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 釋照明品 第八十一 卷第九十一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삼장법사 구마라집 소역
81. 조명품(照明品)을 풀이함 4
問曰:六波羅蜜外更有何法爲勝?何以言更爲說勝法?
묻나니, 6바라밀 외에 다시 어떠한 법이 있기에 더욱 뛰어나다고 하시는 것이며?
무엇 때문에 다시 그들을 위하여 뛰어난 승법(勝法)을 설한다고 하신 것입니까?
答曰:此中不說波羅蜜,但爲慳者說施,乃至癡者爲說智慧。諸佛、菩薩法,有初、有後。初法,所謂布施、持戒;受戒施果報,得天上福樂。爲說五欲味利少失多,受世閒身,但有衰苦;讚歎遠離世閒、斷愛法,然後爲說四諦,令得須陁洹果。
답하나니, 여기에서는 바라밀을 말한 것이 아니다. 다만 간탐하는 이를 위해서는 보시할 것을 말해 주고, 나아가 어리석은 이를 위해서는 지혜를 말해 줄 뿐이다.
모든 부처님과 보살의 법에는 처음과 나중이 있으니, 처음의 법은 이른바 보시와 지계이며, 지계와 보시의 과보로는 천상의 복락(福樂)을 얻지만,
그들에게 5욕(欲)의 맛을 말해 주는 것은, 이익은 적고 과실만 많을 뿐이며, 세간의 몸을 받으면 다만 쇠퇴와 고통만이 있을 뿐이니, 세간을 멀리 여의고 탐애의 법을 끊는 것을 찬탄한 뒤에야 그들을 위하여 사제(四諦)를 말해 주어 수다원의 과위를 얻게 하는 것이다.
此中菩薩但說欲令衆生得佛道故,先教令行六法。此中善智慧不名爲三解脫門所攝;是善智慧能生布施等善法,能滅慳貪、瞋恚等惡法,能令衆生得生天上。何以知之?更有勝法故。
勝法者,所謂四諦聖法、出法。一切聖人所行法,名爲聖法;出三界生死,名爲出法。以是四諦說法故,隨衆生根因緣,令得須陁洹果乃至得一切種智。此中雖不說初六法,說布施等,當知已攝。
이 가운데에서 보살은 다만 중생으로 하여금 부처님의 불도를 얻게 하고자, 먼저 교화하여 여섯 가지의 육법(六法, 바라밀)을 행하게 할 뿐이니,
선지혜(善智慧)는 3해탈문(解脫門)에 포섭된 것이라고 말하지 않나니, 이 선지혜(善智慧)는 보시 등의 착한 선법을 내고 간탐과 성냄 등의 나쁜 악법을 없애며, 중생으로 하여금 천상에 태어 날 수 있게 하는 것이니, 어떻게 그러하다는 것을 아는가? 보다 더 뛰어난 승법(勝法)이 있기 때문이다.
‘뛰어난 승법(勝法)’이란, 이른바 사제(四諦)의 거룩한 승법(聖法)이며, 벗어나게 하는 출법(出法)이니, 일체의 성인이 행하는 법을 거룩한 승법이라 하며, 삼계(三界)의 생사를 벗어나게 하므로 벗어나게 하는 출법(出法)이라 하는 것이다.
이 사제(四諦)로써 법을 설하기 때문에 중생의 근기와 인연에 따라 수다원의 과위를 얻게 하고, 나아가 일체종지를 얻게 하나니, 이 가운데에서 비록 처음의 여섯 가지의 육법(六法, 바라밀)을 말하지 않았을지라도 보시 등을 말하면 이미 포섭된 것으로 알아야 하는 것이다.
復次,菩薩爲佛道故說是六法;但衆生意劣故,自取小乘,是故不說“布施、持戒生天受報等初六法”。
또 보살은 부처님의 불도를 위하여 이 여섯 가지의 육법(六法, 바라밀)을 설하는 것이나, 다만 중생의 뜻이 열등하기 때문에 스스로 소승(小乘)을 취할 뿐이니,
이러한 까닭에 보시와 지계와 생천(生天)과 과보를 받는 수보(受報) 등의 처음 여섯 가지의 육법을 설해주지 않는 것이다.
