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釋初品中  布施隨喜心過 上第四十四 卷二十八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44. 보시와 더불어 기뻐하는 마음이 보다 더 뛰어나다(布施隨喜心過上)의 뜻을 풀이함 1

 

▶ 經. “一切求聲聞、辟支佛人布施時,欲以隨喜心過其上者,當學般若波羅蜜。

▷經. 일체의 성문이나 벽지불을 구하는 사람이 보시(布施)를 할 때에, 더불어 기뻐하는 수희(隨喜)의 마음으로써, 그 지위보다 뛰어나고자 한다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 익혀야 하고, 

 

一切求聲聞、辟支佛人持戒時,欲以隨喜心過其上者,當學般若波羅蜜。

일체의 성문이나 벽지불을 구하는 사람이 계율을 지녀 지계(持戒)할 때에 더불어 기뻐하는 수희(隨喜)의 마음으로써 그 지위보다 뛰어나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고,

 

一切求聲聞、辟支佛人 三昧、智慧、解脫、解脫知見,欲以隨喜心過其上者,當學般若波羅蜜。

일체의 성문이나 벽지불을 구하는 사람이 삼매(三昧) 지혜(智慧) 해탈(解脫) 해탈지견(解脫知見)을 구함에 있어서 더불어 기뻐하는 수희(隨喜)의 마음으로써 그 지위보다  뛰어나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

 

▶ 論. 隨喜心者,如「隨喜品」中說。復次,隨喜名有人作功德,見者心隨歡喜,讚言:“善哉!”在無常世界中,爲癡闇所蔽,能弘大心,建此福德。

▷論. 더불어 기뻐하는 마음의 수희심(隨喜心)이라 함은, 수희품(隨喜品)에서 설명한 것과 같으며,

또한 더불어 기뻐하는 수희(隨喜)라 함은, 어떤 사람이 공덕을 지을 때에 그것을 보는 이가 마음으로 더불어 기뻐하면서 참으로 장하다 칭찬하는 것이니,

 무상한 세계에서 어리석음의 어두움에 가려져 있으나, 능히 큰 마음의 대심(大心)으로 넓히는 것이며 이러함으로 복덕을 이룩하는 것이다.

 

譬如種種妙香,一人賣一人買,傍人在邊亦得香氣,於香無損,二主無失,

비유하자면, 갖가지의 묘한 향을 한 사람은 팔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이 사고 있을 때에, 그들의 주위 있는 사람들도  향기를 맡을 수는 있어도,  향에는 손상됨이 없으니 팔고 사는  사람 누구에게도 잃은 것이 없 것과 같으며,

 

如是有人行施,有人受者,有人在邊隨喜, 功德俱得,二主不失。

如是相名爲隨喜。

 어떤 사람이 보시를 하고 어떤 사람이 그 보시를 받을 때에 주위 있던 사람이 더불어 기뻐한다면,  공덕을 그들과 함께 얻게 되나, 시자(施者)와 수자(受者)  사람에게는 잃은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니,

이와 같은 상(相) 더불어 기뻐하는 수희(隨喜)라 하는 것이. 

 

以是故,菩薩但以隨喜心,過於求二乘人上,何況自行!

 때문에 보살은 다만 더불어 기뻐하는 수희심(隨喜心)으로써 이승을 구하는 사람들보다 더욱 뛰어나게 되거늘, 하물며 스스로가 행하는 것이랴.

 

問曰:菩薩云何 能以隨喜心過聲聞、辟支佛人以財布施上?

묻나니, 보살은 어찌하여 더불어 기뻐하는 수희심(隨喜心)만으로도  성문이나 벽지불을 구하는 사람들이 재물을 보시하는 것을  뛰어 넘을 수 있는 것입니까?

 

答曰:聲聞、辟支佛行是布施,菩薩於傍見之,一心念隨喜,讚言:“善哉!”以此隨喜福德,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爲度一切衆生故,以此爲得無量佛法故以二種功德,過求聲聞、辟支佛人所行布施上。

답하나니, 성문이나 벽지불이 보시를 행할 때에 보살이 그것을 곁에서 보고 일심으로 더불어 기뻐하면서 참으로 장하다 칭찬하고는, 더불어 기뻐하는 복덕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廻向)하는 것이니, 그것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서이며, 그러함 때문에 한량없는 부처님 법을 얻게 되는 것이니,

수희(隨喜)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廻向)하는 이  가지의 공덕으로 성문이나 벽지불을 구하는 사람이 행하는 보시보다  뛰어나게 되는 것이다.

 

復次,以諸法實相智慧心隨喜故,過求聲聞、辟支佛人布施上。

또한 제법의 실상의 지혜인 마음으로써 더불어 기뻐하기 때문에 성문이나 벽지불을 구하는 사람의 보시보다도  뛰어나게 되는 것이며, 

 

復次,菩薩以隨喜心,生福德果報,迴向 供養三世十方諸佛,過聲聞、辟支佛布施上。

또한 보살은 더불어 기뻐하는 마음으로써 복덕과 과보를 내어 회향하고, 시방삼세(四方三世)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나니, 성문이나 벽지불을 구하는 이의 보시보다도  뛰어나게 되는 것이라. 

