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 釋道樹品 第七十一 卷八十五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삼장법사 구마라집 소역  

71. 도수품(道樹品) 풀이함 2

 

須菩提白佛言:“世尊!但一切種智無法?色、受、想、行、識亦無法?內外法亦無法?四禪、四無量心、四無色定,四念處、四正勤、四如意足、五根、五力、七覺分、八聖道分,空三昧、無相三昧、無作三昧,八背捨、九次第定,佛十力、四無所畏、四無㝵智、十八不共法,大慈、大悲、大喜、大捨,初神通、第二、第三、第四、第五、第六神通、有爲相、無爲相亦無法?”

佛告須菩提:“色亦無法,乃至有爲相、無爲相亦無法。”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다만 일체종지만이 없는 무법(無法)인지요? 아니면, 색(色)ㆍ 느낌(受)ㆍ생각(想)ㆍ 지어감(行)ㆍ분별(識)의 오중(五衆, 오온) 또한 없는 무법(無法)이며, 

내외법(內外法, 12입) 또한 없는 무법(無法)이며, 사선과무량심과무색정과념처와정근과여의족과근과력과 7각분과성도분과 공삼매(空三昧)와 무상삼매(無相三昧)와 무작삼매(無作三昧)와배사와차제정과 

부처님의력과무소외와무애지와 18불공법(不共法)과 대자대비(大慈大悲)와 대희대사(大喜大捨)와  번째의신통(初神通)과 제2ㆍ제3ㆍ제4ㆍ제5ㆍ제6의 신통과 유위상(有爲相)과 무위상(無爲相) 또한 없는 무법(無法)인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물질(色) 또한 없는법이며, 나아가 유위상과 무위상도 무법(無法)이니라.”


須菩提言:“世尊!何因緣故一切種智無法,色無法乃至有爲相、無爲相亦無法?”

佛言:“一切種智自性無故,若法自性無是名無法。色乃至有爲、無爲相亦如是。”

수보리 존자가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무슨 인연으로 일체종지는법(無法)이고 물질은 무법(無法)이며, 나아가 유위상과 무위상까지도 또한 무법(無法)인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일체종지는  성품이 없는 무자성(無自性)이기 때문이니라. 만약 법에 자성(自性) 없다면 이를  무법(無法)이라 하나니, 물질(色)에서부터 유위상과 무위상 또한 그와 같으니라.”


“世尊!何因緣故諸法自性無?”

佛言:“諸法和合因緣故生法中無自性,若無自性是名無法。

以是故,須菩提!菩薩摩訶薩當知一切法無性。何以故?一切法自性空故,以是故當知一切法無性。”

“세존이시여, 무슨 인연 때문에법에는 자성(自性)이 없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제법은 화합한 인연(因緣)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니, 그러한  가운데에서는 무자성(無自性)이니라. 

만약 무자성(無自性)이라면, 이를 무법(無法)이라 부르느니라. 

그러므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일체법은 무자성(無自性)이라고 알아야 하느니라. 

왜냐하면, 일체법의 자성(自性)이 공(空)하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일체법은 자성(自性) 없는 것으로 알아야 하느니라.”


須菩提白佛言:“世尊!若一切法無性,初發意菩薩以何等方便力能行檀波羅蜜,淨佛世界、成就衆生?

能行尸羅波羅蜜、羼提波羅蜜、毘梨耶波羅蜜、禪波羅蜜、般若波羅蜜,行初禪乃至第四禪,行慈心乃至捨心,行空處乃至非有想非無想處,內空乃至無法有法空,四念處乃至八聖道分,空三昧、無相三昧、無作三昧、八背捨、九次第定、佛十力、四無所畏、四無㝵智、十八不共法、大慈大悲,能行一切種智,淨佛世界、成就衆生?”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일체법에 자성(自性)이 없다면, 처음에 뜻을  초발의(初發意菩) 보살은 어떠한 방편력(方便力)으로써 능히 단(보시)바라밀을 행하여 부처님의세계를 깨끗하게 하고? 중생을 성취시키며? 능히 시라(지계)바라밀과 찬제(인욕)바라밀과 비리야(정진)바라밀과 선바라밀과 반야바라밀을 행하며? 초선(初禪)에서부터 제4선(第四禪)까지를 행하며? 

