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 釋願樂品 第六十四 卷七十八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삼장법사 구마라집 소역  

64. 원요품(願樂品) 풀이함 4

 

佛知須菩提隨諸法實相說故,可其言:“善哉!善哉!”

卽說因緣:“須菩提!若般若波羅蜜畢竟離、阿耨多羅三藐三菩提畢竟離,以是因緣故可得”

何以故?若一法定有相非空者,則是常法、不生相,從未來至現在,從現在至過去。

若無實生相則無滅相,若無生滅則無四諦,若無四諦則無法寶,法寶無故亦無阿耨多羅三藐三菩提 法寶卽是阿耨多羅三藐三菩提故,

若無法寶則無佛寶,若無佛法則無僧寶,若無三寶則無一切諸法 有如是等過罪故。畢竟離相,則通達無㝵。

부처님께서는 수보리 존자가 제법의 실상(實相)을 따라 말하는 것을 아셨기 때문에 그의 말을 옳다고 하시면서 “참으로 훌륭하고 훌륭하구나”라 하시면서,

곧 그 인연을 말씀하셨으니, “수보리야, 만약 반야바라밀이 필경에 여의는 필경리(畢竟離)라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도 필경리이니, 이러한 인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가득(可得)이니라.

왜냐하면 만약 하나의 일법이라도 정해진 정상(定相)이 있고 공한 것이 아닌 비공(非空)이라면, 곧 그것은 항상 있는 상법(常法)이라서 불생상(不生相)이기 때문이니,

미래에서 현재에 이르고, 현재에서 과거에 이르기까지 만약 진실로 나는 생상(生相)이 없다면 곧 없어지는 멸상(滅相)도 없는 것이니라.

만약 나고 없어지는 생멸(生滅)이 없다면, 네 가지 진리의 사제(四諦)가 없을 것이고, 만약 사제(四諦)가 없다면 법보(法寶)가 없을 것이며, 법보가 없기 때문에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도 없을 것이니, 법보 그것이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이기 때문이니라.

만약 법보가 없다면 불보(佛寶)가 없고 불보가 없다면 승보(僧寶)도 없나니, 만약 삼보(三寶)가 없다면 곧 일체법도 없는 것이니, 이와 같은 허물이 있기 때문에 필경에 여의는 필경이상(畢竟離相)이 곧 환하게 통달하여 막힘이 없는 통달무애(通達無㝵)이니라”고 하셨다.

 

若說畢竟離,當知亦離空;若不離空,不名畢竟離。是故經說言:“般若波羅蜜畢竟離故,能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雖不離般若波羅蜜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亦不以二離而得二離。”畢竟空故不應難。

만약 필경에 여의는 필경리(畢竟離)를 말하면 또한 공도 여의는 것이라고 알아야 하나니, 

만약 공을 여의지 않는다면 필경리(畢竟離)라고 하지 못하기 때문에 경에서 말씀하시기를,

“반야바라밀은 필경리(畢竟離)이기 때문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되며, 비록 반야바라밀을 여의지 않고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 할지라도 그것은  가지의 여읨(離)으로써  가지의 여읨(離)을 얻는 것은 아니다”고 하셨으니, 필경공(畢竟空)이기 때문이니  따지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須菩提知佛所說甚深相,是故白佛言:“若菩薩能如是行,則是行甚深義。”

佛可其言:“是菩薩能爲難事 能行如是甚深義,而不證二乘。”

所以者何?是菩薩一心以利智深入空而不證涅槃,是則爲難。

수보리 존자는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의 매우 깊은 심심상(甚深相) 알았기 때문에 부처님께 말씀드리기를 “만약 보살이 이와 같이 행한다면  매우 깊은 이치의 심심의(甚深義) 행하는 것입니다”고 하자, 

부처님께서는 그의 말이 옳다고 하시면서 “이 보살은 어려운 난사(難事)를 능히 하는 이이니, 이와 같이 매우 깊은 이치의 심심의(甚深義)를 능히 행하면서도승을 증득하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보살은 일심으로 예리한 지혜로써 공에 깊이 들면서도 열반을 증득하지 않기 때문이니, 이것이  어려운 난사(難事)이니라”고 하셨으며, 


須菩提言:“如我解佛所說義,是不爲難。何以故?是人不得是甚深義一定相可作證,不得般若波羅蜜,不得證者,誰當以甚深義得證?若不證是甚深義,誰當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是名菩薩無所得行。行是道,則照明一切法。”

수보리 존자가 말씀드리기를 “제가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의 뜻을 이해하기로는 그것은 어려운 난사(難事)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매우 깊은 이치의 심심의(甚深義)에서는 일정하게 정해진 정상(定相)으로 증득할 만한 것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니, 반야바라밀도 얻지 못하고 증득하는 이도 얻지 못하거늘,  누가  매우 깊은 이치의 심심의(甚深義)를 증득할  있겠습니까? 만약  매우 깊은 이치의 심심의(甚深義)를 증득하지 못한다면  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겠습니까?

이것을 바로 보살의 얻을 바가 없는 무소득행(無所得行)이라 하나니,  도를 행하면 일체법을 밝게 비추게 됩니다”고 하였다.

