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 釋天主品 第二十七 卷五十四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송성수 번역/김형준 개역

27. 천주품(天主品) 풀이함 5

 

爾時,釋提桓因問須菩提:“云何菩薩般若波羅蜜中所不應住?”

그 때에 석제환인(釋提桓因, Śakra devā nāmindra, 천주)이 수보리 존자에게 묻기를,

“어떻게 보살이 반야바라밀 가운데에서 머무르지 않는 불응주(不應住) 하는지요?”


須菩提言:“憍尸迦!菩薩摩訶薩不應色中住,以有所得故;不應受、想、行、識中住,以有所得故。

수보리 존자가 답하여, 

“교시가여, 보살마하살은 색(色) 가운데에 머무르지 않는 불응주(不應住)해야 하나니, 

얻는 바가 있는 유소득(有所得)이기 때문이며,

수상행식(受想行識) 가운데에도  머무르지 않는 불응주(不應住)해야 하나니, 

얻는 바가 있는 유소득(有所得)이기 때문입니다.


不應眼中住乃至不應意中住,不應色中住乃至不應法中住,眼識乃至意識、眼觸乃至意觸、眼觸因緣生受乃至意觸因緣生受中不應住,以有所得故。地種乃至識種中不應住,以有所得故。

눈(眼) 가운데에 머무르지 않아야 하고, 나아가 ㆍ 귀(耳)ㆍ코(鼻)ㆍ혀(舌)ㆍ몸(身) 뜻(意) 가운데에도 불응주(不應住)해야 하며,

빛깔(色) 가운데에 불응주(不應住)해야 하며,  나아가 소리(聲)ㆍ냄새(香)ㆍ맛(味)ㆍ닿임(觸)ㆍ법(法) 가운데에도 불응주(不應住)해야 하고, 

안식(眼識)에서 이식(耳識)ㆍ비식(鼻識)ㆍ설식(舌識)ㆍ신식(身識) 의식(意識)까지와 

눈의 접촉인 안촉(眼觸)에서 이촉(耳觸), 비촉(鼻觸), 설촉(舌觸), 신촉(身觸), 의촉(意觸)까지와 

눈의 접촉의 인연으로 생긴 느낌의 안촉생수(眼觸生受)와 이촉생수(耳觸生受), 비촉생수(鼻觸生受), 설촉생수(舌觸生受), 신촉생수(身觸生受)까지에도 머무르지 않는 불응주(不應住)해야 하나니, 얻는 바가 있는 유소득(有所得)이기 때문이며,

땅의 요소인 지종(地種)에서 의식의 요소인 식종(識種)까지에도 불응주(不應住)해야 하나니, 얻는 바가 있는 유소득(有所得)이기 때문입니다.


檀波羅蜜乃至般若波羅蜜、四念處乃至十八不共法中不應住,以有所得故。須陁洹果中不應住,以有所得故;乃至阿羅漢果、辟支佛道、菩薩道、佛道、一切種智不應住,以有所得故。

단바라밀에서 반야바라밀까지와념처에서 18불공법까지에도 불응주(不應住)해야 하나니, 얻는 바가 있는 유소득(有所得)이기 때문이며, 

수다원(須陀洹)의 과위 가운데에 불응주(不應住)해야 하나니 얻는 바가 있는 유소득(有所得)이기 때문이며,  

나아가 아라한의 과위와 벽지불도와 보살도와 부처님의도와 일체종지에도 불응주(不應住)해야 하나니, 얻는 바가 있는 유소득(有所得)이기 때문입니다.

 

復次,憍尸迦!菩薩摩訶薩,色是常不應住,色是無常不應住;受、想、行、識亦如是。

色若樂若苦、若淨若不淨、若我若無我、若空若不空、若寂滅若不寂滅、若離若不離不應住,以有所得故;受、想、行、識亦如是。

다시 교시가여, 보살마하살은 색(色) 항상(常)하다는 것에 불응주(不應住)해야 하고, 

색(色)이 무상(無常)하다는 불응주(不應住)해야 하나니, 수상행식(受想行識) 또한 그와 같으며, 

색(色)이 즐겁다는 색낙(色樂)과 괴롭다는 색고(色苦)와 깨끗하다는 색정(色淨)과 깨끗하지 않다는 색부정(色不淨)과

나(我)와 무아(無我), 공(空)과 불공(不空), 고요히 사라진 적멸(寂滅)과 불적멸(不寂滅),

여의는 이(離)와 여의지 않는 불리(不離) 등에도 불응주(不應住)해야 하나니, 

얻는 바가 있는 유소득(有所得)이기 때문이니, 수상행식(受想行識) 또한 그와 같습니다.