자심(慈心)에서부터 사심(捨心)까지를 행하며? 공처(空處)에서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常處)까지와 내공(內空)에서 무법유법공(無法有法空)까지와념처에서성도분까지와 공삼매ㆍ무상삼매ㆍ무작삼매와배사ㆍ9차제정ㆍ부처님의력ㆍ사무소외ㆍ사무애지ㆍ18불공법과 대자대비를 행하며? 

능히 일체종지를 행하면서 부처님의세계를 깨끗하게 하고 중생을 성취시키는지요?”


佛告須菩提:“菩薩摩訶薩能學諸法無性,亦能淨佛世界、成就衆生,知世界、衆生亦無性,卽是方便力。

須菩提!是菩薩摩訶薩行檀波羅蜜修學佛道,行尸羅波羅蜜修學佛道,行羼提波羅蜜、毘梨耶波羅蜜、禪波羅蜜、般若波羅蜜修學佛道,乃至行一切種智修學佛道,亦知佛道無性。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능히법에 성품이 없는 무성(無性)인 것을 배워서 능히 부처님의세계를 깨끗하게 하고, 중생을 성취시키며, 세계와 중생 또한 성품이 없는 무성(無性)이라고 안다면, 그것이 곧 방편력(方便力)이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단(보시)바라밀을 행하여 부처님 불도(佛道)를 닦고 배우며, 시라(지계)바라밀을 행하여 부처님의 불도를 닦고 배우며, 찬제(인욕)바라밀과 비리야(정진)바라밀과 선바라밀과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부처님의 불도를 닦고 배우며, 나아가 일체종지를 행하여 부처님의 불도를 닦고 배우나, 역시 부처님의 불도 또한 무성(無性)이라고 알아야 하느니라.


是菩薩摩訶薩行六波羅蜜修學佛道,乃至未成就佛十力、四無所畏、四無㝵智、十八不共法、大慈大悲、一切種智,是爲修學佛道,能具足佛道因緣;具足佛道因緣已,用一念相應慧得一切種智;爾時,一切煩惱習永盡,以不生故。
是時,以佛眼觀三千大千世界,無法尚不可得,何況有法!

如是,須菩提!菩薩摩訶薩應行無性般若波羅蜜。

須菩提!是名菩薩摩訶薩方便力。無法尚不可得,何況有法!

나아가  보살마하살이바라밀을 행하여 부처님의 불도를 닦고 배울 때에는, 부처님의력과무소외와무애지와 18불공법과 대자대비와 일체종지에 이르기까지를 아직 성취하지 못하였을지라도 이것은 부처님의 불도를 닦고 배우는 것이니, 부처님의 불도의 인연을 두루 갖출  있으며,  

부처님의 불도의 인연을 두루 갖추고 나면,  생각의 일념(一念)과 상응하는 지혜로써 일체종지를 얻게 되나니, 

이 때에 비로소 일체의 번뇌와 습기가 영원히 다하여 생기지 않기 때문이니라.

이 때에는 불안(佛眼)으로천대천세계를 관찰하여도 없는법(無法)이라서 오히려 얻을  없거늘, 하물며 존재하는 유법(有法)이겠는가!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성품이 없는 무성(無性) 반야바라밀을 행하여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이를 곧 보살마하살의 방편력(方便力)이라 하나니, 

없는 무법(無法)조차도 오히려 얻지 못하는 불가득이거늘 하물며 존재하는 유법(有法)이겠는가!


須菩提!是菩薩摩訶薩若布施時,布施無法尚不可得,何況有法!受者及菩薩心,無法尚不知,何況有法!乃至一切種智,得者、得法、得處,無法尚不知,何況有法!

何以故?一切法本性爾。非佛作,非聲聞、辟支佛作,亦非餘人作,一切法無作者故。”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보시할 때에는 보시조차도 없는 무법(無法)이라 얻지 못하는 불가득이거늘, 하물며 존재하는법(有法)이겠느는가!

받는 수자(受者)와 보살의 마음은 없는 무법이라서 오히려 알지 못하거늘, 하물며 존재하는법이겠는가! 

이에 일체종지에 이르기까지 얻는 득자(得者)와 얻는법(得法)과 얻는 곳의 득처(得處)도 없는법이라서 오히려 알지 못하거늘, 하물며 존재하는법이겠는가!

왜냐 하면, 일체법의 본성(本性)이 그러하기 때문이니라. 

그것은 부처님이 짓는 것도 아니요, 성문이나 벽지불이 짓는 것도 아니며, 또한  밖의 다른 사람들이 짓는 것도 아니니, 일체법은 짓는 작자(作者)가 없기 때문이니라.”


