。
▷경. “그 때에 살타파륜 보살마하살과 장자의 딸과 5백의 시녀들은 담무갈 보살마하살에게로 가서 하늘의 만다라화를 뿌리고는 머리로 두면례(頭面禮)를 한 뒤에 물러나 한쪽에 앉았으며, 담무갈보살은 그들이 다 앉은 것을 보고 나서 살타파륜보살에게 말하였다.
‘선남자여, 자세히 듣고 받아 지녀라. 이제 그대에게 반야바라밀의 상(相)을 설할 것이니라.
선남자여, 제법은 평등한 등(等)이기 때문에 반야바라밀도 또한 평등한 등(等)이라 알아야 하고,
제법은 여의는 제법이(諸法離)이기 때문에 반야바라밀 또한 여의는 이(離)라고 알아야 하며,
제법은 움직이지 않는 부동(不動)이기 때문에 반야바라밀 또한 움직이지 않는 부동(不動)이라 알아야 하고,
제법은 생각이 없는 무념(無念)이기 때문에 반야바라밀 또한 생각이 없는 무념(無念)이라고 알아야 하느니라.
諸法無畏故,當知般若波羅蜜亦無畏。諸法一味故,當知般若波羅蜜亦一味。
諸法無邊故,當知般若波羅蜜亦無邊。諸法無生故,當知般若波羅蜜亦無生。
諸法無滅故,當知般若波羅蜜亦無滅。虛空無邊故,當知般若波羅蜜亦無邊。
大海水無邊故,當知般若波羅蜜亦無邊。須彌山莊嚴故,當知般若波羅蜜亦莊嚴。
虛空無分別故,當知般若波羅蜜亦無分別。
제법은 두려움이 없는 무외(無畏)이기 때문에 반야바라밀 또한 두려움이 없는 무외(無畏)로 알아야 하고,
제법은 한 맛의 일미(一味)이기 때문에 반야바라밀 또한 한 맛의 일미(一味)라고 알아야 하며,
제법은 끝이 없는 무변(無邊)이기 때문에 반야바라밀 또한 끝이 없는 무변(無邊)이라고 알아야 하며고,
제법은 생겨남이 없는 무생(無生)이기 때문에 반야바라밀 또한 생겨남이 없는 무생(無生)이라고 알아야 하며,
제법은 소멸함이 없는 무멸(無滅)이기 때문에 반야바라밀 또한 소멸함이 없는 무멸(無滅)이라고 알아야 하느니라.
허공은 끝이 없는 무변(無邊)이기 때문에 반야바라밀 또한 끝이 없는 무변(無邊)이라고 알아야 하며,
대해(大海)의 바닷물은 끝이 없는 무변(無邊)이기 때문에 반야바라밀 또한 무변(無邊)이라고 알아야 하며,
수미산은 장엄(莊嚴)하기 때문에 반야바라밀 또한 장엄(莊嚴)한 것으로 알아야 하며,
허공은 분별이 없는 무분별(無分別)이기 때문에 반야바라밀 분별이 없는 무분별(無分別)이라고 알아야 하느니라.
色無邊故,當知般若波羅蜜亦無邊;受、想、行、識無邊故,當知般若波羅蜜亦無邊。
地種無邊故,當知般若波羅蜜亦無邊;水種、火種、風種無邊故,當知般若波羅蜜亦無邊;空種無邊故,當知般若波羅蜜亦無邊。
물질(色)은 끝이 없는 무변(無邊)이기 때문에 반야바라밀 또한 끝이 없는 무변(無邊)이라고 알아야 하며,
수상행식(受想行識)이 끝이 없는 무변(無邊)이기 때문에 반야바라밀 또한 끝이 없는 무변(無邊)이라고 알아야 하며,
땅의 요소인 지종(地種)이 끝이 없는 무변(無邊)이기 때문에 반야바라밀 또한 끝이 없는 무변(無邊)이라고 알아야 하며,
물의 요소인 수종(水種)ㆍ불의 요소인 화종(火種)ㆍ바람의 요소인 풍종(風種)이 끝이 없는 무변(無邊)이기 때문에 반야바라밀 또한 끝이 없는 무변(無邊)이이라고 알아야 하며,
허공의 요소인 공종(空種)이 끝이 없는 무변(無邊)이기 때문에 반야바라밀 끝이 없는 무변(無邊)이라고 알아야 하느니라.
