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 釋發趣品 第二十 卷四十九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송성수 번역/김형준 개역
20. 발취품(發趣品)을 풀이함① 2
復次,須菩提!菩薩摩訶薩住八地中應具足五法。何等五?
順入衆生心;遊戲諸神通;觀諸佛國;如所見佛國,自莊嚴其國;
如實觀佛身,自莊嚴佛身;是名五法具足滿。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제8지(八地)에 머물러서 다시 다섯 가지의 오법(五法)을 구족해야 하나니, 무엇이 오법(五法)인가?
중생의 마음을 따라 들어가고, 모든 신통에 유희하며, 모든 부처님의 불국(佛國)을 관찰하고,
관찰한 불국(佛國)과 같이 스스로의 국토를 장엄하며,
여실히 부처님의 몸을 관하면서 스스로 부처님 몸을 장엄하는 것이니,
이러함을 두루 갖추고 원만하게 하는 오법구족만(五法具足滿)이라 하느니라.
復次,須菩提!菩薩摩訶薩住八地中復具足五法。何等五?
知上下諸根,淨佛世界,入如幻三昧,常入三昧,隨衆生所應善根受身。
須菩提!是爲菩薩摩訶薩住八地中具足五法。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제8지(八地)에 머물러서 다시 다섯 가지의 오법(五法)을 두루 갖추나니, 무엇이 오법(五法)인가?
위 아래의 모든 근기를 아는 지상하제근(知上下諸根)이고, 부처님의 세계를 청정하게 하며,
일체가 환(幻)과 같아서 실체가 없다고 관하는 여환삼매(如幻三昧, māyā-upama-samādhi)에 들어가고,
또한 항상 삼매(三昧)에 들어가며, 중생에게 알맞은 선근(善根)을 따라 몸을 받나니,
수보리야, 이를을 보살마하살이 제8지에 머무르면서 두루 갖추어야 할 구족오법(具足五法)이라 하느니라.
復次,須菩提!菩薩摩訶薩住九地中應具足十二法。何等十二?
受無邊世界所度之分,菩薩得如是願,知諸天、龍、夜叉、犍闥婆語而爲說法,
處胎成就,家成就,所生成就,姓成就,眷屬成就,出生成就,出家成就,莊嚴佛樹成就,
一切諸善功德成滿具足。須菩提!是名菩薩摩訶薩住九地中應具足十二法。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제9지(九地)에 머무르면서 열두 가지의 십이법(十二法)을 구족해야 하나니, 무엇이 십이법(十二法)인가?
끝이 없는 무변세계에서 제도할 바의 몫을 받으며, 보살로서 원하는 바를 그대로 얻으며,
모든 하늘ㆍ용ㆍ야차ㆍ건달바의 말을 알아듣고는 그들을 위하여 설법하며,
태(胎)에 드는 처태(處胎)를 성취하며, 집안에 대한 가(家)를 성취하며,
태어날 바의 소생(所生)을 성취하며, 성바지의 성(姓)을 성취하며,
권속에 대한 권속(眷屬)을 성취하며, 태어나는 출생(出生)을 성취하며, 출가하는 출가(出家)를 성취하며,
불수(佛樹, 보리수)를 장엄하는 장엄불수(莊嚴佛樹)를 성취하며,
일체의 모든 착한 선공덕(善功德)을 원만하게 이루어 두루 갖추는 것이니,
수보리야, 이러함을 보살마하살이 제9지에 머무르면서 구족해야 할 십이법(十二法)이라 하느니라.
須菩提!十地菩薩當知如佛。
수보리야, 10지(十地)의 보살은 부처님과 같다고 알아야 하느니라.
爾時,慧命須菩提白佛言:“世尊!云何菩薩摩訶薩深心治地業?”
佛言:“菩薩摩訶薩應薩婆若心,集諸善根,是名菩薩摩訶薩深心治地業。”
그때에 혜명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으니,
“세존이시여, 어떻게 보살마하살은 깊은 심심(深心)으로 지업(地業)을 다스리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보살마하살은 살바야(薩婆若)에 상응한 마음으로 모든 선근(善根)을 쌓나니, 이를 보살마하살이 깊은 심심(深心)으로 지업을 다스리는 치지업(治地業)이라 하느니라.”
“云何菩薩於一切衆生中等心?”佛言:“若菩薩摩訶薩應薩婆若心,生四無量心,
所謂慈、悲、喜、捨。是名於一切衆生中等心。”
“보살이 어떻게 일체 중생들에 대하여 동등한 마음의 등심(等心)을 지니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만약 보살마하살이 살바야에 상응한 마음으로 4무량심(四無量心), 이른바 자(慈)ㆍ비(悲)ㆍ희(喜)ㆍ사(捨)를 낸다면, 이를일체 중생에 대하여 동등한 등심(等心)을 지닌다 하느니라.”
“云何菩薩修布施?”佛言:“菩薩施與一切衆生無所分別,是名修布施。”
“어떻게 보살은 보시를 닦는 수보시(修布施)를 하는 것인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보살은 일체 중생에게 베풀어 주되 분별함이 없는 부소분별(無所分別)이니, 이를 보시를 닦는 수보시(修布施)라 하느니라.”
“云何菩薩親近善知識?”
佛言:“能敎入薩婆若中住,如是善知識,親近、諮受、恭敬、供養,是名親近善知識。”
“보살이 어떻게 선지식을 가까이하는 친근선지식(親近善知識)인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살바야 안에 들어가 머무르게 해주는 선지식을 친하게 가까이하면서, 물어서 그 가르침을 받고, 공경하고 공양한다면, 이를 선지식을 가까이하는 친근선지식(親近善知識)이라 하느니라.”
“云何菩薩求法?”