舍利弗白佛言:“世尊!先說菩薩是畢竟不可得法;今爲無所有衆生說法,令得無所有法,所謂須陁洹果乃至一切種智。
世尊!菩薩今得無所有法故,能令衆生得無所有法 無所得是有所得?”
사리불 존자가 부처님께 말씀드리기를 “세존이시여, 앞에서 보살은 끝내 얻을 수 없는 필경불가득법(畢竟不可得法)을 설하고, 있는 바가 없는 무소유(無所有) 중생을 위하여 법을 설하셔서, 있는 바가 없는 무소유법(無所有法)을 얻게 하셨으니, 이른바 수다원의 과위 내지는 일체종지에 이르기까지입니다.
세존이시여, 보살은 지금 있는 바가 없는 무소유법(無所有法)을 얻은 까닭에 중생으로 하여금 있는 바가 없는 무소유법(無所有法)을 얻게 할 수 있으니,
그렇다면 얻을 것이 없는 무소득(無所得)이 곧 얻을 것이 있는 유소득(有所得)인 것입니까?”라고 하였다.
佛答:“菩薩行般若波羅蜜時,無有有所得過!何以故?菩薩行般若波羅蜜時不見衆生及法,但諸因緣和合,假名衆生。”
부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얻을 것이 있다는 유소득(有所得)에 어떤 허물도 없으니,
왜냐 하면,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중생과 법을 보지 않나니, 다만 모든 인(因)과 연(緣)이 화합한 것에 임시로 가명을 붙인 것이 중생이기 때문이다.
菩薩住二諦中,爲衆生說法,不但說空、不但說有;爲愛著衆生故說空,爲取相著空衆生故說有;有、無中二處不染。如是方便力爲衆生說法:“衆生!現在我身及我尚不可得,何況當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舍利弗歡喜白佛言:“世尊!曠大心是菩薩!”
보살은 세제와 제일의의 두 가지의 진리인 이제(二諦) 가운데에 머무르면서 중생을 위하여 법을 설하지만, 다만 공(空)만을 말하지도 않고, 다만 존재의 유(有)만을 말하지도 않나니,
애착이 있는 중생을 위해서는 공(空)을 설해 주지만, 상(相)을 취하고 공(空)에 집착하는 중생을 위해서는 존재의 유(有)를 말해 주어서 있다는 유(有)ㆍ없다는 무(無)의 두 가지에 물들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방편력으로써 중생들을 위하여 설법하나니, 중생은 현재 나의 몸인 아신(我身)과 나(我)조차도 오히려 얻을 수 없거늘, 하물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음이겠는가?”라고 하셨다.
사리불 존자가 기뻐하면서 부처님께 말씀드리기를 “세존이시여, 넓고 큰 마음의 광대심(曠大心)을 지닌 이가 바로 보살입니다”라고 하였다.
曠大心者,此中自說因緣,所謂:“無有法可得若一相、若異相。”如人市買,必須交易;大心人則不然。無所依止而能發大莊嚴,大莊嚴故不生三界,亦拔衆生令出三界,而衆生不可得,不縛不解故,一切法空。
‘넓고 큰 마음의 광대심(曠大心)’이란, 여기에서 사리불 존자가 스스로 그 인연을 말하기를, “이른바 일상(一相)이나 다른 모양의 이상(異相)을 얻을 수 있는 어떠한 법도 없나니,
마치 사람이 저자거리에서 물건을 살 때에는 반드시 서로가 교환하는 교역(交易)이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대심(大心)을 지닌 사람은 그렇지 않아서 의지하는 바가 없으나 대장엄(大莊嚴)을 일으키며, 대장엄으로 삼계(三界)에 나지도 않으며, 또한 중생을 구출하여 삼계를 벗어나게 하면서도 중생을 얻을 수 없으니, 속박되지도 않고 벗어나지도 않은 까닭에 일체법은 공(空)한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從久遠以來,煩惱顚倒皆是虛誑不實,是故名無縛;縛無故亦無解。縛卽是垢,解卽是淨。無淨無垢故,無六道分別;不分別六道故,無罪福業;罪福業無故,無煩惱能起罪福業者;不起罪福業,亦不應有果報。
如是諸法畢竟空中而作大莊嚴,是爲希有!譬如人虛空中種樹,樹葉花果,多所利益。
오랜 옛적부터 번뇌와 뒤바뀜의 전도(顚倒), 그 모두는 거짓이요 진실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속박이 없는 무박(無縛)이라 하며, 무박(無縛)이기 때문에 벗어남도 없는 무해(無解)인 것이다.
