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  論釋實際品 第八十 卷九十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삼장법사 구마라집 소역  

80. 실제품(實際品) 풀이함 1  

 

▶經. 須菩提白佛言:“世尊!若衆生畢竟不可得,菩薩爲誰故行般若波羅蜜?”

▷경.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중생이란 끝내 얻을  없는 필경불가득(畢竟不可得)이라면, 보살은 누구를 위하여 반야바라밀을 행하는지요?”


佛告須菩提:“菩薩爲實際故行般若波羅蜜。須菩提!實際、衆生際異者,菩薩不行般若波羅蜜。

須菩提!實際、衆生際不異,以是故,菩薩摩訶薩爲利益衆生故行般若波羅蜜。

復次,須菩提!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時,以不壞實際法,立衆生於實際中。”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은 실제(實際)를 위하여 반야바라밀을 행하느니라. 

수보리야, 실제와 중생제(衆生際)가 다르다면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지 않을 것이니, 

수보리야, 실제(實際)와 중생제(衆生際)는 다르지 않기 때문에 보살마하살은 중생들을 이롭게 하기 위하여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니라.

또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실제의 법을 파괴하지 않음으로써 중생을 실제 가운데에 세우느니라.”

 

 실제(實際)= 실실제(實實際), 진제(眞際), 본제(本際), 여래, 아라한, 실재, 한계, 진여(眞如), 깨달음[菩提], 여래장(如來藏), koti 혹은 bhūta-koti의 한역어이며, '실재 · 진실의 영역 · 한계'라는 의미이며, 실제의 뜻에 대해서는 불전마다 조금씩 다르게 설명하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진실의 영역', 즉 궁극적인 깨달음의 경지를 의미한다.
대승 불전인 『대품반야경(大品般若經)』에서는 "보살은 실제(實際)를 위해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을 행한다"라고 하였다. 또한 "보살 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실제(實際)의 법(法)을 무너뜨리지 않고 중생을 실제(實際)에 세운다"라고 하였다. 본 경전의 주석서인 『대지도론(大智度論)』에서도 "아라한을 일컬어 '실제에 머무는 자'라고 하는데, 이는 법성(法性)을 증득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이를 통해 '깨달음을 증득한 지위'가 실제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다움


須菩提白佛言:“世尊!若實際卽是衆生際,菩薩則爲建立實際於實際。

世尊!若建立實際於實際,則爲建立自性於自性。世尊!不得建立自性於自性。

世尊!云何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時,建立衆生於實際?”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실제(實際)가  중생제(衆生際)라면, 보살은  실제를 실제에 세우는 것이 되며, 

세존이시여, 만약 실제를 실제에 세운다면  스스로의 성품인 자성(自性)을 자성 건립하 것이 됩니다. 

세존이시여, 자성(自性) 자성 수는 없는 것이니,  

세존이시여, 어떻게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중생을 실제에 세우는지요?”


佛告須菩提:“實際不可建立於實際,自性不可建立於自性。

須菩提!今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時,以方便力故,建立衆生於實際;實際亦不異衆生際,實際、衆生際無二無別。”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실제(實際)는 실제에 세울  없고, 자성(自性) 자성 세울  없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방편력으로써 중생을 실제에 세우는 것이니라. 

실제는 또한 중생제와 다르지 않나니, 실제와 중생제는 둘이 아니고 분별도 없는 무이별(無二別)이니라.”


須菩提白佛言:“世尊!何等是諸菩薩摩訶薩方便力?

用是方便力,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時,建立衆生於實際,亦不壞實際相?”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떠한 것이 모든 보살마하살의 방편력이기에, 보살마하살은  방편력으로써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중생을 실제에 세우면서도 또한 실제의 상(相) 파괴하지 않는지요?”


佛告須菩提:“若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時,以方便力故,建立衆生於布施。建立已,說布施先後際相,作是言:‘如是布施,前際空、後際空、中際亦空,施者亦空、施報亦空、受者亦空。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는 방편력으로써 중생을 보시에 세운 뒤에, 보시의 전후제(前後際)의 상(相) 설하여 주기를, ‘이와 같은 보시는 전제(前際, 과거)도 공하고, 후제(後際, 미래)도 공하고, 중제(中際, 현재) 또한 공하며, 

보시하는 시자(施者)도 공하고, 보시의 과보인 시보(施報)도 공하고, 받는 수자(受者) 또한 공한 것이다.


