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釋初品中 十想釋論第三十七 卷二十三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37. 초품 중 십상(十想)의 뜻을 풀이함 5
“食厭想”者 觀是食從不淨因緣生。如肉從精血水道生 是爲膿虫住處, 如酥乳酪 血變所成 與爛膿無異,
식염상(食厭想, āhāre pratikūlasaṁjñā, 식부정상食不淨想)이라 함은, 음식은 깨끗하지 못한 인연으로부터 생긴다고 관하는 것이니,
마치 고기는 몸 안의 정혈(精血)이 드나드는 길을 따라 생긴다고 하는 것과 같으로,
이것은 고름벌레인 농충(膿虫)이 머물러 사는 곳이어서 마치 야구르트=소(酥)와 가공한 우유인 유락(乳酪)과 같이 피가 변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삭혀져서 분해되어 고름과 다를 바가 없으며,
廚人污垢 種種不淨。若著口中 腦有爛涎 二道流下 與唾和合 然後成味 其狀如吐 從腹門入, 地持 水爛 風動 火煮 如釜熟糜 滓濁下沈 淸者在上。譬如釀酒 滓濁爲屎 淸者爲尿。釜 가마 부, 滓 찌끼 재,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인 투인(廚人)은 더러움으로 오염되어 여러 면으로 깨끗하지 못하며,
만약 그 음식이 입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뇌(腦)에서 그 음식을 분해하는 침=연(涎)이 (뇌하수체전엽과 뇌하수체후엽의) 두 길을 타고 내려와서 침과 화합한 후에야 맛을 이루는데 (맛을 느낄 수 있는데) 그 (음식의) 형상은 마치 토(吐)한 토사물과 같으며,
그것이 뱃속으로 들어가면 지(地, 지대地大)는 지니고, 수(水, 수대水大)는 부수며, 바람의 풍(風, 풍대風大)는 움직여서 섞고, 화(火, 화대火大)는 삭히니,
이러함은 마치 솥에서 죽을 끓일 때에 탁한 찌꺼기는 아래로 가라앉고, 맑은 것은 위에 뜨게 되는 것과 같으니, 비유하자면, 마치 술을 빚으면 찌끼의 흐린 것은 똥이 되고 맑은 것은 오줌이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腰有三孔 風吹膩汁 散入百脈 與先血和合 凝變爲肉。膩 기름 니,
허리에는 세 개의 구멍 (신장(腎臟)에는 사구체와 보먼주머니로 이루어진 말피기소체Malpighi 소체小體와 집합관集合管collecting tubule이라는 세 개의 구멍)이 있어서,
풍대(風大)에 의해 기름의 즙(汁)이 흩어지면서 백 개의 맥(脈, 내분비선內分泌線)으로 흩어져 들어가 먼저 피와 화합하여 엉키고 굳어지게 변하여서 살이 되게 하며,
從新肉生脂骨髓 從是中生身根, 從新舊肉合生五情根 從五根生五識,
五識次第生意識 分別取相 籌量好醜, 然後生我 我所心等諸煩惱 及諸罪業。
이렇게 새로 만들어진 살로부터 기름(지방)과 뼈와 골수가 생기며,
이 안에서부터 몸의 기관인 신근(身根, kāyendriya)이 생기고
새 살과 옛 살이 화합하여 다섯 개의 감관인 오정근(五情根)이 생기는 것이다.
다섯 개의 감관인 오정근(五情根)으로부터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의 오식(五識)이 생겨나며,
이 오식(五識)은 차례로 의식(意識, manovijñāna)이 생겨나게 하며,
분별하고 모양을 취하여 그 아름다움과 추함을 헤아리며,
그러한 뒤에는 나라는 아(我)와 내 것이라는 아소(我所)의 마음을 일으키어 모든 번뇌와 모든 죄업을 낳게 하는 것이다.
