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 釋夢中入三昧品 第五十八 卷七十五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삼장법사 구마라집 소역
58. 몽중입삼매품(夢中入三昧品)을 풀이함 1
▶經. 爾時,舍利弗問須菩提:“若菩薩摩訶薩夢中入三三昧:空、無相、無作三昧,寧有益於般若波羅蜜不?”
▷경. 그때 사리불 존자가 수보리 존자에게 물었다.
“만약 보살마하살이 꿈속에서 공(空)ㆍ무상(無相)ㆍ무작(無作)의 삼삼매(三三昧)에 들면 반야바라밀에 이익이 있습니까?”
須菩提報舍利弗:“若菩薩晝日入三三昧有益於般若波羅蜜,夜夢中亦當有益。何以故?晝、夜夢中等無異故。舍利弗!若菩薩摩訶薩晝日行般若波羅蜜有益,是菩薩夢中行般若波羅蜜亦應有益。”
수보리 존자가 사리불 존자에게 대답하여,
“만약 보살이 대낮에 삼삼매에 들어서 반야바라밀에 이익이 있다면 밤의 꿈속에서도 당연히 이익이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낮이나 밤의 꿈속은 평등하여 차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리불이여, 만약 보살마하살이 대낮에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이익이 있다면 이 보살은 꿈속에서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도 역시 이익이 있어야 합니다.”
舍利弗問須菩提:“菩薩摩訶薩若夢中所作業,是業有集成不?如佛說,一切法如夢。以是故不應集成。何以故?夢中無有法集成。若覺時憶想分別,應有集成!”
사리불 존자가 수보리 존자에게 물었다.
“보살마하살이 꿈속에서 업(業)을 지을 때, 이 업이 쌓여서 완성되는 일이 있습니까?
부처님의 말씀대로라면 일체법은 마치 꿈과 같은 것이므로 쌓여서 완성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꿈속에서는 어떠한 법도 쌓여서 완성되는 일이 없거니와 만약 깨어 있을 때에 기억하고 분별한다면 마땅히 쌓여서 완성되는 일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須菩提語舍利弗:“若人夢中殺衆生,覺已憶念,取相分別:‘我殺是快耶?’舍利弗!是事云何?”
수보리 존자가 사리불 존자에게 말하여,
“만약 사람이 꿈속에서 중생을 죽이고는 깨어난 뒤에 기억하면서 상(相)을 취하여 ‘나는 중생을 죽였다. 그것이야말로 유쾌한 일이다’고 분별한다면, 사리불이여, 이러한 일은 어떻겠습니까?”
舍利弗言:“無緣業不生,無緣思不生;有緣業生,有緣思生。”
사리불 존자가 말하여,
“인연이 없으면 업(業)이 생기지 않고, 인연이 없으면 생각(思)도 생기지 않는 것이니, 인연이 있어야 업이 생기고 인연이 있어야 생각도 생기는 것입니다.”
“舍利弗!如是!如是!無緣業不生,無緣思不生;有緣業生,有緣思生。於見聞覺知法中心生,不從不見聞覺知法中心生,是中心有淨有垢。以是故,舍利弗!有緣故業生,不從無緣生;有緣故思生,不從無緣生。”
“사리불이여, 참으로 그렇습니다. 인연이 없으면 업은 생기지 않고 인연이 없으면 생각도 생기지 않거니와 인연이 있어야 업도 생기고 인연이 있어야 생각도 생깁니다.
보고(見)ㆍ듣고(聞)ㆍ깨닫고(覺)ㆍ아는(知) 법 가운데서 마음이 생기며, 보고 듣고 깨닫고 알지 못하는 법 가운데서는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이러한 마음에는 깨끗한 정(淨)도 있고 더러운 구(垢)도 있으니,
그러므로 사리불이여, 인연이 있기 때문에 업이 생기고 인연이 없는 데서는 생기지 않으며,
인연이 있기 때문에 생각(思)이 생기고 인연이 없으면 생기지 않습니다.”
舍利弗語須菩提:“如佛說,一切諸業、諸思自相離。云何言’有緣故業生,無緣不生;有緣故思生,無緣不生?’”
