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 釋行相品 第十 卷第四十三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송성수 번역/김형준 개역

10. 행상품(行相品) 풀이함 5

 

舍利弗白佛言;“世尊!何等無所有,是事不知,名爲無明?”

사리불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으니, 

“세존이시여, 무엇이 있는 바가 없는 무소유(無所有)이며,

이를 알지 못하면 무명(無明)이라 하는 것입니까?”

 

佛告舍利弗:“色、受、想、行、識無所有,內空乃至無法有法空故;四念處乃至十八不共法無所有,內空乃至無法有法空故。是中凡夫以無明力渴愛故,妄見分別,說是無明。是凡夫爲二邊所縛。

부처님께서 사리불존자에게 말씀하시기를, 

“물질(色)ㆍ느낌(受)ㆍ생각(想)ㆍ지어감(行)ㆍ분별(識)이 있는 바가 없는 무소유(無所有)이니,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의(意)에 대한 모든 분별 작용이 끊어진 상태의 내공(內空)이요

나아가 무법유법의 상(相)을 취하고자 하여도 얻을 수 없으니 무법유법공(無法有法空)이기 때문이니라.

사념처 내지 18불공법도 무소유(無所有)이니,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의(意)에 대한 모든 분별 작용이 끊어진 상태의 내공(內空)이요,

나아가 무법유법의 상(相)을 취하고자 하여도 얻을 수 없으니 무법유법공(無法有法空)이기 때문이니라.

이 가운데에서 범부는 무명(無明)의 힘으로 간절히 원하기 때문에 망령되이 보고 분별하나니, 이를 무명(無明)이라 하며, 이 범부는 유변(有邊)과 무변(無邊)의 두 경계인 이변(二邊)에 속박을 받느니라.

 

是人不知不見諸法無所有,而憶想分別著色乃至十八不共法;是人著故,於無所有法而作識知見,是凡夫不知不見。何等不知不見?不知不見色,乃至十八不共法亦不知不見,以是故墮凡夫數,如小兒。

이 사람(범부)은 제법이 무소유(無所有)임을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면서,

생각하고 분별하여 물질(色)과 18불공법에 이르기까지에 집착하나니,

집착하기 때문에 무소유(無所有) 법(法)에 대하여 안다는 견해를 지으나, 이 범부는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느니라.

어떠한 것을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한다 하는 것인가?

물질(色)을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며, 나아가 18불공법까지도 역시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느니라.

이 때문에 범부의 범주인 범부수(凡夫數)에 떨어지니, 마치 어린아이와 같으니라.

 

是人不出。於何不出?不出欲界,不出色界,不出無色界;聲聞、辟支佛法中不出。是人亦不信。不信何等?不信色空,乃至不信十八不共法空。

이 사람은 벗어나지도 못하나니, 어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인가!

욕계(欲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색계(色界)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무색계(無色界)와 성문과 벽지불의 법 가운데에서 벗어나지 못하느니라.

이 사람은 믿지도 않으니, 무엇을 믿지 않는것인가!

곧 물질(色)이 공(空)함을 믿지 않고, 나아가 18불공법까지도 공(空)함을 믿지 않느니라.

 

是人不住。不住何等?不住檀波羅蜜,乃至不住般若波羅蜜;不住阿毘跋致地,乃至不住十八不共法。以是因緣故,名爲凡夫,如小兒。

이 사람은 머무르지도 않는 불주(不住)이니, 어떠한 곳에 불주(不住)인가!

단(檀, 보시)바라밀에 머무르지 않고, 나아가 반야바라밀에도 머무르지 않으며,

아비발치지(阿毘跋致地)도에 머무르지 않고, 나아가 18불공법에도 머무르지 않느니라.

이러한 인연 때문에 범부라 하나니, 어린아이와도 같으니라.

 

亦名著者,何等爲著?著色乃至識,著眼入乃至意入,著眼界乃至意識界,著怒癡、著諸邪見,著四念處乃至著佛道。”

또한 집착하는 착자(著者)라 하나니, 어떠한 것에 집착하는가!

물질(色)ㆍ느낌(受)ㆍ생각(想)ㆍ지어감(行)ㆍ의식(識)에 이르기까지의 오중(五衆, 오온)에집착하고,

눈의 영역인 안입(眼入)ㆍ이입(耳入)ㆍ비입(鼻入)ㆍ설입(舌入)ㆍ신입(身入) 의입(意入)에 이르기까지 육입(六入)에 집착하며,

눈의 경계인 안계(眼界)에서 이계(耳界)ㆍ비계(鼻界)ㆍ설계(舌界)ㆍ신계(身界) 의식계(意識界)에 이르기까지 집착하고

음(婬, 음욕)ㆍ노(怒, 분노)ㆍ치(癡, 어리석음)의 삼독(三毒)에 집착하며,

모든 삿된 사견(邪見)에 집착하고, 사념처에 집착하며, 나아가 부처님의 불도(佛道)에 이르기까지 집착하느니라.”