觀食如是本末因緣 種種不淨 知內四大與外四大無異 但以我見故 强爲我有。
음식을 관하는 것이 마치 이와 같으니, 처음과 마지막의 인연과 갖가지 부정(不淨)한 것임을 관하게 되면
몸 안의 사대(四大)와 바깥의 사대(四大)와 다를 바가 없이 같은 것이나,
다만 나라는 소견의 아견(我見, ātmadṛṣṭi) 때문에 억지로 나가 있는 유아(有我)라고 할 뿐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復次 思惟此食 墾植耘除 收穫蹂治 舂磨洮汰 炊煮乃成 用功甚重,
計一鉢之飯 作夫流汗集合 量之食少汗多。墾 따비질할 간, 개간할 간, 耘 김맬 운
此食作之功重 辛苦如是 入口食之 卽成不淨 無所一直 宿昔之閒變爲屎尿。
本是美味 人之所嗜, 變成不淨 惡不欲見。
또 이 음식을 생각해 보면 논밭을 갈고 개간하여 심고 김을 매고 수확하며, 찧고 일어서는 불을 지펴 삶아서 비로소 완성되는 것으로, 그렇게 공을 들이는 공력은 매우 중하며,
한 발우(그릇)의 밥을 헤아려 보면, 농부가 흘린 땀의 집합체이라.
그 양은 적을 지라도 흘린 땀은 아주 많음을 헤아릴 수 있나니,
이 음식을 만들고자한 공력의 중함과 받았던 온갖 고통은 이러한 것이나,
이 음식을 입에 넣어 먹게 되면 곧 부정한 것으로 되어서 아무런 가치도 없게 되어 버리며,
얼마 지나지 않아 변한 것이 똥과 오줌으로 되는 것이라.
본래는 맛있는 것이어서 사람들이 즐기며 먹었으되 이내 변하여 깨끗하지 못한 것이 된 것이므로 불쾌하여져서 보고 싶지 않은 것이 되는 것이다
行者自思, “如此弊食 我若貪著 當墮地獄噉燒鐵丸, 從地獄出 當作畜生, 牛羊駱駝 償其宿債, 或作猪狗 常噉糞除"
如是觀食 則生厭想, 因食厭故 於五欲中皆厭。
수행하는 이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만약 내가 이와 같이 폐가 있는 음식에 탐착하게 되면 마땅히 지옥에 떨어져서 이글거리는 쇠구슬=철환(鐵丸)을 먹게 될 것이고,
지옥으로부터 벗어 나게 되어도 소와 양과 낙타 등과 같은 축생이 되어서 그러한 옛 빚을 갚아야 할 것이며,
혹 돼지나 개가 되어 항상 똥이나 찌꺼기를 먹어야 하리라”고 하며,
이와 같이 음식을 관하면 싫어하는 생각이 나게 되고,
음식을 싫어하기 때문에 모든 오욕(五欲)에 대하여서도 싫증을 내게 되는 것이다.
譬如一婆羅門修淨潔法 有事緣故到不淨國, 自思, “我當云何得免此不淨?唯當乾食 可得淸淨" 見一老母賣白髓餠 而語之言, “我有因緣 住此百日 常作此餠送來 當多與價"
비유하자면, 마치 어느 한 바라문(婆羅門)의 경우와 같으니, 그는 정결(淨潔)한 법을 닦고 있었으나, 어떤 일 때문에 청정하지 못한 나라로 가게 되자 그는 생각하기를, “내가 어떻게 하여야 이 곳의 부정함을 면할 수 있을까? 나는 마땅히 오직 마른 음식만을 먹으면서 청정함 지켜야 하리라.” 하고는
마침 어느 한 노모(老母)가 백수병(白髓餠, 백설기)을 팔고 있는 곳을 보고는 그 노모에게 말하기를, “나는 마침 할 일이 있어서 여기에서 백일 동안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매일 이 떡을 만들어서 보내 주시면 값을 넉넉히 드리겠습니다.”
