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 釋六度品第 六十八之餘卷八十一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삼장법사 구마라집 소역
68. 육도품(六度品)을 풀이함 6
菩薩盡受諸戒,善心起正語、正業、三種律儀:戒律儀、禪定律儀、無漏律儀;住是戒中,施一切衆生無畏,是名檀波羅蜜。
婬欲、瞋恚等諸煩惱欲破戒,能制、能忍。復次,人來罵詈打害,畏破戒故,忍而不報;又復飢渴寒熱諸苦所逼,爲持戒故,如是等悉皆能忍,是名羼提波羅蜜。
보살이 모든 계를 다 받고, 착한 마음으로 바른말의 정어(正語), 바른 생활 영위의 정업(正業)과 세 가지의 율의(律儀)인 계율의(戒律儀)와 선정율의(禪定律儀)와 무루율의(無漏律儀)를 일으키며,
이 계율 가운데 머물러서 일체 중생들에게 무외(無畏)를 베풀어 주나니, 이를 이름하여 단바라밀이라 하며,
음욕과 성냄 등의 모든 번뇌가 계율을 파괴하고자 하면 능히 제어하고 인내하며, 또 어떤 사람이 와서 욕하고 꾸짖고 때리고 해쳐도 파계(破戒)를 두려워하여 짐짓 참고 되갚지 않으며, 또 배고프고 목마르고 춥고 더운 따위의 모든 고통이 핍박할지라도 계율을 지니기 위하여 이와 같은 것들을 능히 모두 참으니, 이를 이름하여 찬제바라밀이라 한다.
分別諸戒相輕重、有殘無殘、因緣本末、或遮或聽等,是心精進;能如戒法行,有犯則下意懺除,是名身精進。
以是持戒、精進,不求天王、人王,乃至不求小乘涅槃,但爲戒是菩薩道住處故,持戒能修集五波羅蜜,是名精進波羅蜜。
규정된 계법을 따름에 계를 지키고 범함의 차별이 있는 모든 계상(戒相)의 가볍고 무거움과, 남고 모자람과, 인연의 본말(本末)과, 혹은 막기도 하고 혹은 허락하기도 하는 것 등을 분별하여서, 이 마음으로 정진하여 계법(戒法) 그대로 행하되, 이를 어기고 범하는 바가 있으면 마음으로 뉘우치고 참회하여 제거하나니, 이를 이름하여 몸의 신정진(身精進)이라 하며,
이 지계(持戒)의 정진으로써 천왕(天王, 천상왕)이나 인왕(人王)을 구하지도 않고, 나아가 소승의 열반도 구하지 않으며 다만 계율만을 위할 뿐이니, 이는 곧 보살도(菩薩道)요, 보살이 머무는 처소이기 때문에 계율을 지니며 다섯 가지 바라밀을 닦고 쌓나니, 이를 이름하여 정진바라밀이라 한다.
菩薩若持戒淸淨,不離禪定。何以故?持戒淸淨,破諸煩惱力,心則調伏。譬如老奪壯力,死來易壞。
行者不得禪定故,念五欲,生五蓋,侵害持戒。是故爲戒堅牢故,求禪定樂。
만약 보살이 지계가 청정하다면 선정을 여의지 않나니, 왜냐 하면, 지계가 청정하면 모든 번뇌의 힘이 파괴되고 마음이 곧 조복되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마치 늙으면 왕성했던 힘을 잃으면서 죽음이 다가와서 무너지기 쉬운 것과 같이, 수행하는 행자도 선정을 얻지 못한 때문에 오욕을 생각하고 탐냄(rāga), 성냄(pratigha), 나태함(styāna-middha), 들뜸(auddhatya-kaukṛtya), 의심(vicikitsā)의 오개(五蓋, pañcānīvaraṇa)를 일으켜 지계(持戒)를 침해하게 되기 때문에 계율을 견고하게 하기 위하여 선정의 즐거움인 선정락(禪定樂)을 구하는 것이다.
禪定者,攝諸心、心數法一處和合,名爲禪定。
行者能除惡身口破戒業,次除三惡覺觀;然後除三細覺觀,所謂國土、親里、不死。如是除已,卽得禪定,是名禪波羅蜜。
선정(禪定)이라 함은, 모든 마음의 제심(諸心)과 마음에 속한 심수법(心數法)을 한 곳에 모으는 것을 선정이라 부르는 것이니,
수행하는 행자는 잘못된 몸과 마음으로 계를 파하는 파계업(破戒業)을 제거하고, 다음에는 세 가지의 거친 각관(覺觀)을 제거한 뒤에 세 가지 미세한 각관인 국토(國土)와 친속관계의 친리(親里)와 불사(不死)를 제거하는 것이니,
이와 같은 것이 제거된 뒤에 곧 선정을 얻나니, 이를 이름하여 선바라밀이라 한다.