 

復次,憍尸迦!菩薩摩訶薩,須陁洹果無爲相、斯陁含果無爲相、阿那含果無爲相、阿羅漢果無爲相不應住,辟支佛道無爲相、佛道無爲相不應住。須陁洹福田不應住,斯陁含、阿那含、阿羅漢、辟支佛、佛福田不應住。

다시 교시가여, 보살마하살은 수다원과의 무위상(無爲相)ㆍ사다함과의 무위상(無爲相)ㆍ아나함과의 무위상(無爲相)ㆍ아라한과의 무위상(無爲相) 불응주(不應住)해야 하며, 

벽지불도의 무위상(無爲相) 부처님도의 무위상(無爲相)에도 불응주(不應住)해야 하며, 

수다원의 복전(福田)에 불응주(不應住)해야 하고 

사다함ㆍ아나함ㆍ아라한ㆍ벽지불과 부처님의 복전에도 불응주(不應住)해야 합니다.


復次,憍尸迦!菩薩摩訶薩初地中不應住,以有所得故;乃至第十地中不應住,以有所得故。

다시 교시가여, 보살마하살은 초지(初地) 가운데에 불응주(不應住)해야 하나니, 얻는 바가 있는 유소득(有所得)이기 때문이며,  

나아가 제10지(十地) 가운데에 불응주(不應住)해야 하나니, 얻는 바가 있는 유소득(有所得)이기 때문입니다.


復次,菩薩摩訶薩住初發心中,我當具足檀波羅蜜不應住,乃至我當具足般若波羅蜜不應住;

具足六波羅蜜當入菩薩位,不應住;入菩薩位已,當住阿鞞跋致地,不應住。

菩薩當具足五神通,不應住,以有所得故。

다시 보살마하살은 처음 발심한 초발심(初發心) 가운데에 머무르면서 나는 단바라밀을 완전히 갖추어야 한다는 불응주(不應住)해야 하고, 나아가 나는 반야바라밀을 완전히 갖추어야 한다는 것에도 불응주(不應住)해야 하고,

육바라밀을 완전히 갖추어서 보살의 지위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에 불응주(不應住)해야 하고,

보살의 지위에 들어간 뒤에는 아비발치의지(阿毘跋致地)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에 불응주(不應住)해야 하며, 

보살은 다섯 가지의 오신통(五神通)을 완전히 갖추어야 한다는 것에 불응주(不應住)해야 하나니, 
얻는 바가 있는 유소득(有所得)이기 때문입니다.


菩薩住五神通已,我當遊無量阿僧祇佛界,禮敬、供養諸佛,聽法;聽法已,爲他人說;菩薩摩訶薩如是不應住,以有所得故。如諸佛世界嚴淨,我亦當莊嚴世界,不應住,以有所得故。

보살이 다섯 가지의 오신통(五神通)에 머무른 뒤에, 나는 무량한 아승기 세계를 노닐면서 모든 부처님을 예배하고 공경하고 공양하며 법을 듣고 법을 들은 뒤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해설해야 한다는 것에도 불응주(不應住)해야 하나니, 얻은 바가 있는 유소득(有所得)이기 때문이며,  

마치 모든 부처님께서 세계를 장엄하고 청정하게 하신 것과 같이,  또한 세계를 장엄해야 한다는 것에도 불응주(不應住)해야 하나니, 얻는 바가 있는 유소득(有所得)이기 때문입니다.


成就衆生令入佛道,不應住;到無量阿僧祇世界諸佛所,尊重、愛敬、供養,以香華、瓔珞、澤香、搗香、幢幡、華蓋、百千億種寶衣供養諸佛,不應住,以有所得故。

중생을 성취시켜 부처님의도에 들게 하는 것에도 불응주(不應住)해야 하고, 

무량한 아승기 세계에 계신 모든 부처님께 가서 존중하고 예경하고 공양하며 향ㆍ꽃ㆍ영락ㆍ택향(澤香)ㆍ도향(搗香)ㆍ당기ㆍ번기  화려한 일산과 백천억 가지의 보배옷을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는에도 불응주(不應住)해야 하나니, 

얻을 바가 있는 유소득(有所得)이 때문입니다.