佛言:“若菩薩應薩婆若心求法,不墮聲聞、辟支佛地,是名求法。”
“보살이 어떻게 법을 구하는 구법(求法)해야 하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만약 보살마하살이 살바야에 상응한 마음으로 구법(求法)을 하면 성문이나 벽지불의 경지에 떨어지지 않나니,
이를 법을 구하는 구법(求法)이라 하느니라.”
“云何菩薩常出家治地業?”
佛言:“菩薩世世不雜心,佛法中出家,無能障礙者,是名常出家治地業。”
“보살이 어떻게 항상 출가(出家)하여 지의 업을다스리는 치지업(治地業)을 하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보살은 세세마다 뒤섞이지 않는 불잡심(不雜心)으로 불법 안에 출가하되 장애가 없나니,
이를 항상 출가하여 지의 업을 다스리는 치지업(治地業)이라 하느니라.”
“云何菩薩愛樂佛身治地業?”
佛言:“若菩薩見佛身相,乃至阿耨多羅三藐三菩提,終不離念佛,是名愛樂佛身治地業”
“보살이 어떻게 부처님의 몸을 좋아하면서 지의 업을 다스리는 불신치지업(佛身治地業)을 하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만약 보살이 부처님의 몸의 신상(身相)을 뵙고서 이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이르기까지 끝내 부처님에 대한 염(念)을 여의지 않는다면, 이을 부처님 몸을 좋아하면서 지의 업을 다스리는 불신치지업(佛身治地業)이라 하느니라.”
“云何菩薩演出法敎治地業?”
佛言:“菩薩,若佛現在、若佛滅度後,爲衆生說法,初中後善 妙義好語 淨潔純具,
所謂修妒路乃至優婆提舍,是名演出法敎治地業。”
“보살이 어떻게 교법을 널리 설하여 펴면서 지의 업을 다스리는 치지업(治地業)을 하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보살은 부처님이 현세에 계시거나, 부처님이 멸도(滅度)하신 뒤이거나 간에 중생을 위하여 설법하되 처음도 중간도 나중도 좋으며, 묘한 이치와 좋은 말로써 정결하고도 순수하게 완전히 갖추나니,
이른바 수투로(修妬路, sūtra, 산문 형식의 경설)에서 우바제사(優婆提舍, upadeśa, 간략한 경의 말씀을 상세히 해설한 것)까지이니라.
이를 교법을 널리 설하여 펴면서 치지업(治地業)한다 하느니라.”
“云何菩薩破於憍慢治地業?”
佛言:“菩薩破是憍慢故,終不生下賤家,是名破於憍慢治地業。”
“보살은 어떻게 교만을 깨뜨리면서 치지업(治地業)하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보살은 이 교만을 깨뜨리는 까닭에 끝내 하천(下賤)한 집안에 태어나지 않나니, 이를 교만을 깨뜨리면서 지의 업을 다스리는 치지업(治地業)한다 하느니라.”
“云何菩薩實語治地業?”
佛言:“菩薩如所說,隨說行,是名實語治地業。是爲菩薩摩訶薩住初地中,修行十事治地業”
“어떻게 보살은 진실한 말의 실어(實語)로써 치지업(治地業)을 하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보살은 말씀한 바대로 그 말씀을 따라 행하나니, 이를 진실한 말의 실어(實語)로써 지업을 다스린다 하느니라.
이러함이 보살마하살이 초지(初地)에 머물러 열 가지의 십사(十事)를 수행하면서 치지업(治地業)을 하는 것이니라.”
▶論. 釋曰:須菩提上問“摩訶衍”,佛種種答“摩訶衍相”;上又問“發趣大乘”者,今答“發趣大乘相”。
▷논. 해석한다;
수보리 존자가 위에서 마하연(摩訶衍)을 물었는데 부처님께서는 갖가지로 마하연상(摩訶衍相)을 대답하셨고,
또한 위에서는 대승으로 나아가는 것을 물었는데, 지금 대승으로 나아가는 발취대승상(發趣大乘相)을 대답하신 것이다.
菩薩摩訶薩乘是乘,知一切法從本已來不來不去、無動無發,法性常住故;又以大悲心故、
精進波羅蜜故、方便力故,還修諸善法;更求勝地而不取地相,亦不見此地。
보살마하살은 이 승(乘, 대승)에 올라 제법은 본래부터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는 불래불거(不來不去)이며,
움직임도 없고 일으킴도 없는 무동무발(無動無發)이어서 법성이 항상 있는 법성상주(法性常住) 임을 알기 때문에,
또한 큰 대비심(大悲心)과 정진바라밀과 방편의 힘 때문에 도리어 모든 선법을 닦고 다시금 수승한 지위의 승지(勝地)를 구하나, 그 지위의 지상(地相)을 취하지도 않고 또한 그 지위를 보지도 않는 것이다.
問曰:應答“發趣大乘”,何以說“發趣地”?
묻나니, 당연히 대승으로 나아가는 발취대승(發趣大乘)을 대답해야 하시거늘
어찌하여 지(地)로 나아가는 발취지(發趣地)를 말씀하신 것입니까?
答曰:大乘卽是地。地有十分,從初地至二地,是名“發趣”;
譬如乘馬趣象,捨馬乘象,乘象趣龍,捨象乘龍。
답하나니, 대승(大乘)이 곧 지(地)이라. 지(地)에는 열 가지가 있으니,
초지(初地)에서부터 2지(二地)에 이르게 되는 것을 나아가는 발취(發趣)라 하는 것으로,
비유하자면, 말을 타고 코끼리가 있는 곳으로 나아가서는, 말을 버리고는 코끼리를 타며,
다시 코끼리를 타고 용이 있는 곳으로 나아가서는, 코끼리를 버리고는 용을 타는 것과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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