 

譬如人以少物獻上國王,得報甚多;又如吹貝,用氣甚少,其音甚大。

비유하자면, 마치 사람이 조그마한 물건을 국왕에게 올렸으나, 아주 많은 대가를 얻게 되는 것과 같으며,

또힌 소라 패(貝) 불 때에 기운은 아주 적게 썼는데도  소리는 심히  것과 같은 것이며,  

 

復次,菩薩以隨喜功德, 和合無量諸餘功德,乃至法滅亦不盡;譬如少水置大海中,窮劫乃盡。持戒、三昧、智慧、解脫、解脫知見亦如是。

또한 보살은 더불어 기뻐하는 공덕으로써 무량한  밖의 공덕을 함께 합하게 되어서 법이 소멸할 때까지도 다하지 않게 되나니, 

비유하자면, 작은 물이 대해(大海) 이르게 되 () 다하여야 비로소 마르게 되 것과 같으니, 지계(持戒) 삼매(三昧) 지혜(知慧) 해탈(解脫) 해탈지견(解脫知見) 역시 그와 같은 것이다.

 

問曰:若諸佛次第有菩薩,菩薩次第有聲聞、辟支佛,今言“菩薩欲過求聲聞、辟支佛人布施”等 有何奇特?

묻나니, 만약 모든 부처님 다음이 보살이고, 보살 다음이 성문과 벽지불이라면,

지금 보살이 성문이나 벽지불을 구하 사람의 보시보다 뛰어나다 등이란,

어떠한 뛰어남이 있다는 것입니까?

 

答曰:不以聲聞、辟支佛布施、持戒等福德,比菩薩功德, 但以隨喜心能勝,何況菩薩自行功德!求聲聞、辟支佛人,懃身作功德疲勞;菩薩默然隨喜,智慧福德過其上。

답하나니, 성문이나 벽지물의 보시와 지계 등의 복덕은 보살의 공덕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니,

다만 더불어 기뻐하는 수희심(隨喜心)만으로도 보다 수승하거늘, 하물며 보살 스스로가 공덕을 행함이겠는가!

성문이나 벽지불을 구하는 사람은 몸으로 힘써 공덕을 지으므로 몸이 피로하게 되지만 

보살은 잠자코 더불어 기뻐하는 지혜의 힘과 복덕만으로도 그 보다  뛰어나게 된다는 것이니,

 

譬如工匠,但以智心指授而去,執斤斧者疲苦終日;計功受賞,匠者三倍。又如征伐,鬪者冒死,主將受功。

비유하자면, 장인(匠人) 다만 지혜로써 가르쳐 주고나면, 연장을 들고 일하는 이들이 종일토록 괴롭게 일을 하여 완성하게 되나, 그 () 헤아려서 () 받는 장인은 그 일하는 이들의  곱을 더 받는 것과 같으며,

 군대로 적을 정벌할 때에도 죽음을 무릅쓰고 싸운 군사들보다 장수에게 그 공이 돌아가는 것과 같은 것이다.

 

問言:若隨喜心故勝於布施、持戒者,何以但說“菩薩隨喜勝”?

묻나니, 만약 더불어 기뻐하는 마음으로 인하여 보시하고 계를 지키는 이들보다 수승하게 된다면, 무엇 때문에 다만 보살이 더불어 기뻐하는 것만이 수승하다고 하는 것입니까?

 

答曰:凡夫人煩惱覆心、吾我未斷、著世閒樂,云何能勝求聲聞、辟支佛者?聲聞、辟支佛利雖勝鈍,同在聲聞地故不說。

답하나니, 범부인들 번뇌로 마음이 덮혀 가리어져 있고,

'나'라는 아집의 吾我(오아) 아직 끊지 못하여 세간의 즐거움에 집착하고 있으니 어떻게 성문이나 벽지불을 구하는 이보다도 수승하다 할 수 있겠는가? 

성문이나 벽지불로서 영리한 이들은 비록 둔한 이들보다는 수승하다 할 수있어  같은 성문의 지위에 있기 때문에 말하지 않은 것이다.

 

問曰:聲聞、辟支佛功德法甚多,何以故但說六事?

묻나니, 성문이나 벽지불이 지닌 공덕에 대한 법(가르침)은 심히 많은데 무엇 때문에 여섯 가지의 육사(六事, 육바라밀)만을 설명하시는 것입니까?