 

我當令無量阿僧祇衆生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如是菩薩不應住;

我當生五眼:肉眼、天眼、慧眼、法眼、佛眼,不應住。

나는 무량한 아승기의 중생으로 하여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게 하여 한다는 것에 불응주(不應住)해야 하며, 

나는 육안(肉眼)ㆍ천안(天眼)ㆍ혜안(慧眼)ㆍ법안(法眼)ㆍ불안(佛眼)의 오안(五眼) 내어야 한다에도 불응주(不應住)해야 하며, 


我當生一切三昧門,不應住;隨所欲遊戲諸三昧,不應住;我當生一切陁羅尼門,不應住;我當得佛十力,不應住;我當得四無所畏、四無碍智、十八不共法,不應住。

나는 일체 삼매문(三昧門)에 불응주(不應住)해야 하고, 

바라는 바대로 모든 삼매에 유희하리라는에도 불응주(不應住)해야 하고, 

나는 일체 다라니문(陁羅尼門)을 내야 한다는 것에도 불응주(不應住)해야 하며, 

나는 부처님의 10력(十力)을 얻어야 한다는 것에도 불응주(不應住)해야 하고, 

나는무소외(四無所畏)ㆍ사무애지(四無礙智)ㆍ18불공법(不共法)을 얻어야 한다는에도 불응주(不應住)해야 합니다.


我當具足大慈大悲,不應住;我當具足三十二相,不應住;我當具足八十隨形好,不應住,以有所得故。

나는 대자대비(大慈大悲)를 완전히 갖추어야 한다는 불응주(不應住)해야 하고, 

나는 32상(相)을 완전히 갖추어야 한다는에 불응주(不應住)해야 하며, 

나는 80수형호(隨形好)를 완전히 갖추어야 한다는에도 불응주(不應住)해야 하나니, 

얻는 바가 있는 유소득(有所得)이기 때문입니다.


是八人 是信行人、是法行人,如是不應住;須陁洹極七世生不應住,家家不應住;須陁洹命終垢盡不應住;須陁洹中閒入涅槃不應住。

 8인(人, 팔인지八人地)로서 그는 신행인(信行人)이다. 그는 법행인(法行人)이라는 불응주(不應住)해야 하고, 

수다원은 아무리 많더라도 일곱 번의 세상에서만 생을 받는, 극칠세생([極七世生)이라는 불응주(不應住)해야 하며, 

가가(家家)에 불응주(不應住)해야 하며, 

수다원은 목숨을 마치면서 더러움이 다한다는 것에도 불응주(不應住)해야 하며, 

수다원이 중간에 열반에 드는에도 불응주(不應住)해야 하며, 

 

팔인지(八人地)= 팔인(八人)= 팔인(八忍). 욕계의 사제(四諦)와 색계·무색계의 사제를 명료하게 관찰하여서 그것에 대한 미혹을 끊고 확실하게 인정한 지위.- 김민정


是人向斯陁含果證不應住;是人斯陁含,一往來入涅槃不應住;是人向阿那含果證不應住;斯陁含一種不應住;是人阿那含,彼閒入涅槃,不應住。

 사람은 사다함의 증과(證果)를 향하여 수행하는 이라는 불응주(不應住)해야 하고, 

 사람은 사다함으로서 마지막으로 한 번만 갔다가 와서는 열반에 드는 이라는 불응주(不應住)해야 하며, 

 사람은 아나함의 증과를 향하여 수행하는 이라는 불응주(不應住)해야 하며, 

아나함은 일종(一種)이라는 불응주(不應住)해야 하며, 

 사람은 아나함으로서  세간에서 열반에 드는 이라는에도 불응주(不應住)해야 하며, 


是人向阿羅漢果證不應住;是人阿羅漢今世入無餘涅槃不應住;是辟支佛不應住;過聲聞、辟支佛地,我當住菩薩地,不應住;道種智中不應住,以有所得故。

 사람은 아라한의 증과를 향하여 수행하는 이라는 불응주(不應住)해야 하고, 

 사람은 아라한으로서  세상에서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드는 이라는 것에도 불응주(不應住)해야 하며, 

 사람은 벽지불이라는 불응주(不應住)해야 하고, 

나는 마땅히 성문과 벽지불을 지나서 보살의 지위에 머물러야만 한다는에도 불응주(不應住)해야 하며, 

도종지(道種智) 가운데에도 불응주(不應住)해야 하나니, 얻는 바가 있는 유소득(有所得)이기 때문입니다.