 

問曰:佛說言“難”,須菩提言“不難”。師弟子義應同,何以各相違背?

묻나니, 부처님께서는 ‘어려운 난(難)’이라 하시고 수보리는 ‘어렵지 않은 불난(不難)’이라 하였는데, 스승과 제자로서는  뜻(義)을 같이 하여야 하거늘 무엇 때문에 이렇게 서로 어긋나는 것입니까?


答曰:佛以世諦故說,須菩提以第一義諦故說。佛說菩薩得是甚深義,須菩提說菩薩亦不得是甚深義。

佛以須菩提爲衆生故說:“有人聞難事則發心,故說難事;有人聞難事而廢退,故說無難。”是名菩薩無所得行;住是行中,於一切法通達無㝵。

답하나니, 부처님께서는 세간의 이치인 세제(世諦)로 말씀하신 것이고 수보리 존자는 제일의(第一義)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보살은  매우 깊은 이치의 심심의(甚深義)를 얻는다”고 말씀하시며, 수보리 존자는 “보살 또한  매우 깊은 이치의 심심의(甚深義)를 얻지 못한다”고 말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수보리 존자가 중생들을 위한 까닭이라고 하시면서 말씀하시기를, “어떤 사람 어려운 난사(難事)를 들으면  발심하기 때문에 어려운 난사(難事)를 말하는 것이지만, 어떤 사람은 어려운 난사(難事)를 들으면 그만두고 물러나기 때문에 어려움이 없는 무난(無難)를 말하나니, 이것을 보살의 얻을 바가 없는 무소득행(無所得行)이라 한다”고 하셨으니, 이러한 행 가운데에 머무르면 일체법을 환하게 아는 통달무애(通達無㝵) 하여서 막힘이 없는 것이다.

 

須菩提言:“若菩薩聞如是說畢竟離,無法可證,無取證者,亦無般若及阿耨多羅三藐三菩提,是時不驚、不沒、通達無㝵者,是名行般若波羅蜜。”行般若波羅蜜者,是名眞行、深行。

수보리 존자가 말씀드리기를 “만약 보살이 이와 같이 필경리(畢竟離)라서 증득할  있는 법도 없고, 증득을 취할 이도 없으며, 또한 반야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도 없다는 말을 듣고도 놀라지 않고 침몰하지도 않으면서 환히 통달하여 막힘이 없는 통달무애(通達無㝵)라면, 이를 바로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이라 하며,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을 곧 진실한행(眞行)이요, 깊은 심행(深行)이라 합니다.


何以故?是菩薩不見般若波羅蜜,亦不見我行般若波羅蜜,不見阿耨多羅三藐三菩提,亦不見是法可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都無所分別。是菩薩安住一切諸法實相中,故不作是分別言:“二乘離我遠,佛道離我近。”

왜냐하면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보지 않는 불견(不見)이고, 또한 스스로가 반야바라밀을 행한다는 것도 보지 않는 불견(不見)이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도 불견(不見)이고, 또한  법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있다는 것도 불견(不見)이니, 일체의 분별하는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보살은 일체 제법의 실상(實相) 가운데 편히 머무르기 때문에 ‘2승(乘)은 나와 멀리 떨어져 있고, 부처님의 불도는 나와 가깝다’고 분별하지 않습니다”고 하였으며,


此中說虛空等譬喩,此諸譬喩,爲明了畢竟空義故。般若波羅蜜雖空,若有所修,能成其事。乃至如木人,隨作何事,皆能成就。

 가운데에서 허공 등의 비유를 말하고 있는데,  모든 비유는 필경공의 이치(義)를 분명히 알게 하기 위한 것이며,

반야바라밀이 비록 공하다 할지라도 만약 닦으면 그 성취할  있나니, 마치 나무로 만든 목인(木人)까지도 짓는 바에 따라 무슨 일이든 모두 성취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舍利弗問須菩提:“但般若無分別,諸波羅蜜亦無分別?”若但般若空無分別,餘波羅蜜應是有相,是則菩薩道有別異、不平等。又初品中說:“行檀波羅蜜時,無施者、受者、亦無財物。”今云何言別?若五事皆空,則無分別,無有六名,亦無可修行。

사리불 존자가 수보리 존자에게 묻기를 “다만 반야만이 분별이 없는 무분별(無分別)입니까?, 아니면 모든 바라밀도분별(無分別)입니까? 

다만 반야만이 공하여 분별이 없는 무분별(無分別)이고  밖의 바라밀은 바로 상이 있는 유상(有相)이라면, 이것은  보살도와는 다른 것이어서 평등하지 않은 것입니다. 

또한 초품(初品)에서 말하기를 ‘단바라밀을 행할 때에는 보시하는 시자(施者) 받는 수자(受者) 없고 또한 재물(財物)도 없다’고 하셨거늘, 지금은 어떻게 다르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까? 

만약 다섯 가지의 오사(五事, 오바라밀)가 모두 공하여 분별이 없는 무분별이라면, 여섯 가지(육바라밀)도 이름이 없고 또한 수행할  없는 것일 것입니다”고 하였다.