속박은 곧 더러운 구(垢)요, 해탈은 곧 깨끗한 정(淨)이니, 깨끗한 정(淨)도 없고 더러운 구(垢)도 없기 때문에 6도(道)의 분별이 없으며, 6도를 분별하지 않기 때문에 죄와 복의 업도 없으며, 죄와 복의 업이 없기 때문에 죄의 복의 업을 일으킬 수 있는 번뇌가 없으니, 죄와 복의 업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과보 또한 있지 않은 것이다.
이와 같이 제법이 필경공인 가운데에서 대장엄을 짓나니, 이것이 바로 희유한 것이니,
비유하자면, 마치 사람이 허공에 나무를 심으면 나무ㆍ잎ㆍ꽃ㆍ열매로 인하여 이로움이 많은 것과 같은 것이다.
佛可舍利弗意。舍利弗難是空故,佛亦答、亦可以其說空故可,以其難空故答,
所謂:“舍利弗!若衆生及諸法先有今無,諸佛賢聖有過罪。”過罪者,所謂令衆生入無餘涅槃,永滅色等一切法;入空中皆無所有,以斷滅衆生及一切法,故有過罪。
부처님께서 사리불 존자의 뜻을 인가하셨으니, 사리불 존자가 이 공(空)에 대하여 따진 까닭에 부처님께서 대답하시면서 인가하셨으니, 그 공(空)을 말한 까닭에 인가하는 것이요, 그 공(空)을 따진 까닭에 대답하신 것이다.
이른바 “사리불아, 만약 중생과 제법이 앞에서는 있었으나 지금은 없는 것이라면, 모든 부처님과 성현에게는 죄과가 있느니라. 그 죄과(罪過)란, 이른바 중생으로 하여금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들게 하여 영원히 물질(色) 등의 일체법을 없애고, 공(空)한 가운데에 들게 하여서 모두가 있지 않는 무소유(無所有)라고 하여서 중생과 일체법을 아주 없어지게 단멸(斷滅)한 때문에 죄과가 있게 되는 것이다.
舍利弗!衆生及一切法先來無,若有佛、無佛,常住不異,是諸法實相;是故無六道生死,亦無衆生可拔出。
舍利弗!一切法先空,是故菩薩於諸佛所聞諸法如是相故,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作是念:“菩提中亦無有法可得,亦無實定法令衆生著而不可度,但衆生癡狂顚倒故,著是虛誑法。”
사리불아, 중생과 일체법은 어디서 오는 곳도 없으니, 부처님이 계시거나 계시지 않거나 간에 항상 머물러 있으면서 달라지지 않는 상주불이(常住不異), 이것이 바로 제법의 실상(實相)이니라.
이러한 까닭에 6도(道)의 생사도 없고 또한 중생을 구하는 것도 없느니라.
사리불아, 일체법은 본래부터 공한 선공(先空)이므로 보살은 모든 부처님의 처소에서 제법이 이러하다는 상(相)을 듣는 까닭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일으키면서 생각하기를 ‘보리 가운데에서는 얻을 수 있는 어떠한 법도 없으며, 또한 중생이 집착하면서 제도될 수 없게 하는 어떤 정해진 정법(定法)도 없으나, 다만 중생이 어리석고 뒤바뀐 까닭에 이 거짓된 허광법(虛誑法)에 집착할 뿐이다’라고 하느니라.