持戒時,知戒能生如是今世、後世功德果報,是名智慧。
復次,愛戒、持戒、破戒者,三事不可得,是名智慧。
계율을 지니는 지계(持戒)할 때, 계율은 이와 같이 금세와 후세의 공덕과 과보를 낼 수 있다고 아는 것을 일컬어 지혜(智慧)라 하며,
또 계율을 탐애하는 애계(愛戒), 계율에 집착하는 지계(持戒), 계율을 깨뜨리는 파계(破戒)의 세 가지를 얻지 못하는 불가득(不可得)이니, 이를 이름하여 지혜(智慧)라 하며,
人有三種:下人破戒,中人著戒,上人不著戒。是菩薩思惟:“若我憎破戒及破戒者、愛戒及持戒者,而生愛、恚,則還受罪業因緣;譬如象浴洗已,還以土坌,是故不應生憎愛。
사람에는 세 종류가 있으니, 하인(下人)은 계율을 깨뜨리고, 중인(中人)은 계율에 집착하며, 상인(上人)은 계율에 집착하지 않으니,
이 보살이 생각하기를 ‘만약 내가 계를 파하는 파계(破戒)와 파계자(破戒者)를 미워하며,
계율에 애착하는 애계(愛戒)와 계율을 지니는 지계(持戒)를 좋아하거나 화를 낸다면, 도리어 죄업(罪業)의 인연을 받게 되나니, 마치 코끼리가 목욕을 하고 잘 씻은 뒤에 다시 흙에 뒹구는 것과 같으니,
이러한 까닭에 미워하고 사랑하는 마음의 애증(憎愛)을 내어서는 안 된다’고 하며,
復次,一切法皆屬因緣、無自在者,諸善法皆因惡生;若因惡生,云何可著?惡是善因,云何可憎?”如是思惟,直入諸法實相:觀持戒、破戒皆從因緣生,從因緣生故無自性,無自性故畢竟空,畢竟空故不著,是名般若波羅蜜。
또한 ‘일체법은 모두 인연에 속하여 자재로움이 없으며, 모든 착한 선법은 다 악(惡)으로 인하여 생기나니, 만약 악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라면 어찌 집착할한 것인가? 악은 곧 선(善)의 원인이거늘 어떻게 미워할 수 있겠는가?’라고 생각하며, 곧장 제법의 실상(實相)으로 들어가서 ‘지계(持戒)와 파계(破戒) 모두가 인연으로부터 생긴다’고 관찰하는 것이다.
인연으로부터 생기기 때문에 무자성(無自性)이고, 무자성(無自性)이기 때문에 필경공이며, 필경공이기에 집착하지 않는 불착(不著)하나니, 이을 이름하여 반야바라밀이라 하는 것이다.
菩薩行忍辱時,作是念:“若衆生來割截我身,我卽布施,不令衆生得劫盜之罪” 或修忍時,因忍說法,種種因緣分別世閒、涅槃,令衆生住六波羅蜜中。得衆生忍,能以身施,是名財施;
得法忍,深入諸法,爲衆生說,是爲法施。是二施從二忍生,故名檀波羅蜜。
보살이 인욕을 행할 때, 생각하기를 ‘만약 어떤 중생이 와서 나의 몸을 끊고 자르면, 나는 곧 보시하여 중생으로 하여금 겁탈하고 훔치는 겁도지죄(劫盜之罪)를 얻게 하지 않으리라’고 하며,
인욕을 닦을 때, 인욕으로 인하여 법을 설하고 갖가지 인연으로 세간의 열반을 분별하여, 중생으로 하여금 6바라밀 가운데에 머물게 하며, 중생인(衆生忍)을 얻고 몸으로써 보시하나니, 이을 이름하여 재물의 보시인 재시(財施)라 하며,
법인(法忍)을 얻고 제법에 깊이 들어가서 중생을 위하여 설하나니, 이를 법의 보시인 법시(法施)라 하나니,
이 두 가지 보시는 두 가지의 인(忍)으로부터 생기기 때문에 이름하여 단(보시)바라밀이라 하는 것이다.
菩薩行忍辱時,不惜身命爲忍辱,何況惱衆生而破戒!是故因忍持戒,憐愍一切衆生欲度脫之。持戒名一切諸善法安立住處。是名尸羅波羅蜜。
보살이 인욕을 행할 때,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고 욕됨을 참거늘 하물며 중생을 괴롭히면서 계율을 깨뜨리는 것이랴?