須菩提言:“五波羅蜜亦空、無有分別。”初發心、未得無生法忍者有分別。譬如四河未會大海則有別名,旣入大海則無差別;菩薩亦如是,世俗諦中有差別,第一義諦則無分別。

수보리 존자가 말하기를 “다섯 가지 바라밀 또한 공하여서 분별이 없는 것이지만, 처음발심하여 아직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지 못한 이에게는 분별이 있습니다”고 하였다. 

마치  개의 강물인 사하(四河)가 아직  바다를 만나기 전에는 각각의 다른 이름이 있지만,  바다에 들어간에는 차별이 없는 것과 같이, 보살 또한 그와 같아서 세속의 이치인 세속제(世俗諦) 가운데에서는 차별이 있지만, 제일의(第一義)에서는 분별이 없는 것이다.


舍利弗問:“色乃至阿耨多羅三藐三菩提,乃至無爲性,亦無分別?若此法空無差別,云何有六道別異?云何有分別須陁洹乃至佛道?”

사리불 존자가 묻기를 “물질(色)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이르기까지와 무위성(無爲性)도 분별이 없습니까? 

만약  법이 공하여 무분별(無分別)이라 어떻게도(六道)에 차별이 있으며, 어떻게 수다원과 부처님의 불도에 차별이 있습니까?”라고 하였으며, 


須菩提答舍利弗:“諸法雖畢竟空、無分別,而是衆生狂顚倒心而起身口意業,隨業受身業報。”貪欲是本。但爲欲所逼而生著心,諸法無有定相。業果報者,所謂六道。以是故知:空、無所分別是其實本;但以顚倒不實故,有六道差別。

수보리 존자가 사리불 존자에게 대답하기를 “제법이 비록 필경공이라서분별이라 할지라도  중생들은 미치고 뒤바뀐 전도심(顚倒心)으로 신업ㆍ구업ㆍ의업을 일으키고,  업을 따라 몸을 받습니다. 

업보(業報)는 탐욕이 근본입니다. 다만 탐욕에 핍박을 받아 집착하는 착심(著心)  뿐, 제법에는 일정하게 정해진 정상(定相)이 없습니다”라 하였으며, 업의 과보라 함이란 이른바 6도(道)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하여분별한 것이 바로  진실한 근본의 실본(實本)인데, 다만 뒤바뀌어 전도되어 진실하지 않기 때문에도의 차별이 있을 뿐이라고 알아야 하는 것이다.


又須陁洹等賢聖,亦因畢竟空無分別法生,所謂斷三結法,名須陁洹果。三結使卽是顚倒,覺顚倒除卻名爲斷,是故斷法卽是空、無有分別。世諦故,假名人,得是法故名須陁洹果;是故當知須陁洹人及果畢竟空、無分別。乃至佛、佛道亦如是。

또한 수다원 등의 성현도 역시 필경공이며 무분별의 법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니, 

이른바 유신삼결(有身三結), 계금취결(戒禁取結), 의결(疑結)의 삼결(三結) 법을 끊으면 수다원의 과위라 하며,

삼결(三結)의 부림(使)을 당하는 것이 곧 뒤바뀜의 전도(顚倒)요, 뒤바뀌어 전도된 것을 깨달아서 물리치는 것을 끊을 단(斷)이라 하기 때문에  끊는 단법(斷法)이  공하여 분별이 없는 무분별인 것이다.

세속 이치인 세제(世諦) 때문에 임시로 사람이라 부르고, 이러한 법을 얻기 때문에 수다원의 과위인 과(果)라 하는 것이므로 수다원의 사람과 과보는 필경공이라서 무분별이며, 나아가 부처님과 부처님의 역시 그와 같다고 알아야 하는 것이다.


此中說因緣:“非但現在無分別,過去如恒河沙諸佛一切分別斷故,入無餘涅槃,無有少許法定相可
分別。一切法畢竟空,入是如、法性、實際門故。”是故言“因緣法甚深”,入是三昧門故。菩薩應如
是行無分別般若波羅蜜,行無分別般若波羅蜜故得無分別法,所謂阿耨多羅三藐三菩提。

이 가운데에서는 그 인연을 말씀하셨으니, “다만 현재만이 무분별인 것이 아니요, 항하 강의 모래와 같이 많은 과거의 모든 부처님도 일체 분별이 끊어졌기 때문에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드신 것이다.

일정하게 정해진 정상(定相)을 분별할 수 있는 조그마한 법조차도 없으며, 일체법은 필경공이니,

이 여(如)와 법성(法性)과 실제(實際)의 문에 들었기 때문이다”고 하신 것이며,

이 때문에 “인연의 법은 심히 깊은 인연법심심(因緣法甚深)이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의 문(門)에 들기 때문에 보살은 당연히 이와 같은 무분별의 반야바라밀을 행해야 하며,

무분별 반야바라밀을 행하기 때문에 분별이 없는 무분별법(無分別法)을 얻나니, 이른바 아뇩다라삼먁삼보리가 그것이다.

 

64. 원요품(願樂品)을 풀이함을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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