是故菩薩發大莊嚴,不轉於阿耨多羅三藐三菩提,作是念:“我必當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非不得;得已,用實法利益衆生;利益衆生故,衆生從顚倒得出。”
그러므로 보살은 대 장엄을 일으켜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물러나지 않으면서 생각하기를 ‘나는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리니, 얻지 못할 까닭이 없는 것이다’고 하며,
얻은 뒤에는 진실한 실법(實法)으로써 중생을 이롭게 하고, 중생을 이롭게 한 까닭에 그 중생은 뒤바뀐 전도에서 벗어나게 되느니라”고 하셨다.
欲明了是事故,經中說幻師譬喩:幻師卽是菩薩,幻師所作園林、廬觀卽是六波羅蜜等度衆生法,幻師所作象馬、男女卽是菩薩所度衆生。如幻師一身,以幻力故,幻作衆生、園林、廬觀等娛樂衆生;若幻師以所幻作事爲實,於所幻人求其恩惠,卽是狂人!菩薩亦如是,從諸佛聞一切法性空如幻,而以布施等利益衆生;欲求恩惠福報,卽是顚倒。
이러함을 분명히 알게 하시고자, 경에서 환사(幻師, 마술사)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셨으니,
환사(幻師, 마술사)란 곧 보살을 말하는 것이고,
환사(幻師)가 만든 동산 숲ㆍ집ㆍ누관(盧觀)이란 곧 중생을 제도하는 육바라밀 등의 법이며,
환사(幻師)가 만든 코끼리ㆍ말ㆍ남자ㆍ여인이란 곧 보살이 제도해야 할 중생을 말하는 것이다.
마치 환사(幻師)가 혼자서 환술의 힘으로 중생과 동산 숲과 집과 누관 등을 환술로 만들어서 중생들을 즐겁게 해 주는 것과 같으나, 만약 환사가 환술로 만든 일들을 진실이라 생각하여 환술로 된 사람으로부터 그 은혜를 구한다면, 그것은 곧 미친것이니,
보살 또한 이와 같아서 모든 부처님으로부터 “일체법의 성품은 공하고 마치 환(幻)과 같다”는 말씀을 듣고 보시 등으로 중생들을 이롭게 하면서 그들에게 은혜와 복의 보답을 구한다면 곧 그것은 뒤바뀌어 전도(顚倒)되는 것이다.
問曰:幻法呪術實有,幻所作物可虛。如衆生空,菩薩亦空,菩薩不化作衆生,何得爲喩?
묻나니, 환술을 부리는 환법(幻法)과 주술(呪術)은 실제로 존재하지만 환술로 만들어진 물건은 거짓인 것입니다.
마치 중생이 공한 것과 같이 보살 역시도 공하여서, 보살은 중생을 변화로 만들지 못하거늘 어찌하여 비유로 삼을 수 있는 것입니까?
答曰:諸法實相中,法尚無,何況衆生!衆生異名,名爲幻師,幻師實無,何以言“幻師有而所幻者無”?
如汝以幻師實有、所幻者無,聖人觀幻師及所幻物不異。以明了事故說譬喩,取其少許相似處爲喩,何以盡取爲難?如師子喩王,師子於獸中無畏,王於群下自在無難,故以爲喩;復何可責四腳負毛爲異也?
답하나니, 제법의 실상 가운데에서는 법조차도 없거늘 하물며 중생이겠는가!
중생이라는 이름을 다르게 불러서 환사(幻師, 마술사)라 한 것으로, 환사도 실제로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환사는 존재하나 환술로 만든 것은 없다’고 하는 것인가?
그대는 ‘환사는 실제로 존재하고 환술로 만든 것은 없다’고 하지만, 성인은 환사와 환술로 된 물건이 다름이 없다고 관찰하나니, 그러함에 대하여 분명히 알게 하시고자 비유를 드신 것이고, 그 작은 부분의 서로 비슷한 것을 비유로 삼은 것인데 무엇 때문에 모두 취(取)하여서 따지는 것인가?
