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 釋燈炷品 第五十七 卷七十四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삼장법사 구마라집 소역
57. 등주품(燈炷品)을 풀이함① 5
佛可其言:“如是!”更自說因緣:“須菩提!是空法相不可說;若不可說,不名爲空。
佛以大慈悲心憐愍衆生故方便爲說,强作名字語言,令衆生得解 所謂空。或說不可盡、無數、無量、無邊等。”
부처님께서는 “그러하느니라”하시면서, 수보리 존자의 말을 인가하셨으며,
다시 직접 그 인연을 말씀하셨으니, “수보리야, 이 공한 공법의 공법상(空法相)은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불가설(不可說)이나니, 만약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불가설이라면 공(空)이라 하지 못한다”고 하신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대자비의 마음으로써 중생들을 가엾이 여기신 때문에 방편으로 그들에게 억지로 명자(名字, 이름)과 언어(言語)를 지어서 말씀하시면서 중생들로 하여금 이해할 수 있게 하시나니, 그것이 바로 공(空)인 것이며,
혹은 다할 수 없는 불가진(不可盡)이고, 무수(無數)이고, 무량(無量)이며, 무변(無邊)이라는 등으로 말씀하기도 하셨으며,
是實相不生、不作故說“不盡”。諸聖人得諸法實相,入無餘涅槃時,不墮六道數;
是實相法亦不墮有爲、無爲等諸法數中,是故說“無數”。
“量”名以智慧稱量好醜、多少、大小、是非等;諸法實相中,滅諸相故,是故說“無量”。
이 실상(實相)은 나지도 않는 불생(不生)이고, 짓지도 않는 불작(不作)이기 때문에 다하지 않는 불진(不盡)이라 말씀하시기도 하나니,
모든 성인들은 제법의 실상을 얻어서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들 때에 지옥 아귀 축생 인간 아수라 천상의 육도(六道)의 무리에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이 실상의 실상법 또한 유위(有爲)와 무위(無爲) 등의 제법 안에 떨어지지 않나니, 그 때문에 무수(無數)라는 이름으로 말씀하시며,
지혜로써 아름답고 추한 호추(好醜)와 많고 적은 다소(多少)와 크고 작은 대소(大小)와 옳고 그른 시비(是非) 등을 헤아리되 제법의 실상 가운데에서는 모든 상(相)이 멸(滅)하기 때문에 무량(無量)이라 하신 것이다.
諸法實相不可量故說“無邊”。是實相法寂滅故說“無著”。
是實相法我我所定相不可得故說“空”。空故無相,無相故則“無作”、“無起”。
是法常住不壞故“無生”、“無滅”。是法能斷三界染故名“無染”。
更不織煩惱業故名“涅槃”。如是等有無量名字,種種因緣說是諸法實相。
제법의 실상은 양으로 헤아릴 수 없기 때문에 끝이 없는 무변(無邊)이라 하고,
이 실상법은 조용히 사라진 적멸(寂滅)이기 때문에 집착이 없는 무착(無著)이라 하며,
이 실상법에서는 나(我)와 내 것의 아소(我所)의 정해진 정상(定相)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공하다 하고,
공하기 때문에 무상(無相)이며, 무상이라면 곧 지음도 없는 무작(無作)이고, 일어남도 없는 무기(無起)라 하는 것이다.
이 법은 항상 머무르는 상주(常住)하면서 파괴되지 않기 때문에 나는 것도 없어지는 것도 없는 무생무멸(無生無滅)이며,
이 법은 삼계(三界)에서 물드는 것을 끊어내기 때문에 물듦이 없는 무염(無染)이라 하며,
다시는 번뇌의 업을 짓지 않기 때문에 열반(涅槃)이라 하나니,
이와 같은 등의 무량한 이름과 갖가지의 인연으로 이 제법의 실상을 말씀하셨다.
爾時,須菩提白佛:“希有!世尊!諸法實相雖不可說,而佛以方便力說!
如我解佛義,非但實相不可說,一切諸法亦不可說。”
그때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말씀드리기를
“희유합니다, 세존이시여. 제법의 실상이 비록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불가설일지라도 부처님께서는 방편의 힘으로써 말씀하십니다. 제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를 이해하기로는 비단 실상만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불가설일 뿐만 아니라 일체법 또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불가설입니다”고 하였다.