如金鋼等故,當知般若波羅蜜亦等。諸法無分別故,當知般若波羅蜜亦無分別。
諸法性不可得故,當知般若波羅蜜性亦不可得。諸法無所有等故,當知般若波羅蜜亦無所有等。
諸法無作故,當知般若波羅蜜亦無作。諸法不可思議故,當知般若波羅蜜亦不可思議。’
금강과 같이 평등한 여금강등(如金剛等)이기 때문에 반야바라밀 또한 평등한 등(等)이라고 알아야 하며,
제법은 분별이 없는 무분별(無分別)이기 때문에 반야바라밀 또한 분별이 없는 무분별(無分別)이라고 알아야 하며,
제법의 성품은 얻을 수 없는 불가득(不可得)이기 때문에 반야바라밀 또한 얻을 수 없는 불가득(不可得)이라고 알아야 하고,
제법은 있는 바 없이 평등한 무소유등(無所有等)이기 때문에 반야바라밀 또한 있는 바 없이 평등한 무소유등(無所有等)이라고 알아야 하며,
제법은 조작이 없는 무작(無作)이기 때문에 반야바라밀 또한 조작이 없는 무작(無作)이라고 알아야 하며,
제법은 불가사의(不可思議)하기 때문에 반야바라밀도 또한 불가사의하다고 알아야 하느니라.’
是時,薩陁波崙菩薩摩訶薩卽於座上得諸三昧,所謂諸法等三昧,諸法離三昧,諸法無畏三昧,諸法一味三昧,諸法無邊三昧,諸法無生三昧,諸法無滅三昧,虛空無邊三昧,大海水無邊三昧,須彌山莊嚴三昧,虛空無分別三昧,色無邊三昧,受、想、行、識無邊三昧,地種無邊三昧,水種、火種、風種、空種無邊三昧;如金鋼等三昧,諸法無分別三昧,諸法不可思議三昧 如是等,得六百萬諸三昧門。”
이 때에 살타파륜 보살마하살이 곧 그 자리에서 모든 삼매를 얻었으니, 이른바 제법등(諸法等)삼매와 제법리(諸法離)삼매와 제법무외(諸法無畏)삼매와 제법일미(諸法一味)삼매와 제법무변(諸法無邊)삼매와 제법무생(諸法無生)삼매와 제법무멸(諸法無滅)삼매와 허공무변(虛空無邊)삼매와 대해수무변(大海水無邊)삼매와 수미산장엄(須彌山莊嚴)삼매와 허공무분별(虛空無分別)삼매와 색무변(色無邊)삼매와 수상행식무변(受想行識無邊)삼매와 지종무변(地種無邊)삼매와 수종화종풍종공종무변(水種火種風種空種無邊)삼매와 여금강등(如金剛等)삼매와 제법무분별(諸法無分別)삼매와 제법불가사의(諸法不可思議)삼매가 그것이니, 이와 같은 등으로 6백만의 모든 삼매문(三昧門)을 얻게 되었다.”