 

우주와 인생의 진상(眞相)에 대해 궁극적이며 원만하고 분명하게 아는 것에 있어서 터럭만큼의 미혹도 없고 터럭만큼의 오차도 없는 지혜를 '일체종지(一切種智)'라 하며,

일체(一切)는 일체지(一切智)이고, 종지(種智)는 바로 도종지(道種智)입니다.
우리는 본체와 현상을 나누어 말하지만, 사실은 본체와 현상은 하나입니다. 만약 빈야심경의 말로써 한다면 일체지는 바로 공(空)이요, 도종지는 바로 ' 색(色)'이요. 일체총지는 바로 색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색과 다르지 않으며, 색이 곧 공이고 공이 곧 색이다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即是空 。 空即是色]' 로서, 원래 하나이지 둘이 아닙니다.  
불법의 문을 불이법문(不二法門)이라고 하는데, 총상과 별상이 둘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면 당신은 불문에 들어간 것입니다. 이것은 '성(性)과 상(相)이 둘이 아니다. '성과 상이 하나와 같다 [性相一如]는 말인데, 이는 작용을 일으키는 [起用] 가운데서의 정지(正知)와 정견(正見)이며, 바로 우리들이 말하는 부처님의 앎(佛知) 이고 부처님의 견해[佛見]이며, 《법화경》에서 말하는 "부처님의 지견을 열어 보여 깨달아 들어가게 한다. [開示悟入佛之知見]"입니다.
이러한 지혜가 나타나야 비로소 '무상정등정각'이라 하는데, 오직 부처님만이 원만히 증득하신 것입니다.  - 정토심淨土心 최희정


一切種、一切法知已,斷諸煩惱及習,不應住;佛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當轉法輪,不應住;作佛事,度無量阿僧祇衆生入涅槃,不應住。

일체 종류와 일체법을 알고 나서 모든 번뇌와 습기를 끊어 나아가는 것에도 불응주(不應住)해야 하고, 

부처님께서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시고는 당연히 법륜(法輪)을 굴리신다는 것에도 불응주(不應住)해야 하며, 

불사(佛事)를 짓고 무량한 아승기의 중생을 제도하고서 열반에 드신다는에도 불응주(不應住)해야 하며, 


四如意足中不應住;入是三昧,住如恒河沙等劫壽,不應住;我當得壽命無殃數劫,不應住;三十二相,一一相百福莊嚴,不應住;我一世界如十方恒河沙等世界,不應住;我三千大千世界純是金鋼,不應住。

사여의족(四如意足) 가운데에 불응주(不應住)해야 하고,

이 삼매(三昧)에 들어가 머무르면서 항하 강의 모래수같이 많은 겁 동안 오래 산다는 것에도 불응주(不應住)해야 하며,

나는 무앙수겁(無殃數劫, asaṃkhyeya. 아승기겁) 동안 수명을 누리리라는 것에도 불응주(不應住)해야 하고,

32상(相)의 낱낱 몸매의 백복(百福)으로 장엄하는 것에도 불응주(不應住)해야 하며,

나의 일세계(一世界)는 시방의 항하 강의 모래수같이 많은 수의 세계라는 것에도 불응주(不應住)해야 하고,


使我菩提樹當出如是香,衆生聞者,無有婬欲、瞋恚、愚癡,亦無聲聞、辟支佛心,是一切人必當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若衆生聞是香者,身病、意病皆悉除盡,不應住。

나의 삼천대천세계는 순전히 금강(金剛)으로 되리라는 것에도 불응주(不應住)해야 하며, 

나의 보리수(菩提樹)는 이러한 향을 내어서 중생들이 맡으면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없어지고, 또한 성문이나 벽지불의 마음도 없어지며, 이러한 일체의 사람들은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여야 하며, 중생으로서 이 향기를 맡은 이는 몸의 병과 마음의 병이 모두 다 없어져야 한다는 것에도 불응주(不應住)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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