諸善男子!是一切法實際中不可得,汝等莫念布施異、施者異、施報異、受者異。若汝等不念布施異、施者異、施報異、受者異,是時,布施能取甘露味、得甘露味果。

선남자들이여,  일체법은 실제(實際) 가운데서 얻을  없나니, 그대들은 '보시가 다르고, 보시하는 시자(施者) 다르며, 보시한 과보인 시보(施報)도 다르고, 받는 수자(受者) 다르다'고 생각하지 마시오. 

만약 그대들이 '보시가 다르고, 보시하는 시자(施者) 다르며, 보시한 과보인 시보(施報)도 다르고, 받는 수자(受者)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 그 때에는 보시는 감로미(甘露味)를 취하면서 감로미의 과보를 얻을 것이오!


汝善男子!以是布施故,莫著色,莫著受、想、行、識。何以故?是布施、布施相空,施者、施者空,施報、施報空,受者、受者空,空中布施不可得、施者不可得、施報不可得、受者不可得。何以故?是諸法畢竟自性空故。’

그대들 선남자여,  보시 때문에 물질(色)에 집착하지 말고 수상행식(受想行識)에도 집착하지 마시오. 

왜냐하면,  보시는 보시의 상(相) 공하고, 보시하는 시자(施者) 시자(施者) 상(相) 공하며, 보시한 과보인 시보(施報)는 시보(施報) 공하고, 받는 수자(受者) 수자(受者) 공하기 때문이니, 

공한 가운데에서는 보시도 얻을  없을 수 없고, 보시하는 이도 얻을  없으며, 보시한 과보도 얻을  없고, 받는  또한 얻을  없는 것이오!

왜냐 하면, 법은 마침내  성품이 공한 필경자성공(畢竟自性空)이기 때문이오’라고 해야 하느니라.


復次,須菩提!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時,以方便力故,教衆生持戒;語衆生言:‘汝善男子!除捨殺生法,乃至除捨邪見。何以故?善男子!如汝所分別法,是諸法無如是性。

汝善男子當諦思惟:何等是衆生而欲奪命?用何等物奪命?乃至邪見亦如是。’

또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방편력으로써 중생을 교화하여 계율을 지니게 하면서 중생들에게 말하기를 ‘그대 선남자들이여, 살생(殺生)하는 법을 버리고 없애며, 나아가 삿된 견해의 사견(邪見)의 법을 버리고 없애시오. 왜냐 하면 선남자여, 마치 그대들이 분별하는 법과 같이 법에는 그러한 성품이 없기 때문이오!

그대 선남자들이여, 마땅히 살펴 사유하기를 '어떠한 것이 중생이기에 목숨을 빼앗으려 하는 것이며?

어떠한 물건으로써 목숨을 빼앗는 것인가?'라고 해야 하나니, 

이에 삿된 사견 이르기까지도 역시 이와 같이 해야 하는 것이오’라고 해야 하느니라.


須菩提!菩薩摩訶薩如是方便力成就衆生。是菩薩摩訶薩卽爲衆生說布施、持戒果報,是布施、持戒果報自性空;知布施、持戒果報自性空已,是中不著;不著故心不散,能生智慧;以是智慧斷一切結使煩惱,入無餘涅槃。

是世俗法,非第一實義。何以故?空中無有滅、亦無使滅者。諸法畢竟空,卽是涅槃。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방편력으로 중생을 성취시키느니라. 

 보살마하살은  중생들을 위하여 보시와 지계(持戒)의 과보를 말하지만,  보시와 지계의 과보는 스스로의 성품이 공한 자성공(自性空)이느니라. 

보시와 지계의 과보가 자성공(自性空)이라는 것을  뒤에는  가운데에 집착하지 않으며,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마음이 산란하지 않아서 능히 지혜를 일으키나니,  지혜로써 일체의 번뇌에 얽힌 결(結)과 부림을 당하는 사(使)의 결사(結使)와 번뇌를 끊고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들어가느니라.