爾時,佛告須菩提:“如我今於三千大千世界中與諸比丘僧圍繞,以是相、以是像貌、以是名字說般若波羅蜜;薩陁波崙得是六百萬三昧門,見東方、南西北方、四維、上下如恒河沙等三千大千世界中諸佛與諸比丘恭敬圍繞,以如是相、以是像貌、以是名字說是摩訶般若波羅蜜亦如是。
薩陁波崙菩薩從是已後,多聞、智慧不可思議,如大海水;常不離諸佛,生於有佛土中。
乃至夢中未曾不見佛時;一切衆難皆悉已斷,在所佛土隨願往生。
그 때에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지금 3천대천세계 가운데에서 모든 비구승에게 둘러 싸여 이러한 상(相)과 이러한 모습의 상모(像貌), 그리고 이러한 이름의 명자(名字)로써 반야바라밀을 설하고 있는 것과 같이,
살타파륜이 이 6백만의 삼매문을 얻고는, 동쪽ㆍ남쪽ㆍ서쪽ㆍ북쪽과 네 간방과 위와 아래의 항하 강의 모래 수와 같이 많은 3천대천세계에 계신 모든 부처님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공경히 둘러싸여서 이러한 상(相)ㆍ이러한 모습의 상모(像貌)ㆍ이러한 이름의 명자(名字)로써 이 마하반야바라밀을 설하고 계신 것을 본 것도 이와 같았느니라.
살타파륜보살은 그로부터 다문(多聞)과 지혜(智慧)가 불가사의하여서, 마치 큰 바닷물과 같았고, 항상 모든 부처님을 여의지 않았으며, 부처님이 계신 불국토에 태어났으니,
꿈속에서까지도 일찍이 부처님을 뵙지 않은 때가 없었고, 일체의 숱한 재난은 남김없이 이미 끊어졌으며, 부처님이 계신 국토에 원하는 대로 가서 태어날 수 있었느니라.
須菩提!當知是般若波羅蜜因緣,能成就菩薩摩訶薩一切功德,得一切種智。以是故,須菩提!諸菩薩摩訶薩若欲學六波羅蜜、欲深入諸佛智慧、欲得一切種智,應受持是般若波羅蜜,誦讀、正憶念、廣爲人說,亦書寫經卷,供養、尊重、讚歎,香華乃至妓樂。何以故?般若波羅蜜是過去、未來、現在十方諸佛母,十方諸佛所尊重故。”
수보리야, 이 반야바라밀의 인연은 보살마하살의 일체의 공덕을 능히 성취하게 하고 일체종지를 얻게 한다고 알아야 하느니라.
그러므로 수보리야, 모든 보살마하살이 만약 6바라밀을 배우고자 하고, 모든 부처님의 지혜에 깊이 들고자 하며, 일체종지를 얻고자 한다면, 마땅히 이 반야바라밀을 받아지니는 수지(受持)하고, 읽고 외우는 독송(誦讀)하고, 바르게 기억하는 정억념(正憶念)하며, 사람들을 위하여 자세히 설명하여 주고, 또한 경권(經卷)을 서사(書寫)하여서, 향과 꽃 내지는 기악으로써 공양하고 존중하고 찬탄하여야 하느니라.
왜냐 하면, 반야바라밀은 바로 과거ㆍ미래ㆍ현재의 시방에 계시는 모든 부처님의 어머니이신 불모(佛母)이시며,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존중하시기 때문이니라.”
▶論. 釋曰:曇無竭旣出,至法座所,遍觀無勝己者,於是而坐。爾時,薩陁波崙菩薩知坐已定,到曇無竭所,頭面禮足,一面坐。
禮有三種:一者、口禮;二者、屈膝,頭不至地;三者、頭至地,是爲上禮。人之一身,頭爲最上,足爲最下,以頭禮足,恭敬之至。
▷논. 해석한다. 담무갈은 이미 나와서 법좌(法座)가 있는 곳으로 나아가 자기보다 뛰어난 이가 없는가를 두루 살펴본 뒤에야 자리에 앉았다. 이 때에 살타파륜보살은 그가 좌정한 것을 알고는 담무갈에게로 나아가 머리를 발에 대어 예배하는 두면예족(頭面禮足)하고 한쪽에 앉았으으니,
예를 올리는 데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말로 하는 구예(口禮)요,
둘째는 무릎을 꿇고 머리는 땅에 대지 않는 예이다.