老母日日作餠送之, 婆羅門貪著 飽食歡喜。老母作餠 初時白淨 後轉無色 無味。
卽問老母, “何緣爾耶?" 母言:“癰瘡差故"
婆羅門問, “此言何謂?”母言, “我大家夫人隱處生癰 以麪 酥 甘草拊之 癰熟膿出 和合酥餠,
日日如是 以此作餠與汝 是以餠好。
今夫人癰差 我當何處更得? 婆羅門聞之 兩拳打頭 搥胸吁嘔, “我當云何破此淨法?我爲了矣" 棄捨緣事 馳還本國。
그 노모는 날마다 떡을 만들어서 그에게 보냈으며 그 바라문은 탐착하여 배불리 먹으면서 매우 좋아하였다.
그런데 노모가 만든 떡이 처음에는 희고 깨끗하였는데, 날이 갈수록 빛깔도 없고 맛도 없었으므로 곧 그 노모에게 “떡이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하고 물었더니 노모가 말하기를 “종기의 상처가 나았기 때문입니다”고 하였다.
그 바라문은 다시 묻기를, “그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그러자 노모는 말하기를, “저의 대가집 부인의 은밀한 곳= 은처(隱處)에 종기가 생겼는데, 밀가루와 소(酥, 치즈)와 감초(甘草)를 섞어서 그곳에다 붙이면 종기가 곪아서 고름이 나오므로 그것을 소와 떡에다 버무려 떡을 만들어서 날마다 당신에게 드린 것입니다. 이 때문에 떡이 맛있고 좋았지만 이제 부인의 종기가 다 나아버려서 내가 어디서 다시 고름을 얻어 오겠습니까.” 하였다
바라문은 이 말을 듣고 두 주먹으로 머리를 때리고 가슴을 치며 전부 토해 내면서 “나는 어찌하면 좋겠는가. 이 청정한 법을 깨뜨리고 말았으니, 나는 이제 끝장이다”고 하며 하던 일을 다 내버리고 도망치듯 본국으로 돌아와 버렸다.
行者亦如是 著是飮食 歡喜樂噉 見其好色細滑 香美可口 不觀不淨,
後受苦報 悔將何及!若能觀食本末如是 生惡厭心 因離食欲 四欲皆捨
於欲界中樂悉皆捨離, 斷此五欲 於五下分結亦斷。
本末본말= 1. 사물의 근간이 되는 부분과 지엽적인 부분. 2. 일의 처음과 끝
수행하는 이도 그와 같아서 이와 같이 음식에 탐착하여 기뻐하면서 즐겨 먹거나,
음식의 좋은 빛깔과 부드럽고 향기로운 맛이 입에 맞다하여 부정함을 관찰하지 못한다면 뒤에는 고통의 과보를 받으리니, 후회한들 장차 어떻게 하겠는가.
만약 능히 음식의 본말(本末)을 관찰하여 이와 같이 싫증나는 마음을 내면 음식에 대한 욕망을 여의기 때문에 정욕(情欲)·색욕(色欲)·식욕(食欲)·음욕(婬欲)의 네가지 사욕(四欲)을 모두 여의게 되나니,
욕계(欲界) 안의 쾌락을 모두 다 버리고 여의게 됨에 따라 이 오욕(五欲)을 끊게 되고 유신견결(有身見結) · 계금취견결(戒禁取見結) · 의결(疑結) · 욕탐결(欲貪結) · 진에결(瞋恚結)의 오하분결(五下分結)도 역시 끊게 되는 것이다.
오하분결(五下分結);
①오온을 ‘나’라고 ‘내 것’이라고 국집하는 유신견결(有身見結),
②선ㆍ불선도 구분하지 않고, 윤리ㆍ도덕과 전통ㆍ권위에 묶여서 중도를 통찰하지 못하는 계금취견결(戒禁取見結)
③의심(疑心) 또는 의혹(疑惑)이 많아서 스스로 확인하지 못하는 의결(疑結)
④그칠 줄 모르는 욕심의 욕탐결(欲貪結)
⑤성냄, 분노, 저항, 적개심, 혐오, 반감 등의 진에결(瞋恚結)의
(2) 오상분결(五上分結); 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에 중생을 속박시키는 다섯 가지 미세한 얽매임, 즉 미세한 족쇄(結), ① 만(慢), ② 도거(掉擧), ③ 무명(無明), ④ 색탐(色貪), ⑤ 무색탐(無色貪)의 5가지 번뇌를 말한다.