그러므로 인욕으로 인하여 계율을 지니고 일체 중생을 가엾이 여겨서 그들을 제도하여 벗어나게 하고자 계율을 지니는 것을 일컬어 일체의 착한 선법이 편안하게 머무르는 처소라 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시라(지계)바라밀이라 하며,
菩薩於忍中,身心勤行四波羅蜜,是名精進。於忍中,心調柔、不著五欲,攝心一處;我於一切衆生能忍如地,是名禪波羅蜜。
보살이 인욕 가운데에 몸과 마음으로 부지런히 네 가지 바라밀을 수행하나니, 이를 이름하여 정진이라 하며,
인욕 가운데에 마음이 제어되어 유연하여지고 오욕(五欲)에 집착하지 않으면서 마음을 한 곳에 가다듬는 섭심일처(攝心一處)하고는 ‘나는 일체 중생들에 대하여 인욕하기를 마치 땅과 같이 할 수 있다’고 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선바라밀이라 한다.
菩薩知忍辱果報,相好嚴身等。菩薩修忍,能障諸煩惱,能忍衆生過惡,能忍受一切深法,後得諸法實相;是時,行者心中得是無生法忍,卽是般若波羅蜜。
보살은 인욕의 과보로 상호(相好)로써 장엄된 몸 등을 얻는 것을 알며,
보살이 인욕을 닦을 때에는 능히 모든 번뇌를 막고 중생들의 과악(過惡)을 참으며, 일체의 깊은 심법(深法)을 능히 참고 받아들인 뒤에 제법의 실상을 얻게 되나니,
이 때에 수행하는 행자가 마음속으로 이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게 되는 그것이 곧 반야바라밀이다.
菩薩住精進生諸波羅蜜,精進雖是一切善根本,離精進則無善法可得,但以精進力多生五波羅蜜故,名精進生。
보살이 정진에 머물러서 모든 바라밀을 내나니, 정진 그것이 비록 일체선(一切善)의 근본이라서 정진을 여의고서는 선법(善法)도 얻을 수 없지만, 다만 대개는 정진력으로써 다섯 가지 바라밀을 내기 때문에 정진으로부터 생기는 정진생(精進生)이라 하며,
菩薩常行三種施未曾捨廢:財施、法施、無畏施,是名檀波羅蜜。
菩薩善身口正業,直向佛道,不貪二乘,是名尸羅波羅蜜。
勤行精進,時有人來毀壞菩薩道,能忍不動,是名羼提波羅蜜。
菩薩雖行種種餘法,心不散亂,一心念薩婆若,是名禪波羅蜜。
보살이 항상 세 가지 보시인 재시(財施)와 법시(法施)와 무외시(無畏施)를 행하여 일찍이 버리어 사폐(捨廢)하는 일이 없나니, 이을 이름하여 단바라밀이라 하며,
보살은 착한 몸과 입의 바른 정업(正業)으로써 곧장 부처님의 불도에 향하고, 이승(二乘)을 탐하지 않나니, 이를 이름하여 시라(지계)바라밀이라 하며,
부지런히 정진을 행할 때, 어떤 사람이 와서 보살도를 무너뜨리고자 하여도 능히 견디어 동요하지 않나니, 이를 이름하여 찬제(인욕)바라밀이라 하며,
보살이 비록 갖가지의 그 밖의 법을 행할지라도 마음이 산란하지 않고 일심으로 살바야를 생각하나니, 이를 이름하여 선바라밀이라 하며,
有二種精進:一、動相,身、心勤行;二、滅一切戲論故,身心不動。
菩薩雖勤行動精進,亦不離不動精進,不動精進不離般若波羅蜜。
두 가지 정진이 있나니, 하나는 움직이는 동상(動相)으로 몸과 마음이 부지런히 행하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일체의 희론을 멸하였기 때문에 몸과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신심부동(身心不動)인 것이다.
보살이 비록 움직이면서 부지런히 정진을 행하면서도, 또한 동요하지 않는 부동정진(不動精進)을 여의지 않으며, 부동정진하면서 반야바라밀을 여의지 않는 것이다.