셋째는 머리를 땅에 대는 예이니, 이것은 최상의 예배이다.
사람의 몸에서는 머리가 제일 위가 되고 발이 맨 아래가 되는 것이니, 머리로써 발에 예배하는 것은 공경함이 지극하다는 것이다.
曇無竭見其坐已,知從遠來,不惜身命,種種勤苦,爲欲聞法。初相見時,日垂欲沒,少時聞法;曇無竭以日沒故,起入宮中。
今爲法故,七歲渴仰,不生異心;垂欲出時,以血灑地,知其爲法不惜身命,其心不退,決定無疑,堪受教化。是故告言:“善男子!一心諦聽!”
담무갈은 그가 앉은 것을 본 후 그가 멀리서 와서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고 갖가지로 애쓰고 있는 것은 바로 법을 듣고자 함임을 알았으니,
서로가 처음 만났을 때에는 해가 거의 질 무렵이었으므로 잠시 동안 법을 들었을 뿐이었으며, 담무갈은 해가 지자 일어나서 궁중으로 들어간 것이며,
이제 법을 위하여 7년 동안 간절히 우러르면서 다른 마음을 내지도 않았으며, 그가 나오려 할 즈음에는 몸에서 피를 내어 땅에 뿌렸으니, 이에 담무갈은 그가 법을 위하여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으며, 그의 마음은 물러나지 않고 결정되어 의심도 없어서 교화를 받아 낼 수 있음을 알았으므로 그에게 말하기를 “선남자여, 일심으로 자세히 들어라”고 한 것이었다.
上疑諸佛來去,已斷;今但欲聞甚深般若波羅蜜,是故爲說“般若波羅蜜相”。
“般若波羅蜜相”者,如先諸法平等義中說。或有人言:般若波羅蜜力故,觀諸法皆平等;非諸法性性自平等。
是故,曇無竭言:“諸法平等故,般若波羅蜜平等。”所以者何?因果相似故。初觀諸法平等是因,決定心得般若波羅蜜是爲果。
앞에서는 모든 부처님께서 오고 가는 것에 대한 의심을 이미 끊었었고, 여기에서는 다만 매우 깊은 심(甚深) 반야바라밀만을 듣고 싶어 할 뿐이었으므로 그를 위하여 반야바라밀의 상(相)을 설한 것이다.
반야바라밀의 상(相)이란, 앞에서 제법의 평등한 이치인 평등의(平等義) 가운데에서 설명한 것과 같으니,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반야바라밀의 힘 때문에 제법 모두가 평등하다고 관찰하는 것이며, 제법의 그 성품 자체가 저절로 평등한 것은 아니다”고도 하였으니,
이 때문에 담무갈이 말하기를 “제법은 평등하기 때문에 반야바라밀도 평등하다”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원인의 인(因)과 결과의 과(果)가 닮았기 때문이니, 처음에 제법의 평등을 관찰하는 것은 바로 원인의 인(因)이요, 결정된 마음으로 반야바라밀을 얻으면 바로 그것은 결과의 과(果)인 것이다.
問曰:觀諸法平等卽是般若、般若卽是平等,何以分別爲因、果?
묻나니, 제법은 평등하다고 관찰하는 것이 곧 반야요, 반야가 곧 평등이거늘,
무엇 때문에 원인과 결과로 분별하는 것입니까?
答曰:般若及諸法雖一相、、無二無別,行者初觀時是因,觀竟名爲果。如須陁洹道得、向。又如有漏五衆,因時名集,果時名苦。色等一切法平等,卽是般若波羅蜜平等。
답하나니, 반야와 제법은 비록 하나의 일상(一相)이라서 둘도 없는 무이(無二)이고 구별이 없는 무별(無別)이라 할지라도, 수행하는 행자가 처음에 관찰할 때의 그것은 원인의 인(因)이요, 관찰하여서 마치게 되면 결과의 과(果)라 하는 것이다.