如是等種種因緣惡罪 不復樂著 是名“食厭想”。
이와 같은 갖가지 인연의 나쁜 허물에 다시는 좋아하거나 집착하지 않나니, 이러함을 식염상(食厭想, āhāra-paṭikūla-saññā)이라 한다.
問曰; 無常 苦 無我想 與無漏智慧相應 食厭等四想 與有漏智慧相應 次第法應在前 今何以後說?
묻나니, 무상상(無常想) 고상(苦想) 무아상(無我想)은 무루(無漏)의 지혜와 상응하고,
식염상(食厭想)을 비롯한 일체세간불가락상(一切世間不可樂想) 사상(死想) 부정상(不淨想)의 사상(四想)은 유루(有漏)의 지혜와 상응하니,
차례대로의 법(가르침)으로는 마땅히 앞에 있어야 하거늘 지금 어찌하여 뒤에서 설명하시는 것입니까?
答曰; 佛法有二種道, 見道修道。見道中用是三想 破諸邪見等 得聖果 猶未離欲,
爲離欲故 三想次第說是食厭等四想 得離婬欲等諸煩惱。
初三想示見諦道 中四想爲示學修道 後三想示無學道。
답하나니, 부처님의 법(가르침)에는 두 가지 도(道)가 있으니, 견도(見道, darśanamārga, 수다원 또는 아비발치)와 수도(修道, bhāvanāmārga, 사다함)가 그것이다.
견도(見道) 중에서는 무상상(無常想) 고상(苦想) 무아상(無我想)의 세 가지의 생각의 삼상(三想)으로써 모든 삿된 소견 등을 깨뜨려서 성인의 과위를 얻게 되지만, 아직 욕망을 여의지 못했기에 욕망을 여의기 위하여 삼상(三想) 다음에 이 식염상(食厭想) 일체세간불가락상(一切世間不可樂想) 사상(死想) 부정상(不淨想)의 사상(四想)을 말하여 음욕 등의 모든 번뇌를 여윌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처음의 무상상(無常想) 고상(苦想) 무아상(無我想)의 삼상(三想)은 견제도(見諦道, satyadarśanamārga)에서 보이고,
중간의 식염상(食厭想) 일체세간불가락상(一切世間不可樂想) 사상(死想) 부정상(不淨想)의 사상(四想)은 수도(修道)를 배우는 단계에서 보이며
나중의 단상(斷想) 이욕상(離欲想) 진상(盡想)의 삼상(三想)은 무학도(無學道)에서 보게 되는 것이다.
初習身念處中 雖有食厭想 功用少故佛不說。
今爲須陁洹 斯陁含度欲故 無我想次第說食厭等四想。
처음에 신념처(身念處, kāyasmṛtyupasthāna)를 익히는 가운데에서는 비록 식염상(食厭想)이 있다 하여도 그 공용(功用)이 적은 까닭에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지 않으셨으나,
지금 수다원(須陀洹)과 사다함(斯陀含)을 제도하려고 하느 까닭에 무아상(無我想) 다음에 식염상(食厭想)을 비롯한 일체세간불가락상(一切世間不可樂想) 사상(死想) 부정상(不淨想)의 사상(四想)을 말씀하신 것이다.