佛可其言而說因緣:“一切法終歸於空,歸於空故不可說,不可說義卽是無增無減。”
“若一切法無增無減,六波羅蜜等諸善法亦無增無減;若六波羅蜜善法不增者,云何得無上道?”
부처님께서는 그의 말을 옳다고 하시면서 그 인연을 말씀하셨으니,
“제법은 마침내 공으로 돌아가나니, 공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불가설이며,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불가설의 이치가 바로 더하고 덜함도 없는 무증무감(無增無減)인 것이니라”고 하시자,
수보리 존자가 여쭙기를, “만약 일체법에 더하는 것도 없고 덜하는 것도 없다면 육바라밀 등의 모든 착한 선법에서도 역시 더하는 것도 없고 덜하는 것도 없으리니, 만약 육바라밀 등의 착한 선법이 더하여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위없는 무상도를 얻겠는지요”라고 하였다.
佛可其言,更爲說因緣:“法雖無增減,而可得無上道。
所謂菩薩習行般若波羅蜜,方便力故,雖行檀波羅蜜諸助道法,我我所、憍慢斷故,不作是念:‘我增長是六波羅蜜等法。’不取內外諸法相行,是謂善法,如無上道相迴向。”
부처님께서는 그 말을 옳다고 하시면서 다시 그를 위하여 인연을 말씀하셨으니,
“법에는 비록 더하거나 덜함이 없을지라도 위없는 무상도를 얻을 수 있나니,
이른바 보살은 반야바라밀의 방편의 힘을 익히고 행하기 때문에, 비록 단바라밀 등의 도를 돕는 모든 조도법(助道法)을 행할지라도 나와 내 것의 아아소(我我所)에 대한 교만을 끊어내기 때문에 나는 이 6바라밀 등의 법을 더욱 자라게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안팎의 제법의 상(相)을 취하지 않고 행하나니, 즉 모든 착한 선법을 위없는 무상도의 상(相)과 같이 회향하는 것이니라”고 하신 것이다.
須菩提問:“何等是無上道?”
佛答:“諸法如卽是無上道。”
수보리 존자가 여쭈기를 “어떤 것이 위없는 무상도(無上道)인지요?”라고 하자,
부처님께서는 대답하시기를, "제법의 한결같이 여여한 여(如)가 곧 위없는 무상도이니라”고 하셨으며,
須菩提問:“何等是一切法?”
佛答:“色等法乃至涅槃。是諸法如卽是寂滅相,是無上道相。”
수보리 존자가 묻기를 “어떠한 것이 일체법(一切法)인지요?”라고 하자,
부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물질(色) 등의 법 내지는 열반(涅槃)이 바로 제법의 여여한 여(如)요 고요히 사라진 적멸상(寂滅相)이니, 이것이 바로 위없는 무상도이니라”고 하셨다.
寂滅者,不增不減、不高不下,滅諸煩惱、戲論,不動不壞、無所障㝵。
菩薩以般若波羅蜜方便力故,亦能令布施等如寂滅相。如是種種因緣說無上道相。
若菩薩常念無上道寂滅相,令一切法皆同寂滅相,亦觀不可說義,所謂不增不減相;
菩薩如是疾得無上道,以不增不減、不可得故。
‘고요히 사라진 적멸(寂滅)’ 이라 함은, 더하지도 않는 부증(不增), 덜하지도 않는 불감(不減), 높지도 않은 불고(不高), 낮지도 않은 불하(不下), 모든 번뇌와 쓸모없는 희론이 사라져서 동요하지도 않는 부동(不動) 파괴되지도 않는 불괴(不壞) 장애되는 바가 없는 무장애(無障㝵)인 것이다.
보살이 반야바라밀의 방편의 힘으로써 보시 등을 적멸상과 같이 하나니, 이와 같은 갖가지의 인연으로 위없는 무상도의 상(相)을 설명하였으며,
만약 보살이 항상 위없는 무상도의 적멸상을 염(念)하면서 일체법이 모두 적멸상과 똑같이 되게 하며, 또한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불가설의 이치인, 이른바 더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는 부증불감상(不增不減相)을 관찰한다면,
보살은 이와 같은 위없는 무상도를 신속히 얻게 되나니,
그것은 더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는 부증불감(不增不減) 조차도 얻을 수 없는 불가득이기 때문이다.
大智度論卷第七十四 終 대지도론 74권을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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