사리불 존자가 수보리 존자에게 말하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다면 모든 업(業)과 모든 생각(思)은 자상(自相)을 여읜 것이거늘, 어떻게 인연이 있기 때문에 업이 생기고 인연이 없으면 생기지 않는 것이며,
인연이 있기 때문에 생각이 생기고 인연이 없으면 생기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까?”
須菩提語舍利弗:“取相故,有緣業生,不從無緣生;取相故,有緣思生,不從無緣生。”
수보리 존자가 사리불 존자에게 말하여,
“모양을 취하는 취상(取相)이기 때문에 인연이 있으면 업이 생기고 인연이 없으면 생기지 않으며,
모양을 취하는 취상(取相)이기 때문에 인연이 있으면 생각(思)이 생기고 인연이 없으면 생기지 않습니다.”
舍利弗語須菩提:“若菩薩摩訶薩夢中布施、持戒、忍辱、精進、禪定,修智慧,是善根福德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是實迴向不?”
사리불 존자가 수보리 존자에게 말하여,
“만약 보살마하살이 꿈속에서 보시(布施)와 지계(持戒)와 인욕(忍辱)과 정진(精進)과 선정(禪定)과 지혜(智慧)를 닦아 이 선근의 복덕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迴向)한다면, 이것이 진실한 회향이 되겠습니까?”
須菩提語舍利弗:“彌勒菩薩今現在前,佛授不退轉記,當作佛;當問彌勒,彌勒當答。”
수보리 존자가 사리불 존자에게 말하여,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지금 이 앞에 계십니다. 부처님께서 불퇴전(不退轉)의 수기를 주셨고 장차 부처님이 되실 분이시니, 당연히 미륵보살께 여쭈어야 하며, 미륵보살께서는 당연히 대답하실 것입니다.”
舍利弗白彌勒菩薩:“須菩提言:‘彌勒菩薩今現在前,佛受不退轉記,當作佛;彌勒當答!’”
사리불 존자가 미륵보살에게 말했다.
“수보리 존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미륵보살께서 지금 이 앞에 계시고 부처님께서 불퇴전의 수기를 주셨으며 장차 부처님이 되실 분이므로 미륵께서는 당연히 대답하실 것이다’고 하셨습니다.”
彌勒菩薩語舍利弗:“當以彌勒名答耶?若色受想行識答耶?若色空答耶?若受想行識空答?
是色不能答受想行識不能答;色空不能答受想行識空不能答。我不見是法可答,不見能答者;
我不見是人授記,亦不見法可授記者,亦不見授記處。是一切法皆無二無別。”
미륵보살이 사리불 존자에게 말하여,
“미륵이란 이름으로 대답해야 합니까, 아니면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으로 대답해야 합니까?
또는 색공(色空)으로 대답해야 합니까? 아니면 수상행식(受想行識)의 공(空)으로 대답해야 합니까?
이 물질(色)으로는 대답할 수가 없고, 수상행식(受想行識)으로도 대답할 수 없으며,
색공(色空)으로도 대답할 수 없고, 수상행식(受想行識)의 공(空)으로도 대답할 수 없습니다.
나는 이 법을 대답할 수 있다고 보지 않고, 대답할 수 있는 이가 있다고도 보지 않으며,
나는 이 사람이 수기를 받았다고 보지도 않고, 또한 수기를 줄 수 있는 어떠한 법도 보지 않으며,
수기를 받을 곳도 보지 않나니, 이 일체법은 모두가 둘이 없는 무이(無二)이고 구별도 없는 무별(無別)입니다.”
舍利弗語彌勒菩薩:“如仁者所說,如是爲得法作證不?”
사리불 존자가 미륵보살에게 말하여,
“그대의 말씀대로 그와 같은 법을 증득하셨습니까?”
彌勒答舍利弗:“如我所說法,如是不證。”
미륵 보살이 사리불 존자에게 답하여,
“내가 말한 바와 같은 법은 그와 같이 증득하지 않았습니다.”
爾時,舍利弗作是念:“彌勒菩薩智慧甚深,久行檀波羅蜜、尸羅波羅蜜、羼提波羅蜜、毘梨耶波羅蜜、禪波羅蜜、般若波羅蜜,用無所得故,能如是說。”
그 때에 사리불 존자가 생각하기를,
“미륵보살은 지혜가 매우 깊고 오랜 동안 단바라밀(檀波羅蜜)과 시라바라밀(尸羅波羅蜜)과 찬제바라밀(羼提波羅蜜)과 비리야바라밀(毘梨耶波羅蜜)과 선바라밀(禪波羅蜜)과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을 행하면서 얻을 바가 없음의 무소득(無所得)을 썼기 때문에 이와 같이 말할 수 있구나.”