마치 수다원의 도에서 과위를 얻는 득(得)과 도에 향하는 향(向)과 같은 것이며,
또 유루(有漏)의 오중(五衆)에서와 같아서 원인일 때를 쌓임의 집(集)이라 하고, 결과일 때를 괴로움의 고(苦)라 하는 것으로, 물질(色) 등의 일체법이 평등하게 되면, 그것이 곧 반야바라밀의 평등인 것이다.
問曰:應說“般若波羅蜜相”,今何以說平等?因不平故有平等,因平故有不平。
於般若中亦不一相、亦不異相,汝何以故欲取一相?
묻나니, 마땅히 반야바라밀의 상(相)을 설해야 되거늘, 지금 무엇 때문에 평등을 설하는 것입니까?
평등하지 않은 불평등(不平等)으로 인하여 평등(平等)이 있는 것이고, 평등으로 인하여 불평등이 있는 것이니, 반야 가운데에서도 역시 하나의 일상(一相)도 아니요, 다른 모양의 이상(異相)도 아닙니다.
그런데 그대는 무엇 때문에 하나의 일상(一相)을 취하려 하는 것입니까?
答曰:般若波羅蜜甚深微妙,不以方便說則無解者;是故若分別不等,則生諸煩惱,三毒增長,所謂憎怨,愛親;愛善,憎不善。
菩薩住是二等中,觀一切法皆平等:住衆生等中,怨親、憎愛皆悉平等,開福德門,閉諸惡趣;住法等中,於一切法中憶想分別、著心取相皆除滅,但見諸法空,空卽是平等。
답하나니, 반야바라밀은 매우 깊은 심심(甚深)하고 미묘하여서 방편으로써 해설하지 않으면 이해하는 이가 없기 때문에 만약 평등하지 않다고 분별한다면, 곧 모든 번뇌가 생기고 3독(毒)이 더욱 자라게 되나니,
이른바 원수를 미워하고 친한 이를 사랑하며 착한 것을 사랑하고 착하지 못한 것을 미워하는 등이 그것이다.
보살은 이 두 가지가 평등한 가운데에 머물러서, 일체법은 모두 평등하다고 관찰하는 것이니,
중생이 평등한 가운데에 머무르면 원수거나 친한 이나 미워하는 이나 사랑하는 이의 모두가 다 평등한 것이니,
복덕의 문이 열리고 모든 나쁜 세계의 악취(惡趣)가 닫히는 것이다.
법이 평등한 법등(法等) 가운데에 머무르면, 일체법 가운데에서 생각과 분별과 집착하는 착심(著心)과 상을 취하는 등의 모든 것이 제거되고, 다만 제법이 공한 법공(法空)만을 보게 되나니, 공이 곧 평등인 공즉시평등(空卽是平等)인 것이다.
有人得是諸法平等空,直趣菩薩道,於空不戲論;有人雖得平等而生戲論:若觀都空,有如是失!
如是人於平等卽是不等。是故此中爲“眞平等”故說“般若波羅蜜等”,非是戲論。離平等、不平等二邊,是般若波羅蜜相。
어떤 사람은 이 제법이 평등한 공의 제법평등공(諸法平等空)을 얻으면 곧장 보살도에 나아가 공에 대하여 희론을 펴지 않지만,
어떤 사람은 비록 평등을 얻었을지라도 희론을 일으키나니, 만약 모든 것이 공하다고만 관찰한다면 이와 같은 과실이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은 평등한 가운데에서도 곧 평등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므로,
여기에서는 진실한 평등의 진평등(眞平等)을 위하여 반야바라밀의 평등을 말하는 것으로, 이것은 희론이 아니며,
평등하다거나 평등하지 않은 불평등(不平等)의 두 치우침의 이변(二邊)을 여읜 것이 곧 반야바라밀의 상(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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