 

舍利弗白佛言:“世尊!若菩薩摩訶薩作如是學,亦不學般若波羅蜜,不得薩婆若?”佛語舍利弗:“菩薩摩訶薩作如是學,亦不學般若波羅蜜,不得薩婆若。”

사리불이 부처님께 여쭈었으니, 

“세존이시여, 만약 보살마하살이 위와 같은 배움(學)을 짓는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우지도 못하고 살바야(薩婆若)도 얻지 못하는지요?”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으니,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배움(學)을 지으면, 반야바라밀을 배우지도 못하고 살바야도 얻지 못하느니라.”

 

舍利弗白佛言:“世尊!何以故菩薩摩訶薩亦不學般若波羅蜜,不得薩婆若?”

사리불이 부처님께 여쭈었으니, 

“세존이시여, 무엇 때문에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배우지도 못하고 살바야도 얻지 못하게 되는지요?”

 

佛告舍利弗:“菩薩摩訶薩無方便故,想念分別,著般若波羅蜜,著禪波羅蜜、毘梨耶波羅蜜、提波羅蜜、尸羅波羅蜜、檀波羅蜜,乃至十八不共法、一切種智,隨念分別著。以是因緣故,菩薩摩訶薩如是學,亦不學般若波羅蜜,不得薩婆若。”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으니, 

“보살마하살은 방편이 없는 무방편(無方便)이기 때문에 생각하고 분별하면서 반야(般若)바라밀에 집착하고, 선(禪)바라밀과 비리야(毘梨耶, 정)ㆍ찬제(羼提, 인)ㆍ시라(尸羅, 지계)바라밀ㆍ단(檀, 보시)바라밀에서

18불공법과 일체종지(一切種智)에 이르기까지 생각을 따라 분별하고 집착하나니,

이러한 인연 때문에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배우면 또한 반야바라밀을 배우지도 못하고 살바야도 얻지 못하느니라.”

 

舍利弗白佛言:“世尊!若菩薩摩訶薩如是學,亦不學般若波羅蜜,不得薩婆若?”佛告舍利弗:“菩薩摩訶薩如是學,不學般若波羅蜜,不得薩婆若。”

사리불존자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느니, 

“세존이시여, 만약 보살마하살이 그와 같이 배우면 또한 반야바라밀을 배우지도 못하고 살바야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으니, 

“보살마하살이 그와 같이 배우면 반야바라밀을 배우지도 못하고 살바야도 얻지 못하느니라.”

 

舍利弗白佛言:“世尊!菩薩摩訶薩今云何應學般若波羅蜜,得薩婆若?”佛告舍利弗言:”若菩薩摩訶薩學般若波羅蜜時,不見般若波羅蜜。舍利弗!菩薩摩訶薩如是學,學般若波羅蜜,得薩婆若,以不可得故。”

사리불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으니,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은 이제 어떻게 반야바라밀을 배우고 살바야를 얻어야 하는지요?”

부처님께서 사리불존자에게 말씀하셨으니,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배울 때에는 반야바라밀을 보지 않아야 하느니라.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배우면 살바야를 얻나니, 얻을 수 없는 불가득(不可得)이기 때문이니라.”

 

舍利弗白佛言:“世尊!云何名不可得?”佛言:“諸法內空乃至無法有法空故。”

사리불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으니,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얻을 수 없는 불가득(不可得)이라 하시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제법은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의(意) 처(處)에 대한 모든 분별과 작용이 끊어진 내공(內空)이며,

나아가 모든 현상에 대한 분별과 작용이 모두 끊어져서 취할 수 없는 무법유법공(無法有法空)이기 때문이니라.”

 

. 釋曰:舍利弗上問:“但無受三昧疾得佛,更有餘三昧?”須菩提說:

“更有餘三昧疾得佛。是菩薩不念、不著是三昧,過去、現在諸佛授記。”

▷논. 해석한다; 사리불존자가 위에서 묻기를 “단지 무수삼매(無受三昧)만으로 신속히 부처님이 될 수 있습니까. 아니면 다시 그 밖의 삼매가 있습니까”라고 하자,

수보리존자가 답하기를 “다시 그 밖의 삼매가 있어서 신속히 부처님이 될 수 있다.”고 하였으며,

그리고 “이 보살이 이 삼매를 생각하지 않고 집착하지도 않는다면 과거와 현재의 모든 부처님께서 수기를 주신다.”고 하였다.