“一切世閒不可樂想”者 若念世閒色欲滋味 車乘服飾 廬觀園宅 種種樂事 則生樂想,
若念世閒衆惡罪事 則心生厭想。何等惡事?惡事有二種, 一者 衆生, 二者 土地。
일체세간불가락상(一切世間不可樂想, sarvaloke 'nabhirati)이라 함은, 만약 세간의 색욕(色欲)ㆍ자양분 있는 맛있는 음식인 자미(滋味)ㆍ탈것의 거승(車乘)ㆍ의복과 장식구의 복식(服飾)ㆍ오두막의 로관(盧觀)ㆍ동산 및 집 등의 갖가지 즐거운 일을 기억하게 되면 즐겁다는 생각을 떠올리게 되고,
만약 세간의 뭇 악하고 잘못 된 일들을 기억하면 마음에 싫다는 생각이 나게 되나니,
무엇이 나쁜 악사(惡事)인가? 곧 악사(惡事)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중생(衆生)이고, 둘째는 토지(土地)이다.
衆生有八苦之患, 生老病死 恩愛別離 怨憎同處、所求不得 略而言之 五受衆苦。
중생에게는 여덟 가지의 괴로운 환난의 팔고(八苦)가 있으니, 생로병사(生老病死)와 사랑하는 이와 헤어지는 은애별리(恩愛別離), 원수와 같은 곳에 있게 되는 원승동처(怨憎同處), 구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소구불득(所求不得) 등으로, 간략히 말하면 오수중(五受衆)의 괴로움이다.
衆生之罪 婬欲多故 不別好醜 不隨父母師長教誨 無有慚愧 與禽獸無異。
瞋恚多故 不別輕重 瞋毒狂發 乃至不受佛語 不欲聞法 不畏惡道,
杖楚撗加 不知他苦 入大闇中 都無所見。
중생의 죄로서는 음욕이 많기 때문에 곱고 추함을 구별하지 않게 되고,
부모나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으며,
부끄러워하는 참괴(慚愧)함이 없어서 금수(禽獸)와 다름이 없으며,
또한 성을 내고 노여워함이 많기 때문에 가볍고 무거움의 경중(輕重)을 구별하지 못한 채 성냄의 독을 미친 듯이 일으키고, 부처님 말씀도 받들지 않고 법(가르침)을 들으려고 하지도 않으며,
악도(惡道)를 두려워하지도 않으면서 매나 몽둥이를 멋대로 휘두르며,
다른 이의 고통을 알지도 못한 채 몹시 캄캄한 속으로 들어가게 되어 도무지 바른 소견을 가지지 못하게 되며,
愚癡多故 所求不以道 不識事緣 如搆角求乳, 無明覆故 雖蒙日照 永無所見。
慳貪多故 其舍如塚 人不向之。憍慢多故 不敬賢聖 不孝父母, 憍逸自壞 永無所直。
邪見多故 不信今世後世 不信罪福 不可共處。如是等 諸煩惱多故弊敗 爲無所直。
어리석음이 많은 까닭에 구하는 바가 도(道)에 맞지 않으며,
일의 인연인 사연(事緣)을 알지 못함은 마치 뿔을 비틀어 짜면서 우유를 구하는 것과 같으며,
무명(無明)으로 가리워진 까닭에 비록 밝은 햇빛을 받는다 하여도 영원히 바른 소견이 없으며,
간탐이 많기 때문에 그 집은 마치 무덤과 같으므로 사람들이 그곳을 가지 않으며,
교만이 많기 때문에 성현을 공경하지도 않고 부모에게 효도하지도 않으며, 교만과 방일(放逸)로 자기 자신을 무너뜨리면서 영원히 고쳐지지 않으며,
삿된 소견이 많은 까닭에 금세와 후세를 믿지도 않고 죄와 복도 믿지 않으므로 함께 처할 수가 없으며,
이와 같은 등의 모든 여러 번뇌가 많기 때문에 못되고 망가져서 곧게 바로 잡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惡業多故 造無閒罪, 或殺父母 或傷害賢聖。或要時榮貴 讒賊忠貞 殘害親戚。
讒 참소할 참
악업이 많기 때문에 무간죄(無間罪)를 지으면서 혹은 부모를 죽이기도 하고,
혹은 현인과 성인의 성현(賢聖)을 상해하기도 하며,
혹은 영화와 부귀를 구하면서 충정(忠貞)한 이를 참소(讒訴)하기도 하고 친척을 죽게 하기도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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