이것은  세속의 법이요 으뜸가는 진실한 이치인 제일실의(第一實義)가 아니니, 

왜냐 하면, 공한 가운데에서는 사라지는 것도 없고, 사라지게 하는 이도 없으며,법의 필경공이  열반이기 때문이니라.


復次,須菩提!菩薩摩訶薩見衆生瞋恚惱心,教言:‘汝善男子!來修行忍辱,作忍辱人,當樂忍辱。汝所瞋者自性空故。汝來!善男子!如是思惟:≺我於何所法中瞋?誰爲瞋者?所瞋者誰?≻是法皆空,是性空法無不空時。

是空非諸佛作,非辟支佛、聲聞作,非菩薩摩訶薩作,非諸天、鬼神、龍王、阿修羅、緊那羅、摩睺羅伽,非四天王天乃至非他化自在天、非梵衆天乃至非淨居天、非無邊空處乃至非有想非無想處諸天所作。

또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중생의 성내는 마음의 진에뇌심(瞋恚惱心)을 보면, 교화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해주느니라.

‘그대 선남자여, 어서 와서 인욕을 수행하시오. 인욕하는 사람은 마땅히 인욕하기를 좋아해야 하나니, 그대가 화를 내고 있는 자성공(自性空)이기 때문이오.

그대는 어서 오시오. 선남자여, 그대는 '나는 어떠한  가운데서 화를 내고 있는 것인가?

 누가 화를 내는 이며? 화를 내게 하는 이는 누구인가?', 이와 같이 생각하시오. 

 법은 모두가 공이요, 이것은 성품이 공한 법이어서 공하지 않을 때가 없는 것이오.

 공은 모든 부처님께서 만든 것도 아니요, 벽지불과 성문이 만든 것도 아니며, 보살마하살이 만든 것도 아니요, 모든 하늘ㆍ귀신ㆍ용왕ㆍ아수라ㆍ긴나라ㆍ마후라가 등이 만든 것도 아니며, 4천왕이 만든 것도 아니며, 나아가 타화자재천이 만든 것도 아니고 범중천(梵衆天)이 만든 것도 아니며, 나아가 정거천(淨居天)이 만든 것도 아니고 무변공처 내지는 비유상비무상처의 모든 하늘들이 만든 것도 아니오.


汝當如是思惟:≺所瞋誰?誰是瞋者?何等是瞋事?≻是一切法性空,性空法中無有所瞋。’

如是,須菩提!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時,以是因緣,建立衆生於性空,次第漸漸示、教、利、喜,令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是世俗法,非第一實義。

何以故?是性空中無有得者、無有得法、無有得處。

須菩提!是名實際性空法。菩薩摩訶薩爲衆生故行是法,衆生亦不可得。何以故?一切法離衆生相。

그대들은 '화를 내게 하는 이는 누구이며?  누가 성을 내는 이이며? 어떠한 것이 성을 내는 것인가?'라 생각해야 하나니,  일체법은 성품이 공하고, 성품이 공한 공법(空法) 가운데에서는 성을 낸다는 것이 없는 것이오.’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이러한 인연으로써 중생을 성품이 공한 성공(性空) 세워 차례대로 점점 보여주고, 가르쳐주며, 이롭게 하고, 기쁘게 하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하나니, 

이것은 세속의 법이요 으뜸가는 진실한 이치의 제일실의(第一實義)가 아니니라. 

왜냐 하면,  성품이 공한 가운데에서는 얻는 이도 없고, 얻을 법도 없으며, 얻을 곳도 없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이를  실제의 성품이 공한 공법(空法)이라 하나니, 

보살마하살은 중생을 위하여 이러한 법을 행하면서도 중생 또한 얻을  없느니라. 

왜냐 하면, 일체법은 중생의 중생상(衆生相)모양을 여의기 때문이니라.


復次,須菩提!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時,方便力故,見衆生懈怠,教令身精進、心精進;作是言:

‘諸善男子!諸法性空中無懈怠法、無懈怠者、無懈怠事;是一切法性皆空,無過性空者。汝等生身精進、心精進,爲生善法故,莫懈怠!