 

答曰:此六事法中攝一切聲聞、辟支佛法。若說布施,已說信、聞等功德。何以故?先聞已能信,信已布施。是施有二種:財施、法施。

답하나니, 육사(六事, 육바라밀) 모든 성문과 벽지불의 법을  포섭하나니,

만약 보시에 대하여 말한다면, 이미 믿는 신(信)과 듣는 문(聞) 등의 공덕에서 설명하였으니,

왜냐하면 먼저 들은 뒤에  믿게 되고, 믿은 뒤에는 보시하게 되기 때문이니,  

 보시에는 재물 보시의 재시(財施)  보시의 법시(法施)  가지가 있는 것이다. 

 

持戒攝三種戒:律儀戒、禪戒、無漏戒。定攝諸禪、定、解脫、三昧等。慧攝諸聞慧、思慧、修慧。

지계(持戒)에서는  가지의 계율을 포섭하나니, 

율의계(律儀戒) 선계(禪戒) 무루계(無漏戒)이다. 

선정의 정(定)에는 모든 선정과 해탈과 삼매 등을 포섭하며, 

지혜(慧)에서는 들어서 얻는 모든 지혜의 문혜(聞慧)

사유해서 얻는 지혜의 사혜(思慧) 수행하여 얻는 지혜의 수혜(修慧) 포섭하는 것이다.

 

解脫攝二種解脫:有爲解脫、無爲解脫。解脫知見攝盡智,自知漏已盡,於三界得解脫,於是中了了知見。是中助道法,聖道法已說。

해탈(解脫)에서는  가지의 해탈을 포섭하나니, 유위(有爲) 해탈과 무위(無爲) 해탈이라. 

(유위有爲의 해탈과 무위無爲의 해탈을 분명히 아는) 해탈지견(解脫知見)에서는 번뇌가 다하여 깨달은 지혜의 진지(盡智) 포섭하나니, 

스스로 번뇌가 이미 다하였음을 알게 되어 삼계(三界)에서 해탈을 얻고는,  가운데에서 명확 알고 명확히 보는 것이며, 

 가운데에서 조도법(助道法, 18조도법) 성도법(聖道法, 팔정도) 이미 설명하였다.

 

復次 若不向涅槃功德,是中不說“過上”,以其功德薄故。

또한 만약 열반을 향하지 않는 공덕이라면, 성문이나 벽지불 보다  뛰어 넘었다 말하지 않나니,  공덕이 얇은 때문이다.

 

問曰:勝名力勢相奪,今菩薩不與聲聞、辟支佛競,云何言勝?

묻나니, 이긴다는 승(勝)이라 함은 세력으로 서로의 것을 빼앗는 것입니다. 

지금 보살은 성문이나 벽지불과 비교하고 경쟁하는 것 아닌 어찌하여 뛰어나다고 하는 것입니까?

 

答曰:勝名但於一事中,以智慧、方便心力故得福多。

답하나니, 승(勝)이라 함이란, 다만 하나의  가운데서도 지혜와 방편의  때문에 복을 얻음이 많다는 것일 뿐으로,

 

譬如人於一華中但取色香,蜂但取味以成蜜;

亦如取水, 器大者得多,器小得少。如是等喩可知,

비유하자면, 사람은  송이의 에서 다만 색 향기만을 취할 뿐이나, 벌은 오로지 맛을 취하여서 꿀을 만드는 것과도 같으며,

또한 마치 물을 담을 그릇이 크면 많이 물을 취할 수 있 그릇이 작으면 적은 양을 얻게 되는 것과 같나니,

이와 같은 등의 비유로써 알 수 있는 것이ㄴ다.

 

以隨喜心深利智慧相應,勝聲聞、辟支佛布施等諸功德。

더불어 기뻐하는 수희심(隨喜心) 깊고 예리한 지혜와 상응하는 것이라, 성문이나 벽지불이 하는 보시 등의 모든 공덕보다 뛰어나는 것이다.

 

是六法, 初布施,如“檀波羅蜜義”中分別聲聞、辟支佛法說;持戒,如「尸羅波羅蜜義品」中分別聲聞、辟支佛法說;三昧、智慧、解脫、解脫知見,如“念佛義”中分別聲聞、辟支佛法說。

이러한 여섯 가지의 바라밀의 법에서,

첫 번째의 보시는 단바라밀(檀波羅蜜)의 이치 중에서 성문과 벽지불의 법을 분별하는 데서의 설명과 같으며, → 대지도론(大智度論) 제12권 1, 2 참고

지계는 시라바라밀(尸羅波羅蜜)의 이치 중에서 성문과 벽지불의 법을 분별하는 데에서의 설명과 같으며, → 대지도론(大智度論) 제13권 1, 2 참고

삼매ㆍ지혜ㆍ해탈ㆍ해탈지견은 염불(念佛)의 이치 중에서 성문과 벽지불의 법을 분별하는 데서의 설명과 같다. → 대지도론(大智度論) 제22권 10, 11 참고

  
大智度論卷第二十八 終 대지도론 제 28 권을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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