爾時,佛告舍利弗:“於汝意云何?汝用是法得阿羅漢,見是法不?”
舍利弗言:“不見也。”
그 때에 부처님께서 사리불 존자에게 말씀하셨으니,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는 이 법으로써 아라한을 얻었다고 하는 그 법을 보는가?”
사리불 존자가 답하여, “보지 못합니다.”
“舍利弗!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亦如是,不作是念:’是法當得授記,是法已授記,是法當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如是,舍利弗!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不疑我若得、若不得,自知實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 역시 그와 같아서 ‘이 법으로 수기를 얻을 것이다. 이 법으로 이미 수기를 받았다. 이 법으로 장차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할 것이다’라고 생각하지 않느니라.
그와 같이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나는 얻을 것인가? 얻지 못할 것인가?’라고 의심하지도 않으면서 스스로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진실로 얻는다는 것을 아느니라.”
▶論. 問曰:舍利弗何以故夢難菩薩三三昧?
▷논. 묻나니, 사리불 존자는 무엇 때문에 꿈으로써 보살의 삼삼매를 따진 것입니까?
答曰:以夢虛誑、如狂、非實見故;是三三昧是實法。又復餘處說:夢中亦有三種:善、不善、無記。若菩薩善心行三三昧,應得福德;然夢是狂癡法,不應於中行實法得果報!若有實法,不名爲夢。以是故問:“若菩薩夢中行三三昧,增益般若波羅蜜福德,集善根,近佛道不?”
답하나니, 꿈은 거짓이라서 마치 미치광이가 헛것을 보는 것과 같으나, 이 삼삼매는 바로 진실한 실법(實法)이다.
또한 다른 곳에서는 말하기를 “꿈속에서도 착한 선(善)과 착하지 않은 불선(不善)과 무기(無記)의 세 가지가 있으니, 만약 보살이 착한 마음으로 삼삼매를 행한다면 마땅히 복덕을 얻어야 하나, 꿈 그것은 미치고 어리석은 법이라 그 가운데에서는 진실한 실법을 행하여도 과보를 얻지 못해야 하는 것이며, 만약 진실한 실법이 있다면 꿈이라 하지 못한다”고 하였기 때문에 묻기를 “만약 보살이 꿈속에서 삼삼매를 행한다면 반야바라밀의 복덕이 더욱 불어나고 선근을 쌓으면서 부처님의 불도에 가까워지는 것인가?”라고 한 것이다.
須菩提意:“若言有益,夢是虛誑,般若是實法,云何得增益?若言無益,夢中有善,云何無益?”不得答言有益、無益,是故須菩提離此二邊難,故以諸法實相答,尚破晝日所行,何況夢中!作是言:“舍利弗!菩薩若晝日行般若有益者,夜亦應有益;而晝日無益故,何況夢中!”何以故?般若波羅蜜,不分別有晝、夜。
수보리 존자가 생각하기를 “만약 이익이 있다고 하면 꿈은 거짓인 것이요, 반야는 진실한 실법이거늘 어떻게 이익을 얻겠는가! 만약 이익이 없다고 한다면, 꿈속에서도 착한 일이 있거늘 어떻게 이익이 없는 것이겠는가!” 하여 이익이 있다거나 이익이 없다고 대답하지 못하는 것이며,
이 때문에 수보리 존자는 이 둘의 치우친 소견에 대한 질문을 여의면서, 제법의 실상으로써 대답하기를 “오히려 낮에 한 일조차도 파괴되거늘 하물며 꿈속이겠는가!”라고 하면서, 말하기를 “사리불이여, 보살이 만약 대낮에 반야를 행하여 이익이 있다면 밤에도 이익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대낮에도 이익이 없거늘 하물며 꿈속이겠습니까? 왜냐하면 반야바라밀에는 낮과 밤이 있다고 분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고 한 것이며,
舍利弗聞須菩提所說,旣知般若無增無減,不應復難。今更因餘事問夢中:“須菩提!若夢中所作業,是業有集成不?”“集成”者,是業實集能成果報不?是業若有實,佛常說“一切法空如夢”,不應得集成!何以故?是夢心微弱故,不能集成。晝日微弱心,尚不能集成,何況夢中!若夢覺已,分別夢中生善、不善心,是應集成。
사리불 존자는 수보리 존자의 말을 듣고 이미 반야에는 더하고 덜하는 것이 없는 무증무감(無增無減)임을 알았으므로 다시 더 이상 따지지 않아야 할 것이나,
여기서는 다시 그 밖의 일로 인하여 꿈속의 것을 묻기를 “수보리여, 만약 꿈속에서 업을 지으면 이 업이 쌓여서 완성됨이 있습니까? 쌓여서 완성된다는 것은 업이 진실로 쌓이면서 과보를 이루는 것입니까?