 

佛讚言:“善哉!菩薩摩訶薩應如是學般若波羅蜜乃至一切佛法。”是時,舍利弗作是念:

“般若波羅蜜是空相,諸三昧種種分別相,云何學諸三昧是爲學般若波羅蜜?”是故問。

그러자 부처님께서 찬탄하시면서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 내지 일체 불법을 배워야 한다.”고 하시므로,

이 때에 사리불존자가 “반야바라밀이란 바로 공한 공상(空相)이요, 모든 삼매는 갖가지로 분별하는 분별상(分別相)이거늘,

어떻게 모든 삼매를 배우는 것이 바로 반야바라밀을 배우는 것일까”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물은 것이다.

 

佛答舍利弗:“如是學般若波羅蜜,皆以不可得故" 以般若波羅蜜氣分相皆在諸三昧中,能如是學,

是爲學般若波羅蜜。乃至十八不共法。佛卽可之。

부처님께서 사리불존자에게 대답하시되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배움(學)은 모두가 얻을 수 없는 불가득(不可得)이기 때문이니라.

반야바라밀의 기분(氣分)과 상(相) 모두는 모든 삼매 가운데에 있으므로 이와 같이 배운다면 이것이 반야바라밀 내지 18불공법을 배우는 것이 된다.”고 하시면서 부처님께서 곧 인가(印可)하신 것이다.

 

舍利弗復問:“何等法不可得?”佛此中自說:“衆生空故,畢竟淸淨故,我不可得,乃至知者、見者、須洹乃至佛不可得。法空故,畢竟淸淨故,五衆不可得,乃至十八不共法不可得。”

그러자 사리불존자가 다시 묻기를 “어떠한 법이 얻을 수 없는 불가득(不可得)인지요?”라 하였고,

부처님께서 여기에 대하여 스스로 말씀하시되 “중생이 공한 중생공(衆生空)이고,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에 나를 얻을 수 없는 아불가득(我不可得)이고,

또한 안근(眼根)을 제외한 그 밖의 네 가지 감관과 의식(意識)으로 아는 지자(知者)

눈으로 색(色)을 보는 견자(見者)와 수다원에서 부처님에 이르기까지도 얻을 수 없는 불가득(不可得)이며,

법이 공한 법공(法空)이고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에 5중(衆, 오온)이 불가득(不可得)이고,

나아가 18불공법도 얻을 수 없는 불가득(不可得)이니라.”고 하신다.

 

“畢竟淸淨”者,“不出不生、不得不作”等。因邊不起故,名爲“不出”;緣邊不起故,名爲“不生”。定生相不可得故,名爲“不出不生”。不出不生故,名“不可得”;不可得故,名“無作無起”。是起作法,皆是虛誑;離如是相,名“畢竟淸淨”。

마침내 청정한 필경청정(畢竟淸淨)이라 함이란, 벗어나지도 않는 불출(不出), 나지도 않는 불생(不生), 얻지도 않는 불득(不得), 짓지도 않는 불작(不作) 등이며,

인(因, 원인)의 편에서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벗어나지 않는 불출(不出)이고,

연(緣, 조건)의 편에서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나지 않는 불생(不生)이며,

결단코 나는 모양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벗어나지도 않고 나지도 않는 불출불생(不出不生)이라 하고,

불출불생(不出不生)이기 때문에 얻을 수 없는 불가득(不可得)이라 하며,

얻을 수 없는 불가득(不可得)이기 때문에 지음이 없는 무작(無作)이고 일어남이 없는 무기(無起)라 한다.

이 일어나(起)거나 짓는(作) 법 모두는 거짓이요 속임수이니,

이와 같은 상(相)을 여의므로 필경청정(畢竟淸淨)이라 하는 것이다.

 

舍利弗問佛:“菩薩能如是行畢竟眞淨道,爲學何法?爲得何法?”佛答:“能如是學,爲無所學、無所得。”

사리불존자가 부처님께 묻기를 “보살이 이와 같이 마침내 진실하고 청정한 도(道)를 행한다면 어떠한 법을 배우는 것이 되고 어떠한 법을 얻는 것이 되는지요?”라고 하자,

부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이와 같이 배우면 배우는 바도 없고 얻는 바도 없는 것이 되느니라.”고 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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