須菩提白佛言:“世尊!諸法、諸法性離耶?”

佛言:“如是!如是!諸法、諸法性離。”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법의 법성(法性)은법의 법성(法性) 여의는 것인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참으로 그러하고 그러하느니라.법은법의 법성(法性) 여의느니라.


“世尊!若諸法、諸法性離,云何離法能知離法若有、若無?

何以故?無法不能知無法,有法不能知有法;無法不能知有法,有法不能知無法。世尊!如是一切法無所有相,云何菩薩摩訶薩作是分別是法若有、若無?”

佛言:“菩薩摩訶薩以世諦故示衆生若有、若無,非以第一義。”

“세존이시여, 만약 제법이 제법의 법성(法性) 여읜다면, 어떻게법의 법성(法性) 여의어야 법을 여읨이 있다ㆍ없다는 것을   있습니까?

 왜냐 하면, 없는법은 없는법을 알지 못하고, 있는법은 있는법을 알지 못하며, 없는법은 있는법을 알지 못하고, 있는법도 없는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일체법은 아무것도 없는 무소유상(無所有相)이거늘 어떻게 보살마하살이  법은 있다ㆍ없다고 분별하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세속의 이치인 세제(世諦)로써 중생에게 ‘있다ㆍ없다’  보이는 것이요, 제일의(第一義)에 의하는 것이 아니니라.”


“世尊!世諦、第一義諦有異耶?”

“須菩提!世諦、第一義諦無異也。何以故?世諦如卽是第一義諦如。

以衆生不知、不見是如故,菩薩摩訶薩以世諦示若有、若無。

復次,須菩提!衆生於五受衆中有著相故,不知無所有;爲是衆生故,示若有、若無,令知淸淨無所有。

如是,須菩提!菩薩摩訶薩應當作是行般若波羅蜜。”

“세존이시여, 세속의 이치인 세제(世諦)와 으뜸가는 제일의(第一義)에는 차별이 있는지요?”

“수보리야, 세속의 이치인 세제(世諦)와 제일의(第一義)에는 차별이 없느니라. 

왜냐 하면, 세속 이치인 세제(世諦)의 여(如)가  제일의(第一義) 여(如)이기 때문이니라. 

중생들이 이러한 여(如)를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기 때문에 보살마하살은 세속의 이치인 세제(世諦)로써 있고 없음을 보이는 것이니라.

또한 수보리야, 중생은수중(五受衆, 오온)에 대하여 집착하는 착상(著相) 있기 때문에 아무것도 없는 무소유(無所有)라는 것을 모르나니, 이러한 중생들을 위하여 있고 없음을 보여서, 깨끗하여 아무 것도 없는 청정무소유(清淨無所有)를을 알게 하는 것이니라.

이와 같아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이러함으로써 반야바라밀을 행(行)하여 하느니라.”


▶論. 釋曰:須菩提從佛聞無所得卽是得,歎未曾有,白佛言:“世尊!是般若甚深!”如經中廣說。

以樹爲譬喩,葉、華、果實,從薄轉厚。如樹葉蔭,熱時涼樂;衆生因菩薩道樹蔭,得離三惡道熱苦。何以故?遮惡故。如華,色好香淨柔軟;衆生因菩薩以布施、持戒教化故,受人天中福樂。如樹果,色香味力;衆生因菩薩故得須陁洹等諸聖道果。

▷논. 해석한다.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으로부터 얻을 것이 없는 무소득(無所得)이  얻는 득(得)이라는 말씀을 듣고, 전에 없었던 미증유(未曾有)라서 찬탄하면서 부처님께 말씀드리기를 “세존이시여,  반야는 매우 깊은 심심(甚深)한 것입니다”고 하였으니,  가운데서 자세히 말씀한 것과 같다.

부처님께서 나무로써 비유를 드셨으니, 잎(葉)과 꽃(華)과 열매(果)는 여린 것으로부터 차츰차츰 두터워지며, 나뭇잎에 의하여 그늘이 지면 더운 때에 몸을 식히며 즐기는 것과 같이, 중생도 보살도(菩薩道)라는 나무의 그늘로 인하여악도(三惡道, tri-durgati. 지옥ㆍ아귀ㆍ축생, 삼악취 즉 괴로움의 세계)의 뜨거운 고통을 여의게 되나니, 왜냐하면 악(惡)을 막기 때문이다. 