이 업이 만약 진실로 있다면 부처님께서 항상 말씀하시기를, ‘일체법은 공하여 마치 꿈과 같다’고 하셨으므로 쌓여서 완성되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꿈속의 마음은 미약하기 때문에 쌓여서 완성될 수 없기 때문이며, 대낮의 미약한 마음조차도 오히려 쌓여서 완성될 수가 없거늘 하물며 꿈속의 일이겠습니까! 만약 꿈을 깬 뒤에 꿈속에서 내었던 착하고 착하지 않은 마음을 분별한다면, 그것은 바로 쌓여서 완성되어야 하는 것입니다”고 하였으며,
須菩提語舍利弗:“如人夢中殺人,覺已,分別我殺是快耶?舍利弗!是業云何,爲集成不?”舍利弗語須菩提:“一切業若晝、若夢皆從因緣生,無因緣則不生。”
수보리 존자가 사리불 존자에게 말하기를 “마치 사람이 꿈속에서 사람을 죽인 것과 같아서 깬 뒤에 ‘내가 죽였다. 이 일이야말로 유쾌한 것이었다’고 하면서 분별한다면, 사리불이여, 이 업이 어떻게 쌓여서 완성되는 것입니까?”라고 하자,
사리불 존자가 수보리에게 말하기를 “일체의 업은 낮이거나 밤이거나 모두가 인연(因緣)으로부터 생기는 것이니, 인연이 없으면 생기지 않습니다”고 하였다.
須菩提可其言:“如是!業有因緣生、無因緣不生,思有因緣生、無因緣不生。”
業者,身口業;思者,但意業。思是眞業,身口業爲思故名爲業。是三業因四種法:若見、若聞、若覺、若知,因此四種則心生;是心隨因緣生,或淨、或不淨。不淨,罪業;淨,福業。是故若夢中所見,皆因先見、聞、覺、知。夢中所作善惡,爲眠覆心、不自在故,無有勢力,不能集成果報;若是業得覺時,善惡心和合故,能助成果報。
수보리 존자는 그의 말이 옳다고 하면서 “그렇습니다. 업은 인연이 있으면 생기고 인연이 없으면 생기지 않으며, 생각(思)은 인연이 있으면 생기고 인연이 없으면 생기지 않습니다”고 하였다.
업은 신업(身業)과 구업(口業)이며, 생각(思)은 의업(意業)만을 말하는 것이며, 생각(思)이야말로 진실한 업이고, 신업ㆍ구업은 생각 때문에 업이라 하는 것이다.
이 신구의의 세 가지 삼업(三業)은 보고(見) 듣고(聞) 깨닫고(覺) 아는(知)의 네 가지의 법으로 인한 것이니,
이 네 가지로 인하여 곧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이 마음은 인연에 따라 생기되, 혹은 깨끗하기도 하고 혹은 깨끗하지 않기도 하나니, 깨끗하지 않은 것은 죄업(罪業)이요, 깨끗한 것은 복업(福業)이다.
그러므로 만약 꿈속에서 보는 바가 모두 앞의 보고(見) 듣고(聞) 깨닫고(覺) 아는(知) 것으로 인한 것이라면, 꿈속에서 지은 선과 악은 수면에 덮여서 마음이 자유롭지 못한 때문에 세력이 없고 과보를 쌓아 이룰 수가 없지만, 만약 이 업이 꿈을 깬 뒤에는 선과 악의 마음으로 화합하기 때문에 과보를 도와서 이루게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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