菩薩入禪定,慈悲心力故,施一切衆生無畏;或禪定力故,變化寶物如須彌山充滿一切,雨衆華香等供養諸佛,及施貧窮衆生衣服、飮食等;或入禪定中爲十方衆生說法。是名檀波羅蜜。
보살이 선정에 들어 자비로운 마음의 심력(心力)으로 일체 중생들에게 두려움이 없는 무외(無畏)를 베풀기도 하고,
혹은 선정력으로 변화로 보물을 나타내어서 마치 수미산과 같은 일체에 가득 채우기도 하며,
많은 꽃과 향 등을 비처럼 내려서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고, 빈궁한 중생들에게 의복과 음식 등을 베풀며,
혹은 선정에 들어서 시방의 중생들을 위하여 설법을 하기도 하나니, 이를 이름하여 단(보시)바라밀이라 하며,
此中隨禪定行身口善業,及離聲聞、辟支佛心,是名尸羅波羅蜜。
菩薩入禪定,得淸淨柔軟樂,能不著禪味;禪定力故,能深入諸法空,能忍受是法,心不疑悔,是名羼提波羅蜜。
이 가운데에서 선정을 따라 몸과 입으로 착한 선업을 행하며, 또는 성문이나 벽지불의 마음을 여의나니, 이를 이름하여 시라(지계)바라밀이라 하며,
보살이 선정에 들어 청정하고 유연한 즐거움의 청정유연락(清淨柔軟樂)을 얻으면서도 선미(禪味)에 집착하지 않으며, 선정력으로 일체법의 법공(法空)에 깊이 들어가 잘 인욕하면서 이 법을 받되 마음으로 의심하거나 후회하지 않나니, 이를 이름하여 찬제(인욕)바라밀이라 하며,
菩薩忍辱時,欲起諸三昧:超越三昧、師子奮迅三昧等無量諸菩薩三昧,不休不息,是名精進波羅蜜。
菩薩禪定力故,心淸淨不動,能入諸法實相,諸法實相卽是般若波羅蜜。
보살이 인욕할 때, 모든 삼매를 일으키고자 하나니, 초월삼매(超越三昧)와 사자분신삼매(師子奮迅三昧) 등 무량한 모든 보살의 삼매를 일으키면서 쉬지도 않고 멈추지도 않나니, 이를 이름하여 정진바라밀이라 하며,
보살이 선정력 때문에 마음이 청정하여 부동하여 제법의 실상(實相)에 들어가나니, 제법의 실상이 곧 반야바라밀인 것이다.
菩薩行般若波羅蜜,能觀三種布施相,如阿耨多羅三藐三菩提,滅諸非有非無等戲論,是名無量無盡般若中檀波羅蜜。
身口業隨般若行,得般若故,能牢固淸淨持戒,是名尸羅波羅蜜。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재시(財施)와 법시(法施)와 무외시(無畏施)의 세 가지 보시의 상(相)이 마치 아뇩다라삼먁삼보리와 같다고 능히 관하면서 ‘있는 것도 아닌 비유(非有), 없는 것도 아닌 비무(非無)’라는 등의 모든 희론을 없애나니, 이를 이름하여 무량하고 무변한 반야 가운데의 단(보시)바라밀이라 하며,
몸과 입의 신구업(身口業)은 반야를 따라 행하고, 반야를 얻은 때문에 견고하고 청정하게 계율을 지니나니, 이를 이름하여 시라(지계)바라밀이라 하며,
住般若心中,衆生忍、法忍轉深、淸淨,是名羼提波羅蜜。
行般若菩薩身心淸淨,得不動精進,觀動精進如幻、如夢;得不動精進故,不入涅槃,是名精進波羅蜜。
菩薩行是無㝵般若故,雖常入禪定,得般若波羅蜜力故,不起於禪而能度衆生,是名禪波羅蜜。
如是等菩薩利智慧故,一心中一時能具足六波羅蜜。
반야심(般若心) 가운데 머무르면 중생인(衆生忍)과 법인(法忍)이 더 더욱 깊어지고 청정하여지나니, 이을 이름하여 찬제(인욕)바라밀이라 하며,
반야를 행하는 보살은 몸과 마음이 청정하고 동요하지 않는 부동정진(不動精進)을 얻으며, 동요하는 동정진(動精進)은 마치 환과 같고 꿈과 같다고 관하면서, 부동정진을 얻은 까닭에 열반에 들지 않나니, 이를 이름하여 정진바라밀이라 하며,
보살이 이러한 장애 없는 무애반야(無㝵般若)를 행하는 까닭에 비록 항상 선정에 들지라도 반야바라밀의 힘을 얻는 까닭에 선정에서 일어나지 않고서도 능히 중생을 제도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선바라밀이라 하나니,
이와 같은 보살들은 날카로운 이지혜(利智慧) 때문에 일심 가운데에서 일시에 육바라밀을 두루 갖출 수 있는 것이다.
大智度論卷第八十一 終 대지도론 81권을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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