마치 꽃의 빛깔이 아름답고 싱그러우면서 부드러운 것과 같이, 중생들은 보살이 보시와 지계로써 교화함을 인(因)하기 때문에 인간이나 하늘 가운데서 복락(福樂)을 받게 되며,

마치 나무의 열매에 빛과 향기와 맛의 힘이 가득한 것과 같이, 중생들은 보살로 인하여 수다원 등의 모든 성인의 도과(道果)를 얻게 되는 것이다.


須菩提聞是歡喜言:“是菩薩如佛無異。”此中自說因緣:“因菩薩故斷地獄等惡道。”

佛可其意,更說因緣:“須菩提!若菩薩不發心求阿耨多羅三藐三菩提,乃至三界無斷時。”

수보리 존자는 이러한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말하기를 “이 보살은 부처님과 다름이 없습니다”라고 하였고, 

 가운데에서 스스로가  인연을 말하기를, “보살로 인하여 지옥 등의 악도(惡道)가 끊어집니다”라고 하였으며,

이에 부처님께서는 그가 옳다고 하시면서 다시 인연을 말씀하셨으니,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발심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하지 않는다면, 삼계(三界)에 이르기까지도 끊어질 때가 없을 것이니라”고 하셨다.


復次,得諸法如故,說名如來,乃至名須陁洹;以如故,說色乃至無爲性;是諸法如皆一無異。

菩薩學是如,必當得薩婆若,是故言如佛無異。不以我心貪貴菩薩故說言如佛,以得如故言如佛。是如在佛,亦在菩薩,以一相故,是名菩薩爲如佛。離如,更無有法不入如者。

또한 제법의 여(如)를 얻었기 때문에 이름하여 여래(如來)라 하고, 나아가 수다원이라 하며, 여(如) 때문에 물질(色)에서 무위성에 이르기까지를 말하는 것이니,  모든 제법의 여(如)는 모두가 하나이고 다름이 없는 개일무이(皆一無異)인 것이다. 

보살은  여(如)를 배워야 반드시 살바야를 얻게 되는 것이므로 ‘부처님과 다름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니, '나'라는 마음의 아심(我心)으로써 보살을 탐내거나 귀히 여기지 않기 때문에 ‘부처님과 같다’고 말하는 것이며, 

여(如)를 얻었기 때문에 ‘부처님과 같다’고 하는 것이. 

 여(如)는 부처님과 보살에 있어서 같은  모양의 일상(一相)이기 때문에, 이를 일컬어 ‘보살은 부처님과 같다’고  것이니, 여(如)를 여의고서 다시 어떠한 법도 여(如)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問曰:若以同如故名菩薩如佛,乃至畜生中亦有是如,何以不名如佛?

묻나니, 만약 같은 여의 동여(同如)이기 때문에 보살을 부처님과 같다고 하는 것이라면, 나아가 축생 가운데에서도  여(如)가 있거늘 무엇 때문에 ‘부처님과 같다’고 하지 않는 것입니까?


答曰:畜生雖亦有如,因緣未發故,不能利益衆生、不能行如至薩婆若故。如是,須菩提!菩薩應學是如般若波羅蜜,菩薩學是如般若波羅蜜故,則能具足一切法如。

具足名得諸法實相,能以種種門令衆生得解。以得具足故,於一切法如得自在;得是諸法如自在已,能善知衆生根;能善知衆生根故,能知衆生諸根具足。

답하나니, 축생에게 비록 여(如)의 인연이 있을지라도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발(未發)인 것이기 때문에 중생을 이롭게 할 수도 없고, 여(如)를 행하여 살바야에 이를 수도 없는 까닭에 ‘이와 같아서 수보리야, 보살은 이 여(如)의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고 하신 것이다.

보살은 이 여(如) 반야바라밀을 배우기 때문에 일체법의 여(如)를 두루 갖출 수가 있으니,

‘두루 갖춘다는 구족(具足)’이라 함이란, 제법의 실상(實相)을 얻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갖가지 문으로써 중생으로 하여금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두루 갖춘 구족(具足)하였기 때문에 일체법에서 자재하며, 여(如)로써 자재를 얻으며,

제법의 여(如)를 얻어서 자재하여 진 뒤에는 중생의 기(根, 근기)를 잘 알 수 있으며,

중생의 근기를 잘 알기 때문에 중생에게 모든 근기가 두루 갖추어진, 구족(具足)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