또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방편력으로 중생들이 게으른 것을 보면, 교화하여 몸으로 정진하는 신정진(身精進)하고, 마음으로 정진하는 심정진(心精進)하게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해주느니라.

‘선남자들이여,법의 성품이 공한 가운데에서는 게으름의 해태법(懈怠法)도 없고, 게으름을 피우는 해태자(懈怠者)도 없으며, 게으름을 피우는 해태사(懈怠事) 없는 것이오. 

일체법의 성품은 모두가 공한 성공(性空)이라서, 성공(性空) 넘어서는 것이 없나니, 그대들은 몸의 신정진(身精進) 마음의 심정진(心精進) 내어 착한법을 낳기 위해서는 게으름을 피우지 않아야 하는 것이오.


善男子!若布施、若持戒、若忍辱、若精進、若禪定、若智慧,若諸禪定、解脫、三昧,若四念處乃至八聖道分,若空解脫門,無相、無作解脫門,乃至十八不共法中,莫懈怠!

諸善男子!是一切法性空中,當知無㝵相,無㝵法中無懈怠者、無懈怠法。

如是,須菩提!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時,教衆生令住性空,不墮二法。

何以故?是性空無二無別故,是無二法則無可瞋處。

선남자들이여, 보시하고, 계율을 지니며, 인욕을 닦고, 정진을 행하며, 선정을 행하고, 지혜를 행하며, 모든 선정ㆍ해탈ㆍ삼매와 4념처 내지는 8성도분과 공해탈문과 무상ㆍ무작의 해탈문 내지는 18불공법에 이르기까지를 행하는 가운데에서 게으름을 피우지 마시오. 

선남자들이여,  일체법의 성품이 공한 가운데에서 마땅히 장애 없는 무애상(無礙相)을 알아야 하나니, 장애가 없는 무애법(無礙相法) 가운데에서는 게으름을 피우는 이도 없고, 게으름을 피우는 법도 없는 것이오.’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중생들을 교화하여 성품이 공한 성공(性空) 머물러서 양변의 법인 이법(二法)에 떨어지지 않게 하느니라. 

왜냐하면,  성품이 공한 성공(性空)은 둘이 없는 무이(無二)이고 분별도 없는 무별(無別)이기 때문이니,

둘이 없는 무이법(無二法)이라서 성을 낼만한 곳의 진처(瞋處)가 없는 것이니라.


復次,須菩提!菩薩摩訶薩行性空般若波羅蜜時,教衆生令精進,

作是言:‘諸善男子!勤精進,若布施、若持戒、若忍辱、若精進、若禪定、若智慧,若禪定、解脫、三昧,若四念處乃至八聖道分,若空解脫門,無相、無作解脫門,若佛十力、若四無所畏、若四無㝵智、若十八不共法、若大慈大悲。是諸法,汝等莫念二相、莫念不二相!

何以故?是法性皆空,是性空法不應用二相念、不應用不二相念。’

또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성품이 공한 성공(性空)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중생을 교화하여 정진하게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여 주나니, 

‘선남자들이여,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ㆍ지혜와 선정ㆍ해탈ㆍ삼매와 4념처 내지는 8성도분과 공해탈문ㆍ무상ㆍ무작의 해탈문과 부처님의 10력과 4무소외와 4무애지와 18불공법과 대자대비에 부지런히 정진하며, 

이러한 제법에 대하여 그대들은 둘이라는 이상(二相)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둘이 아니라는 불이상(不二相)이라고도 생각지 말아야 하오.

왜냐 하면,  법성(法性)의 성품은 모두가 공하며,  성품이 공한 성공법(性空法)에서는 둘이라는 이상(二相)으로 생각하지도 않아야 하고, 둘이 아니라는 불이상(不二相)으로 생각하지도 않아야 하기 때문이오.’


如是,須菩提!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以方便力故,成就衆生。成就衆生已,次第教令得須陁洹果、斯陁含果、阿那含果、阿羅漢果、辟支佛道、菩薩位,令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방편력으로 중생들을 성취시키며,

중생들을 성취시킨 뒤에는 차례로 교화하여서 수다원의 과위와 사다함의 과위와 아나함의 과위와 아라한의 과위와 벽지불의 도와 보살의 지위를 얻게 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하느니라.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