마치 사자를 왕에게 비유한 것과 같으니, 사자는 짐승 가운데서 두려움이 없고, 왕은 신하들 가운데서 자재하여 어려울 것이 없기 때문에 비유로 삼은 것이거늘, 어찌 네 발이 돋쳤고 털이 있는 것이 다르다고 책망하겠는가!
佛說性空法,諸法皆空,猶有衆生,是故說幻爲喩。我今說喩以破衆生,汝云何復以衆生爲難?
爾時,須菩提白佛言:“世尊!何等是成就衆生、淨佛國土道?”
須菩提雖知菩薩道,以中說甚深性空故,聽者生疑,是故發問。
부처님께서는 성품이 공한 성공법(性空法)을 설하시고, 제법은 모두가 공함에도 오히려 중생은 있는 것이기 때문에 환(幻)의 비유를 드신 것이다.
나는 그 비유로써 중생을 타파하고 있거늘 그대는 어찌하여 다시 중생을 가지고 따지는 것인가!
그 때에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기를 “세존이시여, 어떠한 것이 중생을 성취시키고 부처님의 불국토를 깨끗하게 하는 도(道)입니까”라고 하였다.
수보리 존자는 비록 보살의 도를 알고 있었을지라도, 여기에서는 심히 깊은 심심성공(甚深性空)을 말씀하시는 것이므로 듣는 이들 중에서는 의심을 내기도 할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질문을 한 것이다.
佛答:“菩薩從初發心,行六波羅蜜乃至十八不共法,是菩薩道;行是道,成就衆生、淨佛國土。”
부처님께서은 대답하시기를 “보살이 처음 초발심한 때부터 6바라밀 내지는 18불공법을 행하나니, 이것이 바로 보살의 도요, 이 보살도를 행하여 중생을 성취시키고, 부처님의 불국토를 깨끗하게 하느니라”고 하셨다.
須菩提復問:“云何行是法成就衆生?”須菩提意:若是法性空,衆生亦性空,云何可得成就?
수보리 존자가 다시 “어떻게 이 법을 행하여 중생을 성취시킵니까?”라고 여쭈었는데,
수보리 존자의 뜻은 ‘만약 이 법의 성품이 공한 성공(性空)이고 중생도 또한 성공(性空)이라면 어떻게 성취시킬 수 있겠는가?’라고 한 것이다.
佛答:“菩薩以方便力故,以布施法教化衆生,不教令著布施以爲眞實。”
方便者,菩薩語衆生:“汝曹,善男子!來布施,莫著是布施。”如經中說。
衆生以布施生貴樂處,貴樂因緣故生我憍慢,我憍慢增長故破善法,破善法故墮三惡道;是故菩薩先教言:“莫著布施!”但因是布施、修持戒等善法,皆迴是法向涅槃。所以者何?是性空諸法實相,不可取相。
부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보살은 방편력으로 보시법(布施法)으로써 중생들을 교화하고, 그들로 하여금 보시에 집착하지 않게 하는 것으로 진실을 삼느니라”고 하셨다.
방편(方便)이라 함이란, 보살이 중생에게 말하기를 “그대들 선남자여, 와서 보시하면서도 이 보시에 집착하지 말라”고 한 것이니, 경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중생은 보시로써 존귀하고 쾌락한 곳에 태어나며, 존귀와 쾌락을 누리는 인연 때문에 잘난 체하는 교만을 내고, 잘난 체하는 교만이 더욱 자라면, 그 때문에 착한 선법을 깨뜨리며, 착한 선법을 깨뜨린 까닭에 3악도에 떨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까닭에 보살은 교화하면서 우선적으로 말하는 것이, “보시에 집착하지 말라. 다만 이 보시로 인하여 지계 등의 착한 선법을 닦아서, 이러한 제법을 모두 돌이켜 열반으로 향할 뿐이니,
왜냐하면, 이 성품이 공한 성공(性空)의 제법 실상은 상(相)을 취할 수 없기 때문이다”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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